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제가 다녀온 국제활동 프로그램 '라온아띠'가 14기 단원들을 모집했습니다. 제가 12기 단원으로 갔었는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14기를 모집하네요. 


라온아띠 단원들은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도 지속가능한 활동으로 귀국단원으로서의 일들을 해나갑니다. 저는 이번에 14기 단원을 모집하는 것을 계기로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 10기 라온아띠 귀국단원 누나가 있어서 그 누나와 저 둘이서 함께 준비했습니다.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은 퀴즈 형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라온아띠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였습니다. 10기 누나와 단 둘이서 다 돌리자니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스스로 기분 좋게 하는 일이라 의욕이 샘솟아 금방 끝냈습니다. 



포스터에 설명회 장소와 날짜를 언급해놓고 설명회 당일날, 학생회관 1층에서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냥 소소하게 책상 하나에 노트북으로 라온아띠 관련 영상 몇 개 틀어놓고 현지 생활하면서 찍었던 사진 몇 장과 그 곳에서 사용한 물품들 몇개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노트북을 이용해 라온아띠가 파견되는 아시아 국가들에 관련된 퀴즈를 내서 맞추는 학생들에게 초콜릿이나 젤리 같은 소소한 상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캠페인을 진행하는 날이 시험기간이 거의 시작되는 주라서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안 모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온아띠 14기 모집 설명회도 겸해서 진행하는 캠페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라온아띠라는 국제활동에 관심이 있어서 온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 세 분정도? 말고는 라온아띠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저희를 보면서 "라온아띠 모집 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라고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소소한 저희의 모습에 약간 당황하신듯한 표정으로 "밥 먹고 올께요." 라는 말을 남기신채 떠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생각보다 학생분들이 퀴즈에 많이 참여해 주셔서 상품이 다 떨어져 다시 사올 정도였습니다. 



사실 참여인원이 몇 명이고, 상품이 얼마나 나갔고 이런 것들보다도 이번 캠페인으로 인해 대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아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철저히 라온아띠 홍보성으로 시작한 캠페인도 아니고, 중요한 건 캠페인 이름처럼 아시아를 알아가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게 목표였습니다. 덤으로 라온아띠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 더 좋죠. 좋은 프로그램이니까요.


이번에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오랜만에 라온아띠 활동하던 시절을 많이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10기 단원 누나와 라온아띠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 누나도 저처럼 20살 때 라온아띠를 가서 저와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같이 학교에서 라온아띠 귀국 후 활동을 같이 많이 하기로 했고,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캠페인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많이 도와준 대학교 YMCA 분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캠페인 준비 뿐 아니라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계속 자리를 지켜주셔서 무척 든든했습니다. 


다음 학기에는 대학Y 활동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여러모로 얻어 가는게 많이 있었던 캠페인이었습니다.

지난 5개월간 학교를 휴학하고 라온아띠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캄보디아를 다녀왔습니다. 봉사활동 또는 국제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떠난 캄보디아, 5개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가기 전에 한 달간 훈련을 받을 때에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습니다.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기대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낯선 곳에서 무려 반 년간 산다는 건 그렇게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 내가 모르는 곳, 난생 처음 듣는 어려운 말들이 어디에서나 들리는 곳, 제가 가는 캄보디아는 저에게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습니다.


그런 낯 선 캄보디아에서 반 년을 살면서 느낀 게 참 많고 다양한 생각을 했지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내가 여기에 왜 있을까?'였습니다. 


제가 라온아띠에 지원했을 당시에 가졌던 고민, 생각, 기대가 정작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많이 무너졌습니다. 우선 라온아띠는 제가 생각했던 '봉사'활동이 아니었고, '국제자원활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조금 다른 관점이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과 국제활동, 전혀 다른 뜻이지만 정확하게 그 차이를 구분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세 5개월 동안 있으면서 그 차이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라온아띠 사전훈련 한 달동안 계속해서 공부하고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역시 현지에 가서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도와'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러'간다는 것을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비록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가난할지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이며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캄보디아서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저희가 캄보디아에서 활동했던 곳은 전세계에 있는 천주교 구호 단체 '까리타스'였습니다. 가장 많이 했던 활동은 마을개발 활동과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들이었습니다. 



마을개발 활동은 비교적 가난한 마을에 가서 수경재배, 버섯집, 닭장 등의 효율적인 농업 기술을 전달하고 함께 개발활동을 하면서 유대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이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활동은 한국어, 영어를 가르치는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싫어했던 저희 팀은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영어를 함께 공부하고 한국어 또한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저희들도 캄보디아 말을 배우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함께 배운다'는 가치관은 제가 3년 간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했던 것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영어 한국어 뿐만 아니라 운동, 환경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 요리 등 많은 것들을 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처음 캄보디아의 학생들과 친해졌을 때 그들이 저희에게 '너희들은 돈이 많아서 살아서 선택할 수있는 꿈이 많겠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캄보디아보다는 잘 사는 나라였고, 우리가 그들보다 더 부유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과 '가난의 정도'로 인해 거리가 생기는 것이 싫었습니다. 저희는 '빈곤퇴치'라는 프로그램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마이스토리' 라는 캠페인은 진행했고, 우리는 모두 같으며 결국에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것을 공유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과 저의 인생에서 분명히 특별한 경험이었고, 소중한 인연이 많이 생긴 5개월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이제는 한국이라는 곳이 낯선 지금, 캄보디아는 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제는 그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던 시간, 무빙스쿨

라온아띠 국내훈련 중에는 '무빙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무빙스쿨이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주제의식을 가지고 꿋꿋히 자리잡고 있는 기관이나 공동체를 방문해보는 활동입니다.

외국에서 5개월 간 생활하는 라온아띠 활동과 무빙스쿨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각 국가별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볼 수 있는 첫 번째 활동이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무빙스쿨을 해보면서 팀원들끼리 의논하고, 방문할 기관에 대해 조사하고, 직접 그 방문기관 및 공동체에 연락을 드려서 허락을 맡아 가서 궁금하고 싶은 것을 질문하고.. 이런 활동들로 얻는 것이 바로 무빙스쿨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저희 캄보디아팀은 무빙스쿨 주제를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무빙스쿨에 대해 의논하면서 특히 많이 다투었던 팀이 바로 저희 캄보디아 팀이었는데, 다투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온 환경, 받아왔던 교육 등 삶의 대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빙스쿨 주제와 연관시켜서 '우리가 받은 교육이, 우리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나?' 라는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마침 저희 팀에는 보편적인 교육이 아닌 대안학교에서 대안교육을 받은 사람이 저를 포함해 두 명이 있었습니다. 대안학교를 모르는 사람도, 대안학교를 다녔던 사람도 대안교육의 많은 모습을 보기 위해 대안학교를 방문하여 다양한 교육에 대해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방문하기로 한 곳은 서울에 있는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 라는 곳과 광명 YMCA의 '볍씨학교'였습니다.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는 대안대학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라온아띠의 카페 면접 장소를 제공해 준 카페 체화당을 운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육이라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일반교육과 대안교육으로 함부로 나눠서는 안되지만 일반교육을 받은 사람과 대안교육을 받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고, 그 차이에 대해 알기 위해 대안학교를 방문한 것이었는데,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의 선생님이신 이성민 교무지기께서는 보편학교와 대안교육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학교와 교육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보편(일반)교육이 답이다.', '대안교육이 답이다.'라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각 교육들만의 다양한 방식과 지향점이 있고, 그것들을 모두 존중해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가지는 생각이나 가치과, 교육의 철학 등을 시계추에 비교하시면서 한 쪽으로 치우지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한 쪽으로 치우쳐 가면서 생기는 것들, 중립만 지키는 것보다는 왔다갔다 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에 집중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가리지 말고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는 것이 좋다고도 하셨습니다.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말씀해주셔서 가슴속에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볍씨학교라는 곳을 방문하려는데, 길이 무척 어려워서 많이 헤맸지만 주변에 사시는 주민 분들이 길을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볍씨학교는 대안초등학교입니다. 처음에는 '아직 자신의 주관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안교육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의문은 쉽게 풀렸습니다. 

볍씨학교는 생명을 중요시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맨날 책상에 앉아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시골같은 정겨운 분위기의 학교에서 뛰어놀고, 진정한 상생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 배우고 느낀 것들이 인생에서의 여러 가지 습관들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초등교육을 대안교육으로 생명의 중요성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사실 말이 대안교육이지 볍씨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육의 과정들은 그저 '함께 사는 법'이었습니다. 볍씨학교의 선생님들께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희 라온아띠들도 현지에 가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고, 국제자원활동을 하고, 이런 것보다 결국 팀원들, 현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이 있으면 분명히 갈등이 생기고, 그것은 곧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지만, 볍씨학교에서는 '둘러앉기' 라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한 반에 갈등이 생겼을 때, 친구끼리 싸웠을 때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의 한생들과 선생님들이 다 모여서 무릎을 맞대고 둥글게 둘러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바로 '둘러앉기'입니다.

둘러앉기에서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서로 상처를 받더라도 그 상처를 계속 드러내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과 치유를 목적으로 합니다. 

비록 둘러앉기의 이런 방식이 갈등해결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상처를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서운한 감정과 상처를 계속 드러내면 감정이 쌓이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볍씨학교의 함께 사는 철학이나 생활, 둘러앉기 등을 보면서 제가 졸업한 태봉고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대안학교들이 각자들만의 교육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점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무빙스쿨은 저희가 앞으로 캄보디아 현지에 가서 필요한 생활의 방식들, 여러 가지 고민들을 생기게 해준 좋은 시간이었고, 무빙스쿨을 통해서 배운 것들을 실천해보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한 쪽으로 치우치기도 하면서 또 갈등이 생기면 둘러앉기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실제로 국내훈련을 하는 동안 둘러앉기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그런식으로 우리가 살아갈 5개월을 천천히 준비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4주간의 라온아띠 국내 훈련이 끝났습니다. 무척 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캠프, 대안학교를 다니며 겪었던 제주도, 네팔, 지리산, 무인도 그 어느 경험보다도 훨씬 더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값진 시간이었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그 사람들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한 인연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특히 라온아띠의 전 기수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 좋았습니다. 제가 라온아띠 12기인데, 라온아띠 4기 분께서 라온아띠 담당 간사님으로 계셨고, 6기, 7기, 8기 등 다양한 분들이 국내훈련 동반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1기와 2기 등등 라온아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자기 나름대로 기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라온아띠를 다녀오신 분들이 대부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지에서의 활동보다 국내 훈련을 할 때가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처음 국내훈련을 시작할 무렵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라온아띠 자체가 원래 5개원 간의 아시아 국제자원활동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인데 그것은 훈련과정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니.. 공감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4주간의 훈련을 모두 마친 후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라온아띠를 다녀오신 많은 분들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국내 훈련의 4주는 그 어느 순간보다 뜨거웠고, 나의 한계를 몇 번이나 시험했으며, 내가 몰랐던 것들, 내가 원래 알고있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 실천해야 하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고민들을 깊은 내면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라온아띠는 5개월 간의 현지 활동이 더 중요한 활동입니다. 국내 훈련은 단지 그 5개월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국내훈련을 다녀오고 난 지금, 현지에서의 150일을 준비하는 국내훈련 28일이 비록 짧지만 인생에서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함께 캄보디아 깐달로 떠나는 제 팀원들은 스무살 동갑내기 친구 한 명과 형 한명, 누나 두 명, 그리고 저를 합해서 5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모두 20년 이상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두 다릅니다. 그런 다른 사람들 5명이 모여 그렇게 덥고 힘들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가면 얼마나 많이 싸우게 될까요?

저는 국내훈련이 단지 외국에서의 생활과 아시아적 감수성, 라온아띠가 가져야하는 마음가짐만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배우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들간의 화합을 연습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국내훈련을 하는 4주 동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싸웠습니다. 서로의 의견차이 때문에 싸우고, 서로의 말, 행동 표현방식 때문에 싸우고.. 현지에서 5개월 간 싸울 것을 4주간 미리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 치고박고를 반복했습니다.

싸우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팀원들간에 의견충돌과 다툼을 통해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 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화합의 노하우 등을 배우는 시간이 충분히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국내훈련에서 이렇게 실컷 싸우고 또 캄보이아 현지에 가서도 많이 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충분히 대화를 하지않고 서로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상태로 외국에 간다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여튼 이제 국내 훈련이 끝나고 약 20일간 쉬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동안 가족, 친구들, 휴대폰 등 한국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도 가지고, 틈틈히 현지어 공부도 하면서 천천히 휴식을 즐길 예정입니다.

그 동안 국내훈련에서 경험한 것들을 잘 정리해서 블로그에 많이 많이 올리겠습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배웠다

라온아띠의 국내연수에서 진행하는 북세미나에 필요한 필독도서 '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코너 우드먼'이라는 사람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쓴 책입니다.

코너 우드먼은 대기업들이 개발도상국들의 노동자들에게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지적한 점은 커피와 같은 상품들에 붙여진 '공정무역 재단'의 로고였습니다.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줍니다.'와 같은 메세지가 담긴 이 공정무역 로고와 슬로건은 분명히 다른 상품에 비해 윤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공정무역 로고가 진짜 우간다를 비롯한 가난한 이들의 삶의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을 이용한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며 책이 시작됩니다.

책의 저자 코너 우드먼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정무역 로고를 보며 '소비자들이 특정한 커피를 산다고 해서 커피 농가 사람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공정한 거래를 약속합니다.' 라는 표현보다는 '공정한 거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가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 만큼 코너 우드먼이 공정무역 로고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코너 우드먼은 공정무역 로고에 담긴 메세지처럼 정말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 실제로 보고 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니카라과라는 나라에 가서 바닷가재를 잡으며 살아가는 어부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의 한계를 무시하면서 잠수를 해대는 탓에 잠수병으로 젊은이의 대부분이 다리를 절고, 다들을 수명이 짧았습니다.

잠수나 바닷가재를 잡는 작업에 대한 안전수칙이나 기본적인 안전장치같은 것도 없습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안전 장치를 살 돈도 없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잠수가 아니라, 그물로 바닷가재를 잡으면 훨썬 안전하고 효율적인데도 그마저도 돈이 없어서 그물을 구하지 못합니다. 정말 최악의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에게 공정무역이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서 바닷가재를 구입해 가는 대기업의 관계자들은 그들이 어떤 작업환경에서 어떻게 바닷가재를 잡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물로 잡은 바닷가재가 아니면 사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바닷가재가 냉동에 한 번 들어가면 잠수를 통해 잡았는지, 그물로 잡았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물로 잡은 것이 아니라면 팔 수가 없으니 니키라과의 어부들도 딱히 잠수를 통해 바닷가재를 잡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재를 사가는 대기업 관계자들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바닷가재를 최대한 저렴하게 구입하여 최대의 수익을 남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어부들은 목숨을 걸고 바닷가재를 잡아서 팔면서 힘겹게 생계를 유지합니다.

바닷가재를 엄청나게 생산해내는 그 어부들은 정작 바닷가재를 먹지 못합니다. 바닷가재 가격이 너무 올라서 자신들이 먹기에는 너무 사치라고 생각하여 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바닷가재 가격이 올라도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니키라과의 한 섬에서는 근처 바다에서 마약을 밀거래하는 상인들이 경찰에 잡히지 않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바다에 버린 마약 자루를 주워서 떼 돈을 버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섬은 그런 식으로 마약이 든 자루를 주우면서 학교와 교회, 새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모순적인 일입니까? 국가는 아무것도 못해주는데 마약으로 한 섬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섬에 사는 사람들도 이미 국가가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있다고 합니다. 국가보다는 바닷가에 떠내려오는 마약 자루에 의지하는 사람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주석이나 콜탄을 생산하는 콩고의 광부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좁고 더러운 동굴에 들어가서 매일같이 목숨을 걸면서 주석을 캐냅니다.

그들이 캔 주석과 콜탄으로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이나 휴대폰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광부들은 자신들이 캔 주석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듭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정무역 로고의 대상인 커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정무역 로고를 붙임으로써 기업에서 내야하는 사회 발전 기금이나 여러 가지 공정무역 지출은 어디에 사용될까요?

커피를 생산하는 농부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고, 공정무역 재단의 운영비나 홍보비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정무역 로고를 사용했던 한 초콜릿 공장의 사장은 공정무역 재단의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규정을 내세우면서 로고 사용료를 점점 더 요구했다고 합니다.

책을 보면서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공정무역 재단의 사람들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그저 수익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을 비롯한 공정무역 로고를 사용하는 수많은 대기업들은 단순히 소비자들의 윤리적 심리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분명히 공정무역을 진짜 혜택을 봐야할 농부, 어부, 광부, 노동자들이 점점 더 삶이 고달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정한 무역을 가장하여 더 저렴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서 코너 우드먼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저도 책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마을이 있는 곳곳에 세워진 비정부 기구들의 표지판, 그리고 그들이 가난한 마을에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우물 등의 시설은 이미 고장나고 마을 사람들은 사용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누구도 고치려 하지 않고, 누구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시설을 지어주는 비정부 기구들은 진정으로 그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란 것이 아닙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해, 좋은 이미지를 위해 선행을 가장한 마케팅을 이미 수많은 대기업들이 행하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좋은 일을 하기보다는 나쁜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보여주기 식의 선행을 하는 것은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도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합니다.

이미지 변화를 위한 선행보다는 현재 노동의 현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고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첫 번째 일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대기업들을 노동 현장의 문제를 알고, 그것을 해결할 책임이 있습니다.

책에서 기업과 노동자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모습이 분명히 나옵니다. 기업 측에서 노동자들의 삶과 복지를 책임져 주고, 그들에게 충분한 기술을 교육해주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형태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현재 대기업들이 행하고 있는대로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면 분명히 언젠가 노동력이 부족해 질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저희 소비자들은 윤리적인 소비를 더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마케팅 홍보 전략으로 사용되는 공정무역 로고가 새겨진 상품을 사면서 '아, 나는 윤리적인 상품을 구입했기에 윤리적인 소비자야.'라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품을 만드는 생산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저자
코너 우드먼 지음
출판사
웅진씽크빅 | 2012-03-2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아프가니스탄 마약 생산지까지 세상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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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수요일(6월 25일)은 라온아띠 면접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번에 신청했던 중장기 해외봉사 프로그램 라온아띠에 다행히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해서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면접은 서울에서 했는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시간대를 오후 4시 30분으로 배치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방에 살면 올라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했나 봅니다.

라온아띠 면접은 특이하게도 '카페형 면접'을 합니다. 사무적인 공간에서 딱딱하게 면접을 하면 면접하는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카페에서 편하게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이화여대 옆에 있는 '체화당'이라는 카페에서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는데, 지도로 찾아보니 완전 무슨 동네의 골목 구석에 숨어있는 카페라서 찾기가 엄청나게 힘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길을 잃을까봐 혹시나 해서 1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근처에 있는 이대부고 버스정류장부터 채화당까지 '찾아오시는 길' 종이가 친절하게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하도 곳곳에 찾아오는 길 종이가 있어서 아주 쉽게 카페 채화당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시간이나 일찍 왔던터라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여유롭게 면접 준비를 하면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4시가 되고 미리 와서 대기하라고 명시되어 있었기에 면접장소로 향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카페 채화당은 생각보다 큰 건물이었습니다. 


채화당 안으로 들어가니 면접을 기다리는 다른 분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면접을 보는 25일 5조는 지방에서 오신 분들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또 경상도 분들만 계시더군요.

제가 나이가 제일 어려서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20살이 해외봉사에 신청했다고 하니 다들 조금씩 신기하다고 하셨습니다. 여튼 면접을 하기 전부터 꽤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개인이 들고 온 컵으로 음료를 먹으며 이미 라온아띠를 다녀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라온아띠에 가려고 했던 이유, 가서 느낀 것, 그리고 면접에 가서 솔직하게 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준비한 게임? 같은 것도 했는데,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주사위를 굴려 선택된 카드에 적힌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이었는데, '결혼하고 싶은 나이는?', '최근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자신의 장점 세 가지' 등 자신이 살아온 배경이나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 게임을 약 30분간 하고나니 약간 긴장이 풀렸습니다. 조금 쉬다가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카페 채화당은 지하에도 큰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면접은 A, B, C로 조를 나눠 각 조마다 세 명씩 면접관 세 분과 3대3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에서는 기본적으로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물어보고, 자기소개서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면접에서 나온 세부적인 질문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튼 면접은 면접관이 일방적으로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딱딱한 형식이라기 보다는 편하게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습니다.

면접관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것저것 배운 것도 많았고, 여러 가지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면접관님들은 비록 떨어져도 수준이 떨어져서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자책하지 말고, 만약 합격했다고 해도 자신이 남들보다 대단하기에 뽑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라온아띠는 남들보다 대단한 사람을 뽑는 것이 라온아띠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뭐 합격하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이미 면접을 통해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

면접 일정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라온아띠 간사님이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셨습니다. 현수막으로 만든 재활용 가방이었습니다.

그 선물들을 나눠주시면서 비록 라온아띠에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평소에도 항상 라온아띠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진짜 라온아띠라고 하셨습니다.


3년 전에 태국으로 해외봉사를 갔을 때 알게 된 형이 있습니다. 그 형은 태국어가 아주 유창했고, 모든 일정을 통솔하고 태국의 문화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형은 '라온아띠'라는 프로그램으로 태국에서 3개월 간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의 문화와 언어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형의 모습을 보고 많이 부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뭐든지 나서서 이끌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하지만 태국에 갔을 때에는 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지 못하니까 뭐 딱히 리드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봉사활동을 좋아하는데, 태국에서 2주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점점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하고 태국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봉사활동은 끝이 났습니다.

아주 보람 찬 2주였지만 봉사의 기쁨을 알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것 같습니다. 2학년 때 학교에서 갔던 네팔 봉사활동 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 때는 제가 학생회 부회장으로서 학생 대표를 맡고 있었음에도 열정적으로 봉사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역시나 네팔의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2주라는 기간이 저에는 짧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의 2주는 긴 시간이지만 그 곳의 아이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어울리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고, 3년 전 태국에 함께 갔던 형을 통해 알게 된 라온아띠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한 번 신청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대학교에 붙여진 포스터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라온아띠는 '즐거운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아시아 지역사회의 구체적인 과제와 직접적으로 만나는 연대활동을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지속가능한 아시아를 꿈꾸는 대학생해외봉사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라온아띠 12기는 1개월 간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5개월이나 해외봉사를 하는 장기간 봉사 프로그램입니다.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정이지만 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신청 기간은 6월 10일까지였고, 저는 자기소개서를 계속 고치다가 당일 날 제출했습니다. 

경쟁률이 아주 치열한 프로그램이라서 제가 선발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라온아띠를 통해 해외봉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라온아띠에 참가한다면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과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쉽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수성과 자연친화적 삶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전국 YMCA가 주최하는 해외 자원봉사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신청을 했습니다. 그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3차까지 합격해야 했습니다.

1차시험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는 것 이었는데 예전에 태봉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써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게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기소개서를 써서 제출했는데 다행히 시험에 붙었습니다. 그리고 2차시험은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서 제출하는 것 이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총 3가지가 있었는데 '국제자원활동에 대한 견해' 와 평화, 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국제자원활동을 참가해본 경험이 없어서 잘 알고 작성하지는 못했지만 태국에서 국제자원활동을 하면서 태국의 문화와 공동체를 배우며 좋은 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평화에 대해서는 평소에 제가 생각하는대로 적었고, 마지막으로 인권에 대한 질문은 제일 열심히 적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제가 얼마전에 창동에서 열리는 '청소년 문화존' 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부스를 운영했었기 때문에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차시험을 위해 작성을 끝낸 후 제출하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해외자원봉사 캠프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축하를 해주시며 저에게 2차까지 합격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3차시험을 위해 서울까지 올라가서 면접을 봐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주말에 급하게 어머니와 함께 면접준비를 해보았습니다. 특별히 준비한건 없었고 그냥 어머니가 예상질문을 해주시고 제가 그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면접을 보러가시는 누나와 함께 서울로 버스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 누나는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고 태국이 아닌 필리핀 캠프에 신청하신 분이었습니다.

누나 덕분에 서울에 무사히 올라가서 길을 잘 찾아 면접장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면접 대기실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면접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지만 저 혼자만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면접에 붙을거란 자신감이 있었다기 보다는 면접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별로 긴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제가 면접을 보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기실로 와서 제 이름을 부르자 저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면접을 보는 곳으로 당당히 걸어갔습니다.

면접은 총 세 명과 함께 보는 형식이었고 저와 함께 면접을 보는 사람 두 명 모두 매우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명은 대학생 남자인 것 같았고 나머지 한 명은 저와 같은 고등학생인 것 같았고 여자였습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성 분은 저에게 준비를 많이 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웃으며 "저는 면접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어제 알았어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성분은 웃으며 "아, 그래요? 그러면 준비 많이 못하셨겠네요?" 라며 긴장이 풀린 듯 살짝 웃으셨습니다.

면접장에는 세 명의 면접관이 앉아 계셨습니다. 드디어 면접이 시작되고 그 분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먼저 해외봉사활동에 왜 참가하고 싶은지, 가서 무엇을 하고싶은지 등의 형식적인 질문으로 시작되었고 나중에는 조금씩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도 하셨습니다.

특히 '태국이나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인권에는 뭐가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다른 두 명은 다 대답을 했지만 저는 잘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대답할 수 있었던 질문이었지만 대답한 내용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대답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아쉬웠던 면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면접은 잘 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3일 후, 태국 자원봉사 최종합격자가 발표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긴장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내심 합격을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뭐, 당연한 것 이지만...

그리고 예상대로 그 날 오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또다시 축하를 해주시며 제가 3차까지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비로 태봉고에 합격했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태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그 나라에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그 캠프는 '꿈과 사람속으로 :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 라온아띠' 라는 주제를 가진 캠프로 총 11박 12일로 떠나는 엄청난 일정을 소화해내야 했습니다.

방학 때 출발하니까 아마 방학 때 태국 캠프에 다녀오고 나서 또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입니다. 태국에 가서 많이 배우고, 또 많이 봉사를 하며 많은 느껴오겠습다.

그리고 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사진도 많이 찍어와서 블로그에도 열심히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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