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태국에서의 마지막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개학을 하다보니까 블로그 쓸 시간이 부족했네요;;; 태국에 다녀오고 블로그를 계속 쓰다보니 벌써 학교가 개학을 해버리네요.

어쨌든 태국에서의 마지막날의 하루전 우리 단원들은 마지막으로 반부왁캉 학교로 갔습니다. 거기에 있는 태국의 학생들도 헤어진다는 것을 알고있었는지 그날따라 더 신나게 우리들과 놀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학생들에게 계속 감사했습니다. 한국이라는 낯설고 먼 나라에서 찾아온 우리들을 11일동안 그렇게 잘 이해해주고 함께 놀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한 문화교류의 자세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과 헤어지려니 모두들 감정이 격해졌나봅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 둘 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태국의 학생들도 울기 시작했습니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태국의 학생들 모두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마구 찍었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열심히 사진 촬영에 참가했고 그들에게 마지막 추억인 사진을 남겨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원들과 태국의 학생들의 대부분이 울고있는데 아무래도 남자 단원들은 잘 울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남자들이 감성이 풍부하지 못하나 봅니다.


반부왁캉 학교에서 작별인사를 하고는 다시 둘쨋날에 갔던 산캄펭 YMCA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태국 관광을 조금하다가 바로 공항으로 갔습니다.

공항에는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교류했던 몇몇의 태국인들과 반부왁캉 학교의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엇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들과 인사를 하고싶은 것 이었습니다. 그들을 다시 만나자 단원들과 태국인들은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정말 애틋한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마중나온 태국인들에게 감사한 나머지 저도 눈물을 잠깐 흘렸습니다.


그리고 유리로 된 공항의 출입구를 사이에 두고 정말 끝까지 눈물을 보이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서 우리는 정말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저는 태국인들과 헤어지는데 전혀 슬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태국인들과 충분히 친해지고 정도 많이 들었는데 왜 슬프지 않았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결론이 대충 나왔습니다. 그건 제가 이별에 관대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과 이별할 때 그렇게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의 학생들과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해도 저는 다시 만날거라는 기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기 때문에 슬프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는 사람과 이별할 때가 아닌 이별했던 그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 감정이 격해집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시절 수련회를 갈 때, 출발할 때에는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도 전혀 슬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련회를 다녀오고 나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헤어진 태국 사람들을 시간이 한참 흘러, 다시 만날 때에는 제가 바로 울 것 같습니다.

이별보다는 다시 만나게 되는 '재회' 에 눈물이 나는 저의 감정이 조금 이상하나요? 하지만 제 감정은 그런 것같습니다. 정말 태국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면 실컷 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정말 어른이 되어 태국의 치앙마이 부왁캉 마을에 가서 눈물을 쏟아내며 그들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태국에서 주로했던 활동은 바로 '반부왁캉 학교' 라는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그 학교의 학생들에게 태국에 대해 배우면서 교류하는 활동이었습니다.

태국은 보통 한 학교에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모두 다닌다고 합니다. 저희 러닝타이 팀이 갔던 반부왁캉 학교 또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전부 한꺼번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조금 특이했지만 그게 태국의 문화인 것 같아서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특이한게 있었는데 바로 교복입니다. 반부왁캉 학교는 학생들이 입는 옷이 요일마다 입는 옷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는 교복을 입고 화요일에는 사복을 입으며, 수요일에는 태국 전통옷을 입는 등 아주 특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국의 학생들

학교에 처음 가자마자 또다시 태국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태국 전통춤을 구경했습니다. 준비를 많이 했는지 우리를 환영하는 공연을 엄청 길었습니다.

솔직히 전통춤을 추는 공연이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계속 보니까 조금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러닝타이 팀도 공연을 해야하기 때문에 긴장되서 정신적으로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태국 학생들의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 러닝타이 팀도 무대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들은 계속 산캄펭 YMCA에서 계속 연습했던 '아름다운 세상' 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안무 연습도 많이 부족하고, 반주로 나왔던 노래와 우리가 연습했던 노래가 잘 맞지 않아서 우리 팀의 공연은 말그대로 망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고 모두들 웃으면서 태국 학생들에게 각자 연습했던 태국어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홈스테이에서 우리를 돌봐주실 각 가정의 어머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홈스테이는 우리 팀의 총 16명이 2명씩 총 8팀을 나눠 각 가정에 가서 지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팀의 어떤 형과 같은 홈스테이가 되었고 우리를 돌봐주실 어머님은 '메무' 라는 분이었습니다. 태국에서는 엄마를 '쿤메' 라고 불렀고 우리들도 홈스테이 어머님께 쿤메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각 홈스테이의 쿤메들은 우리들의 손목에 흰끈을 묶어주셨습니다. 태국에서는 흰끈을 묶어주는게 '축복' 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저희 쿤메가 흰끈을 묶어주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홈스테이를 하며 지내는 일주일동안 그 흰끈을 손몪에서 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흰끈은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세균? 때문에 계속 손목에 끼고다닐 수는 없지만 그 때 우리 홈스테이의 쿤메가 손목에 묶어주신 흰끈은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각 홈스테이에 배정되는 태국의 대학생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대학생들은 우리가 홈스테이에서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사실 우리팀 모두가 태국어를 잘 하지못하기 때문에 홈스테이에서 의사소통이 많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영어교육과를 공부하고 있는 태국의 대학생들을 각 홈스테이에 배정한 것 입니다.

홈스테이에서 우리의 의사소통을 도와줄 태국의 대학생들

이렇게 학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과 자유롭게 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직은 처음 만나기 때문에 서로 어색하고 잘 놀지도 못했습니다.

계속 놀다보면 그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을거라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태국의 학생들도 우리와 친해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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