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아버지가 쓰신 책을 읽었습니다. '김주완이 만난 열두 명의 고집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경남 지역의 유명한 사람이나 정치인들, 힘든 시절을 딛고 일어나 자기만의 철학을 실현시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이름을 알고 있던 분들도 세 분 있었는데, 고영진 전 교육감님과 박완수 전 창원시장님, 홍준표 경남도지사님, 그 분들이 살아온 이야기나 삶의 철학 같은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제가 잘 몰랐던 분들의 이야기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열두 분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떤 분은 어릴 때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자신이 하고싶었던 공부를 편하게 하면서 살아오셨고, 어떤 분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돈 버는데 삶을 투자해서 공부를 어쩔 수 없이 멀리 하신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 온 환경에는 상관없이 책에 나오는 분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분들의 인생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책에 나오는 분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충분한 노력과 투자, 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영히 해야하는 것임에도 세상을 살아가보면 자신의 공부에만 전념할 수는 없는 상황이 닥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나오는 분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낮에는 일하고 야간학교를 통해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성장시려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두 번째는 책에 나오는 분들 대부분이 인생에서 큰 시련을 딛고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시련이 가난일 수도 있고, 정치적 대립, 선거의 낙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련을 겪고, 그 분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한층 더 다듬어 새로운 모습으로 끝까지 도전하면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갑니다.

특히 경남장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를 맡고 계시는 송정문 씨의 이야기는 저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세살 때부터 넘어지면서 신경을 다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스물 살까지 그냥 집에서만 지냈다고 합니다. 학교도 못다니고, 집 밖에 나가도 딱히 갈 곳도 없는 '누군가에게 민폐만 끼지치 않고 살자' 라는 생각으로 살아 온 송정문 씨는 TV를 통해 여성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미국의 장애인들이 교육적으로 복지 혜택을 많이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보고 꿈을 가지지 시작했다고 합니다.

공부를 해서 미국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에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고 대학교도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고 오르막이나 계단이 있는 강의실을 다니며 대학교 공부를 하는 것은 송정문 씨에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장애인들이 공부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대학교를 고소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시련을 딛고 노력하여 석사 학위까지 따냅니다.

정말 멋있는 분입니다. 몸이 불편함에도 송정문 씨는 굴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노력하면서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이뤄내면서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몸이 멀쩡하면서도 시간이 많으면 게으름을 피우고, 공부보다 노는 것이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분야에 대한 절실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더 노력하고, 더 정신적, 인격적 수양을 해야겠지요. 책에 나오는 분들 모두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는 항상 엄격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열두 명의 고집인생이라는 제목처럼 책에 나오는 분들 모두 자신이 정한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것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고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책에 나오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배워야 할 부분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쳑하려는 정신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이미 한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 그로 인해 찾아오는 시련을 또다시 이겨냅니다. 참 멋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흥청망청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번 돈은 경남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라며 지역의 발전을 위해 돈을 쓰고, 장학 협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회에 환원합니다.

또한 자기 회사의 직원들에게 사용하는 돈을 아까워 하지 않고, 직원들의 복지에 최선을 다하고, 국가와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개선할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일에만 붙잡혀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이나 요리, 인문학, 운동 등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지면서 소양을 기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돈을 어떻게 벌고, 회사를 어떻게 더 성장시킬지도 충분히 생각하지만 번 돈을 어떻게 의미있게 사용할지도 충분히 고민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정말 크게 존경받을만한 삶인 것 같습니다. 
저번에 EBS에 직업체험을 갔을 때 만난 김현우 PD께서 내주신 숙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지식채널e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의 짧은 영상 기획안을 만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포스팅입니다.
http://kimty.tistory.com/515 

여튼 그 때 제가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만들면서 주제로 잡은 것은 미국의 농구 영웅 '마이클 조던'이라는 사람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농구를 잘했던 선수만이 아니라 '농구'하면 마이클 조던이 떠오를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가졌었고, NBA의 수많은 명장면과 명언들 그리고 미국의 진정한 영웅이라 불릴만큼의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마이클 조던의 인생에 대해서 조사해보고, 영상으로 그것들은 담아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저처럼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마이클 조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싶다고 생각해볼 것입니다.

- 농구 황제 - 
마이클 조던은 어린 시절, 자신의 형인 래리 조던이 농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진 운동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는 학창시절, 야구를 하다가 우연히 농구에 재능을 보이면서 1984년, 미국의 프로농구 시카고 불스에 농구 선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마이클 조던은 어린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형의 반만큼이라도 농구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형의 등번호 45번의 절반인 23번을 등에 달고 나옵니다.

그가 NBA에 데뷔한 첫 해, 시즌 평균 27.8득점이라는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농구계에 등장합니다.

그가 데뷔하고 자신의 팀 시카고 불스를 3년 연속이나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농구계에서 황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청소년 강도들에 의해 조던의 아버지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마이클 조던의 그 일의 충격 때문이었는지 갑자스러운 은퇴를 선언합니다.

조던의 아버지가 생전에 바랐던 것은 바로 야구였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바램에 부흥하기라도 하듯 그는 야구 선수로 데뷔합니다.

그는 메이저리그로 데뷔하여 인터뷰에서
"나는 도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농구에서는 모든 것을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도전할 것이 없다. 그래서 이젠 야구에 도전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하며 승승장구를 기대하지만 야구란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힘든 길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는 야구에서 큰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부진한 성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인 트리플A로 그리고 더블A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마침 마이클 조던이 속한 야구팀이 파업을 하고있는 상태라 그것은 계기로 조던은 야구에서도 결국 은퇴를 하게됩니다.

그는 농구를 그리워했고, 예전에 자신과 함께 뛰었던 시카고 불스의 동료들과 다시 농구 연습을 시작하면서 조던이 코트를 떠났고 약 1년이 지난 1995년(제가 태어난 해죠.ㅎㅎ) 농구계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가 농구계에 컴백했을 때 했던 I'm back. 이라는 말이 유명해질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농구 황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향샹된 실력으로 NBA를 주름잡았고 다시 농구 황제라는 칭호를 탈환합니다.

그는 또다시 자신의 팀 시카고 불스를 3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고 6번째 우승을 하게 되었을 때 손가락 6개를 치켜들며 농구 역사상 최고의 기록들을 남깁니다.

그는 단순히 농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수많은 농구 팬들과 농구 관계자들 농구 선수들이 존경했던 인물이며 흑인임에도 미국의 영웅이라 불렸습니다.


그는 오직 실력 하나로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 진정한 농구 황제였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이렇게 실력으로 성공한 아이콘으로 등극했지만 사실은 그도 야구를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실패를 경험했었고, 그런 실패들은 발판으로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말은 실제 마이클 조던이 했던
"나는 지금까지 9000번도 넘게 슛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나는 300번도 넘게 패배했다.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었을 때, 나는 26번이나 클러치 슛을 놓쳤다. 나는 내 인생에서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라는 명언에서 계속되는 실패의 경험이 자신을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를 가진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여 사용했습니다.

제가 이 영상으로 말하고 싶은 메세지가 바로 저 말에 담겨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자신이 그토록 하고싶었던구에서 실패했지만 결국 자신이 해왔던 농구가 자신의 적성임을 깨닫고 농구계에서 성공한 이야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실패를 경험합니다. 
거듭되는 실패를 경험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갑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실패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에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성질 급한 한국인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싶습니다.

물론 저도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지금까지 영상 공모전에서 많이 떨어져도 보았고 당장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일도 자주 겪어봅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보단 훨씬 잘했네' 이런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천재의 적성'을 만들고 나서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충고와 저의 생각을 정리하여 포스팅하겠습니다.)
저번에 제가 갈 태봉고등학교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역시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는 면접이라 무척 떨렸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하지만 긴장하는 것도 잠시 면접실에 들어가니 실제로 그렇게 긴장되는 않았습니다. 긴장은 커녕 준비했던 말을 거의 다 했었습니다.

면접은 30분동안 진행이 되었는데 면접을 보다보니 시간이 무지 빨리 갔습니다. 면접에서는 왜 태봉고에 들어오려고 하는지 무슨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지 이런 종류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하고있는 블로그에 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저는 태봉고에 가서도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글을 계속 올릴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면접 본 이야기를 왜 하필 지금 올리느냐? 그건 바로 오늘이 태봉고등학교 최종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면접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합격에 대해 잔뜩 기대하고 4교시 때에 컴퓨터로 태봉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찾아보아도 제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제가 태봉고등학교에 떨어졌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제가 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떨어지고 나니까 엄청나게 허무했습니다. 태봉고에 간다고 블로그에도 쓰고 자기소개서와 면접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한 번에 그냥 툭 떨어지니까 왠지 모르게 쓸쓸했습니다.

그렇게 쓸쓸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기분을 풀어보려고 친구들과 농구를 했는데 저를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저를 놀리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가 제 실력으로 떨어진거라 뭐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미안했는지 나중에 와서 장난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힘없이 그냥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또 5교시를 보내고 마지막 6교시 때에 저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 태봉고등학교 최종 합격자 명단을 다시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지만 친구들은 현실을 도피하지 말라며 저를 무시했습니다. 저는 다시 천천히 태봉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합격자 명단을 보았습니다.

저는 차분히 제 이름을 찾았습니다. 역시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거의 마지막 부분에 제 이름이 하나 적혀있었습니다.

분명히 제 이름인 '김태윤' 이 또박또박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는 "오! 붙었다! 붙었다!" 라고 소리를 치며 친구들을 껴안았습니다.

친구들은 못믿겠는지 합격자 명단을 살펴보았습니다. 친구들도 제가 합격한 것을 확인하고는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정말 반전이라며 감탄을 질러냈습니다.

저는 자리에 앉아서 통곡했습니다. 떨어졌다고 낙심하고 있을 때 제가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제가 너무 감격한 것 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친구들은 진정한 남자의 눈물이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위로에 힘을 받고 얼른 눈물을 닦고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은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오늘 일은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 입니다. 오늘 일 덕분에 고등학교에 가서 정말 열심히 해야한다는 끈기와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오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는 분명히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왜 보이지 않았던 걸까요? 나중에 알고보니 아버지는 그 시간에 합격을 축하하는 문자까지 보내셨더군요. 학교에서 휴대폰을 꺼놓은 바람에 문자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중에 다시 합격자 명단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걸 보면 열심히 살아라는 신의 계시가 분명합니다.

앞으로 오늘 지옥과 천국을 왔다갔다한 일을 떠올리면서 남은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바보 노무현, 진심으로 슬퍼하겠습니다

오늘은 집에 있는 동안에 아버지가 권해주신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오늘 읽은 책은 바로 '바보 노무현' 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노무현 전대통령님께서 서거하신 후 나온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전기문? 같은 책이었습니다. 저는 노무현 전대통령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실감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대통령님께서 돌아가셨어도 그렇게 많이 슬프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실제로 만나지도 않은 사람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많이 슬퍼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바보 노무현' 이라는 책을 읽은 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님에 대해서 잘 알게 되니까 그제서야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서거를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오늘 읽은 '바보 노무현' 이라는 책은 아까도 말했듯이 서거하신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전기문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에서 태어나셨으며 어릴 적부터 집이 가난한 탓에 아주 힘들게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어머니는 어린 노무현에게 항상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며 어떤 일에 나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린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붓글씨 대회에 참가하여 아주 열심히 노력했지만 다른 학생의 부정행위로 그만 1등을 놓지고 2등을 했습니다.

다른 학생은 글씨를 잘못 적었는데도 자기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선생님께 종이를 다시 받아서 깨끗하게 다시 제출하여 부정하게 1등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화가난 어린 노무현은 대회에 부정하게 이루어졌으니 2등상을 반납하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런 노무현을 반항한다며 빰을 때리면서 오히려 혼을 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부정선거를 하는 대통령의 생일을 위한 글짓기를 할 때 친구들과 함께 백지를 제출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결국은 학교에서 정학을 받았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이렇게 어린 시절에 부당함에 대한 설움을 알게되고는 어른이 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법으로 지켜주고자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십니다.

하지만 변호사의 직업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없었고 결국은 부당한 이유로 변호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국회의원을 거쳐서 대통령까지 되십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시자마자 많은 것을 바꾸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부당한 정치인들로 인해 대통령이라는 직함에서 내려올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지지와 반대로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끝까지 대통령으로 남아계셨고 걸어서 휴전선을 넘고 베트남에서 고생하고 있는 우리나라 군인들을 직접 방문하서서 위로와 격려를 베푸시는 등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1년전 노무현 전대통령님께서는 끝내 부엉이 바위에서 서거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고향에 몇 번이나 가서 애도의 마음을 드리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전대통령님의 서거를 많이 아쉬워하고 또 많이 슬퍼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때 노무현 전대통령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써는 슬퍼하지만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지금은 노무현 전대통령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서거를 진심으로 슬퍼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노무현 전대통령님께서 서거하신 봉하마을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저는 중학교 마지막 시험이 끝나니까 정신이 많이 해이해졌던 것 같습니다. 시험도 끝났으니 무조건 놀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다가 결국 발을 다치고 집에 누워있으면서 오늘 '바보 노무현' 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저는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어린 시절에 가난때문에 많이 힘들었음에도 노력하여 변호사와 국회의원이 되고 끝내 대통령까지 되신 훌륭한 분이십니다.

반면에 저는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닌데 인생의 반도 끝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단지 시험이 끝났다는 것만으로 놀 생각만 했던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인생을 보니까 인생은 쉴틈이 없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인생을 아주 치열하게 지내셨지만 대통령을 끝내시고는 고향에 내려가셔서 이웃들과 아주 행복하게 지내시다가 서거하셨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정말 쉴 틈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절대 쉴 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놀아도 노는 것이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사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앞두고 중학교의 남은 시간은 책을 보면서 마무리 하는게 좋은 듯 합니다. 마침 학교에서도 독서인증제를 실시하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번에 아머니, 아버지와 함께 태봉고등학교에 다녀왔습니다. 태봉고등학교의 입시설명회가 있어서 가족들과 다함께 가본 것 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두발자유, 교복자유등 많은 것들을 자율화시킨 학교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태봉고등학교에 갈 생각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한 학년이 총 45명밖에 안되고 한 반에 15명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모르는 학생이 없습니다.

그러면 학생과 선생님의 친밀감이 높아지고 서로 더욱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말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학생의 친함이 높아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학생이 적으니 친구들끼리도 더 친해질 것 입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중학교에는 친한 친구들도 많이 있지만 전혀 모르는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적으면 그 친구들과 더 친해질 것 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다른 고등학교들과는 다르게 공부말고도 노래나 악기연주, 농사, 옷만들기, 요리 등 생활교양에 대한 것들도 많이 가르쳐줍니다.

저는 미래에 어른이 되어서 방송PD가 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송PD는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영상에 담아내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방송PD에게는 무엇보다도 '경험' 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인생을 살면서 느껴본다면 나중에 PD가 되어서 그 만큼 많은 것을 영상에 표현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태봉고등학교는 제가 바라는 그런 경험을 아주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봉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보고 경험하고 느껴본다면 나중에 PD가 되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블로그를 계속 할 것 입니다. 지금은 평소에 블로그를 쓰면서 힘든 점이 바로 블로그를 쓸 '소재' 를 찾는 것 입니다.

지금은 블로그를 쓸 때 마땅히 소재가 없어서 고생을 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봉고등학교를 간다면 그 학교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블로그 글을 쓸 소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태봉고등학교를 블로그를 쓸 때 필요한 '소재 덩어리'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재 덩어리' 학교에서 생활한다면 블로그를 할 때도, 후에 PD를 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태봉고등학교를 주제로 블로그를 쓴 이유는 뭐 태봉고등학교를 극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인생에서 태봉고등학교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태봉고등학교에 들어가는게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면접도 보고 자기소개서도 써야합니다.

그런데 저도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어른이 되면 시험도 많이 치뤄야하고 면접도 많이 봐야합니다. 그러니까 태봉고등학교에 그런 경험들을 미리 해본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태봉고등학교는 전교생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저도 어른이 되면 부모님 곁을 떠나서 혼자 살아가야 합니다.

태봉고등학교에 가서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살아본다면 제 인생에 아주 큰 경험이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태봉고등학교는 여려면에서 인생을 미리 경험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학교에서 집으로 바로 오지않고 수행평가를 하기 위해서 친구집에 잠깐 갔다 왔습니다. 수행평가를 다 끝내고 나니까 벌써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저는 안그래도 처음와보는 곳이고 밤까지 어두워져서 친구에게 버스정류장까지 자전거를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되서 버스가 도착했고 저는 그  버스를 탔습니다.

피곤해서 그런지 잠이 조금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버스안에서 한 5초 정도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는데 제가 어느새 제가 내릴 곳에 다 도착해서 저는 얼른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제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저는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슈퍼마켓이 보이길래 군것질을 하려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갑은 주머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덤덤하게 가방을 열어서 지갑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가방 안에도 지갑은 없었습니다.

저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저는 다시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하지만 역시 지갑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제가 지갑을 잃버렸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제가 지나왔던 길을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갑을 땅에 흘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 때 저는 방금 버스에서 잠깐 졸았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갑을 버스에 흘렸던 것 입니다. 무척 큰 일 이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지갑 안의 내용물이 아주 중요한게 많았습니다.

돈은 한 3000원 정도 들어있었지만 학생증과 도서관대출증, 마이비카드가 모두 지갑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갑을 아주 통째로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돈을 잃어버린 적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린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그래도 학생증이 들어있으니까 누군가 주우면 찾을 수는 있을 것 입니다. 하지만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 줍는다면 아마 저는 지갑을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 입니다.

사실 학생증이나 도서관대출증, 마이비카드 같은 것들은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잃어버린 지갑은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아주 소중한 물건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받아서 지금까지 아주 아끼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방에 잃어버리다니... 정말 뭐라 말이 안나옵니다.

제가 만약 지갑을 줍는다면 착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파출소에 가져다주거나 주인에게 반드시 돌려줄 것 입니다.

이번에 잃어버린 지갑을 누가 주워서 다시 제 손으로 돌아온다면 당연히 그 지갑을 더 소중히 여길 것 이고 정말 앞으로 착하게 살아갈 생각입니다.

저는 솔직히 사람이 살아가면서 티끌 하나 없이 정말 착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못을 한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지갑을 찾는다면 정말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지었던 죄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서 반성하고 또한 세상의 하나하나까지 감사하며 살아갈 것 입니다.

또한 남에게 선행을 베풀며, 어른들의 말씀과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제가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며 살아갈 것 입니다.
어젯밤(10월 20일 수요일) 아버지가 갑자기 학교를 다녀오고 집에 와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습이 끝난 뒤에는 내일 할 수업의 예습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당연히 해야할 일들이지만 요즘 예습, 복습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학기때에는 학원에 다녀서 그래도 예습, 복습을 잘했던 같았는데 2학기가 되고 집을 이사하면서 학원을 끊어서 공부에 약간 소홀해진 것 같습니다.

2학기가 되면서 '학원을 다니지 않는 대신에 혼자서 공부를 잘 해보자.'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공부를 하고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기로 아버지와 약속을 했습니다. 블로그에 공부한 내용을 올려야하니까 공부는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부를 안할수가 없으니까 다시 학원에 다니게 된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국어를 공부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국어공부를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국어를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국어는 공부할 때 손이 많이 가서 공부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또 제일 집중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국어는 시험범위가 많이 때문에 사실상 과목 중에 가장 많이 공부해야합니다. 오늘 제가 공부한 글은 '청춘예찬' 이라는 글입니다.

청춘예찬은 민태원 님이 쓰신 수필로 영탄법이나 설의법, 직유법, 은유법, 대구법, 명령법, 열거법, 문답법, 도치법 등이 아주 많이 사용된 말그대로 청춘을 예찬한 글입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청춘을 아주 많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면 끓는 피, 거선의 기관, 따뜻한 봄바람, 웅대한 관현악, 열락의 소리, 인생의 황금시대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청춘을 '인생의 황금시대' 라고 표현한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청춘을 인생의 황금시대라고 표현한 것은 청춘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저의 나이가 바로 '청춘' 이기 때문에 지금 이 시기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청춘을 잘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제는 즐거운 일요일이었습니다. 저는 어제 집에 있으면서 '어머니, 아직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아버지가 어젯밤에 읽으라고 골라주신 책입니다. 아버지는 학창시절에 그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 책이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다른 과목들보다도 수학이나 과학, 국어 같은 과목을 잘하는 편 입니다. 그런데 저는 암기과목을 잘 못합니다. 암기과목때문에 성적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한문이나 사회, 기술가정 같은 과목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 중에서도 기술 가정이 제일 저에게 어렵고 힘듭니다.

중간고사 때에는 한문을 열심히 공부해서 한문 성적을 엄청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말고사때에는 사회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 성적이 많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문성적을 다시 내려갔습니다. 한 쪽 성적이 오르면 또 다른 과목이 내려가는 이런 경우가 저에게는 크나큰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암기를 위주로 하는 공부를 배워볼 생각입니다.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집이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9급, 7급 공무원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읽은 이야기는 '길 잃은 철새'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몸이 허약해서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가난함에 찌들려서 매일밤 거리를 거닐곤 했습니다. 그는 가난함에 결국 고등학교를 2학년에서 그만두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합니다.

그 이야기를 보고 정말 저보다 훨씬 어렵고 가난한 환경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암기과목을 잘하는 데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들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이 너무 오래된 책이라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책이 뜯겨져나갔습니다.

그리고 한자로 되어있는 이야기도 많아서 제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볼 수 있는 내용만 골라서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이야기에서는 계획을 세워서 공부를 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 방법은 어떤 과목을 얼마나 공부할 것 인가는 당연하고 어떤 책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 인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공부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계획을 세워서 공부를 했지만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고 단순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책에서는 계획을 세워놓고 책을 몇 일 동안 읽고나서 문제를 풀어보는 방법도 사용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책을 보며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문제 푼 것을 매겨보면서 많이 맞으면 기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책을 몇 번이고 읽고나서 어느정도 머릿속에 들어왔다 싶으면 진짜 시험을 볼 때 처럼 책을 덮어놓고 문제를 풀어보는게 좋겠습니다.

그게 더 그 과목에 대한 적응이 잘 되고 암기도 쉽고 빠르게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권해주신 '어머니, 아직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를 읽고 왠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된 것은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앞으로 제가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단지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칭찬 받는 것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몇 달만 있으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성공' 이라는 사회가 정한 인생의 목표를 향해 우리는 언젠가 부터 달리고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룰려면 지금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보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도 지금처럼 블로그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때 쯤이면 제 블로그 이름도 '마산 고딩 태윤이의 놀이터' 로 바꿔야겠죠.
 
어머니아직촛불을끌때가아닙니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고시월보 편집부 편 (고시연구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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