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개학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네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어쨌든 학교가 개학하니까 확실히 모든게 새로웠습니다. 학교 시설도 조금씩 바뀌고 친구들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어 있었습니다.

물론 제 모습도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태국에 갔다온 뒤로 제가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학교에 오니까 역시 제일 반가웠던 것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었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 금방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노래를 하고싶은 친구들은 노래연습을 하고 밴드를 하고싶으면 밴드부를 하고, 책을 읽고싶은 학생들은 책을 보며 공부를 하고싶은 학생들은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기가 하고싶은 활동을 해나갔고, 각자의 꿈에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개학을 하자마자 바로 방송부 활동을 했습니다.2학기 때부터는 방송부에서 한 달에 한 번 학교 영상을 제작하기 때문에 매우 바빴습니다.

저는 방송부에서 촬영을 맡았는데 아직 영상편집이 미숙해서 아쉽게도 편집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촬영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의 일주일에 걸쳐 모든 촬영을 끝내고 영상 한 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영상을 다 만들고나니 뿌듯한 마음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방송부말고는 특별히 하는게 없었습니다. 만날 촬영만 하고 편집때문에 컴퓨터만 보고있으니까 일종의 스트레스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뭔가를 찾던 도중 농구라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농구는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스포츠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학교가 사용하는 농구공


농구 동아리의 회장을 제가 맡고 있었고 시간이 나면 친구들리 모여서 농구를 하며 많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날 방송부 일만 하고, 공부만 하면 뭐합니까? 학생이라면 역시 체력이 있어야겠죠. 그래서 선택한게 농구라는 운동이었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농구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이 많이 없었기에 농구를 할. 친구들을 모으는게 항상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농구를 할 때 농구를 할 친구들을 모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농구를 아예 학교의 수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방과후 수업' 이라는게 있습니다. 축구, 요리, 영어, 작곡, 밴드연주 등... 여러가지 방과후 수업있었습니다. 하지만 농구 방과후 수업은 없었습니다.

우리학교의 농구 골대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냥 체육 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농구 방과후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뱡과후 신청서 몇 개를 작성하고, 농구부 멤버들끼리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 절차들을 모두 거쳐서 드디어 농구 방과후 수업이 만들어졌습니다. 수업은 일주일에 총 두시간을 하기로 했고 모두 5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기로 했습니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운동을 하려고 했으나 매일 귀찮아서 미루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과후가 시작되는 다음주부터는 그렇지 않을 것 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인 농구로 운동을 하고, 또 꼭 해야하는 방과후 수업이기 때문에 꼭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생겨서 빼먹을 일도 없을 것 입니다.

앞으로 2학기 생활이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방송부도 시작하고 농구부도 제대로 활성화되면서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주에는 드디어 학교가 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이했습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만난 친구들이 너무나도 반가웠고 학교생활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방송부에서 하는 활동때문에 정말 일주일 내내 계속 바빴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이번주 금요일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다가 일어나서 바로 제사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제사를 끝내고 다음날, 저는 그제서야 조금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편하게 쉬려고 했는데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날은 우리 청소년 문화의집 동아리인 NED에서 부스를 운영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창동으로 갔습니다.

창동에는 사람들이 무지 많았습니다. 그리고 햇볕도 쨍쨍해서 매우 더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저는 부스를 운영해야 했습니다.


제가 동아리 회원들과 운영하는 부스는 바로 '청소년 인권' 에 관한 부스였습니다. 그 부스는 학교에서 선생님들로 부터 침해당하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했습니다.

예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학생들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학교에서 국민으로써 지켜져야 할 인권이 많이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뺨을 맞거나 심한 체벌을 당하거나, 두발을 제한당하고, 성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 것, 이 모든 것이 인권침해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학생인권이 많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누구 하나 나서서 인권침해를 막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경험을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학교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경험도 엄청나게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가 제정되기 위해 서명운동도 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자율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태봉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학생이고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을 인터넷이나 친구로부터 많이 보거나 들어왔고,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인권이 보호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청소년 인권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물론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계속 학생인권 부스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런 작은 부스를 운영한다고 해서 법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런 활동이 다른 곳에서도 많이 활성화가 된다면 충분히 학생들의 인권은 보호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태국의 '반부왁캉 학교' 에서는 정말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태국에서 지내는 12일의 일정 중에서 대부분이 학교에서의 일정이다보니 학교에서의 활동은 정말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학교에서의 활동은 아무래도 학생들이 있다보니 전부 그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반부왁캉 학교의 학생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제일 처음 했던 활동은 태국의 전통악기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태국의 학생들이 먼저 무대에서 전통악기로 공연을 하고 우리들이 태국의 학생들에게 악기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악기는 종류가 4~5개 정도 있었는데 저는 그 중에서 바이올린같은 현악기와 기타같은 악기 2가지 정도를 배워보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지만 솔직히 태국의 악기는 다루는게 정말 쉬웠습니다. 한국의 악기들은 각 음정마다 소리내는 법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태국은 그냥 한칸씩 내려가는 형식이라서 외우기도 쉬웠습니다.

그리고 그 때 배웠던 기타와 비슷한 악기는 실제 기타와는 다르게 특별히 외워야하는 코드같은 것도 없었고 오직 간단하게 계이름으로만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웠던 두 악기 모두 줄이 두 개밖에 없어서 아주 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방 악기를 익혀서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배웠던 '비행기' 라는 노래를 연주해서 태국의 학생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태국 학생들이 박수를 쳐주면 저는 기분이 살짝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우리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바로 '자기 이름으로 도장만들기' 였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지우개를 이용해 한글로 이름을 새겨 도장을 만드는 활동이었습니다.

우리 단원들은 태국의 학생들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지우개 위에 한글로 그 이름을 적어주었습니다. 그러면 태국의 학생들은 한글로 된 자기이름을 따라 칼로 파냈습니다.


그리고 도장밥에 찍어서 종이 위에 도장을 찍으면 태국 학생들의 한글로 된 자기이름 도장이 완성된 것 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학생들이 한 종이에 자기 도장을 찍었고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종이 위에는 태국 학생들의 이름이 찍혀있는데 그 종이를 보면 태국인들의 이름이 한국에 비교하면 정말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잘 찾아보면 '똥' 이라는 이름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국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외국이기 때문에 한 번 웃고 넘어갔습니다. 태국에서는 그런 이름이 일반적인 이름일테니까요.

또 제가 어릴 때 다니던 태권도의 도복을 입고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고 태권도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문화를 태국의 학생들에게 소개시켜주는 시간도 잠깐 가졌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는데 바로 태국 학생들과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활동입니다. 우리 러닝타이 팀이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온 봉숭아 물들이기 세트로 다함께 봉숭아 물을 들였습니다.

그 활동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때 물들였던 봉숭아가 아직도 손톱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제 손톱을 보면 태국에서 봉숭아 물을 들였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놀이인 '제기' 를 직접 만들어서 제기차기를 해보는 시간도 가졌는데 사실 그 활동은 제기 만드는데 너무 열중해서 직접 차보는 것은 별로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형들이 태국의 학생들과 함께 제기차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놀아서 마음이 좀 편했습니다.


그 외에도 태국의 전통문화를 배워보는 활동도 있었습니다. 태국의 전통음식을 만드는 활동도 하고, 태국의 전통 장신구를 만드는 활동, 태국의 꽃다발 만드는 활동 등... 참 많은 것 같네요.


저는 이 활동들 중에서 태국의 전통음식을 만드는 활동을 했습니다. 무슨 '떡' 같은 음식을 만들었는데 저는 너무 어려워서 잘 하지 못했습니다.

난생 처음보는 재료들을 섞어서 반죽을 하고 그 반죽한 것들을 어떤 나뭇잎에 싸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글로 적으면 정말 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계속 헤매다가 태국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세 개정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만들고 나니까 뭔가 뿌듯하고 제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태국의 반부왁캉 학교에서 했던 활동은 이것말고도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활동들을 이번에 전부 적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문화교류를 했던 활동들을 바탕으로 포스팅했습니다.

태국의 학생들과 문화교류를 하면서 정말 느낀게 많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문화를 태국의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니까 뭔가 한국인으로써의 자부심같은게 느껴졌고 반대로 태국의 문화를 배울 때에는 태국 학생들에게 고마움이 많이 생겼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우리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알려주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태국 학생들의 모습은 문화교류를 하러 온 저의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학생들과 태국의 학생들이 만나서 섞여 노는 모습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서 대화가 전혀 안되는데도 조금의 꺼리낌없이 활동할 수 있다는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언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태국의 학교에서 한국의 학생들과 태국 학생들 사이에 언어는 무의미했습니다. 

언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그 어떤 말로도 그 모습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표현할 방법을 굳이 생각해본다면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를 이용해 한국, 태국의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고 재미있게 지내는 모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태국에서 주로했던 활동은 바로 '반부왁캉 학교' 라는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그 학교의 학생들에게 태국에 대해 배우면서 교류하는 활동이었습니다.

태국은 보통 한 학교에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모두 다닌다고 합니다. 저희 러닝타이 팀이 갔던 반부왁캉 학교 또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전부 한꺼번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조금 특이했지만 그게 태국의 문화인 것 같아서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특이한게 있었는데 바로 교복입니다. 반부왁캉 학교는 학생들이 입는 옷이 요일마다 입는 옷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는 교복을 입고 화요일에는 사복을 입으며, 수요일에는 태국 전통옷을 입는 등 아주 특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국의 학생들

학교에 처음 가자마자 또다시 태국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태국 전통춤을 구경했습니다. 준비를 많이 했는지 우리를 환영하는 공연을 엄청 길었습니다.

솔직히 전통춤을 추는 공연이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계속 보니까 조금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러닝타이 팀도 공연을 해야하기 때문에 긴장되서 정신적으로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태국 학생들의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 러닝타이 팀도 무대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들은 계속 산캄펭 YMCA에서 계속 연습했던 '아름다운 세상' 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안무 연습도 많이 부족하고, 반주로 나왔던 노래와 우리가 연습했던 노래가 잘 맞지 않아서 우리 팀의 공연은 말그대로 망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고 모두들 웃으면서 태국 학생들에게 각자 연습했던 태국어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홈스테이에서 우리를 돌봐주실 각 가정의 어머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홈스테이는 우리 팀의 총 16명이 2명씩 총 8팀을 나눠 각 가정에 가서 지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팀의 어떤 형과 같은 홈스테이가 되었고 우리를 돌봐주실 어머님은 '메무' 라는 분이었습니다. 태국에서는 엄마를 '쿤메' 라고 불렀고 우리들도 홈스테이 어머님께 쿤메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각 홈스테이의 쿤메들은 우리들의 손목에 흰끈을 묶어주셨습니다. 태국에서는 흰끈을 묶어주는게 '축복' 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저희 쿤메가 흰끈을 묶어주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홈스테이를 하며 지내는 일주일동안 그 흰끈을 손몪에서 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흰끈은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세균? 때문에 계속 손목에 끼고다닐 수는 없지만 그 때 우리 홈스테이의 쿤메가 손목에 묶어주신 흰끈은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각 홈스테이에 배정되는 태국의 대학생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대학생들은 우리가 홈스테이에서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사실 우리팀 모두가 태국어를 잘 하지못하기 때문에 홈스테이에서 의사소통이 많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영어교육과를 공부하고 있는 태국의 대학생들을 각 홈스테이에 배정한 것 입니다.

홈스테이에서 우리의 의사소통을 도와줄 태국의 대학생들

이렇게 학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과 자유롭게 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직은 처음 만나기 때문에 서로 어색하고 잘 놀지도 못했습니다.

계속 놀다보면 그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을거라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태국의 학생들도 우리와 친해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저번주 일요일(7월 24일)에 저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 이유는 태국 자원봉사를 가기 전 미리 사전교육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침 8시에 출발했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4시간이나 훌쩍 지나 벌써 12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사먹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터미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양푼이 비빔밥을 사먹었습니다. 원래 양푼이 비빔밥을 많이 좋아했었는데 거기의 음식은 조금 짰습니다. 원래 서울사람들이 조금 짜게 먹나봅니다.


대충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택시를 이용해 사전교육을 하는 '서울올림픽파크텔' 이라는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터머닐에서 꽤나 멀었던지 약 30분정도를 가야했고 택시비는 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어쨌든 저는 서울올림픽파크텔이라는 어느 호텔의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해외자원봉사 파견인들이 몇 명 앉아있었습니다. 약속시간인 2시가 되자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고 사전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태국으로 가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태국 이외에도 캄보디아와 필리핀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각 나라마다 15명의 청소년과 1명의 인솔자 선생님으로 이루어져 총 16명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태국팀에는 대학생이 3명 있었고 남자는 5명, 여자는 1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대충 간사님의 말씀을 듣고, 각 나라끼리 모여서 자기소개시간을 가졌습니다. 태국팀의 15명중에서 저만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튀어보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의견을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자기소개시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서울까지 왔다고 당당히 말했고 태봉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도 자신감있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태봉고등학교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전혀 부끄러운게 없었습니다.

저는 태봉고등학교에 대해 말하면서 서울사람들의 대안학교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꾸려고 열심히 학교소개를 했습니다. 다행히 대안학교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인사도 그렇게 나누고 각 나라에 가서 사용할 깃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태국팀은 '태국에 가서 발로 뛰며 열심히 활동하겠다' 라는 의미로 '러닝타이' 라는 팀명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깃발에는 팀명에 맞춰 사람이 달리고 있는 모습을 바느질로 그려넣었습니다. 바느질하는 재료는 어디선가 주워 온 버린 옷들이었는데 색의 제한이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바느질이라 그런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태국, 캄보디아, 필리필 3팀 모두 완성하지 못하고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쉬는시간마다 꼬박꼬박 바느질을 해서 완성시키기로 했습니다.

잠시 쉬고나서 바로 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일정을 보니 휴식시간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빡빡한 일정을 계속 소화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초반이라 그렇게 힘든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태국팀이 받은 첫번째 교육은 '평화의 문화' 라는 주제의 평화교육이었습니다.

먼저 각자 평화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평화가 있으려면 꼭 있어야하는 것들과 없어야 할 것들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5개를 적었는데, 저는 친구, 이불, 잡념, 소음 같은 것들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각자가 적은 것들을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들끼리 모아서 교육을 하시는 선생님께 제출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모아진 평화에 대한 단어들을 화이트보드에 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크게 공동체, 사랑, 학교, 경쟁, 전쟁, 편안함 등으로 나뉘어진 것이 보였습니다.


평화에는 공동체와 사랑, 편안함 등이 있어야 하고, 학교와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화가 있으려면 학교가 없어야한다는 반대했습니다.

학교가 없어야 한다고 적은 사람은 학교가 있으면 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평화가 오더라도 학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육이 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실천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학교가 있을 때 만큼의 교육의 활성화가 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경쟁이 없어지되 선의의 경쟁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의견에도 반대를 했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도우며 배우는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해서 교육을 하면 경쟁 없이도 얼마든지 경쟁했을 때보다 더 나은 성과의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수업만 듣는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계속 말하고 남의 의견도 들어보면서 평화에 대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평화에 대한 이해는 다양하지만 결국에는 몇 가지의 큰 주제들로 묶이는 것을 보고, 이런 모습을 통해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평화교육을 받았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평화교육 받은 것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포스팅하기로 하겠습니다.
같은 반의 친구들과 남해로 여행을 가니 역시 뭔가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친구들이랑 놀 때에는 노래방이나, 당구장에 가거나 농구를 하러 가면서 항상 똑같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직접 회의를 하고, 여행의 일정을 짜서 여행을 가니까 노래방이나 당구장보다 훨씬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함께 가신 담임 선생님을 제외하고 저를 포함해서 총 8명이 여행을 갔는데 먹을 것을 사려고 장을 볼 때 약간 힘든 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장을 볼 때에는 8명 모두가 각자 먹고싶은 음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의견충돌과 개인행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만 계속 고집한다거나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을 사기 위해 따로 마트를 돌아다닌다거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반이 단합이 안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수욕장을 갈 때 싹 없어졌습니다. 해수욕장을 갈 때 우리들은 담임 선생님의 7인승 차를 타고 갔는데 무려 9명이나 타서 너무 좁아서 많이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해수욕장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거의 1시간 30분동안 길을 헤맸습니다. 하지만 해수욕장에 가는동안 친구들 모두 불편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모두 힘을 합쳐서 이정표를 계속 쳐다보고 보이는 사람마다 해수욕장의 위치를 물어보면서 사촌 해수욕장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우리들은 정말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재정이라는 친구가 튜브도 들고왔었고 다들 무더운 날씨라 그런지 정말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해수욕장을 가기 하루 전에는 계곡을 갔었는데 계곡에서 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넓고 깊은 남해의 바다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놀고나서 할아버지 집에 돌아갈 때에는 다행히 길을 잘 찾아서 빨리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역시 친구들은 모두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몇몇의 친구들은 선생님과 함께 저녁밥을 준비했고 나중에는 저녁밥을 정말 배가 터지게 먹고도 모자라서 컵라면도 먹었습니다.

정말 남해 여행에 다녀와서 살이 1kg 정도 더 쪘을 정도로 여행에서 음식을 많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에서 많이 노니까 그 만큼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숨 푹자고 나니까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저는 전날 밤에 늦게까지 계속 놀아서 그런지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조금 구겨져서 잠을 잔 덕분에 몸이 매우 뻐근했습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마산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금방 일어나서 짐을 싸고 집을 대충 치우고 난 뒤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게 벌써 어제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여행도 끝났으니 방학동안 당분간 학교의 친구들을 볼 수가 없겠네요.

확실히 학교생활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보니까 벌써 방학이 지루해지고 개학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방학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방학동안 서울에도 가야하고, 태국에도 해외자원봉사를 떠나야합니다. 다른 친구들도 저처럼 방학동안 각자가 해야할 일이 있을테니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그렇게 조급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우리반 학생들이 계획을 짜서 방학 때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갈 장소는 남해에 있는 저의 할아버지 집으로 정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는 이제 아무도 없기 때문에 가끔씩 사람이 가줘야 될 것 같아서 제가 우리 할아버지 집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각자 2만원씩 가져와서 끼니를 해결하고 2박3일동안 신나게 놀 계획을 짜서 우리반 담임 선생님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갈 때 담임 선생님도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여행 당일날 우리들은 두 팀으로 나눠서 남해에 가기로 했습니다. 진주에서 가는 사람들과 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모여서 가는 사람들이 모여 남해로 출발했습니다.

남해에 도착해서 진주팀과 만나서 함께 장을 보러갔습니다. 각자의 용돈을 모아서 삼겹살, 햄, 라면, 음료, 각종반찬 등 다양한 음식들을 잔뜩 구입해서 택시를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할아버지 집은 몇 달동안 비워서 그런지 매우 지저분했습니다. 총 8명의 친구들이 힘을 모아서 함께 힘을 모아 집을 치우니 금방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들은 집에서 우선 조금 쉬다가 바로 계곡으로 놀러갔습니다. 계곡은 집에서 얼마 멀지 않아서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각자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던지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서로 물에 빠뜨리기도 하고 미끄러워서 넘어지기도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이 간 친구 중에서 문석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친구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벽을 짚어서 벌에 쏘인 것 입니다.

상황이 너무 웃겨서 친구들 모두 벌에 쏘인 문석이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석이는 심각했습니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물에 들어가자마자 벌에 쏘여서 놀지도 못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 친구들을 지켜보기만 해야했습니다.

벌에 쏘인 문석이의 손가락

왼쪽에 앉아있는게 문석이 입니다.


하지만 그런 불쌍한 문석이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은 계곡에 몸과 영혼을 맡기고 재미있게 놀고있었습니다.

어쨌든 계곡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나서 우리들은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즐거워했고 다행히 문석이도 즐거워보였습니다.

계곡에서 나와 남녀를 나눠 샤워를 하고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교에서 일하시다가 우리들을 위해 일부러 길을 찾아가며 힘들게 오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이며 저녁밥을 준비중이셨습니다. 우리들을 샤워를 끝내고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요리 선생님이시고 선생님의 정성이 듬뿍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라면스프를 넣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녁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저녁밥을 다 먹고나서 설거지를 하면서 깨끗하게 정리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젠가 우리반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밥을 해줄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쁘신데도 남해까지 먼길을 달려와주시고 우리들을 위해서 밥도 해주시고, 정말 여러모로 이번 여행에서 선생님의 역할이 참으로 컷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의미가 별로 없었을 것 입니다. 친구들끼리 놀아도 되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처럼 어른이 있어야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담임 선생님께서 함께 해주신 것만 해도 정말 크게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LTI PT-Day 발표를 해보고 배운 것

드디어 저도 PT-Day 발표를 했습니다. 사실 이미 2일전에 발표를 했었지만 이제야 블로그를 쓰게 됩니다. 제 발표의 주제는 '방송PD의 꿈을 위한 영상 미디어 체험활동'으로 정했습니다.

저는 PT-Day 세 번째 날 첫 번째 순서에 발표 했는데 마지막 날이고, 제일 처음 시작하다보니까 긴장과는 조금 다른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발표를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긴장은 전혀 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빨리 발표를 하고싶다는 기대감까지 생겼습니다.

발표 시간은 각자 15분이 주어지는데 저는 발표 전 날 혼자 무대에서 마이크를 들고 리허설을 해 본 결과 14분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제가 발표를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형식적인 칭찬인지는 몰라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내 발표가 끝난 후, 친구의 발표 차례.


제가 발표를 하는 동안 아버지께서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을 유튜브라는 사이트에 올려놓으셨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rhFMS_zc65Q



찍어 놓은 영상을 보니 제가 발표를 할 때 계속 배를 만지작 거렸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발표를 하면서 배를 만지는 저의 모습은 웃겼습니다.

이렇게 제가 발표를 하는 모습을 영상을 보니까 제가 부족했던 점을 정확히 알게 되었고, 다음에 또 발표할 일이 생기면 배를 만지는 등의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T-Day를 하기 전에는 보고서와 파워포인트, 대본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는데 저는 보고서와 파워포인트만 만들어서 제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대본도 작성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발표를 할 때에는 대본을 작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본을 적어서 발표 할 때 대본을 그대로 읽을 바에야 차라리 발표를 하지 않고, 그냥 그 대본을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보여주는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를 하면서 대본을 읽으거면 그게 연극이랑 뭐가 다릅니까? 물론 대본을 적어서 발표하는게 말을 더 잘할 수 있고,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대본을 적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게 발표라고 생각합니다.

제 발표가 끝나고 남은 학생들의 발표도 끝나고 난 뒤 우리 학교는 하룻밤을 자고 방학을 했습니다. 방학이라 기숙사에 있는 모든 짐을 집에 들고가야 했습니다.

제가 들고가야 할 가방은 6개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챙기기 힘들었던 것이 바로 기숙사에서 사용하는 저의 이불이었습니다.

다행히 제 친구 윤이가 힘겹게 이불을 들고 저의 집까지 옮겨주어서 무사히 집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짐을 챙기느라 너무 바빠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짐이 산처럼 많이 있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방학이 되었습니다. 매우 짧은데다가 저는 3반 학생들이 모여 가는 여행을 가야하고 서울에도 가야하며, 무엇보다고 11박 12일로 태국도 다녀와야해서 방학동안 집에 있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래서 쉴 틈이 없다는 표현밖에 안나오지만 그래도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드디어 1학기의 마지막 학교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PT-Day 라고 불리우는 이 행사는 1, 2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각자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여 1학기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위해 활동했던 내용을 발표하는 행사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파워포인트로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영상을 제작하거나 공연을 하며 PT-Day
발표를 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이니까 무난하게 파워포인트로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이 발표하는 모습을 보니 제 발표가 너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번에 생물 수행평가로 만들었던 영상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PT-Day는 총 3일간 진행됩니다. 저는 다행히도 마지막 날에 발표를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날의 제일 첫번째 순서이기 때문에 부담되는게 조금 있습니다. 그래도 긴장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하게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발표는 2학년들에게 각각 10분씩 주어집니다. 반면에 1학년에게는 15분씩 주어집니다. 2학년보다 5분을 더 주는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저는 제 발표를 5분이나 더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PT-Day 때에는 앞에도 언급했듯이 자신이 태봉고에서 1학기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배운 것, 느낀 것, 즉 자신이 활동했던 LTI를 발표하는 것 입니다.


하지만 몇 몇 학생들은 LTI 활동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 관심있는 분야를 조사해서 발표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학생들은 매우 드물고,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꿈에 관련된 것을 발표합니다.

발표는 마이크를 들고 하는데, 요리사의 꿈을 가진 어떤 2학년 누나는 자신이 만든 요리를 여러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발표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앞에서는 PT-Day 발표를 하는데 뒤에서는 자고있는 학생들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방송부 일로 캠코더로 발표하는 학생 전부를 다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잠이 와도 절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방송부의 캠코더입니다.


PT-Day 발표는 태봉고등학교의 전교생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 학생의 학부모님들, 심지어는 교장, 교감 선생님들도 모두 참가하셔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십니다.


제가 발표하려면 아직 하루가 남았습니다. 그 동안 대본을 열심히 보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계속 보충하면서 열심히 준비할 것 입니다.

제 PT-Day 발표가 무사히 끝나면 다시 블로그에 포스팅하겠습니다.
주말에 집에 와서 아버지가 갑자기 토요일 인터뷰를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번에 인터뷰하러 가야한다는 파비님의 댓글을 본 것 같았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아버지와 함께 인터뷰를 하러 경남도민일보로 갔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하는게 아니라 '정동영 최고위원 님' 께서 오셔서 파워블로거들이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파워블로거에 속해 함께 인터뷰를 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미디어로 힘이 있는 파워블로거는 아니지만 그냥 아버지를 따라 간 것과 별 다를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을 인터뷰 해보는 경험이 또 언제 있겠습니까? 그냥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를 따라 인터뷰를 하러 갔습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저를 포함한 블로거들이 인터뷰할 사람은 '정동영' 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국회의원으로, 최초로 두 번 연속 최다득표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많은 일은 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사실 정치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인터뷰를 해야하니 질문을 몇 가지 준비해 갔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학생이다 보니까 학생에 대한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 인권 문제' 아니면,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학생들의 자살문제' 이런 종류의 질문을 준비했는데 인터뷰는 처음해보는거라 어느 타이밍에 질문을 할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타이밍을 잡아주셨고 드디어 저에게도 질문할 기회가 왔습니다. 저는 먼저 "학생들이 학교에서 체벌이나, 성적을 가지고 차별하는 등의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 을 정동영 의원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정동영 의원님은 거기에 대해서 "분노 한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매없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의원님 또한 요즘 학생들처럼 어릴 때 학교가기가 무척 싫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교육정책나 어른들의 생각에 문제가 있어서 요즘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이 불행하다고 하셨으며 정치가 학생들이 가고싶은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학생으로써 공감가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물론 많은 것이 자율적인 태봉고등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학교가는 것이 너무나 좋지만 확실히 정동영 의원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느껴졌습니다.

인문계를 다녀본 적은 없지만,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죽어라 공부만 하다가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학생 때에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해보는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질문의 답변이 끝나자 또다시 정치적인 말들이 오고갔습니다. 솔직히 이해도 안되는 어려운 말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역시 인터뷰를 할 때에는 정치면 정치, 경제라면 경제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고 인터뷰 하는게 좋다는 것 을 알게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말씀 한 개를 들었습니다. 오늘 인터뷰를 하기 전에 정동영 의원님은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에 비행기가 사고날 뻔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동영 위원님은 자신이 '결국 이렇게 가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시면서 말씀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기억에 가장 남아있는 말입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는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약 1주일간 학교에서 가는 제주도 도보여행으로 인해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7박 8일간 제주도의 여러곳을 걸으면서 학생들이 자아 성찰을 하는게 학교의 목표였습니다.

운동화와 입을 옷, 우비 등 여러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모조리 챙겨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기위해 부산으로 갔습니다.

항구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태봉고등학교 사람들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제주도에는 저를 포함한 1학년들만 가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학생의 가족들이 배웅을 하기 위해 항구까지 왔기때문입니다. 물론 저의 어머니도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바쁘셔서 오시지 못했지만 어머니라도 와주셔서 무척 기뻤습니다.

어머니는 제주도에 가서 고생할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며 선크림과 용돈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가서 사진을 많이 찍으라는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물론 저는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필요한 사진을 찍기위해 카메라를 들고갔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3일째 정도 되면 사진 찍는게 귀찮아져서 사진을 찍지 않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도 사진을 미리 많이 찍어보았습니다. 나중에 되면 어차피 사진을 많이 못찍을 것 같아서 그냥 카메라의 성능을 시험하는 겸해서 여러가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거의 다 친구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저는 그냥 찍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약간의 연출을 겸비해서 조금 특별하게 찍어보았습니다.

먼저 제일 많이 하는 점프샷을 찍어보았습니다. 타이밍 맞추는게 꽤나 어려웠지만 두 세번 찍다보니 요령이 생겨서 쉽게 점프샷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점프샷 말고도 친구들을 모아서 재미있는 사진을 마음껏 찍어보았습니다. 만화 파워레인져의 모습을 따라한 포
즈도 취해보고 단체로 엎드려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친구들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사진 찍는 것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원하는 사진이 찍히면 왠지 모르게 엄청난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엽기적인 사진을 찍으면서도 항상 즐거워하는 우리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진정한 청춘이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이것도 연출된 사진입니다. 절대 태봉고는 체벌하지 않습니다.


그런 청춘의 다짐을 하고 우리는 7박 8일에서 일정이 변경된 6박 7일의 긴 제주도 여정을 떠나기 위해 제주도로 가는 배를 기다렸습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각자의 다짐을 하면서 점심밥을 김밥으로 먹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떠나는 제주도 도보여행이 매우 기대가 되었습니다.

6박7일동안 제주도에 가면 일주일동안 계속 걷기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뿐만 아니라 많을 생각을 하고 학교의 목적대로 정말 자아 성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 제주도 도보여행을 무사히 마친다면 저는 많이 바뀌어있을 것 입니다. 블로그를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제주도 도보여행을 다녀온 상태이지만 마음만은 아직 제주도 도보여행 출발전입니다.

그렇기에 제주도에 다녀오고 나서 느낀점을 적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특별히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제주도 여행을 가기 전의 설렘과 긴장감을 블로그에 올려보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생물 수업시간에 제출하는 수행평가 내용입니다.
지구의 에너지에 대해 조사한 내용이고 열심히 적었습니다.ㅎㅎㅎ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게되네요. 그동안 블로그에 올릴 사진만 찍어놓고 귀찮아서 글은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정신차리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LTI' 입니다.  LTI는 제가 다니는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이 받는 특별한 수업입니다. LTI 시간에는 특별한 과목을 수업받지 않고 자기가 직접 배우러 나갑니다.

먼저 자신의 멘토를 구합니다. 자기 꿈에 맞는 사람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될 학생은 의사선생님을 찾아가고 요리사가 될 학생은 요리사를 찾아갑니다.

저같은 경우는 장래희망이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창원 MBC라는 방송국에 찾아갔습니다. 혼자 가려고 했는데 마침 시나리오 작가를 희망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와 함께 갔습니다.

이번주 화요일에 갔었는데 사실 저번주 화요일에 처음 갔었습니다. 그 때에는 안타깝게도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았을 뿐더러 그 때에는 그냥 멘토선생님과 인사만 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번주 화요일에는 진짜 제대로 약속도 잡고 수업을 받으러 가서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저랑 같이 갔던 친구는 세정이라고 하는 친구인데 아까도 말했듯이 시나리오 작가를 희망하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의 멘토는 MBC에서 일하시는 '김수미 작가님' 이신데 우연히도 제 멘토 선생님인 '전우석 PD님' 과 같은 방송을 준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린뒤 택시로 갈아타고 창원 MBC로 달려갔습니다. 확실히 방송국이라는 곳은 엄청났습니다. 방송국을 몇 번 가보기는 했지만 제 의지대로 계획을 짜고 간 적은 처음이라서 확실히 기분이 달랐습니다.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보니 전우석 PD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일주일 만에 만나서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기대도 많이 되었습니다.


전우석 PD님은 제가 옛날에 재미있게 시청한 3부작 드라마인 '누나의 3월' 이라는 드라마를 제작하신 PD님이라 저에게 무척 존경스럽게 보이셨습니다.

PD님은 역시 책과 영화를 많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제 나이 때에는 많은 음악을 듣고 많은 것을 보는게 아주 도움이 되신다며 '빌리 엘리어트' 라는 영화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방송국에는 저와 세정이의 이름이 적혀었습니다. 태봉고에서 우리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기분이 엄청나게 좋았습니다.


미래에 우리들이 일할 방송국이라는 곳에 우리 이름이 적혀있다는 자체가 아주 특별하고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곳을 견학시켜 주셨습니다. 방송이 끝난 상황이라 방송하는 것을 직접 볼 수는 없었고 그 대신 라디오 방송을 할 때의 진행상황같은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이크에 직접 말도 해보고 신청곡을 받은뒤 음악을 트는 방법도 배워보고 방송소품도 구경해보면서 꽤 다양한 것을 체험해보았습니다.


제가 라디오 방송을 하는 PD가 되고싶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방송국에서 하는 일을 직접 체험해보아서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아마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방송국에 가서 PD님이나 작가님에게 수업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 때마다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면서 방송국에서 배운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글로 남겨놓음으로써 뿌듯함도 느끼고 이런식으로 제 꿈에 한발짝 다가섭니다.
여러가지 사정때문에 이렇게 또 주말에 블로그를 올리게 됩니다. 오늘 쓸 주제는 학교의 자리배치에 대한 내용입니다.

카메라를 산 기념으로 학교에서 사진을 계속 찍고다녔는데 그 사진들을 학교에서 네이버에 만들라고 한 블로그에 다 사용해버려서 이제야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학교에서 찍은 사진 중에는 우리반의 자리배치를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자리배치가 좀 특이합니다.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는 시험을 칠 때 처럼 모든 책상이 띄엄띄엄하게 칠판을 향해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대안고등학교인 우리학교는 조금 다릅니다.

조금이 아니라 좀 많이 다릅니다. 우리학교의 자리배치는 쉽게 말해서 '자유' 입니다. 자리배치를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 입니다.

물론 일정한 제약이 있기는 합니다. 과학시간에는 모든 책상들을 붙여서 'ㄷ' 자로 모여 앉아야 하고 다른 한 명을 떨어뜨려 앉는 것도 당연히 안됩니다.


이렇게 거의 자유로운 자리배치로 인한 단점이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수업에는 그렇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완전히 이상한 모습으로 앉는 학생도 없을 뿐더러 교실의 크기도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학교는 책상들이 붙이지는 않았지만 벽에 붙지 않고 적절하게 모여있기 때문에 선생님들께서 수업을 하실 때 반의 모든 학생들을 볼 수 가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우리 학교의 자리배치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과학시간에 'ㄷ' 자로 앉는 것도 제 마음에 쏙 듭니다.

자리배치가 다른 점 말고는 보통 학교들과 다를게 전혀 없습니다. 교실에는 칠판과 사물함, TV가 있고 청소도 깨끗하게 해서 분위기도 아주 좋습니다.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교실에 컴퓨터가 없습니다. 딱히 수업을 할 때 선생님들이 컴퓨터를 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할 때 컴퓨터가 필요하셔서 사용하시는 선생님들은 직접 노트북을 가져오셔서 TV에 연결시켜 수업을 진행하십니다.
 
제 자리는 맨 뒤에 있습니다. 사실 말이 맨 뒤에 있지 교실이 크지 않아서 칠판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선생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책상에 많은 물건들을 다 올려놓는 스타일입니다. 좀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그게 제일 편한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서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학교는 동아리 활동이나 LTI말고도 교실활동이나 수업환경도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 학교의 수업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것 입니다.
방학하고 오랜만에 입어보는 중학교 교복

옷장에서 옷을 찾다가 우연히 오랫동안 입지 않고 있던 교복을 보게되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에 가면 다시는 입지 못할 교복들이었습니다.

중학교도 이제 개학하고 1주일밖에 못가니까 1주일만 입고 더이상은 입을 수가 없습니다. 뭐 가끔씩 심심하면 입어보면 되겠지만 그게 잘 안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는 고등학교는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는 학교라서 다시는 교복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교복 입을 일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옷장에 걸려있는 교복을 거의 한 달만에 다시 입어보았습니다.


정말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만 입지 않았는데 너무도 오랜만에 입어보는 것 같았고 너무나도 반가운 착용감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교복을 입은 상태로 아버지에게 보여드렸습니다. 교복을 입은 저의 모습을 보신 아버지는 왜 입어보냐고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아버지는 교복을 입은 저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주셨습니다. 앞으로 얼마 못 볼 모습이니 사진이라도 남겨놓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처음 알았는데 우리 중학교 교복은 참 멋있고 예뻤습니다. 이렇게 멋있는 교복을 왜 입을 때에는 몰랐을까요? 입을 때에는 단지 너무 얇아서 춥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우리 교복은 참 멋있었습니다.

중학교를 한 2년정도 더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복에 대한 정이 갑자기 커져버렸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 중학교 교복이 더 이상 몸에 맞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러니까 개학을 하고나서 남은 1주일동안 교복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입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시 옷장에 넣어두면 어른이 되어도 저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겠죠?
며칠 전(3월 10일) 저는 늘 그렇듯 학교에 가기위해서 가방을 챙기면서 아침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눈이 많이 온다는 이유로 초·중학교가 휴교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 날 너무 잠이 왔습니다. 아마 전 날에 늦게 자서 그렇게 잠이 많이 왔나봅니다. 하여튼 저는 학교를 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우리 학교에 전화를 해보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학교에 전화를 해보시더니 저에게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학교를 가지 않아서 한숨 푹 자려고 했는데 막상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이미 잠은 다 날라가고 아버지와 눈구경을 나가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저와 아버지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파트는 온통 눈으로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지리산에 갔을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눈이었습니다.

사실 지리산에서는 정신이 너무 없어서 눈구경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여유롭게 눈으로 덮혀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감상했습니다.

눈은 생각보다 많이 왔습니다. 마산에 눈이 오는 풍경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눈이 와서 기분만큼은 좋았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신나서 사진도 찍고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따라해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안들었습니다. 어릴 때 힘들게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누가 몰래 그 눈사람을 부셔놓은 안좋은 기억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드득'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눈을 만지는 것보다 눈을 밟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차가워서;;)


사실 학교를 가지 못할 정도로 눈이 온 것은 아닌데 너무 오랜만에 눈이 와서 휴교를 해준 것 같습니다. 학교를 가지 못할 정도로 눈이 많이 왔으면 고등학교도 쉬어야겠죠.

그리고 눈이 와서 학교를 쉬었다고 해도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눈때문에 학교를 쉰 대신에 여름방학이 하루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눈이 오는 날에 쉰 것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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