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컴퓨터로 '디스트릭트9'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어떤 영화에요?"라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골때리는 영화"라고만 대답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거창한 소개 덕분에 '디스트릭트9'이라는 영화를 엄청나게 기대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 방에 앉아서 컴퓨터의 작은 모니터 화면에 집중을 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반에는 무슨 다큐멘터리처럼 전개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지루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지만 내용은 절대로 평범한 다큐가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28년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한네스버스에 불시착한 거대 우주선에서 발견된 외계인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것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현실적인 다큐멘터리 같은 기법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남아공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의 통제와 관리에 대한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가상의 외계인 관리국 'MNU'가 등장하고, MNU로 인해 외계인 수용구역 디스트릭트9이 만들어집니다.


MNU의 통제하에 남아공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28년간 디스트릭트9에서 임시 수용되는데, 외계인들로 인해 요한네스버스 인근이 무법지대가 되버리고, 남아공 시민들은 불만을 표출합니다.

결국 MNU는 외계인 수용구역(디스트릭트9)을 강제 철거하기로 하고, 최대한 빨리 철거시키기 위해 외계인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말이 '이주'지 사실은 강제로 쫒아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외계인들을 강제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외계인들에게 총을 겨누고 외계인들의 집을 불태우며, 그들의 자녀를 인질로 삼거나 외계인들의 알을 제거하여 낙태시키는 등의 추악한 행위를 일삼습니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갑자기 극영화 형식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있습니다. 바로 철거 계획의 책임자인 '비커스'라는 인물이 미확인 외계물질에 노출되는 사건입니다.


외계물질로 인해 비커스의 몸은 점점 외계인의 몸처럼 변해가고, MNU는 외계인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비커스라는 것을 알고 비커스를 추적합니다.

비커스는 MNU에서 도망쳐 외계인 수용구역으로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외계인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비커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을 이용하려는 인간들에 의해 정체성에 혼란을 가지게 되고, 이제는 인간들을 적으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외계인과 인간 중 누가 악인지를 분별할 수 없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메시지는 인간의 잔인함인 것 같습니다.

비커스가 잡혀간 MNU 연구실에서는 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생체실험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외계인들의 목숨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잔혹한 실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외계인을 적으로 하여 맞서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루는데, 이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처럼 오히려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외계인들에게 폭력을 일삼는 모습을 다룹니다.


사실 이 영화는 '닐 블롬캠프'라는 감독인 2005년에 만든 '얼라이브 인 요한네스버그'라는 단편영화를 기초로 하여 그 감독이 다시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

얼라이브 인 요한네스버그라는 6분짜리 영화에서도 역시 남아공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인간에게 받는 규제와 폭력에 대한 메시지를 언급합니다.

영화 아바타와 마찬가지로 저 영화들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이 바로 현대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소외계층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도 영화속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처럼 인간들이 정해놓은 통제와 규제 속에서 천대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인공 비커스가 외계인의 힘으로 인간들에게 대항하는 모습으로 하여금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외계인이라는 존재와 외계인들에게 벌이는 잔인한 일과 폭력은 영화의 상상력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우리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게 많았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 영화인 것 같습니다.

디스트릭트 9
감독 닐 블롬캠프 (2009 / 뉴질랜드,미국)
출연 샬토 코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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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러 귀신 또는 유령 중에서 '흡혈귀'라는 게 있습니다. 흡혈귀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지만 밤이 되면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그 흡혈귀라는 무서운 존재를 어릴 때부터 책이나 만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로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흡혈귀를 주인공으로 하여 아주 멋있게 연출한 영화를 보고 흡혈귀에 대한 로망이 생겨 흡혈귀라는 녀석을 동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 아버지가 사주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중에서 흡혈귀에 대한 책도 있어서 제가 흡혈귀에 관심도 있고 하니 그 책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흡혈귀, 잠들지 않는 전설'이었습니다. 제목부터 으시시하고 책의 표지에는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끔찍한 모습의 흡혈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흡혈귀에 대한 책을 보기위해서 기본적으로 거쳐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비위가 상하는 것을 참으며 책을 펼쳤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시공 디스커버리 책들처럼 역시 책에 나오는 대상의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가 설명해 줍니다. 흡혈귀도 꽤 역사가 깊은 귀신이었습니다.

'피를 먹는 존재'라는 개념은 고대부터 이미 언급되어 오던 말이었습니다. 구약성서 레위기 17장 14절에 나오는 '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이다'라는 말처럼 옛날부터 사람들은 피를 아주 신성시 여겼습니다.

그래서 고대 유렵에서는 동물 또는 사람의 피를 바쳐 의식을 치르거나 피를 마시며 영생을 꿈꾸는 일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11세기에 들어서자 드디어 흡혈귀라는 존재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가 유럽을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산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피를 빨아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4세기가 되자 흡혈귀라는 존재가 점점 더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책에서는 그 이유를 아마 그 당시 유행했던 흑사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염병 때문에 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시체를 묻으면서 가끔씩 진짜 죽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묻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 운없는 희생자가 산채로 땅속에 묻혀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가 관 안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관을 열었을 때 피가 있는 것을 보고 그 당시 사람들을 밤에 시체가 무덤에서 나와 산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그렇게 전염병 등 여러가지 이유로 흡혈귀에 대한 믿음은 유렵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문학 작품들이 만들어지면서 흡혈귀의 황금시대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18세기 후반부터 산업 혁명을 통해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흡혈귀에 대한 믿음과 인기는 점점 사라져 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흡혈귀 신화가 다시 부활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흡혈귀라는 존재가 처음 언급되어 실질적으로 흡혈귀를 탄생시킨 영국이었습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의 지배 아래 영광의 시대를 맞이하였지만 뒤에서는 잔혹한 착취의 모순을 숨기고 있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서 흡혈귀를 소재로 한 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물질주의가 팽배해지고 격식과 품위를 강조하는 빅토리아 사회에 싫증이 나 있던 영국인들에게 간접적인 탈출구였던 것입니다.

흡혈귀라는 공포의 대상을 통해 사회의 질서가 조롱당하고 도덕이 무의미해지는 공포 이야기를 읽는 것은 일종의 '집단적이 배출구'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19세기 영국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흡혈귀가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면서 흡혈귀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흡혈귀라는 귀신은 누구나 한번쯤은 TV나 영화 또는 책에서 봤을법한 연예인급의 유명한 존재입니다. 

현대에서도 역시 흡혈귀는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만큼 흡혈귀가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있다는 뜻이겠죠.

왜 이렇게 기껏해야 귀신 또는 유령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는 존재가 오늘날까지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남의 고통을 즐기는 잔인한 카타르시스적 동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번에 '10억' 이라는 영화를 TV에서 하는 OCN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그 영화는 8명의 사람이 무인도같은 곳에 모여서 10억을 걸고 펼치는 서바이벌 게임을 바탕으로 한 영화였습니다.

그 서바이벌 게임은 아내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한 감독이 카메라맨 한 명을 데리고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인도같은 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내가 살해당한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감독의 아내가 살인범에게 맞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또 그중에 한 명은 그 장면을 보고 도와주기는 커녕 캠코더로 찍고있었습니다.

이에 화가난 감독은 그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초대해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게 한 것 입니다.

참가자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감독

그 무인도에 초대된 사람들은 한 명씩 게임에 탈락해서 처참하게 죽어갑니다. 감독은 그들이 죽으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심지어 그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서 인터넷의 한 싸이트에 올리기까지 합니다. 그 동영상을 본 한국 사람들은 동영상에 담긴 참혹한 모습을 보며 또한 즐거워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저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결국 8명에서 한 명씩 죽어가며 4명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돈을 얻고 빨리 무인도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여자친구를 칼로 죽이고 다른 사람들도 죽이려고 합니다.

거기에서도 인간의 무서움을 알게되었습니다. 자신이 살기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죽이는 인간의 모습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게임의 생존자가 1명이 남는데 그 사람은 한국에 돌아가서 경찰 관계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10억을 가지고 도망칩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정말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사막을 건너면서 갈증에 시달리다가 물을 발견하고 급하게 물을 먹는 모습은 정말 실제와 헷갈릴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막에서 헤매는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


이번에 본 10억이라는 영화는 정말 재미있지만 저에게 웃음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인간은 어떻게든지 착해지려고 해도 절대로 완벽한 선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면 남을 가차없이 죽이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쁜 본성을 숨기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10억
감독 조민호 (2009 / 한국)
출연 박해일, 박희순, 신민아, 이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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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버지께서 새로 사주신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은 유명한 모험소설인 '보물섬'을 지은 '로버트루이즈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이다.

'애터슨'이라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자신의 친한 친구인 '지킬박사'라는 사람이 적은 유언장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죽거나 실종되면 전 재산을 '하이드'라는 사람에게 모두 주라는 내용이었다.

애터슨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 '지킬'이 왜 그렇게 하이드라는 사람에게 잘해주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이드라는 사람이 '던버드경'이라는 사람을 지팡이로 때려죽이고 도망쳤다.

애터슨은 하이드라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본적이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매우 흉측하고 끔찍했다.
 
애터슨의 죽마고우인 라논이 병들어 죽고 난 뒤부터 지킬박사는 계속 자신의 집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킬박사의 하인에게서 지킬박사가 조금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다. 애터슨은 계속 궁금하여 할 수없이 지킬박사의 방으로 들어 가보니 거기에는 하이드의 시체와 함께 편지가 하나 있었다.
 
그 편지에 하이드라는 살인자는 지킬박사 바로 자신이였고, 이중인격을 연구하다가 자신이 만든 약을 먹고 결국 하이드라는 악마같은 존재가 태어났으며, 자신이 만든 그 약의 부작용 때문에 하이드의 모습으로 죽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책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바로 너무 욕심을 부리면 지킬박사처럼 망한다는 것과 욕심을 자제 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적당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 과연 이중인격을 가져도 되냐는 주제을 가지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인간은 이중인격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을 자기 자신 오직 한가지의 인격만을 가진 뒤 인간으로 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 하기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야만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수 있다.

만약 이중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말도 안된다. 정말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오직 자기 하나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인간이라고 말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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