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레드 툼'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제목은 '빨갱이 무덤'이라는 뜻으로 6.25 전쟁 때 일어난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에 좌익전향자를 계몽하고 지도하기 위해 만든 단체로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하자 국가는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무차별 살해했습니다. 


영화 레드 툼은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과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학살이 발생했던 곳을 찾아가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 학살이 일어난 당시의 처참함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선 자신이 보도연맹에 가입했는지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국가가 마음대로 가입시켰던 거죠. 그리고 마음대로 살해했던 것입니다. 보도연맹 사건은 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명권을 침해한 비인간적인 학살이었습니다.



전쟁 중이었다고 해도 국가가 국민을 구속하고 처형하려면 적법한 절차와 공정한 재판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근거와 절차를 다 무시하고 국민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정말 엄청난 비극이죠. 


영화 레드 툼은 다양한 편집의 기교나 부가적인 설명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충분한 정보전달과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사실(fact)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아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그 사건에 대한 설명보다도 사건이 발생했던 곳, 희생자들의 유골,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모두 담았다는 것에서 기록적인 가치도 충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 



나레이션이 없어서 몰입도가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인터뷰한 분들의 목소리를 영상 설명과 나레이션처럼 사용함으로써 충분히 몰입도가 생겼습니다. 


특히 유족들이 제사를 지내며 희생자들에 대한 글을 읽는 장면과 할머니께서 오열하시는 장면은 그 자체로 영화와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마지막 인터뷰 장면에서 나오는 "언제 무서운 시대가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다. 남북이 아직 떨어져 있다."라는 대사는 레드 툼이라는 영화가 가지는 주제의식을 정말 여운이 많이 남도록 함축하여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상에 담긴 학살의 흔적, 그들의 목소리가 역사를 설명하고 기록하는데 충분한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저예산으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 역사의식이 투철하고 자본에 꺽이지 않는 의지가 분명했기 때문일겁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뒤로 가면서 몰입도가 약간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큐멘터리라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정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계속 파헤쳐가도록 유도해야 집중이 잘 되는데, 계속해서 영상의 나열인 것 같아서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이 영화를 상영하는 상영관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국가나 큰 단체에서 이런 영화를 많이 지원해주고 하면 좋을텐데, 아직 이런 영화가 흥행할 수 있는 환경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도 좋지만 나라가 좋아지려면 이런 역사 의식이 담긴 영화도 사람들이 많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레드 툼 (2015)

Red Tomb 
9.1
감독
구자환
출연
성증수, 박상연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1 분 | 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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