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모교인 창신중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대학도 가니까 오랜만에 중학교 선생님들을 뵈러 간 것입니다. (창신중은 사립이라 예전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계속 계실 수 있습니다.)


창신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까 6년 전 처음 창신중을 등교할 때 느꼈던 그 설렌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수능 칠 때 왔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선생님들을 뵈러 가는 것이라 기분이 달랐습니다.


학교에서 가서 우선 교무실로 갔습니다. 다행히 제가 학교를 다닐 때 계시던 선생님들이 많이 남아계셨습니다. 제가 우리 학년에서 유일하게 대안학교로 진학한 학생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제가 중학교 때부터 워나 성격이 활발하고 자유분방했기에 기억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 성격은 일단 밝은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3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습니다.


1학년, 2학년 때 담임을 해주신 선생님들과도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인생에 대해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시고 중학교 때 들었던 잔소리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학교를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그 동안 학교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또 예전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학교의 구조 자체는 별로 바뀐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설이 달라진 곳이 꽤 있었습니다. 우선 화장실이 아주 깨끗하고 세련되게 공사되어 있었고, 학생들의 쉼터와 수학, 영어 전용 교과교실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말고는 바뀐 게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를 둘러보니 옛 감상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공부했던 교실, 친구들과 뛰어놀던 복도, 농구장.. 중학교 시절 추억들이 하나씩 생각나면서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이런 걸 추억 돋는다고 하죠? 

학교를 돌아보고 나서 선생님들과 학교 급식을 먹었습니다. 약 3년만에 먹어보는 창신중 급식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창신중 급식은 맛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창신중 급식을 언제 또 먹어보겠습니까? 식판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급식 조리사 선생님들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옛날에는 참 가기 싫은 게 학교였고, 참 무서웠던 게 선생님들이었는데, 이제는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이 되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신 고마운 스승님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학교가, 그렇게 무서웠던 선생님들이 이제는 모두 그리워집니다. 얼마 전에 졸업한 태봉고도 몇 년만에 찾아가면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저희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1교시마다 '주열기' 라는 활동을 합니다. 주열기 때에는 학교의 모든 학생, 선생님들이 시청각실에 모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하루에 네 명씩 자신이 준비한 발표를 합니다. 발표를 하는 네 사람 중에서 한 명은 책소개를 해야하고 나머지 세 명은 자유주제로 발표를 합니다.

저는 저번 1학기 때 간디의 자서전을 가지고 책소개를 했습니다. 책소개를 할 때에는 그냥 직접 책을 가져와 보여주면서 말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2학기 때에는 제가 또 자유주제로 주열기 발표를 하는 순서가 돌아와서 말만 하는게 하니라 좀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태국 자원봉사' 였습니다. 사실 내년 4월 쯤에 학교에서 '네팔' 로 2학년끼리 자원봉사를 떠납니다.

그 네팔 자원봉사를 대비해서 참가했던게 바로 지난 여름방학 때 갔던 태국 자원봉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태국에 가서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영상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태국에서의 사진들은 모조리 아버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집에 와서 얼른 무비메이커 프로그램에 사진을 모아서 붙였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몇 개 깔았더니 금방 9분짜리 영상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태국에서의 사진들로 영상을 만들다보니 자연스레 태국에서의 사진들을 하나씩 다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국에서 보냈던 11박 12일의 기나긴 여정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때의 추억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그 만큼 태국에서 보냈던 2주의 시간은 아주 재미있었고 제 인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께도 같이 태국으로 자원봉사를 떠났던 15명의 사람들 중에서 현재 연락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고등학생이 되고 고2 형, 누나들은 이제 고3이 되어서 각자 생활에 집중하느라 연락을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방학 때 시간이 되면 다시 다 모여서 한 번 노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고 하니까 인연이 끊어질거라는 걱정은 안됩니다.

언젠가는 같이 갔던 지도자 선생님까지 모두 17명이 다시 모이는 기대해 봅니다.


드디어 중학교의 마지막 시험이 끝났습니다. 3학년은 고등학교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기말고사를 다른 학년들보다 일찍 칩니다.

그래서 중간고사가 끝난지 얼마 안되어서 다시 기말고사 준비를 하느라 블로그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몇 일 쉬고 나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는데 제가 발을 다치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가 공이 다른 곳으로 굴러가서 제가 주우려고 가다가 그만 쇠를 밟아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아프지 않아서 별 생각없이 농구를 계속했지만 농구를 하다보니 발이 점점 아파왔습니다.

농구를 끝내고 양말을 벗어보니 발은 이미 피가 많이 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많이 아프지는 않아서 그냥 대충 물로 피를 씻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있는 순간에도 피가 계속 나서 저는 결국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교무실로 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병원에 한 번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저 이렇게 세 명은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제 상처를 보고 꿰매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시고 어머니가 결국 병원으로 오셨습니다. 친구는 제 가방과 신발을 가져다 주고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처난 곳을 꿰매기 위해 병원 침대에 누웠습니다. 먼저 마취를 하기위해서 간호사 누나는 제 발에 주사를 놓았습니다.

아무래도 발가락 쪽이어서 그런지 주사를 놓을 때 무지 아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는데 마취가 잘 안됬는지 바늘을 꽂을 때 엄청난 고통이 저를 덮쳤습니다.


제가 아프다고 살짝 비명을 질렀는데 간호사 누나는 계속 상처를 꿰맸습니다. 바늘을 한 번 꽂을 때마다 발에 주사를 놓는 듯한 고통이 저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이 총을 맞고 총을 맞은 곳을 꿰매는 듯한 모습이 바로 제 모습같았습니다. 그렇게 힘든 수술이 끝나고 항생제를 맞은 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왔습니다.

저는 곧바로 발을 다친 내용으로 블로그를 한 개 쓰려고 했으나 아까 힘든 수술을 받느라 온몸의 힘을 다 써버려서 몸은 무척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와서 바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날인 오늘 이렇게 블로그를 한 편 써봅니다. 다친것이 무척 후회되고 발이 아파서 엄청 힘들지만 이것도 다 나으면 언젠가는 그냥 조금 힘들었던 추억으로 기억될 것 입니다.

다친 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지금 이 순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나이키라도 오래 쓰면 떨어지네요

저는 1년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졸라서 나이키 신발을 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역시 나이키라서 그런지 신발은 저에게 충분히 멋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하얀색이라서 그런지 금방 더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신발을 아주 자주 빨아야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빨아서 쓰던 중 다른 신발을 사게되고 그 신발을 신게 되면서 나이키 신발을 신는 경우는 드물어졌습니다.

그렇게 3학년이 되고 저는 또 신발을 샀습니다. 그 신발은 나이키에 못지않는 '필라 신발' 이었습니다. 그 신발을 사게되면서 나이키 신발은 저에게 점점 잊혀지게 되고 결국 다시는 신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을 이사하게 되고 신발장을 정리하면서 이미 낡아버린 나이키 신발을 보게되었습니다. 저는 그 신발을 세탁소에 맡겨 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신발을 빨았습니다. 돈이 아까워서라기 보다는 그냥 제 손으로 그 신발을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처음 살 때에는 엄청나게 좋아했고 멋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러워지면서 점점 저에게서 잊혀져간 신발이 다시 저의 손을 통해서 깨끗해지는 모습을 보고싶었습니다.

사람마다 하나씩은 있을 것 입니다. 자기 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물건, 저에게는 그 신발이 그런 존재입니다. 단순히 나이키라는 상표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제가 처음으로 신발을 사면서 기분이 좋았던 신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 오랫동안 신발장에 넣어두어서 그런지 무지하게 더러웠습니다. 그래서 씻기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세게 씻었습니다.

다른 곳도 많이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너무 세게 씻어서 그만 신발이 찢어졌습니다. 분명히 찢어졌습니다. 이미 신지 않는 신발이라 그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도 않았습니다.

사흘동안 신발을 말리고 나서 그 신발을 신고 아버지와 외출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에 비가 왔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찢어진 틈으로 빗물이 들어올까 일부러 물웅덩이를 피해다녔습니다. 다행히 빗물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신발을 비오는 날에 계속 신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찢어진 신발을 신고다니면 친구들이 놀릴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신발을 빨면서 찢어진 것도 다 추억입니다.

저는 그 신발을 버리지 않고 할아버지댁에 가져다놓을 생각입니다. 이번 방학 때에 할아버지 댁에 쌀을 가지러 잠깐 가는데 그 때 신발을 갖다놓을까 합니다.

할아버지 집은 제가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추억이 많이 쌓인 곳 입니다.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돌아가셔서 시골에 내려갈 일이 별로 없으니까 저의 추억이 담긴 그 신발을 집에 놔두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캠프 5번째 날이었다. 이번에는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우리는 얼른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아사쿠사 관음사로 이동하였다. '아사쿠사 관음사'는 '아사쿠사 센소지'라고도 불리며 옛날에 어떤 어부형제가 물고기를 잡으려다가 물고기 대신에 그물에 걸려온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기 위하여 세워진 도쿄의 대표적인 사찰로 40~50명의 승려가 거주한다고 한다.

우리는 '아사쿠사 관음사' 관광을 빨리 끝내고 '도쿄 디즈니 랜드'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서 선생님께 2000엔(약 2만원)의 돈을 점심-저녁밥 돈으로 받고 팀을 짜서 드디어 '도쿄 디즈니랜드'안으로 입장하였다. 나는 내 친구인 장운이와 승연이라는 아이와 짝이 되었다.

우리는 먼저 '캐리비안의 해적'을 탔다. 그 것은 유명한 영화인 '캐리비안의 해적'을 주제로 하여 그 영화의 주인공들을 전시해 놓고 배를 타는 것 이었다. 정말로 재미있는 놀이기구였다.

우리는 점심으로 닭고기를 사먹었다. 하지만 너무 짜서 그렇게 썩 맛있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은 뒤, 기차를 탔다. 너무 느려서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시간낭비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보트를 타기로 했다. 내가 먼저 줄을 서고 있다가 아이들이 새치기를 하려고 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들은 오지를 않았다. 결국 할수없이 혼자서 외롭게 보트를 타고 아이들을 찾아 다니다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다가 너무 더워서 그늘을 찾아 다니다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는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나는 선생님이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보다가 아까 잃어버린 승연이를 만났다. 승연이도 장운이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과 헤어지고 승연이와 함께 다녔다.

승연이와 함께 다니다 보까 시간이 1시간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마지막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줄이 너무 많아서 거의 30분 정도나 기다려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래도 롤러코스터가 너무 재미있어서 줄섰던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니 20분정도 남아있었다. 그래서 놀이기구를 하나 더 탈까 했지만 그냥 디즈니랜드에서 나와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일본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냈다. 내일은 일본캠프를 마치고 한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정말 이번 5일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배운것 같다. 정말 즐거운 캠프였다. 중간에 힘들고 괴로운 때도 있었지만 다른나라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는게 내게는 정말 행복한 추억이었다. 정말 비싼 돈을 내주시고 일본캠프를 보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공부도 잘하고 뭐든지 열심히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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