이번 중간고사 때 미술 실기 시험으로 서각을 했습니다. 그 것은 목판을 조각칼로 다듬어서 글씨를 입체적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것 이었습니다.

처음에 할 때는 서각하는 것이 아주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조각을 하는 오른팔이 아파왔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무지 힘들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미술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힘들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습니다.

1시간 동안 목판을 조각칼로 갈겼는데도 절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각은 저에게 더욱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목판에 새겨넣은 글은 바로 '궁지에 몰리자' 라는 문구였습니다. 그 문구는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에 궁지에 몰리면 자신의 100%발휘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자신의 능력을 10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궁지에 몰리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그런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궁지에 몰리자는 이 문구를 사람들이 처음 봤을 때 사람들은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뜻을 설명해주자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말은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것 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궁지에 몰리자' 라는 말을 저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겠습니다.

저는 시간도 부족하고 힘도 많이 들어서 결국 남들처럼 글자 주위를 엄청 많이 파지않고 글자를 입체적으로 나타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의 서각이 한 층 더 멋있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실기시험에서 B를 받았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A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앞으로 '궁지에 몰리자' 는 이 말을 가슴 속에 품고 인생을 살아갈 것 입니다.
이번에 '10억' 이라는 영화를 TV에서 하는 OCN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그 영화는 8명의 사람이 무인도같은 곳에 모여서 10억을 걸고 펼치는 서바이벌 게임을 바탕으로 한 영화였습니다.

그 서바이벌 게임은 아내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한 감독이 카메라맨 한 명을 데리고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인도같은 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내가 살해당한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감독의 아내가 살인범에게 맞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또 그중에 한 명은 그 장면을 보고 도와주기는 커녕 캠코더로 찍고있었습니다.

이에 화가난 감독은 그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초대해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게 한 것 입니다.

참가자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감독

그 무인도에 초대된 사람들은 한 명씩 게임에 탈락해서 처참하게 죽어갑니다. 감독은 그들이 죽으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심지어 그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서 인터넷의 한 싸이트에 올리기까지 합니다. 그 동영상을 본 한국 사람들은 동영상에 담긴 참혹한 모습을 보며 또한 즐거워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저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결국 8명에서 한 명씩 죽어가며 4명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돈을 얻고 빨리 무인도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여자친구를 칼로 죽이고 다른 사람들도 죽이려고 합니다.

거기에서도 인간의 무서움을 알게되었습니다. 자신이 살기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죽이는 인간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게임의 생존자가 1명이 남는데 그 사람은 한국에 돌아가서 경찰 관계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10억을 가지고 도망칩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정말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사막을 건너면서 갈증에 시달리다가 물을 발견하고 급하게 물을 먹는 모습은 정말 실제와 헷갈릴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막에서 헤매는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


이번에 본 10억이라는 영화는 정말 재미있지만 저에게 웃음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인간은 어떻게든지 착해지려고 해도 절대로 완벽한 선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면 남을 가차없이 죽이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쁜 본성을 숨기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10억
감독 조민호 (2009 / 한국)
출연 박해일, 박희순, 신민아, 이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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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저희 학교는 중간고사를 마치고 바로 수련회를 갔습니다. 저는 시험공부를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수련회에서 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련회를 가려고 전교생이 모였을 때 갑자기 비가 내렸습니다. 하필 우리반이 타고 갈 버스는 늦게 도착을 해서 저를 비롯한 저희 반 아이들의 옷이 전부 젖어버렸습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간 수련회의 시작부터 좋지않았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버스에 타서 수련회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수련회장은 바로 지리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도착하는데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도 비는 계속 오고있었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비를 맞으며 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교관 선생님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숙소는 정말 마음에 들지않았습니다. 먼저 방이 좁은데다가 수학여행과는 다르게 TV도 없었습니다. 역시 수련회는 별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숙속에서 짐을 풀어놓고 잠시 쉬다가 다시 강당으로 가기 위해 나갔습니다. 숙소에서 꽤 한참을 있었는데도 비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다시 강당에 모여서 반별로 모둠을 짜서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 반의 모둠명은 바로 '몬스터' 였습니다. 몬스터처럼 강하게 수련회를 보내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모둠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너무 떠들어서 교관 선생님들은 3학년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올라갔습니다. 꼭대기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꽤 힘들어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사상최고의 기합을 받았습니다.

정말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힘들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쪼그려앉아서 앞, 옆, 뒤로 돌아다니면서 구호를 크게 외치는 기합을 받았는데 마지막에는 구호를 붙이지 말라고 교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꼭 마지막에는 구호를 붙이지 말라는 말을 잊어버리고 구호를 붙이는 한심한 놈들이 몇 명씩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때문에 우리는 계속 기합을 받았습니다.

수련회는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에 계속 기합받는 것을 부정하지는 앉았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 10번 기합을 받다가 드디어 기합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강당으로 내려갔습니다.

강당에는 1, 2학년들이 엄청 떠들고 있었습니다. 1, 2학년들도 우리 3학년들처럼 극기훈련을 받으러 산을 올라갔습니다.

한 시간 쯤 지나고 1, 2학년들이 기합을 다 받고 내려왔을 때에는 전부 표정들이 3학년들처럼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엄청 웃었습니다.

우리는 취침을 하기위해 누웠습니다. 그런데 옆방이 배게싸움을 하다가 걸려서 우리방과 다른 방들까지 모여서 단체로 기합을 받았습니다.

아까 산에서 기합을 받고와서 그런지 그 기합은 더욱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야말로 달밤에 체조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실컷 기합을 받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침을 먹고 다시 산에 올라가서 총을 들고 서바이벌 게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총은 총알이 다 빠져서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총을 쏘는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아쉽게도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 날밤 신나는 레크레이션과 캠프파이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고 몸이 부숴지도록 춤을 추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미친 짓에 동참했습니다. 그 덕분에 시험공부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없앴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신나게 놀고 기분좋게 잠에 들고 다음날 아침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기합을 하도 많이 받아서 발목이 터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꽤 재밌고 즐거운 수련회였습니다. 이제 중학교에서 가는 여행은 졸업여행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여행으로 중학교에 멋있는 추억을 많이 남기고 싶습니다.
요즘 들어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에 소홀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험대비를 좀 한다고 블로그에 글을 잘 쓰지않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지금부터 블로그를 다시 한번 열심히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블로그에 쓸 소재도 아주 많습니다.

저는 시험을 끝내고 바로 학교에서 가는 수련회를 갔다왔습니다. 그 이야기부터 블로그에 써보려고 합니다.

또 제가 미술시간에 직접 만든 '서각' 을 집에 갔다놓았습니다.

그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블로그에 한 번 올려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썩 잘하지는 않았지만 블로그에 꼭 한 번 올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블로그에 글을 총 210개 쓰면 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핸드폰을 바꿔주신다고 하십니다. 그 핸드폰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겠습니다.

또 제가 '10억' 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에 대한 감상문도 한 편 적으려고 합니다.

그것 말고도 블로그에 쓸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많이 많이 방문해 주시고 많이 많이 기대해 주시기바랍니다.

이번 과학의 날 행사에 저는 '탐구토론'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탐구토론은 과학에 대한 한 주제를 정해서 그것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고 그 발표에 대해 반론과, 평론을 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발표만 하고 우리 조의 다른 친구 두 명은 서로 집이 가까우니까 보고서와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탐구토론에 참가하려면 일단 제출한 보고서가 통과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보고서를 제출한 팀이 8명밖에 없어서 보고서를 제출한 팀은 모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탐구토론을 하기 전 마지막날 저는 발표를 준비하기 위하여 같은 조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발표에 필요한 파워포인트를 깜빡하고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래서 친구에게 얼른 저번에 썻던 보고서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곧바로 보고서를 격려와 함께 보내왔습니다.

저는 보고서를 한 번 읽어보고 발표에 사용할 파워포인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보고서의 내용을 참고해서 열심히 파워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탐구토론을 하는 날 우리는 0교시 수업을 마치고 과학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과학 선생님께서 갑자기 우리조에게 '실격' 이라는 청천병력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시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조는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참관이라도 하기 위해서 다시 과학실로 내려갔습니다.

실격이라는 사실에 저는 무척이나 좌절했습니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않고 열심히 만든 파워포인트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담임 선생님께서 과학실에 내려오셔서 과학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하시더니 과학 선생님께서 저에게 파워포인트를 컴퓨터에 넣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즉 우리 조를 탐구토론 대회에 참가시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조의 친구들과 나는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탐구토론 대회가 시작되고 A조부터 H조 까지의 발표가 끝나고 드디어 우리 조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별로 그렇게 긴장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저의 발표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아는 친구들인데다가 사실상 만들어놓은 파워포인트를 보고 읽는 것 뿐이라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에 탐구토론 대회의 1등이 누구 팀인지 선생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저의 기대와는 반대로 1등은 우리조가 아닌 다른 조 였습니다. 하지만 1등이 아니라도 2등 3등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다른 조들과 우리조의 실력을 비교해보니 우리조는 꼭 상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아직 결과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저의 바람입니다.

이번에 비디오를 한 편 빌려보았습니다. 제가 본 영화는 '트랜스포머2'라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트랜스포머' 첫편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트랜스포머2를 보는 것을 꽤 기대했습니다. 학교에서 트랜스포머2를 잠깐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영화를 30분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트랜스포머2를 빌려서 본 것 입니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1편보다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내용은 1편에서 죽었던 '메가트론' 이 부활해서 다시 싸우는 이야기였습니다. 2편은 우선 전투씬이 많이 나와서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에는 코믹한 장면도 많이 나와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특히 지팡이를 집고있는 늙은 로봇이 나올 때에는 정말 빵 터졌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 영화가 조금 유치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걱정과는 다르게 영화는 꽤 진지한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환상적인 전투씬


정부와 로봇들간의 갈등, 군인들의 비장한 표정, 주인공의 갈등 어디에도 유치한 점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딱 하나 유치한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주인공이 어떤 유적에서 '매트릭스' 라는 물건을 찾을 때 쌍둥이 로봇들이 갑자기 싸우다가 벽이 부숴져서 매트릭스를 찾는 장면이었습니다.

얘들이 쌍둥이 로봇들


로봇들이 갑자기 서로 못생겼다고 싸우다가 우연히 중요한 물건을 찾다니 정말 영화를 많든 사람들의 억지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별로 유치한 장면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로봇이 너무 많이 나와서 편을 잘 구분할 수가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물론 대충 보다보면 누가 누구 편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헷갈릴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마지막에 메가트론의 사부인 '플론' 이 등장하는데 그 플론이 싸우는 장면이 얼마 없다는 것 입니다.

저는 플론과 '옵티머스 프라임' 의 거대한 격투씬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두 로봇이 싸울 때 업그레이드를 한 옵티머스 프라임이 압도적으로 승리를 하면서 플론을 처치했습니다.

이렇게 아쉬운 점도 몇개 있었지만 영화는 저를 충분히 만족시켰습니다. 그리고 로봇들이 변신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정교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디셉티콘(악당 로봇)들이 합체를 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물론 원작 만화를 모티브로 했다지만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이 바로 멋진 합체를 보여준 괴물입니다.


영화의 막바지에 메가트론이 다친 몸으로 도망을 치면서 "이게 끝은 아니다" 라는 대사를 남깁니다. 그 말은 곧 트랜스포머3도 나온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인터넷에 '트랜스포머3'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트랜스포머3는 2011년에 나올 예정이고 지금은 모스크바에서 촬영을 하고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게다가 트랜스포머3는 이번에 나와서 큰 흥행을 일으킨 아바타처럼 3D영화로 만들어 진다는군요. 요즘 영화는 소위 말해서 3D열풍 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3D영화를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바타는 개봉한지 얼마 안되고 나서 봐서 3D로 보지 못했고 이번에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라는 영화도 3D로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과학 박물관에 가서 3D영상을 몇번 본 적은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정말 영상속에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영화를 3D로 본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3D도 영화도 별거 없다고 하시지만 한 번 쯤은 3D영화를 보고싶습니다.

하여튼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또 나온다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감독 마이클 베이 (2009 / 미국)
출연 샤이아 라보프, 메간 폭스, 조쉬 더하멜, 타이레스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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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교를 다녀와서 TV를 보면서 쉬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배가 약간 출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냉장고에 들어있는 참외를 꺼내서 접시에 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 일을 하고계셔서 제가 참외를 깍아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참외를 깍아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다른 과일들은 깍아보았지만 그렇게 잘 깍지는 못합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칼로 참외를 두동강내고 껍질을 깍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깍을수록 깍여나오는 껍질의 두께가 점점 두꺼웠습니다.


1분여쯤 뒤, 저는 드디어 참외 반쪽을 다 깍았습니다. 처음으로 참외를 깍아본 것 입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왠지 저에게 아주 큰 일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깍았는데 이 정도면 엄청 잘 깍은 것이 아닌가요? 저는 제가 처음치곤 아주 잘 깍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과일 깍는 실력이 나아질 것 입니다.

사진은 제가 아버지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과일을 많이 깍으면 과일을 잘 깍게 되듯이 공부도 많이 하면 공부를 잘하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부터 무슨 일이던지 꾸준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쨋든 제가 깍은 참외는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참외를 한 조각 갔다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무척 맛있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별일 아니지만 제가 깍은 참외를 드시고 맛있다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에 제가 정말 뿌듯했습니다. 앞으로 과일을 먹게되면 제가 깍으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가족과 모두 함께 제가 깍은 과일을 먹으면 정말 뿌듯한 마음을 많이 느낄 것 같습니다.
제가 블로그를 한 것도 벌써 만 2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얼마 전 저에게 "블로그 강의를 한 번 해볼래?"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전에 있는 한 단체에서 아버지와 저를 동시에 초청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당연히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직 준비도 못했는데 갑자기 강의를 어떻게 해요?" 라고 제가 말하자 아버지는 강의는 3월에 하니까 그때까지 준비를 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머릿속으로 강의할 내용을 구상했습니다. 강의의 주제는 블로그였습니다. 2년동안 블로그를 해왔지만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게 블로그였습니다.

얼마 뒤, 강의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블로그 강의를 할 때 말할 글을 블로그에 한 번 적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2년동안 블로그를 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을 요약해서 혼심의 힘을 다해 적었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기위해 쓴 글 http://kimty.tistory.com/192

대전에서 강의를 하는 제 모습. 사진은 아버지가 찍어주신 것입니다.


강의를 하는 날은 3월 13일(토요일) 이었습니다. 강의는 대전에서 하는 강의였으며 강의를 듣는 사람은 제 또래의 학생들로 총 10~15명이었습니다.

저는 강의를 하기 하루 전 너무 떨려서 강의 내용을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읽어보자 아버지, 어머니는 너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강의를 하는 날 저와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대전으로 갔습니다. 대전에 도착해서 우리는 신문사의 편집국장을 하셨다는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강의를 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저의 강의를 들을 사람들은 15명이 조금 넘게보였습니다. 강의를 하는 곳에 계시는 선생님이 제 소개를 하시고 저는 긴장된 모습으로 일어나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내용을 다 외우지 못하고 종이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라도 종이에서 눈을 떼고 말하면 말하는게 조금씩 틀렸습니다.

이렇게 고개를 들고 말해야 하는데, 저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종이를 보면서 강의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종이를 계속 보면서 강의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 소심해서 그런지 도통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뒤에 계시던 선생님이 저에게 "블로그에 쓴 글이 베스트에 올라가려면 어떻게 글을 써야햐죠?" 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저 처럼 글을 잘 쓰면 되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강의를 받는 사람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저에게 조금씩 몇 개의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강의를 그렇게 끝내고 다음으로 아버지가 일어나셔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혀 떨지도 않으시고 아주 멋지게 강의를 하셨습니다.

정말 경험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적인 강의였습니다. 아버지의 강의도 끝나고, 강의실에서 나와서 아버지가 저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강의를 엄청 못한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처음 강의를 해봤는데 이 정도면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기념촬영. 사회복지관 선생님이 찍어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까 그 선생님, 그리고 다른 신문사의 실장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메뉴는 대전의 대표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돌솥 비빔밥' 이었습니다.

날계란을 그대로 넣어서 비벼 먹는 특이한 음식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맛있는 쇠고기까지 함께 먹으니 정말 호화로운 점심이었습니다.

점심을 다 먹고 우리는 한 카페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후식을 먹고있는데 한 회사의 사장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국장님에, 실장님에, 사장님에 정말 아버지의 인맥이 환상적이었습니다.

그 사장님은 저에게 독일에서 만든 사탕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사탕을 어머니에게 화이트데이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아버지와 대전에서 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돌아오자 밤이 다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어머니와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제가 강의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자 어머니는 엄청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저에게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 강의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많은 일을 해볼 것 입니다.

며칠 전(3월 10일) 저는 늘 그렇듯 학교에 가기위해서 가방을 챙기면서 아침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눈이 많이 온다는 이유로 초·중학교가 휴교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 날 너무 잠이 왔습니다. 아마 전 날에 늦게 자서 그렇게 잠이 많이 왔나봅니다. 하여튼 저는 학교를 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우리 학교에 전화를 해보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학교에 전화를 해보시더니 저에게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학교를 가지 않아서 한숨 푹 자려고 했는데 막상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이미 잠은 다 날라가고 아버지와 눈구경을 나가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저와 아버지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파트는 온통 눈으로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지리산에 갔을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눈이었습니다.

사실 지리산에서는 정신이 너무 없어서 눈구경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여유롭게 눈으로 덮혀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감상했습니다.

눈은 생각보다 많이 왔습니다. 마산에 눈이 오는 풍경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눈이 와서 기분만큼은 좋았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신나서 사진도 찍고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따라해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안들었습니다. 어릴 때 힘들게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누가 몰래 그 눈사람을 부셔놓은 안좋은 기억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드득'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눈을 만지는 것보다 눈을 밟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차가워서;;)


사실 학교를 가지 못할 정도로 눈이 온 것은 아닌데 너무 오랜만에 눈이 와서 휴교를 해준 것 같습니다. 학교를 가지 못할 정도로 눈이 많이 왔으면 고등학교도 쉬어야겠죠.

그리고 눈이 와서 학교를 쉬었다고 해도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눈때문에 학교를 쉰 대신에 여름방학이 하루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눈이 오는 날에 쉰 것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은 13일(토) 대전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처음 하는 강의라 마음이 떨리지만, 강의할 내용을 미리 적어봤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태윤이의 놀이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한 중학생입니다. 제가 블로그를 시작할 때 제 블로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처음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는 2007년 말에 아버지가 갑자기 블로그를 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저는 생각없이 블로그를 하겠다고 했고 지금까지 블로그를 운영해왔습니다.

블로그를 하면 기분이 좋은 이유

처음에는 글을 쓸 때 그냥 한 두 줄만 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블로그에 쓰는 글의 내용이 점점 길어졌고 글쓰는 실력도 많이 늘었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저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뭐가 즐거웠냐 하면 제가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때 사람들이 댓글을 적어놓으면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 글을 통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죠. 또 사람들이 제 글을 추천하면 저의 글이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 글이 베스트 글에 오르면 그야말로 기분이 째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블로그에 글을 한 번 쓸 때마다 저의 아버지가 돈을 천 원씩 용돈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글이 베스트에 오르면 아버지는 무려 만 원을 주셨습니다. 원래는 블로그를 하면서 아버지에게 돈을 받으려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저는 글을 쓰는데에 익숙해졌고 재미있어졌습니다.

내가 블로그에 쓰는 글은?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종류는 독서록이나 일기같은 것 입니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써야하니까 책을 많이 읽게되었습니다.

또 영화나 TV에 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블로그를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번 재미있는 영화나 프로그램은 절대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루를 보내면서 재미있거나 나쁜 일이 있으면 블로그에 일기처럼 적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 블로그에 그런 글들이 쌓여서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이 되었습니다.

가끔 제가 옛날에 올렸던 글을 한 번씩 보는데 그 글들을 보면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블로그의 글들은 추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기장이나 독서록 같은 노트들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블로그는 삭제를 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자기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보면서 옛날의 추억들을 회상할 수 있는 것 입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 악플

블로그를 하면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반대로 힘든 점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악플'이었습니다.

처음에 자신을 욕하는 악플을 보고 자살한 연예인들을 보고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시하면 되지' 하고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저의 글을 욕하는 악플을 받아보자 정말 기분이 더러웠습니다. 하지만 꾹 참고 그 악플을 지워버렸습니다.

하지만 악플은 몇 개 더 있었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해결된 문제는 아니기에 그냥 다시 그 글들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 글과 저를 동시에 욕하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댓글에는 저를 향한 욕설도 적혀있었습니다. 누군지만 알면 그대로 찾아가서 한대 쥐어박으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 댓글 밑에 저도 그 사람을 욕하는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면 또 그 사람이 악플을 달까 두려워 그 댓글 모두를 지워버렸습니다. 저는 한참동안 절망에 빠졌습니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저에게 욕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황당하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저의 고민을 상담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무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악플에 대한 문제는 아직까지도 제가 블로그를 하면서 해결해야 할 큰 문제입니다.

이 문제만큼은 제가 해결책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글은?


지금 제 블로그에는 180개가 넘는 글들이 있습니다. 제가 3년동안 블로그를 하면서 무려 180개가 넘는 글을 썼다는 것이죠. 통계를 보면 제가 쓴 글은 188개, 댓글은 612개, 그리고 관련된 글을 트랙백으로 올려준 글이 33개가 있습니다.

정말 제가 자랑스러웠고 뿌듯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썻던 글 중에서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글을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그 글은 제가 친구들과 영화 '뉴문'을 보고 쓴 글이었습니다. 아마 그 영화가 인기가 많아서 댓글이 많이 달린 것 아닐까요?

저는 뉴문을 보고 약간 유치하다고 글에 적었습니다. 그랬더니 저의 그 말에 대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유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댓글 밑에 '이런 댓글 쓰는 당신도 유치합니다.' 라고 당당하게 써놓았습니다.

저를 유치하다고 한 댓글을 악플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렇게 댓글의 나쁜 내용을 되받아치는 댓글을 적어놓으니 한층 기분이 나았습니다.

앞으로 진짜 악플을 더 본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어요. 어쨌든 제 글에 댓글이 많이 달리니까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뉴문을 보고 쓴 글에 달린 댓글은 총32개 였습니다. 총 32명이 저의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아줬다는 것 입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하지만 댓글이 많이 달린 이 글보다 저는 지난 설날이 끝나고 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맛있는 백숙을 먹고 쓴 글이 가장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할아버지와 먹은 백숙의 맛을 잊을 수 없기때문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지난번에 돌아가셨는데 아마 그 때가 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밥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저번에 강의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할아버지와 백숙을 먹은 것을 적은 글과 함께 있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보면 자신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던 추억을 적은 글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할아버지와 백숙을 먹었던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고 즐거웠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좋아진 것들

블로그는 정말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블로그를 쓰면서 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기면 블로그에 쓰기위해 머릿속으로 내용을 구상하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엄청 사소하지만 타자가 무지 빨라졌습니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소위 말하는 '독수리 타법'을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물론 독수리 타법을 쓰지만 타자가 한 5배 정도는 빨라졌습니다.

우리 학교에 블로그를 보시는 한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제 블로그를 보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블로그는 누구나 다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제가 블로그에 썻던 글들 중에 신문에 실린 글이 있습니다. 제가 '엽기조선왕조실록' 이라는 책을 보고 쓴 글이었는데요.

그 때가 정말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블로그를 쓰다보면 신문이나 TV에 나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청소년 블로그를 운영하고있지만 제가 어른이 되면 제 블로그는 아마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블로그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부터 블로그를 쓰면서 글쓰는 실력을 키워서 어른이 되어 블로그를 쓰면 그 블로그는 정말 대박이 날 것 입니다.

아마 미래에 제 블로그가 그런 모습일 것 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뭐든지 계속 반복하면 그 일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블로그에 한 번 적어보세요. 그 사소한 일을 적은 글이 완전 대박이 날지 누가 압니까?

블로그에 글을 올리 때 힘든 부분이 조금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제목을 정하는 것 입니다. 제목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게 제목입니다.

글의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제목이 허접해서 그 글은 사람들이 아무도 보지 않으면 말짱 꽝 입니다. 그러니까 제목을 정할 때 사람들이 최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정하여야 합니다.

또 하나 힘든 점은 바로 사진을 넣는 것 입니다. 저는 제목보다 사진을 넣는 것이 더 힘듭니다. 글만 길게 적어놓으면 글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글만큼 재미있는 사진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읽는 사람도 실감나게 글을 읽겠죠. 이렇게 힘든 점도 많이 있지만 실제로 블로그를 해보면 정말 재미있고 쉽습니다.

한 10년 뒤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가 파워블로거가 되어서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여기까지 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주 화요일(3월 2일) 드디어 제가 3학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미리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전화를 한 통 받고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께서 엄청 위독하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얼른 병원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침대에 누워계시고 아버지와 고모 두 분께서 울고계셨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간호사가 들어와서 할아버지의 상태를 검사하고 할아버지께서 사망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들은 고모들과 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우셨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계시던 어머니도 울고계셨습니다. 저도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조금 뒤에 량호네 가족이 병원으로 와서 할아버지의 옆에서 울었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병원에 있는 할아버지의 물건을 챙겨서 집으로 옮겨놓고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는 우리 친척들이 장례식장에서 울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에 남해에서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사진에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건강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이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또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몇 시간 뒤 모든 친척들이 장례식장에 왔습니다. 친척들은 모두 함께 할아버지께 절을 하고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어른들은 할아버지께서 고통없이 편안하게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니 무척 슬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에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때 갑자기 돌아가셔서 충격때문에 엄청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제사가 끝나고 우리들은 잠시 쉬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할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가 개학하는 날에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여름방학이 끝날 때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께서는 봄방학이 끝날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두 분 모두 제가 학교를 조금 쉬라고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중학생이니 상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문상객들이 올 때마다 곡을 하면서 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상복이 편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상복을 벗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3일 동안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지내다가 우리들은 모두 할아버지의 고향인 남해로 갔습니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동네의 어른들과 인사를 하고 할머니께서 묻혀계시는 산으로 갔습니다. 할머니께서 묻혀계신 옆자리에 할아버지의 관이 들어갔습니다.

하필 그 때 비가 많이 와서 고생을 좀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빌며 기분좋게 상복을 벗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할아버지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주말이라서 어른들께서도 시간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남해에서 2일동안 더 있기로 했습니다.

2일동안 남해에서 지내면서 할아버지의 집을 깨끗히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물건도 정리를 했습니다. 2일이 지나고 집에 가는 날이 되자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집에 남아서 일을 하고 가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저, 아버지, 삼촌네 가족, 량호네 가족도 함께 남해에 하루만 더 남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만 남기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이제 내일이면 다시 학교에 나가야합니다. 이제 진짜 드디어 3학년이 되네요.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학원도 많이 빠졌고 학교수업도 많이 빠졌습니다.

이제 3학년이 되면 그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비디오를 빌려서 가족이 다함께 모여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우리가 본 영화는 '굿모닝 프레지던트'라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는 대통령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코믹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는 대통령이 계속 바뀌면서 영화의 주인공도 계속 바뀝니다.

그런 영화를 옴니버스 영화라고 하는데, 이 영화는 이야기들이 모두 관계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니까 굿모닝 프레지던트라는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와 비슷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총 세 명입니다. 첫 번째는 현재 대통령인 '이순재', 두 번째는 후임 대통령인 '장동건',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후임 대통령 '고두심'입니다.

이순재는 대통령이면서도 복권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약 복권에 1등으로 당첨이 된다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두 기부하겠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정말로 복권에 당첨이 됩니다. 그래서 너무 좋아하다가 결국 혈압이 상승해서 병원에 실려갑니다.


그는 병원에서 다시 일어나 자신이 복권에 당첨됬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막상 남에게 복권 당청금을 나눠주려고 하니 무지하게 아까웠습니다.

당첨금은 무려 244억원 저라면 남에게 기부하지 않고 제가 다 썻을 것 입니다. 이순재는 결국 고민을 하다가 상담을 받기위해서 자신의 직속 요리사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요리사에게 만약 2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 머리위로 떨어지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요리사는 "그 정도의 돈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아마 머리가 깨지면서 죽지않을요?" 라고 말합니다.

이순재는 요리사의 그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복권 당첨금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두 기부합니다. 그리고 후임 대통령으로 당선된 장동건은 자신에게 신장 이식을 부탁하는 한 남자를 목격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일본과의 외교관계때문에 큰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장돈건은 자신의 신장만이 그 남자의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지금 나라에 큰 위기가 닥쳐있었습니다.

장동건은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그도 자신의 요리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그 요리사는 장동건에게 "진정으로 이 나라를 사랑한다면 제일 가까운 이웃부터 살려라" 라는 말을 해줍니다.

그래서 장동건은 결심을 하고 자신의 신장을 그 남자의 아버지에게 이식해주고 나라도 구해서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고두심은 대통령의 힘든 스케줄때문에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고 결국 이혼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도 결국 자신의 요리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고 이번에는 "국민들은 대통령이 행복해야 행복해진다고" 고두심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요리사의 말을 듣고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남편과 다시 친해지고 이혼을 취소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대통령을 아주 먼 나라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기 전에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부모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며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대통령들의 인간미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대통령들의 모습을 보며 저에게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더욱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대통령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을 모두 한 요리사입니다. 생각해보면 대통령을 혼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 갑니다.

그러니까 대통령들은 외롭지 않게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달은 것 같습니다.
오늘 친구들과 또 합성동으로 놀러갔습니다. 원래는 할아버지께서 아프셔서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수고했다고 놀러가는 것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코디해준 멋진 옷을 입고 신세계백화점으로 나갔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아주 멋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아습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바로 버스를 타고 합성동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먼저 영화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본 영화는'하모니'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무지하게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영화들 중에 가장 슬프고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 울었고 같이 갔던 친구들도 전부 울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받던 한 여자가 실수로 남편을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교도소에서 아기를 출산하게 되고 그 아기를 키웁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아기를 키우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기와 짧지만 즐거운 여행을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교도관에게 특박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도소에 합창단을 만들어서 그 합창단을 성공시키는 것. 그녀는 먼저 합창단에 들어올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노래를 못하는 음치라는 사실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사이가 나빴던 죄수에게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도소의 사람들과 친분도 쌓고 교도관들에게도 신뢰를 얻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고 하루하루를 힘없게 보냅니다.

그래도 자신과 함께 해준 합창단이 있기에 그녀는 다시 기운을 회복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 정도인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 많은 내용을 이 글에 전부 담기에는 힘들 것 같네요. 하여튼 이 영화 '하모니' 꼭 보십시오.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입니다.

중간중간에 반전이 많은데, 그 때 마다 눈에 눈물이 고일 것입니다. 정말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울었던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마치 보는 사람을 울게 만들기 위해 만든 영화처럼 슬픈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해피엔딩이 아닌 배드엔딩으로 끝납니다.

쉽게 말해서 별로 좋지 않게 영화가 끝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내용을 여기에서 말하면 재미가 없겠죠? 영화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엄마가 아기를 어쩔 수 없이 입양시킬 때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아끼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버지, 어머니께 정말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이 영화 정말 재미있습니다. '하모니' 정말 대박날 것입니다.
하모니
감독 강대규 (2010 / 한국)
출연 김윤진, 나문희, 강예원, 정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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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주말이라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에 가서 할아버지를 보살펴드리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할아버지께서는 힘이 많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감기까지 걸리셔서 열도 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밥을 잘 드시지 못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니까 정말 속상했습니다.

잠시후 아버지와 저는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갔습니다. 밖에서 육개장을 먹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먼저 가셨습니다.

저는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는 저와 할아버지, 이렇게 둘 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많이 피곤하셨던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휴대폰으로 찍어 준 사진입니다.


저는 보조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소설을 보고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결국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후 잠에서 깨어나보니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간호사 누나가 들어와서 할아버지의 체온을 재시더니 열이 다 내렸다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보니 열이 다 내려간 것 같았습니다.

한숨 푹 주무시더니 감기가 말끔히 다 나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까보다 훨씬 더 건강한 모습이셨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병실은 무지 더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밖에 나와서 자판기에서 차를 뽑아먹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해보려는 생각도 해봤지만 저녁식사를 드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점심 때와는 달리 밥을 아주 잘 드셨습니다. 감기가 나으시니 기력도 회복하신듯 했습니다. 저녁을 다 드신뒤 양치질도 하시고 약도 드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맛있는 떡갈비를 주문해놓으셨습니다.

내가 오늘 할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수고했다고 어머니가 사주신 떡갈비였습니다. 그 떡갈비까지 먹으니 정말 오늘 하루의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할아버지를 계속 간병하면 할아버지께서도 금방 다 나으시겠죠?
설이 끝나고 저와 아버지는 할아버지댁에 남아서 할아버지를 보살펴 드렸습니다. 삼부자가 함께 남은 것입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 일을 하고나니 왠지 엄청나게 뿌듯했습니다. 점심에는 백숙을 먹으러 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나갔습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가서 백숙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곳은 아주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키운 토종닭을 삶아서 갖다주었습니다. 백숙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는 백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때 먹은 백숙은 정말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할아버지댁에 돌아가서 저녁까지 먹고 할아버지의 옆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오랜만에 정말 편하게 주무셨습니다. 저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을 먹고 마산으로 향했습니다. 마산에 도착해서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주숙이 고모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저와 어머니는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에 일을 하러 가셨고 저는 학원에 가기 전 잠시 쉬기 위해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2시간 쯤 뒤에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보살펴드리기 위해서 학원수업을 2일이나 빠졌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학원에 가서 더욱 더 열심히 해서 빨리 보충을 해야겠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설날과 만나게 되는 2일 전(2월 12일 금요일)에 병원에 계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남해로 갔습니다.

저와 어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저는 량호네 차를 타고 갔습니다. 남해에 가는동안 차가 많이 막혀서 늦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막히지 않아서 빨리 도착을 했습니다.

량호네 가족들은 우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같은 남해에 있는 고모부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집에는 저와 할아버지, 어머니만 남게 되었습니다.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새벽에 삼촌네 가족이 도착을 했습니다. 삼촌네 가족도 많이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제가 잠에서 깨어나보니 삼촌과 숙모는 아직 주무시고 계셨고 사촌동생인 관희와 리나는 일어나서 놀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침밥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관희와 리나를 봐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잠시후 어머니가 아침밥을 차려 오셨습니다.

설 전날 저녁 제사를 마치고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찍은 사진입니다.


숙모와 삼촌도 일어나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많이 나아지셔서 밥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리나, 관희와 신나게 놀았습니다. 리나는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관희는 이제 유치원에 들어갑니다.

저도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됩니다. 조금만 있으면 제 블로그 이름도 '마산 고딩 태윤이의 놀이터'로 바꿔야겠네요.

정말 시간은 쏜 화살과도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작년 설에 만나서 논 게 어제의 일같이 느껴지는데 또다시 이렇게 설이 찾아왔습니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신나게 놀고있는데 아버지가 오후에 남해에 도착을 하셨습니다.

그리도 설 전날 밤에 어른들이 잠시 외출을 하셨습니다. 저는 관희와 리나를 데리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컴퓨터도 하고 TV도 보고 뛰어 놀기도 하고 그런데 리나와 관희가 갑자기 졸리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놀자고 했는데 너무 잠이 온다고 했습니다. 저는 결국 관희와 리나를 먼저 재우고 하염없이 어른들은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계속 앉아있으니까 저도 결국 잠이 왔습니다. 저는 리나와 관희 옆에 누워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른들은 모두 집에 계셨습니다.

드디어 설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상을 차리고 절을 한 뒤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렸습니다. 세뱃돈도 많이 받았습니다.

설날 다례를 지내고 난 뒤 가족들과 찍은 기념사진.


우리는 곧바로 마을에 있는 다른집에 계시는 어른들께도 세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마을 한 바퀴 돌고나서 우리는 산소로 갔습니다.

그곳은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께서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절을 하고 이번에는 할머니께서 계시는 산소로 갔습니다.

할아버지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곳은 엄청 추웠습니다. 그래서 절을 한 번 하고 얼마있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후 기범이네 가족이 남해에 도착을 했습니다.

우리는 또 같이 놀다가 갑자기 량호가 생각났습니다. 량호네 가족은 원래 오늘 집으로 돌아오기로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후가 되었는데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하러 다니는 모습입니다.


저와 고모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량호네 집까지 걸어갔습니다. 량호네 집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량호네 집에 가서 량호네 가족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고모와 기범이는 차에 자리도 없고 운동도 할 겸 걸어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범이는 집에서 타고왔던 자전거를 타고갔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가서 차가운 몸을 따뜻한 방안에서 녹이고 다시 신나게 놀았습니다. 밤이 되자 봉주 형네 가족이 왔습니다.

나의 사촌형인 봉주 형은 군대에서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습니다. 그렇게 설날을 또 보내고 설날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습니다.

설날 오후에는 날씨가 따뜻해져서 할아버지와 산책을 나갔습니다.


가족들은 거의 다 집으로 돌아가고 저와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만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집에 있으면서 내일 할아버지를 모시고 마산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설날도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꽤 즐겁고 행복했던 설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고계시는 분들은 설은 어땠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아버지와 산책을 하는 모습.

내 사촌동생 관희입니다.

남호와 리나, 관희, 량호, 할아버지, 그리고 저입니다.

나의 작은 배려가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즐거운 일요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집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회사에 가셨고 어머니는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에 가셨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우선 씻고 TV를 보다가 아침밥으로 라면을 끓여먹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묵을 볶아서 점심을 드시고 주무셨습니다. 저는 국수를 끓여먹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할아버지와 고모부께서 계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옆에 있는 동안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그 책은 어제부터 읽었던 '우동 한 그릇' 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단편소설로 아주 감동적인 책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제 그 책을 아주 빨리 읽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오늘 한 번 더 보았습니다.

책의 내용은 일본의 한 가족이 아버지가 죽기 전에 일으킨 교통사고 때문에 빚이 아주 많아져서 사는게 힘들어집니다.

그 가족은 어머니와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가족은 매 년 12월 31일마다 한 우동집에 가서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먹습니다.

가족은 총 세 명인데 우동을 한 그릇 밖에 시키지 못하는 가난을 겪고있는 그 가족들이 딱하게 보여서 우동 한 그릇을 주더라도 엄청 많이 담아서 줍니다.

그리고 우동을 한 그릇 밖에 시켰는데도 그 가족들이 우동집을 나갈 때 큰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 인사에 힘을 받은 그 가족은 열심히 노력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7년동안 우동 집을 찾지 않다가 7년 후 드디어 다시 한 번 그 우동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우동집의 사람들은 그 가족들을 엄청 반겨줍니다. 처음에 저는 이 이야기가 너무 짧아서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더니 내용이 이해가 되고 왠지 가슴이 찡했습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내고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낸 교통사고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줘야하는 가족들이 무척이나 불쌍했습니다.

그들은 빚을 계속 갚으면서 점점 가난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동집에 가서도 돈이 없어서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우동집의 사람들은 오히려 우동을 잔뜩 담아서 그 가족들에게 줬습니다. 그 가족들은 그 우동이 맛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동집에서 힘을 얻은 가족은 열심히 노력을 해서 결국에는 크게 성공을 거두고 우동집을 찾아갑니다.

그야말로 감동의 스토리입니다. 우동집 사람들의 작은 인사와 배려가 그 가족에게는 큰 힘이 된 것 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의 그 작은 배려가 그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으니까.
 
우동 한그릇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구리 료헤이 (청조사펴냄,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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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드디어 '지선아 사랑해' 라는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이지선님은 어느날 술에 취한 운전자에게 교통사고를 당해서 온몸에 화상을 입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지선님의 얼굴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지선님을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이지선님은 그 시선이 엄청 부담이 되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아줌마들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원래 다른 사람 앞에서 수군거리는 것 자체가 실례인데 그 아줌마들은 이지선님을 외모만 보고 정신까지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 것 입니다.

저라면 아마 화가 치밀었을 것 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아주 불쌍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장애인은 무조건 불행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지선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지선 님도 손가락이 조금 없으셔서 장애인이 되셨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아시는 것 같습니다.

이지선 님은 장애인은 불편하기만 할 뿐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장애인은 엄청나게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지선 님은 장애인은 몸이 조금 불편하기만 할 뿐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장애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이지선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물론 몸이 굉장히 불편해서 불행한 장애인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불행하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것이죠.

저는 장애인을 보면 재빨리 눈을 피합니다. 저의 시선이 혹시 그 장애인에게 따가운 시선이 될까봐 그 장애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이죠.

저도 물론 처음에는 장애인을 만나면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장애인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니 그 장애인은 나의 시선을 아주 싫어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에게 관심을 않가지려고 하는 것 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장애인을 만나면 신기해서 계속 쳐다보다가 옆에 있는 사람과 수군거립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있던 장애인이라면 당장 달려가서 따질 것 입니다. 여러분들도 장애인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보세요. 생각이 조금은 바뀔 것 입니다.

이지선님은 한국에서 수술을 다 받고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갑니다. 거기에서 이지선님은 공부도 하고 병원에 가서 수술도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지선님께서 일본에 있는 학교로 공부를 하러 갈 때 일본인들이 자신의 흉한 모습을 신기해서 계속 쳐다볼까봐 걱정이 되셨습니다.

하지마 일본인들은 어릴 때 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지선님께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지선님은 그런 일본인들에게 아주 감사했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이지선님께는 큰 행복이었던 것 입니다. 우리나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 10점
이지선 지음/이레
오늘은 다시 한 주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오늘도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으로 가기 전에 아버지가 책 한 권을 주시며 병원에 있으면서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속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잠시 함께 있다가 회사에 가셨습니다. 저는 병원에 남아서 아버지가 주신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책을 3분의 1정도만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 책을 다 읽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책은 '이지선' 이라는 한 예쁜 여인이 어느날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을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지선은 오빠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하지만 손가락이 많이 타서 몇 개 절단해야 하고 얼굴은 완전히 타버려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지선은 자신의 그런 상태가 아주 심각해서 좌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할 때마다 나머지 손가락을 남겨주셨다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지선이라는 사람이 정말 불쌍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오빠를 포함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교통사고로 인생이 뒤집어졌습니다. 정말 안타끼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매일 몸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지선과 그녀의 오빠의 모습을 책에서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약 그런 사고를 당해서 몸이 흉측하게 변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아주 절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이지선님께 진심으로 힘을 내라는 응원을 하고싶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 10점
이지선 지음/이레
이제 겨울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신세계백화점 앞으로 갔습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합성동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원래는 '전우치' 라는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다른 영화를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도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30분동안 영화관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영화관에서 나왔습니다.

친구들은 영화관에서 나와서 옆에 있는 프리존으로 갔습니다. 저는 프리존에 처음 가봤습니다. 프리존은 일정한 돈을 내고 들어가서 각종 오락과 스포츠게임을 하고 나올 때 프리존에 있었던 시간만큼 돈을 내는 곳 이었습니다.

프리존의 다양한 모습들입니다. @nexia6604님의블로그의 사진입니다. http://blog.naver.com/nexia6604?Redirect=Log&logNo=40098730702


우리는 500원을 내고 프리존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끝에 있는 탁구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탁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탁구를 처음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탁구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저질탁구였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잘 못해서 탁구를 그만두고 옆에 있는 당구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당구도 처음 해보았습니다. 역시 당구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구도 졌습니다. 우리들은 다음에 당구 개인전을 했습니다.

세 명이서 공을 아무거나 넣는 게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꽤 익숙해서 잘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친구는 거의 당구의 신이었습니다.

개인전을 했던 또다른 친구는 결국 기권을 해버렸습니다. 나머지 친구는 점수가 엄청났습니다. 제가 나머지 공을 다 넣어도 동점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탁구도 졌는데 당구도 지면 엄청나게 수치심이 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결심을 하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당구채를 꽉 쥐였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강도로 공을 쳤습니다. 공은 결국 들어갔습니다. 저는 신이나서 나머지 공도 하얀공으로 쳤습니다. 저의 집중력 앞에 그 공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하얀공도 들어가버렸습니다. 차례는 결국 다른 친구에게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실수로 공을 넣지 못했습니다.

차례는 다시 저에게로 돌아오고 저는 극한의 집중력으로 남은 공들을 모조리 넣어버렸습니다. 저는 결국 무승부로 게임을 끝냈습니다. 친구들은 저의 실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아무리 처음 해보는 일이라도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당구를 끝내고 프리존 안에 있는 오락실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제가 어릴 때 자주 했던 각종 게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순발력이 빠른 편이라서 게임도 아주 잘 했습니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놀고 프리존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위해 롯데리아로 가서 불고기버거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서 햄버거의 포장을 뜯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문을 했던 불고기버거가 아닌 새우버거가 나왔습니다.

저는 새우버거를 싫어했습니다. 맛도 없거니와 햄버거에 해산물을 넣어서 먹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주문한 것을 다시 바꿀 수도 없고 결국 친구들과 저는 입맛에 맞지 않는 새우버거를 점심으로 먹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노래방으로 갔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방은 30분 뒤 그야말로 광란의 방이 되어 있었습니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신나게 놀려고 친구들과 저는 최대한 음이 높은 곡을 부르며 춤을 추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래방에서 나와 버스를 탔습니다. 친구들은 집 근처에서 내리고 저는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곧장 갔습니다. 오늘은 정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어제는 주말이라서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늦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늦은 아침을 먹고 우리는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누워계셨습니다. 병원에는 삼촌이 함께 계셨습니다. 저는 삼촌은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내셨습니다.

저와 아버지, 삼촌은 함께 점심은 먹기위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저는 독서토론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 갔습니다.

청소년 문화의 집에는 동아리의 멤버 네 명이 있었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아직 두 명이나 오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못온다고 전화를 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독서동아리 총회를 시작하기 전에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의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갑자기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가 절대로 오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0분 쯤이 지나자 갑자기 아까 전화를 했던 친구가 들어왔습니다.

총회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놀랐습니다. 그 친구도 자기가 온 것에 대해 잘 이해가 안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총회를 시작했습니다.

총회의 내용은 동아리의 규칙을 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제 1규칙은 우리 동아리의 이름을 NED라고 부르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본 동아리는 마산 청소년 문화의 집의 동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동아리의 목적을 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동아리의 목적으로는 '문화를 배우기 보다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하자' 등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문장이 기억에 잘 남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어서 참가비 5000원을 다시 내야했습니다. 저는 동아리 멤버들의 그 참가비를 받아서 관리를 하는 총무역할을 맡았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 읽어야 하는 책은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 라는 책이라는 군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책이니까 꼭 읽고 토론을 해보고 싶습니다.

오늘도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빨리 완치되기를 빌면서 힘을 내었습니다. 병원에 가니 할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누워계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일단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반가워 하셨습니다. 저는 일단 할아버지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병실의 창가 침대가 비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침대를 창가로 옮겼습니다. 창가로 옮기니 제가 있을 자리가 훨씬 넓어져서 좋았습니다.

창가로 옮긴 할아버지의 침대. 아버지가 찍은 사진.


아버지는 그 후 일 때문에 회사로 가셨습니다. 저는 어제처럼 병원에 남아서 할아버지의 옆을 지켰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시키는 심부름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가 회사로 가시자 화장실로 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어제보다 훨씬 더 편하게 걸으셨습니다. 저는 점점 완치되어 가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옆에 누워있는 동안 지루해서 문제집을 펼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질렸습니다.

그렇게 심심해 하고 있을 때 마침 점심식사가 왔습니다. 할아버지의 밥은 늘 죽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부터는 죽이 아닌 보통 밥을 먹어도 된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 아주머니께 공기밥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천 원을 받으시고 공기밥 하나와 국, 그리고 수저를 주시면서 수저는 계속 가지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밥을 다 먹고 수저를 깨끗이 씻어서 할아버지 옆에 놓아두었습니다. 내일은 할아버지께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제가 어머니와 함께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옆에 있고 싶습니다. 그래야 할아버지께서도 힘을 내셔서 빨리 완치가 되실테니...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께서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침대에 누워계셨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일단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할아버지께서 하룻동안 마실 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양치질을 도와드렸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일 때문에 회사로 가셨습니다. 저는 병원에 남아서 할아버지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심부름도 해드리고 화장실에 가실 때 부축을 해드렸습니다.

어제 힘없이 누워계시던 할아버지. 오늘은 기력을 많이 회복하셨어요.

어제 할아버지께 갔을 때에는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에 가셨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서 아주 잘 걸으셨습니다.

확실히 어제보다 할아버지는 훨씬 좋으셨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나오는 죽을 드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밥을 드시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께서 다 드시면 병원 1층에 내려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는 어른들이 저에게 공기밥을 천 원에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밥을 나눠주시는 아주머니께 갔습니다.

그리고 밥을 살 수 있냐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는 할아버지 옆을 지키는 제가 기특하셨는지 공짜로 밥 한 공기와 반찬 몇 개를 주셨습니다.
 
저는 아주머니께 받은 음식들을 가져가서 할아버지의 반찬과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병원 음식이라서 그런지 고기반찬은 없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침대 옆에 있는 보조침대에 누워서 할아버지께 "저라도 옆에 있으니까 좋으시죠?"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좋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왠지 마음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젯밤(1월 25일 월요일)에 아버지가 한 동영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동영상은 지난 2009년 11월에 일어난 '사이판 총격사건' 에 대한 동영상이었습니다.

사이판 총격사건이란 우리나라 마산시에 사는 한 가족이 친구들과 사이판에 여행을 갔을 때 사이판의 현지인이 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사건입니다.

그 사건으로 사이판에 놀러갔던 '박재형' 씨는 총을 맞고 네 번의 수술 끝에 하반신 마비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운이 나쁜게 아닙니다.

사이판의 만세절벽이라는 곳입니다. 이 근처에서 총에 맞았다고 합니다.


그는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가장으로써의 일을 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은 생계까지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이판에서는 그 가족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사이판에 놀러가서 사람이 총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가 되었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다니?

저는 사이판이라는 나라에게 무지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동영상을 계속 봤는데 우리나라도 그 사람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안해준다는 군요. 아니, 우리나라의 사람이 다쳤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다니?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게다가 제일 중요한 박재형씨 가족이 사이판으로 여행을 갈 때 이용한 여행사도 아무런 보상이 없다네요.

참 내가 어이가 없어서 여행사가 여행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인데 보상이 없나니... 피해를 당한 사람은 있는데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네요. 저는 이 글을 쓰기위해서 네이버에 '사이판 총기' 라고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이판에서 총기를 난사했던 범인이 사이판의 사격장 종업원이라는 내용들만 나와 있더군요.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지금은 다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중요하지 범인에 대한 게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텔레비전에 방송된 사이판 총격사건.


총을 쏜 사람은 확실히 나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자신도 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군요.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 입니다.

저도 마산에 살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웃이 외국에 갔다가 총을 맞고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저는 그저 속상한 마음뿐입니다.

사이판에서는 지금 피해자들은 위한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는 군요. 그 모금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정말 사이판이라는 나라를 증오하고 저주했을 것 입니다.

사이판도 모금활동을 하는데 우리나라도 피해자들은 위한 모금활동을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 모금활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사이판이라는 나라보다 못한 나라입니다.

사이판 총격사건이 발생하기 정확히 1주일전 부산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일본인 많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사죄를 하고 당장 보상을 해주기 위한 노력을 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사이판은 지금 모금을 한다는 소리한 해놓고 아무런 보상을 하고있지 않습니다. 정말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과 극단적으로 비교가 되는군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본사람들이 피해를 받았을 때는 보상을 위한 노력을 엄청 기울이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사람이 피해를 받았을 때에는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가 이것밖에 안되는 나라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빠른 시일내로 박재형씨에게 많은 위로와 보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이틀전(1월 23월) 어머니와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제가 본 영화는 '세븐 데이즈' 라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아주 오래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영화를 보는데 너무 무서워서 얼마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도 함께 봐서 그다지 무섭지 않게 보았습니다.

영화 세븐 데이즈의 내용은 한 유능한 여자 변호사가 어느날 자신의 딸과 운동회에 나갑니다. 그런데 그 때 변호사가 달리기에 나간동안 딸이 납치됩니다.

변호사는 딸이 유괴당한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 변호사에게 변호 의뢰가 들어옵니다. 변호사는 딸을 잃어버린 슬픔에 의뢰를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딸을 유괴한 범인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딸을 유괴한 범인은 변호를 의뢰한 사람을 꼭 재판에서 이기게 하라고 협박을 합니다. 변호사는 자신의 딸로 협박을 하는 유괴범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변호사는 일단 변호를 의뢰한 사람에게 갔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여자를 칼로 무자비하게 찔러죽인 용의자였습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재판에서 다른 남자를 범인으로 몰아갑니다.

그 남자는 죽은 여자와 친분이 많이 있는 남자였고 지금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딸을 납치한 범인에게서 소포가 하나 도착합니다.

 변호사는 그 소포를 뜯어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석고상의 손목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편지가 한 통 들어있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다음에는 당신 딸의 진짜 손목을 잘라서 보냈겠다' 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변호사는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더욱 노력을 하고 결국은 자신이 범인으로 몰고갔던 남자가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냅니다. 변호사는 결국 그 남자를 범인으로 만들고 재판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호사가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해준 진짜 범인이 여자를 죽일 때 사용했던 흉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변호사는 그 흉기가 발견될까봐 자신에게 변호를 의뢰했던 진짜 범인에게 흉기는 어떻게 처리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나게 쑤시는데 갑자기 없어졌어" 엄청 섬뜩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사라진 흉기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 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변호사가 재판에서 승리하고 범인이 감옥에서 풀려나자 딸을 납치한 사람은 변호사의 딸을 멀쩡하게 풀어줍니다. 딸과 재회한 변호사는 눈물을 흘립니다.

한 편 감옥에서 풀려난 진짜 범인은 변호사의 딸을 납치한 남자와 만납니다. 그 남자는 그 두 범죄자는 원래 아는 사람이었나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딸을 유괴한 납치범이 여자를 죽인 살인자를 차로 칩니다. 잠시후 그 살인자가 눈을 떳을 때에는 어떤 음침한 건물 안에 묶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자가 나왔습니다. 그 문자는 사람이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불에 타 죽는 것 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너에게 교수형은 사치야...!" 라는 문자가 나왔습니다. 저는 또다시 섬뜩했습니다. 잠시후 그 살인범은 처참하게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되찾은 변호사는 죽은 여자의 어머니 집으로 놀러갔습니다. 그 어머니는 죽은 여자에 대해서 조사할 때 많이 만나서 친분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집에서 변호사는 손목이 잘린 석고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랬습니다. 변호사의 딸을 납치한 사람은 바로 죽은 여자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의 딸이 죽은 사실을 듣고 슬퍼하다가 어떤 조각칼이 꽂혀있는 석고상을 발견했습니다.

그 조각칼은 여자를 죽일 때 사용했던 칼이었습니다. 죽은 여자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었고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을 그 칼로 알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라도 교수형으로 편하게 죽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의 딸을 죽인 사람이 교수형으로 편하게 죽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유능한 변호사의 딸을 납치해서 그 범인을 재판에서 승리하게 해서 감옥에서 빼내서 다시 잡아서 불에 타 죽인 것 입니다.
죽은 여자의 어머니는 변호사를 보며 마지막 대사를 날립니다. 그 말은 바로 "제 변호를 맡아주시겠어요? 거절해도 괜찮아요." 였습니다.

저는 그 말이 정말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과연 그 변호사는 자신의 딸을 납치했던 사람의 변호를 맡아줄까요?

영화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치밀한 영화를 좋아하셔서 세븐 데이즈를 몇 번이나 보신 것 같았습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내용도 괜찮고 치밀하고 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혼자 보면 조금 무서워요.;; 저도 어머니와 함께 봐서 볼 수 있었어요.
세븐데이즈
감독 원신연 (2007 / 한국)
출연 김윤진, 김미숙, 박희순, 이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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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선생님의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읽고

드디어 오늘 이용한 선생님이 쓰신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는 책을 다 읽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어제(1월 24일 토요일)부터 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오늘 다 읽어버렸습니다.

저는 어제 그 책을 반쯤 읽고 블로그에 글을 한 번 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다 읽고 한 번 더 씁니다. 제가 이 책을 반 쯤 읽고 쓴 글의 주소입니다. http://kimty.tistory.com/174

책은 아주 재미있게 끝났습니다. 결국에는 이용한 선생님께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것으로 책이 끝납니다.

이용한 선생님께서는 이사를 갈 때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못하고 가는 데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에 책의 제목을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라고 하셨다는군요.

그런데 이용한 선생님께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기 직전에 1년 5개월 전에 처음 만났던 '깜냥이' 를 만났다는군요.

몇 개월동안 보이지 않던 깜냥이가 갑자기 이사를 가기 전 이용한 선생님을 찾아왔다니... 아마 깜냥이가 이용한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하려고 찾아온게 아닐까요?

정말 동물도 사람처럼 은혜를 갚을 줄 아는 것 같네요. 오랫동안 자신에게 먹을 것을 준 이용한 선생님이니까 은혜를 갚을 만 하죠?

책은 다 읽었는데 왠지 이상한게 있었습니다. 이용한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고양이를 좋아하셨는데 왜 고양이를 직접 키우시지는 않으셨을까요?

저는 혹시 몰라서 책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에필로그가 있더군요. 거기에는 이용한 선생님께서 키우시는 고양이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용한 선생님께서 아직 이사를 가지 않으셨을 때 언제나 그렇듯이 동네의 고양이들을 관찰하면서 사진을 찍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용한 선생님의 눈에 한 고양이가 들어왔습니다. 그 고양이는 노란 고양이의 5남매 가족 중 한 고양이였습니다.

그 고양이는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아주 작고 털도 삼색털이라서 아주 귀여웠습니다. 그런데 그 아기 고양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이 엄청 힘들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용한 선생님은 그 고양이에게 부드러운 음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또 그 삼색털 아기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그 아기 고양이는 아주 힘들어 보였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눈빛이었습니다. 이용한 선생님은 할 수 없이 그 아기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재워주었습니다. 원래는 그냥 음식만 나눠주고 다시 보내려고 했는데 너무 가여워보여서 그냥 집에서 키우기로 했습니다.

이용한 선생님은 길고양이들을 집에서 키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길고양이들은 모두 가족이 있었고, 키울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삼색털 아기 고양이를 다시 내보내면 약한 몸으로 추위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용한 선생님께서 그 아기 고양이를 키우기로 한 것 입니다.

랭보의 사진입니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랭보' 로 지었고 병원에 데려갔더니 이빨이 엄청 약하고 목도 엄청 약하게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건강해져서 이용한 선생님께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실 때에도 함께 갔다는 군요. 이용한 선생님! 그 고양이 랭보, 아직도 잘 자라고 있나요?

이용한 선생님께서는 우리 인간들 때문에 고양이들이 힘들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고양이가 병균을 퍼뜨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쥐를 퇴치함으로써 사실상 병균을 제거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고양이가 희귀한 새들을 많이 잡아먹어서 새가 멸종해가고 있기 때문에 고양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고양이 연구가들은 고양이가 새를 먹기는 먹지만 새를 잡아먹을 경우는 너구리나 쥐가 새를 잡아먹는 경우보다 적다는 군요.

고양이가 도로에 돌아다녀서 고양이가 우리 인간들의 영역을 침범한다고들 하지만 사실 우리 인간이 고양이나 다른 동물들의 영역에 침범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 입니다.

또 고양이의 개체수가 많아지면 아주 불편해질 것 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고양이들보다 인간들이 훨씬 더 개채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고양이도 우리와 똑같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싫다고해서 고양이를 함부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해서 고양이를 죽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단지 고양이가 싫다고 해서 고양이를 죽인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도 단지 싫다는 이유로 죽일 것 입니다. 

고양이도 우리과 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은 초등학생들도 알고있습니다. 고양이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생명도 존중해야 합니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 10점
이용한 지음/북폴리오
어제는 신나는 토요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출근하기 전 저에게 책 한 권을 주고 가셨습니다. 그 책은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이용한' 이라는 분이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을 1년 반동안 관찰하면서 지은 책이었습니다. 저는 책을 펴보았습니다.

지도가 나왔습니다. 그 지도에는 고양이들이 사는 곳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지도를 보니 지도를 만든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관찰하여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이신 이용한 선생님께서는 추운 겨울에 골목에서 버려진 소파에서 추위에 떨고있는 고양이 6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고양이들은 어미 고양이 한 마리와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였습니다. 그 고양이들은 이용한 선생님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도망가버립니다.

이용한 선생님은 그 고양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이용한 선생님은 또다시 그 고양이들과 만나게 되고 이용한 선생님은 그 고양이들이 불쌍해서 참치 캔과 고양이 사료등의 음식들을 주기 시작하십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고양이들은 드디어 이용한 선생님께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이용한 선생님이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도 아무런 경계 없이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고양이의 사진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아주 다양한 포즈들로 찍힌 사진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들을 볼 때 마다 웃기고 귀여운 사진이 있으면 계속 보고있었습니다.

일어서서 묵념을 하고있는 고양이


고양이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묵념을 하고있는 사진이나 다른 고양이에게 주먹으로 회심의 일격을 가하고있는 사진처럼 아주 웃기고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 많이 있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날리는 고양이의 펀치!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에 대해서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고양이가 혀로 자신의 몸을 햝고있는 것을 보면 아주 더럽다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고양이의 침은 천연 비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자신의 혀로 몸을 햝는 것은 깨끗해지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털이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 털을 제거하지 않으면 고양이에게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몸속에 있는 털뭉치를 제거하기 위해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섬유물질을 먹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길고양이들은 자기 스스로 그 일을 해야합니다.

길고양이들은 본능적으로 강아지풀 같은 섬유물질을 먹는다고 합니다. 알고보면 길고양이들은 참 불쌍합니다.
주인이 없어서 배고픔에 계속 시달려야 하고 또 추위나 비가 오면 집도 없어서 아주 힘듭니다.

풀을 뜯어먹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


이 책에서는 고양이들이 죽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배고픔에 시달려서 죽거나 추워서 죽거나 아니면 지나가는 차에 깔려서 죽습니다.

저는 책에서 그 고양이들이 죽어갈 때 마다 같이 슬퍼했습니다. 이용한 선생님도 물론 아주 슬퍼하셨습니다. 고양이도 우리와 같은 생명이기에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길고양이들이 있는 것이 불편해서 고양이들을 지하에 가둬서 문을 잠궈버렸다는군요.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악마입니다.

물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안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도로에 고양이가 지나다니면 방해가 되어서 가차없이 바퀴로 깔아뭉게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은 자신의 아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아빠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 사람에게 자신의 아들이 도로에 지나다니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본다면 당연히 아들을 구한다고 하겠죠.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도 보통 사람이 도로에 다니다면 그 사람을 피해갈 것 이라고 할 것 입니다.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들을 어떻게 죽일 수가 있을까요?

고양이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고양이는 말을 못하고 사람은 말을 할 수 있다? 아닙니다. 여기에서 고양이와 사람의 차이는 죽였을 때에 법의 판정입니다.

사람을 차로 쳐서 죽인다면 그 사람은 감옥에 갑니다. 하지만 고양이을 차로 깔아뭉게서 죽인다면 아무런 처벌이 없습니다.

처벌이라고 해도 동물학대죄 정도? 하지만 그 처벌도 동물을 일부러 죽였을 때에만 허용되는 처벌입니다. 그 사람이 고양이를 차로 깔아뭉게서 죽이면 아마 실수로 죽였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실수로 죽여도 처벌은 가해집니다. 사람과 고양이, 이 둘을 죽였을 때에 가해지는 처벌에 따라서 그 사람은 고양이를 가차없이 깔아뭉게겠다고 한 것 입니다.

만약 고양이를 죽였을 때에도 사람을 죽인 것 처럼 처벌이 가해진다면 그 사람은 고양이를 깔아뭉게겠다고 말하지 못할 것 입니다.

그리고 만약 사람을 죽였을 때에 아무 처벌이 없다면 그 사람은 가차없이 살인을 저지를 것 입니다. 저는 이번에 인간의 잔인함을 깨닫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처벌이 딱히 없다고 해서 생명을 마음대로 죽여도 될까요? 그렇다면 처벌이 있어도 생명을 죽여도 될까요? 저는 처벌이 있든 없든 생명을 죽이지는 않을 것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나서 고양이 뿐만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 같습니다.

이책을 지으신 이용한 선생님은 블로그를 하시는 분입니다. 이용한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블로그에 다리를 다쳐서 힘들게 살아가는 한 길고양이에 대해서 글을 올리신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은 35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조회를 했고 그 글을 통해서 서울에 사시는 한 수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오셔서 그 고양이의 다리를 고쳤다는 군요.

저는 그 이야기를 읽고 또 한번 블로그의 중요성을 알게되었습니다. 이용한 선생님의 우리 아버지와도 친분이 있으신 분이라는 군요.

저는 이 책이 아주 재미있었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으시다는 군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용한 선생님과 꼭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 10점
이용한 지음/북폴리오
아버지가 저번에 행사에 응모해서 경품으로 노트북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노트북은 아주 작고 예쁜 파란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노트북은 아버지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대신에 저와 어머니는 우리집에서 원래 쓰던 컴퓨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방에 있는 컴퓨터를 거실에 있는 식탁에 놓았습니다. 그 식탁은 밥먹을 때에도 잘 쓰지않는 식탁이었습니다.

이번에 경품에 당첨된 노트북입니다.

그래서 그 식탁에 컴퓨터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경품에 당첨된 노트북은 원래 컴퓨터가 있던 아버지의 방에 놓았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를 놓고 막상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연결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인터넷을 연결하려고 손을 써봤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오기가 생겨서 컴퓨터에 인터넷이 연결되게 하기위해 밤새 컴퓨터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결국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저는 학원을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컴퓨터를 고치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음날 컴퓨터 전문가 아저씨를 불러서 인터넷을 연결했습니다.

고생은 조금 했지만 그래도 저에게 컴퓨터가 생겼다는 생각에 아주 즐거웠습니다. 전문가가 다녀간 뒤 인터넷은 아주 잘 돌아갔습니다.

이제 저의 컴퓨터입니다.


이제 컴퓨터도 생겼으니 블로그 열심히 쓰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방문해주시고 기대해 주세요
이제까지 우리집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께서 오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회사에 일을 하러 나가셔서 아주머니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절약을 하기위해서 제가 청소를 도맡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아주머니를 끊고 제가 집안일을 했습니다.

집안일은 꽤 힘들었습니다. 저는 설거지부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으면 바로 그 그릇들을 씻었습니다. 그러니까 설거지가 밀리지 않고 정말 편했습니다.
 

내가 설거지를 깨끗하게 한 흔적


설거지는 옛날부터 해왔던 일이라서 아주 쉽게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아주 쉬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베란다에 쌓아놓은 병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베란다에는 병들이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 병들을 봉지에 담아 마트에 가서 돈으로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트의 아저씨와 아줌마가 돈을 주지않으시고 마트에 있는 물건으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결국 아이스크림과 껌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돈으로 주지 않고 물건으로 준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면서 원래는 돈으로 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집에는 병 말고도 종이 쓰레기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우유팩들을 아주 작게 구기기 시작했습니다. 버리는 일은 어머니가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이쓰레기들을 열심히 구겼습니다.

정말 집안일을 많이 해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원래 아주머니께서 오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집안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열심히 할 것 입니다. 그래야 어머니, 아버지가 힘들어 하시지 않을테니까.
지난 일요일은 제 할아버지의 생신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어제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남해에 모여서 밥을 먹었습니다.

저는 일단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고모의 차를 타고 남해로 갔습니다. 우리가 남해에 도착했을때 삼촌의 가족도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척들도 많이 모였습니다. 우리들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횟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일단 자리에 앉아서 한 명씩 일어나서 할아버지께 생신을 축하드리는 한마디을 했습니다.

저는 제일 처음으로 일어나서 할아버지께 생신축하 드리고 오래오래 건강하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자리에 온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했습니다.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특히 회를 아주 많이 먹었는데 역시 남해는 바닷가라서 회가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고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저보고 식당 아주머니께 땡초를 좀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른 땡초를 받으러 갔습니다.

맨 앞 오른쪽에 브이(V)자를 하고 있는 아이가 제 사촌동생 관희입니다.


제가 땡초를 받아오는데 저의 사촌동생인 관희가 저를 따라왔습니다. 관희는 아직 5살밖에 되지 않아서 아주 귀여웠습니다.

저는 그런 관희에게 땡초를 권했습니다. 관희는 주저없이 땡초를 한 입 베어먹었습니다. 관희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다시 관희에게 땡초를 권했습니다. 그 때에도 관희는 땡초를 잘 먹었습니다. 저는 관희가 땡초를 먹는 것을 보고 별로 맵지 않을 것 같아서 저도 땡초를 한 입 베어먹었습니다.

그 때부터 고통은 시작되었습니다. 땡초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매웠습니다. 저는 옆에서 뛰어놀고있는 관희를 보았습니다.

저는 관희가 아기라서 아직 미각 발달이 덜 되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땡초는 그야말로 입에서 불이 나는 음식이었습니다.

저는 매워서 물을 계속 마셨습니다. 하지만 물로는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때 땡초는 정말 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편 저의 그 모습을 보고있던 사촌 형인 '정우' 형은 갑자기 땡초를 집어들더니 크게 한 입 베어먹었습니다. 그 형은 군대를 갔다온지 얼마되지 않은 형이라서 별로 안 매워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도 사람의 입맛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준이 형은 저처럼 매워서 물과 음료수 등 눈에 보이는 액체는 최대한 많이 입속에 넣었습니다.

형은 그래도 진정이 안되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입으로 불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 재미있어서 제 옆에 있던 사촌동생 량호에게 땡초를 권했습니다.

량호는 한참동안 고민에 빠지더니 옆에서 자신의 혀를 증오하고있는 정우 형을 보고는 기겁을 하면서 딱잘라 거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량호에게 땡초를 권했습니다. 량호는 갑자기 사이다를 원 샷 하더니 땡초를 들고 남자답게 두 입을 베어먹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예상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량호도 땡초가 매워서 수분을 보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땡초가 왜 그렇게 매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을 굳게 하고 땡초를 하나 들고 아주 크게 한 입 베어먹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맛을 느끼지 않으려고 잘근잘근 씹어먹었습니다.

하지만 땡초의 공포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덜 맵기는 커녕 아까 먹은 것 보다 3배는 더 매웠습니다. 저는 정말로 매워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신기했습니다. TV에서 매운 음식을 먹고 우는 장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매운 음식을 먹으면 눈물이 납니다. 정말 처음 알았습니다. 매운 음식이 나의 눈물샘을 자극할 줄이야...

저는 정말 어이가 없어서 관희에게 마지막으로 땡초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관희는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화를 내면서 그거 매워! 라고 말했습니다.

관희는 매운 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매운 맛이 조금 늦게 느껴졌던 것 입니다. 매운 맛도 다 사라지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있을때 갑자기 제 사촌동생 남호와 리나가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얼른 말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호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남호는 울면서 자신의 장난감 총이 리나가 던져서 부숴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일단 남호와 리나를 떼어놓았습니다.

남호는 저에게 장난감 총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남호에게 밑에 내려가서 테이프를 빌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호는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테이프를 빌리러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남호가 간 뒤 저는 장난감 총을 보고 난감했습니다.

총이 발사가 않되었던 것 입니다. 저는 총을 몇 번 만지작 만지작 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약간 위로 쏠린 스프링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스프링을 가볍게 내렸습니다. 그러자 총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 때 남호가 무언가를 들고 저에게 왔습니다.

저는 남호에게 테이프를 들고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호가 들고 온 것은 바로 '밴드' 였습니다. 저는 어리둥절 해서 남호에게 왜 밴드를 들고왔냐고 물었습니다.

이걸로 사람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장난감은 못하겠죠?


그러자 남호는 해맑게 이걸로 붙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게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저는 남호가 무척 기특했습니다.

잠시후 가족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보니 다른 친척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많이 만나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많이 친척들과 하룻밤을 잤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할아버지와 케익을 갔다놓고 생신 파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친척들이 많이 와서 기분이 무척 좋으셨습니다. 저도 정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회사에 가봐야 해서 일찍 마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가기 아쉬운지 친척들과 할아버지를 모두 모셔놓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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