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광해 : 왕이 된 남자' 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이병헌이 나오는 영화라 매우 기대하고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게다가 이병헌이 사극에 등장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 더욱 기대가 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병헌은 항상 현대적이고 복수를 하는 역할만 맡아왔기 때문에 사극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한 편으로는 이병헌이 사극에 어울리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그 걱정은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병헌의 연기력은 사극에서도 역시 통하였습니다. 호소력 짙은 이병헌의 강한 남성미를 뽐내는 왕 연기는 그야말로 소름끼치도록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정치라는 주제가 사극 영화에서 조금은 지루한 주제가 될 수도 있는데 지루함은 전혀 없고 오히려 이병헌의 진짜 왕처럼 강인하고 때로는 동네 아저씨처럼 포근한 모습이 반복되며 잠깐이라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병헌의 코믹연기 때문에 정말 쉴 틈도 없이 웃었습니다. 원래 이병헌이 가지고 있던 강한 이미지를 완전히 깨고 약간은 바보같으면서도 어리숙한 연기가 웃음코드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뭔가 약간 비현실적일 수도 있습니다. 광해군 8년,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정치 세력의 당쟁으로 조선은 왜란 직후 큰 혼란을 맞이합니다.

왕이 되어선 안 되는 남자, 조선의 왕이 되다!
광해군(이병헌 분)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지고 자신의 측근인 허균(류승룡)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아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다가 허균은 기방에서 걸쭉한 만담과 재치있는 말솜씨로 인기를 끌고있던 하선(이병헌 분)을 발견하게 되고 왕과 똑같은 외모에 자신이 가진 재주와 말솜씨로 왕의 흉내도 완벽하게 해내는 하선의 왕이 찾던 대역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선은 영문도 모른채 궁에 끌려와 왕의 옷을 입고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 왕의 대역을 하게 되는데 돈을 두둑히 챙겨준다는 말에 못이기는 척 제안을 받아드리고 계속 왕노릇을 하게됩니다.


하선은 왕의 대역을 하기 시작하면서 허균의 지시대로 왕의 말투부터 걸음걸이, 국정을 다스리는 법까지 '궁은 사방에 눈과 귀가 열려있는 곳' 이라는 말 때문에 위험천만한 생활을 보냅니다.

저잣거리의 천한 만담꾼에서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이 되어버린 하선은 점점 궁의 규정과 왕의 측근들, 권력의 구조까지 알아가게 되고. 

나중에는 권력의 부패와 법의 한계를 느끼면서 하선은 더이상 왕의 대역이 아니라 진짜 왕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하들은 에전에 난폭했던 광해와는 달리 따뜻함과 배려심깊은 모습으로 바뀐 왕에게 인간미를 느끼고 궁정을 조금씩 술렁이면서 점점 진짜 왕처럼 변해가는 하선의 모습에 허균을 당황하기도 합니다.

대충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실 천한 신분의 사람이 왕이 되어 나라를 변화시킨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예전부터 '왕자와 거지' 라는 동화처럼 많이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본 영화 광해는 정치적인 문제에 중심을 잡고 천한 신분의 하선이라는 인물이 왕과 닮았다는 이유로 왕이 되어 정치적인 문제를 바로잡고 권력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모습이 큰 감동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광해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정말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사극 드라마 영화를 모두 통틀어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만큼 영화 광해는 저에게 큰 충격과 그 만큼의 재미를 충분히 안겨 준 영화입니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영화관에 친구와 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정말 광해는 영화관에서 몇 번을 다시봐도 돈이 아깝지 않을만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그 만큼의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훈이 있었으니까요.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진짜 왕이 정치를 했을 때에는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정치적인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백성들은 점점 힘들어지지만 하선이 왕의 대역을 하는 15일동안은 오히려 진짜 왕보다 바른 말을 하고 자신이 백성의 입장을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백성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면서 정치를 합니다.


가짜 왕이 진짜 왕보다 더 임금다운 모습을 보인다는 게 저는 너무나 씁쓸합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렇다면 과연 누가 왕이 되어야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요?

백성을 진정으로 생각하면서 금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치고 외세에 굴복하지 않았던 조선 왕조 유일한 왕 광해, 그는 영화상에서 천한 백성으로 나옵니다.

영화제작사 측에서는 왕의 모습을 똑같이 닮은 대역, 두 명의 왕이라는 설정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픽션이라고 했습니다.

조선 왕조에서 폭군이었지만 백성을 생각하면서 호패법 같은 법안을 만들고 완벽한 외교 정책을 펼쳤던 광해군의 이중적인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광해군이 즉위해있던 시대에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아주 영리한 왕이라고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군' 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봐서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던 왕이었던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영화에서처럼 암살 위협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까요.

게다가 광해군은 자신의 측근들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인해 왕위에서 강제로 내려오기도 했답니다. 영화에서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던 광해군, 그는 실제로 어떤 왕이었을까요?

광해, 왕이 된 남자
감독 추창민 (2012 / 한국)
출연 이병헌,류승룡,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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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태봉고등학교는 1년에 한 번씩 지리산으로 이동학습을 갑니다. 작년에도 1학년으로 2학년 선배들과 함께 지리산을 갔었지만 이번에는 제가 2학년이 되어 지리산에 갔습니다.

게다가 지리산 대피소의 자리가 부족해서 몇 명만 제외하고는 3학년들은 지리산 이동학습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 2학년과 1학년들만 지리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후배가 아니라 선배로써 후배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물론 지리산을 가는 각 조마다 담당 선생님이 동행하지만 선배의 역할은 다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작년에 학교에서 지리산을 갈 때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서 지리산 능선을 쭉 돌아 천왕봉까지 갔다가 중산리로 내려오는 최상코스 종주를 했습니다.

친구가 찍은 지리산 풍경들


역시나 최상코스로 지리산을 갔다오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간단하게 지리산 경치도 구경하고 여유롭게 난이도 중코스 정도를 다녀올까 생각을 하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 코스를 고민하던 중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1학년 후배들 몇 명이서 지리산 같은 조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후배들의 요청을 수락하였고 그들과 같은 조가 되어 지리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배들이 선택한 지리산 코스는 제가 작년에 가서 엄청나게 고생했던 최상 난이도의 화엄사 코스였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지리산 최상코스를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작년에 가본 코스라 부담이 덜 하기는 했지만 이미 가본 코스이기 때문에 더 걱정되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선배의 입장으로 후배들도 챙겨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여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이왕 최상코스를 가게 되었으니 더 열심히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가는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짐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저희 조의 선생님까지 합쳐 총 7명에게 3만원씩 거두어서 장을 보고 산에서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등산에 필요한 초콜릿과 사탕 등의 간식도 챙겼습니다.

확실히 작년에 이미 지리산을 가 본 경험이 있었기에 준비하기가 훨씬 수월했고 더 철저히 필요한 것을 잘 분배하여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전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름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드디어 지리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조는 첫 날 점심밥을 등산을 하는 중간에 쉬면서 간단하게 김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직접 김밥을 한 손에 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을 오르는데 한 손에 짐이 있으니까 무척 불편하기는 했지만 우리조를 위해 전혀 귀찮아 하지 않고 꿋꿋하게 올라갔습니다.

한 반쯤 올라가니 같은 조의 친구가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앉아서 김밥을 미리 먹지 않고 뒤에 오고있는 같은 조의 멤버들을 기다렸습니다.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뒤에 오는 같은 조원들을 놔두고 먼저 김밥을 먹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화엄사 코스의 첫 날은 길이가 짧아서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에 조원들을 기다려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도 조원들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습은 아쉽게도 둘 쨋날부터는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둘 쨋날부터는 정말 지리산 최상코스의 면모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엄청난 길이를 자랑합니다. 둘 쨋날은 노고단 대피소에서 출발하여 세석대피소까지 약22km 엄청난 산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첫 날처럼 같은 조를 기다리다가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괜히 기다렸다가 야간산행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는 무엇보다도 안전과 함께 가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역시나 점심을 먹기로 한 연하천 대피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원이 오면 바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저와 친구는 미리 점심을 먹고 기다렸습니다. 잠시후 나머지 조원들이 도착했고 저는 점심으로 먹을 라면을 준비해 놓고 다시 세석대피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둘 쨋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세석대피소에 도착해서도 역시 점심 때처럼 먼저 도착한 저와 친구가 먼저 저녁밥을 먹고 나머지 조원들이 먹을 밥을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다른 조들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나머지 조원들이 오면 함께 밥을 먹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지만 저희 조는 먼저 도착한 조원들이 나머지 조원들이 오자마자 편하게 밥을 먹게 하기 위해 미리 요리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행히 힘이 제일 많이 남아돌았던 제가 밥을 하고 스팸을 굽는 등 대부분의 요리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나머지 조원들이 도착을 하였고 제가 해준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조원들을 무척이나 고마워했습니다. 딱히 고마워하기를 바라면서 저녁밥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에게 고맙다고 말해주는 조원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뿌듯했습니다.


작년에 지리산에서 저희들을 챙겨주었던 선배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선배의 역할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하면서 후배들을 챙겨주는 것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 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조원들을 보면서 제 마음도 따뜻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지리산을 다녀오면서 지리산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후배를 대하는 선배로써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서 조금 더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선배라는 존재는 후배가 힘들어 할 때 따끔하게 충고할 게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학교에서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고 제가 평소에 후배들을 대하는 모습에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편하고 자신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아 줄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번에 봤던 책 중에서 '습지생태보고서' 라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은 제가 학교에서 활동하는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읽은 책입니다.

그 책은 만화책임에도 꽤 어렵고 진지한 내용을 담고있는 책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습지'란, 축축하고 습한 곳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가난을 상징합니다.

책에서는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반지하 단칸 자취방'을 뜻한다고 합니다. 습지는 아마 가난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습지를 살아가는 그들, 또는 우리들의 삶은 조금은 비판적으로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한 편으로는 웃기거나 재미있기도 한 모습들이 담긴 책입니다.

책은 만화라서 그런지 재미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화책을 읽는거라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역시나 그림이 함께 있어서 그런지 내용 이해도 빠르고 쉽게 쉽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내용은 아까도 말했듯이 가난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반지하 단칸 자취방에서 살아가며 대학등록비를 내기위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들입니다.

비록 만화라지만 너무 현실적이고 삶의 애환이 담긴 내용이라 보는 내내 가슴이 씁쓸했습니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생들입니다.

책의 내용처럼 실제로도 가난에 허덕이며 점점 올라가기만 하는 대학등록비를 위해 위태롭게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 그들을 보면 생각이 참 많아집니다.

절대 웃을 수 없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있지만 작가는 그런 가난한 삶을 재미있게 풍자하며 독자들을 위한 웃음코드를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웃기지만 슬픈 현실, 이런 것을 다루는 책이 바로 최규석 만화가의 '습지생태보고서'라는 책을 보는 묘미인 것 같습니다.


책은 지방사립대학생 4인방과 사슴 한마리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전개됩니다. 책에 나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한 편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공 4인방이 자신들의 자취방으로 길거리에 떠돌던 사슴(만화상에서 이름은 녹용이) 한마리를 군식구로 맞이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슴 녹용이는 설정상 말을 하고 인간처럼 생활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슴이었는데 여러 에피소드 틈틈히 주인공 4인방에게 충고를 해주고 사회생활이 힘들 때 상담을 해주는 역할이었습니다.

때로는 엉뚱하게 자신의 뿔을 잘라 팔아서 번 돈으로 여자들을 끼고 노래방을 가는 등의 행동을 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이지만 녹용이는 이 만화에서 제일 매력있는 캐릭터라고 생각이 드는 녀석입니다.

그런 녹용이를 새식구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고 생활비도 많이 든다는 이유로 주인공 4인방은 돈이 좀 있는 다른 친구에게 녹용이를 보내기로 합니다.

확실히 녹용이는 건방지고 성격도 않좋고 밥도 많이 먹어서, 키우기 힘든 사슴으로 등장합니다. 그런 녹용이를 돈 많고 시간 많은 부자 친구에게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때 그런 주인공 4인방에게 녹용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시련은 부자에게 가지 않아." 정말 잊을 수가 없는 대사였습니다.

뭔가 당연하면서도 인정할 수 없는 그 말, 확실히 시련은 왠만해선 돈많은 부자들에게는 가지 않습니다. 시련을 겪는 것은 항상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이죠.

녹용이의 말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만 시련을 겪는 사회적인 모순을 비판하려고 한 작가의 의도가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힘차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힘든 현실을 이겨내는 멋진 모습에 많이 감동했던 것 같습니다.

가난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가난을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그들의 이야기는 진정으로 멋지게 살아가려는 우리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 많이 되었고 한 편으로는 걱정도 많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책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고등학생들이 몇 년만 있으면 실제로 겪게 될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조금만 있으면 대학준비를 할 것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 대학을 가게됩니다. 그리고 습지생태보고서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등록비를 갚으며 힘들 게 살아갈 이들이 있겠죠.

조금만 있으면 벌어질 일인 것을 알면서도 해결할 수가 없는 현실, 이 책을 보면서 그 현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원작으로 KBS에서 드라마 스페셜을 한 편 제작했는데 그 드라마도 한 번 보고싶습니다. 다음에는 드라마 스페셜 - 습지생태보고서를 보고나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습지생태보고서
카테고리 만화 > 웹툰/카툰에세이
지은이 최규석 (거북이북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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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가지고 있던 영화 중에서 '프로메테우스'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마침 프로메테우스라는 영화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얼른 아이패드에 넣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영화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예전에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 등의 영화를 만들어 SF영화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외계인 영화의 틀을 확 바꾸어 '인류의 기원' 을 찾아간다는 독창적인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프로메테우스라는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의 '프로메테우스'는 무슨 뜻일까요?

- 프로메테우스란?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입니다. 신들과 타이탄족이 전쟁을 할 때, 제우스가 승리할 것을 예상했던 '프로메테우스(먼저 생각하는 사람)'는 제우스 편에 서서 제우스의 총명을 받습니다.

신들의 왕 자리를 차지한 제우스는 신들만 있는 세상이 지겨워서 다른 생명체도 만들어달라고 프로메테우스에게 명령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호랑이와 독수리 등의 동물들과 인간을 창조하게 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호랑이에게 발톱을 주고, 독수리에게는 날 수 있는 날개를 주는 등, 동물들에게는 줄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특별히 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서 인간들에게 나눠주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큰 벌을 내립니다.


그렇지만 인간을 사랑했던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불을 얻은 인간들은 불을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잘 생존해 오면서 살고있다는 것이 신화의 포인트입니다.


-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내용
인류의 기원을 밝힌다는 주제를 가진 영화이지만 역시 에일리언을 만들었던 영향인지 프로메테우스 영화에도 외계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지구의 여러 동굴에서 같은 배열의 행성이 그려진 벽화를 발견하고 인류의 기원을 찾기로 한 엘리자베스 쇼 박사와 그의 연인이자 고고학자인 찰리 할러웨이는 프로메테우스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 여행을 떠납니다.

우주선 프로메테우스 호


그들은 인류의 탄생이 외계인(영화상에서는 '엔지니어'라고 부른다.)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하여 2년 동안의 우주여행으로 어느 행성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행성에서 어떤 인공적인 건물을 발견하게 되고, 사람들은 인류를 창조한 외계인을 찾기위해 조사를 하면서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찾은 것은 외계인들의 수많은 시체들 뿐, 인류의 기원을 찾을 방법은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징그러운 외계 생명체의 공격을 받기도 하면서 여느 영화처럼 고난을 겪습니다.

나중에는 여주인공 쇼 박사의 연인이자 고고학자 찰리 박사가 그 행성의 건물에 있던 어떤 유기체 감염되어 죽게 됩니다.

그와 성관계를 가졌던 쇼 박사는 비정상적인 임신을 하게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그 생명체를 제왕절개로 뱃속에서 꺼내버립니다. 그녀의 뱃속에서 나온 생명체는 문어처럼 생긴 징그러운 외계생명체 같았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갔던 건물의 정체는 인간을 창조했던 외계인들이 다시 인간들을 파괴하기 위해 지구로 가고 있던 우주 전함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을 자신들이 타고 온 프로메테우스 호를 이용해 외계인들의 우주전함을 부셔버립니다. 하지만 외계인(엔지니어)의 유일한 생존자가 우주전함에서 빠져나와 쇼 박사를 위협합니다.


하지만 쇼 박사가 임신했던 그 문어같이 생긴 외계생명체가 다시 나와서 외계인(엔지니어)을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쇼 박사는 외계인들의 우주선 조종법을 알고있는 데이빗을 데리고 다른 우주선을 찾아떠납니다.

한 편, 문어 외계생명체에게 잡아먹힌 외계인(엔지니어)의 시체에서 에일리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에일리언 같이 생긴 괴상한 생명체가 기어 나옵니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 그들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질문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외계인(엔지니어) 한 명이 우주선에서 지구로 내려와 어떤 액체를 마시고, 온 몸의 세포가 파괴되면서 바다에 빠집니다.

그리고 외계인의 부서진 세포가 바닷속에서 다시 합쳐지며 인간의 DNA가 만들어지고, 적혈구가 형성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영화 중간에 외계인과 인간의 DNA가 일치한다는 내용도 언급이 됩니다. 

이런 부분들을 조합해 볼 때,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엔지니어)들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죠. 그 외계인들은 왜 인간을 창조했을까요? 그들이 우리 인류의 기원이자 창조주라면 분명히 우리를 창조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영화 중간에 데이빗이라는 인조인간이 찰리 박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들은 왜 나를 만들었을까요?' 그러자 찰리 박사가 대답합니다.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든 거지.' 과연 인간을 만든 창조주가 우리를 만든 이유도 저렇게 시시하다면 우리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 인간들이 인조인간을 만든 것처럼 외계인이 우리 인간을 만든 이유가 단순히 '그냥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만들었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요?

저는 인류가 창조된 이유를 알고싶어서 영화를 기대하며 봤지만 끝까지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 중간 중간에 그 해답이 숨어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아마도 감독이 영화의 다음 편에서 공개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 창조한 인간을 다시 파괴하려는 이유는? 
영화에서 인간을 만든 외계인들이 다시 인간들을 파괴하려 한다는 내용이 분명히 언급됩니다. 자신들이 창조한 인류를 다시 파괴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도 역시 영화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속편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류의 탄생 이유과 기원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담기에는 영화의 2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되지는 않나요?

저는 오히려 이번에 본 프로메테우스의 1편에서 모든 결말이 밝혀지지 않을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기원이라는 주제는 좀 더 오랜 시간 다뤄져야 할 논쟁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다행히 3부작이라고 하니까 앞으로의 내용을 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부작을 모두 보면 인류의 기원을 포함한 저의 궁금증을 모두 해결할 수 있겠죠.



- 결말에 대한 짧은 생각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에일리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에일리언 영화의 프리퀄 속편이다' '인류의 기원은 결국 에일리언이다' 등의 얘기가 많은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프로메테우스 마지막 장면에 나온 에일리언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주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속편에서 그 에일리언이 나와 스토리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 에일리언과 인류 창조의 이유를 연관짓는 것을 좀 터무니 없는 것 같습니다.

뭐 그런 것들도 프로메테우스 2편, 3편이 나온다면 모두 밝혀지겠죠. 1편은 너무나 궁금증을 많이 남기고 끝났으니까 이 영화의 속편을 기대해 봅니다.
 


프로메테우스
감독 리들리 스콧 (2012 / 미국)
출연 누미 라파스,마이클 패스벤더,샤를리즈 테론,로건 마샬 그린,가이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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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학교에 아는 형이 추천해 준 책인데 '축하해' 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그 책이 없어서 근처에 있는 합포도서관에 가서 빌려 본 책이었습니다.

책은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에게 허가를 구하고 인터뷰 등을 통해 만들어진 책이었습니다.

성매매를 실제로 했었던 여성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세세하고 실감나는 내용을 기대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알고있던 성매매, 소위말하는 창녀가 실제로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강제적인 일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 성매매는 어떻게 해서 시작될까?
책에 따르면 성매매를 하는 여성중에서 거의 대부분은 강제로 그 일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성매매, 그러니까 몸을 파는 걸 원해서 하는 여성을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은 빚을 갚지 못해서 그 집단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계속 성매매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빚을 다 갚으면 괜찮을까요?

아닙니다. 빚을 절대로 갚을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 성매매 여성이 몸을 팔고 다음 손님을 위해 몸을 씻고 수건과 샴푸 등을 사용하면 그게 다 빚으로 쌓입니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밥을 먹으러 나갈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성매매 업소에서 밥을 먹는데 그것도 역시 새로운 빚으로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성매매 일을 하다가 성병에 걸리다가 감기 등 각종 병으로 치료나 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그 병원비는 고스란히 그 성매매 여성의 빚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성매매 업소의 사장 또는 관계자들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자유를 줄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빚을 쌓이게 해서 계속 성매매 일을 시키며 그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망치면 되지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도망을 쳐봤자 빚이 있고 어디에 있어서 청구서는 날아오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설령 일을 무척 열심히 해서 빚을 다 갚더라도 성매매 업소에서 몇 년 동안 일했던 여성들이 무슨 기술이 있겠습니까?

빚을 다 갚아서 성매매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그것말고는 없기에 다시 성매매 업소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아직 제 주위에는 그런 여성들을 본 적이 없지만 이미 상당수의 여성들이 강제로 성매매 업소에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 이미 버린 몸이라고?
책에 나오는 몇 몇 주인공들은 고등학교 때 성폭행을 당한 다음 성매매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학생들도 자신이 원해서 성매매 업소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책의 경험담에 의하면 성매매 업소 관계자들이 한 학생을 성폭행하고 하는 말이 "이미 버린 몸, 성매매 일이라도 하자."라고 한답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한 여성의 아름다운 성을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이미 버린 몸이라니요.

정말 대한민국 무서운 나라라는 것이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집니다. 뉴스에 나오는 흉악 범죄자들만 나쁜 게 아닙니다.

성매매 업소에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이나 평범한 여성들을 끌어들여서 거의 노예 대하다 시피 이용해 먹다가 나중에는 사회적 약자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 그들 또한 흉악범이라고 생각합니다.


- 몸은 팔 수 있는 것인가?
'왜 남자는 떠들고 여자는 숨길까?'  책에서 나왔던 말입니다. 성매매에 대해서 왜 남자는 당당하게 떠들 수 있고, 여자는 부끄러워며 숨겨야만 할까요? 

보통 남자들은 여자 끼고 술마셨다는 것을 대단하다는 듯이 자랑하고 다닙니다. 하지만 그 때 남자가 끼고 놀여자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물론 그런 일을 즐기는 여성도 있겠지만 보통 여성이라면 그런 일을 대단하다고 여기며 자랑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끄러워서 숨기는 게 당연합니다.

그건 우리들의 시선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를 사서 성매매 한 것보다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성매매로 판 일을 더 비난합니다.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그렇다면 성매매는 나쁜 일이라는 것인데 성매매가 나쁜 것이라면 왜 여자의 몸을 사는 남자는 떳떳하고 몸을 파는 여성들은 숨길까요?

성매매가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면 몸을 산 것도, 몸을 판 것도 모두 비난받을 일인데, 왜 여자의 몸을 산 남자보다 자신의 몸을 판 여성들이 더 비난받는 것일까요? 

그리고 책을 읽으며 공감갔던 부분이 더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평소에 쉽게 쉽게 던지는 농담 중에서 '빌린 돈 못갚으면 몸이라도 팔아서 갚아'

'몸이라도 팔아라' '내가 여자라면 몸이라도 팔겠다' 이런 말들이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말을 듣고 화가 났던 책 속의 한 여성은 책을 통해 이런 말을 합니다.

'몸이라는 것을 함부로 팔 수 있는 것인가? 몸은 팔면 안되고, 몸을 팔 수 없도록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 맞는 말입니다.

몸이라는 것을 결코 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면 몸이라도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몸을 팔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을 모두 하나같이 말합니다. 이제는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 감상평
성매매는 아직도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제로 몸을 파는 여성들을 그리고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사는 남성들...

저는 몸을 파는 사람은 무조건 여성이고, 성매매로 몸을 사는 사람은 무조건 남성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축하해라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행히도 법이 많이 바뀌어 성매매를 하며 생긴 빚은 빚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재판을 통해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사회적인 자유를 많이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성매매 관계자 분들이 있다면 성매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성매매는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그리고 많은 성매매 여성들(또는 남성들)이 상담소 또는 인권 단체, 여성 단체를 통해 성매매 업소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자유를 누리고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축하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박금선 (샨티,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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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윤리 과목 시간에 수행평가로 '사회 문제에 대한 영화를 감상하고 보고서 작성하기'를 하고 있습니다. 각 모둠마다 선생님께서 주시는 영화를 봐야 하는 특이한 평가였습니다.

저희 모둠은 '부당거래'라는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부당거래는 2010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로 제가 좋아하는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등 연기파 배우가 많이 나오는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법을 수호한다는 이름으로 수많은 조작과 더러운 돈이 오가는 사회 모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 줄거리
영화를 줄거리는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아동 성폭행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은 계속 범인 검거에 실패를 하다가 유력한 용의자가 수사 도중에 경찰의 실수로 사망하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결국 경찰청은 최후의 카드를 꺼냅니다. '범인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경찰청은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깔끔하게 종결시키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조용히 처리해 줄 사람으로 지목된 사람은 바로 광역수사대의 에이스 최철기(황정민 분) 형사, 최철기 형사는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승진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승진을 보장해주겠다는 경찰국장의 조건을 받아드리고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에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영화의 제목처럼 '부당거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철기 형사는 가짜 범인을 만들기위해 조폭이 운영하는 건설회사 해동건설의 이사인 장석구(유해진 분)에게 찾아갑니다.


최철기 형사는 장석구에게 해동건설의 뒤를 봐주겠다는 조건으로 온국민, 그리고 대통령까지 주목하고 있는 아동 성폭행 살인사건의 범인을 연기할 배우를 구하라고 합니다.
 


장석구는 조폭으로서 간단한 일을 하나 해주고 자기 회사의 뒤를 봐줄 경찰이 생긴다는 생각에 조건을 받아드립니다. 이게 바로 두 번째 '부당거래'입니다.

최철기는 성폭행 전과가 있지만 마음잡고 딸과 병이 있는 아내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동석(우돈기 분)을 가짜범인으로 선택합니다.

가짜범인이 될 적당한 배우를 찾고있는 최철기 형사


장석구는 최철기 형사의 말대로 가짜범인이 될 이동석을 잡아서 협박을 합니다. 하지만 협박으로는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서 돈은 충분히 챙겨주고 정신이상자가 되면 바로 풀려날 수 있다는 등의 거짓말로 이동석을 설득시킵니다.

설득을 마치고 장석구는 이동석에게 말 한마디를 던집니다. '너, 오늘부터 범인해라' 듣자마자 섬뜩해지는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내용을 한 번에 말해주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돈도 많고 빽도 많은 주양(류승범 분)검사가 등장합니다. 주양 검사는 어찌어찌하다가 최철기 형사 뒤를 캐기시작하고 나중에는 경찰에서 있었던 부당거래와 가짜 범인에 대해서도 알게됩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계속 그려지는 최철기 형사와 주양 검사의 대결 구도


이런식으로 부당거래는 꼬이고 꼬여서 사건은 복잡하게 흘러가게 됩니다. 특히 최철기 형사는 일이 꼬일수록 점점 악의 본성이 드러나면서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과 자신의 동료까지 죽이면서 승진 배지를 달게됩니다.
 



- 감상평
영화의 결말은 반전이 조금 있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거나 망합니다.

하지만 주양 검사(류승범)은 아무런 피해없이 원래대로 잘먹고 잘삽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양 검사가 자신의 뒤를 봐주는 장인어른과 함께 대화를 하며 걸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매우 씁쓸했습니다. 아무리 사리사욕을 채우고 나쁜 짓을 많이 해도 결국에는 있는 놈이 살아남는다는 메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지루한 면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서 봤던 장면을 또 보고, 또 보고를 반복한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운만큼 치밀하게 구성된 영화였고 나름대로 배울 것이 많은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격투 장면을 너무 길게 끌어서 유치하거나 스토리의 흐름을 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많이 있습니다. 먼저 최철기 형사가 해동 건설 장석구에게 가짜 범인을 만들라고 시킬 때 최철기가 장석구한테 했던 말입니다.
 


'니네같이 법 안 지키는 새끼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아.'


이 대사를 듣고 한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먹고 잘 산다면 법은 왜 필요한거지?'

쉽게 생각해본다면 권력있는 사람들이 뇌물을 받는 것은 불법이지만 법을 어기고 뇌물을 받으면 돈이 많아져서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산다고 영화에서 말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법적인 행위들을 못하도록 찾고, 막는 사람들이 바로 경찰, 검찰 또는 정부라고 알고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부당거래 영화를 보고나서 또 한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법을 수호하는 그들이 올바르게 법을 수행하고 있을까?'

만약 영화에서처럼 경찰이나 검찰이 법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더 나쁜 비리를 저지르고, 말그대로 부당거래를 통해 조작을 벌이고 있다면 우리는 엉망진창의 사회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당연히 부정해야하고 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부당거래 영화에서처럼 대국민을 상대로 연극을 하고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주양 검사가 '경찰쪽이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기에 수사를 함부로 못하겠다'고 하던 수사관에게 했던 말인데 계속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은 그것을 점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다가 제공하지 않았는데 노숙자들이 데모를 일으킨 사건이 있습니다.

노숙자들에게 공짜로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권리는 없는데 호의로 밥을 나눠주니까 노숙자들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드리고 자신들은 공짜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잘해주면 점점 기어오르면서 잘해주는 것이 권리라고 착각하며 호의가 없어지면 화가나는 아주 이상한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평소에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학교의 한 후배한테 잘해주기 시작하면 그 후배는 점점 막나가면서 기어오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끔은 남한테 잘해주는게 싫어지기도 합니다. 돌아오는게 없으니까요. 남이 호의를 베풀면 고마워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영화에서는 호의에 대해 고마워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남이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면 의심부터 시작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권리라고 착각하며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여러면에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인 모순을 많이 비판하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부당거래
감독 류승완 (2010 / 한국)
출연 황정민,류승범,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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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학교에는 연극 동아리 '끼모아' 각자의 끼를 모아 발산한다는 뜻의 끼모아는 태봉고등학교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열심히 활동하는 동아리 중 하나입니다.

연극부 학생들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연극 연습을 하며 대회가 얼마남지 않았을 때에는 거의 하루종일 연습을 하며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연극부 학생들은 저번에 경남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전국 연극제에 나가서 우수상을 받아왔습니다. 순위로 따진다면 전국에서 5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연극부 학생들은 연극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연극부 끼모아에서 영상 및 사진 촬영을 맡고있습니다. 저는 연극부 회원도 아니고 귀찮은 일인데 제가 연극부 촬영을 왜 했을까요?


- 연극부 촬영에 간 이유
연극부와 함께 있으면 배우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 제작의 꿈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는 연극이라는 매체가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 감독으로써의 연출 실력이 성장하려면 연극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연극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저에게 도움이 되고 중요한 일이라도 제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일하겠다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의 연극을 보면서 느끼는 게 있을 것이고, 연극부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 연극 공연을 했던 현장 아트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배우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귀차니즘을 이겨내어 연극부 촬영이라는 임무를 맡고, 또는 촬영이라는 명목으로 끼모아의 개천 연극제에 동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학생들이 준비하는 연극
연극부는 연극 활동의 대부분을 학생들 스스로 해결합니다. 기본적으로 연극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고 가르쳐주시는 것은 선생님들의 몫이지만 나머지의 일들은 학생들의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연극의 연출은 물론, 무대 조명, 음향부터 무대 설치와 분장까지 선생님들의 도움을 통해 모두 학생들이 해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학교의 연극부 끼모아의 연극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생들이 직접 만든 연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학교의 연극부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강압적인 지도아래 하기도 싫은 연기와 스태프 일을 하면서 꾸역꾸역 상을 타는 것보다 연극을 재미있어하며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상이 더 갚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의 자율적인 끼가 펼쳐지고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자율적인 환경이 대안학교의 특징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성교육' 을 다룬 작품 '있는 그대로'
연극부 끼모아가 이번에 만든 작품은 유명한 여성 희곡작가이신 엄인희라는 분의 '성교육' 을 주제로 한 '있는 그대로' 라는 뮤지컬입니다.

보통 학생들이 하는 연극에 '성' 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무대가 오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나라에 미성년자 학생들은 성에 대해 가까이하면 안되고 함부로 가까이하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봉고등학교의 끼모아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당당하게 성이라는 주제로 연극에 도전했습니다. 학생이기에 더 성에 대해 잘 알아야하고 더 많이 배워야한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학생들이 성에 가까이 하는 것을 계속 막고, 학생들에게 성에 대해 계속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학생들은 오히려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렇게 되면 성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여 결국 음란물에 접근하게 되고 심한 경우 성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나쁜길로 빠져버립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연극부 담당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을 다룬 희곡 '있는 그대로' 라는 작품을 선택하셨습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작품은 고등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는 성을 다룬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8명의 악동 친구들, 그 학생들은 모두 서로 이성교제를 하고있습니다.

학창시절에 여자친구와 남자친구, 그리고 친구들과 활기차고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8명이 함께 야영장으로 1박 2일 여행을 가게 됩니다.


남녀가 섞여서 1박 2일로 놀러가면 큰일난다는 고정관념이 박힌 부모님들에게 힘겹게 허락받아서 간 여행에서 정미와 관학이는 성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이 때쯤에서 역시나 정미는 임신을 하게되고 학창시절에 성을 접하고 고난을 겪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조금은 뻔한 내용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내용이 뻔하기에 연극을 보는 저희들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뻔한 내용이라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용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작품은 보통 연극이 아니라 뮤지컬로서 대사뿐만 아니라 노래를 통하여 연극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심리를 더 극적으로 표현해주었습니다.

연극의 초반 내용은 미성년자 학생들도 충분히 성에 대해 많이 알고있고 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후반에 가면 아직 우리들은 성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는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끼모아가 만든 연극 '있는 그대로' 에는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바꿀 수 있는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가 맡은 역할
연극부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아까도 언급했지만 사진 및 영상 촬영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극부의 연습부터 무대 리허설, 공연 준비, 그리고 공연까지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는 역할이 바로 제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결국 활동에 대한 전체적인 모습이 남는 것은 사진이나 영상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연극부 촬영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연극부 학생들이 연습하는 모습, 무대를 설치하는 모습, 회의하는 모습 등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최대한 많은 장면을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촬영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연극부 동아리 회원도 아니면서 연극부 선생님께서 사주시는 밥을 먹으니까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손이 부족할 때면 저도 함께 열심히 도와드렸습니다.


그리고 소품 중에 '가족 앨범' 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가족 앨범 소품의 현실성과 퀄리티가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가지고 사진관으로 뛰어가 앨범 소품에 사용할 사진들을 적당히 골라 인화해왔습니다. 물론 선생님 돈으로 말입니다.

별로 그렇게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연극부에 그나마 가장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기에  나름대로 제가 연극부에서 했던 일 중에서 가장 뿌듯했던 알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 연극부와 함께 하며 배운 것들
연극부와 개천에서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아마도 연극을 많이 본 것일 겁니다. 연극부와 함께 있으면서 다른 학교의 연극도 보고 우리 학교 연극도 질리게 보면서 배운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저희 끼모아의 있는 그대로 작품 대사 하나 하나까지 다 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만큼 한 연극 작품을 많이 봤다는 것은 그 작품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라는 뮤지컬에 개인적 또은 독자적인 견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연극부 학생들이 연습하는 모습 선생님이 지적해주시는 모습 등 여러가지 낯선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라는 작품에는 나름대로 많이 본 만큼 많이 안다는 자부심같은 것도 생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역시 연극에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았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연극부의 담당 교사인 서용수, 김수희 선생님들과 많이 이야기할 수 있었고, 연극부의 후배, 선배들에게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선배, 후배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상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어디서나 항상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달까?

이번 개천연극제에서 저희 태봉고등학교 끼모아 팀은 단체 대상, 즉 대회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우리팀이 너무 공연을 잘 마쳐서 약간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로 대상을 차지하니까 전율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수상식 때 찍은 사진


저희 끼모아 팀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당연히 모두 기뻐하셨습니다. 수상 소식을 미리 들으셨는지 교장선생님께서도 오셔서 함께 축하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우승을 했다고 해서 절대 자만감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우승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에 연연하지 않고 늘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초심으로 돌아가 연극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연극부 학생들도 실력이 더 늘어갈 것이고 상이 자만감이 생기는 도구가 아니라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아이팟 터치 4세대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태봉고에 입학하면서 기념으로 아버지가 사주신 것입니다.

아이팟으로 보통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어플들을 사용하면서 스마트폰 없이도 충분히 아이팟으로 나름 스마트한 생활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DSLR 카메라가 생기고 스마트폰으로 핸드폰을 바꾸게 되면서 아이팟은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베가레이서' 가 4.3인치 화면 크기에 듀얼코어 속도의 스마트폰인 반면, 아이팟은 고작해봐야 3.5인치에 싱글코어를 탑재한 기기였습니다.


왼쪽이 베가레이서, 오르쪽은 원래 사용하던 아이팟


게다가 베가레이서처럼 스마트폰은 3G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아이팟은 무선 인터넷 와이파이가 있어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팟은 점점 제 손을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로 팔아버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이팟 뒤에는 레이져로 제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잘 팔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인 베가레이서를 이용하여 블로그 포스팅을 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또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가레이서는 배터리 소모가 너무 빨랐습니다. 충전을 다 하고나서 사용해도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금방 배터리가 다 닳아버렸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블로그 관리를 하려면 적어도 들고나디면서 할 수 있어야되는데 배터리가 금방 금방 닳아버리니까 차라리 컴퓨터가 있는 곳에 가거나, 아이팟이 나았습니다.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팟보다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다양한 멀티미디어을 이용할 수 있는 기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아이패드인데, 아이패드는 스마트폰도 아니고, 노트북도 아닌 것이 뭔가 색다른 용도의 물건인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의 특성도 가지면서 노트북의 특성도 가진 것이 바로 아이패드였습니다.


사실 아이팟을 구입할 때 아이팟과 아이패드 사이에서 고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팟이 더 저렴하고 휴대성이 간편하다고 생각해서 아이팟을 선택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패드를 사용해보니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아이팟과 아이패드의 크기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큰 효과를 보여주었습니다.


화면의 크기가 크다는 것의 장점은 단순히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거나 어플을 사용할 때 크게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딱 봐도 약 6배정도의 크기입니다.



아이패드의 화면의 크기가 아이팟보다 약 6배 크다는 건 그만큼 화면상의 시야가 넓어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아이패드를 사용하면 한 화면상에서 아이팟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팟으로 검색한 화면

아이패드로 검색한 화면


위 사진을 클릭해보면 알 수 있듯이 인터넷을 사용할 때
 아이팟이나 아이폰처럼 3.5인치의 작은 화면으로는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확대를 해야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아이패드는 굳이 확대하지 않고도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팟과 아이패드의 차이는 크기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아이패드와 아이팟의 좀 더 정확한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각 기기의 스펙을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기존에 사용하던 아이팟의 스펙입니다.

- 아이팟 4세대 스펙

CPU:800MHz 싱글코어 A4칩(프로세서 ARM Cortex A8 아키텍쳐 기반 1Ghz A4 칩)

RAM:256MB

운영체제 : iOS 5.0(업그레이드시)

화면 : 3.5인치 레티나 디스플레이(960*640) (TN패널)
메모리 : 내장메모리 8GB, 32GB, 64GB

카메라 : 전면30,후면90만화소 720p 30fps 동영상 촬영

자이로스코프 센서 

배터리:920mAh 


위 스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팟은 싱글코어라 속도면에서도 뒤쳐지고, 여러개의 어플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선명한 화면이지만 3.5인치 밖에 되지않는 작은 화면이라(개인적으로) 선명한 화질의 효과를 잘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께도 중요한데 확실히 두께면에서는 아이팟이 아이패드보다 더 얇은 것 같습니다. 작으니까요. 두께가 얇으면 디자인도 깔끔해보이고 가볍고, 휴대성도 좋아지나요 아마?


하지만 아이패드가 아이팟만큼 얇다면 뚝! 하고 부러질까봐 무서워서 가지고 다니기 힘들 수도 있을 거 같네요....(ㅋㅋㅋ)

마지막으로 사진 화질입니다. 아이팟의 사진 화질은 고작해봐야 70만화소 밖에 되지않습니다. 동영상 화질은 HD급으로 적당한데 사진 화질은 요즘 스마트폰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정도로 뒤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아마 제가 알기로는 아이팟의 사진 촬영 원리가 동영상을 갭쳐하는 형식이라 화질이 좋지않다고 합니다.  뭐 여튼 그런 단점들 외에는 아이팟도 애플의 제품으로써 꽤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다음은 이번에 구입한 아이패드의 스펙입니다.

- 뉴 아이패드 스펙


통신사 통신사 WiFi전용
시스템 프로세서 A5X 1Ghz(듀얼코어)
메모리 1GB, DDR3 SDRAM
디스플레이 LCD 9.7형(레티나)
해상도 2048x1536
VGA 쿼드코어 그래픽스
통신 및 통화 통신 및 통화 WiFi
기억장치 내장메모리 16GB, 32GB, 64GB
부가기능 부가기능 개인용핫스팟
G센서(동작인식)
iTunes
카메라 카메라 전면 30만 화소
후면 500만 화소 1080p HD 녹화
배터리 배터리 최대 약 10시간
운영체제 운영체제 iOS
크기/무게 무게 652g
기타 컬러 화이트, 블랙

 
 확실히 아이팟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스펙들입니다.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고 하면 우선 듀얼코어를 볼 수 있습니다. 

싱글코어와 듀얼코어의 차이는 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예를 들자면 노트북과 PC방 컴퓨터 정도? 여튼 코어의 종류는 기기의 속도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눈에 띄는 스펙은 카메라 화질입니다. 아이팟은 70만화소인 반면, 아이패드는 그것을 훨씬 넘어서 500만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확실한 비교를 위해 아이팟과 아이패드로 찍은 사진을 각각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이팟으로 찍은 농구공

아이패드로 찍은 농구공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패드의 사진화질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선명도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이팟과 아이패드는 크기 차이를 뛰어 넘어 한 세대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격투기 경기를 할 때 라이트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들은 따로 경기를 하듯이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쨋든 이렇게 기존의 아이팟과의 큰 차이를 한 번 정리하고 나니까 다시 한 번 아이패드를 사용해 볼 기회를 주신 아버지에게 감사드립니다. 물론 어머니에게도 감사하고요.

앞으로 아버지사 사주신 아이패드를 이용해 블로그도 열심히 하고 여러가지 활동에 잘 이용하면서 알찬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어제(9월 8일 토요일) 어머니가 진행하는 캠프 '근현대사 산책' 에 사진 및 영상 촬영이라는 임무를 맡고 따라갔습니다.

이번에 근현대사 산책에서 간 곳은 바로 '진주' 였습니다. 진주는 저희 외갓집이 있는 곳이라서 많이 가 본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진주에 많이 살고있기 때문에 진주에 많이 놀러가기도 했었고 옛날부터 진주 유등축제에 놀러가기도 많이 했습니다.

여튼 이번에 근현대사 산책에서 진주를 간 이유는 바로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 운동' 에 대해사 공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형평 운동은 어떤 운동일까요?

형평 운동이란?
저울대 형(衡)에 평평할 평(平)자를 써서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천민 백정들에 의해  직접 조직된 '형평사' 에 의해 벌어진 인권 운동을 말합니다.

당시 조선시대에서는 백정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이 심했었고, 백정 사회는 경제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한창 일제에 대항하여 3·1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일본의 백정 계급인 에다족의 해방을 위해 수평사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힘입어 1923년 조선에서 형평(衡平)사가 창립되고 같은 해 11월 7일에 형평사는 북파(서울), 남파(진주)로 분열되어 진주(남파)에서는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집니다.

도대체 백정들에게 어떤 차별적인 대우가 있었기에 이런 형평 인권 운동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백정(白丁)은 어떤 계급인가?
백정의 백(白)은 '없다' 라는 뜻으로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인 농민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조선시대에는 가축을 잡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변화되었습니다.

백정들은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당하는데 백정들은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름에 돌 석(石), 이름 돌(乭), 가죽 피(皮)와 같이 좋지 않은 뜻의 글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교육적인 면에서도 차별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정들은 교육기관 입학 및 과거를 포함한 일체의 공권에서 배제당했고 서당, 근대교육 기관의 입교 거부 및 차별은 물론 취직도 되지 않았습니다.

백정과 일반인과 혼인 금지, 백정들이 결혼을 할 때에는 말이나 가마를 탈 수 없을 뿐더러 남자는 상투를 틀지 못하고 여자는 비녀를 꽂지 못하는 등의 혼인 문화에서도 엄격한 제한이 있습니다.

백정들은 일반인들에게 나이에 관계없이 존댓말을 사용해야 했고, 명주옷과 두루마기를 입을 수 없고 갓 대신 패랭이 착용 등 일상적인 생활에서조차 차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백정들이 장례를 치를 때에는 상복 및 지팡이를 쓸 수 없었고 삼베와 두건만을 사용해야 했고, 상여가 금지되고 일반인들의 묘지와 격리된 곳에 묘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백정들은 조선시대에 출생에서 죽음까지 전 생애에 걸쳐서 엄청난 차별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런 백정들에 대한 차별에 항거한 운동이 바로 형평 운동입니다.


저희 근현대사 산책에서는 이런 형평 운동에 대해 바로 알기위해 진주의 여러곳을 가보았습니다. 일반인들과 함께 예배를 한다는 동석 예배를 했던 진주 교회에 갔습니다.

카를 목사가 세운 옥봉리 교회(후에 옥봉리 교회에서 진주 교회로 명칭 변경)는 일반 신도들이 백정들과 함께 예배 보는 것을 반대하여 일반인들과 백정들이 따로 예배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카를 목사의 후임인 리알 목사는 '백정들도 일반인들과 함께 예배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반인들과 백정들은 함께 동석 예배를 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리알 목사의 뜻을 따르던 30여 명의 신도들을 제외한 나머지 200여 명으이 신도들이 동석 예배를 거부하고 예배당을 나가버렸습니다.

동석 예배 거부사건은 교회라는 종교를 통한 백정들의 희망과 좌절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진주 교회 외에도 구 진주청년회관과 형평운동기념탑, 형평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강상호 선생의 묘소 등 형평운동에 관련된 여러곳을 방문하면서 형평운동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상호 선생의 묘소에서 묵념하고 있는 모습.


형평운동의 의의
형평운동의 기본적인 목적은 '백정' 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과 인권 존중, 평등한 대우를 원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 평등' 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형평 운동은 우리 역사상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려는 대표적인 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평운동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차별을 받고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찾는 운동이 민주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갖고싶었던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애플사의 전설적인 태블릿 pc '아이패드' 라는 물건입니다. 


원래 애플사에서 만든 mp3인 아이팟을 사용했었습니다. 아이팟은 전화 기능과 3G 기능이 사라진 아이폰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마트폰 대용으로 아이팟을 이용하여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사진을 찍고 메모장을 이용하여 블로그 글을 쓰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팟의 3.5인치 작은 화면에 항상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아이팟을 구입할 때 아이패드1을 살 생각도 있었지만 그 때는 아직 아이패드가 한국이 출시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작은 화면이지만 아이팟을 통해 블로그 포스팅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에게 DSLR 카메라를 받고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아이팟은 점점 사용하지 않게되었습니다.
 
아이팟은 보통 스마트폰보다 화면도 작을 뿐더러 사진화질도 카메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으로 블로그 관리를 하기에는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버렸습니다.

그래서 화면도 크고 사진 화질도 좋은 새로운 문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아이패드입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패드2 중고 또는 새 제품을 구입할 생각이었습니다. 구입은 아버지에게 부탁드렸습니다.

꽤나 예전부터 아이패드가 필요하다고 조르고 있던터라 내가 사는 것보단 아버지가 사주시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이패드를 구입하는데 저번에 제가 블로그 강의를 하면서 번 돈 10만원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내가 필요해서 아이패드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번 돈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번주 일요일, 드디어 아버지가 아이패드를 사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다 사오신 아이패드는 다름 아닌 올해에 새로 나온 아이패드의 3번째 시리즈인 뉴 아이패드였습니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애플 정품 매장에서 사오신 것이었고 마치 안에 혼이라도 담긴든 엄청난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일주일에 블로그 3번 이상 포스팅, 책 한권, 성적 올리기 등의 단순한 조건들을 내미시며 거액의 돈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저에게 쿨하게 뉴 아이패드를 건네셨습니다.

그렇게 블로그와 인문학적 소양, 성적 등의 향상을 조건으로 마침내 그토록 가지고 싶어했던 아이패드가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개봉은 했지만 아이패드가 들어있는 박스입니다. 역시 애플만의 사과 로고와 심플한 디자인이 눈길을 끄네요.^^

자! 드디어 뚜껑을 열었더니 웅장한 자태를 내뿜고 있는 아이패드가 보이네요~


아이패드 박스에 들어있는 아이패드 이외의 다른 구성품들입니다. 충전기와 사용설명서... 이 두개가 끝이네요. 아이패드는 이어폰도 안준답니다.~ (너무하네)

애플이 깔끔한 디자인과 간단한 구성품, 즉 심플한 디자인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있었지만 너무 심플해도 별로 안좋은 것 같네요. 비싼 돈으로 샀는데 이어폰도 못주나...ㅠㅠ


여튼 위 사진이 바로 저의 아이패드 모습입니다. 멋지지 않나요? 비록 액정 필름을 부착시키지 않아서 지저분하게 지문이 묻어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이패드의 아름다운 자태를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ㅎㅎㅎ

남자는 검은색! 이라고 생각했던 저였지만 화이트가 쫌 깔끔하고 애플만의 사과 로고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화이트로 구입했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저 두께를 보십시오!! 얼마나 얇습니까!? 저기에 잘못하면 손이라고 베일 것 같네요. 저 두께에서 다시 한 번 '역시 애플...' 이라는 감탄사가 나옵니다.


화면을 켠 모습입니다. 이번 뉴 아이패드는 기존의 아이패드들과는 차원이 다른 '레티나 디스플레이' 를 탑재하고 있어서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깨끗한 화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 많이 사용은 안해보았지만 확실히 기존에 사용했던 스마트폰이나 아이팟과는 비교해서 확실히 크고 그것도 모자라 훨씬 깨끗한 화면이라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부가 악세사리에서도 앞서나가는 애플.


그리고 요놈! 아버지가 열심히 하라고 아이패드와 함께 사주신 물건입니다. 무슨 'Dock' 이라고 하던데, 아이패드를 여기에 고정시킬 수 있는데다가 충전까지 할 수 있는 유용한 물건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렇게요. 저는 아이패드를 글 쓰는데 가장 많이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세워서 고정할 수 있고, 충전까지 된다면 정말 최고죠!

어쨋든 이렇게 아이패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아버지에게 정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아버지의 조건대로 블로그도 열심히 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이패드를 사용하여 활용하는 내용은 추후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대안학교입니다. 대안학교도 역시 방학숙제가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전교생에게 직접 내주신 숙제입니다.

31일간의 여름방학 동안 '간디의 물레' 라는 책을 읽어보라는 간단한 숙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름방학 동안 여러가지 활동과 아버지가 사주신 다른 책들을 읽느라 숙제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방학이 끝나기 직전에 학교 갈 준비를 하다가 기억이 나서 바로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제가 간 합포도서관에는 다행히 '간디의 물레' 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물론 빌릴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간디의 물레 책을 가지고 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간디의 물레는 '김종철' 이라는 한 교수님이 쓰신 책이었습니다. 김종철 교수님은 '녹색평론' 이라는 환경 관련 잡지를 만들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간디의 물레라고 하면 당연히 인도의 영웅 간디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간디가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운동을 벌일 때, 사용했던 것이 바로 '물레' 입니다. 또 간디를 상징하는 물건을 물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 물레의 의미
간디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면서 인도 전통의 가내수공업이 아닌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물건을 비싸게 파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간디는 이런 부당한 식민 지배를 비폭력, 불복종의 정신으로 대항하기 위해 수많은 인도 국민들과 함께 영국 제품 불매운동을 벌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제품을 사지 않는 대신에 집에서 물레를 돌려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야말로 영국에 비폭력적으로 대항하고 가내수공업을 부활시켜 자급자족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간디의 물레 책에서는 간디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했던 물레질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레질과 같은 단순하지만 생산적인 활동의 경험은 정신 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위에 기초하는 모든 불평등 사상의 문화적, 심리적 토대의 소멸에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간디는 물레질이 갖는 의미를 '자기 먹을 빵을 손수 마련해 먹는 창조적 노동' 에의 참여와 거기서 얻는 기쁨은 소박한 삶의 가치를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게 하는 토대를 제공해줄 것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간디의 물레가 가진 의미는 너무나도 광범위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우리들이 반드시 공부해야 할 내용들이었습니다.


책의 주제 - 산업문명 실체
이번에 읽은 간디의 물레라는 책은 저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읽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그 친구들도 모두 하나같이 책이 너무 어려웠다는 말을 했습니다.

책은 너무나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었으며 책에 나오는 단어들도 고등학생에게는 아직 생소한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론이고 책을 완벽하게 다 읽은 친구는 거의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삶과 철학' 수업시간에 간디의 물레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철학 수업은 국어 선생님께서 진행하셨는데 선생님은 간디의 물레에서 '산업 문명' 을 주제로 잡아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습니다.

다음은 산업 문명을 중점적으로 책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간디가 물레를 돌리면서 비폭력 주의를 취한 것은 영국으로부터의 해방만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산업문명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다시 말해 참다운 해방은 산업문명이 만드는 지배와 착취의 억압의 구조를 타파하고 그 구조에 길들여져온 심리적 습관과 욕망을 뿌리로 부터 변혁시키는 일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저것입니다. 산업문명의 폐혜,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진정으로 억압하고 있는 정체입니다.


산업문명이 발전해 나감에 따라 인간의 심리는 더 큰 이익을 갈망하고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것이 심리적 습관이 되어 인간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서로를 공격하고 폭력이 발생하여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관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때문에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가고 이런 나쁜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간디는 이러한 산업문명의 문제를 논하면서 산업화의 확대, 또는 경제 성장이 진정한 인간의 행복에 기여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제적인 성장이 아니라 간디는 자급자족을 하는 소농촌공동체를 기본으로 하면서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소멸과 함께 마을민주주의에 의해 자치가 실현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원했습니다.

간디가 말했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라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산업문명의 발전은 인간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공격적인 착취와 억압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간디와 '간디의 물레' 책에서는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대안학교를 다니기에 대안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책에 담겨져있는 간디의 사상을 바탕으로 유명한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게다가 저희 태봉고등학교도 간디학교의 사상을 따르고 있습니다.

- 근본적으로 다른 욕망
간디의 사상은 경제와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생기는 새로운 욕망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욕망할 줄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간디의 사상에서 말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욕망' 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기위해 학교에서 제가 활동하고 있는 독서토론동아리에서 동아리 회원들과 토론해보았습니다.

동아리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욕망을 '봉사적인 욕망' 또는 '국가를 위한 욕망'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시말해 간디 사상에서 말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욕망' 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남을 위한,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욕망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영웅 간디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망을 금욕주의를 실천하며 모두 금지했고 인도 전체를 위한 일을 하면서 인도를 독립시켜 나라를 구했습니다. 

간디처럼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모두가 욕망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간디 사상이 말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욕망이라고 저희들은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간디는 우리들에게 무조건적인 욕구의 절제와 금지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욕망해왔던 것들과는 다르게 공동을 위한 욕망을 하라고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태봉고등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 마다 방송부 자체 제작하는 '싼TV' 영상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2학년으로 올라가고 2학기가 되면서 저희 2학년에게 방송부의 주도권이 생기자 혁신적으로 싼TV를 '죠리퐁 TV' 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선 제가 죠리퐁이라는 과자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과자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도 방송부에서 만드는 죠리퐁 TV를 좋아했으면 하는 바램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죠리퐁은 가격대가 다른 과자들보다 비싼편입니다. 기존의 '싼' TV를 벗어나 비싼 것을 추구하여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죠리퐁 처럼 달콤한 영상, 다양한 영상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죠리퐁 TV라는 이름을 가진 영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죠리퐁 TV의 주목적은 바로 학교 내의 동아리 홍보입니다. 태봉고등학교 내에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동아리, 혹은 홍보를 원하는 동아리들을 위주로 동아리 홍보 영상을 제작할 것입니다.

또한 동아리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나 여러가지 행사 등 태봉고등학교에서 아주 비중이 크고 중요한 영상 매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바로 '죠리퐁 TV' 입니다.

이번에 만든 영상은 앞으로 계속 방영될 죠리퐁 TV의 예고편입니다. 방송부 학생들의 각자 역할을 잘 배분해서 그 역할을 알려주고 죠리퐁이 가지는 의미도 강렬하게 보여주는 간단한 영상입니다.

이번 예고편은 제가 전부 기획하고 촬영하고 연출하고 편집한 영상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이번 예고편은 영화관이나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SF영화 또는 액션 영화들의 오프닝 시퀀스를 조금씩 패러디하여 만든 영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첩보영화의 전설인 '미션 임파서블' 의 오프닝 음악을 사용한 것입니다. 

"아! 그리고 죠리퐁 TV라고 해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죠리퐁이라는 과자를 홍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링크 : http://www.youtube.com/watch?v=ahhOXOB8M1Y&feature=plcp  

지금까지 읽은 인문고전 책을 보면 간디나 아서왕 등 위인전이 많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위인전을 읽는 게 재미있더라구요.


위대한 사람의 업적을 책으로 접하면서 그 사람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뭔가 얻는 게 있다면 더 좋겠지만 위인에 대한 책을 읽는 게 저에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위인전을 읽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알렉산더 대왕' 이라는 책입니다. 물론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유명한 왕으로써 '알렉산드로스 3세' 또는 페르시아식으로 '이스칸달' 이라고도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56년 ~ 323년 경에 활동했던 고대의 왕이지만 그 업적이 너무나도 위대해서 기록이 무척 풍부하고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교과서에서 처음 접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교과서에는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나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여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세운 위대한 왕' 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이 전부가 아닙니다. 알렉산더의 업적은 단순히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유명한 도시를 하나 세운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기켜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진정한 '정복왕' 이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업적 중에서 중점을 두어야하는 것은 바로 '페르시아 정복' 과 '헬레니즘 문화 형성' 입니다. 지금부터 그에 대해 한 번 정리해볼까 합니다.

- 성장 배경
먼저 알렉산더가 자란 배경부터 한 번 살펴보죠.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필리포스 2세는 자신의 아들 알렉산더에게 실질적인 전술과 행정 등의 일을 배웠고 젊을 때부터 전투에 참가하여 경험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13세가 되던 때부터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의 많은 자료들을 3년 동안이나 배웠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우면서 그에게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마케도니아를 전쟁만 일삼는 야만인들로 여겨왔습니다.

물론 마케도니아의 왕도 야만인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문화와 기풍 면에서 그리스와 확실히 차이가 있었고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 문화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왕으로 즉위한 뒤, 부모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기나긴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게 됩니다.  


- 페르시아 원정기 
당시 페르시아는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들을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어떤 나라도 대항할 수 없었던 최강의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는 그런 페르시아에 대항할 계획을 세웠고 페르시아 원정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가 바로 실행시켰습니다. 

알렉산더는 5만의 군사를 이끌고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건너 페르시아로 향했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다리우스 3세는 이를 알고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의 예상과는 다르게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군대는 번번히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차례 차례 페르시아 도시들을 굴복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다리우스 3세가 직접 나서서 알렉산더 군에게 대항했지만 몇 번이나 패배하고 결국 이수스 전투에서도 패하여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고 그의 엄청난 재산과 보물들은 모두 알렉산더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 대왕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전설적인 왕국, 페르시아 정복에 성공했고 군의 사기는 더욱 높아져만 갔습니다.

거대한 국가, 페르시아에게 이길 수 있었던 승전 요인은 어려서부터 배워왔던 수많은 전술과 행정적인 가르침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그리고 다리우스 3세의 방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헬레니즘 문화 형성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원정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다른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해나갔고 점점 거대한 국가를 건설해 나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을 할 때마다 정복한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놔두라고 했습니다. 이미 정복하여 굴복시킨 나라지만 그 나라에 있는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언어도 그대로 사용하게 했다고 합니다. 

정복한 나라의 관습과 문화를 인정하고 문화를 융화시키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합쳐져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 예로 동, 서양의 미술이 합쳐진 '간다라 미술' 을 들수 있습니다.  

덕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반대하여 대항하는 나라가 많이 없었고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때 무모한 전쟁을 하지 않고 정복할 수도 있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이런 융화 정책은 후에 알렉산더 대왕의 최고 업적이라고 합니다. 비록 알렉산더가 건설한 대제국은 3개의 나라로 분리되지만 동, 서양의 문화가 확산되어 융합할 수 있었던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도 동쪽으로 더 진군하려 했지만 오랜 원정으로 지친 알렉산더의 병사들은 더 이상의 원정을 거부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병사들의 반응에 알렉산더는 수많은 고민 끝에 병사들의 뜻을 따르겠다는 현명한 판단을 내립니다. 아마 그 때 원정을 계속했다면 병사들의 불만을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정복한 나라에서 다른 병사들을 모아 원정을 계속했지만 저는 알렉산더가 충분히 현명한 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정복에도 끝까지 원정을 계속하면서 정복 욕심이 엄청났던 왕이었지만 그는 정치적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면모를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후에 알렉산더 대왕은 고열로 쓰러져 말라리아에 걸려 자연사했다고 합니다. 한 평생 정복을 일삼고 전쟁에 몸담았던 왕이었지만 결국에는 전쟁이 아닌 병에 걸려 죽습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아마 그가 병에 걸려 죽지 않았다면 정복을 계속해서 전세계를 장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전세계의 문화가 합쳐질 수 있었겠죠?

알렉산더 대왕은 단순히 거대한 영토를 장악하고 수많은 나라를 정복한 정복왕이 아니라 정복한 나라들의 문화를 퍼뜨려 융화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왕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영토


알렉산더 대왕은 무조건적인 식민지배와 타협하지 않은 좁은 시각의 세계인식을 바로잡고자 했던 진정한 정복왕으로 추앙받습니다.

물론 그의 정복사업으로 인해 고통받은 수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양한 세계의 문화를 확장시킨 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오랜 세월 진행한 정복의 진정한 유산이자 업적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마산 YMCA 캠프 담당으로 일하고 계서서 어릴 때부터 캠프 같은 활동을 무척 많이 해왔습니다.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캠프를 경험했습니다.


약 11년 간 다녀왔던 초.중.고에서 가는 수련회나 수학여행 및 소풍을 다 합쳐도 YMCA에서 갔던 캠프의 횟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 만큼 저는 캠프 활동을 아주 많이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갔던 청소년 YMCA 영남 하령회 캠프는 지금까지 제가 갔던 다른 캠프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하령회 캠프는 먼저 다른 캠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엄청난 수의 인원이 모여서 진행되는 캠프입니다. 인원이 많은 캠프인 만큼 준비도 오래하고 캠프 진행도 매우 복잡합니다.

그리고 캠프에 참가하는 인원들 중 대부분이 고등학생으로 캠프 인원의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캠프의 전체적인 주도권은 거의 학생들에게 주어집니다.

쉽게 말해 하령회 캠프는 거의 학생들이 이끌어서 진행되는 캠프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뭔가 하령회 캠프는 제가 다니는 대안학교처럼 뭔가 자율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하령회 둘째 날, 체육 대회 
하령회 캠프의 대부분의 시간은 각자 조원들끼리 보내게 되어있습니다. 조끼리 움직이면 인원체크도 신속하게 할 수 있고, 그만큼 통솔도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어느 캠프에서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할 때에는 왠만하면 조원들끼리 함께 했습니다. 아침밥을 조원들과 맛있게 먹고나서 저희 마산팀은 급하게 긴급회의에 들어갔습니다.

갑작스레 긴급회의를 열었던 이유는 저희 마산팀이 하령회에서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이 바로 하령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체육대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체육대회를 진행하는 운동장의 바닥이 다 젖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래선 체육대회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밖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줄이고, 실내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물놀이 프로그램은 비가 와도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1. 갈등 풀기 
어쨌든 얼른 실내 프로그램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오전 내내 회의를 한 결과 실내에서 '갈등 구조 풀기'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게임은 여러사람이 둥글게 모여 팔을 엇갈려 서로의 손을 잡은 뒤, 엇갈린 팔을 푸는 게임입니다. 그 게임은 다른 사람들과의 협동심이 매우 중요한 게임입니다.

체육 대회의 전체적인 진행은 마산 운영위원장인 재희와 그냥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가 맡았습니다. 태봉고에 다니면서 행사 진행 같은 종류의 일은 많이 해봤기 때문에 충분히 자신있었습니다.

역시 생각보다 진행이 순조로웠습니다. 각 조들은 팔이 엇갈린 갈등구조를 풀기위해 열심히 게임에 임하였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갈등 풀기 게임을 하면서 조원들간의 협동심도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다른 조와 경쟁만 하면 안될 것 같아서 모두가 하나의 큰 원을 만들어 갈등 풀기 게임을 번외로 진행했습니다.

130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인원이 하나의 원을 만드니 정말 커다란 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넓은 강당이 꽉 차는 정도면 정말 사람이 많기는 많은가 봅니다...

여튼 그 상태로 갈등 풀기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갈등 풀기는 키가 큰 두 사람이 문을 만들어주고 다른 사람들이 그 문을 몸을 돌리며 통과하면 갈등 구조가 풀리는 게 정답인 게임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점점 더 난이도가 어려워집니다. 한 사람이라도 욕심을 부려서 뛰거나 하면 뒤에 사람이 넘어지거나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실패라서 다시 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 구조를 풀 때에는 단 한사람이라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협동을 해서 천천히 여유롭게 해야합니다.

하령회에 참가한 130명의 영남 권역 YMCA 청소년들은 갈등 풀기를 몇 번이고 실패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성공을 했습니다. 이로써 그들의 공동체 의식이 조금 더 함양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체육 대회는 실내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하는 활동도 있었습니다. 운동장이 젖었기 때문에 강당 옆에서 짝피구를 하기로 결정했었습니다.

2. 짝피구
짝피구란 단순히 공을 던져 맞은 사람이 아웃되는 보통 피구와는 다르게 여자, 남자가 짝을 지어 한 쪽이 자신의 파트너를 보호하며 경기에 임하는 조금 변형된 피구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 짝을 정하여 적당히 팀을 나누어야 했는데, 인원이 130명이 넘어서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짝은 그냥 옆에 서있는 사람과 묶으면 간단했지만 팀을 적당한 수로 나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도 문제였지만 사람 수가 너무나 애매해서 팀을 적당히 나누기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덕분에 팀을 나누는 데에만 거의 10분을 넘겼고, 우리 마산팀이 진행하는 체육 대회에 임한 다른 지역 학생들은 상당히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최대한 빠르게 다음 진행으로 넘어갔습니다. 다행히 짝피구를 하면서 학생들은 적당해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다음 자신의 경기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지루함을 오래 느끼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짝피구는 무사히 끝을 맺었습니다.

3. 물나르기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프로그램! '물나르기' 가 있었습니다. 물나르기는 2팀으로 나눠서 각 조원들이 한 줄로 선 다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물을 옮겨서 더 많이 옮긴 팀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희 마산팀이 연습 경기를 처음에 했는데 저는 물이 시원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물을 일부러 흘리면서 온 몸이 다 젖었습니다.

다른 지역 학생들은 물나르기를 하며 몸이 젖어가면서 시원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얼른 물나르기 게임에 임하고 싶다는 의지가 굳게 보였습니다. 제 계획이 성공한 것입니다. (ㅋㅋㅋ) 여튼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세 개의 조가 한 팀이 되어 3 vs 3 의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물론 물에 젖는 것을 싫어하는 학생도 몇 몇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에게까지 게임을 강요하지는 않았고 저는 그저 학생들이 물놀이을 하면서 시원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라며 열심히 진행했습니다.


중간에 마이크가 물에 젖어 전기 통해 다칠 뻔하여 진행을 그만 뒀지만 끝까지 체육대회는 나름 재미있고 알찬 시간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요 며칠 간 YMCA 하령회를 다녀왔습니다. 하령회는 각 권역의 청소년 YMCA 회원들이 모여서 축제를 벌이는 행사입니다. 


YMCA 하령회는 중부, 서부, 영남 이렇게 세 권역으로 나뉘어 진행이 되고 저희 마산은 영남 권역의 하령회에 참석했습니다.

하령회는 1년에 한 번씩 2박 3일로 진행이 되며 올해는 안동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령회에 처음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하령회에 대해 기대가 많이 되었습니다. 마산 YMCA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YMCA 사람들도 만나고 함께 활동하면서 놀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새로운 경험일 것 같았습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안동에 있는 한 청소년 수련원에 도착을 했습니다. 다른 지역의 YMCA들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 하령회 첫날
그 곳에 모인 YMCA 회원들은 학생들만 해도 약 140명정도가 되었고 각 지역의 간사님들도 10명 정도가 계셨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수의 YMCA 회원들과 함께 하는 하령회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하령회의 주제는 바로 '걸어서 백두대간 끝까지' 였습니다.


의미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것입니다. YMCA 청소년들이 모여 북한 남한 분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여 남북 분단 현실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는 자리였습니다.


YMCA 하령회에서는 책자도 한 권씩 지급했습니다. 그 책에는 하령회 일정과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하령회의 첫 프로그램은 각 지역의 YMCA 활동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저희 마산 YMCA도 지역소개를 해야 했습니다. 원래는 마산의 운영위원장 학생이 해야하는데 그 학생이 하루 늦게 도착을 해서 지역소개를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하령회 전 날, 갑작스레 연락을 받아서 하루만에 지역소개 준비를 해야했습니다. 원래 만들어진 PPT를 이용하여 대충 준비를 마치고 지역소개 발표를 했습니다.

저는 마산 YMCA에서 하고있는 여러가지 동아리 활동을 중심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의 집과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활동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습니다.


비록 준비는 미흡했지만 제가 나름대로 재미있게 발표를 해서 인기는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틈틈히 웃기는 농담을 이용하여 발표가 지루하지 않게 했습니다.

또한 재치있고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대해 하나하나 특징을 잡아서 빠르게 진행한 것도 마산 YMCA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역소개를 무사히 마치고 이제 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조를 총 13개조로 나누었습니다. 한 조에 11명씩 넣어도 조가 13개나 만들어져버렸습니다.

그 13개의 조 중에서 저는 9조가 되었습니다. 9조의 학생들은 대부분 조용한 아이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조장이 계속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조활동을 했습니다.

저희 9조의 이름은 저의 의견으로 '전교조' 라고 지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교조는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이 아니라 '전교' 라는 단어의 의미로써 전교생 즉, 조원 전체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여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전교조라는 조이름을 발표할 때 많은 다른 학생들이 비웃었습니다. 물론 전교조라는 이름은 조금 억지일 수는 있겠지만 저희 조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깊은 조이름입니다.


여러가지 조활동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활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특정 단어를 가지고 YMCA를 표현하는 활동입니다.

그 활동은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특정 단어 몇 개를 선택하여 그 단어들을 이용해 YMCA를 표현할 수 있는 한 문장을 만드는 활동이었습니다.

먼저 조 내에서 각각 한 명씩 문장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단어는 랜덤으로 고르는데, 제가 '섹시' 라는 단어가 걸려서 YMCA를 '섹시' 라는 단어로 표현해야해서 큰 고난을 겪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인상깊었던 한 문장이 있었는데 저희 조에 어떤 학생이 만든 문장입니다. 그 친구는 '투쟁' 이라는 단어를 뽑았고 그 단어를 이용해 'YMCA는 나쁜 어른들이 억압하는 세상에 대한 학생들의 투쟁이다.' 라는 멋진 문장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조에서도 비슷한 문장을 만들어냈습니다.

단어를 이용해 YMCA를 표현하는 프로그램은 다른 지역과 다른 조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YMCA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고, YMCA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활동이 끝나고 간식도 먹고 여러가지 게임, 담력테스트 등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 대표들이 모여서 영남 권역 YMCA의 회칙 개정에 대한 회의를 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YMCA 회칙은 제가 다니고 있는 태봉고등학교 학생회 회칙과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회칙을 자세히 읽어보니 저희 태봉고와 정서가 맞지 않는 내용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꾸자고 의견을 냈는데 반대가 거의 만장일치여서 제 의견은 기각되었습니다.

그런 경우가 회의 중에 여러번 있었습니다.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다수의 의견이 반대하는데 어쩔 수가 있겠습니까?

태봉고등학교의 정서가 YMCA 임원들 정서와는 많이 다른가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조용히 받아들였습니다. 회의를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2시가 되었고 그렇게 하령회의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하령회의 남은 2일이 정말 기대되는 하루였습니다. 
저희 태봉고등학교에서는 작년부터 방송부 자체에서 제작하는 영상물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물의 이름은 '싼TV' 입니다.

언제나 싼티가 나게 대충 만든듯한 컨셉으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이나 웃긴 이야기들을 연출해서 1주일에 한 번씩 전교생이 모이는 '공동체 회의' 자리에서 방영했습니다.

싼TV는 제가 1학년 때 1화를 시작으로 계속 방영했습니다. 1화부터 3화까지는 제가 촬영을 맡고 기획이나 연출, 편집 등 전체적인 제작은 2학년 선배들이 도맡아 했습니다.

하지만 4화부터는 영상제작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학년들끼리 자체로 한 번 싼TV를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의 저로써는 아직 여러가지 기술들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아직 영상에 대해 배우는 초보자도 안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전문가적인 수준의 영상도 만들지 못할 뿐더러 영상에 그럴듯한 메세지도 담을 염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자신감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웃기는 거' 를 컨셉으로 잡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제가 주인공을 맡아 단순한 '개그물' 영상을 하나 완성했습니다.

영상의 주제는 '고등학생의 정열적인 아침 생활' 이었습니다. 웃긴 소재를 찾아다니다가 웹사이트에서 돌아다니는 '민욱이의 정열적인 아침' 이라는 영상을 보고 패러디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조금 바꿔 '김간디의 정열적인 아침' 이라고 정하고 영상을 방영했습니다. 영상의 인기는 정말로 최고였습니다.



비록 영상의 수준은 현저히 떨어지기는 한다해도 그 당시 저의 획기적인 이미지 파괴는 영상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저의 작은 별명이었던 '김간디' 가 학교 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나름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게 아마 학교내에서 친구들과 기획해서 만든 첫번째 작품일 것입니다. 이 영상은 원래 1년 하고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영상이지만 지금에서야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부끄러워서' 였습니다. 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저였던 것도 그 이유 중에 속하기도 하지만 영상이라고 하기에 수준이 너무나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블로그에 올린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전, 아버지가 영상의 수준이 떨어지고 부끄럽더라도 제가 만든 영상은 왠만하면 블로그에 다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상 관련 직종을 꿈꾸고 있는 저에게 '자신이 만든 영상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 하면 안된다.' 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아서왕,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5~6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인 '아서왕' 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습니다.


아서왕 신화는 그 이야기가 매우 풍부하고 극적인 요소가 많으며, 유럽의 작가들로 하여금 좀 더 과장되어 '영웅화' 또는 '신격화' 된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서왕의 신화는 수많은 소설들이나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언급되는 인물로써 굉장히 유명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서왕의 정체를 여자로 묘사했던 애니메이션도 있습니다. 그만큼 아서왕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저도 여러가지 애니메이션을 통해 아서왕에 대해 알게되었고 그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업적이 궁금해서 이렇게 인문고전 책을 읽어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서왕의 업적과 생애
아서왕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그는 대영제국에서 왕족 세력간의 불륜으로 태어나 숨어 지내면서 왕족이 아닌 평범한 기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대영제국의 왕이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자 대영제국은 왕의 자리를 놓고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던 중, 교회 광장의 어떤 바위에 검 하나가 박혀있는 것이 발견됩니다.

바위에 박힌 그 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왕의 귀중한 보물, 고귀한 엑스칼리버' 사람들은 그 검을 뽑는 자만이 왕위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왕권을 노리던 제후(봉건시대 때 영토를 가진 권력을 행상하던 사람)들은 그 검을 뽑으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검은 꿈쩍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 한 청년이 다가와서 바위에 박힌 검을 너무나 쉽게 뽑아버렸습니다. 그 청년은 바로 기사 수업을 받고 있었던 아서였습니다.


그는 그 뒤로 아서는 제후 세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위에 즉위하게 됩니다. 왕이 된 아서왕은 색슨족과 야만족들을 물리치고 대영제국의 평화를 가져온 영웅이 됩니다.

그리고 아서왕은 자신을 배신하고 반역을 일으킨 자신의 아들, '모드레드' 와의 전투에서 아들을 죽이고 중상을 입은 뒤, 숲에서 자신의 검 '엑스칼리버' 를 호수에 던져버리고 아발론이라는 곳에 가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아서의 명으로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버리는 베디비어


아서왕 전설에는 '마법의 검을 뽑고 왕이 된다',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버릴 때 호수에서 손이 나와서 크게 3~4번 휘두르고 사라진다' 등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서왕 전설에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있고, 마치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극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서왕, 그는 실존했는가?
아서왕이 '실존했는가', '상상속의 인물인가' 를 다루는 예측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아서왕이 실제로 존재했던 왕이었고, 또 어떤 이는 아서왕이 한 용병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인물이고, 또 다른 이는 아서왕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소설 속의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아서왕의 실존여부를 두고 주장하는 의견들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에 책에서도 아서왕의 존재에 대해 확실하게 정의를 내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주장들 중에서도 대영제국과 유럽 곳곳에 있는 아서왕에 대한 희미하지만 여러가지 기록들을 봤을 때,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영국 역사에서 아서왕이라는 인물은 실존했으나, 그의 극적인 생애는 수많은 문학가들에 의해 과장된 것이다' 라는 의견이 가장 유력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서왕과 비슷한 시기의 군사 지도자였던 루키우스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라는 사람이 아서왕의 모델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영제국의 아서왕은 대체 어떤 이유로 그렇게 전설적인 영웅으로 묘사되었던 것일까요?
그 해답은 12세기 경,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서왕 동상


그 당시, 잉글랜드가 속해있던 영국과 프랑스의 적대관계가 점점 커져갔고 프랑스에는 '샤를마뉴' 라는 영웅의 존재로 인해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헨리 2세 또한 자신이 가진 권력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프랑스의 영웅 '샤를마뉴' 에 필적할 만한 영웅을 만들었고 그가 바로 '아서왕' 인 것입니다. 


기독교와 '기사도' 의 상징
아서왕의 업적은 간단하게 색슨족, 야만족들 등, 많은 침략으로부터 대영제국을 지켜내고 수많은 전투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입니다.

이런 뻔한 업적을 세운 아서왕이 전설속에 남은 영웅으로 추대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아서왕 신화속에는 '성배' 를 찾기위한 모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때 언급되는 성배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배>
성배의 본질은 원래 일용한 양식을 베풀고 병을 치유하는데 쓰였던 마법의 잔이라고 전해진 신비스러운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13세기, '아이마태아의 요셉' 이라는 책에서 성배는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의 피를 받는 잔으로 묘사됩니다.

아서왕 전설에서 아서가 이런 '성배' 를 찾기위한 모험을 떠났다는 것은 그가 '기독교적인 왕' 이라는 것이 틀림없다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탁의 기사>
 
'아서왕' 하면 반드시 언급되는 단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원탁의 기사단' 입니다. 원탁의 기사단은 아서왕이 왕위에 있을 때 각종 모임이나 연회시에 원형 탁자에 둘러앉은 엘리트 집단을 말합니다. 

원탁에 앉을 수 있었던 명예로운 인물들은 약 150명에 이르렀고 원탁에 둘러앉은 원탁의 기사들은 서로간에 확고한 믿음과 끈끈한 형제애가 있었습니다.



원탁의 기사들은 영광스러운 기사이자 왕인 아서로 하여금 '기사는 여성과 어린아이를 위해 자신의 검을 사용해야하며,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명예로운 사람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라는 '기사도 정신' 을 가지고 계승해 나갔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강조되었던 기사 집단들의 기사도 정신은 바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단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사도 정신은 현대사회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아서왕, 전설로 태어난 기사의 수호신
아서왕 전설의 명확한 기원은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아서왕은 어둠의 시대에 태어나 기사인 동시에 대영제국을 이끄는 왕이 되어 많은 민족들의 침략을 무찌르고 기독교와 기사도 정신을 퍼뜨린 신화속 영웅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고귀한 왕이었으며 기독교의 수호자이자 기사로서의 완벽한 모델이 된 인물입니다.

아서왕전설로태어난기사의수호신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예술문고
지은이 편집부 (시공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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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사주신 인문고전 책들 중에서 이번에 읽은 책은 '연금술' 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왜 굳이 생소한 내용의 연금술에 관한 책을 읽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어릴 때 본 만화영화때문입니다. 어릴 때 연금술을 소재로 만든 만화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애니메이션은 '강철의 연금술사' 라는 제목의 만화였는데 주인공이 마법같은 기술로 물질의 성분을 변환시켜서 무기를 만들어 적들과 싸우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했던 만화영화의 소재였던 '연금술' 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고싶어서 이번에 '연금술 : 현자의 돌' 이라는 책을 읽게되었습니다.

연금술(鍊金術)은 무엇인가?
연금술이란 중세기에 전유럽에서 발생한 원시적인 화학기술을 말합니다.

연금술은 납을 가지고 금을 만들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물질은 원소로 되어있는데, 연금술사들은 이런 물질의 배열을 달리하면 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연금술에 대한 내용은 학교 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대부터 이어온 화학기술은 연금술은 과학 교과서에서도 언급이 될 정도로 중요한 의의를 두고있습니다.


연금술은 현대과학에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기 위해 실험했던 모든 물질들과 연금술사들의 노력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물질들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연금술로 발견된 많은 것들이 현대 과학만큼 발전된 형태는 아니었지만 현대 과학에서 화학 분야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연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연금술은 보더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금술의 기원-
연금술에 대한 신비로운 내용이 적힌 근원적인 글들은 양피지와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 등에 기록되어 동, 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의 문화에서 거의 동시에 출현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발견된 연금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들에는 물질에 정신을 부여하고 정신을 물질화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질들을 연소하거나 끓이는 데 사용되는 화로와 증류기 등 다양한 의미의 기묘한 그림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집트와 그리스, 아랍,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등 세계의 주요한 고대문명의 발생지에서 이러한 연금술의 조건들은 연금술 고유의 지식으로 발전하는 최초의 원리들을 형성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연금술은 우리가 알고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존재했었고, 더 많은 곳에서 연금술이 성행했었고 우리의 상상보다 더욱 발전했던 화학기술이었던 것입니다.

처음과 끝을 상징하는 연금술의 뱀 '우로보로스'



-연금술의 발전-
연금술은 처음에는 납으로 금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된 기술일 것 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연금술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더 커져갔습니다.

책에서는 연금술이 우리가 우리 시대의 합리주의를 벗어나는 철학 세계와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인류의 역사와 창조의 신비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적고있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어쨋든 시간이 가면서 연금술사들은 '단순히 금속 제조인' 을 벗어나서 물질을 재창조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연구하는 철학자로 거듭납니다. 

실제로 연금술사들은 스스로를 '철학자' 라고 자칭했다고 합니다.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의 기술을 계승하기 위해 그들만의 비밀언어로 책을 만들어 다음 세대의 연금술사들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런식으로 연금술을 계승해오던 연금술사들은 비밀스럽고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시킨 신기한 물질을 얻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연금술의 완성 : 화금석(현자의 돌)
연금술사들이 추구하던 초자연적인 요소, 천상의 물체라고 여기던 그것을 연금술사들은 '화금석(化金石)' 이라고 불렀습니다.('현자의 돌'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연금술사들의 자신들이 하고 있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기술의 결과물로써 화금석을 언급합니다. 화금석(현자의 돌)은 연금술사의 노력이 구현된 완성품으로서, 물질화된 정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금술의 목적, 금을 생산하는 것은 그 동안 연금술사들이 단순히 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금속을 금으로 변성시키는 것은 화금석의 수많은 효과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금술사들은 화금석의 능력에 대해 금속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식물에게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합니다. 

화금석은 식물들의 생장을 기적같이 촉진시킬 수 있는 성분도 있으며 어떠한 병이라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어디에서나 추구하는 불로불사의 명약, 동양의 연금술사들이 추구했던 장수의 영약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록상으로 연금술사가 화금석을 만들어냈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금술에 대한 기록들에서 화금석, 현자의 돌 등으로 불리우는 궁극적인 물질에 대한 설명과 여러가지 내용들이 놀랄만큼 일치하는 걸로 봐서 화금석이라는 물질의 존재는 함부로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연금술에 대해 조금은 알게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연금술은 납을 금으로 만들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에 정신을 부여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신비로운 기술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금술은 시대적으로 한계가 있었지만 연금술이 현대과학의 밑바탕이 되어 현대 과학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연금술을 통해서 금이나 화금석은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더 갚진 것을 많이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연금술사들이 밤을 지새우며 했던 연구, 끊임없는 실험들 그런 것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연금술사들은 금속 제조인이었으며 동시에 과학자였고, 철학자인 동시에 꿈을 가진 몽상가였으며 근대 화학의 발판을 마련한 위대한 화학자들이었습니다.

이번에 연금술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연금술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학에 흥미가 많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꿈이 연금술사나 화학자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연금술사들이 추구했던 만물을 변환시키는 근원 현자의 돌이 분명히 존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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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안드레아 아로마티코 (시공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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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방학 때에는 인문고전 책을 많이 읽기로 아버지와 약속했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많이 쌓아두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인문고전을 읽으면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인문고전 세트를 사주셨습니다.

약 130권 정도의 많은 인문고전 책들이 담긴 박스가 우리집에 왔습니다. 130권이나 되다보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책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습니다. 책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미술, 음악, 역사, 위인전 등 다양한 장르의 인문고전들이었습니다.


책의 양은 무척 많았지만 책 한권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책 하나하나가 모두 작은 두께의 책들이었습니다. 

책의 두께가 다 얇은 간단한 책들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부담은 별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간날 때 틈틈히 읽으면 금방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책들이었습니다.


처음 읽을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간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인도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 라는 인물을 존경해왔습니다.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인도를 독립하게 해준 장본인으로써 아시아 최고의 위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저는 간디의 위대한 업적에 감명을 받아서 간디의 자서전을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읽은 간디 자서전은 만화로 되어있어서 간디에 대해 생략된 부분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 전에는 구체적으로 간디의 업적들이 적혀져 있는 간디 자서전을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책은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서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간디 자서전은 아니지만 간디의 업적을 간략하게 정리해놓은 책을 아버지가 사주신 인문고전 세트에서 찾게 된 것입니다.


간디는 앞으로도 제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울 점이 아주 많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간디라는 인물에 대해 공부하면서 배우고 연구할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번에 아버지가 사주신 짧은 간디의 위인전을 읽고 간디의 업적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뒤에 어려운 간디 자서전도 읽으면서 점점 간디에 대해 파고들 생각으로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간디에 대한 인문고전 책도 이번에 함께 구입한 다른 책들처럼 역시 두께가 아주 얇았습니다. 간디의 업적에 대한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도 글이지만 간디에 대한 다양한 사진자료가 책이 첨부되어 있어서 책의 내용을 간편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 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간디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습니다. 망고 열매를 치료해준답시고 망고 나무에 기어오르기까지 했고 항상 미소짓거나 웃기를 잘했던 밝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디에게도 반항의 사춘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간디가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어린나이에 조혼이라는 관습에 따라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고 간디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소녀와 첫날밤을 가지게 됩니다.

간디는 어린나이에 성에 눈을 뜨고 자신의 어린 아내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간디는 항상 침대에서 아내를 괴롭히면서 싸우고, 토라지고 하지만 그럼에도 간디는 자신의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간디는 청소년기에 성장을 하면서 호기심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도 반항의 심정으로 담배를 피고, 자살시도를 하고, 이슬람교 친구를 사귀면서 힌두교에서 금지된 고기를 입에 대고...

그러던 어느날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있던 간디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에게 빠져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아내는 임신중이어서 태어난 아기 또한 얼마 가지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때문에 간디는 더 큰 자책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계기로 간디는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기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변호사가 됩니다. 그리고 한 소송사건을 맡아 '프리토리아' 라는 곳에 가는 도중, 어떤 기차역에서 엄청난 일을 겪게 됩니다.

그 당시 간디는 1등석 기차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백인이 그가 흑인인 것을 보고 간디와 짐을 기차 밖으로 내던져 버립니다.

간디는 그 때 그 자리에서 추위와 분노로 얼어붙으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반항과 정치의식의 변화를 느끼고 간디는 결정적으로 '정부가 인도인들에게서 입법단체 회원 선출권을 박탈하려 한다' 하는 기사를 보게됩니다. 

이를 계기로 간디는 15일만에 1만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서로 나탈 인도 국민회의를 창설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간디의 인도독립운동이 시작됩니다. 


간디의 독립운동 방법은 단 한가지 '비폭력, 불복종' 즉 '진리의 힘' 이라는 뜻을 가진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운동을 전개합니다.

쉽게 말해 영국의 식민지배를 집요하게 거부하되 폭력없이 공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간디는 인도 사람들의 의지를 한 곳에 모았으며 언제나 그들의 의견을 대변했습니다.

간디는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합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그는 '세상을 개혁하려면 나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 며 금욕주의를 실천했고 항상 인도 전통옷을 걸치고 다녔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감옥에 투옥되었지만 그 때마다 간디는 감옥이 자신에게 피난처이며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여유를 가졌습니다.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구절입니다. 간디를 가장 간단하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멋진 말인 것 같습니다.

'간디는 인도 전체를 번개처럼 한순간에 장악했다. 그는, 허리에는 짧은 옷을 두르고 손으로 짠 흰 무명의 깨끗한 숄로 몸을 감싼 노인이라는, 전설이 되어버린 이미지로 수백만의 관중을 압도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짓궃고 오랜 권위가 몸에 밴 나이 지긋한 힌두교 성인들처럼 근엄하였다. 하지만 그는 힌두교도도 아니고 정치가나 신비주의자도 아니며, 상인도 브라만도 무사(武士)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이기도 했다. 그는 인도 자체였던 것이다.'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학기가 끝날 때마다 'PT - Day' 라는 행사를 항상 진행합니다. PT - Day는 그 만큼 학교에서 중요한 행사로 손꼽힙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보다 PT - Day 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태봉고등학교에서는  PT - Day가 시험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증거가 되겠죠?

어쨌든  PT - Day 란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활동했던 공부나 인턴십 등 종합적인 LTI (Leanring Through Internship) 활동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시간입니다.

 작년에도  PT - Day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꾸준히 블로그에 포스팅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1학년도 들어와서 후배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저번 학기 PT - Day 때에는 제가 가진 PD와 영화감독의 장래희망에 대해 발표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PT - Day 때에는 2학년 1학기 때에 했던 활동들을 위주로 발표했습니다.


저는 이번 학기 때에 여러가지 활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겨울방학 때 '하나 그리고 둘' 영화기획, '고소공포증 ' 영화제작 , 연극부 스텝 활동, 부회장 활동, 교과부 블로그 기자단 활동 등 약 10가지 정도의 활동을 했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짧게 보고서를 작성해보았습니다. 보고서는 누가 보거나 하는 것도 아니라서 대충 어떤 활동을 했는지만 모아서 간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ppt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ppt에 복잡하게 글자가 많이 들어가서 발표할 때 그 글자를 그대로 읽는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을 많이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LTI 활동을 할 때마다 아버지가 주신 카메라로 꾸준히 사진을 찍어놓았기 때문에 사진자료는 충분히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인턴십 활동이나 촬영을 할 때 찍어놓은 사진들을 모두 모아서 ppt에 넣었고 제가 미술 프로젝트 기록을 했던 내용과 교과부 블로그 기자단으로 활동 할 때 작성했던 기사들도 모두 모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7월 17일, '2012학년도 1학기 LTI PT - Day' 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모두 끝나고  PT - Day 는 항상 방학하기 직전에 진행됩니다.

이번 PT - Day 는 작년 2학기와 비슷하게 1~2학년을 섞어서 반끼리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2학년 2반은 1학년 3반과 함께 PT - Day 를 진행했습니다. 

한 학기동안 활동한 내용을 프리젠테이션으로...

그리고 저는 17일의 첫 번째 순서였습니다. 첫 순서였지만 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충분히 그리고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별로 긴장감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발표는 시청각실에서 했는데 발표를 할 때 관중들에게 제 모습이 보이려면 ppt가 켜져있는 노트북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발표를 하면서 제가 원하는 타이밍에 ppt 슬라이드를 넘길 수 있어야 하는데 노트북이 멀리 있으면 스스로 슬라이드를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ppt 슬라이드를 넘길 때 사용하는 리모콘을 찾던 도중 제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팟에 무선 리모트 어플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방법을 알아내고 아이팟 전용 ppt 무선 리모트 어플을 다운받아서 아이팟을 ppt 리모콘으로 사용했습니다. 

영상 미디어와 IT 계열의 활동을 발표하는 저에게 아이팟 리모콘은 저의 활동을 어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난 6개월 동안 1학기 때 했던 촬영과 편집 기자 영화 제작 등의 여러가지 활동들을 사진을 위주로 설명해 나갔습니다. 

확실히 사진을 통해 설명을 하니 발표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집중도도 높았습니다. 백번 천 번 딱딱한 글과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단 번에 설명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PT - Day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의 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일종의 피드백을 듣는 시간으로 이번 발표 뿐 아니라 이번 학기 동안 학생의 모습을 보고 구체적인 평가를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저를 보고 항상 착실한 학생, 반의 궃은 일을 도맡아 하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학생 그리고 "발표도 아주 재미있고 톡톡 튀었다." 등... 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역시 예상했던대로 제가 대충 작성한 보고서에 대해서는 실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보고서의 중요성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고 발표를 하기 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아주 간단히 만든 보고서였습니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칭찬과 조언을 듣고...

하지만 담임 선생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인 보고서의 내용을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발표에서 보고서에 부족한 내용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다음 학기부터는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했으면 좋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저도 담임 선생님의 그 말씀에 동의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의 발표를 보고 지금까지 했던   PT - Day 발표 중에서 가장 잘했던 발표였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특히 저번 2학기 발표 때에도 참가하셨던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영상과 편집, 기록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여러가지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퀄리티가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번 방학에는 인문고전을 많이 읽기로...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 때에는 읽을 수는 최대한의 독서를 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책들 중에서도 역시 영상에서 중요한 감각을 가지기 위해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인문고전을 많이 읽을 계획입니다.

저의 1학기  PT - Day 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보통 ppt 발표가 끝나면 슬라이드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하는 문구를 넣는데 저는 이번에 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PT - Day 발표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LTI 활동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LTI 활동을 더 많이 할 것이고 2학기 때도 3학년 때에도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더 멋진  PT - Day 발표를 준비할 것입니다.

드디어 학교가 방학을 했네요. 학기 말이라서 기말고사니 PT데이니 뭐니... 이런 저런 핑계로 블로그 관리를 미루고 있었네요.


여튼 이제 방학을 했으니까 다시 힘을 내서 블로그 포스팅에 심혈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이번에 포스팅할 내용은 교과부 기자단 활동을 했었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지난 6월달, 제가 블로그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제 6기 교육과학기술부 대표 블로그 기자단' 이 서울에서 해단식을 가졌습니다.

물론 저도 모든 활동을 끝마치고 해단식에 참가했습니다. 해단식은 서울 명동의 난타극장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교과부의 지원으로 '난타' 공연을 본다고 했습니다.

마침 난타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계속 보고싶어 했었는데 덕분에 난타 공연을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공짜로요^^)

난타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칼이나 주걱, 후라이팬 등의 주방 기구 또는 다른 여러가지 생활 용품들을 가지고 박력있는 소리를 이용해 리듬을 만들어내는 공연입니다.

난타 출연진들이 쿵! 쿵! 소리를 낼 때마다 제 가슴도 뛰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의 공연을 정말 멋있었습니다. 대사가 전혀 없는 공연임에도 충분한 스토리 전개가 이해되었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공연의 80%가 북치고 장구치면서 소리를 내는 내용이지만 중간중간에 웃긴 부분도 많이 있어서 전혀 지루하다거나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게 난타 공연을 보고 나와서 6기 기자단님들 그리고 주무관님과 함께 근처의 카페로 이동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단식을 진행하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단식에 참석하신 모든 기자님들이 활동 증서를 수여받고 나서 각자 기자님들끼리 하고싶은 말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대안학교 학생으로써 대안학교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대안학교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명문고에 다니는 학생에게 "어떤 공부를 하는가?" "공부가 힘들지는 않은가?" "어떻게 공부하는가?" 등의 질문을 하면서 명문고 학생에게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제가 대안학교에 대해 말을 많이 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다른 기자님들은 대안학교가 아닌 명문고에 다니는 학생의 공부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기말고사가 5일밖에 남지 않아서 해단식을 할 때에도 계속 공부만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똑같이 시험을 5일 앞두고 있는 저는 전혀 시험공부를 하고있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시험을 5일 남겨두고 교과부 기자단 해단식에서도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있는 명문고 학생과 해단식에서 전혀 공부를 하고있지 않은 대안학교 학생, 너무나도 비교되지 않습니까?


물론 제가 대안학교 학생이라고 해서 시험공부를 일부러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6개월 동안 교육과 과학에 관련된 기사를 쓰면서 일해 온 사람들이 모인 해단식이라는 자리에서까지 시험공부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단식에서 시험공부를 놓고 있던 저에게 사람들은 역시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안학교 학생들은 원래 시험공부를 않하나보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해단식에서 대안학교를 다니는 제가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또한 명문고에 다니는 학생이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단식의 다른 기자님들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안학교의 다른 학생들도 시험이 5일 남아도 전혀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기자님들과 만나는 중요한 날이고 시험보다 해단식에 집중하고 싶어서 시험공부 할 책들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라고.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탓은 아니지만 그 날, 꽤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학교는 시험이 5일밖에 남지 않아도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학교다.' 라고 인식시켜 버린 것입니다.

저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해단식에서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명문고 학생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시험이 기자님들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인 해단식보다 중요할까?' 그 학생은 분명 공부를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어로 된 책을 가지고 해석을 하며 세계사 공부를 했고 공책도 빽빽하게 사용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갈 꿈을 가지고 있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기말고사가 그 학생에게는 해단식에서 다른 기자님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안학교의 학생들에게 시험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대안학교에도 분명히 좋은 대학을 목표하는 학생들이 있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명문고의 학생들은 무조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안학교 학생들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안학교 학생들은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공부가 아니더라고 자신이 목표하는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가니까요.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끝나고 교과부 블로그 기자로 활동했던 기자님들이 활동증서를 받았습니다. 물론 저도 활동 증서를 받았고 정말 지금까지 열심히 기자단 활동을 했던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어쨋든 해단식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이제 6개월 간의 힘든 교과부 기자단 활동이 끝난 것입니다. 약간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제 큰 짐을 덜어놓았다는 생각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 만큼 기자단 활동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매일 기사 아이템이 없어서 고민하고 기사 마감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지키고...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기자단 활동은 저에게 큰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영화를 찍느라 정신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게 무척 쉬울 줄만 알았지만 막상 해보니 해야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배우들 연습도 계속 해야하고 스태프 관리와 장비 및 촬영본 정리, 편집 등 처음은 아니지만 모든 일이 다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여러가지 일이 한꺼번에 겹쳐버리니까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조금씩 완성되어 갈 때마다 그 만큼 뿌듯함도 더해갔습니다. 그런식으로 힘든 것도 다 이겨내고 계속 영화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 영화니까 최대한 학생처럼 찍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소재를 학교 성적으로 설정했고 주인공을 학생으로 배경으로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학교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다른 학생 영화들과 전혀 다를 게 없을 것 같아서 조금 조금 어렵겠지만 같이 영화를 제작하는 친구와 야외 촬영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희들이 야외촬영을 하기로 정한 곳은 세 군데입니다. 경치가 좋은 카페와 중학교 근처의 벤치, 그리고 건물 옥상입니다.

야외촬영을 하려면 우선 그 장소를 미리 섭외해 놓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촬영할 카페에 가서 그 카페 매니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고등학생인데 학교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저희 영화 중에서 카페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어서 촬영할 경치 좋은 카페를 찾다가 이 곳이 마음에 들어서 왔어요. 화요일에 이 카페에서 촬영을 좀 해도 될까요?"

그러자 그 카페의 매니저님은 아주 흔쾌히 수락해주셨고, 저희가 제작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무척 흥미를 가져주셨습니다.


그렇게 아주 기분 좋게 섭외를 완료하고 지난주 화요일(6월 12일)에 드디어 카페로 야외촬영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카페에 도착해보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전기를 꽂을 콘센트가 없었던 것입니다. 콘센트가 카페의 구석에 있어서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여 조명과 모니터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희는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멀티탭 (여러 개의 플러그를 꽂을 수 있게 만든 이동식 콘센트)' 을 미리 구해놓았지만 깜빡하고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멀티탭을 비롯한 촬영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삼각대와 슬레이트까지 챙겨오지 않았습니다.

야외촬영을 기본중의 기본인 촬영 장비 챙기기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다니... 그 일로 꽤나 큰 자괴감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촬영을 하겠다는 약속을 미리 다 해놓았고, 이제와서 촬영 일정을 조정할 수도 없었기에 최대한 장비를 쓰지 않고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확실히 촬영장비가 부족하니까 너무나도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마이크는 가져와서 배우들의 목소리는 잘 들어갔지만 조명이 없어서 해가 져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촬영을 마무리 해야했습니다.

그리고 장 중요한 삼각대가 없어서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찍으려고 해도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테이블에 팔을 고정시켜서 찍거나 컵을 쌓아올려서 삼각대처럼 사용한다거나 한 명이 액자를 잡아서 고정시키고 그 액자위에 카메라를 올려서 찍거나... 정말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그렇게 어떻게든 부족하지만 카페에서의 야외촬영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두 번째 야외촬영 장소를 정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살던 동네인 산호동의 '합포중학교' 를 배경으로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그 학교는 함께 영화를 제작하는 친구의 모교이기도 해서 그 학교의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옆에는 예쁜 벤치가 있고, 그 옆으로는 아주 멋진 골목길이 뻗어있었습니다.


'이번에 야외촬영을 나올 때에는 반드시 장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도록 하겠어!' 이렇게 다짐을 했건만 역시 이번에도 삼각대를 깜빡했습니다.

촬영 장비가 하도 많아서 꼭 한 개씩은 빠뜨리고 야외촬영을 나와버리네요... 뭐 빠뜨리는 장비의 단골이 삼각대가 되버린 게 절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실수하지 않아야겠죠?

여튼 중학교 옆의 장면을 찍을 때에는 다행이 옆의 학교에서 삼각대를 빌려 올 수 있었고, 다른 장비는 다 가져와서 조명과 모니터도 사용하고 꽤 완벽하게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옆에 있는 한 아파트 옆에서 간단하게 몇 장면을 더 촬영하고나서 그 날 촬영을 마무리했습다. 


야외촬영을 몇 번 해보고나니까 배운 점이 꽤 많았습니다. 우선 장비는 꼭 챙겨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야외촬영을 할 때 여러가지 노하우도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이제 야외촬영도 한 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아파트의 옥상에서 찍을 예정인데 아직 장소를 섭외하고 있는 중입니다.

학생들끼리 높은 옥상에서 촬영하면 위험하다고 잘 허락해주지 않더군요. 먼저 충분한 연습을 한 다음에 동선도 다 짜서 안전하게 촬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학생 영화이다 보니까 돈을 지원받는 곳이 없어서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다 저희들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 조명 장비가 없어서 직접 돈을 들여서 조명을 구입했고 야외촬영을 끝내고나서 간식이나 밥을 먹는 것도 직접 돈을 써야했습니다.

뭐 당연한거지만 돈이 꽤 많이 나가더군요. 하지만 영화가 모두 완성되면 지금까지 사용한 돈에 못지않게 크게 기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촬영하면서 고생한 것도 다 뿌듯하게 느껴질 것이고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또 한번 배워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역시나 오랜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하네요. 평일에는 계속 학교에서 영화 촬영을 하기 때문에 블로그 포스팅을 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말에라도 블로그에 열중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쓸 주제는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와서 쓰는 기행문입니다.

어제(6월 9일 토요일) 저는 부산에 갔습니다. 제가 어릴 적 참가했던 YMCA의 근현대사 캠프를 따라간 것입니다. 

근현대사 캠프는 저희 어머니가 진행하는 캠프로써 중학생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배우는 캠프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까지 그 캠프에 계속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학생으로써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사진 촬영이라는 역할을 맡고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닐 때에는 근현대사 1기, 2기였는데 이번에 따라가보니 벌써 근현대사 캠프가 5기까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근현대사 캠프의 나름대로 제 후배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뿌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튼 이번에는 부산으로 캠프를 갔습니다.

부산에서 근현대사 관련된 여러가지 기념관을 방문하고 일제감점기 때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당했더 치욕스런 과거를 되새기면서 조상들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하게 국제 시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곳은 KBS의 1박 2일에서도 소개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시장입니다.

국제시장이 근현대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국제시장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의미있는 곳입니다.

일제감점기가 끝나고 일본인들이 떠나자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떠난 자리에 자리를 잡아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시장 형성의 시작입니다.

또한 한국전쟁 때 부산은 피란지였기에 부산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었고, 미군의 군용물자,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물건들이 주로 거래되었으며 그게 점점 커져서 지금의 국제시장이 된 것입니다.

국제시장에는 정말 다양한 것을 많이 팔았습니다. 옷도 희한한 게 많이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들도 많이 있었지만 근현대사 캠프에서는 안정상 개인 활동이 금지되어 있기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 팀은 국제 시장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제가 속한 모둠은 국제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작은 포장마차? 같은 곳에 앉아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충무김밥과 국수, 비빔면 등 정말 다양한 음식을 마구잡이로 먹었습니다. 게다가 국수 한 그릇에 2000원 밖에 안되서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 아주머니들의 인심도 좋아서 정말 점심을 많이 그리고 맛있게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디저트로 옆에서 1000원짜리 식혜를 사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8명이서 마음껏 먹었는데도 총 48000원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외식을 하더라도 대부분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 또는 비싼 레스토랑을 가는데, 이렇게 시장의 골목에서 밥을 먹어도 충분히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선 보통 식당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충분히 많으며 비싼 식당의 서비스 못지 않은 아주머니들의 친절한 인심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근현대사 팀이 부산에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보수동 책방골목' 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국제시장의 한 편에서 피란길에 짊어지고 온 책들을 파는 거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이 끝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주로 팔았으며 미군 부대에서 흘러들어 온 영어책도 팔았습니다.

그렇게 보수동 책방골목은 피란길에 짊어지고 온 책들을 파는 시절을 지나서 지금의 작은 헌 책방들이 모인 거리로 발전한 것입니다.


책방골목에는 정말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헌 책방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큼 헌 책들도 셀 수 없을만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옛날 책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봤던 소설들의 원판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난생 처음보는 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책방들이 모두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거의 대부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골의 냄새도 나서 왠지 편안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는 관심가는 책을 찾기 위해 꽤 오랫동안 책방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약 10개 정도의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끌리는 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그 책은 바로 '체 게바라' 에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아주 작은 체 게베라 위인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체 게바라에 대해 감명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에 체 게바라의 업적에 대해 제대로 한 번 알아보는 기회를 가지기 위해 체 게바라 책을 3000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습니다.

이번 부산 캠프는 아주 느낀 게 많이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국제시장과 보수동 책방골목처럼 작은 시장들이 모여 현재의 유명하게 발전한 모습을 보면 뭐든지 시간이 오래 지나봐야 알 수 있나봅니다.

현재에는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시간이 한참 지나면 아주 크게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발전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예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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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 http://www.interpark.com/malls/index.html
옥션 - http://www.auction.co.kr/?redirect=1

 

 


저는 지금 영상에 관련된 촬영, 편집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창원에 있는 유프레임이라는 광고회사에서 배우고 있는데 촬영 현장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좋지만 직접 촬영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광고회사로 인턴십을 나가는 친구는 짧은 단편 영화를 하나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약 3개월에 걸쳐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촬영 장비까지 모두 구해서 드디어 촬여에 들어갔습니다.

영화는 함께 준비한 친구의 캠코더로 찍었습니다. HD급 영상이 촬영되고 작아서 휴대성이 좋기 때문에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찍을 때 분위기를 조절해주는 조명은 친구 어머님께서 투자? 하신 돈으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삼각대, 슬레이트, 모니터 등의 잡다한 장비는 모두 학교 방송실에서 가져와 사용했습니다.

저희가 제작하고 있는 단편 영화의 제목은 '고소공포증' 입니다. 내용은 전교 1등을 하는 여주인공이 성적이 내려가면서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는 모습을 담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바라보는 남주인공의 심리변화 등 여러가지 면으로 조금은 고급스러운 퀄리티의 내용을 담아내고 싶었고, 항상 경쟁만 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의 모습에 대해 비판을 하고싶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보니 아무래도 학교를 배경으로 촬영하는 게 많이 있었습니다. 야외에서 찍어야하는 장면도 많았기에 학교에서 찍을 수 있는 것은 미리 다 찍어놓기로 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일반계 고등학교입니다. 그래서 대안학교인 우리 태봉고등학교에서 찍기에는 무리가 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학교에는 교복도 없을 뿐더러, 한 교실에 책상도 16개밖에 없어서 일반 고등학교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복은 그냥 다른 학교에서 빌려오기로 하고, 책상 배치는 촬영할 때마다 다른 반에서 책상 16개를 가져와서 사용했습니다.

촬영할 때마다 번번이 16개나 되는 책상을 옮겨야 하는 일이 무척 귀찮았습니다. 하지만 별 수 있습니까? 영화를 위해서 그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그렇게 수많은 고생 끝에 드디어 영화 촬영에 돌입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를 나름대로 철저히 해서 그런지 촬영이 착착 잘 진행되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 연습도 충분히 해놓은 상태여서 NG도 그닥 많이 나오지 않았고, 배우들이 연극을 배우는 학생들이었으며 과거에 영화 촬영 경험도 있었기에 분위기에 잘 적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연극부의 담당 선생님께서도 영화를 만드는 저희들이 기특하셨는지 '담임 선생님' 역할의 카메오로도 등장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방송부 담당 선생님께서도 마이크같은 비싼 장비들도 마음껏 빌려주셨습니다. (평소에는 절대 안빌려주셨는데...) 

어쨌든 고마우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영화 촬영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있습니다. 6월달에는 아마 야외 씬을 많이 찍을 것입니다.

6월달 내내 찍어서 6월말에는 편집을 마무리하고, 7월달 쯤 다 완성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때 완성이 다 되면 블로그에도 한 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커서 누가 저에게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본다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맨인블랙입니다.' 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도 맨인블랙입니다.

맨인블랙은 베리 소넨필드라는 감독의 미국 할리우드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유치할 수도 있지만 '지구를 침략하려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 는 뻔한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맨인블랙은 다른 외계인 영화들과 엄연히 다릅니다. 맨인블랙은 우선 장르가 코미디입니다. 영화의 주제는 외계인과 맞서는 것이지만 코믹 요소가 영화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외계인들이 지구인으로 위장하여 지구에서 사람들 모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 또한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맨인블랙은 시리즈 영화입니다. 원래 2편까지 나왔었는데 며칠 전, 3편인 '맨인블랙3' 가 개봉했습니다.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후속작이 개봉했기에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나 기다리던 맨인블랙3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맨인블랙3는 제가 기대했던 만큼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역시 다른 영화 시리즈처럼 감독이 계속 바뀌지 않고 시리즈가 바뀔 때마다 베리 소넨필드 감독이 계속 연출을 맡아서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맨인블랙 특유의 재미요소가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절대 바뀌지 않는 선글라스에 검정 수트 패션


맨인블랙에 관한 포스팅은 옛날에도 한 번 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맨인블랙의 후속작이 계속 나올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맨인블랙3가 나왔습니다.

맨인블랙의 주인공은 두 명입니다. 맨인블랙의 비밀요원 코드네임 J(윌 스미스)와 K(토미리 존스)입니다. 이 두명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제이(J)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영화에서의 비중은 제이가 더 큽니다. 특히 이번에 개봉한 맨인블랙3에서는 거의 대부분 제이를 중심으로 영화 내용이 전개됩니다.

맨인블랙3는 40년 전 케이가 체포한 우주 악당 외계인 '보리스' 가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보리스는 자신을 체포한 케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케이를 죽입니다.

악당으로 등장하는 외계인 보리스


그리고 현재에서는 케이의 존재가 사라지고 제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케이라는 존재가 지워지게 됩니다. 

영문을 모른채 제이는 우선 케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도 타임머신을 타고 케이가 죽기 전의 과거로 가서 40년 전의 케이를 만나게 됩니다.


40년 전의 케이를 연기하신 분은 조슈 브롤린입니다. 젊은 케이역을 연기했지만 별로 젊어보이지는 않네요. 영화 내용상의 나이는 29세라는데 전혀... 뭐 SF영화니까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케이, 29세....


여튼 그렇게 해서 젊은 시절의 케이와 미래에서 온 제이가 힘을 합쳐 악당 보리스를 해치우고 지구를 구한다는 대충 그런 이야기인데 중간중간에 코믹한 요소가 많아서 2시간 동안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액션들까지 더해져 눈의 즐거움까지~ 이제 맨인블랙도 점점 더 발전하고 점점 더 재미있어져 간다는 생각에 뿌듯함까지 느껴졌습니다.

이제 캐릭터를 좀 파헤쳐볼까요?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사람은 바로 맨인블랙의 주인공 에이젼트 제이입니다. 제이는 자신의 파트너인 케이에게 임명되어 맨인블랙에 들어가게 됩니다.


잠깐! 여기서 말하는 맨인블랙이라 영화상에서 지구에 들어오는 외계인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등 외계인과 관련된 일을 하는 단체를 말합니다.

여튼 제이는 맨인블랙에 들어오게 된 후 놀라운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맨인블랙에서 일하는 다른 요원들의 특이한 성격 때문에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아마도 맨인블랙 내에서 제이가 가장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이는 케이를 구하러 과거로 가게 되는데 자신이 미래에서 온 사실을 숨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 자신이 아는 요원들을 과거에서 만날 때 마다 K(케이)! 또는 O(오)! 라고 불러버리죠. 이 때 정말 웃긴 장면이 나옵니다.

제이는 나름대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자신은 모르는 남자를 만나면 무조건 '케이' 라고 부르고, 반대로 모르는 여자를 만나면 무조건 '오'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을 합치면 'OK(오케이)' 된다나 뭐라나.... 정말 이 장면에서 엄청 많이 웃었습니다. 제가 맨인블랙3를 다시 보게 된다면 아마 방금 그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서 일겁니다. 

둘을 합치면 '오케이' 된다는 케이 요원과 오 요원


어쨋든 제이는 과거의 케이와 힘을 합쳐 외계인과 싸우면서 무슨 세상에서 한 순간 한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되고 자기 출생의 비밀 등 여러가지를 복합적으로 득도하시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오죠...

하지만 제가 맨인블랙3를 보면서 기대했던 것은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바로 영화의 결말입니다. 옛날에 썻던 맨인블랙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맨인블랙 시리즈는 항상 영화의 결말마다 충격을 주는 메세지가 담겨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맨인블랙3에서도 꽤나 큰 충격을 주는 결말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제 기대에 부흥하여 아주 큰 충격을 주는 결말을 보여주었습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영화를 보시길.....


여튼 제가 기대했던대로 맨인블랙3는 아주 재미있고 아주 큰 감동과 충격 및 메세지를 준 좋은 영화였습니다.

맨 인 블랙 3
감독 배리 소넨필드 (2012 / 미국)
출연 윌 스미스,토미 리 존스,조쉬 브롤린
상세보기

저희 태봉고등학교에서 네팔로 해외이동학습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교과부 블로그 아이디어 팩토리에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번에 작성한 기사의 내용은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이 왜 네팔로 가는지와 네팔에 가서 하는 활동들을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네팔에 다녀오고나서 느끼는 네팔에 대한 생각도 적어보았습니다. 네팔을 다녀온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도 종합적으로 적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왜 하필 네팔이라는 먼 곳까지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다녀와보니까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http://if-blog.tistory.com/1816 

 

네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네팔 후유증과 폭풍 설사의 영향과 학교, 교과부 기자단 일 등 여러가지 핑계 아닌 핑계들로 블로그에 소홀했었는데 이제서야 네팔 기행문을 써봅니다.


4월 23일, 우리 태봉고등학교 2학년들은 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갑니다. 그리고 공항에서 약 6시간 정도 노숙을 한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아 이제 진짜 네팔에 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 설렘 반 걱정 반의 감정이 왔다갔다 했습니다.

비행기를 8시간 정도 타고 네팔에 도착을 했습니다. 네팔의 카트만두 공항에 발을 내딛으니까 걱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앞으로의 즐거운 일정들에 대한 기대감만 커졌습니다.

네팔에 도착했을 때, 네팔 돈으로 바꾸기 전의 달러입니다.


저는 긴장이 풀리다보니 비행기에서도 잠잠했는데 화장실이 급했나봅니다. 저는 아무 생각없이 카트만두 공항에 있는 화장실에 갔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의 색이 다름 아닌 노란색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입니까? 한 국가의 수도에 있는 공항이라는 곳의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이 노란색 쇳물이라니요?

네팔의 공항에서도 물이 그렇게 더러운데 네팔의 다른 곳에 있는 화장실의 물은 얼마나 더러울까요? 네팔에 도착하자마자 물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찼습니다.

우리 태봉고등학교 팀이 네팔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

 
하지만 우리가 자는 곳은 대부분 깨끗한 호텔이라고 하니까 물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네팔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네팔의 풍경은 예전에 자원봉사를 갔던 태국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외국은 꽤 많이 가본 저였지만 그 당시 네팔의 모습은 저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네팔 사람들의 운전실력은 모두 베스트 드라이버인가?
 

일단 네팔 사람들은 생김새부터 무척 특이했고, 교통질서가 매우 혼잡했습니다. 신호등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자동차들은 무질서하게 즐비해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차 사고가 날 것 같은 혼잡한 도로의 모습이었지만 네팔 사람들의 운전실력이 모두 베스트 드라이버인지 사고는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태국과 비슷하게 개, 닭, 소 같은 동물들이 길거리나 도로에 그냥 다니고 있었습니다. 네팔 사람들은 대부분 힌두교를 믿기 때문에 소와 같은 동물들을 굉장히 신성하게 여겨서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군요.


네팔의 모습은 보통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가본 나라들과는 다르게 네팔은 무척이나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이죠.

네팔은 전세계적으로 가난한 나라에 속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네팔은 무척이나 가난하게 살아가며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은 네팔에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네팔에서 새롭게 보게 된 모습을 몇 개 적어보겠습니다.

1. 청소가 안된 마을
먼저 마을이 무척이나 더럽습니다. 워낙 가난하게 살다보니 청소의 개념을 깨닫지 못했나봅니다. 막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네팔 현지인들은 청소를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길거리는 쓰레기들로 가득찼고, 심지어는 너무 오랫동안 치우지 않아서 곰팡이가 생겨 완전히 썩어버린 쓰레기들도 보였습니다.너무나 안타까운 광경이었습니다.

2. 지저분한 공기
그런 쓰레기들 때문에 네팔의 거리는 지저분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게다가 자동차들의 개발이 부족하여 매연이 너무나 많이 나와서 쓰레기와 자동차 매연의 영향으로 네팔의 공기는 심각하게 더럽다고 할 수 있죠.

가끔씩 네팔에서 길을 걷다가 코가 막혀서 휴지에 코를 풀어보면 형태를 알 수 없는 검은색의 먼지같은 뭔가가 코에서 나옵니다. 


네팔에서 마시는 더러운 공기에 섞여있는 먼지들은 코에게 걸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네팔에서 코는 항상 막혀있습니다. 심지어 마스크를 끼고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3. 지어지는 건물들
네팔은 현재 가난한 나라이지만 점차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개발도상국가입니다. 마치 책에서 보던 우리나라의 60 ~ 70년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개발을 많이 진행하려고 하는 상황이기에 네팔에서는 새로 지어지는 건물과 철거되어있는 건물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건물들도 많이 철거되어 있었습니다.


심한 곳은 마치 전쟁이 난 것처럼 섬뜩하게 건물이 부셔져있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새로웠고 네팔에서 남은 14일 동안 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수업 과정 중에 한 학기에 한 번씩 '이동학습'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2학년은 이번에 네팔로 해외이동학습을 떠납니다.

세계 10대 가난한 나라인 네팔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대안학교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네팔을 가기 전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왕 네팔을 가는 김에 한국에 있는 네팔 사람들과 소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네팔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촬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촬영한 인터뷰와 가족들에게 하고싶은 말을 담은 영상을 네팔 현지에 있는 실제 가족들에게 전해주는 것이죠.

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일입니까? 이런 아름다운 일을 선생님의 도움으로 태봉고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저희들이 찾아간 곳은 김해에 있는 작은 여성회관이었습니다. 


그곳은 네팔에서 온 목사님이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꿔 계신 곳이었는데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저희들은 거기에 가서 우선 인터뷰를 할 네팔 이주노동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 오래 있어서 한국어를 꽤 잘했지만 그래도 약간 어색함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가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인터뷰할 때 질문한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이름, 나이, 한국에는 왜 왔는지, 네팔에서 고향은 어디인지, 자기 고향의 특성은 무엇인지 등 대답은 어차피 네팔어로 했기 때문에 간단한 질문만 했습니다.

인터뷰를 촬영한 영상은 어차피 한국어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네팔 현지인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저희들이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네팔어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튼 그렇게 해서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진 촬영을 맡아서 인터뷰하는 과정을 상세히 사진으로 찍어두었습니다.


인터뷰는 5명 정도 했고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각자 한국에 온 이유와 가족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다양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모두 촬영된 네팔인 이주노동자 인터뷰 영상은 4월 23일 네팔 이동학습을 떠날 때 함께 가져갑니다. 그리고 네팔 현지에 있는 인터뷰 주인공의 가족들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열심이 일하고 있는 자기 가족의 모습을 영상이라도 남아 볼 수 있는 네팔 가족들의 표정이 기대가 많이 됩니다.

네팔에 있는 가족과 한국에 있는 가족이 영상으로 만날 수 있게 소통의 역할을 해준 저와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니다.

아직 네팔은 가지 않은 상태지만 이 때 촬영한 인터뷰 영상이 반드시 네팔 가족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중간고사와 네팔 이동학습 때문에 꽤 오랫동안 미술수업을 하지 않았네요. 거의 한 달만에 미술창작 수업을 하게되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의 각자 프로젝트가 점점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처음에는 모든 일이 처음 하는 일이고 미술창작이라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 무척 힘들어 했지만 이제는 각자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주에 서울에 있는 EBS 방송사에서 태봉고등학교를 '학교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저희 태봉고등학교를 촬영하러 오는데 저희 미술창작수업을 가장 먼저 촬영하고 싶다고 하는군요.

그 만큼 저희 미술창작 프로젝트 수업의 수준이 상승하였고, 저희 미술수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꽤나 자랑스러운 일이죠.


- 천연염색 '깔'
본론으로 돌아가서 천연염색 프로젝트 '깔' 은 마지막 염색에 돌입했습니다. 이번에는 '쪽' 이라는 식물이 주원료인 파란색의 천연염색약으로 옷을 염색했습니다.


-깔의 마지막 염색과정-

깔의 멤버들은 각자 염색무늬를 정해서 실로 묶는다. (묶지 않아도 된다.)

물에다가 염료를 푼다.

소금을 넣어 끓을 때 쯤 각자 각자의 개성에 맞추어서 티를 넣은후 20분 정도 끓이며 염색이 되기를 기다린다.



염색이 끝나면 티에서 염료의 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까지 헹군다.

미리 만들어 놓은 백반 매염제에 넣어 염색을 물이 안빠지도록 10분 정도 담가 놓는다.

나무에 줄을 매달아 건조시킬 건조대를 만든후 널어서 건조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천연염색 프로젝트 깔은 저번에도 언급했었지만 여러가지 미술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진행이 빠르고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입니다.

깔 멤버들간의 호흡도 척척 맞고 의견조율도 잘되며, 천연염색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기본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수업시간에 가장 열심히 활동을 합니다.

특히 이번에 시도한 파란색 티셔츠 염색은 정말 전문가의 손길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벽하게 염색을 했습니다.

그 만큼 염색된 티셔츠가 예쁘고 디자인도 아주 깔끔해 보였습니다. 천연염색을 한 어떤 티셔츠는 본의 아니게 여우모양의 그림이 만들어져 마치 시중에서 팔고있는 고급 티셔츠의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 애니메이션 만들기
다른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학생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애니메이션 제작입니다.

자신이 직접 그림을 여러장 그려서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무척이나 시간이 오래 걸릴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시간을 단축하여 적당히 짧게 만든다면 남은 수업시간에 충분히 만들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필요한 작업대를 만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란 여러장의 그림을 각각 하나씩 찍어서 이어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애니메이션을 찍을 수 있는 받침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작업대를 만든 것입니다.


보다시피 아주 간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려진 그림을 찍는 위치와 사진을 찍는 위치, 카메라와 그림과의 거리, 높이 등을 다 따져서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애니메이션을 찍을 수 있는 작업대를 만들었고, 두 번째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겠다고 합니다.

아마 완성이 된다면 영화 제작 프로젝트만큼의 퀄리티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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