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누워있는데, 고등학교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다짜고짜 남해를 가자고 하더군요. 여행을 위해 차도 빌렸으니 기름값만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여행이란 지금 당장 이 곳에서 벗어나는 게 시작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해서 별 고민없이 바로 남해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남해에 지금은 빈 집인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거의 바로 학교에 복학하느라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참 반가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고기를 구워먹고 술도 한 잔씩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새 밤이 지나가더군요. 학교를 다닐 때에는 몰랐는데,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참 재밌었습니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나이가 스물이 넘고 각자 일을 하며 지내다보니 정말 만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학생 때에는 매일 보던 얼굴들이 이제는 이렇게 방학 때에만 가끔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도 시작하면 점점 더 보기 힘들어 지겠죠. 뭐 어쨌든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을 훌쩍 보내고, 잠깐 눈을 붙인 다음, 아침 일찍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꽤 비워서 생긴 거미줄을 다 떼고, 바닥도 한 번씩 닦고 우리가 사용한 그릇들도 깨끗히 정리하고, 남해의 상주로 차를 타고 갔습니다.


상주에 가는 이유는 저희가 학교를 다닐 때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던 '여태전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주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시죠.


저희를 참 좋아하시고, 아끼시는 선생님이라 저희도 많이 친근한 분이셨습니다. 여태전 선생님은 저희를 많이 반가워하셨습니다. 좀 더 자주 찾아오라며 장난을 치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주시는 회와 매운탕 그리고 조금의 소주를 곁들이니 그 만큼 완벽한 점심식사는 없었습니다. 여태전 선생님과 옛날 태봉고를 다닐 때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선생님은 중학교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바다 옆에 있는 상주중학교가 참 멋졌습니다. 좁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중학생들 보니까 흐뭇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부러움일까요.. 약간의 그리움도 있었습니다. 여러 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하지만 신났던 여행이었습니다. 


같은 반의 친구들과 남해로 여행을 가니 역시 뭔가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친구들이랑 놀 때에는 노래방이나, 당구장에 가거나 농구를 하러 가면서 항상 똑같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직접 회의를 하고, 여행의 일정을 짜서 여행을 가니까 노래방이나 당구장보다 훨씬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함께 가신 담임 선생님을 제외하고 저를 포함해서 총 8명이 여행을 갔는데 먹을 것을 사려고 장을 볼 때 약간 힘든 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장을 볼 때에는 8명 모두가 각자 먹고싶은 음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의견충돌과 개인행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만 계속 고집한다거나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을 사기 위해 따로 마트를 돌아다닌다거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반이 단합이 안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수욕장을 갈 때 싹 없어졌습니다. 해수욕장을 갈 때 우리들은 담임 선생님의 7인승 차를 타고 갔는데 무려 9명이나 타서 너무 좁아서 많이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해수욕장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거의 1시간 30분동안 길을 헤맸습니다. 하지만 해수욕장에 가는동안 친구들 모두 불편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모두 힘을 합쳐서 이정표를 계속 쳐다보고 보이는 사람마다 해수욕장의 위치를 물어보면서 사촌 해수욕장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우리들은 정말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재정이라는 친구가 튜브도 들고왔었고 다들 무더운 날씨라 그런지 정말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해수욕장을 가기 하루 전에는 계곡을 갔었는데 계곡에서 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넓고 깊은 남해의 바다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놀고나서 할아버지 집에 돌아갈 때에는 다행히 길을 잘 찾아서 빨리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역시 친구들은 모두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몇몇의 친구들은 선생님과 함께 저녁밥을 준비했고 나중에는 저녁밥을 정말 배가 터지게 먹고도 모자라서 컵라면도 먹었습니다.

정말 남해 여행에 다녀와서 살이 1kg 정도 더 쪘을 정도로 여행에서 음식을 많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에서 많이 노니까 그 만큼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숨 푹자고 나니까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저는 전날 밤에 늦게까지 계속 놀아서 그런지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조금 구겨져서 잠을 잔 덕분에 몸이 매우 뻐근했습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마산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금방 일어나서 짐을 싸고 집을 대충 치우고 난 뒤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게 벌써 어제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여행도 끝났으니 방학동안 당분간 학교의 친구들을 볼 수가 없겠네요.

확실히 학교생활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보니까 벌써 방학이 지루해지고 개학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방학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방학동안 서울에도 가야하고, 태국에도 해외자원봉사를 떠나야합니다. 다른 친구들도 저처럼 방학동안 각자가 해야할 일이 있을테니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그렇게 조급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우리반 학생들이 계획을 짜서 방학 때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갈 장소는 남해에 있는 저의 할아버지 집으로 정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는 이제 아무도 없기 때문에 가끔씩 사람이 가줘야 될 것 같아서 제가 우리 할아버지 집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각자 2만원씩 가져와서 끼니를 해결하고 2박3일동안 신나게 놀 계획을 짜서 우리반 담임 선생님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갈 때 담임 선생님도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여행 당일날 우리들은 두 팀으로 나눠서 남해에 가기로 했습니다. 진주에서 가는 사람들과 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모여서 가는 사람들이 모여 남해로 출발했습니다.

남해에 도착해서 진주팀과 만나서 함께 장을 보러갔습니다. 각자의 용돈을 모아서 삼겹살, 햄, 라면, 음료, 각종반찬 등 다양한 음식들을 잔뜩 구입해서 택시를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할아버지 집은 몇 달동안 비워서 그런지 매우 지저분했습니다. 총 8명의 친구들이 힘을 모아서 함께 힘을 모아 집을 치우니 금방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들은 집에서 우선 조금 쉬다가 바로 계곡으로 놀러갔습니다. 계곡은 집에서 얼마 멀지 않아서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각자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던지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서로 물에 빠뜨리기도 하고 미끄러워서 넘어지기도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이 간 친구 중에서 문석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친구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벽을 짚어서 벌에 쏘인 것 입니다.

상황이 너무 웃겨서 친구들 모두 벌에 쏘인 문석이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석이는 심각했습니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물에 들어가자마자 벌에 쏘여서 놀지도 못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 친구들을 지켜보기만 해야했습니다.

벌에 쏘인 문석이의 손가락

왼쪽에 앉아있는게 문석이 입니다.


하지만 그런 불쌍한 문석이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은 계곡에 몸과 영혼을 맡기고 재미있게 놀고있었습니다.

어쨌든 계곡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나서 우리들은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즐거워했고 다행히 문석이도 즐거워보였습니다.

계곡에서 나와 남녀를 나눠 샤워를 하고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교에서 일하시다가 우리들을 위해 일부러 길을 찾아가며 힘들게 오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이며 저녁밥을 준비중이셨습니다. 우리들을 샤워를 끝내고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요리 선생님이시고 선생님의 정성이 듬뿍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라면스프를 넣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녁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저녁밥을 다 먹고나서 설거지를 하면서 깨끗하게 정리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젠가 우리반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밥을 해줄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쁘신데도 남해까지 먼길을 달려와주시고 우리들을 위해서 밥도 해주시고, 정말 여러모로 이번 여행에서 선생님의 역할이 참으로 컷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의미가 별로 없었을 것 입니다. 친구들끼리 놀아도 되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처럼 어른이 있어야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담임 선생님께서 함께 해주신 것만 해도 정말 크게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번주 토요일(9월 11일)은 벌초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할아버지께서 남해에 계셔서 벌초를 하러가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벌초를 가야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남해로 갔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대신 삼촌의 짐들이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삼촌은 이미 전 날에 남해에 와서 새벽부터 다른 사람들과 벌초를 하러가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저도 바로 벌초를 하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소에 도착하니 이미 벌초는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새벽부터 비를 맞으며 엄청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낫을 들고 풀을 베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삼촌도 계셨습니다. 우리도 도착하자마자 일을 도왔습니다. 벌초를 할 곳이 얼마 남지는 않았었지만 난생 처음으로 벌초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 무척 신기했습니다.

풀을 깍는 기계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너무 위험해서 안되겠고 그 대신에 낫을 하나 들고 풀을 깍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다른 어른들께서 요령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풀냄새를 맡으니까 기분이 상쾌했고 시골 산이라 공기도 맑아서 정말 시원했습니다.

자른 풀을 치우는 일까지 했지만 벌초를 거의 다 해놓은 상태라서 역시 별로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비가 와서 그렇게 덥지는 않았지만 산이 좀 높아서 엄청 힘들었습니다.

지리산을 갔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지만 역시 오랜만에 등산을 하는 것이라 다리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블로그를 쓰고있는 지금도 다리가 뭉쳐서 조금씩 아픕니다.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그래도 벌초가 빨리 끝나서 할아버지 집에 가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쉴 수 있었습니다. 시원하게 샤워도 하고 벌초를 하러 간 사람들끼리 모여서 횟집에 회를 먹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아침을 두 번이나 먹은 상태였지만 역시 열심히 일하고 나서 먹는 밥이라서 엄청나게 맛있게 그리고 많이 먹었습니다.

정말 배가 터지게 점심을 먹고나서 집에서 TV를 보며 쉬다가 아버지는 다음날에 회사를 가야하셨기 때문에 먼저 마산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와 삼촌은 다음날 하는 '성묘' 에 참석하기 위해 남해에 남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잠을 설치는 바람에 아침에 늦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묘도 늦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성묘 또한 벌초와 마찬가지로 난생 처음으로 보는 것 이었습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원래 성묘를 하기 위해 벌초를 하는 것이라고 삼촌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묘는 벌초한 곳을 돌아다니며 음식과 술을 차려놓고 절을 올리는 것 입니다. 처음 해보는 성묘도 무척 신기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산에 올라가고 절을 하자니 역시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경험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가 벌써 6개월정도 되어갑니다. 이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제사는 우리집에서 해야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부터는 할아버지 없이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이나 고모들도 계셔서 그렇게 걱정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집에 병풍이나 큰 밥상같은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에 사용하는 제기는 제가 삼촌네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 가져왔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정사진과 제사에 필요한 몇가지 물건들을 지난번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남해에 가서 가져왔습니다.

남해에서 가져온 그릇들입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낼 때 가장 중요한 병풍과 상이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집에도 상은 있었지만 제사를 지내기에는 너무 작은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결국 병풍과 상을 한 개씩 구입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도 병풍과 상은 있었지만 거기에서 병풍과 상을 트럭에 실어서 가져오는 비용이 새로 구입하는 비용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냥 병풍과 상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굳이 남해에 있는 병풍과 상을 가져와서 사용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입해서 주문한 병풍과 상이 오늘 집으로 배달이 왔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경비실에 있는 병풍과 상을 한 개씩 한꺼번에 들고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꾀를 부려서 훨씬 가벼울 것 이라고 예상되는 상을 들기로 했습니다.

크기만 클 뿐 나무라서 별로 무겁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상은 저 혼자의 힘으로 들 수 없을만큼 무척 무거웠습니다.

잘 들지 못하는 저의 모습은 본 아버지는 들고 계신 병풍과 제 상을 바꿔주셨습니다. 병풍은 상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병풍은 정말 제가 한 손으로 들 수 있을만큼 가벼웠습니다.

정말 힘을 들이지 않으려고 꾀를 부린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앞으로 꾀를 부리면 안되겠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정곡을 찔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와서 저와 아버지는 병풍을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상도 갖다놓으니 꽤 제사를 하는 폼이 났습니다. 저는 얼른 절까지 해보았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그 병풍과 상을 가지고 제사를 지낼 것 인데 절 정도는 해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병풍과 상까지 사니까 이제 정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이제부터 예전처럼 열심히 우리집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9월 5일(일요일)에 있는 제사는 우리집에서 처음으로 지내는 제사니 더욱 정성을 다해 지내겠습니다.
한동안 블로그를 많이 쓰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지난 일주일동안 여름 휴가를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이버지, 어머니와 함께 간 것은 아니고 삼촌네 가족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다름 아닌 남해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이제 남해에 있는 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되었기에 그 집을 많이 사용하려고 남해로 갔습니다.

집은 몇 달간 비워두었지만 생각보다 깨끗했습니다. 저번처럼 거미줄도 없었고 벌레들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대충 청소기만 밀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들은 해수욕장에 갔는데 차에 짐을 엄청 실어서 갔습니다.

짐으로는 고기와 각종 먹을 것들 그리고 튜브, 수건 등을 가지고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해수욕장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갑자기 이제 5살이 된 제 사촌동생 관희가 말했습니다. "내 구명조끼 챙겼어?"

이 말을 들으신 삼촌과 숙모는 짐을 확인했습니다. 역시 구명조끼가 없었습니다. 관희는 아직 5살밖에 안되서 구명조끼가 없이는 바다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구명조끼를 챙기고 다시 해수욕장으로 가서 오랜만에 물 속에 들어갔습니다.

삼촌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입니다.


바다에서의 물놀이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사촌동생들과 너무 얕은 곳에서만 놀아서 저와 삼촌은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숙모께 맡겨놓고 튜브를 타고 깊은 곳으로 서서히 가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깊은 곳은 제 발도 땅에 닿지않았습니다. 물론 삼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깊은 곳에서 노는 것은 확실히 재미있었습니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고 튜브가 있어서 빠질 염려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노는데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했지만 잘 들어보니까 그 소리는 삼촌과 저를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삼촌과 저는 얼른 다시 얕은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호루라기를 부신 분은 해수욕장을 관리하시는 분이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깊은 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혼이 났습니다.

숙모와 사촌동생들은 우리가 창피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깊은 곳에서 잠시나마 신나게 놀았으니 그걸로 만족했습니다. 우리는 텐트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소시지와 밥, 과자들을 먹으며 여름휴가의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남해의 집으로 돌아가보니 엄청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가스버너' 였습니다. 아까 해수욕장으로 가기 전에 우리는 가스버너가 없어서 계속 찾다가 결국 가는 길에 가스버너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가스버너 샀는데 집에 가서 원래 있던 가스버너 찾으면 대박이겠다."그런게 이렇게 진짜로 집에 와서 가스버너를 찾아버리네요.

삼촌은 집에 와서 그냥 "아, 가스버너 도데체 어디있지? 분명히 집에 있는데..." 라고 말씀하시며 고개를 허리를 숙이셨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인 그 순간 삼촌의 눈에 구석에 숨어있는 가스버너가 보인 것 입니다. 정말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웃긴 일도 많이 있던 즐거운 휴가는 끝이 났고 삼촌네와 함께 마산에 있는 우리집으로 가서 또 놀고 저와 어머니는 서울로 캠프를 가고 삼촌네는 다시 휴가를 즐기러 창원에 있는 량호네 집으로 갔습니다.

제 사촌동생들 입니다.

저번주 토요일 저와 어머니, 아버지는 고향 남해에 마늘을 뽑기 위해서 남해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 전에 저와 아버지는 제 방에 있는 2층침대를 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2층 침대를 남해에 갖다 놓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아버지는 2층 침대를 힘들게 분해한 후 트럭을 한 대 불러서 남해로 출발했습니다.

어머니는 트럭에 자리가 없어서 시외버스를 타고 남해로 출발하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남해에 도착해서 분해한 2층 침대를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리산에 갈 때보다는 아니었지만 정말 죽을만큼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힘을 좀 쓰니까 몸이 개운하고 뻐근한 느낌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침대 조립을 하던 도중 침대와 세트인 책상위치를 잘못잡아서 책상을 다시 옮겨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그런데 책상을 다시 옮기기에는 방이 너무 좁았습니다.
 

확실히 고향집은 천정이 높으니까 2층 침대가 폼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버지는 고민 끝에 책상은 그대로 놔두고 침대 자체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그렇게 침대를 옮기던 중 그만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어떻게 책상이 아닌 침대를 옮길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게 침대를 힘들게 조립하던 도중 어머니가 도착했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돼지고기를 사오셨습니다. 저는 고기 생각에 더 힘이 나서 침대조립을 완성했습니다. 확실히 2층 침대는 아파트에 있는 것 보다 시골주택에 있는 것이 훨씬 더 폼이 났습니다.

우리는 잠시 쉬다가 할아버지 집을 깨끗이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얼마전에 돌아가시고 두 달 정도 집에 아무도 없었던 탓에 집안 곳곳에 거미줄이 칭칭 감겨있었습니다.

군데 군데 거미줄이 많았습니다.


저는 청소기로 거미줄부터 깨끗하게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 쓸고닦고 하다보니 집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밤이 깊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숯불에 돼지고기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군침을 삼키며 돼지고기를 한 입 먹었습니다.


일하고 나서 먹는 돼지고기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고기를 다 먹고나서 냉면을 먹었습니다.

역시 식당에서 먹는 냉면보다 집에서 직접 해먹는 냉면이 훨씬 맛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힘들게 가져온 2층 침대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저는 원해 할아버지 집에서 잠이 잘 오지않는 체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익숙한 2층 침대에서 자니까 잠이 훨씬 잘 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편안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들은 일어나자마자 마늘을 뽑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밭에는 이미 동네의 다른사람들이 마늘을 모두 뽑아놨습니다.

우리는 덕분에 할 일이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늘부위만 잘라서 망사에 담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저와 아버지는 집에 돌아가서 일에 필요한 장비들을 가지러 갔습니다. 저는 집에 간김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웠습니다.

그리고 밭에 가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매우 열심히 일을 하고계셨습니다. 저도 얼른 그 일에 동참했습니다. 저는 신들린 속도로 마늘을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손을 거친 마늘들은 속수무책으로 잘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늘을 많이 잘라도 마늘들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던 중 어머니가 갑자기 집에 먹을 것을 가지러 들어가셨습니다. 어머니가 간 후 동네의 한 할머니께서 간식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그 간식들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컵라면을 싸오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간식을 먹고나서도 그 컵라면을 모두 해치웠습니다.

이제 배도 부르고 우리들은 더욱 열심히 마늘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늘을 다 자르고 우리는 이제 마늘을 망사에 담기시작했습니다.


이미 많이 지친 몸이라서 마늘 담는 일이 더욱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계시는 여러분들은 마늘 담는데 별로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시지 않겠지만 마늘의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잠시 그늘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 틈에 남은 간식을 모두 해치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쉬다가 다시 30분 정도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모든 일을 끝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늘을 조금 챙겨서 마산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먼저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어젯밤 남은 돼지고기를 넣은 맛있는 찌개와 함께 점심을 먹고 1시간 정도 잠을 잤습니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많이 지치고 피곤한 상황이라 잠이 아주 잘 왔습니다. 1시간 후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서 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동네친구분의 차를 타고 마산으로 돌아가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해보니 공부하면서 느끼는 피곤함과 스트레스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수확한 마늘을 돈으로 치면 약 30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하루동안 일하면서 번 돈 보다 많은 액수이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30만원을 벌기 보다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공부 안하고 이렇게 일해서 돈을 벌 바에야 차라히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게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힘들게 일한 것을 계기로 하여 앞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저번주 화요일(3월 2일) 드디어 제가 3학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미리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전화를 한 통 받고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께서 엄청 위독하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얼른 병원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침대에 누워계시고 아버지와 고모 두 분께서 울고계셨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간호사가 들어와서 할아버지의 상태를 검사하고 할아버지께서 사망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들은 고모들과 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우셨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계시던 어머니도 울고계셨습니다. 저도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조금 뒤에 량호네 가족이 병원으로 와서 할아버지의 옆에서 울었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병원에 있는 할아버지의 물건을 챙겨서 집으로 옮겨놓고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는 우리 친척들이 장례식장에서 울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에 남해에서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사진에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건강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이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또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몇 시간 뒤 모든 친척들이 장례식장에 왔습니다. 친척들은 모두 함께 할아버지께 절을 하고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어른들은 할아버지께서 고통없이 편안하게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니 무척 슬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에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때 갑자기 돌아가셔서 충격때문에 엄청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제사가 끝나고 우리들은 잠시 쉬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할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가 개학하는 날에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여름방학이 끝날 때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께서는 봄방학이 끝날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두 분 모두 제가 학교를 조금 쉬라고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중학생이니 상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문상객들이 올 때마다 곡을 하면서 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상복이 편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상복을 벗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3일 동안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지내다가 우리들은 모두 할아버지의 고향인 남해로 갔습니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동네의 어른들과 인사를 하고 할머니께서 묻혀계시는 산으로 갔습니다. 할머니께서 묻혀계신 옆자리에 할아버지의 관이 들어갔습니다.

하필 그 때 비가 많이 와서 고생을 좀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빌며 기분좋게 상복을 벗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할아버지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주말이라서 어른들께서도 시간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남해에서 2일동안 더 있기로 했습니다.

2일동안 남해에서 지내면서 할아버지의 집을 깨끗히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물건도 정리를 했습니다. 2일이 지나고 집에 가는 날이 되자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집에 남아서 일을 하고 가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저, 아버지, 삼촌네 가족, 량호네 가족도 함께 남해에 하루만 더 남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만 남기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이제 내일이면 다시 학교에 나가야합니다. 이제 진짜 드디어 3학년이 되네요.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학원도 많이 빠졌고 학교수업도 많이 빠졌습니다.

이제 3학년이 되면 그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나는 이번주 목요일에 나혼자서 버스를 타고 할어버지께서 계시는 남해로 갔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일이 많아서 오지 못하셨다. 버스에서 내리고 잠시후 삼촌이 할아버지와 함께 왔다.
 
나는 삼촌의 차를 타고 바로 휴양림으로 갔다. 나는 오랜만에 귀여운 사촌동생들을 만나서 정말 좋았다. 물론 내 동생들도 나를 무척 반가워 했다. 친동생이 없어도 사촌들이 많아 참 좋다.


휴양림에 내리고 보니 고모네 가족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일단 텐트를 치고 점심으로 삼겹살과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리고 잠시 쉬다가 근처에 있는 풀장으로 갔다. 나는 수영복이 없어서 그냥 반바지로 갈아입고 물에 들어갔다.

햇빛이 쨍쨍한 여름에 시원한 수영장에 들어가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하지만 햇빛이 잠시 후에 구름에 가려져서 너무 추워졌다. 그래서 결국 나는 물속에서 나와서 다시 텐트로 갔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으로 맛있는 백숙을 해먹었다. 인삼과 닭도 직접 사온 것 이었다. 

우리는 백숙을 맛있게 다먹은 뒤에 잠시 소화를 시키다가 다시 수영장에 가서 재미있게 물놀이를 했다. 이번에는 햇빛도 쨍쨍해서 물이 별로 차갑지 않고 시원했다.

나와 내 동생들은 다시 물에서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잠자리를 잡으러 갔다. 나는 잠자리채로 잠자리를 엄청 많이 잡아주었다. 내 동생들도 잠자리를 많이 잡았다. 우리는 잡은 잠자리를 집에 가서 모두 다시 놓아주었다.
 
우리는 집에 와서 일단 목욕을 했다. 수영장의 물이 더러우니까 당연히 해야 했다. 목욕을 마치고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다가 량호와 장기를 두었다. 량호는 고모부의 도움을 받아서 나를 패배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졸병 하나만 더 잡았어도 내가 이길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옆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고모와 숙모가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아침을 맛있게 먹고 동생들과 놀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려고 했는대 밖에 비가 엄청 왔다. 그래서 결국 집안에서 TV를 보거나 또 장기를 두고,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그렇게 놀다보니 점심 때가 되었다. 점심은 맛있는 카레밥이었다. 나는 그 날 아침에 블로그에 카레에 대한 글을 올려서 카레가 무척 반가웠다.

나는 맛있게 점심을 먹고 삼촌의 차를 타고 할아버지와 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남해를 떠났다. 나는 이번에 할아버지와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난게 제일 좋았다. 이렇게 친척들끼리 모여서 같이 휴가를 즐기니까 정말 좋았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

                                     제 동생들 입니다. 사진은 전부 제 휴대폰으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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