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책장에 있는 소설 '태백산맥'을 읽어봤습니다. 고등학생 때 몇 번인가 읽어보다 내용도 복잡하고 양도 많아 그만뒀던 기억이 있는데, 워낙 좋은 책이라 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다 읽어볼까 했습니다. 


대망의 1권을 펼치자 처음부터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하며 전개되는 엄청난 이야기의 향기가 풍겨오는 듯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국, 소련의 신탁통치로 남북의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하는 격동의 1940~50년대를 배경으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의 대립과 사건이 가지를 뻗듯 진행되는 어마어마한 이야기 바로 소설 '태백산맥'이었습니다. 



80년대에 쓰여진 태백산맥은 대표적인 한국 문학인만큼 문체가 너무도 매력적이고 인물들의 행동이나 생각의 묘사가 치밀해서 책 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에 걸맞게 책 속에는 정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1권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좌익세력의 일원인 '정하섭'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회주의 세력의 위원장 '염상진', 그의 동생이자 우익세력의 대표 '염상구', 정치적 사상을 떠나 민족의 단합을 바라는 '김범우' 이 네 명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1권의 제목이 '한()의 모닥불'인 것 처럼 1권의 내용은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는 생각과 사상, 행동의 이유가 어떻게 생겨난 것이며 각자의 분노 또는 '한(恨)'이 어떠한 이유로 나타나고 표출되는지를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인물의 소개같은 것이죠. 책 앞에 간략하게 할 수도 있는 인물소개를 태백산맥은 그 인물들 하나하나 살아온 모습과 가족관계, 각자에게 있었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 등으로 인물들이 가진 사상적 배경이나 행동의 이유를 펼쳐놓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사회주의 혁명의 군사적 행동이나 숙청, 좌익세력을 혐오하는 우익세력 등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닌, 그들이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들의 감정과 행동에 힘이 실리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염상진과 그의 동생 염상구 두 인물의 대립이 중점이 될 것 같은데, 저는 역사의 분기점에서 방황하고 있는 김범우라는 인물에 신경이 쓰입니다. 


염상진이라는 인물은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김범우의 친형 김범진이라는 사람에게 매료되어 사회주의에 대해 오랜 시간 공부하여 투철한 혁명전사가 된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정작 그 독립운동가 김범진의 동생인 김범우는 참으로 여러 가지 사상적 갈등을 느끼는 인물입니다. 


그도 역시 염상진이라는 인물처럼 어릴적부터 사회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염상진과도 절친한 사이였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되면서 염상진과는 전혀 다른 삶의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일본의 군인인 것이 싫어서 일본군을 탈출해 영국군에 투항한 뒤, 연합군 소속으로 미국에서 OSS라는 첩보요원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던 중, 갑작스런 조선의 독립으로 졸지에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됩니다. 


어찌어찌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게 된 김범우였지만 그는 미국의 첩보요원에서 갑자기 포로가 되어버린 경험으로 '나라잃은 슬픔'을 몸으로 실감하고 정치적 사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큰 회의를 느낍니다. 


그는 미군정에서 부탁하는 통역관의 자리도 미제국주의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 같아 거절하고, 그렇다고 염상진이 행하는 사회주의 혁명에도 동참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마냥 소극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염상진과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염상진에게 그는 지금 우리 나라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그런 이념대립이나 정치적 택일이 아니라 민족의 발견을 통한 단합이라고 말합니다.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미국과 공산주의적 패권주의의 소련이 대립하는 큰 흐름에 짓밟히고 있을 때가 아닌, 우리 민족끼리 뭉쳐서 단합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죠. 


하지만 김범우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염상진은 그가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꿈을 꾼다고만 생각하고 두 사람이 겪는 이념적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갑니다. 


어쨌든 저는 김범우가 말했던 그 민족의 발견과 단합이라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역사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초반이라 짧게 나오지만 두 생각의 차이는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의 겪은 거대한 역사속 소용돌이를 문학이라는 소재로 이렇게나 가슴아프고 웅장하게 표현한 것이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보며 각자의 사상과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수많은 대화와 갈등, 선택을 목격하며 저 또한 그 시대의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앞으로 더 진행될 염상진, 염상구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행보와 이야기들이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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