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의 '불온한 시민의 독서토론회'에서 엄기호 교수가 쓴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라는 책으로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책은 굉장히 암울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가 사회에 살면서 쉬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바로 '카이스트 자살 사건'입니다.

카이스트는 한국의 수많은 대학들 중에서도 클래스가 높고, 그만큼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지만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있는 곳이라도 학생들의 성적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카이스트 학생들 중에서도 학점을
3점 이상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야하는 패널티를 받습니다. 책에서는 그 제도를 '징벌적 등록금'이라고 표현하는데, 등록금을 내는 것이 학생의 성적으로 하여금 징벌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입시 제도에 '찌들려' 살면서 열심히 대학에 입학했음에도 대학에서조차 성적 관리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 고등학교 때와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대한민국 사람은 성적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이런 의문들이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모욕감'을 전제로 하는 제도에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인간에게서 모욕감을 느낄 때 다른 인간으로부터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징벌적 등록금이라는 '제도적(제도로 인한) 모욕감을 느낀다면 도대체 어디로부터 치유받아야 할까요? 

자신이 모욕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모욕을 느낀다면 딱히 털어놓을 대상이 없습니다. 타인 또한 그 모욕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고, 타인이 공감을 느낄 수 없으며, 느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죠.

저도 중학교 때 교육 제도로 인해 모욕감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성적 관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저였고, 2학년 때 부반장을 하고 싶어 지원했는데, 성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장 선거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친구들까지도 성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성적이 나쁘면 다른 것도 못할 거라는 착각, ('일반화의 오류'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죠?) 저는 이런 서러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습니다.

성적이 나쁘다는 것이 힘들다고 인정하는 순간, 저는 학교에서 소외될까 걱정했고, 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결국 지는 것보다 견뎌내는 것을 선택했고,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남는 것은 없었습니다. 

성적을 올리면 올릴수록 다른 친구들의 질투를 받아야 했고, 성적의 클래스에 따라 친구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제도적 모욕을 당한 것입니다. 제도가 우리의 인생을 비롯해 우리의 인간관계까지도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과연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학교의 성적관리?', '등록금을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 아니면, 서로의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진정한 친구를 찾는 것?'

책에서는 그런 친구를 만드는 과정을 동시대인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동시대인이란, 우리가 같은 시대의 아픔을 겪고 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카이스트에서 자살하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들과 우리는 동시대인이고, 그들의 아픔을 똑같이 느낄 수 있고, 진심으로 위로하며, 그들과 함께 이겨낼 수 있다면 동시대인에서 '동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과 함께 했던 '불온한 시민의 독서토론'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동시대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가잘못산게아니었어이게사는건가싶을때힘이되는생각들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엄기호 (웅진지식하우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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