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태봉고등학교는 1년에 한 번씩 지리산으로 이동학습을 갑니다. 작년에도 1학년으로 2학년 선배들과 함께 지리산을 갔었지만 이번에는 제가 2학년이 되어 지리산에 갔습니다.

게다가 지리산 대피소의 자리가 부족해서 몇 명만 제외하고는 3학년들은 지리산 이동학습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 2학년과 1학년들만 지리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후배가 아니라 선배로써 후배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물론 지리산을 가는 각 조마다 담당 선생님이 동행하지만 선배의 역할은 다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작년에 학교에서 지리산을 갈 때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서 지리산 능선을 쭉 돌아 천왕봉까지 갔다가 중산리로 내려오는 최상코스 종주를 했습니다.

친구가 찍은 지리산 풍경들


역시나 최상코스로 지리산을 갔다오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간단하게 지리산 경치도 구경하고 여유롭게 난이도 중코스 정도를 다녀올까 생각을 하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 코스를 고민하던 중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1학년 후배들 몇 명이서 지리산 같은 조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후배들의 요청을 수락하였고 그들과 같은 조가 되어 지리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배들이 선택한 지리산 코스는 제가 작년에 가서 엄청나게 고생했던 최상 난이도의 화엄사 코스였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지리산 최상코스를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작년에 가본 코스라 부담이 덜 하기는 했지만 이미 가본 코스이기 때문에 더 걱정되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선배의 입장으로 후배들도 챙겨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여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이왕 최상코스를 가게 되었으니 더 열심히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가는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짐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저희 조의 선생님까지 합쳐 총 7명에게 3만원씩 거두어서 장을 보고 산에서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등산에 필요한 초콜릿과 사탕 등의 간식도 챙겼습니다.

확실히 작년에 이미 지리산을 가 본 경험이 있었기에 준비하기가 훨씬 수월했고 더 철저히 필요한 것을 잘 분배하여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전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름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드디어 지리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조는 첫 날 점심밥을 등산을 하는 중간에 쉬면서 간단하게 김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직접 김밥을 한 손에 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을 오르는데 한 손에 짐이 있으니까 무척 불편하기는 했지만 우리조를 위해 전혀 귀찮아 하지 않고 꿋꿋하게 올라갔습니다.

한 반쯤 올라가니 같은 조의 친구가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앉아서 김밥을 미리 먹지 않고 뒤에 오고있는 같은 조의 멤버들을 기다렸습니다.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뒤에 오는 같은 조원들을 놔두고 먼저 김밥을 먹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화엄사 코스의 첫 날은 길이가 짧아서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에 조원들을 기다려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도 조원들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습은 아쉽게도 둘 쨋날부터는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둘 쨋날부터는 정말 지리산 최상코스의 면모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엄청난 길이를 자랑합니다. 둘 쨋날은 노고단 대피소에서 출발하여 세석대피소까지 약22km 엄청난 산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첫 날처럼 같은 조를 기다리다가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괜히 기다렸다가 야간산행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는 무엇보다도 안전과 함께 가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역시나 점심을 먹기로 한 연하천 대피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원이 오면 바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저와 친구는 미리 점심을 먹고 기다렸습니다. 잠시후 나머지 조원들이 도착했고 저는 점심으로 먹을 라면을 준비해 놓고 다시 세석대피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둘 쨋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세석대피소에 도착해서도 역시 점심 때처럼 먼저 도착한 저와 친구가 먼저 저녁밥을 먹고 나머지 조원들이 먹을 밥을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다른 조들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나머지 조원들이 오면 함께 밥을 먹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지만 저희 조는 먼저 도착한 조원들이 나머지 조원들이 오자마자 편하게 밥을 먹게 하기 위해 미리 요리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행히 힘이 제일 많이 남아돌았던 제가 밥을 하고 스팸을 굽는 등 대부분의 요리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나머지 조원들이 도착을 하였고 제가 해준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조원들을 무척이나 고마워했습니다. 딱히 고마워하기를 바라면서 저녁밥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에게 고맙다고 말해주는 조원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뿌듯했습니다.


작년에 지리산에서 저희들을 챙겨주었던 선배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선배의 역할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하면서 후배들을 챙겨주는 것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 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조원들을 보면서 제 마음도 따뜻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지리산을 다녀오면서 지리산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후배를 대하는 선배로써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서 조금 더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선배라는 존재는 후배가 힘들어 할 때 따끔하게 충고할 게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학교에서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고 제가 평소에 후배들을 대하는 모습에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편하고 자신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아 줄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지리산에 관한 마지막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지리산에 다녀온지도 벌써 일주일에 되어가네요. 이번에 다녀온 지리산도 점점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겠죠?

그래서 이렇게 글이라도 적어보는 것 입니다. 작년에 아버지와 지리산에 갔을 때에는 몸도 너무 힘들고, 식량도 없는 등의 이유 때문에 천왕봉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 에 가기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30km 라는 엄청난 거리를 종주하다보니 제 몸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결국 천왕봉의 바로 밑인 '장터목 대피소' 에서 천왕봉까지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도저히 제 몸으로는 천왕봉까지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머릿속에 '빨리 집에 가서 치킨 시켜먹어야지.' 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왕봉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코스의 다른 조들도 모두 천왕봉을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30km를 걷고나서 천왕봉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장터목 대피소에서도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마시고 제 눈에 바로 들어온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름' 이었습니다. 장터목 대피소가 워낙 높은 곳에 있다보니 구름이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확실히 지리산의 경치는 다른 산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장터목 대피서에서 본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처럼 새하얀 구름은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비록 천왕봉까지는 가지 못했더라도 지리산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은 충분히 많았습니다. 화엄사에서 출발해서 중산리까지 간 것 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장터목 대피소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천왕봉 바로 밑에 있는 대피소이기 때문에 가장 인기있는 대피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나서 우리는 바로 중산리를 향해 내려갔습니다. 빨리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에 그 험한 내리막길을 엄청난 속도로 뛰어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중산리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다시 태봉고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갑자기 같은 조였던 지우라는 친구가 치킨을 사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그 친구의 집에 가서 치킨을 시켜먹었습니다. 지리산에 다녀와서 바로 시켜먹는 치킨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그 치킨을 지리산에 먹었더라면 더 맛있었을텐데...' 이런 아쉬운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그 때는 치킨이 너무 맛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1년뒤에 또다시 학교에서 지리산 등산을 가게됩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쉬운 코스로 가서 정말 반드시 천왕봉을 가볼 것 입니다.

웬만하면 새벽에 출발하여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코스를 갈 것 입니다.

이번 지리산 등산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2박3일동안 조끼리 직접 밥을 해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에 가기 전 밥을 해먹을 음식을 잔뜩 구입했습니다.

작년 아버지와 함께 지리산에 갔을 때에는 아무런 식량도 가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대피소에서 비싼 값에 음식을 구입해먹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모든 음식을 다 챙겨가서 직접 요리를 하고 밥을 먹은 뒤 직접 전부 치워가야만 했습니다.

원래 등산이라는게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조는 조의 이름부터 '밥먹으로 가' 조 라고 짓고 음식을 잔뜩 준비해갔습니다.

비록 가방이 무척 무거워서 고생을 했지만 음식이라는게 먹으면 없어지기 때문에 가방의 무게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힘차게 등산을 했습니다.

첫 날의 아침밥은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고 점심 때 쯤 지리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등산을 하자마자 배가 고파졌고, 점심을 선생님께서 챙겨온 김밥으로 대충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등산을 해서 대피소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요리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조가 저녁 때 먹을 음식은 바로 '삼겹살' 이었습니다.


선배가 무거워도 열심히 들고 온 삼겹살을 드디어 먹게 되었습니다. 가져 온 버너는 제 버너를 합쳐서 총 세 개, 한 개의 버너로는 밥을 했고, 나머지 두 버너로는 고기 굽는데에 풀가동했습니다.

어느새 고기는 다 익어가고, 우리 조는 밥과 삼겹살에 쌈장과 상추, 고추, 마늘 등을 곁들어 산에서는 보기 힘든 푸짐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얼마나 저녁밥을 많이 먹었던지 이제는 토가 나올정도로 배가 불러지자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동안 대피소에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말뚝박기, 닭싸움, 팔씨름 등 정말 체력을 심하게 낭비하는 놀이만 했습니다. 첫날이라 그런지 아직 많은 학생들이 힘이 넘쳐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들 힘차게 놀았습니다. 한바탕 놀다보니 또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조의 선생님께서 다시 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이번에 먹는 고기는 바로 '수육' 이었습니다. 구워먹는 삼겹살과는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수육을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위해 정성스레 삶아주셨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많다보니까 수육은 금방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산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미리 요리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아침 당번은 아니었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그냥 먼저 요리준비를 했던 것 입니다.


둘쨋날의 아침 메뉴는 '전투식량' 이었습니다. 컵라면과 비슷하게 그냥 뜨거운 물을 붓고 몇 분 기다렸다가 먹으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었습니다.

무슨 짬뽕맛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더럽게 맛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음식또한 산에서 먹는 음식 치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다시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걷고나서 또다시 점심밥을 먹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우리조는 한 대피소에 들려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일 많이 먹어야하는 둘쨋날의 점심밥, 2박 3일의 중간에 위치한 이 시기에 먹는 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조가 먹는 음식은 바로 '라면' 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라면으로는 제 체력을 보충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제 눈에 보인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라면보다 몇 배로 좋아하는 음식인 '짜파게티' 였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선생님께서는 짜파게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우리조는 음식을 많이 가져온 조답게 라면과 짜파게티를 둘 다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짜파게티를 싹싹 긁어먹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약 21km를 걸어서 둘쨋날의 목표지점까지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바로 요리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에 빨리 먹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뜨거운 물에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육개장이었습니다. 게다가 각종 덮밥까지 만들어먹으니 정말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둘쨋날의 저녁밥까지 모두 해결하고나서 둘쨋날에는 피곤했는지 꽤 편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마지막날에는 집에 빨리 가고싶은 마음에 그냥 참치캔 몇개로 아침을 해결하고 얼른 출발했습니다. 다음 대피소에 도착해서 우리조는 마지막 점심밥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모두 꺼내서 전부 요리해먹었습니다. 남은 육개장들과 참치, 라면, 밥, 햄 이 모든 음식을 먹고나니 부실했던 아침까지도 모두 해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등산을 가서 직접 요리를 해서 밥을 먹어보니 느낀게 참 많습니다. 우선 산에서는 집에서처럼 배고파서 밥을 먹는 개념이 아닙니다.

산에서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기보다는 '살기위해' 밥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요리하는데 더 필사적으로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먹는것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먹는 음식은 맛도 달랐습니다. 보통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그렇게 많이 먹지 못하는데 이번 지리산에서는 한개라도 더 많이 먹으려고 노력까지 했습니다.

정말 햄 하나까지도 최고급 요리처럼 느껴졌고 물 한모금까지도 한잔의 포도주처럼 달콤했습니다. 그게 바로 산이라는 곳입니다.

산에서는 모든게 맛있고 모든게 소중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음식들이 지리산에서는 얼마나 맛있던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끔 제가 정신이 약해지고 음식을 소중이 여기지 않으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산에 간다면 그런 정신들이 돌아올 것 입니다.
이번에 갔던 지리산 등산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겨울에 아버지와 지리산을 갔을 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아버지와 갔을 때에는 13km밖에 걷지 않았고 이번에 학교에서 지리산을 갔을 때에는 30km나 걸었지만 역시 아버지와 지리산을 갔을 때가 훨씬 힘들었던 것 갔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갔을 때에는 날씨가 춥지않았고 식량도 풍부했지만 아버지와 갔을 때에는 겨울이라 눈이 엄청 쌓여있었고 추웠으며, 식량도 없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리산을 조금 쉬엄쉬엄 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짐이 너무 무거웠고, 거리도 너무 길어서 다리와 발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다리와 발에 생기는 근육통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제 주위에 있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힘을 내서 계속 걸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힘든 여정이라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을 수는 없었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멋진 곳은 전부 찍어두었습니다.

지리산은 겨울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지리산이 눈으로 덮혀있어서 그 내면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가을에 오니까 더 멋졌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얼어서 볼 수 없었던 지리산의 흐르는 시냇물들이 정말 멋졌던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큰 바위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볼 때면 피곤에 찌든 제 몸과 마음도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아직은 초가을이라 단풍이 들지않은 초록빛의 나뭇잎들이 왕성하게 자라있는 나무들 사이로 걷다보니 제 눈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눈때문에 미끌어질 것 같아서 올라가보지 못했던 큰 바위에 올라서보니 지리산의 넓은 모습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그 멋진 모습에 저는 힘든 것도 잊어버리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카메라를 들고오지 않아서 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제가 찍은 사진만 사용할 것 입니다. 


겨울산의 찬공기가 아닌 지리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닌 지리산의 멋진 산길을 걸으면서 마치 제 몸의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난생 처음 제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제 몸의 피가 온 몸을 돌면서 혈액순환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만큼 지리산은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작년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저에게 전혀 다른 감동을 남겨주었습니다.

확실히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경치를 제가 직접 제 카메라고 찍고, 글을 쓰는데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사용하면 그 때가 더욱 잘 생각나서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여행이나 등산을 가면 직접 사진을 찍는게 제일 좋다고 하셨는데 이제야 아버지의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행이나 등산을 가게된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제가 직접 사진을 찍고 그 멋진 풍경을 기억할 것 입니다.
9월 22일(목)부터 24일까지 학교에서 가는 이동학습에 참가했습니다. 저희가 간 곳은 바로 '지리산' 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지리산으로 갈 때 코스 난이도를 상, 중, 하로 나눠서 갔는데 저는 남자기 때문에 가장 힘들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캠프를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아버지와 등산도 충분히 해봤으며 지리산도 한 번 가봤기 때문에 이번 이동학습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리산은 각 코스에 몇 개의 조를 짜서 가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총 7명으로 담당 선생님은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체육을 전공하셨고, 등산도 많이 다녀보셔서 아주 든든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걱정없이 등산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조에서 저는 '코펠' 과 '버너' 를 들고오기로 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등산을 많이 좋아하셔서 왠만한 등산장비는 모두 집에 있었습니다.

제가 들고 간 버너입니다.


그렇게 준비한 짐을 챙겨서 선생님께 검사를 맡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제 짐을 보고는 깜짝 놀라셨습니다.

우선 제 가방이 너무나도 작다고 했습니다. 우리집에 있는 등산 가방중에서 그나마 가장 큰 가방을 가지고 온건데 작다고 하니까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져 온 코펠도 너무 작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코펠을 들고오기 전에 작은 코펠이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도 지금와서 작다고 하니까 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께 짐에 대해 실컷 잔소리를 들은 뒤 저는 짐을 처음부터 다시 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등산용 가방부터 새로 샀습니다.

저번 가방보다 훨씬 큰 가방을 구입했고, 친구에게 부탁해서 큰 코펠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까지 챙기고보니 가방을 들고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습니다.

아버지가 새로 사주신 등산 가방입니다.


그렇게 짐을 다시 챙기고도 저는 지리산 준비를 하면서 계속 허둥지둥해야 했습니다. 정말 제가 생각해도 필요없을 것 같은 것들을 선생님과 다른 조원들은 계속 챙기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람막이 2겹과 각종 반찬들, 쌀, 모자, 장갑 이런 것들은 제가 생각하기에 지리산에 가서 정말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계속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다른 조원들도 작년에 지리산을 한 번 가봤다고 저를 계속 무시하면서 그런 짐들을 계속 챙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조에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지리산에 가기 전까지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 친구까지도 지리산 준비로 시비를 걸어서 그 친구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지리산에 가서 바람막이는 한 개밖에 필요하지 않았고, 반찬은 너무나도 많이 남았으며, 쌀도 엄청 남아서 힘들게 들고왔습니다.

또한 모자나 장갑은 정말 필요도 없었으며 새로 산 가방은 공간이 너무 많이 남았고 괜히 가방이 너무 커서 무겁기만 했습니다.

저는 제 또래들 중에서 제가 여행을 가장 많이 가봤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등산도 아버지와 함께 많이 가봐서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에서 나오는 제 의견은 거의 다 무시되었고 오히려 혼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을 다녀오고 나서야 제가 힘들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가는 지리산 등산은 저 혼자만 잘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 의지하고 이해해줘야만 했습니다.

저도 너무 제 의견만 앞세웠다는 것을 느꼈고 이번 지리산 등산은 저 혼자 가는게 아니라 저희 조의 총 7명이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제 의견이 무시되더라도 절대로 기분 나빠해서는 안되는 것 이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공동체 의식이라는 것을 배웠으니 내년에 가는 지리산 등산은 더 완벽한 준비를 해서 갈 수 있을 것 입니다.

저희 조의 일부 멤버들입니다.


이번 주말에도 역시 '해피선데이 1박2일'을 시청했습니다. 1박2일은 처음 방송이 시작할 때부터 계속 시청해온 말그대로 열혈시청자였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1박2일에 대한 포스팅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포스팅을 할 때 마다 모두 1박2일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만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은 냉정하게 1박2일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어볼 생각입니다. 이번에 1박2일은 설악산으로 떠났습니다.

같은 해피선데이의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에서 예전에 지리산을 등산한적이 있기 때문에 1박2일도 그에 따라서 설악산을 가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취지도 아주 좋고 1박2일 멤버들의 각오도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설악산 종주를 향해 각 멤버들이 설악산으로 걸어갔습니다.

눈으로 덮혀있는 설악산의 경치는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겨울산을 많이 가보았기 때문에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로 떠올랐습니다.

겨울산의 매력이란 정말 입을 다물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역시 1박2일은 진정한 버라이어티라고 칭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대청봉에 올라가서 보는 해가 뜨는 모습은 정말로 멋있었습니다.그 모습은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등산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멤버들이 쥐가 나서 서로 도와주며 같이 올라오는 장면은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멤버들이 다 올라오고 나서 1박2일이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감동적인 장면이 아닌데도 일부러 감동스러운 모습이나 자막을 넣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 설악산편은 약간 지루한 면도 있었습니다.

설악산 특집이라 웃음기를 약간 빼려고 했겠지만 그래도 예능인데 너무 웃음을 주는 장면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해도 됩니다. 저도 겨울산을 등산해봐서 멤버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추우니까 웃길 시간을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1년전에 지리산을 갔을 때에도 이번에 1박2일 멤버들처럼 다리가 아프고 추워서 계속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김종민처럼 대피소를 발견하고 따뜻한 대피소에 들어가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고 너무도 피로하고 힘들었지만 1박2일처럼 목표를 달성했다는 만족감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에 대해 딱히 비판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은 별로 없었지만 이번 설악산 특집은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대청봉에 올라가서 보는 해가 뜨는 모습은 정말로 멋있었습니다.그 모습은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예능이라고 해도 계속 웃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한주간의 피로를 웃음으로 없애려고 1박2일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웃음이라도 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이번 설악산 종주를 한 1박2일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활기찬 1박2일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토요일인 어제 모처럼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했습니다. 다친 발이 회복되고 처음 가는 등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왠지 설레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드디어 산으로 갔습니다. 오늘 오른 산은 바로 우리집과 가까이에 있는 '무학산' 이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10분이면 가는 거리였습니다.

저번에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무학산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어머니가 다음날에 일이 있으셔서 꼭대기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회사에 가셔서 아버지와 함께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너무 오랜만의 등산이라 그런지 꽤 힘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게다가 제가 사는 마산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에 거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산을 오르는동안 아버지가 들고계신 두 지팡이 중에서 하나를 빌려주셨습니다.

저는 그 지팡이를 들고 더욱 힘을 내서 무학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올라갈 때에는 옷을 너무 많이 입어서 그런지 많이 더웠는데 막상 꼭대기에 올라오니까 무지하게 추웠습니다.

무학산에서 내려다 본 마산.


그래서 가져온 음식들을 먹고 얼른 정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내려갈 때에는 올라온 길과 다른 길로 내려갔습니다. 우리가 내려간 길은 엄청나게 가파른 길이었습니다.

거리는 짧아도 무지하게 어려운 길이었기에 그 길로 산을 오르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계단도 엄청 많아서 오르기에는 도저히 무리인 길이었습니다.


늘 같은 길을 고집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능

그런데 길이 너무 험해서 내려오다가 아버지가 한 번 미끄러져서 넘어지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저는 다음에 무학산을 등산할 때에는 우리가 내려가고 있는 길로 올라오기로 약속했습니다.
 
늘 같은 길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길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사실 같은 길만 가는 것 보다는 다른 길로도 가보는게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산에서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지팡이를 파는 곳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지팡이를 하나 사주셨습니다. 지팡이를 사고나니 왠지 앞으로도 등산을 많이 하고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산을 하면서 좀 힘든 것을 빼고는 건강에도 좋고 체력도 길러지니 참 유익한 취미활동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친구들, 친척, 가족들과 등산을 많이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등산이야기'라는 카테고리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올해 1월 1일에 아버지와 함께 지리산에 가서 개고생을 한 번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내년 그러니까 앞으로 한 달 뒤 1월 1일에 그 개고생을 한 번 더 해볼 생각입니다.

다음 등산 포스팅은 아마도 지리산에 다시 가 본 이야기가 될 듯 하네요.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저희 학교는 중간고사를 마치고 바로 수련회를 갔습니다. 저는 시험공부를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수련회에서 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련회를 가려고 전교생이 모였을 때 갑자기 비가 내렸습니다. 하필 우리반이 타고 갈 버스는 늦게 도착을 해서 저를 비롯한 저희 반 아이들의 옷이 전부 젖어버렸습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간 수련회의 시작부터 좋지않았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버스에 타서 수련회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수련회장은 바로 지리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도착하는데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도 비는 계속 오고있었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비를 맞으며 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교관 선생님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숙소는 정말 마음에 들지않았습니다. 먼저 방이 좁은데다가 수학여행과는 다르게 TV도 없었습니다. 역시 수련회는 별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숙속에서 짐을 풀어놓고 잠시 쉬다가 다시 강당으로 가기 위해 나갔습니다. 숙소에서 꽤 한참을 있었는데도 비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다시 강당에 모여서 반별로 모둠을 짜서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 반의 모둠명은 바로 '몬스터' 였습니다. 몬스터처럼 강하게 수련회를 보내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모둠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너무 떠들어서 교관 선생님들은 3학년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올라갔습니다. 꼭대기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꽤 힘들어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사상최고의 기합을 받았습니다.

정말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힘들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쪼그려앉아서 앞, 옆, 뒤로 돌아다니면서 구호를 크게 외치는 기합을 받았는데 마지막에는 구호를 붙이지 말라고 교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꼭 마지막에는 구호를 붙이지 말라는 말을 잊어버리고 구호를 붙이는 한심한 놈들이 몇 명씩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때문에 우리는 계속 기합을 받았습니다.

수련회는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에 계속 기합받는 것을 부정하지는 앉았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 10번 기합을 받다가 드디어 기합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강당으로 내려갔습니다.

강당에는 1, 2학년들이 엄청 떠들고 있었습니다. 1, 2학년들도 우리 3학년들처럼 극기훈련을 받으러 산을 올라갔습니다.

한 시간 쯤 지나고 1, 2학년들이 기합을 다 받고 내려왔을 때에는 전부 표정들이 3학년들처럼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엄청 웃었습니다.

우리는 취침을 하기위해 누웠습니다. 그런데 옆방이 배게싸움을 하다가 걸려서 우리방과 다른 방들까지 모여서 단체로 기합을 받았습니다.

아까 산에서 기합을 받고와서 그런지 그 기합은 더욱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야말로 달밤에 체조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실컷 기합을 받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침을 먹고 다시 산에 올라가서 총을 들고 서바이벌 게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총은 총알이 다 빠져서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총을 쏘는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아쉽게도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 날밤 신나는 레크레이션과 캠프파이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고 몸이 부숴지도록 춤을 추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미친 짓에 동참했습니다. 그 덕분에 시험공부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없앴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신나게 놀고 기분좋게 잠에 들고 다음날 아침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기합을 하도 많이 받아서 발목이 터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꽤 재밌고 즐거운 수련회였습니다. 이제 중학교에서 가는 여행은 졸업여행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여행으로 중학교에 멋있는 추억을 많이 남기고 싶습니다.
이제 지리산에 가서 세석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난 다음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지리산에 다녀와서 블로그를 쓰는 것은 마지막일 듯 하네요.

세석 대피소에서 우리는 다행히 꽤 따뜻하게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짐을 싸고 드디어 지리산에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보니 안개가 무지 많이 껴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조금만 있다가 내려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최악의 경우에는 세석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가야한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30분쯤을 기다려보니 안개가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세석대피소에서 출발하기 전.


그래서 아버지와 저는 얼른 짐을 들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세석 대피소에서 나오니 눈이 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차가운 눈들이 제 목으로 들어가니까 정말로 죽을 맛 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눈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차가워서 싫어지네요.

우리는 그렇게 차가운 눈을 맞으며 어제 우리가 왔던 길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림코스로 빠져서 내려갔습니다.

이런 눈길을 헤치고 걸어내려왔습니다.


길은 다 내리막길이라서 힘도 별로 안들고 편하게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경사가 넘 심해서 아이젠이 없었더라면 미끄러워서 아주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1시간쯤 걸으니 반은 내려왔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앉아서 쉬다가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내려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우리가 걸었던 거리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지만 그래도 멀기는 멀었습니다. 다리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은 그쳐서 춥지는 않았지만 힘들어서 얼른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1시간 30분쯤을 걷다보니 드디어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거림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함박웃음.


저는 기분이 좋아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눈이 녹아 물이 있는 자리에서 미끄러져서 엉덩방아을 찧은 것이 아닙니까?

정말 아팠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다 내려왔다는 기분에 아픔은 금방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 가서 맛있는 백숙을 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몇 시간 뒤 우리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침대에 널부러져서 뒹굴었습니다. 그 느낌은 정말 지옥에서 천국으로 온 행복한 느낌이었습니다.

힘든 여행을 다녀오면 집으로 돌아왔을때 그 때의 편안함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지리산을 등산할 때 나는 아쉬웠던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단 우리는 집에 라면을 끓여먹을 코펠과 버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까먹고 코펠과 버너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코펠과 버너를 가져왔다면 뜨거운 라면을 추운 산에서 맛있게 먹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라면의 기운으로 힘차게 등산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도 저도 무척 아쉬웠했습니다.

지리산 삼신봉 정상에서.


그리고 우리가 세석 대피소로 들어갔을때 발이 너무 시려웠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핫팩으로 자신들의 발을 문지르고 있더군요.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사실 우리집에도 핫팩은 있었습니다. 만약 그 핫팩을 등산하는데 가져왔다면 보다 더욱 따뜻하고 덜 힘들게 등산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석 대피소에서 정말 맛없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햇반에 햄이랑 참치... 햄은 먹을만 했는데 참치는 너무 차가워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젓가락 또한 없었습니다.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가 지리산 세석대피소에서 먹은 저녁식사.


우리는 세석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잘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젓가락을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나무젓가락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거쳐서 드디어 나무젓가락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무젓가락을 빌려준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맛있게 구워지는 고기들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제가 먹을 햇반과 햄, 참치를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들 버너와 코펠을 가져와 맛있는 저녁을 지어 먹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맛있게 익은 고기를 먹고 싶었는데 현실은 전부 인스턴트 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대충 먹고 우리는 거림코스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주먹밥을 파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원래 계획대로 거림코스에서 등산을 시작했다면 맛있는 주먹밥을 사서 올라가 맛있게 먹었을 텐데...

그나마 아이젠과 스패츠, 그리고 방한장갑을 준비해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이번 여행은 아쉬웠던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아쉬운 일이 많고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은 여행은 기억에도 잘 남을 것 입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교훈은 여행을 갈 때 사전계획을 잘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리산에서 등산을 할 때 저는 계속 길을 못찾아서 엉뚱한 곳으로 가고는 했습니다. 그 때마다 아버지께서 바른 길을 찾아주셨죠.

저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바른 길을 잘 찾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면서 길을 찾아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 모두 이미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잘 보고 길을 찾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눈때문에 발자국이 지워진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는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길을 알려주는 끈을 묶어 놓았습니다.

나는 발자국이나 그런 끈 같은 표시들을 잘 보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안전하게 등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런 표시들을 남겨주신 사람들께 감사했습니다.

아버지가 찍은 이정표 사진. 우리는 청학동에서 세석대피소까지 10km를 걸었다.


하지만 그런 표시들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은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그 이정표에는 지금까지 온 거리와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이정표를 보았을 때에는 1km도 오지 않아서 엄청 실망했지만 점점 더 가면서 이정표를 많이 마주치니까 그 이정표에 있는 남은 거리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정표가 나올 때 마다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만큼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니까 남은 거리가 줄어들수록 기분이 뿌듯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점점 더 아파오는데 2km정도 남았다는 것을 보고는 정말 기분이 나빴습니다. 해가 져서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2km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엄청 싫었죠.

날씨가 추워지고 다리는 아파와서 이정표의 남은 거리를 볼 때마다 점점 더 짜증이 났습니다. 기분은 엄청나게 많이 걸은 것 같은데 정작 실제로 간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석대피소가 500m 남았다는 마지막 이정표.


하지만 목적지가 500m 남았다는 마지막 이정표를 보았을 때에는 기분이 달랐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빴던 기분은 전부 사라지고 목적지인 세석 대피소에 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기대감만이 존재했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의 발자국이나 사람들이 길을 표시해 놓은 끈, 이정표가 없었더라면 지리산의 등산을 더 힘든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소중한 표시들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난 12월 30일 아버지와 함께 영화 아바타를 보기 전 아버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저녁을 드시면서 갑자기 저에게 방학동안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한참동안의 고민 끝에 오랜만에 등산을 하고싶어서 함께 '지리산'에 가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12월 31일 갑자기 아버지께서 짐을 싸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리산을 간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등산준비를 철저히 하고 아버지와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그 근처에서 등산화와 등산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진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진주에 도착해서 우리는 산청으로 가는 버스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산청으로 가는 버스는 다음날 가는 버스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진주에서 저녁을 먹고 근처의 여관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1월 1일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는 새해 첫 날 지리산 등산을 하기위해 다시 산청으로 가는 버스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청으로 가는 버스가 이미 가버렸다는 것 이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청학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원래는 산청에서 지리산을 올라가 청학동으로 내려올 계획이었는데 조금 바꿔서 청학동에서 지리산으로 올라가 산청으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청학동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길이 험해서 멀미를 조금 했습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니 공기가 너무 좋아서 멀미는 금방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드디어 지리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산은 꽤 높았습니다. 그리고 눈이 아주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삼신봉에 가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등산을 하니 정말 지리산을 오기를 잘한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에 쌓인 눈을 보고 저는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눈이 많아서 그만큼 추웠습니다. 처음에는 손이 너무 시려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금방 그 추위가 사라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등산을 하니까 땀이 나서 안 추워진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옷도 아주 두껍게 입고가서 추위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시간을 등산을 하다가 드디어 꼭대기인 삼신봉에 도착을 했습니다. 삼신봉의 경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안개가 별로 없어서 주변이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내 인생에서 그런 멋진 경치를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이런 맑은 날씨에 지리산의 경치를 보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아주 먼 곳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우리가 저기까지 가서 내려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께서 가리킨 곳은 한눈에 봐도 여기에서 10km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걱정을 하고있는 아버지께서는 능선을 타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갈 곳은 '세석 대피소' 라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능선을 타고 계속 걸었습니다. 그곳은 정말 멀었습니다. 정말로 약 10km쯤 되는 거리였습니다.

2~3시간 쯤을 걸어서 드디어 절반쯤 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이 만큼 걸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다리가 엄청 아팠습니다. 점점 걷는 속도는 떨어져갔고 체력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눈밭에 앉아서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라면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깜박 잊고 그만 버너를 가져오지 않아서 라면을 생으로 부셔먹었습니다. 눈밭에서 먹는 생라면의 맛이란 정말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소주와 컵까지 챙겨와서 생라면을 안주로 하여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저는 라면을 먹고나서 배도 꽤 부르고 힘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힘차게 능선을 타고 세석 대피소를 향해 걸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는 보이지도 않고 다리만 점점 아파왔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지치시는지 계속 쉬다가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결국 해가 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얼른 세석 대피소로 가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에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세석 대피소는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정말 '이대로 죽는건가?' 라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끝이 없는 길이 있겠습니까? 계속 걷다보니 드디어 세석 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거의 달려가다시피 세석 대피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다행히 따뜻하게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지리산
주소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
설명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민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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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토요일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로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지리산에 있는 산청으로 오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더 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산청으로 갔다. 정말 배고프고 피곤하였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산청으로 여행가는 것이 엄청나게 귀찮고 싫었다.

어쨌든 어머니와 함께 산청에 도착하니 아버지께서 친구분과 함께 우리를 마중하고 계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아버지 친구분의 집으로 갔다. 그 곳에서 발을 씻고 맛있는 저녁을 먹은 뒤에 아까 샀던 초콜릿을 들고 곳곳에 있는  만화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우리집에 없는 만화책이 많이 있어서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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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친구분의 집 앞마당. 사진은 아버지가 찍은 것이다.


그래서 산청으로 오기 전에 귀찮고 싫어했던 생각들은 모두 잊어벼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놀다가 장기판을 들고 우리 가족이 자는 방으로 가서 아버지와 장기을 두었다. 장기는 모두 3판 했는데, 그 3판 모두 나의 패배로 끝이 났다. 처음에는 내가 이길려고 하다가 계속 져버렸던 것이다. 3판 모두 지다니... 정말 아쉽고 분했다.

하지만 다음에는 내가 꼭 이길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불을 끄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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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친구분과 덕천강 도하작전 중.


다음날 아침 일요일에는 지리산에 있는 계곡으로 차를 타고 갔다.

거기에서 발만 물에 담그고 놀다가 아버지 친구분께서 갑자기 돌을 물에 던져 계속 튕기게 하셨다. 정말 멋있었다. 그것은 '물수제비'라는 일종의 기술이었다.

나도 따라해 보려고 돌을 집어 던져 보았지만 아무리해도 2번조차 튕기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먹고 계속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돌을 던지자 그 돌이 무려 7번이나 튕겼다. 정말 속이 뻥뚤린것 같이 쉬원하였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와 아버지,그리고 어른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뭐든지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계곡에서 나와서 옆에 있는 찻집으로 갔다. 거기에서 차를 마셨는데 그 맛이 아주 일품이였다. 그 맛에 반하여 나는 계속 차를 마셔댔다. 그래도 계속 마시니까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맜있는 차는 처음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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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산청 황차라고 한다.

 
이번 산청여행은 아주 재미있었다.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 후회가 전혀 되지 않는다. 정말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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