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8인의 무인도 여행기 2화

태봉고의 아주 특별한 졸업여행!

통합기행으로 무인도를 향해 떠난 8남자의 파란만장한 생존기 그 두번째 이야기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텐트를 치고, 낚시하고, 불을 피우고, 생선을 굽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원시인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제대로 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까? 

 


통영의 부지도로 무인도 체험 통합기행을 다녀온 후, 여행에서 찍은 영상들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3부작으로 기획하였고, 1화에는 무인도를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담겨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위험할 수밖에 없었던 사전 조짐이 있었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무인도에서 느낀 것은 자급자족의 삶만이 아닙니다. 사실 무인도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감정은 생명의 위협으로 인한 공포감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인도에서의 자유시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인도에 가게 된 경위  
http://kimty.tistory.com/536

무인도에서 잡은 물고기나 조개류 등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각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낚시를 하는 사람, 낮잠을 자는 사람,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사람 등 각자만의 방법으로 무인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촬영하러 다녔습니다
. 낚시를 하고 있던 현규는 바다에 낚시추가 돌에 계속 걸려서 어느새 세 개째 날려먹었습니다. !? 생각해보니 이제 선생님의 낚시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식량을 구할 희망이 있는 낚싯대를 모두 탕진한 현규는 좌절에 빠지고 마지막 남은 낚싯대로 선생님은 여전히 오징어를 낚기 위해 낚싯대를 던져놓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재호는 낚시를 하다가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림을 그리고, 소열과 재경, 지호는 낚시와 요리에 지쳐 텐트에 누워 부족한 잠을 채웁니다텐트가 불편했던 지우는 언덕위에서 낭만적인 낮잠을 청하는데, 계속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밀물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 ‘설마 우리 텐트까지 들어오진 않겠지?’하고 별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정말로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강풍이 불어 닥치고 거의 해일 수준의 파도가 우리가 있는 무인도를 덮쳤습니다. 작은 규모였습니다. 그래도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반쯤 무너져 있는 이도한 선생님의 텐트가 남아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도한 선생님의 짐은 모두 바닷물에 젖어버렸습니다
. 가장 큰 일은 선생님의 유일한 핸드폰이 바닷물에 잠겨 버린 것입니다. 소금물이라 고쳐지지도 않았고, 비상시에 무인도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사라졌습니다.

텐트에서 자다가 파도가 덮치는 것을 느낀 소열은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하여 단 2초만에 자신이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카메라, 가방, 노트북 등을 가지고 파도를 피해 텐트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낚시를 하다가 돌아온 선생님은 구입한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최신폰이라며 멘붕에 빠지셨고, 저를 비롯한 나머지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 때 마침
, 영화처럼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고, 우리 8명의 모두 혼란에 빠졌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때문에 텐트 안에 있어야 하는데, 파도는 계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빨리 텐트를 다른 자리로 옮기지 않으면, 바다에 잠길 상황이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 텐트를 분해하고 모든 짐을 챙겨 파도가 닿지 않는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언덕 위에는 웅덩이가 많아 빗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최대한 웅덩이가 없는 곳을 찾아 텐트를 다시 쳤습니다한 번 쳐본 텐트라서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태풍을 연상케 하는 지속적인 강풍과 비가 우리를 괴롭혔기 때문에 오히려 더 힘겨웠습니다.


텐트를 치는 동안 정말 설상가상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불행들이 저희를 덮쳤습니다
. 몇 가지 짐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가방이 바다에 잠겨 여벌옷이 다 젖어버리거나, 생수와 텐트를 고정할 돌이 언덕 밑으로 떨어져 버리는 등의 깨알같은 재앙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텐트를 다 치고 나서도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금방이라도 텐트가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이 안에 없으면 바로 날아갈 것 같아 모두 텐트 안에 들어가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재호가 선생님 몰래 핸드폰을 가져와서 당장 다음날 무인도를 빠져나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태풍이 불어 닥치는 이 무인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 강풍으로 인해 언제 텐트가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에 텐트를 다시 치느라 체력이 바닥나서 배도 너무 고팠습니다선생님이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초코바 8개를 뜯어 먹고, 재호가 폰과 함께 몰래 가져온 빵 하나를 8명이 나눠먹었습니다.

모두들 그냥 잠이나 자자고 해서 다들 잠을 청하는데, 저는 여벌옷이 바닷물에 젖은 관계로 후드티 하나만 입은 상황이라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잠도 오지 않았고, 그냥 밖에 나와 운동이나 했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에는 이미 몸이 완벽하게 지친 상태였고, 정말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바다를 보며 도대체 뭐가 잘못 된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아침에 부지도에 올 때 선장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선장님이 저희들을 데려다 준 곳은 부지도의 반대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좁아서 생활하기 불편하고, 자갈이 없어서 무인도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섬 반대편에서 머물기로 하여 지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만약 선장님이 권했던 곳에서 머물렀더라면, 바람을 등지고 있기에 강풍에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파도가 심하게 들어와도 지형이 높아서 텐트가 잠길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첫 번째 실수입니다. 두 번째는 지우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무인도에 도착했을 때 지우는 텐트를 우리가 현재 있는 언덕 위에 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덕위에서 웅덩이가 많다는 이유로 언덕 밑에 텐트를 쳤었고, 결국 짐의 절반을 바닷물에 맡기는 불상사를 겪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처음부터 무인도 체험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한 제가 가장 문제라는 본질적인 답에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들 바뀌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밖에 있어도 계속 추웠기 때문에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해보았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엄청난 강풍 소리가 제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강풍으로 텐트가 무너지고 저는 할 수 없이 잠자리를 옮겼습니다.

재경이 텐트의 친구들에게 최대한 붙어서 추위를 이겨내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하지만 몸의 한군데가 추우면 몸 전체가 춥게 느껴지는 것! 다리가 지나치게 진 재경이 때문에 텐트 문이 계속 열리고 발부터 시작해서 온 몸으로 한기가 올라왔습니다.

10월이 그렇게 추울 줄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최대한 참고 참아서 조금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 11... 시간이 미칠 정도로 늦게 갔습니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난 여기 왜 왔는가?', '내일 우리는 무인도에서 나갈 수 있는 것인가?' 텐트 안에서 추위에 떠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습니다.

정말 죽고 싶을 정로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미치게 잠자기를 원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허기짐과 추위에 지쳐 거의 기절하듯이 잠에 겨우겨우 들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나니
6시 정도였고, 다시 살을 깍는 듯한 추위와 대면했습니다. 모닥불이라도 피워보려고 해봤지만 어젯밤에 내린 비의 영향으로 나무들이 몽땅 젖어서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추위에 떨며
1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친구들도 일어나서 함께 텐트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호의 폰으로 선장님께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다행이 안전하게 구조? 되었습니다.



육지에 도착하고 곧바로 과자를 사먹었습니다
. 강냉이를 씹으며 통영에 있는 소열이 집에 가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같이 목욕탕으로 가서 그 동안 무인도에서 혹사시킨 자신의 몸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씻었습니다.
 

그러고 마산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사주시는 맛있는 저녁밥을 먹으며 우리들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역시 모두들 하나같이 무인도에 간 것 자체가 문제라며 앞으로는 함부로 위험한 일을 얕잡아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무인도에서 이것저것 느낀 게 참 많습니다
. 하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은 무인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감정들이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을 단 하나의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현재의 삶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태봉고만의 색다른 졸업여행, 무인도 체험 
 

이번주 화, 수, 목요일(10월 15일~17일)은 학교에서 지리산 종주를 하는 날입니다. 태봉고만의 이동학습 교과과정이라 전교생이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피소 예약의 자리가 부족한 관계로 3학년들은 따로 '통합기행'이라는 여행을 떠납니다. 7~8명씩 조를 짜서 2박 3일간의 여행 일정을 기획하여 나름대로 졸업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대구, 경주, 전주 등 대한민국의 여러 곳을 여행하는 일정이 세워집니다. 제가 속한 조는 '무인도'를 가기로 했습니다. 무인도에 가서 문명과 떨어져 지내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체험을 해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사회교과를 맡고 계신 이도한 선생님께서 담당을 하여 함게 가기로 했습니다. 무인도에 가져가는 준비물이라고는 물과 낚싯대, 버너 등의 음식을 제외한 최소한의 레저 용품과 잠을 잘 수 있는 텐트 뿐이었습니다. 

무인도에서 낚시를 하여 잡은 것들을 모닥물에 구워 먹으며 생활할 계획이었습니다. 물론 휴대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은 가져가지 않기로 했습니다.(만약을 대비하여 선생님만 휴대폰을 챙겼습니다.)

그 외에는 칼과 여벌옷 등의 간단한 개인 준비물을 챙겨서 15일 아침 마침내 무인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통영에 있는 '부지도'에 가기로 했는데, 짐을 실으면 선생님의 차가 비좁아 재경, 소열, 현규, 지호 4명은 미리 통영에 가있기로 했습니다.

저와 지우, 재호 그리고 선생님은 마트에서 물을 사고, 텐트 등의 짐을 챙겨 통영으로 향했습니다. 통영의 '척포 낚시배'라는 곳에서 통영 팀과 합류했습니다.



거기에서 추와 미끼 등의 우리 식량을 책임 질 각종 낚시 용품을 구입한 뒤, 낚시배를 타고 부지도로 향했습니다. 배를 타고 40분 정도를 가야만 도착하는 먼 곳에 부지도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부지도에 첫걸음을 내딛고, 바로 텐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촬영을 맡았기 때문에 작업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옆에서 열심히 기록했습니다.


텐트는 3인용 2개, 4인용 1개로 총 3개를 가져왔습니다. 사람이 8명이라 잘 곳이 넉넉해야 했습니다. 텐트를 치는데에 약 1시간여를 소요했습니다.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텐트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기술이 좋아서 그런지 별 문제 없이 간단히 텐트를 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들고오신 텐트는 방이 2개로 나눠져 있는 아주 거대한 용? 텐트였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나름대로 포근한 잠자리를 기대하며 별 걱정없이 다음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낚시팀은 낚시 장비를 챙기고, 나머지는 모닥불을 피우기 위한 나무 장작을 구하러 숲에 들어갔습니다. 부지도 숲에는 뱀이나 독충이 많다고 했기에 숲에 깊숙히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근처에서 꽤 괜찮은 장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낚시 준비를 마치고, 다같이 해안으로 갔습니다. 일단 먹을 것을 구해야 뭐든지 할 수 있었기에 일을 할 수 있는 인원을 모두 낚시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보통은 지렁이를 미끼로 사용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오징어를 잡기 위해 물고기 모양의 '루어'미끼를 사용하여 낚시를 하셨습니다. 다른 친구 3명은 일반적으로 낚시를 했고, 나머지는 칼을 이용해 돌에 붙어있는 각종 바다 생물을 잡았습니다.

간한하게 삶아서 먹을 수 있는 거북손과 삿갓조개를 주로 잡았는데, 가끔씩 운이 좋으면 굴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계속 촬영만 하던 저는 지루함에 지쳐 친구에게 잠시 카메라를 맡기고, 직접 낚시에 참여해보기로 했습니다. 통영에서 살며 어릴 때부터 낚시를 즐겨했다는 소열이의 간단한 낚시 노하우를 배워서 힘껏 낚싯대를 던졌습니다.

미끼를 던진 후 1분도 채 안되서 바로 뭔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왔습니다. 저는 친구의 조언대로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감다가 힘껏 끌어올렸습니다.

그 때 제가 던진 낚시 추에 걸려있는 것은 한 마리의 건장한 물고기였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잡은 물고기는 '용치놀래기'라는 이름이라고 하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낚시에서 처음 잡아 본 물고기였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저에게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주고, 그 이후에도 커다란 용치놀래기 2마리를 더 낚아 총 3마리의 물고리를 제 손으로 잡았습니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들은 고스란히 요리팀의 손에 들어갑니다. 요리학원에 다니는 재경이와 섬사람인 지호의 솜씨를 발휘하여 물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 바로 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7마리의 용치놀래기, 거북손, 삿갓조개, 굴 등 다양한 식량을 가지고 텐트로 돌아와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버너에 물을 끓여서 조개류를 삶아먹고, 모닥불을 지핀 뒤, 나뭇가지에 놀래기를 꽂아 구워먹었습니다.

초장과 소금을 들고 왔기에 나름대로 푸짐한 식사가 될 것 같았지만 역시 8명이 먹기에는 양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물고기도 잘 구워지지 않아서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식사는 저희들이 직접 잡아서 요리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뿌뜻함을 가지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자급자족을 체험한 것이죠.

지금 우리가 집에서 먹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준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것에 항상 감사합니다. 
 
이번 겨울방학은 너무나 바쁜 것 같습니다. 교과부 기자단 활동에 그린나래 캠프 진행, 영화만들기 동아리, 토론 동아리 등 정말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네요.

그래도 방학인데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밖에 자주 나가서 방학처럼 느껴지지가 않네요.
그래서 방학을 느껴보기 위하여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학교 친구들끼리 통영의 한산도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2박3일 동안 그 통영 여행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들은 먼저 통영 여객선 터미널로 모였습니다. 그 곳에서 오랜만에 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한산도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통영에서 한산도까지 가는 시간은 거의 20분이 걸렸습니다. 그 20분 동안 간만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실컷 맞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상쾌했습니다. 여행을 함께 갔던 친구들도 오랜만에 여행을 가니까 무척 좋았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즐거운 한산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한산도에 내려서 바로 버스를 탔습니다. 시내버스였는데 한산도 안에서만 운영되는 버스라 마을버스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처음 타보는 한산도의 버스가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제 친구가 사진에 찍혔음에도 제 친구가 그냥 한산도의 주민처럼 보였습니다. (그 만큼 적응력이 빠른 친구였다는....?) 


버스에서 내린 뒤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무슨 펜션이었는데 여행을 주최한 친구가 그 펜션에 아는 분이 있어서 쉽게 빌릴 수 있었다고 하네요. (역시 대한민국은 인맥;;;)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점심밥으로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저는 채식을 한다고 입맛이 없어졌는지 라면이 별로 땡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친구들끼리만 여행을 온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항상 제가 여행을 가면 선생님이나 어머니 같이 어른들이 한 명 이상 함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오직 친구들끼리만 여행을 갔습니다.

어른이 없으니 저희들은 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어른들이 없으니까 일정이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여행 계획이 정확하게 짜여있지 않아서 그냥 하루종일 숙소에만 있었습니다. 그냥 숙소에서 따뜻한 이불을 덮고 몇 가지 게임이나 대화를 하면서 노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 낚시나 한산도 관광 등 여러가지 일정이 있기는 했지만 밖이 너무나 추워서 거의 다 무산되거나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저는 답답해서 저 혼자 밖에 나가서 아름다운 한산도의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바닷바람도 맞으며 여행을 실컷 만끽했습니다.


한산도의 바다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밖은 너무나도 추웠지만 그 추위를 싹 잊게 해줄 만큼 바다는 저에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사실 그 보다 훨씬 아름다운 경치를 살아오면서 많이 봐왔지만 항상 새로운 경치를 볼 때면 그 경치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ㅎㅎㅎ


그렇게 이번 통영의 한산도 여행은 조금은 부족하게 계획된 여행이었지만 나름대로 친구들도 만나고 예쁜 바다도 만끽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재미있게 다녀왔으니까 다시 힘을 내서 남은 겨울 방학을 알차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아버지와 갔던 통영 여행에서 미륵산을 갔습니다. 사실 이번 통영 여행의 주목적도 미륵산 등산을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때 부터 계속 새해로 넘어가는 시기인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갔습니다.

제일 처음 등산을 간 곳은 지리산이었는데 그 때는 등산에 대한 지식과 장비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겨울산이라서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로 등산을 갔던 곳은 바로 마이산이라는 곳인데 그 산은 저와 아버지가 등산을 갔던 당시에 눈이 너무 많이 왔으며 여러가지 사정으로 정상까지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그 때에는 마이산의 정상까지 가지 못해서 약간 싱거운 등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힘들더라도 제대로 된 등산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각종 등산장비들을 꼼꼼히 챙겨오고 춥지 않기 위해 옷도 5겹이나 껴입었습니다. 그렇게 완벽한 준비를 끝내고 통영의 미륵산에 갔는데 생각보다 작은 산이었습니다.

미륵산은 해발 461m 밖에 안되는 작은 산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날씨가 별로 춥지 않아서 눈도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겨울산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것들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버지는 그냥 등산은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습니다.

케이블카는 인기가 많았던지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미륵산에 온 사람들 중에서 거의 대부분은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그리고 그 만큼 케이블카는 아주 잘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가보니 거기에도 사람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올라가는 케이블카에는 사람이 많지만 내려오는 케이블카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거기에서 다 놀고있었습니다. 케이블카로 올라간 산 위에는 시설이 아주 좋았습니다.

음식을 파는 곳이 대충 봐도 열 군데가 넘었습니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카페, 심지어 한 층을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까지 있었습니다.


확실히 '케이블카' 라는 편리한 운송수단이 있어서 그런지 산 위에는 많은 것들이 활성화될 수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만큼 미륵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그래도 조금만 등산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정상까지 한 번 올라가 보았습니다.(케이블카는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미륵산은 산림청이 지정한《100대 명산》으로 선정된 아름다운 산이었습니다. 100대 명산으로 불릴 만큼 미륵산의 경치는 확실히 아름다웠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그냥 산의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이나 찍으면서 여유롭게 등산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미륵산은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에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곳과 미륵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무척 짧아서 일반인들이 간단하게 운동하는 겸 등산하기에는 아주 좋은 코스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륵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팔고 시설도 무척 좋고 케이블카가 있어서 힘들지 않고 정말 부담없이 산의 맑은 공기와 경치를 만끽하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환경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륵산은 등산을 위한 산이 아니라 그냥 관광을 위한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등산에만 너무 집중해서 정신이 없다보면 산의 경치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미륵산 등산은 정말 산의 경치를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등산은 많이 못했지만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미륵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실컷 만끽할 수 있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등산이었습니다.


연말과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1년만에 아버지와 단 둘이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이 유럽으로 출장을 가셨습니다.

늘 1월 1일 되면 아버지와 함께 등산이나 여행을 갔습니다.
2년전 1월 1일에 아버지와 겨울 지리산에 가서 죽을 뻔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번에는 1월 1일에 아버지가 출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12월 30일(금)에 출발했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버스를 타고 간 곳은 바로 통영!!!

바다를 비롯한 싱싱한 해산물이 유명한 고장이었습니다. 학교 때문에 오후에 출발해서 통영에 도착하니 벌써 밤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잠을 잘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저희가 먼저 찾은 곳은 통영의 해저터널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압적인 노동을 강요하여 만든 터널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진 터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터널은 매우 정교하고 완벽하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시대에 바다 밑을 지날 수 있는 해저터널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굉장했습니다.


해저터널을 걸어가 보니 비록 벽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기에 터널 속에서 바다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바다 밑을 걷고 있다는게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해저터널을 나와보니 통영의 아름다운 밤바다가 저와 아버지를 반겼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바다가 훤히 보이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짐을 챙겨서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아침은 KBS의 1박2일에서 나왔던 충무김밥 식당에 가서 먹었습니다.

확실히 충무 김밥은 매우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아버지 둘 다 충무 김밥을 좋아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침을 먹고는 여행의 원래 목적이었던 미륵산 등산을 갔는데 그 등산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륵산 등산을 끝내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 바다위에 있는 거북선이 보였습니다. 통영은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과 판옥선을 가지고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곳입니다.

그래서 그 때의 영광을 기억하기 위해 통영의 바다 위에는 거북선이 남아있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얼른 거북선 안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거북선 안에는 임진왜란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처럼 많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물건들은 너무도 많이 봐서 별로 관심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심이 가는건 거북선 안에 있는 콘센트!! 아버지는 그 콘센트를 보시고는 "조선시대에도 전기를 사용했나?" 라는 농담을 하셨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고향인 남해에서도 노량해전이 펼쳐져서 거북선이 있습니다. 남해에 있는 거북선은 통영의 거북선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통영의 거북선에는 실망이 조금 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간 곳은 통영의 '동피랑 마을' 입니다. 통영이 꽤 좁았는지 해저터널, 미륵산, 거북선, 동피랑 마을 등의 유명한 관광지들이 전부 가까워서 다 걸어서 관광했습니다.

동피랑 마을은 이름처럼 아주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합니다. 바로 벽화골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벽화골목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선 벽화의 그림실력이 화가의 수준에 도달합니다. 또한 아이디어가 정말 톡톡 튀는 그림들을 몇 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자전거를 그림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림으로 골목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동피랑 마을도 몇 달 전에 와봤기 때문에 오래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버지가 출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빨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면서 느낀게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저도 조금만 있으면 어른이 되고 바빠지다 보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을 시간이 점점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부모님과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가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가 기숙사라서 지금도 부모님을 자주 만날 수 없는데 어른이 되면 얼마나 만나겠습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방학이고 여름방학 때 처럼 외국에 가지도 않으니까 이번 겨울방학 때에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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