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가 벌써 6개월정도 되어갑니다. 이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제사는 우리집에서 해야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부터는 할아버지 없이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이나 고모들도 계셔서 그렇게 걱정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집에 병풍이나 큰 밥상같은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에 사용하는 제기는 제가 삼촌네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 가져왔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정사진과 제사에 필요한 몇가지 물건들을 지난번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남해에 가서 가져왔습니다.

남해에서 가져온 그릇들입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낼 때 가장 중요한 병풍과 상이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집에도 상은 있었지만 제사를 지내기에는 너무 작은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결국 병풍과 상을 한 개씩 구입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도 병풍과 상은 있었지만 거기에서 병풍과 상을 트럭에 실어서 가져오는 비용이 새로 구입하는 비용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냥 병풍과 상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굳이 남해에 있는 병풍과 상을 가져와서 사용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입해서 주문한 병풍과 상이 오늘 집으로 배달이 왔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경비실에 있는 병풍과 상을 한 개씩 한꺼번에 들고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꾀를 부려서 훨씬 가벼울 것 이라고 예상되는 상을 들기로 했습니다.

크기만 클 뿐 나무라서 별로 무겁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상은 저 혼자의 힘으로 들 수 없을만큼 무척 무거웠습니다.

잘 들지 못하는 저의 모습은 본 아버지는 들고 계신 병풍과 제 상을 바꿔주셨습니다. 병풍은 상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병풍은 정말 제가 한 손으로 들 수 있을만큼 가벼웠습니다.

정말 힘을 들이지 않으려고 꾀를 부린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앞으로 꾀를 부리면 안되겠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정곡을 찔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와서 저와 아버지는 병풍을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상도 갖다놓으니 꽤 제사를 하는 폼이 났습니다. 저는 얼른 절까지 해보았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그 병풍과 상을 가지고 제사를 지낼 것 인데 절 정도는 해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병풍과 상까지 사니까 이제 정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이제부터 예전처럼 열심히 우리집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9월 5일(일요일)에 있는 제사는 우리집에서 처음으로 지내는 제사니 더욱 정성을 다해 지내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