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체험을 시작한지 벌써 둘쨋날이 되었습니다. 둘쨋날도 역시 저희들은 EBS 방송국으로 갔습니다. 제가 생활했던 곳은 여의도의 신길동이었고, EBS는 서초구의 매봉역 옆에 있는곳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40분정도 가야하는데,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지만 저희들이 EBS에 직업체험을 하러 가는 시간이 아침 출근 시간대라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 고생을 좀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뭐 돈을 벌러 가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인턴쉽을 통해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가는 것이었기에 지하철에 사람이 좀 많고 복잡해도 여유롭고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EBS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야외촬영을 견학하러 나갔습니다. 저희가 따라 나간 팀은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나눔 0700'촬영팀이었습니다.

저희가 인터쉽을 갔을 때에는 5월 첫째 주에 방송될 나눔 0700의 오프닝을 촬영한다고 했습니다. 촬영을 위해 각종 장비들을 챙겨 EBS 이동차량을 타고, 서울의 한 공원같은 곳으로 갔습니다.


촬영장으로 가면서 촬영 감독님과 조연출 형에게 야외 촬영에서 중요한 이것저것을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다행히도 친절하게 알려주셨고 야외 촬영에서 오디오 녹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야외에서 촬영을 하다보면 우선 바람 소리가 많이 들리니까 오디오 녹음을 굉장히 신경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이크 장비를 사용한다고 해도 한계가 정해져 있으니, 바람이 없는 곳을 찾거나 최대한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촬영을 하는 등의 방법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촬영 장소에 도착하고 진행을 맡은 연예인 한 분이 오셨습니다. 각종 교양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시고, 3년째 나눔 0700의 진행을 맡고 계신 방송인 전제향이었습니다.


MC가 와서 드디어 촬영에 돌입했습니다. 촬영을 하는동안 저희들은 가만히 서있을 줄만 알았는데, 촬영감독님께서 저희에게 친절히 이어폰을 끼워주시고 촬영 화면을 보여주시면서 직접 체크를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고등학생에게 시키는 소소한 작업이라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대한 집중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확실히 좋은 카메라와 마이크 등의 장비를 사용하니 음질과 화질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컴퓨터에 넣어서 편집을 하는 과정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현장에서 녹음된 소리를 들어보는데 마치 진짜 방송되고 있는 영상처럼 퀄리티 있는 효과적인 음질과 영상이었습니다. 저희에게 작은 일이라도 맡겨주시는 감독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촬영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스태프들이 카메라 앵글을 잡고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진행 MC는 코디에게 옷과 머리 정리를 한 뒤, 대사를 연습했습니다.

이런식으로 촬영 준비시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효율적으로 촬영을 해서 그런지 오프닝 촬영은 아주 순식간에 끝이 났습니다.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의 촬영은 그걸로 끝이라고 해서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꽤 알찬 시간이 되었습니다.

방송인 전제향님과 사진 한 컷.


촬영 일정이 끝나고 저와 친구는 숙소로 가서 잠시 휴식을 하다가 저녁에 녹화가 하나 있다는 김현우 PD님의 말을 듣고 다시 EBS로 갔습니다. 

저녁에는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의 녹화가 한창 준비중이었습니다. 오늘의 초대가수는 '제이레빗'이라는 2인조 뮤지션이었습니다.

평소에 제가 많이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인기가 있고, 노래도 잘 부르는 가수였기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저희가 녹화를 견학하기 위해 있는 곳은 녹화가 진행되는 무대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조정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녹화되고있는 카메라의 앵글을 결정하고, 오디오 체크와 컷을 정하는 등, 대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이엇습니다.  


김현우 PD님께서 저희들이 조정실을 견학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스페이스 공감의 녹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녹화 준비를 마치고 녹화에 들어가는데, 조정실에 있는 분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폭발할듯 매서운 눈빛으로 5개나 되는 카메라 화면을 쳐다보고 집중했습니다.


저도 나름 긴장한 마음으로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녹화가 시작되고 단 몇 초만에 컷이 바뀌고 담당 PD님은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화면의 자연스러움을 판단한 뒤 컷 바뀜을 지시했습니다.

중간중간에 디졸브(한 화면이 천천히 사라짐과 동시에 다른 화면이 점차 나타나는 화면 기법)을 넣기도 하면서 정말 쉴새없이 많은 컷들이 지나갔습니다.

제가 PD님이었다면 정말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않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그 바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가 돌아버릴 것입니다.

스페이스 공감은 다른 음악 프로그램들과는 조금 다르게 초대가수가 진행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형식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때문에 돌발상황이 일어나도 조정실에서 모든 지시를 통해 일을 처리합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PD님도 대단했지만 PD님의 지휘 아래 모든 영상과 오디오를 전환하고 통제하는 다른 분들이 실수없이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도 정말 굉장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녹화가 끝나고 담당 PD님께서 한 숨을 돌리시더니 저희에게 "많이 배운 거 같아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하도 정신없이 진행되는 녹화에 정신이 팔려서 아무 생각없이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두 번의 방송 촬영을 견학하면서 느낀 게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PD의 지휘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분위기가 인상깊었습니다.

학교에서 저희들끼리 영상 촬영을 할 때에는 촬영 준비에만 몇 십분이 걸리고, 연출자나 배우 모두 어찌할 줄 몰라 가만히 있거나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프로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PD의 지휘하에 모든 일이 진행되지만 PD의 지시가 있기 전에 상황에 맞게 애드리브를 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은 방송이나 영상은 담당 PD가 대부분 모든 것을 지휘하고 연출하지만 결코 그 PD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담당 PD가 물론 방송이나 영상의 전반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기획해나가는 일을 하지만 그 PD의 지휘에 따라 영상을 만들어가는 수많은 스태프들, 촬영감독, 오디도 감독, 출연자 등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영상입니다.

그리고 그런 여러 작업들을 끝으로, 마지막에 그 영상을 보는 시청자가 있어야 비로소 방송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송은 모든 이들의 힘이 합쳐져야 완성되는 작업인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EBS 견학을 함으로써 제대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방송과 영상을 만들어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방송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하나의 방송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노력을 투자하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이런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값지고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직업체험 기간에도 더 많은 것들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원래 이맘때쯤이면 태봉고등학교에서는 이동학습을 시행합니다. 1학년들은 제주도로, 2학년들은 네팔로 해외이동학습을 떠나게 되죠.


그렇다면 제가 속한 3학년들은 무얼 할까요?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공부만 할까요?
아니죠. 3학년들 또한 저희 학교의 취지에 맞게 학교에서가 아니라 이동학습을 떠납니다.

하지만 1, 2학년들처럼 전교생이 다함께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각 학생마다 자신이 장래에 하고싶은 직업에 관련된 직종으로 직업체험을 떠납니다.

이미 4월달에 각자 정해놓은 인턴쉽 장소로 4월 26일(금)부터 3학년 학생들은 뿔뿔히 흩어집니다. 저는 방송에 관련된 직종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EBS 방송국에 직업체험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2년 동안이나 함께 영상을 배워 온 친구와 함께 주말에 집에서 쉬다가 4월 29일(일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에 오면 먼저 잠을 잘 곳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마침 작년에 태봉고를 졸업한 친한 선배의 집에서 숙박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함께 서울을 올라온 친구 또한 아는 선배의 집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기나긴 직업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직업체험 첫 날(30일)부터 저희들은 EBS 방송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EBS에는 당연히 사전에 인턴십을 나간다고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고, 작년에 저희 태봉고에 '학교의 고백'이라는 다큐를 촬영하러 오신 김현우 PD님께서 멘토를 맡아주기로 하셨습니다.


첫날에는 저와 함께 올라온 두명과 학생과 첫날에만 EBS를 잠깐 들르기로 한 또다른 두 명의 친구, 이렇게 총 4명의 태봉고 학생들이 EBS에서 직업체험을 했습니다.

첫날의 일정은 EBS 방송국을 견학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바쁘셔서 세세한 작업 과정을 보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 출입증을 받은 뒤, PD님의 출입 권한으로 방송국의 이곳저곳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실제로 녹화를 하는 스튜디오나 녹음실, 사무실 등 방송국의 여러가지 모습을 다양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은 이런 일을 하는 곳이구나.',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사람들은 역시 항상 바쁘시구나.'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제가 방송 업계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곳을 견학하다가 실제로 녹화가 진행되고 있는 스튜디오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곳에서는 우리 학생들이 많이 접하는 EBS 강의를 녹화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닐 때 공부하면서 참 많이 보고, 또 고3인 지금까지도 영어공부를 하면서 계속 보고있는 EBS 강의가 녹화되는 과정을 보고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EBS 강의처럼 수업 형태의 촬영은 꽤 간단할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것도 절대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EBS 강사가 수업 내용을 수시로 머릿속에 구상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수업을 하고, 조정실 안에서는 카메라의 앵글과 오디오 등 여러가지를 컨트롤하면서 녹화를 합니다.


방송국의 촬영 수준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촬영들에 비해 쉬운 방식의 촬영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점차 익숙해져가면서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배우려는 의지를 단단히 했습니다.


영상을 편집하는 편집실도 한 번 가봤는데, 영상을 편집하는 장비와 기술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우선 EBS 방송국의 전체 컴퓨터와 연동되는 서버에서 영상 자료를 받아서 편집하여 보내는 형식에 감탄을 하였고, 무엇보다도 3D 그래픽 제작실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3D 안경을 쓰고 보는 그 3D 영상을 제작하는 곳을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장비 하나의 가격이 억대 단위가 넘어간다니... 이거 왠만해선 작업실에 들어오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방송국 견학을 마치고 김현우 PD님과의 대화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저희들이 방송에 관련되어 진로를 정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한지 여쭤보았습니다.

PD님은 자신이 방송국 PD가 된 경험과 배경을 토대로 아주 친절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방송에 관련되어 영상을 잘 만들고 싶다면 가장 기본적으로 영상을 많이 보고, 영상을 많이 만들어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상에 있어서 타고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노력을 통해 충분히 그 감각을 따라잡을 수 있으며, 자신의 노력에 따라 자신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대학과 학과에 대한 질문을 드리자 PD님은 약간 고민하시더니 방송 직종을 가려고 한다면 학과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너무 구체적인 형태의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항상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를 꾸준히 공부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PD님과 그렇게 알찬 대화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EBS의 학교 다큐 3기 팀의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께 저는 시나리오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법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작가님들 중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시나리오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 회의에서 좋은 내용들을 다뤄야 하는데, 이런 기획 회의에서는 'thinking aloud'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thinking aloud'란 단어 뜻 그대로 큰소리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외쳐 표출하는 것이 좋은 스토리의 밑거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스토리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기록을 해놓는 편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저의 아이디어를 말해주고 충고를 받는 식의 기획 회의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EBS에서 작가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획은 절대로 혼자 해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잘 조율하여 하나의 좋은 스토리,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획 회의입니다.

나중에는 작가님들이 직접 기획 회의를 하는 곳에 찾아가서 회의에 참가해보기도 했습니다. 작가님들은 생각나는 것들을 바로바로 말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앞으로 저도 영상을 제작하거나 시나리오를 적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완성도있는 스토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PD님과 작가님들과의 대화시간 후에 다른 PD님께 방송과 영상에 관련된 짧막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대충 옛날에 배웠던 내용들이라 흥미가 많이 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큰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PD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영상이든 그 영상을 시청자들이 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영상 안에 그려낸 영상의 전체적인 내용과 메세지를 한 번에 나타내는 그 하나의 명장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visualizing'입니다.

정말 영상이라는 매체는 스토리 기획부터 촬영, 편집, 메세지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상의 매력이 바로 제가 영상 제작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직업 체험 첫날부터 여러가지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느끼고, 배워갈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직업 체험 일주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약자의 꿈' 스토리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한 UCC 공모전에 나가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제가 작년에 진주에 근현대사 관련 캠프를 갔을 때 공부했던 형평 운동에 관한 공모전이었습니다. 


영상을 공부하고 있는 저로써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공모전에 제출할 영상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던 중 저희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서도 한 UCC 공모전에 나가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장 선생님께서 권유하신 공모전 역시 어머니가 추천한 공모전과 같은 진주 형평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 '형평' 실천에 관한 공모전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까지 권하시는 공모전이라 점점 부담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만큼 공모전에 대한 의지도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형평 운동이란 1923년부터 일어난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 그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 형평 운동 기념 사업회이고요.

저는 공모전에 낼 영상의 아이디어로 우선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를 선택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이 볼 수 있는 사회적 약자와 차별의 모습이 바로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시나리오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공모전 마감일이 얼마남지 않을 상황이어서 시나리오를 최대한 빨리 만들어서 금방 완성해 버리자는 생각에 많이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도 급하게 만든 티가 너무 많이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 수정도 촬영하는 동안 엄청 많이 했었죠. 먼저 학교폭력을 당하는 학생(박광수)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동현을 괴롭히는 일진 학생(강상혁)과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항상 방관만 하는 주인공 최동현이 제가 만든 영상의 주요 인물들입니다.

최동현은 강상혁이 휘두르는 폭력을 항상 지켜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라는 이기적인 마음에 언제나 고통받는 박광수를 외면합니다.


최동현의 이런 태도는 학교 폭력을 보고도 방관만 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폭력을 목격하고도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도 느낄 수 있죠.

광수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심한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선생님께 자신이 강상혁에게 당한 폭력에 대해 하소연하지만 선생님은 공부나 하라는 식의 말로 광수를 전혀 도와주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상처를 받고 시무룩해져서 반으로 돌아오는 광수는 자신이 그림 연습을 하는 공책을 보고 실실거리고 있는 강상혁의 패거리를 보게 됩니다.

자신의 유일한 취미이자 소소한 꿈이었던 그림 공책을 보고 무시하는 상혁에게 화가난 광수는 처음으로 상혁에게 반항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광수의 반항적인 태도에 상혁은 극심한 권위주의적 분노를 느낀 상혁을 자신의 패거리를 이끌고, 광수를 끌고나갑니다.


광수는 그 날 이후, 학원을 그만두고 상혁은 점점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항상 방관자였던 최동현 역시 상혁의 표적이 되고야 맙니다. 

하지만 상혁의 횡포에 이미 치를 떨고있던 같은 반의 학생들은 상혁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모두 하나같이 상혁을 둘러싸고, 폭력으로써 상혁을 저지시킵니다.


이로써 친구들을 이용해 상혁을 물리친 최동현은 일진처럼 패거리를 몰고다니며 자신이 상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최동현의 꿈이었습니다. 광수가 강상혁 때문에 학원을 그만두고 나서 무의적으로 강상혁을 때려서 학원에서 쫒아내고 싶다는 동현의 생각이 꿈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지만 꿈에서는 강상혁을 폭력으로 학원에서 몰아내지만 결국 다시 동현 스스로가 강상혁처럼 일진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최동현은 어떠한 문제든지 극단적으로 해결해서는 안되며 항상 작은 것부터 실천하여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강상혁이 나간 사이 그의 책상에서 광수의 그림 공책을 찾아 원래 주인인 광수에게 돌려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동현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동현이 광수에게 공책을 가져다주는 장면이 보이면서 엔딩 스크롤이 올라갑니다. 

영상을 완성하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영상의 제목이었습니다. 어떠한 영상이든 그 제목이 영상의 내용을 반영할 수 있는 정도의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의 여러 친구들은 물론 여러 선생님들께서 영상의 제목을 어떻게 달아야 할지를 여쭤보았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의 고민 끝에 '약자의 꿈'이라는 제목이 나왔습니다.


극중에서 주인공 최동현이 꿈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고, 광수가 공책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광수의 소소한 꿈을 담은 것이기에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저희 방송부가 영상 공모전에 제출할 영상을 제작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제약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다니는 태봉고등학교는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기 때문에 학생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항상 교복을 잠깐 다른 학교에서 빌려와 촬영을 하곤했는데, 이번에는 공모전 마감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핑계로 교복을 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 끝에 영상의 배경을 학교가 아닌 학원이라고 설정했습니다. 학원이라는 배경은 '사교육'의 이중적인 면을 작게나마 담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학교라는 설정에 비해 여러가지 제약을 없애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학원이라는 제약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번에 만든 '약자의 꿈'영상을 보시고 지적했던 부분이 바로 학원이라는 설정에서 나오는 극중의 '비현실성'입니다.

극중에서는 광수를 호되게 혼을 내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로 학원의 선생님들은 학생을 그렇게 다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교육 학원의 입장에서 학원 폭력을 일으켜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강상혁'이라는 인물을 학원에서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것도 제가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이것말고도 제가 이번에 만든 '약자의 꿈'이라는 작품은 여러가지 문제가 많이 있지만 다 얘기하면 제가 너무 비참해지니까 결론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만든 영상 '약자의 꿈'은 스토리가 너무 약했습니다. 너무 뻔한 주제에 뻔한 내용 전개였다는 것이죠.

변명을 하자면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스토리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영상 내용이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 뻔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저는 나름 열심히 만들었지만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저 지루한 학원 드라마일 뿐인 것입니다.

나름대로 항상 혁명을 꿈꾸고 있는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는 의미에서 최동현이 계속 '체 게바라'책을 들고있는 장면과 꿈에서 깬 동현이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 비폭력을 주장한 '간디'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는 장면으로 함축적인 메세지를 보여주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영상의 주제와 벗어난 이야기였고, 별로 그렇게 내용과 상관이 없었으며, 그것을 다 표현하기에는 영상의 길이가 너무나 짧았습니다.

공모전의 영상 제출 양식이 5분 이내라서 어차피 영상을 더 길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제가 만든 약자의 꿈은 공모전에서 떨어졌습니다.

영상이 5분을 조금 넘겨서 형평 운동 기념 사업회에 전화를 걸어 5분을 조금만 넘겨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으며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많이 기울인 작품이지만 떨어저셔 아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닙니다. 아직 공모전은 많이 있고, 영상을 공부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번에 떨어진 것에 아쉬워할 여유가 없습니다.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충고대로 다음부터는 스토리에 더 신경을 많이 쓰도록 하겠습니다.




태봉고등학교를 2년 넘게 다니면서 2학년까지는 같은 담임 선생님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1학년 때 첫 담임으로 만나서 2학년까지 담임을 해주신 고마운 분이십니다.

그 분은 바로 이기숙 선생님이십니다. 여자 선생님이시고 대안학교 선생님이시라 역시 저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을 이해해주시고 언제나 자유로운 선생님이셨습니다.

이기숙 선생님께서는 음식만들기와 옷만들기 과목을 맡으셨는데, 저는 안타깝게도 그 두 과목을 가장 어려워했습니다.

그래도 담임 선생님 시간이라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도 했었지만 요리나 옷만드는 것처럼 세세한 손재주가 필요한 작업은 도저히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기숙 선생님께서는 요리와 옷만들기 시간마다 저에게 쉬거나 사진을 찍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선생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기숙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은 반에서 생활하는 2년 동안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기숙 선생님께서는 잔소리는 많으셨지만 절대 학생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고, 항상 학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1학년 3반

2학년 2반


저에게도 물론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에게 언제나 밝은 미소로 칭찬을 하시며 제가 하는 일마다 자신감이 생기도록 도와주셨고, 저는 한결같은 이기숙 선생님께 항상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2년 동안이나 이기숙 선생님이 담임을 맡은 반에 있어서 3학년 때에는 아쉽게도 이기숙 선생님이 담임을 하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기숙 선생님께서 굳이 담임을 하시지 않아도 이기숙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기숙 선생님께 찾아가서 다시 마음을 다잡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겨울방학 중에 아버지에게 엄청난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이기숙 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저희 학년이 있기 전부터 태봉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이나 계셨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이기숙 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기숙 선생님을 그냥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학교의 여러 친구들과 함께 이기숙 선생님을 포함하여 다른 학교로 전근하시는 선생님들의 송별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와 학생회장, 부회장이 중심이 되어 이기숙 선생님을 비롯한 4명의 선생님 송별회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저는 2년 동안이나 담임을 해주셨던 이기숙 선생님께 드리는 짧은 편지와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송별회에서 이기숙 선생님께 영상을 보여드리며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않하고 펑펑 울었던 것 같습니다.


송별회 때에는 2, 3학년 학생들을 물론이고 졸업한 선배들도 떠나시는 여러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러 꽤 많이 방문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보람있는 송별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기숙 선생님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분이십니다. 학교에서는 정말 저의 어머니같은 마음으로 저를 보살펴주신 분이 바로 이기숙 선생님입니다.

제가 만든 영상은 2년 동안 이기숙 선생님과 함께 하면서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 죄송한 마음을 담은 노래 가사가 들어가 영상입니다.

2년 동안 이기숙 선생님께 정말 죄송했고 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의 은혜는 정말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큰 사랑이었습니다. 앞으로 학교에서 선생님을 못본다는 게 너무나도 슬픕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기숙 선생님은 생각해보니까 다른 학교에 가서도 다른 과목보다는 조금 여유로운 가정 선생님이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태봉고에 놀러오시네요. 하하....


엄청 오랫동안 못볼 것처럼 펑펑 울면서 작별인사를 드렸는데, 학교에 너무 자주 놀러오시니까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네요...

그래도 이기숙 선생님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게 어딥니까? 너무 자주 만나며 반가운 마음이 없어질거라 걱정도 했었는데, 이기숙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반가워서 저절로 춤이 나오기도 합니다. ㅎㅎㅎ

여튼 이기숙 선생님, 앞으로도 학교 자주 놀러오시고 스승의 날 때에도 찾아뵐테니까 기대하세요.


한동안 고3이니 시험이니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블로그 관리를 미루고만 있었는데, 오늘은 시험이 끝났으니 오랜만에 포스팅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이번에 포스팅할 내용은 또다시 우리 학교 미술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년이 넘도록 태봉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우리 학교의 미술시간은 아직도 적응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저희 학교의 미술시간에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수업 때마다 더욱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 하고 더 아름다운 미술의 영역을 시도합니다.

저는 그런 미술 시간이 너무나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이자 태봉고에서의 마지막 선택 과목 두가지 모두 미술 수업을 선택했습니다.

올해에 제가 참여하는 미술 수업은 두가지입니다. '건축 목공'과 '영상 매체와 미술'수업 이 두가지가 있는데, 특히 영상 미술 시간에 조금 특별한 것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상 미술이라서 제가 좋아하는 분야인 영상을 찍고 제작하는 작업을 할 줄 알았는데, 영상 제작을 하기 전에 먼저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로 했습니다.


미술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의견을 받 았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의 오랜 회의를 거쳐 결국 '벽화 그리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벽화를 그릴 장소는 당연히 학교였습니다. 그릴 곳을 정하던 중에 운동장에서 학교로 올라오는 계단과 거기에 있는 벽이 너무 허전하다는 의견이 나와서 거기에 벽화를 그리기로 했습니다.
 
벽화를 그리기 위해 장소는 정해졌고, 다음은 무엇을 그릴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무엇을 그릴지는 선생님께서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습니다.   
 

우선 벽화의 주제는 'Sky(하늘)'이었습니다. 학교를 들어오는 입구에 탁 트여있는 하늘이 그려져있는 벽화를 보면 긍정적이고 활기찬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하긴... 하늘을 보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겠죠? 

그렇게 미술 시간에 그릴 벽화에 대한 회의를 마친 후, 이제 학교의 공동체에게 허락을 맡을 시간이 되었습니디. 우리 학교는 학교의 모든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벽화를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중요한 '태봉고 공동체에게 벽화 그리기 허락받기'는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제가 학교의 행사부장이기 때문이었죠.

저는 공동체에게 벽화에 대한 설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말로 수십, 수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설명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프레젠테이션도 거추장스럽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정확이 육하원칙에 근거하여 벽화를 누가 그리며, 언제, 어디서, 무엇을 그리고, 또 어떻게 그릴 것이며 왜 그리는지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벽화를 그릴 장소를 사진으로 찍어서 제시하고, 벽화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여러가지 그림들을 예시로 보여주며 벽화 그리기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벽화 그리는 것은 아주 쉽게 허락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예쁘게 인테리어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물론 제가 발표를 잘한 것도 있지만ㅎㅎㅎ)

그렇게 벽화 그리기에 대한 공동체의 허락을 받아내고, 본격적으로 벽화 그리기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그릴 그림에 대해 구상을 하고 벽과 계단의 길이를 측청해가며 구도를 잡아갔습니다.


계단을 맡은 조의 컨셉은 '발'이었습니다. 저희들이 그림을 그리는 계단은 학교로 가기위해서 가장 처음 밟아야 하는 계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계단을 밟게 된다는 의미에서 다양한 모양의 발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계단의 가장 위부분은 면적이 넓기 때문에 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다리까지 그리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림을 잘 못그려서 사진을 찍으며 묻어가려고 했지만 아주 작은 그림이라도 그려서 함께 참여하라는 미술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저도 난생 처음으로 벽에 그림이라는 것을 그려보았습니다.

먼저 분필로 벽과 계단에 간단한 스케치를 그려나갔습니다. 벽에 그리는 벽화의 컨셉은 '퍼즐'이었습니다. 온 벽에 퍼즐조각처럼 그림을 그려서 벽의 중간에 퍼즐이 떨어져 나가며 하늘이 보이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퍼즐 안에는 저희 학생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벽화의 중간에도 우리 학교의 교육 과정 중 하나인 LTI(직업 체험활동)을 크게 적어놓았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지금 하고있는 활동이나 자신의 꿈과 관련된 그림을 퍼즐 안에 하나씩 그렸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저를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저의 별명이자 롤모델인 '간디'라는 글자를 적었습니다.

졸업하기 전에 태봉고에 제 이름을 남기고 가자는 취지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간디'글자를 보고 너무 허전다하며 그 옆에 저의 얼굴을 간단하게 그려주셨습니다. (저랑 정말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학교에서 2년 동안 했던 활동이 영상 제작 활동이기 때문에 (저랑 안 닮은)제 얼굴 옆에 간단하게 카메라 한 대를 들고있는 것을 그리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아직 미완성이랍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벽화를 처음 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못그려도 괜찮았고, 아주 작은 것을 그려도 상관 없었습니다.


퍼즐이라는 컨셉 덕분에 아주 작은 그림이라도 여러개가 모이면 하나의 큰 그림이 되었고, 굉장히 못그린 그림이라도 형태만 있으면 선생님께서 퀄리티있는 그림으로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미술 선생님깨서 왠만해서는 벽화 그리는 것에 손을 잘 대지 않으셨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벽화를 그려가는 것을 원하셨고, 그림에 손을 대지 못하는 친구들 도와주거나 그림을 조금씩 고쳐주시기만 할 뿐, 저희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셨습니다. 

미술 선생님의 인자한 웃음.


사실 태국에 자원봉사를 갔을 때에도 벽화를 그릴 기회가 있었지만 그 때에도 그림 그리는 것이 귀찮고, 싫어서 사진이나 찍으며 살짝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벽화를 그려보면서 저희들의 손으로 직접 학교의 아름답게 꾸며간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넓은 표현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자신감도 생겨난 것 같습니다. 고3이라 입시니 뭐니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겠지만 이렇게 학교에서 벽화도 그리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뿌듯함에 스트레스도 날리고, 벽화 그리기는 여러가지로 참 기분 좋은 작업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벽화 그리는 것이 다들 익숙하지 않아서 진도가 굉장히 더딘 편입니다. 그래서 아직 반 정도밖에 완성하지 못했지만 이제 슬슬 그림의 형태가 잡혀가는 것 같습니다. 

미술 수업이 일주일에 2시간 들었으니까, 이제 한 1~2주만 더 있으면 벽화가 완성될 것 같습니다. 벽화가 다 완성되면 벽화 그리기 2부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학교 방송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하는 활동은 학교의 중요한 행사 때에 음향과 조명 등을 설치하거나 관리하고 학교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저번에는 방송부 대부분 학생들이 합심하여 우리 학교의 홍보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 홍보 영상을 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저희들 방송부는 방송부 담당 선생님께 학교의 예산을 사용하여 방송 장비들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특별히 부탁드린 장비가 바로 애플사의 컴퓨터인 '아이맥'이었습니다. 아이맥은 본체가 따로 필요없는 올인원 데스크탑입니다.

이번에 애플에서 신형 아이맥을 출시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쿨하게 사주셨습니다. 하지만 학교 예산을 너무 흥청망청 써버리면 안되기에 조심스럽게 아이맥 모델을 골랐습니다.

신중한 결정을 마치고 신형 New iMac 중에서 크기가 한 단계 작은 21.5인치 형 2.9GHz 버전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목요일(3월 21일)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맥이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맥이 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방송부 친구들과 함께 방송실을 아주 깨끗하게 청소해 놓았습니다. 또한 아이맥 놓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컴퓨터 위치와 방송실 구조 자체를 싹 변경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아이맥을 개봉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본체가 없는 컴퓨터라 박스가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부피가 좀 컷습니다.

여튼 친구와 저는 바로 박스를 개봉했습니다. 박스를 뜯으니 이번엔 진짜 아이맥의 박스가 나오더군요. 기대는 더욱 커지고 점점 흥분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너무 흥분해서 자칫 아이맥이 부숴지거나 하면 제 인생 가장 큰 실수로 남을테니까요.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신중하게 박스를 열고 마침내 신형 아이맥이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하얀 종이로 감싸져 있었습니다.

옆모습입니다


하긴 워낙 비싸고 얇은 물건이라 부숴질 위험이 많기에 애플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나 봅니다. 

부착되어 있는 햐얀 종이까지 조심스레 떼어내자 드디어 진짜로 신형 아이맥이 눈부시게 찬란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보이십니까? 저 위의 모습이 아이맥 구성품의 전부입니다. 모니터와 본체가 합쳐진 올인원 본체와 전원 케이블, 그리고 부가기기와 사용 설명서가 담긴 작은 박스...

이번에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는 애플의 심플함이 다시 한 번 저를 감탄하도록 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애플의 거추장스러운 것은 다 빼고 딱 필요한 것만 어필하는 애플의 모습은 언제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쨋든 개봉한 아이맥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당연히 있어야 하는 사과 로고입니다. 언제 봐도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크네요. ㅎㅎㅎ

 

어머나! 뒷면에도 있네요. 보이세요? 저 얇은 두께가!! 깜빡하고 아이맥의 얇기를 강조하는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가장자리 측면의 두께가 겨우 5mm 밖에 안된다고 하네요. 

믿기십니까? 저렇게 금방이라고 부러질 것 같은 얇고 가벼운 컴퓨터에 최고의 영상 편집을 할 수 있는 고성능 그래픽 카드 NVIDIA GeForce GT 650M과 2.9GHz 쿼드코어 및 1TB 용량의 하드 드라이브 등 엄청난 고사양의 부품들이 들어있다는 사실!!

제가 컴퓨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영상편집 및 다양한 작업을 하기에 저 만큼이나 완벽한 컴퓨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렇게 대단한 컴퓨터라고 해서 과연 설치하는 과정이 어렵고 복잡할까요?
아니요!!!

 

그냥 아이맥 뒤에 있는 요 구멍에


이렇게 생긴 전원 케이블을 꽂아 콘센트에 끼워주기만 하면 아이맥의 모든 설치가 끝난 것입니다.
정말 간단하죠?
 


무척 얇고 작으며 간단한 아이맥이라고 해도 뒷면을 보면 컴퓨터로써 가져야 할 왠만한 것들이 다 있습니다.


 

USB나 이어폰 단자, SD 카드 넣는 곳, 인터넷 등 기본적인 것들은 다 가지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니터와 연결할 때 사용하는 VGA나 DVI, HDMI 등을 연결하는 곳을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맥은 다른 모니터와 연결하여 듀얼 모니터를 사용할 수 없는가? 그건 또 아닙니다. 애플 기기를 파는 매장에 가면 따로 VGA나 HDMI 같은 커넥터를 판매한다고 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21.5 인치라고 해서 화면 크기가 너무 작으면 어쩌지? 하고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하는 것보다 화면이 상당히 크게 느껴져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이맥의 위를 살펴보니 카메라도 달려있네요.


이번에는 아이맥과 함께 온 구성품들을 살펴볼까요?


무선 키보드와 무선 마우스입니다. 역시 애플답게 깔끔한 흰색을 선호하는군요.


먼저 키보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저 키보드는 저희 아버지도 사용하시는데 아이맥 뿐만 아니라 다른 애플 컴퓨터는 물론이고 아이패드와 아이폰 및 아이팟 등 다양한 애플 기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키보드입니다.


다음은 무선 마우스입니다. Magic Mouse(매직 마우스) 라고 불리는 저 마우스는 멀티 터치까지 지원되어서 아이맥으로 작업을 할 때 부드럽고 매끄러운 조작과 다양한 퍼포먼스도 구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선마우스와 키보드 둘 다 건전지로 사용된다고 하니 건전기를 계속 갈아줘야 하는 것이 귀찮을 것 같기도 하네요.


아이맥과 아이패드, 아이폰, 아이팟 등 여러 가지 애플 기기들을 모아봤습니다. 참 예쁘네요. 이러다가 너무 허영심만 생기는 건 아닌지....

아이맥 개봉기를 마치면서 아이맥에 대한 대한 평가는 10점 만점에 10점입니다! 개봉기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평가밖에 못하지만 다음에는 아이맥을 사용해보고 사용기를 올리겠습니다.


저도 언제 한 번 좋은 카메라 한 번 써봐야겠죠?
이제 고3이니까 대학 준비 들어가기 전에 학교에서 가는 제주도 이동학습에 가서 좋은 경치나 실컷 찍어보려고 서포터즈 신청했습니다.

선정될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도전해보세요! ^^

http://www.nikon-image.co.kr/nikon/notice_read.jsp?name=notice&idx=585
설 전 날에 삼촌 식구와 다함께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모처럼 식구들이 모였으니까 재미있는 영화나 한 편 보자고 아버지가 제안하신 겁니다.

설 전 날, 식구들과 함께 본 영화는 요즘 흥행하고 있는 '7번방의 선물'이었습니다. 현재 한국 영화에서는 8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라고 합니다.

인기가 있는 영화인 만큼 기대를 많이 하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 내용이 감동적이라고 해서 나름 눈물을 흘릴 준비까지 했습니다.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나오는 웃긴 장면들 덕분에 실컷 웃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빠 이용구(류승룡 분)와 그의 씩씩한 딸 예승이(갈소원 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한 편의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용구와 예승이는 가난하지만 아빠로서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나름대로 힘든 사회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용구는 딸이 갖고싶어하는 세일러문 가방 파는 곳을 가르쳐준다는 한 아이를 따라 시장으로 들어가다가 그 아이가 얼음에 미끄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용구는 지적장애로 인해 의사표현을 잘 하지 못해서 그 아이를 살해한 살인범으로 지목됩니다.

게다가 이용구는 현장에 쓰러진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옷을 벗겨 혈액순환을 돕고 인공호흡을 시도하는 모습을 오해하여 성추행을 했다는 누명까지 받습니다.


또 하필 죽은 아이가 경찰청장의 딸이라 권력의 압박으로 경찰들은 이용구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이용구가 범인임을 확정시켜 교도소에 가게 됩니다.

감옥에 간 이용구는 혼자 남아있을 딸 예승이만을 생각하며 애틋한 딸바보 아빠의 전형적인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이용구는 감옥에서 비록 어린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같은 교도소에서 함께 7번방을 쓰는 소양호(오달수 분)을 구해주고 교도소에 불이 났을 때 교도소의 소장(정진영 분)을 구해줍니다.


이용구의 순수한 마음과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동한 교도소의 많은 사람들은 이용구를 위해 그의 딸 예승이를 교도소로 데려오게 됩니다.

이용구가 있는 7번방에서 마치 선물처럼 등장한 자신의 딸 예승이를 보고 이용구는 너무나 기뻐하며 교도소에 온 예승이를 맞이합니다. 


비록 교도소지만 이용구와 예승이는 함깨 지내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이용구는 2심 재판에 서게 됩니다.

이용구는 7번방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재판을 할 때 잘못했다고 소리치는 이용구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결국 이용구는 사형을 선고받고 예승이와 슬픈 이별을 하고 영화가 끝이 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영화는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만큼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영화의 나오는 명품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이용구 역의 류승룡씨 연기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예승이를 연기한 아역배우 갈소원 양의 연기도 너무나 씩씩하고 똘똘한 어린 소녀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 7번방의 선물을 보고 너무 억지같다고 느낀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먼저 이용구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이용구가 정말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도 이용구는 지적장애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상황판단능력이 없기에 사형선고를 받을 수 없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형사 소송법 469조를 보면 심신장애인에 대해 사형집행을 정지하고 회복 후에 집행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용구는 재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형을 당합니다.

애당초 지적장애를 가진 이용구가 정신이 멀쩡한 일반 죄수들과 같은 교도소 방을 쓴다는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또 영화 중간에 사형 선고를 받은 이용구와 그의 딸 예승이를 위해 교도소 죄수들이 힘을 모아 열기구를 만들어날려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상에서 감동적으로 아빠와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주려는 장면인 것 같았는데 영화가 너무 판타지로 가버리는 것 같았고 저는 솔직히 좀 '깬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용구를 계속 범인으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사법부와 경찰청 등을 비꼬아 무자비한 권력에 대해 비판하려고 한 것 같은데 경찰청장이나 검사 같은 사람들을 너무 치졸한 악당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것말고도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영화 후반에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도록 하는 느낌의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만큼 많이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기에 이 영화가 흥행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히 감동적이고 슬플 영화였다고 별로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람과 사람간의 정과 아빠와 딸의 따뜻한 가족애, 그리고 보는이를 미소짓게 하는 주인공 이용구의 순수한 모습이 있었기에 이 영화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이환경 감독이 재미와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한 것일까요? 조금은 유치할 수도 있는 뻔한 스토리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도 있었지만 제가 하고싶은 일이 영상 관련 직종이기에 영화를 볼 때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의 세계에서 계연성과 현실성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본 7번방의 선물이라는 영화에 대해 현실성과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많이 드러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한국 영화가 많은 영화들을 비롯하여 끊임없이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7번방의 선물
감독 이환경 (2012 / 한국)
출연 류승룡,박신혜,갈소원,오달수,박원상
상세보기
 
얼마전에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책들 중에서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체 게바라는 중학교 때 다른 책으로 알게 된 쿠바의 유명한 혁명가입니다.

그 후로도 고등학교 때 체 게바라라는 사람에 대해 더 접해보기 위해 헌 책방에서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을 한 권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책을 읽으려고 하니 책이 너무 오래되고 두꺼운 탓에 쉽게 읽을 염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 속해 있는 체 게바라의 책을 마음 먹고 한 번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책의 제목은 '체 게바라 20세기 최후의 게릴라'였습니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천식이라는 병에 시달리며 힘들게 생활했지만 체 게바라는 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항상 럭비나 수영 같은 운동을 하며 거칠게 뛰어놀면서 성장했습니다.

23세가 되어 체 게바라는 자신의 친구 알베르토와 1만 km에 이르는 라틴 아메리카를 무려 7개월 동안이나 여행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기나긴 여행을 하면서 게바라는 인생의 다양한 모습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백인우월주의에 차별 받고, 고통 받는 인디오들의 모습과 빈곤과 체념의 부조리한 사회, 그리고 억압 받는 노동자들....

이런 모습들은 모두 게바라에게는 너무나도 경악스러운 장면이었고 또한 게바라 자신의 미래를 정치에 걸기로 마음을 먹게 된 계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게바라는 여행을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어릴 적 앓았던 천식의 영향이었는지 단숨에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됩니다. 

그리고 게바라는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또다시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 여행을 하는 동안 후에 쿠바 혁명을 주도할 동료인 피델 카스트로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행을 하면서 게바라는 고통과 억압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혁명의 필요성을 깨닫고 그 때부터 수많은 혁명가 또는 철학자들의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며 혁명가의 소양을 기릅니다.

그러다가 체 게바라는 독재자 바티스타가 집권하고 있는 쿠바로 갑니다. 쿠바에서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는 게릴라전으로 혁명을 일으킵니다.

게릴라전이란 적인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서 정균 군인들이 아닌 주민 등이 일반적으로 열세한 장비를 가지고 기습, 습격을 감행하는 전투 형태를 말합니다.

체 게바라와 피델은 게릴라전이라는 무장혁명으로 바티스타의 독재를 타도하려고 한 것입니다. 수 많은 전투 끝에 결국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는 바티스타를 쫒아내고 승리를 거머쥡니다.

그 후로 피델과 게바라는 쿠바의 정치 체제를 다잡고 쿠바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세력를 몰아내기 위해 정치적인 혁명을 계속합니다.

그러면서 체 게바라는 쿠바의 국민이 되어 라카바니아 요새의 사령관, 중앙은행 총재, 국가토지개혁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치면서 쿠바의 두뇌로 불리며 쿠바 정권의 기초를 세워나갑니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정치적인 신념이 다른 피델 카스트로에게 쿠바를 맡기고 또 다른 혁명을 위해 떠납니다.

체 게바라는 쿠바 뿐만 아니라 아직 혁명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 후에 게바라는 볼리비아의 산악 지대에서 게릴라전을 하던 중 붙잡혀 총살을 당합니다.

체 게바라는 오늘날까지도 20세기 최고의 혁명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혁명군이었을 때 자신의 원래 직업인 의사의 의학 실력으로 동료들을 치료해주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주위의 농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체 게바라의 영향이 많이 있었다고 하네요. 의사라는 좋은 직업에다가 잘생긴 외모 덕분에 그를 잘 신뢰했다고 합니다.

또한 체 게바라는 다른 지역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집단들을 하나로 모을 때에도 뛰어난 설득력과 믿음으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처럼 체 게바라는 혁명가로써의 군인적인 면모만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로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쿠바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인도의 간디가 비폭력 운동으로 인도를 해방시켰다면 체 게바라는 간디에 비해 상당히 폭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게릴라전의 방법으로 쿠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체 게바라의 혁명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지만 게바라와 피델의 모습은 분명히 정의였고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쿠바 혁명을 정의롭게 생각합니다.

피델 카스트로는 1953년 7월 26일 산티아고 데 쿠바의 몬카다 요새를 습격하다가 생포당합니다. 피델은 변호사로써 자기 행동의 정당함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한마디를 남깁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은 그 당시 독재자 바티스타에게는 끔찍한 테러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혁명은 역사에서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한 사건입니다.

일제 시대 때의 독립 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처럼 일제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테러리스트지만 조선에게는 영웅인 것입니다.

이처럼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혁명은 역사에 있어서 분명히 정의로운 혁명이었으며 그들은 시대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체 게바라가 쓴 일기에 게바라는 12월 5일, 알레그리아델피오에서의 전투에서 겪었던 일을 생생히 기록해놓았습니다.

옆의 한 동지가 날아오는 비오듯 쏟아지는 총알에 겁을 먹고 탄약통과 의약품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체 게바라는 두 물품을 모두 챙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만 골라서 가지고 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체 게바라는 그 순간 고민에 빠집니다. 의약품이냐, 탄약통이냐? 나는 의사인가? 혁명가인가? 고민 끝에 체 게바라는 결국 탄약통을 짊어집니다.

의사의 직업을 포기하고 혁명가의 삶을 택한 것입니다. 책에서 꽤 상징적으로 묘사된 게바라의 이런 고민과 선택은 저에게 큰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 혁명가의 길을 걸었던 체 게바라가 더욱 멋지고 우러러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체 게바라는 과연 그 선택을 후회했을까요?

저도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할 일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체 게바라처럼 힘든 선택을 해야할 순간이 온다면 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어떤 선택이든 저는 그 선택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되면 후회없이 그 쪽으로 갈 것입니다. 체 게바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체게바라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예술문고
지은이 장 코르미에 (시공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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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고등학교를 다니다보면 여러가지로 발표를 할 일이 많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하는 '주를 여는 시간'이나 공동체 회의, PT - Day 등 학생에게 발표할 기회를 많이 줍니다.


그리고 저는 학교의 학생회 행사부장을 맡고있어서 여러가지 알림사항이나 행사소개 및 평가회같이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할 일이 더 많습니다.

저의 행사부장 임기가 3학년 1학기까지니까 아직 한 학기 동안은 학교에서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패드를 들고다니며 틈틈히 시간 날 때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발표할 생각으로 키노트를 배워봤습니다.

저번에도 말했었지만 키노트는 한 번 배워놓으면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 PT - Day 때 키노트를 이용하여 발표를 한 번 해보니까 키노트가 충분히 간편하고 쓸모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를 키노트만 만들 줄 알면 뭐합니까? 아이패드와 학교의 빔프로젝터를 연결할 수 있어야 발표든 뭐든 할 수 있죠. 전문용어로 미러링이라고 하죠?

그래서 저는 아이패드와 학교의 빔프로젝터를 연결할 수 있는 'VGA 어댑터'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설날 때 받은 세뱃돈이 있어서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집에서 조금은 멀리 있는 백화점 안의 애플 매장에 직접 가서 35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VGA 어댑터를 화끈하게 구입했습니다. 

저는 집에 오자마자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VGA 어댑터의 찬란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놓기 위해서였죠.


정말 애플 제품을 살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게 3가지 있습니다. 먼저 '우와, 정말 심플하다' 애플 제품들은 언제봐도 역시 심플한 디자인이 매력인 것 같네요.

두 번째는 '구성품이 정말 간단하군'저번에 아이패드를 구입했을 때에는 아이패드와 충전기, 사용설명서 오직 이 세가지만이 들어있었습니다.

애플은 딱 필요할 것만 들어있는 게 간단하고 멋있기도 하지만 가끔은 너무 간단하게 들어있어서 섭섭할 정도로 무심하게 구성되있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비싸다...', 애플 제품이 미국에서 와서 그런지 항상 비싼 것 같네요. 무슨 어댑터 하나가 3만 원이 넘는지... (아버지가 사용하시는 아이패드 미니의 VGA 어댑터는 6만 원이 넘더군요.ㄷㄷㄷ) 

하지만 비싼만큼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애플이기에 거부감 없이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VGA 어댑터는 저에게 필요한 악세사리이기도 하고요.

여튼 VGA 어댑터는 왠만한 컴퓨터 모니터에도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제 컴퓨터 모니터로 성능을 테스트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아이패드는 3세대이기 때문에 30핀 케이블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산 어댑터를 꽂아보았습니다.


그리고 VGA 어댑터의 반대쪽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죠?


여기에 컴퓨터 모니터와 연결 된 VGA 케이블 선을 연결합니다.

짜잔!!
아이패드와 모니터의 크기 차이가 거의 없어서 별 의미는 없지만 새로 산 어댑터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함이니까요^^


자, 이제 아이패드를 켜보았습니다. 모니터에 아이패드의 화면이 나타나는 게 보이시죠? 이런 방법으로 빔프로젝터에 연결되어있는 VGA 케이블에 연결하면 똑같이 된답니다.^^

아이패드 화면으로만 봐왔던 모습들을 컴퓨터로도 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매력적인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참 좋아진 건가요? ㅎㅎㅎ


어쨌든 아이패드와 VGA 어댑터를 이용해서 큰 화면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웹서핑을 즐기거나 아이패드에 저장된 사진 및 동영상을 재생하여 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패드에 저장되어 있는 영상을 볼 때에는 아이패드에서는 영상이  나오지 않고 열결되어 있는 모니터에서만 나오더라구요. 아마 배터리를 절약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키노트!!! 모니터에 연결해서 당연히 아이패드에서 키노트도 실행시켜 보았습니다. 역시 키노트도 아무 문제없이 실행이 되더군요.

다만 아이패드를 모니터에 연결하고 키노트 슬라이드를 재생시켰을 시에는 모니터에서만 효과가 적용되어 보이고 아이패드에서는 텍스트나 사진이 아무 효과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약간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 프레젠테이션이 보이는 곳은 모니터이기 때문에 별로 상관은 없습니다. 앞으로 아이패드와 VGA 어댑터를 이용해 다양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발표해 볼 것입니다.

제가 다니는 태봉고등학교에서는 한 학가마다 한 번씩 그 동안 학교생활을 하며 배워왔던 것 또는 공부한 내용활동했던 것들을 모아서 발표를 하는 PT-Day가 있습니다.


PT-Day에서는 자신이 그 동안 활동해왔던 분야의 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에 대해 자료를 모아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는 태봉고를 다니는 2년 동안 꾸준히 영상을 공부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학교에서 활동했던 영상 분야에 대해서 발표를 하기로 했습니다.

태봉고등학교를 2년간 다니면서 벌써 네 번째 PT-Day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하여 무난하게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여 발표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2년 동안이나 태봉고를 다녔는데 이제는 예전과는 다른, 뭔가 혁신적이고 틀을 벗어난 PT 발표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2년 동안 수도없이 봐왔던 다른 친구들의 PT 발표를 떠올려보았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와 마찬가지로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어 발표합니다.

하지만 어떤 친구는 파워포인트(PPT)가 아닌 '프레지'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창의적으로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연극이나 음악적으로 공부를 한 친구들은 자신들이 직접 공연을 준비하여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들처럼 뭔가 저만의 특별한 발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애플사에서 만든 PT 프로그램인 '키노트(Keynote)'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키노트라는 프로그램은 애플에서 만든 애플 컴퓨터(Mac)에서 사용되는 기존의 윈도우(Windows)와는 개념이 완전히 다른 운영체제 매킨토시에서만 구동되는 PT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애플사의 아이패드에서도 키노트 어플리케이션이 만들어져서 아이패드에서도 직접 키노트를 제작하고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졸라서 구입한 아이패드를 이용하여 키노트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제가 영상을 배우고 있던 멘토 선생님께서 아이패드용 키노트 어플리케이션을 주셔서 저도 키노트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패드에서 키노트 어플에 들어가보니 친절하게 사용설명서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용설명서를 천천히 읽으며 키노트 사용방법을 익혔습니다.

키노트의 제작 방법은 생각보다 쉽고 간단했습니다. MS사의 파워포인트는 제작자가 직접 효과를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조정할 수 있지만 너무 복잡한 게 단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키노트는 프로그램상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멋진 효과를 아주 쉽게 적용할 수 있고 그 효과 또한 매우 다양해서 각 상황마다 필요한 효과를 심플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이패드로 키노트를 만들기에는 꽤 힘든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키노트를 제작할 때도 터치를 이용하기 때문에 세세한 조정까지 하기에는 불편하기도 합니다.

또한 아이패드는 9.7인치라는 작은 크기(PC 모니터 크기에 비교했을 때)에서 PT작업을 한다는 것은 집중력도 더 요구하고 오랜 시간 작업하면 눈이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여러가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키노트이기에 전부 참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여러 IT회사나 광고업계에서는 이미 키노트 PT를 사용하는 것이 많이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프레젠테이션의 신이라 불리는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가 사용하는 PT프로그램인 만큼 키노트는 확실히 전문적이고, 심플하면서도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프레젠테이션 프로로그램입니다.


오히려 아이패드를 이용하여 키노트를 만들기 때문에 휴대성이 좋은 아이패드의 특징을 살려 어디든 들고다니며 발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석으로 PT 슬라이드를 추가하여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한 터치를 이용하여 슬라이드에 사용할 텍스트를 움직이면 특정한 위치에서 노란색 선이 나타나 가장 적합한 텍스트 또는 사진의 위치를 선정해주어 더욱 완성도 높은 PT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아이패드로 키노트를 제작하여 PT-Day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 역시 아이패드를 이용했는데, 마침 학교의 선생님 한 분이 아이패드를 사용하셔서 아이패드와 TV를 연결하는 'HDMI 커넥터'를 빌려주셨습니다.

저의 네 번째 PT-Day 발표의 주제는 바로 '선택과 집중'이었습니다. 


그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제가 2학년 2학기 동안 학교에서 해야할 일과 하고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며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성장한 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키노트를 이용해 새로운 방식의 PT 발표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발표의 내용은 지금까지의 발표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인턴쉽 활동을 하면서 실제 촬영 현장을 보고 영상을 배우고 그 경험들을 토대로 학교에서 만든 영상 자료들을 보여주고...

항상 같은 방식의 발표였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키노트를 사용함으로써 더 깔끔하고 세련된 슬라이드와 드라마틱한 효과를 이용한 극적인 진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모두 키노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바뀐 점이지 제 발표의 실질적인 패턴 자체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키노트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뭔가 새롭고 혁신적이었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지만 다음 발표 때에는 발표의 패턴과 내용도 더 새로워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키노트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고 키노트의 기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또한 더 풍부하게 활용하기 위해 '키노트 for ipad using bible'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패드로 키노트를 활용하는 법을 좀 더 자세하고 세부적으로 정리해놓은 책입니다. 실제로 아이패드를 이용해 키노트로 PT를 많이 하시는 분이 직접 쓰신 책이라 경험에서 비롯된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요즘 아이패드로 키노트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신 것 같아 아버지에게도 그 책을 권했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키노트를 배워보고 싶으시다면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아이패드로 키노트를 사용할 때의 특징과 키노트의 화려한 매력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놓은 책, '키노트 for ipad using bible'입니다.

키노트FORIPADUSINGBIBLE:아이패드12공용단계별로밟는빠르고쉽고정?
카테고리 컴퓨터/IT > 멀티미디어
지은이 이윤환 (황금부엉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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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러 귀신 또는 유령 중에서 '흡혈귀'라는 게 있습니다. 흡혈귀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지만 밤이 되면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그 흡혈귀라는 무서운 존재를 어릴 때부터 책이나 만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로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흡혈귀를 주인공으로 하여 아주 멋있게 연출한 영화를 보고 흡혈귀에 대한 로망이 생겨 흡혈귀라는 녀석을 동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 아버지가 사주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중에서 흡혈귀에 대한 책도 있어서 제가 흡혈귀에 관심도 있고 하니 그 책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흡혈귀, 잠들지 않는 전설'이었습니다. 제목부터 으시시하고 책의 표지에는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끔찍한 모습의 흡혈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흡혈귀에 대한 책을 보기위해서 기본적으로 거쳐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비위가 상하는 것을 참으며 책을 펼쳤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시공 디스커버리 책들처럼 역시 책에 나오는 대상의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가 설명해 줍니다. 흡혈귀도 꽤 역사가 깊은 귀신이었습니다.

'피를 먹는 존재'라는 개념은 고대부터 이미 언급되어 오던 말이었습니다. 구약성서 레위기 17장 14절에 나오는 '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이다'라는 말처럼 옛날부터 사람들은 피를 아주 신성시 여겼습니다.

그래서 고대 유렵에서는 동물 또는 사람의 피를 바쳐 의식을 치르거나 피를 마시며 영생을 꿈꾸는 일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11세기에 들어서자 드디어 흡혈귀라는 존재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가 유럽을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산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피를 빨아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4세기가 되자 흡혈귀라는 존재가 점점 더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책에서는 그 이유를 아마 그 당시 유행했던 흑사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염병 때문에 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시체를 묻으면서 가끔씩 진짜 죽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묻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 운없는 희생자가 산채로 땅속에 묻혀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가 관 안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관을 열었을 때 피가 있는 것을 보고 그 당시 사람들을 밤에 시체가 무덤에서 나와 산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그렇게 전염병 등 여러가지 이유로 흡혈귀에 대한 믿음은 유렵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문학 작품들이 만들어지면서 흡혈귀의 황금시대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18세기 후반부터 산업 혁명을 통해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흡혈귀에 대한 믿음과 인기는 점점 사라져 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흡혈귀 신화가 다시 부활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흡혈귀라는 존재가 처음 언급되어 실질적으로 흡혈귀를 탄생시킨 영국이었습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의 지배 아래 영광의 시대를 맞이하였지만 뒤에서는 잔혹한 착취의 모순을 숨기고 있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서 흡혈귀를 소재로 한 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물질주의가 팽배해지고 격식과 품위를 강조하는 빅토리아 사회에 싫증이 나 있던 영국인들에게 간접적인 탈출구였던 것입니다.

흡혈귀라는 공포의 대상을 통해 사회의 질서가 조롱당하고 도덕이 무의미해지는 공포 이야기를 읽는 것은 일종의 '집단적이 배출구'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19세기 영국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흡혈귀가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면서 흡혈귀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흡혈귀라는 귀신은 누구나 한번쯤은 TV나 영화 또는 책에서 봤을법한 연예인급의 유명한 존재입니다. 

현대에서도 역시 흡혈귀는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만큼 흡혈귀가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있다는 뜻이겠죠.

왜 이렇게 기껏해야 귀신 또는 유령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는 존재가 오늘날까지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남의 고통을 즐기는 잔인한 카타르시스적 동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요즘 집에 있으면 너무 나른하고 낮잠만 자는 거 같아서 도서관에 다닙니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나름대로 탄탄한 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가서 읽은 책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아니고 저번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사주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중 하나였습니다.

집에서는 책 읽는 게 너무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도서관에 책을 가져가서 읽은 것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우주의 운명 : 빅뱅과 그 이후'라는 책입니다.

어릴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듣는 수업 중에서 과학을 제일 좋아했고 특히 우주에 관해서 배우는 과학 시간이 저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우주의 운명이라는 책을 골랐습니다. 제가 읽은 우주의 운명이라는 책은 단지 과학적인 시각에서의 우주만을 담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책은 우주에 관한 과학적인 사실과 우주의 역사부터 고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우주, 우주에 대한 관념을 바꿔놓은 사건, 인물들, 그리고 우주에 담긴 철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우주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고대 사람들이 바라보는 우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하늘을 아름다운 여신 '누트'의 육체라고 생각해 왔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 우주의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으며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들을 보고 모두 신의 모습에 투영하여 의인화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대 사람들의 세계관은 우주에 관하여 모든 것이 신의 존재를 부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류가 하늘과 우주의 신비에 감탄하고 우러러보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우주에 대한 인류의 세계관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을 자신들이 사는 지구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에서 생각하면 그리스인들은 참으로 건방지고 성급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 매일 밤 별들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만을 볼 수 있는 그리스인들에게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주관을 뒤바꾼 주장, 태양중심설
2000년 동안이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왔던 인류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꾼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1543년 '천체의 회전 운동에 대하여'라는 책을 출판한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처음으로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태양중심설'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그의 주장은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그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지금까지 우주의 중심이 자신들이 사는 지구라고 생각해왔던 인간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자신들이 믿었던 우주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리스토텔레스와 코페르니쿠스가 불을 지핀 우주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주장을 시작으로 우주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어 여러 학자가 우주가 가진 비밀을 점점 밝혀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티코 브라헤, 갈릴레이, 케플러와 뉴턴, 허블 등 수많은 천문학자를 거쳐 우주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들이 점차 쓰여갑니다.   


책의 나머지 내용은 지금까지 밝혀진 우주에 관한 과학적인 사실들을 적어놓은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이 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보다는 훨씬 다양한 내용과 깊숙한 부분까지 알 수 있었고, 복잡하지만 더 자세한 내용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마지막 장에 그려진 우주의 달력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세 장의 종이가 접혀있어서 펼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펼쳐보니 우주가 빅뱅을 거쳐 탄생하고 난 뒤로 약 137억 년이 지난 지금까지를 1년이라고 생각했을 때의 우주의 달력을 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나이를 1년이라고 잡았을 때 우주가 탄생한 뒤, 태양계는 9개월이나 지난 다음인 9월 9일에 형성되었고 지구가 만들어지고 12월 19일이 되어서야 지구에 최초의 생물 어류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인류는 12월 31일 밤에야 시작됩니다. 저녁 10시 30분에 최초의 인류가 태어나고, 11시 59분 56초 예수 탄생, 그리고 우리는 지금 12시 자정을 살고 있습니다.

즉 우주의 나이를 1년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1초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우리 인류는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시간적이 개념에서만이 아니라 우주의 드넓은 공간에서 봤을 때에도 우리가 사는 지구는 단지 우주의 작은 먼지밖에 안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우주는 너무나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입니다. 아직 인류는 우주에 대해 1만분의 1도 밝혀내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 학교에 일이 있어서 잠시 갔다가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습니다. 1997년도에 개봉한 세계적인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와 혼동할 수도 있는데, 제가 본 영화는 작년에 개봉한 김주호 감독의 한국 영화였습니다.

1997년도에 개봉하여 1995년에 재개봉을 했을 만큼 세계적인 큰 인기를 끌었던 빅터 클레밍 감독의 미국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번에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는 조선 시대 영조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에는 얼음이 금보다 귀한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그 권력을 독점하려는 자가 분명히 생기는 법, 좌의정 '조명수'라는 자가 얼음을 독차지하여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온갖 나쁜 짓을 행합니다.


조명수의 영향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이 몇 명 있었으니 그 중 한 명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이덕무(차태현 분)는 사람이었습니다. 조명수 때문에 이덕무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의 유명한 무관이었던 '백동수(오지호 분)'는 서빙고에서 일하며 얼음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나 조명수에 의해 서빙고 관리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덕무의 절친한 친구 또한 조명수 일행에 의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에 분노한 이덕무는 조명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많은 세월 동안 책과 공부에만 몰두하여 조명수의 뒤통수를 칠 엄청난 계획을 생각해 냅니다.

바로 조명수가 독차지하고 있는 얼음 3만 정을 통째로 훔치는 것입니다. 얼음을 훔치고 조명수와 거래를 하여 얼음을 값비싸게 다시 팔아넘기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이덕무는 우선 조명수에게 원한이 있는 백동수와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이덕무와 백동수는 일에 필요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돈을 지원해 줄 한양 최고의 돈줄 '장수균(성동일 분)', 도굴 전문가 '홍석창(고창석 분)', '폭탄 제조 전문가 '석대현(신정근 분)', 변장술의 달인 '김재준(송중호 분), 신속 정확 마차꾼 '김철주(김길동 분), 정보 전문가 '유설화(이채영 분) 등 각 분야 최고의 실력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들을 데리고 이덕무는 3만 정의 얼음을 훔치기 위해 본격적으로 작전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만 들으면 굉장히 유치할 것 같은 내용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얼음을 훔친다는 스토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는 시대적 배경을 정확히 담아내어 조선 왕권 다툼이 주가 되면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영조가 죽고 다음 왕위에 오를 왕을 결정하는 시기에 벌어지는 왕권, 권력 다툼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입니다.

영화 속 이야기는 사극 드라마에서 몇 번 등장하였던 '정조(이산)'가 왕이 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산이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명수가 갖은 술수를 다 써보지만 결국은 이덕무와 백동수에 의해 이산이 즉위하여 정조가 탄생합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사건들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되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영화도 재미있게 보고 역사적인 의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이덕무와 백동수 등 많은 인물이 실제로 조선 시대 때 활동했던 실존인물이라고 합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얼음을 훔친다는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가 아닌 영화에서 만들어낸 픽션(허구)이지만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덕무가 자신의 동료 백동수의 여동생인 '수련'을 평소에 좋아하여 영화 중간 중간에 '처남'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때마다 백동수는 이덕무에게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화내고는 했는데, 저는 그 장면이 그냥 영화상에서의 코믹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덕무와 백동수는 영화에서만 아니라 실제로도 처남, 매부 관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둘은 아주 친한 관계였다고 하네요.


조선 시대 이야기라 기록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이덕무와 백동수의 사이가 좋았다고 하니 영화가 더 현실성 있고 재미있었던 것 같네요.


영화는 백동수와 이덕무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저는 그 두 사람보다 얼음 훔치기 작전의 멤버 중 한 명인 폭탄 제조 전문가 대현이라는 캐릭터가 기억에 남습니다.

두 캐릭터는 아주 인상 깊은 매력이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좋아할 만한 캐릭터였으니까요. 우선 폭탄 제조 전문가 대현은 폭탄을 너무 많이 만들다 보니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설정의 캐릭터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회의할 때에도 말귀를 잘 못 알아먹어서 뒷북을 치면서 항상 코믹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현은 엉뚱한 성격과 웃긴 행동과는 다르게 폭탄 제조 실력만큼은 최고였고 자신이 만든 폭탄에 대한 멋진 장인정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자신이 새로 발명한 신형 폭탄으로 위험에 빠진 모두를 구하는 등 꽤 비중 있는 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현 말고도 영화에 나오는 얼음 훔치는데 참여했던 모든 캐릭터가 모두 자신만의 특징과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현과 함께 폭탄을 만들었던 꼬맹이 정군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영화 틈틈이 어린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말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정군은 대현과 폭탄을 만들던 중에 눈썹이 타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 장면이 영화에서 좀 강조된 것 같아서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영화 마지막에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갑자기 어떤 청년이 궁에 들어와 정조 왕에게 인사를 드리며 자신의 이름이 정약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약용이라고 하는 청년의 눈썹은 마치 탄 것처럼 세 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대찬 꼬맹이 정군이 커서 정약용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도 정약용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았다가 눈썹이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합니다.


정약용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아는 조선의 유명한 실학자이자 개혁가입니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꼬맹이가 갑자기 정약용이 되는 게 현실성이 좀 떨어질 수도 있지만, 꽤 재미있고 소소한 반전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반가운 역사적인 인물들을 재미있고 친근한 캐릭터로 만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감독 김주호 (2012 / 한국)
출연 차태현,오지호,민효린,성동일,신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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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학교에서 진행했던 그린나래 3기 캠프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세 가지의 수업이었습니다. 학교소개와 배움의 공동체, 그리고 삶과 철학 수업이었습니다. 


수업 말고는 그린나래에서 제마 맡은 다른 특별한 역할은 없었기에 수업 준비에만 집중하여 심혈을 기울이며 최대한 수업을 알차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린나래 캠프에서는 저희 태봉고등학교에서만 하고 있는 특별한 예술감성교육 명상, 농사, 철학, 음식과 옷만들기, 공동체 회의, 주를 여는 시간, 이동학습 등을 신입생들이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스탭 학생들이 수업을 준비합니다.

그린나래는 학생이 주체가 되는 캠프지만 수업만큼은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교과 선생님들께 도움을 많이 구하여 그린나래 수업이 진행됩니다.

- 학교소개
먼저 제가 맡았던 학교소개 수업은 이번 3기 캠프에서 진행되는 가장 첫 번째 수업이었기 때문에 이번 2박 3일 간의 수업 분위기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수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간단하게 PPT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PPT 안에는 저희 태봉고등학교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과 학교 홍보 동영상,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저는 가장 평범한 게 좋다고 생각하여 지루할 수도 있지만 PPT로 수업을 준비한 것입니다. 말만 늘어놓는 것보다는 시각적인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저희 태봉고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먼저 학교홍보 영상을 신입생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보여준 학교 홍보 영상은 모두 학생들의 손에서 제작된 영상임을 알려주고 태봉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학교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다음에는 태봉고의 여러가지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학교 생활을 전반적으로 구경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학교 철학인 꿈, 땀, 사랑, 나눔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인턴십 수업 LTI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또한 저희들이 진행하고 있는 그린나래 캠프 또한 LTI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캠프임을 알려주었습니다.

학교 소개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수업이 지루해서 잠과 싸우고 있는 모습도 보였주었는데, 역시 어떤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 대해 설명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어떤 정보를 가르쳐주는 수업은 학생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린나래의 첫 번째 수업인 학교소개가 조금 딱딱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학생들이 뒤에 진행되는 다른 수업에서도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안정적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배움의 공동체
제가 맡은 두 번째 수업은 '배움의 공동체'수업이었습니다. 배움의 공동체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하면서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가 힘을 모아 배움을 이끌어 내는 수업을 말합니다.

그런 배움의 공동체를 설명하기 위해 저는 여러가지 활동적인 게임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각 모둠원들간의 신뢰와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조장이 뒤로 넘어지고 모둠원들이 넘어지는 조장을 받쳐주는 게임을 했습니다.

그 게임을 시작으로 서로 간의 신뢰를 확인한 학생들은 다시 경쟁을 하게 됩니다. 사탕을 걸고 팔씨름을 하게 됩니다. 총 6번의 팔씨름 경기를 하여 한 번 이길 때마다 사탕을 하나씩 가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모두 사탕을 가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팔씨름에 임합니다.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팔힘을 써보지만 팔씨름이라는 게 역시나 계속 이기는 사람만 이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원하는 정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팔씨름을 하는 두 명의 학생이 서로 힘을 빼고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져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팔씨름을 하는 두 학생 모두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사탕을 3개씩 사이좋게 나눠가지게 이렇게 어렵고 피곤했지만 알찬 토론 수업을 끝내고 저는 삶과 철학 수업을 마치면서 이번 삶과 철학 수업에서 가장 포인트가 되는 한 가지 사실을 강조했습니다.이 팔씨름 게임을 통해 배움의 공동체는 분명히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실현하는 수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를 하면서 마지막을 했던 게임은 '갈등 풀기'라는 YMCA에서 배운 게임 중에 하나입니다. 그 게임은 협동심을 기를 수 있는 게임으로 배움의 공동체 수업에 딱 알맞는 수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모둠끼리 둥글게 손을 잡아 원을 만듭니다. 그리고나서 양팔을 교차시켜 다시 옆에 사람과 손을 잡아 팔이 꼬인채로 원을 만듭니다. 그 상태를 '평화 구조'라고 합니다.
 
팔이 꼬인채로 원이 만들어진 그 상태를 '갈등 구조'라고 하고, 이제 그 상태에서 잡은 손을 떼지 않고 원래 팔이 꼬이지 않았던 평화 구조로 만드는 게임입니다.

갈등 구조를 푸는 방법은 우선 갈등 구조의 원에서 키가 큰 두 사람이 팔을 들어 작은 터널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터널 밑으로 다른 조원이 들어가서 한 바퀴를 돌면 갈등 구조가 풀려 다시 평화 구조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꽤나 복잡한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서로 배려하며 협동심을 가지고 임하면 아주 간단하게 갈등 구조가 풀려 평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스탭들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대부분의 조가 금방 해법을 찾아 갈등 구조를 풀었습니다. 그 게임을 통해 배움의 공동체는 모두가 함께 가려는 공동체 의식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 삶과 철학
제가 그린나래에서 맡았던 마지막 수업은 바로 '삶과 철학'수업이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국어나 사회 또는 미술 교과 선생님들께서 진행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제가 진행한 삶과 철학 수업은 저희 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실제로 철학 시간에 진행했던 간디의 물레 토론 수업이었습니다.


저희 학교 여름 방학 때 '간디의 물레'라는 책을 꼭 읽어보라는 교장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이 너무 어려워서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간디의 자급자족하는 사상이 담긴 그 책에 매력을 느꼈고 독서토론 동아리 등을 통해 간디의 물레라는 책을 가지고 다양한 토론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번 그린나래에 참가한 신입생들에게 삶과 철학 수업을 통해 간디의 물레라는 책에 담긴 간디의 사상과 철학을 조금이나마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우선 자신의 철학과 교양을 쌓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바로 '독서'라고 생각하여 학생들 모두가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물론 간디의 물레를 읽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책이 너무나 어려워서 책을 읽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갸우뚱하거나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국어 선생님께서 간디의 물레를 간단하게 요약한 글을 학생들에게 읽어주고 토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삶과 철학 토론 수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둔 간디의 철학은 바로 '산업 문명의 폐해'였습니다. 현대 사람들의 삶이 점점 타락해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산업 문명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산업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예로 스마트폰을 이야기하면 '스마트폰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올바른가?'라는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의 의견은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의견과 철학이 달랐고 서로의 의견에 반대도 하면서 나름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바로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은 바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상과 사상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이 가지는 철학과 생각에도 역시 차이점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남의 다름을 존중할 수 있어야 자신의 철학을 기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린나래 캠프에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참 많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수업에 열중하는 학생을 보면 더 열정적이고 싶고, 반면에 제 수업에서 졸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을 보면 수업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수업이 끝나고 제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뭔가를 배웠다는 것을 느끼면 정말 보람차고 뿌듯해집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다음 수업 때에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그린나래에서 진행했던 수업들은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요? 분명히 선생님들께서 하는 수업과 제가 하는 수업은 수준부터가 다르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짜릿한 경험일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으니 앞으로 1년 남은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항상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그린나래'라는 순우리말이 있습니다. '그린듯이 아름다운 날개'라는 뜻으로 저희 태봉고등학교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캠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1학년 때 만들어진 그린나래 캠프의 본래 목적은 태봉고등학교 입합을 희망하는 경남 내의 중학교 2,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학교 홍보 및 체험의 목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표를 맡아 진행했던 그린나래 2기 때부터 그 목적이 변하여 이미 태봉고등학교에 합격한 예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형식을 가진 캠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1월 중반에 진행되었던 그린나래 3기 캠프 역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린나래가 신입생 O.T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벌써 그린나래 캠프가 3기까지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그린나래 캠프를 시작하면서 스탭과 진행을 맡은 친구들이 우왕좌왕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린나래 3기까지 왔습니다.


3학년이 되는 저희 학년 멤버들은 이제 그린나래 캠프를 세번째나 진행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희 학년들이 그린나래 캠프의 전통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부터는 저희 후배들이 그린나래를 이끌어 갈 차례입니다.

저희 학년 밑의 1학년들, 그러니까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후배들이 자신들의 후배들(2013년 신입생)을 그린나래 캠프에서 맞이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린나래 3기는 최대한 2학년 후배들이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저희 3학년들은 이제 뒤에서 지켜보면서 조금씩 도와주기만 하고 2학년 학생들에게 전체적인 진행을 맡겼습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저희가 만들어 온 태봉고등학교의 그린나래 캠프가 계승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캠프장과 전체 사회자 모두 2학년 학생이 맡았습니다.

2학년들은 그린나래 캠프를 진행하기에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3학년 학생들이 계속 캠프의 전체적인 진행을 독점한다면 그린나래가 계승되기는 많이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2학년들에게 그린나래 캠프를 떠맡겨 버린다면 그것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저희 3학년들이 함께 캠프에 참여하여 도와준 것입니다.

약 6개월 간의 그린나래 캠프 기획 및 회의, 리허설을 모두 끝마치고 드디어 1월 14일, 그린나래 3기 캠프가 시작되었습니다.


2013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이 그린나래 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방학인데도 하나 둘 씩 학교로 왔습니다. 이번에 그린나래 캠프에 신청한 신입생들은 모두 42명, 지금까지의 그린나래 캠프 중 가장 많은 인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탭과 진행 요원 학생들은 더욱 긴장이 되었습니다. 42명이라는 많은 수의 캠프 참가자들과 2박 3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캠프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가 자신들이 하고 싶어서 기획한 캠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즐기면서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열심이 준비하고, 가장 열심히 진행했던 그린나래 캠프라 가장 즐거웠던 2박 3일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입생들의 캠프 참여도와 태도가 너무나도 좋아서 캠프 분위기 자체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후배들은 모두 열심히 캠프를 진행해주었습니다. 마치 작년의 저희들처럼 열정을 가지고 캠프 진행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캠프에 참여한 신입생들도 모두 2박 3일 동안 아무런 일도 없이 잘 지내주었습니다.


그린나래에서는 실제로 저희 태봉고등학교에서 진행되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 농사, 철학, 음식 만들기, 명상, 동아리 등 여러가지 예술감성 교육과 대안교육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태봉고에 입학하게 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캠프이기 때문에 학교에 입학하기 전 태봉고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미리 경험하여 적응해보는 시간도 충분히 될 것입니다.

캠프에 참여하는 신입생들은 몇 달 후, 자신들이 입학하게 될 학교를 미리 체험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흥미를 가지고 캠프 활동에 임할 수 있습니다.


캠프를 열심히 진행해 준 친구들과 후배들, 캠프에 참가해 준 신입생들, 그리고 그린나래가 진행되도록 뒤에서 도와주신 많은 선생님들 모두에게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이제 저희 3학년들은 더이상 그린나래 캠프를 진행할 기회가 없습니다. 왜냐면 내년에 진행되는 4번째 그린나래 때에는 저희 3학년들은 이미 졸업한 상태일 테니까요.

그러므로 이번 3기 그린나래 캠프가 저희 3학년들에게는 마지막 그린나래 캠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이상 그린나래를 진행할 수는 없지만 그린나래 1, 2, 3기를 거치는 동안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만든 그린나래라는 캠프가 저희가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진행되어 저희 태봉고등학교의 전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가 방학하기 전에 제가 속해있는 2학년 2반끼리 어디로 여행을 한 번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과 함께 여행 일정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반끼리만 여행을 간다고 하면 학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방학 때 따로 만나서 사비로 여행을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습니다.

결국 2학년이 끝나기 전에 반 여행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을 무렵, 어느날 학교에서 뇌활성 명상 교육을 실시한다고 했습니다.

뇌활성 명상을 하는 강사를 학교에 초청하여 1박2일로 교육을 받는 일정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기회로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2학년 2반의 반 여행을 대신하여 학급 모두가 학교에서 자면서 놀기도 하고 뇌활성 명상 교육도 받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태봉고 한 반에 구성원은 고작 15명인데, 15명으로는 뇌활성 명상 교육이 진행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반 뿐만 아니라 다른 반 학생들도 몇 명 참여하여 뇌활성 명상 교육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2학년 학생 약 20명과 함께 금요일(2013년 1월 4일)부터 일요일(1월 6일)까지 총 2박 3일 간 학교에서 먹고 자며 뇌활성 명상 교육을 받기로 했습니다.


명상 교육이라고 해서 계속 자리에 앉아서 명상만 하는 그런 지루한 교육을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받은 뇌활성 명상 교육은 생각보다 활동적이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뇌활성 명상은 뇌를 활성화시켜서 긍정적인 감정상태를 유발하여 행복한 삶에 이르기위한 수행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우선 뇌를 활성화시키는 방법과 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 긍적적인 감정상태가 몸에 주는 영향 등 여러가지 이론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뇌를 활성화시키는 활동을 시작했는데, 기본적으로 오른손과 왼손을 고르게 사용하는 한 손을 접고 숫자를 세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제가 오른손잡이라서 사실 왼손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 때 오른손과 왼손을 골고루 사용하면서 많이 어려웠지만 나름 뇌가 활성화되는 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간단한 몸풀기가 끝나고 이제 모둠을 나누어서 모둠끼리 종이에 각 한 사람마다 칭찬을 적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남이 적어주는 자신에 대한 칭찬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고 그 상태로 남을 칭찬하는 문구를 적어주는 활동은 너무나도 희망찬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우정을 확인할 수도 있어서 친구 사이가 더 돈독해질 수도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1박 2일간의 명상 교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하나 있습니다. 다양한 활동들을 했지만 저는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한 명이 눈을 가리고 한 명이 이끌어 주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두 명이 짝이 되어 한 명이 눈을 가립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학교 3층에서 1층 운동장까지 이동하는데 눈이 보이는 친구는 눈을 가린 친구가 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활동이었지만 선생님들의 안전지도 하에 움직였기 때문에 안심하고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눈을 가리고 하는 이 활동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활동입니다.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자기 옆에 있는 사람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활동을 하면서 안내해주는 친구가 잘 안내하지 못하여 눈을 가린 친구가 다치기라도 하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없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눈을 가린 친구를 안전하게 인도했습니다.

덕분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많이 형성되었던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유치할 수도 있는 활동이었지만 저는 이 활동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촛불을 한 개씩 들고 그 동안의 뇌활성 명상 활동들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날 일정도 많이 남았는데 벌써 이별의 시간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가슴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1박 2일 동안 배운 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칭찬을 많이 들은 밥은 시간이 지나 뽀얀 곰팡이가 생기고 욕을 많이 들은 밥은 흉측하고 냄새가 많이 나는 곰팜이가 생기는 것처럼 어떤 사물이든 간에 거친 욕보다는 칭찬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친구와 대화를 할 때에도 거친 욕을 사용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고운 말과 칭찬을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 등의 기본적인 마인드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느끼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우리 2학년 2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니고 있는 태봉고등학교의 첫 졸업식도 다가왔습니다. 학교가 개교한지 3년만에 드디어 첫 졸업생들이 졸업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태봉고 1기 학생들에게 3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안학교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적응하기 힘들어 고생하고 서로 싸우면서 다사다난했던 3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년 늦게 태봉고에 들어 온 저희 2기 학생들과 함께 웃고 울며 지냈던 짧은 지난 2년을 돌이키면서 이제는 그런 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슬픔이 가슴을 덮쳤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가 있었기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들 또한 저희 후배들이 있기에 더 든든하게 학교생활을 했을거라 생각됩니다.

졸업식을 하기 전, 졸업주간이라는 이름으로 졸업 5일 전부터 1, 2, 3학년이 모두 소풍도 가고 게임도 하고 못다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졸업식을 하기 하루 전에는 졸업 공연을 했습니다. 3학년들 각 반마다 모두 연극, 노래 등의 공연을 준비했고 3학년 연극부와 밴드부, 랩 동아리가 준비한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기 졸업생들이 모두 모여 3년 동안 태봉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을 한마디씩 들어보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졸업생들은 그 동안 가슴속에 쌓아두었던 말들, 그 동안 하지못했던 말들을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작별의 인사를 했습니다.

너무나 슬펐습니다. 단순히 학교의 선배가 아니라 가족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저희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그렇게 슬픔을 뒤로하고 졸업식을 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졸업식을 진행하면서 형식적인 졸업장과 상장 전달 시간을 가지고 특별히 학부모님의 요청으로 태봉고의 모든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이 맞절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대안학교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송사를 읽는 학생회장이 울음을 터뜨리자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 학부모님들도 함께 울음을 터뜨리고 순식간에 졸업식은 울음바다가 되버렸습니다.

저는 왠만하면 울지않으려고 했지만 송사를 읽으면서 가족을 떠나보낼 때 송사를 쓰지는 않는다며 송사를 쓰기 싫었다고 말하는 학생회장의 말을 듣고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제는 3학년 형, 누나들을 볼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슬펐습니다.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영영 이별하는 것처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졸업식의 전체적인 진행은 선생님들이 하셨지만 세족식 등의 행사는 저희 행사부 측에서 진행했습니다. 1기 졸업생들이 3년 전, 입학을 할 때에는 선생님들이 1기 학생들의 발을 씻겨드렸지만 이번에는 졸업생들이 선생님들의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선생님들의 발을 씻겨드리는 세족식의 진행은 제가 맡아서 제가 직접 작성한 멘트를 읽었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지난 3년 간 태봉인으로 지내며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또 얼마나 아팠습니까?
대안학교라는 이름 하에 자유와 꿈을 갈망하던 태봉고 말썽꾸러기 1기 학생들을 이끌어갔던 수많은 선생님들, 3년 동안 꾹 꾹 참아왔던 피로와 근심 걱정을 지금 이 순간에 모두 씻어내십시오.
발을 씻겨드립니다. 학생이 선생님의 발을 씻겨드립니다. 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3년 전, 선생님들이 무릎을 꿇고 학생 여러분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바로 학생 여러분을 섬긴다는 의미였습니다.
이제 학생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3년 동안 노력해왔던 흔적, 고생했던 상처, 지저분한 때 하나하나 전부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씻겨주십시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선생님을 다시 볼 기회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3년 동안 받았던 그들의 관심과 사랑, 배움과 믿음, 그 모든 은혜를 지금 이 순간에 모두 보답하십시오.
발을 씻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을 씻어주고 깨끗하게 해준다는 것, 반대로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고 이해하게 하는 것 등, 많은 의미가 담긴 세족식입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인생의 가장 큰 은인이자 스승입니다.
사랑하십시오. 또한 고마워하십시오.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발을 씻겨드립시오. 당신의 정성이 담긴 손길로 선생님의 발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발에 있는 때를 벗겨낼 때마다 학교생활을 하며 그대들이 선생님께 드렸던 상처를 하나씩 하나씩 지워낼 것입니다.
여러분, 스승은 선물입니다. 스승은 정신적인 부모이며 자신이 가장 믿고 따라야하는 인도자이며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참된 배움의 전도자입니다.
이제 우리의 스승들을 섬깁시다.
마지막으로 가슴 속에서 크게 외쳐주십시오.
선생님, 사랑합니다.


세족식을 진행하는 동안 1, 2학년 재학생들은 무대에 올라가서 뭔가를 준비했습니다. 바로 1기 졸업생들을 위해 준비한 졸업노래였습니다.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가수의 '졸업'이라는 노래였습니다. 졸업식을 하기 한 달 전부터 노래의 솔로와 여자, 남자 파트를 나누고 열심히 준비한 노래입니다.

노래 가사의 내용은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 널 잊지 않을게' 처럼 결코 평범하지 않지만 감동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 진정한 대안학교의 졸업 노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노래를 다 부르고 난 뒤, 남학생들만 모두 앞으로 나와 그 동안 저희들을 잘 보듬어주신 졸업생 형, 누나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행사부 측에서는 처음으로 졸업을 하게되는 1기 졸업생들을 위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지만 나름 레드카펫을 준비하였고 3년 동안의 추억을 보관하기 위해 타임캡슐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비록 볼품없는 플라스틱 상자에 스티로폼 박스로 된 타임캡슐이었지만 졸업생들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졸업식을 하기 전에 졸업생들에게 각자 3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며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이나 타임캡슐에 꼭 담고싶은 물건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타임캡슐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담겼고 금새 꽉꽉 채워졌습니다. 그 만큼 학교에서의 추억이 많았다는 뜻이겠죠. 타임캡슐은 학교와의 합의를 통해 학교 내에 묻을 예정입니다.

타임캡슐에 담긴 졸업생들의 물건들처럼 그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이 1월 1일 신년이라 12월 31일인 오늘은 학교에서 재량휴업을 해서 학교에 가지않았습니다. 그래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쭈욱 학교를 가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주말에 감기 몸살 때문에 계속 침대에 누워서 잠만 잤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 출장을 가셔서 주말 내내 저 혼자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2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아버지와 저녁에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출근하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너무 심심했습니다.

주말에는 계속 잠만 자서 넘어갔지만 막상 쉬는 날에 집에 혼자 아무것도 안하고 있느니까 너무 심심했습니다. 그래서 TV를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TV가 질려서 컴퓨터를 하고 그러다가 또 자고... 결국 뒹굴거리는 하루가 될 것 같았습니다. 2012년의 마지막날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기도 나았으니 오랜만에 농구나 할까해서 창밖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밖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던 것입니다.


몇 일 전에 눈이 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녹지 않고 쌓여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추운 걸 싫어해서 눈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 창밖으로 본 눈덮인 우리동네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얼른 사진기를 챙겨 밖으로 나갔습니다. 혹시 몰라 농구공도 챙겼습니다. 집앞에 있는 농구장까지 걸어가는데 정말 눈이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농구공을 들고 농구장으로 뛰어갔는데 농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농구장에 눈은 없었지만 눈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함부로 농구를 했다간 금방 넘어져서 전치 3주 이상은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농구는 살며시 포기하고 역시 사진이나 찍으러 다녔습니다.

온 동네에 쌓여있는 눈을 밟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찍었습니다. 날씨가 정말 춥기는 춥나 봅니다. 3일 전에 왔던 눈이 아직까지 녹지 않고 쌓여있다니...

너무 추워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덜덜덜 떨렸습니다. 또 감기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눈이 쌓이 예쁜 경치를 찍다보니 추운 것은 금새 잊어버렸습니다. 


몇 년전에 샀던 헌 운동화를 신고 마음껏 눈을 밟으며 돌아다녔습니다. 오랜만에 눈을 실컷 밟아보니 3년 전에 아버지와 지리산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매년 1월 1일이면 항상 아버지와 겨울산을 등산하며 새해 첫 일출을 보곤 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그것도 힘들어지네요.

이제 내년이면 저도 고3이니까 더욱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없어질 것입니다. 또 나이가 들어 제가 어른이 되어 갈 수록 부모님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겠죠?

그 전에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저도 바빠질테니까요.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읽고
 

정말 오랜만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연말이라 학교 일정 때문에 바쁜 제가 틈틈히 시간을 내서 읽은 책은 바로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라는 책입니다.

바로 저희 아버지가 내신 책입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만드신 책은 몇 권이 있지만 전부 어려워서 항상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내신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라는 책은 고등학생인 저한테도 별로 어렵지 않고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곧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이 잘 읽히지 않았습니다. 책은 4가지 정도의 파트로 나눠져 있었는데 제가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지역신문 킬러콘텐츠에 관한 부분부터 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파트의 대부분은 지역신문이 다루는 콘텐츠와 외국의 지역신문이 다루는 콘텐츠를 보여주며 비교와 배울 점을 분석하여 정리해 놓은 어려운 말들로 되어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저에게 좀 어려워서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신문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거나 아버지에게 물어보러 갔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모르는 단어를 가르쳐주시면서 저에게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고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재미있어 하고 금방 이해가 될 것 같은 부분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바로 블로그에 관한 파트였습니다.

저 또한 블로그를 약 5년간 운영해왔기 때문에 아버지가 적은 블로그 파트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파트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바로 기자가 블로그를 하면 좋은 점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항상 저희 아버지가 블로그를 하시는 이유를 궁금해 하고있었습니다. '이미 신문기자를 하시면서 충분히 바쁘실텐데 왜 굳이 블로그를 하시는걸까?'

그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책 속에 들어있었습니다. '기자가 블로그를 하면 좋은 점이 뭘까'라는 주제로 기자들이 블로그를 했을 때 생기는 시너지 효과를 정리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언급하자면 
- 틀에 박힌 기사 작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글쓰기 실험을 할 수 있다.
- 광고 수익과 간접 수입이 짭짤하게 생긴다. 노후대책도 될 수 있다.
- 기자들의 글쓰기 실력이 늘어 돈 안 들이고 교육이 가능하다.

등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자가 블로그를 했을 때 좋은 점들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제가 언급한 내용은 제가 읽은 것 중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이고 책에는 훨씬 더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 바로 10대, 20대 블로그 실태에 대한 내용입니다. 책에서는 10대 20대가 아직 블로그를 많이 접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10대 20대는 아직까지도 네이버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을 이용하면서 연예인이나 자기 사진을 올리는 용도로 밖에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업이나 취업이 가까운 문제인 10, 20대에게는 블로그라는 미디어 매체를 운영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저의 블로그를 예로 들면서 학생에가 블로그가 좋은 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블로그 운영은 대학 진학 또는 취업에서 유용한 실적자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블로그라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공간이고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모으면 포트폴리오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몇 년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작성한 몇 백개의 글을 대학 지원을 하기 전에 벼락치기로 만들 수는 없기에 블로그는 학생에게 있어서 자신이 만들어 가는 성장기록인 셈이죠.

아버지가 직접 책을 선물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책에서 언급되는 저의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그 동안 블로그를 정말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운영해왔다는 것을 세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블로그가 내 인생에 있어서 많은 도움과 영향을 줄 것이고 블로그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저도 블로그에 적은 수 많은 글들을 모아서 아버지처럼 책 한 권 내야겠죠.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 10점
김주완 지음/산지니

 
요즘 주말에 집에 올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바로 SBS에서 방영하는 월, 화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입니다.

드라마의 제왕은 매주 월요일, 화요일 저녁에 방영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고있는 저로써는 본방사수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말에 와서 반드시 재방송이나 다운받아서 드라마의 제왕을 챙겨봅니다. 그 만큼 저에게 재미있고 애정이 많이 가는 드라마가 바로 드라마의 제왕입니다.

드라마의 제왕 줄거리는 몇 년간 드라마계에서 성공을 이루고 드라마계를 정복한 김봉달(김명민 분)의 이야기입니다.

- 드라마의 제왕 줄거리
극중에서 김봉달은 어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시력을 잃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습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돈도 내지 못하고 항상 맞고 가난에 허덕이며 힘겹게 살아가는 앤서니킴에게 유일하게 힘이 되는 건 TV에 나오는 드라마였습니다.

어릴 때 자신의 힘이 되어 준 드라마를 보면서 자기도 반드시 멋진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앤서니킴'으로 이름을 바꾸고 드라마판에 뛰어듭니다.

가난하게 살던 앤서니킴에게는 오직 돈만이 모든 일의 목표였습니다. 돈을 얻기위해서는 어떠한 짓이라도 다하면서 앤서니킴은 드라마계에서 성공을 합니다.

하지만 더러운 방법으로 얻은 자리는 금방 내려오게 되는 법! 갖은 더러운 방식으로 권력을 가진 앤서니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고 결국 앤서니킴은 자신이 무시해 온 많은 사람들의 배신으로 드라마의 제왕 자리에서 쫒겨납니다.

그렇게 드라마계에서 쫒겨나고 앤서니킴은 다시 재기하기 위해 3년동안 방황하며 사업도 해보고 드라마 제작도 시도해보지만 하나같이 전부 망하고 맙니다.

그러다가 앤서니킴은 일본의 대기업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예전에 자신이 드라마계에서 짓밟았던 이고은 작가(정려원 분)를 찾아가 화해를 하고 100억의 투자를 받아 다시 드라마 제작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앤서니킴이 재기하기 위해 만든 드라마는 극중극 '경성의 아침', 일제시대를 살아가는 한 남자의 치열한 사투와 그를 사랑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느와르 멜로의 새로운 드라마 장르를 개척한 작품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앤서니의 재기를 그냥 두고볼 수는 없는 앤서니킴의 수 많은 적들.... 드라마 경성의 아침의 성공을 방해하는 사람들 속에서 과연 앤서니킴은 다시 성공할 수 있을까요?


- 드라마의 제왕이 재미있는 이유
드라마의 제왕은 시청률이 7.5% 정도로 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드라마의 제왕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제 꿈이 바로 드라마에 나오는 앤서니킴이나 다른 감독들, 드라마 관계자들과 아주 비슷한 업종입니다. 아직 제 장래희망을 정확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방송관련 직종으로 공부를 하고있는 저에게는 아주 도움이 많이 되는 드라마가 바로 드라마의 제왕입니다.

실제로 드라마의 제왕의 연출을 맡고있는 홍성창 감독도 드라마의 제왕에 나오는 드라마 제작현장은 현실과 거의 100% 비슷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드라마의 제왕을 보면서 앞으로 제가 가게 될 방송 관련 직종의 현장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전에서 드라마 제작을 다루는 드라마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 '온에어' 등 극중극을 소재로 제작된 드라마는 많이 있었지만 저는 그 중에서 온에어라는 작품을 보았습니다.

온에어 또한 굉장히 재미있는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온에어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모습을 다루기 보다는 제작사와 제작사와의 갈등, 배우와 작가와의 갈등, 그리고 극중극의 내용에 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이번에 본 드라마의 제왕은 극중극 경성의 아침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앤서니킴이 치열하게 노력하여 드라마를 제작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덕분에 드라마의 제왕 시청자들은 인물간의 갈등을 보며 카타르시스나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장감을 느낄 수는 없지만 실제로 드라마가 제작되는 과정을 세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제왕에도 적당한 러브라인과 시련을 이겨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며 흥미진진하고 속도감있는 이야기 전개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라마의 제왕에 애정이 많이 가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 앤서니킴이 악역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드라마상에서 실질적인 악역은 따로 있지만 앤서니킴 또한 치졸하고 비겁한 방법으로 살아온 나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런 앤서니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드라마의 제왕을 보면서 마치 제가 악역이라도 된 듯 앤서니킴이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벌이는 각종 치졸한 일들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앤서니킴 역을 맡은 김명민의 흡입력있는 연기력이 그 만큼 대단하다는 것이겠죠. 여튼 그렇게 더럽고 치사한 앤서니킴에게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점점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악덕 드라마 제작자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을 배려하고 가족처럼 챙겨주는 따뜻한 대표님으로 변해가는 앤서니킴의 성장 모습도 이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라마상에서 기대되는 러브라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극중극 경성의 아침을 연기하는 두 주연배우 강현민(시원 분)과 성민아(오지은 분)의 러브라인입니다.

러브라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맨날 주연의 자존심 싸움으로 드라마상에서 코믹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두 배우가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특히 촬영을 할 때마다 온갖 유치한 방법을 동원하여 서로를 골탕먹이는 모습은 정말 심술 가득한 애처럼 귀여운 것 같습니다.
 

둘은 서로를 무척 싫어해서 극중극 경성의 아침 멜로씬도 굉장히 꺼려하는 관계지만 여러가지 오해와 사건 때문에 둘은 스캔들이 터지게 됩니다.

둘 사이에 얽혀버린 스캔들에 황당해 하는 둘의 모습은 정말 보는 이의 웃음을 터지게 합니다. 드라마의 제왕은 14회까지 방영되었고 마지막회까지 4회가 남았으니까 앞으로 둘의 관계도 어떻게 될지 기대해 봅니다.



지난주 일요일(12월 16일)에 갑자기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같은 반 친구인 석원이가 갑자기 연락이 안되어서 투표 안내 도우미 사전교육에 못간다는 것이었습니다.


19일에 열리는 대통령 선거 투표 안내 도우미를 하면 돈과 봉사시간을 준다는 말에 석원이가 신청을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석원이가 그 날 사전교육을 하는 줄 모르고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께서 사전교육을 하는 곳과 가까운 곳에 살고있는 저에게 연락을 하여 석원이 대신 가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투표 안내 도우미 사전교육에 석원이 대신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투표 안내도우미 서명을 하게되었고 급료의 절반과 봉사시간 2시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사전교육때만 석원이 대신에 자리를 메꿔줄 생각이었습니다. 결국에는 19일날 선거를 할 때에도 제가 투표 안내 도우미로 참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2월 19일 수요일 저는 태봉고등학교 학생의 이름으로 진동초등학교에 가서 투표 안내 도우미의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 의지로 하게된 것은 아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해보려고 했습니다. 저와 함께 투표 안내 도우미 오후반을 하게 된 친구는 같은 반의 신애였습니다.


저희들의 역할은 투표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투표 번호를 확인하여 안내해 드리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도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진동초등학교가 시골에 있는 학교라 그런지 몸이 불편하신 노인분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투표를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날씨가 굉장히 추워서 나중에는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6시간 동안이나 계속 일어서 있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저희에게 힘이 되는 건 저희들을 칭찬해주시는 어른들이었습니다. 추운날씨에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직 고등학생이라 투표권은 없지만 많은 어른들이 투표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얼른 투표권이 생겨서 투표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20대의 투표율이 엄청 낮았다고 하는데 5년 뒤에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저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이 투표에 참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투표 안내 도우미 일을 끝내고 봉사시간과 급료를 꽤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받은 돈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께 선물을 사드렸습니다.

제가 번 돈으로 부모님께 뭔가를 사드리는 게 처음이라 엄청 새로운 느낌일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게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제 용돈을 주는 것도 부모님이기에...

여튼 이번에 투표 안내 도우미를 했던 경험은 제가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국가에 기여하는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나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영상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것도 이제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태봉고에 들어와서 다짜고짜 방송부 활동을 시작하며 영상을 배우겠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학년이 다 되어가네요.

학교를 다니면서 영상을 참 많이 만들었습니다. 선배들과 함께 시작한 싼TV, 나 혼자서 동아리 홍보를 목적으로 한 죠리퐁 TV까지...

그리고 학교의 각종 행사와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과 선배, 친구, 후배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부탁으로 제작해 준 영상들까지 2년 동안 만든 영상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많고 다양한 영상들을 만들면서 한결같이 느꼈던 게 있습니다. 바로 제가 만드는 영상에 나오는 연기자들의 '연기력' 입니다.

아무래도 아직 학생이다보니 학생들의 연기에는 아직 소울이 없었고 열정도 많이 부족하여 그들의 연기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연출과 연기지도에도 많은 부족함이 있었겠지만 확실히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를 찾는 본능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창 바쁜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촬영에 임해 줄 여유로운 배우를 찾는 것도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영상을 배우는 친구와 올해 마지막으로 영상제에 영상을 하나 내기로 했습니다. 영상의 주제는 '지금 우리의 가슴이 뛴다'였습니다.

-'학교가는 길' 제작기-
저와 친구는 고민 끝에 학생의 가슴을 가장 뛰게 하는 것은 바로 '학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오랜 회의를 거쳐서 등교하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연출하자고 했습니다.

주연 배우를 구하던 중 결국, 영상제 마감일이 얼마남지 않아서 제가 주인공을 맡기로 했습니다. 저와 제 친구가 만드는 영상에 제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것입니다.

제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친구와 제가 직접 기획하고 내용도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가장 이번 작품에 대해 잘 아는 제가 직접 출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영상이 바로 '학교가는 길'입니다. 영상의 내용은 한 고등학생이 아침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 시계를 보는데 학교 등교시간이 8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주인공은 오늘의 등교 지킴이가 아주 무서운 선생님 학주라는 것을 기억해냅니다. 주인공을 화들짝 놀라며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최단루트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각을 하지 않기위해 최고의 속도로 학교까지 달려갑니다. 가는 길에 넘어지기도 하고 담을 넘기도 하며 불량배를 만나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매 순간마다 기지를 발휘에 위기를 모면합니다.

과연 우리의 주인공은 시간 안에 등교를 할 수 있을까요...?



대충 이런 내용의 영상입니다. 매우 유치해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등교라는 소재가 학교에 열정을 가지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등교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학교의 규제와 체벌이 학생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교육적인 모순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영상에 특별 출연해주신 저희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영상의 전체적인 편집과 모든 CG를 만들어준 허윤 친구도 수고 많았습니다.


어제(12월 1일) 오랜만에 부모님과 쇼핑도 하고 영화도 한 편 봤습니다. 부모님과 본 영화는 26년이라는 영화였습니다.

26년이라는 영화는 저희 가족이 모두 평소에 좋아하던 만화가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였습니다. 덕분에 꼭 가족 모두가 함께 보기로 했던 영화였습니다.

저도 역시 만화가 강풀님의 작품을 모두 보았고 또 모든 작품들을 다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26년이라는 만화는 너무 재미있어서 책으로 8번이나 읽었던 작품입니다.

그래서 26년이라는 작품이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바랬고 만화와는 또다른 감동을 기대하며 영화제작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29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제작에 돌입했지만 아쉽게도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영화 제작이 무산되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뒤, 수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26년이라는 영화가 다시 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본 영화가 바로 26년입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전체적인 평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영화는 원작 만화보다는 재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의 내용은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원작부터가 '복수'라는 소재를 사용하면서 보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와 간접적인 통쾌함을 주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강풀의 26년은 단순히 독자들에게 시각적인 쾌락을 주기위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항쟁의 아픔과 고통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을 담은 작품입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영화 제작에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이렇게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오래전에 26년이라는 만화를 보고 제가 26년의 영화화를 맡은 영화감독이라고 상상하면서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 본 적도 많이 있습니다.

그 만큼 저는 26년이라는 작품이 영화화되기를 기다렸고 이번에 개봉한 영화 26년을 보면서 계속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만화가 영화화되다니...

영화 26년의 줄거리는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의 시절을 보여주면서 시작됩니다. 너무나 잔인한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잔인한 과거를 절대 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광주의 수많은 시민들이 폭도라 불리며 군인들의 총칼에 무참히 죽어가고.. 그리고 그 잔혹한 일을 명령한 대한민국의 11대 대통령

영화는 광주민주항쟁 때 죽어나간 희생자들의 자녀들이 당시 대통령 전두환을 암살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영화입니다.

곽진배 역을 맡으신 진구 분의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광주사태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곽진배(진구 분)'는 건달 생활을 하며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김갑세(이경영 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광주 사태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전두환의 자택앞에서 분신자살을 하면서 고아가 된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 분)'은 '김주안(배수진 분)'이라는 사람을 통해 어떤 곳으로 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광주 사태로 누나를 잃은 '권정혁(임슬옹 분)'은 사회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경찰이 되었지만 역시나 권력의 더러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세 인물은 모두 김갑세와 김주안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한 곳에 모이게 됩니다. 김주안을 포함한 이 네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광주 사태 때 가족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김갑세는 광주 사태 때 시민들을 죽였던 계엄군 중 한 명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용서받고 자신에게 총을 들도록 명령한 장본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계획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광주 사태 때 시민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그 사람을 단죄하는 것'그들은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단지 전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보호하는 사람들과 경찰들 영화의 마지막에 경찰들이 곽진배의 패거리들을 몽둥이로 패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26년 전 광주 사태 때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26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도 권력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현실 또다시 아픈 과거가 영화에서 반복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심미진이 그 사람에서 저격총으로 총을 겨누고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끝이 납니다. 만화와 똑같은 결말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과연 죽였는가? 실패했는가? 는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암살의 성공 여부가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닙니다.

영화에 나오는 광주 항쟁 희생자의 유족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고 얼마나 고통받으며 살아왔으며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했던 이유에 집중에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영화를 보며 복수의 진행과정보다는 복수를 해야만하는 이유와 절대로 아픈 과거를 잊지않고 똑같은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전두환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라는 명칭으로 계속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배역을 맡은 분은 영화 도가니로 유명해지신 장광이라는 배우입니다.

장광이라는 배우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영화 도가니에서 악역을 맡은 장광씨를 보면서 '우와 저렇게 진짜 나쁜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더 장광이라는 배우가 '그 사람'이라는 악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화에서는 '그 사람'의 대사가 별로 없었는데 영화에서는 더욱 악역처럼 연출하기 위해서였는지 관객을 화나게 하고 어이없게 만드는 대사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너무 만화 원작에 충실하다보니 비현실적인 요소가 너무 많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총을 겨누고 쏘지는 않고 1~2분 동안 길게 말만 해대고 그러다가 또 총을 맞지를 않나;;;

너무 메세지를 많이 주려다보니 오히려 지루해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결말에서도 제가 만약 주인공이었다면 굳이 총을 사용하지 않고 때려서 죽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에 본 영화 26년은 메세지는 분명했지만 저는 원작 만화에서 느꼈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만화보다 생동감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택시 기사 아저씨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화는 재미로 보는거지, 영화는 영화일뿐이야." 

 

저번주 목요일(11월 22일)은 LTI 인턴십을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역시나 저와 영상을 배우고 있는 허윤 친구와 함께 유프레임에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멘토 선생님께서 오늘은 경남대학교 옆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쪽에 있는 한 장례식장에서 광고 촬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참고로 태봉고등학교와 경남대학교는 매우 가깝습니다.)

저희는 오랜만에 가까운 곳에 LTI를 가게 되어서 여유롭게 인턴십을 갈 수 있었습니다. 마침 그 날부터 버스가 파업한다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별 문제없이 버스를 타고 LTI를 나갔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한 곳은 경남대 옆의 한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저희 멘토 선생님께서는 이미 오셔서 촬영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희들도 얼른 가서 촬영 준비를 도와드렸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장비를 옮기고 정리하고... 어떻게 보면 잡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 하나하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멘토 선생님께서는 LTI 때마다 일을 도와주는 저희들에게 항상 고맙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제 꿈에 대한 의욕이 더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의욕과 자신감을 가지고 LTI 인턴십을 할 때 최선을 다해 멘토 선생님의 촬영을 도와드립니다. 저희들이 일을 실제로 해보는 게 절대로 나쁜 경험은 아니니까요.


이번에는 아까도 말했듯이 장례식장의 광고 촬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TV에서 장례식장 CF를 본 적은 없지만 장례식장도 광고를 한다는 걸 이번에 알게되었습니다. 

우선 장례식을 할 때 관을 싣고 가는 리무진 촬영부터 했습니다. 촬영을 할 때 사용한 장비는 트라이포트(삼각대)와 슬라이더캠 그리고 DSLR 카메라입니다.


먼저 두 개의 트라이포트를 이용해 카메라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슬라이더를 설치합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한치의 떨림도 없이 카메라를 이동시키면서 촬영합니다.
 

카메라에는 화면을 넓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화면에 왜곡을 주는 광각렌즈를 설치합니다. 멘토 선생님은 저희들도 만져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전문적인 장비들에 반한 저희들은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곧 저희들도 방송부 활동을 하며 사용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야외에서 리문진 촬영과 장례식장의 전체적인 모습을 모두 촬영한 후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장례식을 하는 것처럼 연출하기 위해 정장을 입은 네 분을 미리 캐스팅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각자 상주와 방문인 등의 역할을 정하여 촬영에 임했습니다.

멘토 선생님께서는 촬영을 할 때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촛불과 향로 등 작은 물건에도 아주 세세하게 준비하셨습니다.


직접 장례 물품들을 배치하시고 앵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맥주 박스와 스티로폼 등 다양한 주위의 물건들을 이용하셨습니다.


또한 연기자들의 연기를 지도하실 때 감독님은 연기를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직접 시법을 보여주시면서 정확하게 자신이 연출하고 싶은 부분을 표현하십니다. 


정말 그렇게 사소한 것 하나도 쉽게 넘어가지 않고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들이 '진정으로 장인정신이 담긴 전문가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렇게 제가 만드는 영상에 있어서 장인정신을 가지고 대충대충하려 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멘토 선생님을 보며 영상의 꿈을 키운 것처럼 또 다른 학생이 저를 보며 자신을 꿈을 키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 수학 수행평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프로젝트 중에서 선택하여 제출하는 수행평가였는데 저희 조는 영화보기를 선택했습니다.

수학에 관련된 영화를 보고나서 감상문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추천해 준 영화중에서 영화를 골랐습니다.

저희가 선택한 영화는 일본의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용의자 X의 헌신' 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예전부터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계속 보고싶어 하던 영화였는데 마침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나 책을 보시지 않은 분이라면 끝까지 읽는 것을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충격적인 반전이 매력이 영화니까요.

영화의 줄거리는 야스코가 자신의 딸과 함께 자신의 전 남편인 토가시 신지를 죽이게 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전 남편이 끊임없이 가정적인 압박을 가하자 충동적인 살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옆집에 살고있는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테츠야라는 남자가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사실 이시가미는 예전부터 야스코를 몰래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시가미는 자신이 사랑하는 야스코의 살인을 외면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그녀를 도와주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시가미의 도움으로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야스코는 전 남편 토가시 신지의 용의자에서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야스코를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두 명의 경찰들은 한 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를 하고있는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에게 토가시 신지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에 유카와 교수는 자신의 추리대로라면 죽은 토가시 신지의 전 아내인 야스코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지만 분명히 그녀를 도와준 또 한 명의 인물이 더 있을거라 생각하고 야스코의 집으로 가게됩니다.

그러다가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와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가 만나게 됩니다. 사실 그 둘은 대학동기였고 대학 시절에 가장 친한 친구사이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와 함께 술도 마시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다시 친분을 쌓아갑니다. 그리고 유카와는 친구라는 명분으로 계속 이시가미의 행동들을 살펴봅니다.

그러면서 유카와는 점점 야스코가 범인이며 이시가미가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살인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범인인 야스코는 자신의 딸과 영화를 보러갔다는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가고 경찰은 야스코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자 이번에는 이시가미를 점점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시가미 또한 자신이 계획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통해 경찰의 의심을 아주 쉽게 피해갑니다. 하지만 이시가미의 친구 유카와는 자신의 추리를 이용해 이시가미의 알리바이를 점점 풀어갑니다.

그러다가 유카와는 어느날 이시가미가 외모에 신경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카와가 알던 이시가미는 절대로 외모에는 신경쓰지 않고 오직 수학 연구에만 인생을 바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시가미가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분명히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유카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유카와는 이시가미는 자신이 사랑하는 야스코를 분명히 도와줬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경찰의 의심이 심해지고 야스코의 가정에도 피해가 생기는 것을 느낀 이시가미는 결국 경찰에 가서 자신이 토가시 신지를 죽인 범인이라고 자수를 합니다.

사실이었습니다. 이시가미는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이시가미가 죽인 사람은 토가시 신지가 아니었습니다.

이시가미가 죽인 것은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길거리의 노숙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시가미는 그 노숙자를 직접 죽이고 토가시 신지의 흔적을 남겨 토가시 신지가 죽은 것처럼 연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하루 전, 토가시 신지를 죽인 야스코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당일날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간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야스코는 사건이 발생한 날, 실제로 영화를 보러갔었고, 이시가미는 실제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경찰 앞에서 긴장을 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시가미는 야스코의 토가시 신지 살인을 감추고 자신이 직접 다른 사람을 죽여서 토가시 신지인척 하면서 경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끈 것입니다.


이시가미의 이런 완벽한 알리바이는 이시가미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시험에 출제하는 문제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시가미의 수학문제는 대부분 간단한 함정만 알아내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기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함수문제인 것처럼 이시가미의 완벽한 알리바이도 결국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아낸 유카와는 감옥에 수감되기 직전의 이시가미를 찾아갑니다. 자신이 믿었던 친구인 이시가미가 한 여자를 위해 끔찍한 희생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유카와는 화가 납니다.

하지만 이시가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혹시나 자신이 사랑하는 야스코에게 피해가 갈까봐. 자신이 야스코 대신에 살인범이 되어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유카와는 길을 걸으며 이시가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뭐가 더 어려울까?'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풀었다는 말 자체가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유카와는 이시가미의 풀 수 없는 알리바이를 풀어버립니다.

하지만 이시가미는 유카와에게 감옥에 가기 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 문제를 풀어도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아' 끝까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고 싶었던 이시가미의 헌신적인 모습이 부각되는 말이었습니다.


그 때 감옥에 가려고하는 이시가미 앞에 야스코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야스코는 눈물을 흘리며 이시가미에게 고맙다고 합니다.  또한 죄송하다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이시가미와 야스코는 결국 함께 감옥에 가게 됩니다.

좋게 생각하면 이시가미와 야스코가 사이좋게 같이 감옥에 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야스코를 지키기위한 이시가미의 헌신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는 슬픈 엔딩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한 한 수학자의 소름끼치도록 치밀하고 완벽한 계산으로 이루어진 알리바이와 그것을 풀려고 하는 물리학자의 대결, 그게 이 영화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이시가미의 살인 방법입니다. 야스코는 전 남편인 토가시 신지를 죽일 때 밧줄로 목을 졸라 죽입니다.

그런데 이시가미 또한 토가시 신지의 가짜 시신을 만들기 위해 노숙자를 죽일 때 야스코와 같은 방법으로 밧줄로 목을 졸라 노숙자를 살해합니다.

이시가미가 굳이 야스코와 같은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있었을까요? 토가시 신지의 가짜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밧줄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야스코가 진술하는데에 있어서 더 긴장하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나름대로 이시가미의 여러가지 의도가 있었겠지만 결국은 관객이나 독자가 범행수법이 달라진 것을 알면 결말을 미리 예상할까봐 범행수법을 바꾸지 않도록 설정한 것 같습니다.

뭐 어쨌든 그런 점 빼고는 최고의 추리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범인인데도 살인사건의 추리가 불가능한 것이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어쨌든 이시가미가 사용했던 방법처럼 우리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문제를 풀거나 어떤 일을 할 때 잘 풀리지 않는다면 관점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용의자 X의 헌신
감독 니시타니 히로시 (2008 / 일본)
출연 후쿠야마 마사하루,츠츠미 신이치,시바사키 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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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저희 태봉고등학교에 EBS에서 촬영을 하러 왔습니다. EBS가 기획하여 만든 책 중에서 '학교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번 촬영은 그 주제를 가지고 전국의 여러 학교를 촬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학교가 바로 저희 태봉고등학교였습니다.

대안학교라는 이름의 여러 고등학교 중에서 특히 저희 태봉고등학교가 새로 지어진 학교로써 많은 궁금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태봉고등학교를 거의 1학기 내내 촬영했습니다. 학교의 수업부터 교사회의 학생회의 동아리 활동 및 인턴십 활동 등 학교의 거의 모든 모습을 세세하게 촬영했습니다.

수요일마다 거의 항상 오셔서 했는데 확실히 EBS라 그런지 촬영할 때 사용하는 장비가 학교 방송부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저는 가끔씩 EBS 감독님께 말씀을 드리고 EBS에서 사용하는 고가의 카메라를 살짝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뭔가 제 꿈에 더 열정을 가지게 되는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튼 EBS가 기획한 방송 '학교의 고백 10부작' 에서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여주중학교와 비교하여 방송되는 것이었습니다. 

여주중학교는 일반 중학교로 학교의 규제가 심하고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들에게 벌점을 주고 사회 봉사를 시키고 교장실에 불러서 혼을 내거나 성적 등 여러가지로 학생들에게 부담을 많이 주는 학교였습니다.

반면에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대안학교로써 학생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학교였습니다.

태봉고등학교는 거의 대부분 학생들의 주도로 이끌어 나가는 학교입니다. EBS 방송에서도 그런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저희 학교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공동체 회의를 많이 강조했습니다.  공동체 회의는 학생과 교사가 모두 모여 학교의 중대사안을 결정하는 곳이라는 것이 공동체 회의의 핵심이었습니다.
 

EBS팀이 촬영을 할 당시에는 제가 학교 부회장을 맡고 있어서 제가 공동체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 가끔씩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회장이라서 별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방송에 나온 공동체 회의의 안건은 바로 기숙사 생활과 개선방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선생님이 콘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학교의 여러 곳에서 콘돔이 발견되어 학생들의 성문화가 흐트러진다는 발언이었습니다. 그 때 다른 선생님 한 분께서 회의를 촬영하고 있는 EBS팀에게 카메라를 잠시 꺼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 학생들은 모두 하나같이 찍으라고 말합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냐고, 절대로 숨겨야 하는 내용이 아니라며 EBS팀에게 촬영을 계속해 달라고 합니다.


태봉고의 영상을 본 여주중학교와 태봉고등학교, 각 학교의 선생님들이 나와서 서로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희 태봉고등학교에서는 조정희 선생님과 박경화 선생님, 두 분 모두 미술 선생님이셨습니다. 두 선생님은 여주중학교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어떤 학교든 간에 아픔과 상처는 다 가지고 있다고, 태봉고등학교나 여주중학교만이 아픔과 학교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학교라도 그런 아픔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아픔와 상처들을 숨길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무조건 숨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학교의 고백이자 저희 태봉고등학교 선생님들의 고백이었습니다. 너무나 공감되는 이야기였고 정말 저희 태봉고 선생님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선생님들이 멋있게 보였고,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들이 저희들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제가 다니고 있는 태봉고등학교에서 2년째 방송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장래희망 또한 방송쪽의 일이 많기 때문에 방송부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부에서 하는 활동은 주로 학교에서 전체 회의를 할 때 마이크와 빔프로젝터, 음향을 설치하고 각종 행사를 하면서 필요한 방송장비를 설치하는 등의 일을 합니다.

또한 학교 카메라를 이용해 행사나 이동학습을 할 때의 사진과 영상을 기록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제가 영상에 관련된 일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많이 생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전, 저희 방송부에게 엄청난 임무가 맡겨졌습니다. 바로 저희가 다니고 있는 태봉고등학교의 홍보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방송실 내부


원래는 학교 홍보 영상을 제작할 때 학교 측에서 돈을 내고 영상 외주업체에 문의해서 학교 홍보영상을 제작하는데 제가 아직 입학하지 않았던 2년전, 학교 1회때에는 외주업체가 6개월 동안 학교에서 촬영을 하여 홍보영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획기적으로 학생들에게 방송부 자체적으로 홍보 영상 제작을 맡겼습니다. 좀 다르게 생각하면 학교가 무책임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만큼 우리 방송부 학생들을 믿기에 우리들에게 영상 제작을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태봉고등학교 전경


저희 방송부가 영상 외주업체만큼 실력이 있고 영상의 퀄리티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학교의 홍보영상을 학생들이 제작한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고 저희들도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영상에 대해 잘 모르고 부족한 점도 많이 있지만 이렇게 학교를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하다보면 분명히 영상을 하는 실력도 많이 상승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우선 학교 홍보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촬영을 해야하는데, 저희 방송부에게는 약 3주정도 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외주업체는 6개월간 저희 태봉고를 촬영해서 홍보영상을 제작했지만 저희 방송부는 고작 2주라는 시간 안에 홍보 영상을 제작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난 2년간 방송부에서 촬영한 학교의 여러가지 영상을 모아서 편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영상 연습을 한답시고 영상을 꾸준히 찍었던 것이 이런 곳에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촬영해 놓은 영상들로는 학교홍보영상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서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추가 촬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촬영할 때는 학교 캠코더와 방송부장을 맡고있는 허윤 친구의 캠코더를 사용했습니다. 학교와 친구 캠코더 둘 다 SONY라는 유명한 카메라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둘 다 1080p의 Full HD급 영상이 촬영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 없이 홍보영상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작고 간편한 핸디캠이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촬영할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시간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상을 연출해서 촬영해야 했습니다. 기숙사 생활이나 봉사활동 LTI 등,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장 좋겠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빠른 속도로 촬영을 매꿔나갔습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편집에 들어갔습니다. 대부분의 편집은 허윤 친구가 도맡아 했습니다. CG나 자막같은 것 또한 허윤 친구가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편집 부분에서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BGM에 사용할 음악을 고르고 어떤 상황에 어떤 음악을 사용할 것인지도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홍보영상에 사용할 나레이션은 저희 학교의 학생회장이신 홍명지 학생이 직접 해주었습니다. (목소리가 좀 얇아서 잘 안들리는게 함정)

어쨋든 이번에 방송부에서 제작한 태봉고등학교 홍보영상은 많은 학생들의 도움으로 탄생한 영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학교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촬영 현장이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네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이번주 목요일(11월 1일)에도 LTI 인턴십을 나갔습니다. 저와 윤이가 LTI를 가는 유프레임 광고사는 창원에 사무실이 있습니다.


학교는 마산 진동에 있는데 인턴십을 하는 곳은 창원에 있다보니 늘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긴 시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오늘은 또 어떤 것을 배우게 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하루하루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인턴십을 하러 갑니다.

유프레임에 인턴십을 가는 것도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다보니 저희들도 점점 유프레임의 분위기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감독님이 촬영을 나가실 때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짐을 함께 실어드리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차에 몸을 실어 함께 촬영을 하러 나갑니다.


영상 촬영을 하는 일이 굉장히 바쁘고 복잡해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인턴십을 나오는 저희들이 귀찮을 수도 있는데 멘토 선생님께서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저희들이 촬영을 하는 동안 나름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많이 해드리니까요. 학생이 실제 촬영 현장에서 뭘 도와주겠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도와드리는 게 많이 있습니다.

먼저 짐을 옮길 짐꾼이 저와 허윤 친구, 이렇게 두 명이나 늘었습니다. 촬영을 할 때에는 카메라, 조명, 삼각대, 릴선, 각종 촬영 장비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것들을 모두 감독님 혼자서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감독님의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달의 정신으로 각종 촬영 장비들을 옮겨드립니다.

그리고 짐꾼 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도 많이 도와드리는데, 바로 지금까지 들고 온 장비들은 촬영 현장에서 설치하는 일입니다.

릴선과 멀티탭들을 이용하여 전기를 끌어와 조명을 설치하고 현장에서 사용하는 소품들을 각 위치에 놓아드리고 이런식으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일들을 꾸준히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결국 생각해보면 저희가 하는 일들은 결국 잡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그런 허드렛일들이 촬영 시간을 단축시키는데에 큰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저희 멘토 선생님이신 윤종원 감독님께서도 저희들이 인턴십을 나와서 일을 도와줄 때마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번주에는 선거하는 모습을 연출해서 촬영하기 위해 '경상남도 선거관리 위원회' 에 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선거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를 하기 전에 연출을 하여 촬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짐 옮기는 것을 도와드리고, 감독님과 함께 촬영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선거하는 손 모델을 하실 한 분도 함께 갔습니다.

촬영을 하게 될 곳에 들어가서 곧바로 감독님의 지휘 하에 조명을 두 개 설치하고 중간에는 투표함을 놓아두었습니다. 


그 날 촬영할 내용은 투표용지를 들고 투표함까지 걸어가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집어넣는 것까지의 장면이었습니다.  

손 모델이 되신 분은 손톱정리를 간단히 하시고, 바로 촬영에 임했습니다. 투표를 하는 간단한 촬영이었지만 최대한 예쁜 그림을 얻기위해 계속 같은 촬영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한 각도에서만 찍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카메라가 손을 바라보는 구도를 바꾸며 촬영을 했습니다. 다시 촬영하기 위해 투표함에서 투표용지를 꺼내는 걸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몇 번의 촬영 끝에 모든 촬영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갔습니다. 그 날도 역시 감독님은 저희들 덕에 일이 빨리 진행되었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비록 장비를 옯기고 설치하는 잡일이지만 이런 일들을 먼저 배워가며 점점 현장에 익숙해지고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TI를 하며 항상 느끼는 건데 언제나 인턴십을 나오게 되면 그 날은 뭔가 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좋은 가르침을 주시는 멘토 선생님

지난주 목요일(10월 25일)에는 LTI 인턴십 시간에 오랜만에 유프레임 광고 기획사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 동안 중간고사, 지리산 이동학습, 학교 축제, 입시설명회 등 여러가지 행사가 많아서 LTI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속해있는 방송부나 행사부 측에서 학교의 여러가지 행사를 대부분 책임지기 때문에 요즘 너무 바쁜 게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랜만에 아주 여유롭게 인턴십을 나갔습니다. 오랜만에 찾아뵙는 멘토 선생님 윤종원 감독님도 무척 반가웠습니다.

물론 감독님도 오랜만에 저와 윤이를 만나는 거라 반겨주셨습니다. 멘토 선생님께서 저희를 만나실 때마다 항상 '꿈나무들' 이라고 부르십니다.

저희가 감독님께 배우는 입장이고 학생으로써 인턴십을 나와서 나름 꿈을 키워나가기 때문에 꿈나무들이라고 부르는 게 별로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 호칭이 저는 무척 마음에 듭니다.

뭔가 저희를 가르쳐 주시는 멘토 선생님께 꿈나무들이라고 불리면 더 열심히 배우고 싶어지고 선생님께서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윤종원 감독님의 바쁜 책상


그렇게 멘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나면 항상 저희가 LTI를 오기 전에 그 동안 학교에서 제작했던 영상을 감독님께 보여드립니다.

저번에 아버지가 사주신 아이패드를 이용해 보여드리는데, 꽤나 편리한 것 같습니다. 여튼 감독님께서는 저희가 만든 영상을 꼼꼼히 보시고 언제나 많은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이 부분에서는 컷을 더 타이트하게 해서 집중도를 높였으면 좋았을 거 같아', '여기에서 조명을 사용하면 주인공 얼굴이 더 잘 보일꺼야.' 등 절대 어렵지 않게 저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영상 업종은 창의적이고 창작적인 부분이 많이 필요한 직종이기 때문에 많이 바쁘신데도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동네 형처럼 친근하게 다가와주십니다.

실제로 저희가 감독님을 부를 때에도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해서 서로 어색하지도 않고 영상에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시콜콜하고 일상적인 대화도 자주 오가면서 친밀감이 잘 형성됩니다.

덕분에 공짜로 배우는 입장인 저희들도 부담감없이 있을 수 있고 일을 할 때면 더 열심히 도와드리고 싶은 열정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것 말고도 평소에 영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정말 감독님의 말 하나 하나가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중요한 이야기 같습니다.

항상 좋은 가르침을 주시는 감독님


아무래도 현장에서 직접 일하시는 분이시다보니 그 동안 일을 해오면서 생긴 노하우라든가 경험을 바탕으로 해주시는 말들이 정말 큰 가르침들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학교에서 영상 활동을 하면서 모르는 것들이나 영상 장비에 관해서 질문하면 언제나처럼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며 저희의 궁금증을 풀어주십니다. 또한 학교에서도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가 연락을 해서 물어보라고도 하십니다.

저희는 그런 감독님에게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저희에게 가르침을 많이 주시지만 이렇게 실질적으로 학생이 배우고 싶은 부분을 가르쳐주시는 멘토 선생님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식으로 학생이 꿈꾸는 일에 관하여 도움을 주시고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멘토 선생님들에 대한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과 저희처럼 자신의 꿈에 관련된 일을 배울 수 있는 LTI 인터십의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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