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있을 때 함께 살았던 시와 여행을 좋아하는 한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있습니다.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이었는데. 인도 여행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쓴 류시화라는 사람은 원래 시인으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등의 재밌는 시집을 많이 낸 분입니다. 


책을 추천해 준 친구가 류시화 시인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그 분의 책을 캄보디아에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 분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곤 했는데, 그 분의 인도 여행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게 되었습니다.


인도 갈 때마다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 책


류시화 시인은 인도로 여행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인도 여행을 다녀오셨고,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인도에 갈 때마다 겪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인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들었던 충고, 마법같은 경험들로 한 편의 영화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가장 많은 이야기가 길거리에서 만난 인도인들에게 배신당하거나 뒤통수를 맞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을 배신한 그 인도인을 다시 만나면 항상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깜빡 잊고 있었네요", "아 맞다. 그런 약속을 했었죠?" 등의 너무 쿨한 대답으로 류시화 시인을 당황시킵니다. 


류시와 시인께서는 인도인들 특유의 쿨한 성격과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합니다. 적응했더라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는 게, 배신을 당하거나 약속을 어기면 또다시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인도인들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우리나라 사람들과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약속의 무게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식적인 일이나 중대한 일을 제외하고 사람들 사이에는 많은 약속이 오갑니다. 한국에서는 약속을 잘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로 그 사람의 인성이 판단되기도 합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는 약속이라는 개념의 무게가 크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약속은 중요하지만 약속이 가지는 무게는 그 민족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바쁘게 살고 여유가 없는 우리나라는 약속이 가지는 무게가 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유롭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인도인들에게는 약속의 무게가 가벼운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친구가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잘 지키지 않으면 화가 날 것 같지만, 인도에서처럼 모두가 여유롭고 낙천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인도 사람들 


그런 생각을 들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인도인들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책 속에서 류시화 시인께서는 몇 번이나 나쁜 일을 겪거나 그런 일을 겪은 인도인들을 만납니다.  


작게는 버스가 몇 시간이나 정체되고, 크게는 사기를 당하거나 가족을 잃은 인도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버스가 몇 시간이나 정체되면 한국인들은 보통 화를 내고 어떻게든 버스가 왜 정체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버스가 빨리 출발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려 합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아무 일도 아닌듯이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어이가 없는 류시화 시인이 인도인들에게 왜 가만히 있느냐고 물어보면 인도인들은 '지금 버스가 정체된 것은 이미 몇 천년부터 정해진 일이다.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왜 바꾸려고 힘을 낭비해야 하는가?" 라는 식의 대답만 돌아옵니다. 


그건 종교에 얽매인 사고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와 믿는 것의 차이가 아닌, 정말 순수하게 인도인들에게 버스가 늦게 출발하는 것따윈 아무 일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정말 바쁜 일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만날 가족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이미 일어난 일에, 바꿀 수 없는 상황에 화를 내거나 감정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이미 정해진 일이라며 낙천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무언가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 그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바쁜 세상을 살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이 사기를 당하거나 가족들과 이별해도 그건 이미 몇 천년 전부터 정해진 일이고 나에게 닥친 시련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나쁜 상황을 극복합니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유한 인도 사람


이 책을 보고 나서 인도는 우리나라보다 가난하지만 참 부유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바쁘고 여유 없이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도인들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가난하고 빈곤한 것 같습니다. 


인도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인 '노 프라블럼', 참 쉬운 말이면서도 참 하기 힘든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도인들처럼, 인도인들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 낙천적인 사람, 마음에 부유한 사람을 보며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마법같아서 조금 과장한 것 같은 에피소드가 많이 있지만 글을 읽으면 그 때 그 순간에 류시화 시인께서 느낀 감정은 진실되게 느껴집니다. 


사람에게 놀라고, 사람에게 화나고, 사람에게 감사하고, 사람에게 감동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감정의 근원 그 자체게 바로 여행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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