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목요일날, LTI 시간에는 LTI 수업을 하지않고 학교에서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이 체육관에 모여서 초청강연을 받았습니다.

사실 초청강연은 1학기 때에도 계속 받아왔습니다.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 초청 강연을 열어서 1학기 때에는 총 세 번의 초청강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학기 때 초청강연을 받을 때에는 블로그 포스팅 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초청강연을 듣고 포스팅을 합니다.

초청강연에는 아까도 말했듯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께서도 참가하셔서 초청강연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초청강연에서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초청한 분은 '서영남' 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서영남씨는 인천에서 '민들레 국수집' 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은 다른 보통 국수집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은 방문자들에게 무료로 국수를 대접하는 특별한 식당이었습니다.

무료로 손님들에게 국수를 만들어준다니... 이런 거짓말 같은 일을 실제로 실현시켜보고자 서영남씨는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서영남 씨는 국가의 지원도 마다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해 가셨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후원도 해주고, 봉사도 많이 와서 민들레 국수집은 점점 더 번창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순수한 '나눔' 을 실천하고 계시는 서영남씨의 모습이 우리 태봉고등학교의 철학에 너무나도 잘 맞는 것 같았기에 서영남씨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습니다.

서영남씨는 멀리 인천에서부터 우리학교까지 와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너무나 고마운 마음으로 강연을 들을려고 했습니다.

서영남씨는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제 블로그를 한 번 언급하셨습니다. 서영남씨처럼 유명한 분께서 제 블로그에 관심이 있다는게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서영남씨는 정말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를게 없이 평범한 얼굴을 하고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서영남씨는 평범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정말 자신의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오직 사회와 모두를 위하여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노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힘쓰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고 계시는게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식당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이미 요리를 잘했음에도 손님들에게 더욱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 요리학원까지 다니셨습니다.

학교생활만 하고있는 제가 서영남씨를 보았을 때 저는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저만을 위해서 학교생활을 하고, 공부를 하며, 미래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서영남씨는 달랐습니다. 그 분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인생을 행복하고 알차게 살아가려면 오직 나만 생각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서영남씨의 강연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저의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서영남씨는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남에게 베풀기만 하는데도 충분히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서영남씨의 좋은 말씀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기존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를 완전히 뒤집어서 말하신 것 입니다. 남에게 사랑을 주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받는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남에게 칭찬이나 사랑을 받기 전에 먼저 남에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번주에는 학교에서 치르는 중간고사 때문에 블로그에 잠시 소홀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험을 다 치르고 나서 포스팅을 한 번 해봅니다.

시험은 정확히 어제(10월 8일 금요일)에 끝났고 오늘은 간만에 쉴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일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일어난 시간은 아침 11시정도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랜만에 인터넷을 보다가 씻고나서 집을 나섰습니다.

토요일 아침부터 제가 간 곳은 창원이었습니다. 오늘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학생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였고, 저는 태봉고의 대표로 그 자리에 나갔습니다.

사실 대표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모임을 열었는데 대안학교인 태봉고 학생들의 의견도 듣고싶어서 태봉고에서 몇 명 정도만 참석한 것 입니다.

저는 같이 태봉고를 다니는 친구와 이렇게 두 명이서 그 모임에 참가했습니다. 그 모임에는 많은 단체가 참석했습니다.

우선 대안학교인 저희 태봉고와 산청의 '간디학교' , '청소년 참여위원회' , YMCA 등 학생 인권에 관련된 여러 단체들이 모여 총 25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인권에 관한 간단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학생인권이 왜 필요한가?, 학생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가? 대충 이런 주제의 강의였는데, 재미있어서 학교수업보다 더 열심히 들었습니다.


강의를 하신 선생님께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생각할 때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인권도 지켜져야 한다고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의 인권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교사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교사들이지만 결국은 교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섣불리 학생들의 자유을 보장해주는 학생인권조례를 대충 만들었다가 학생들의 반항으로 인해 교사들이 피해를 당한다면 그것은 교사들의 인권까지도 침해당한 것 입니다.

그래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인권까지도 고려해서 더욱 신중하게 학생인권에 대해 토론하고, 더욱 더 신중하게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생각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인권에 대한 강의를 듣고나서는 본격적으로 학생들끼리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각 단체별로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쉽게도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학생인권에 관한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잠시만 YMCA의 회원으로써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오늘 열린 모임에서 앞으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으면 좋겠는지 의견을 냈습니다.

저랑 같이 온 친구는 이번 모임에서 학생인권조례에 올라와있는 인권조례들 중에서 바꿔야할 것과 추가되야 할 것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를 알리고 홍보하는 방법에 대한 회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도 거기에 동의했습니다. 오늘 토론회에 참가하기 전부터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게 바로 학생인권조례에 우리 의견을 추가시키고, 학생인권조례를 홍보하는 것 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한 단체에서 자신들이 학교에서 인권을 침해당하는 여러가지 사례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공감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태봉고의 학생들과 간디학교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인권을 침해당하는 체벌에 대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학생들에게 많은 자율을 주는 대안학교에서 생활하다보니 이미 학생들이 체벌당하는 일이 먼나라의 일처럼 느껴질 것 입니다.

그리고 저의 입장이 아닌 태봉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에 진학하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저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태봉고에서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자유를 주려고 하고있지만 학교에서 누리게 해주는 자율을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방황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안학교에 진학하고 있는 저로서는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든 안되든, 어차피 충분히 자율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에 학생들에게 자율적인 학교생활을 하게 해주는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져서 우리 학교의 학생들처럼 자율을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생길까봐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학생들이 참여하여 학생인권조례 대해 더 고민하고 생각해서 그런 문제점들을 모두 보완할 수 있는 인권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자율에 적응을 못하는게 두렵다고 해서 학생인권조례를 학생들이 포기한다면 학교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학생들은 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태봉고에 다니는 학생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최대한 다른 모든 학생들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토론에 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의 회의끝에 이 모임은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지기로 했고, 앞으로의 모임에서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나눌지를 대충 정했습니다.

오늘 대안학교의 학생의 입장으로써 학생인권에 대한 모임에 참가하면서 느낀게 참 많습니다. 제가 다른 학교의 학생들에 비해 얼마나 많은 자율을 누리면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지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모임을 통해 앞으로 학생인권에 대한 어떤 활동을 해야하며 그런 활동들을 통해 우리 학생들이 단합해서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내 고정관념을 깨준 청소년 합창페스티벌

 

요즘 우리 학교에서 1학년 남학생들끼리 학교 행사를 할 때 뭘 할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합창을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동의했고 거의 합창을 하자는 분위기로 가고있습니다. 그래서 합창을 해서 무슨 노래를 부를지 정해야 했습니다.

그 때 한 친구가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자고 했습니다. 저는 단호히 안된다고 했습니다. 저의 사고에서는 합창에서 아이돌 노래를 부르는건 전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또 다른 한 친구가 랩을 하자고 했습니다. 랩 또한 합창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친구' 를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합창에서 아이돌 노래와 랩을 하면 안된다는 저의 고정관념을 깬 무대를 보았습니다. 바로 어제(9월 17일) 창원에 가서 관람했던 청소년 합창 페스티벌입니다.

거기에 참가했던 고등학교 합창부들은 아이돌 노래로 합창을 했습니다. 티아라의 '롤리폴리' 라는 곡이었는데 합창 단원들이 단체로 복고풍의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아이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음 팀은 아예 대놓고 합창 단원들 중 한 명이 무대 앞으로 나와 랩을 했습니다. 랩을 하는 한사람만을 띄워주는 게 합창은 아니지만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몇몇의 학생만 무대 앞에서 랩을 하고 노래를 했지만 뒤에 남아있는 학생들은 마이크가 없이도 목소리를 내며 멋진 배경음을 만들어내어 노래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팀이었던 마산고등학교의 합창부는 그냥 '아이돌 노래 메들리' 를 불렀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아이돌의 노래를 합창으로 부를 수 있는지...


아무래도 신세대들이기 때문에 합창에서 랩과 아이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학생들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합창에서 랩과 아이돌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랩과 아이돌의 노래도 음악적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고 합창이라는 문화에도 충분히 어울리는 노래라는 것을 알게된 것 같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랩과 아이돌에 대해 무조건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할 때마다 유행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유행을 이끌고 있는게 바로 요즘 학생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의 젊음과 열정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학생들의 새롭고 멋진 도전을 인정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노래하고 춤을 추면 무조건 딴따라라고 할 게 아니라 지금은 그들이 끼와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돌의 노래도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혀 이미 전세계에서 대중성을 충분히 인정받았습니다. 저도 합창을 할 때에는 랩이나 아이돌 노래를 하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깰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 학교를 다녀와서 오랜만에 집에서 푹 자고일어나니 아버지가 창원에서 열리는 합창 페스티벌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지 얼마안되서 몸이 매우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쓸 소재가 생길 것 같아서 잠을 깨기위해 아이스크림을 한 개 물고 창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창원 KBS홀 옆에 있는 큰 건물이었는데 공연을 많이 하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합창 페스티벌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건물은 합창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고등학생들과 관람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공연은 5시에 시작되었는데 5시가 되자 관객석은 금방 꽉 찼습니다.


합창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에게 잠깐 짧은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영상에는 이번 고등학교 합창 페스티벌을 축하해주는 메시지가 담겨있었습니다.

경남교육감과 창원시장 등 많은 사람들이 이번 합창 페스티벌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영상에는 현재 '남자의 자격 : 청춘 합창단' 을 이끌고 있는 유명한 사람의 축하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남자의 자격의 멤버이자 부활의 기타리스트인 '김태원' 등장했습니다. 관객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김태원 같은 연예인을 섭외하다니 정말 대단했습니다.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에서 청춘 합창단을 하고있고 음악가로써 이번 합창 페스티벌에 대해 좋은 말들을 해주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PD가 되면 김태원처럼 멋지고 유명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많이 하고싶습니다.


잠시후 공연이 시작되었고 페스티벌에 참가한 첫 팀이 나왔습니다. 합창 공연을 하는 팀은 총 5팀이었는데 모두 고등학교의 합창부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공연한 팀은 창원중앙여자고등학교의 합창부 팀이었습니다. '하나가 되어 부르자' 라는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불렀는데 화음이 정말 멋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국노래도 두 곡 더 불렀는데 그 팀은 노래가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노래를 하면서 간단한 춤도 보여주었지만 안무보다는 노래가 멋진 팀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고등학교의 합창부들의 노래도 정말 멋졌습니다. 너무 춤만 춰서 합창이라는 주제를 벗어났던 팀도 몇 몇 있었지만 모두 노래는 잘 불렀습니다.

저 또한 중학교를 다니는 3년동안 계속 합창을 했었지만 저희 중학교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목소리 자체로도 실력차이가 많이 났고 안무나 단합 등 모든 분야에서 저희 중학교를 뛰어 넘었습니다.

정말 전문적으로 합창을 하는 사람들처럼 모든 팀들이 노래로써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말고도 합창 페스티벌에 참가한 각 고등학교의 합창부 학생들은 공통점이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합창 노래를 부르면서 모두 행복해 했다는 것 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한창 입시공부에 스트레스가 많이 생길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합창을 하면서 실컷 노래를 부르면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될 것 같았습니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대안학교에 진학하고 있어서 입시공부에 그닥 스트레스를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만 있으면 저도 입시를 준비해야 하고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있습니다.

저도 그 때가 되면 충분히 입시 공부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입니다. 그러면 저도 합창 페스티벌에 참가한 학생들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하겠죠.

어쩌면 오늘 합창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이미 힘든 학교생활를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발견한건지도 모릅니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학교에서 전일제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4교시 내내 계속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 입니다. 저는 '그글' 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그글이라는 동아리는 그림과 글을 창작하는 동아리인데, 저는 주로 글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국어 선생님께서 주제를 하나 던져주셨습니다.

'선택' 이라는 주제였는데 학교 소식지에 담을 글을 우리 동아리에서 적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선택' 이라는 것을 주제로 글을 한 편 적어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는 보통 ‘선택’ 이라는 것을 많이 경험해 볼 것이다. 옛 말에 ‘매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미 인생에서 선택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16년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겪어보았다. 내가 다니는 ‘태봉고등학교’ 도 수많은 고민과 선택을 거쳐서 진학을 결정한 것이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는 사교육으로 썩어 빠진 한국사회에서 ‘대안학교’ 라고 불리우는 고등학교다.

태봉고등학교에 걸려 있는 그림과 글.


내가 알고있는 한, 대안학교는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안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학교이다.

나는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강제적인 교육과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교육에 반대하고, 나에게 어울릴 것 같은 자율적이고, 대안적인 교육을 기대하여 태봉고등학교를 선택하였다.

다행히 태봉고등학교의 교육방식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학생의 입장으로써 학교의 교육방식을 평가 하는 게 건방질 수도 있지만 내가 평가하기로는 태봉고의 자율적이고 대안적인 교육은 아주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기대하던 자율적, 대안적인 교육 말고도 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 바로 ‘LTI 수업’ 이다. 사실 LTI 수업이라는 것이 태봉고등학교에서는 많이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태봉고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LTI 수업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처음 태봉고등학교를 찾아간 날.


어쨌든 LTI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선생님이 해주는 수업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멘토를 찾거나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하는 것이 LTI 수업이었다. 그리고 그 LTI 수업을 할 때에도 수많은 선택을 거쳐야 한다. 특히 멘토 선생님을 정할 때 많은 선택을 했었다. 나에게는 방송에 관해 가르쳐주시는 멘토 선생님이 두 분 계셨는데 바로 방송국의 PD로 일하고 계시는 전우석 PD님과 광고사에서 일하고 계시는 윤종원 카메라 감독님이다.

LTI가 두 개나 되다보니까 LTI 시간에 둘 중 누구를 찾아갈지를 결정하는 것도 꽤나 큰 고민이었다.

결국에는 방송국으로 LTI를 나갔지만 아직까지도 ‘방송국으로 LTI를 나갔던 그 선택이 과연 잘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이렇게 내가 경험한 선택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수많이 겪어왔다. 지금까지 겪었던 선택을 모두 적는다면 끝도 없이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학생 때 진로를 결정할 때 선택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을 가서 어떤 과에 들어갈 것인가?, 어떤 직장에 취직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것 또한 계속 적는다면 끝도 없이 적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글을 쓰고 있는 지금고 계속 선택을 하고 있다. 어떤 단어를 적어서 어떻게 문장을 끝낼 것인가?, 어떤 내용으로 글을 이어나갈 것인가? 이렇게 인생에서는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리고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선택도 있다. 그 선택으로 인해서 자신의 인생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비록 선택이 자신의 인생에서 많이 어렵지만 절대로 선택을 두려워 하지마라! 또다시 옛말을 하나 인용하자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다. 그 말 그대로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는게 좋다. 인생에서의 중요한 선택은 웬만해서는 피할 수 없다.

그 선택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피하지도 마라 매순간의 선택을 즐길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즐거운 인생이 된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개학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네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어쨌든 학교가 개학하니까 확실히 모든게 새로웠습니다. 학교 시설도 조금씩 바뀌고 친구들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어 있었습니다.

물론 제 모습도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태국에 갔다온 뒤로 제가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학교에 오니까 역시 제일 반가웠던 것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었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 금방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노래를 하고싶은 친구들은 노래연습을 하고 밴드를 하고싶으면 밴드부를 하고, 책을 읽고싶은 학생들은 책을 보며 공부를 하고싶은 학생들은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기가 하고싶은 활동을 해나갔고, 각자의 꿈에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개학을 하자마자 바로 방송부 활동을 했습니다.2학기 때부터는 방송부에서 한 달에 한 번 학교 영상을 제작하기 때문에 매우 바빴습니다.

저는 방송부에서 촬영을 맡았는데 아직 영상편집이 미숙해서 아쉽게도 편집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촬영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의 일주일에 걸쳐 모든 촬영을 끝내고 영상 한 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영상을 다 만들고나니 뿌듯한 마음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방송부말고는 특별히 하는게 없었습니다. 만날 촬영만 하고 편집때문에 컴퓨터만 보고있으니까 일종의 스트레스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뭔가를 찾던 도중 농구라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농구는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스포츠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학교가 사용하는 농구공


농구 동아리의 회장을 제가 맡고 있었고 시간이 나면 친구들리 모여서 농구를 하며 많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날 방송부 일만 하고, 공부만 하면 뭐합니까? 학생이라면 역시 체력이 있어야겠죠. 그래서 선택한게 농구라는 운동이었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농구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이 많이 없었기에 농구를 할. 친구들을 모으는게 항상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농구를 할 때 농구를 할 친구들을 모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농구를 아예 학교의 수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방과후 수업' 이라는게 있습니다. 축구, 요리, 영어, 작곡, 밴드연주 등... 여러가지 방과후 수업있었습니다. 하지만 농구 방과후 수업은 없었습니다.

우리학교의 농구 골대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냥 체육 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농구 방과후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뱡과후 신청서 몇 개를 작성하고, 농구부 멤버들끼리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 절차들을 모두 거쳐서 드디어 농구 방과후 수업이 만들어졌습니다. 수업은 일주일에 총 두시간을 하기로 했고 모두 5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기로 했습니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운동을 하려고 했으나 매일 귀찮아서 미루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과후가 시작되는 다음주부터는 그렇지 않을 것 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인 농구로 운동을 하고, 또 꼭 해야하는 방과후 수업이기 때문에 꼭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생겨서 빼먹을 일도 없을 것 입니다.

앞으로 2학기 생활이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방송부도 시작하고 농구부도 제대로 활성화되면서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주에는 드디어 학교가 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이했습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만난 친구들이 너무나도 반가웠고 학교생활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방송부에서 하는 활동때문에 정말 일주일 내내 계속 바빴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이번주 금요일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다가 일어나서 바로 제사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제사를 끝내고 다음날, 저는 그제서야 조금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편하게 쉬려고 했는데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날은 우리 청소년 문화의집 동아리인 NED에서 부스를 운영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창동으로 갔습니다.

창동에는 사람들이 무지 많았습니다. 그리고 햇볕도 쨍쨍해서 매우 더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저는 부스를 운영해야 했습니다.


제가 동아리 회원들과 운영하는 부스는 바로 '청소년 인권' 에 관한 부스였습니다. 그 부스는 학교에서 선생님들로 부터 침해당하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했습니다.

예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학생들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학교에서 국민으로써 지켜져야 할 인권이 많이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뺨을 맞거나 심한 체벌을 당하거나, 두발을 제한당하고, 성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 것, 이 모든 것이 인권침해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학생인권이 많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누구 하나 나서서 인권침해를 막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경험을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학교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경험도 엄청나게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가 제정되기 위해 서명운동도 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자율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태봉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학생이고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을 인터넷이나 친구로부터 많이 보거나 들어왔고,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인권이 보호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청소년 인권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물론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계속 학생인권 부스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런 작은 부스를 운영한다고 해서 법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런 활동이 다른 곳에서도 많이 활성화가 된다면 충분히 학생들의 인권은 보호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태국에서의 마지막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개학을 하다보니까 블로그 쓸 시간이 부족했네요;;; 태국에 다녀오고 블로그를 계속 쓰다보니 벌써 학교가 개학을 해버리네요.

어쨌든 태국에서의 마지막날의 하루전 우리 단원들은 마지막으로 반부왁캉 학교로 갔습니다. 거기에 있는 태국의 학생들도 헤어진다는 것을 알고있었는지 그날따라 더 신나게 우리들과 놀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학생들에게 계속 감사했습니다. 한국이라는 낯설고 먼 나라에서 찾아온 우리들을 11일동안 그렇게 잘 이해해주고 함께 놀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한 문화교류의 자세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과 헤어지려니 모두들 감정이 격해졌나봅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 둘 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태국의 학생들도 울기 시작했습니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태국의 학생들 모두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마구 찍었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열심히 사진 촬영에 참가했고 그들에게 마지막 추억인 사진을 남겨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원들과 태국의 학생들의 대부분이 울고있는데 아무래도 남자 단원들은 잘 울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남자들이 감성이 풍부하지 못하나 봅니다.


반부왁캉 학교에서 작별인사를 하고는 다시 둘쨋날에 갔던 산캄펭 YMCA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태국 관광을 조금하다가 바로 공항으로 갔습니다.

공항에는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교류했던 몇몇의 태국인들과 반부왁캉 학교의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엇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들과 인사를 하고싶은 것 이었습니다. 그들을 다시 만나자 단원들과 태국인들은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정말 애틋한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마중나온 태국인들에게 감사한 나머지 저도 눈물을 잠깐 흘렸습니다.


그리고 유리로 된 공항의 출입구를 사이에 두고 정말 끝까지 눈물을 보이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서 우리는 정말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저는 태국인들과 헤어지는데 전혀 슬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태국인들과 충분히 친해지고 정도 많이 들었는데 왜 슬프지 않았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결론이 대충 나왔습니다. 그건 제가 이별에 관대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과 이별할 때 그렇게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의 학생들과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해도 저는 다시 만날거라는 기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기 때문에 슬프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는 사람과 이별할 때가 아닌 이별했던 그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 감정이 격해집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시절 수련회를 갈 때, 출발할 때에는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도 전혀 슬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련회를 다녀오고 나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헤어진 태국 사람들을 시간이 한참 흘러, 다시 만날 때에는 제가 바로 울 것 같습니다.

이별보다는 다시 만나게 되는 '재회' 에 눈물이 나는 저의 감정이 조금 이상하나요? 하지만 제 감정은 그런 것같습니다. 정말 태국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면 실컷 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정말 어른이 되어 태국의 치앙마이 부왁캉 마을에 가서 눈물을 쏟아내며 그들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태국에 갔을 때 우리들은 자원봉사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문화교류를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갔습니다. 실제로도 반부왁캉 학교에서 문화교류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문화교류만이 아니라 진짜 자원봉사다운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바로 태국의 독거노인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러닝타이 팀이 지냈던 치앙마이의 부왁캉 마을에는 혼자 살고계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집은 매우 지저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러닝타이 팀과 태국의 학생들이 힘을 합쳐 그 할머니의 집을 치우는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마치 폐허가 된 집처럼 금방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정말 '여기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나?'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 할머니의 집은 매우 심각하게 비위생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많으니까 빨리 끝낼 수 있으리라 믿고 바로 대청소에 돌입했습니다. 집은 2층까지 있는 구조였는데 1층에는 창고와 부엌이 있었고, 2층은 거실과 침실이 있었습니다.


저는 1층에 있는 무거운 침들을 옮기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2층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2층에는 여자들만이 청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에게 작은 불상을 옮겨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태국에서는 여자가 불상을 만지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태국이 불교의 나라이다 보니까 그런 예의를 철저히 지키나 봅니다.

2층에는 그런 종류의 작은 불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계속 2층에 남아서 청소를 했습니다. 2층은 그래도 할머니가 주무시는 곳이라 그나마 깨끗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2층이 더 심각했고 방마다 엄청난 먼지가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랍을 하나씩 열 때 마다 먼지가 대량으로 쌓여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할머니가 주무시는 방에서 끔찍하게 죽어있는 새의 시체도 발견되었습니다. 2층에 얼마나 먼지가 많았던지 점심시간에 2층을 청소했던 사람들은 전부 입맛이 없어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먹은 점심입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선생님께 마스크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나중에 마스크를 구해오셨고 우리들은 마스크를 끼고 다시 청소에 임했습니다.

확실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청소를 하니까 먼지도 덜 먹었고 청소도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청소를 끝마치고 모두들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찾아와 다짜고짜 청소를 해드려서 집주인 할머니께서 불편해 하시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할머니는 계속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고맙다고 하시니까 정말 청소를 해드린게 뿌듯했고 진짜 자원봉사같은 자원봉사를 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홀가분 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계속 반부왁캉 학교에서 학생들과 놀기만하고 우리들이 너무 태국 사람들에게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약간 미안했는데 우리들도 직접 봉사를 하고나니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정말 자원봉사를 자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게된 것 같습니다. 자원봉사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멋진 일을 깨닫고나니까 앞으로도 이런 자원봉사를 많이 하고싶습니다.

태국의 '반부왁캉 학교' 에서는 정말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태국에서 지내는 12일의 일정 중에서 대부분이 학교에서의 일정이다보니 학교에서의 활동은 정말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학교에서의 활동은 아무래도 학생들이 있다보니 전부 그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반부왁캉 학교의 학생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제일 처음 했던 활동은 태국의 전통악기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태국의 학생들이 먼저 무대에서 전통악기로 공연을 하고 우리들이 태국의 학생들에게 악기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악기는 종류가 4~5개 정도 있었는데 저는 그 중에서 바이올린같은 현악기와 기타같은 악기 2가지 정도를 배워보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지만 솔직히 태국의 악기는 다루는게 정말 쉬웠습니다. 한국의 악기들은 각 음정마다 소리내는 법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태국은 그냥 한칸씩 내려가는 형식이라서 외우기도 쉬웠습니다.

그리고 그 때 배웠던 기타와 비슷한 악기는 실제 기타와는 다르게 특별히 외워야하는 코드같은 것도 없었고 오직 간단하게 계이름으로만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웠던 두 악기 모두 줄이 두 개밖에 없어서 아주 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방 악기를 익혀서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배웠던 '비행기' 라는 노래를 연주해서 태국의 학생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태국 학생들이 박수를 쳐주면 저는 기분이 살짝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우리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바로 '자기 이름으로 도장만들기' 였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지우개를 이용해 한글로 이름을 새겨 도장을 만드는 활동이었습니다.

우리 단원들은 태국의 학생들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지우개 위에 한글로 그 이름을 적어주었습니다. 그러면 태국의 학생들은 한글로 된 자기이름을 따라 칼로 파냈습니다.


그리고 도장밥에 찍어서 종이 위에 도장을 찍으면 태국 학생들의 한글로 된 자기이름 도장이 완성된 것 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학생들이 한 종이에 자기 도장을 찍었고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종이 위에는 태국 학생들의 이름이 찍혀있는데 그 종이를 보면 태국인들의 이름이 한국에 비교하면 정말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잘 찾아보면 '똥' 이라는 이름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국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외국이기 때문에 한 번 웃고 넘어갔습니다. 태국에서는 그런 이름이 일반적인 이름일테니까요.

또 제가 어릴 때 다니던 태권도의 도복을 입고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고 태권도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문화를 태국의 학생들에게 소개시켜주는 시간도 잠깐 가졌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는데 바로 태국 학생들과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활동입니다. 우리 러닝타이 팀이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온 봉숭아 물들이기 세트로 다함께 봉숭아 물을 들였습니다.

그 활동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때 물들였던 봉숭아가 아직도 손톱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제 손톱을 보면 태국에서 봉숭아 물을 들였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놀이인 '제기' 를 직접 만들어서 제기차기를 해보는 시간도 가졌는데 사실 그 활동은 제기 만드는데 너무 열중해서 직접 차보는 것은 별로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형들이 태국의 학생들과 함께 제기차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놀아서 마음이 좀 편했습니다.


그 외에도 태국의 전통문화를 배워보는 활동도 있었습니다. 태국의 전통음식을 만드는 활동도 하고, 태국의 전통 장신구를 만드는 활동, 태국의 꽃다발 만드는 활동 등... 참 많은 것 같네요.


저는 이 활동들 중에서 태국의 전통음식을 만드는 활동을 했습니다. 무슨 '떡' 같은 음식을 만들었는데 저는 너무 어려워서 잘 하지 못했습니다.

난생 처음보는 재료들을 섞어서 반죽을 하고 그 반죽한 것들을 어떤 나뭇잎에 싸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글로 적으면 정말 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계속 헤매다가 태국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세 개정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만들고 나니까 뭔가 뿌듯하고 제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태국의 반부왁캉 학교에서 했던 활동은 이것말고도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활동들을 이번에 전부 적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문화교류를 했던 활동들을 바탕으로 포스팅했습니다.

태국의 학생들과 문화교류를 하면서 정말 느낀게 많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문화를 태국의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니까 뭔가 한국인으로써의 자부심같은게 느껴졌고 반대로 태국의 문화를 배울 때에는 태국 학생들에게 고마움이 많이 생겼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우리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알려주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태국 학생들의 모습은 문화교류를 하러 온 저의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학생들과 태국의 학생들이 만나서 섞여 노는 모습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서 대화가 전혀 안되는데도 조금의 꺼리낌없이 활동할 수 있다는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언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태국의 학교에서 한국의 학생들과 태국 학생들 사이에 언어는 무의미했습니다. 

언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그 어떤 말로도 그 모습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표현할 방법을 굳이 생각해본다면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를 이용해 한국, 태국의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고 재미있게 지내는 모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러닝타이' 팀은 태국에 도착해서 치앙마이 YMCA가 운영하는 호텔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태국의 중학생들이 우리들을 환영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있었습니다.

환영식은 저녁에 하기 때문에 우리 러닝타이팀도 저녁 때까지 환영식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현지인에게 자기소개를 태국어로 할 수 있는 방법만 배워서 한명씩 태국어로 자기소개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폼 츠 태윤 캅(나의 이름은 태윤 입니다)', '폼 아유 씹젯 캅(나의 나이는 열일곱 입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치앙마이의 현지인들과 학생들의 환영식이 시작되고 우리들은 태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최대한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태국 학생들은 환영을 위한 공연을 보여줬습니다. 태국의 전통춤을 추고, 그리고 다 같이 앞에 나가서 YMCA의 주제곡도 불렀습니다.


그리고 태국의 학생들과 섞여서 간단한 영어로 대화도 해보며 같이 놀고, 여러가지 게임과 태국, 한국의 소개 등 최대한 많은 것을 소통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재미있었던 환영회를 마치고, 처음으로 태국에서의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 러닝타이 팀은 산캄펭 마을에 있는 '산캄펭 YMCA' 로 출발했습니다.

져는 어머니가 YMCA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YMCA라는 단체에 대해 잘 알고있다고 자부해왔으며 외국에도 YMCA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이미 예전부터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YMCA들은 우리나라의 YMCA들처럼 활성화가 되어있지 않고 아주 작은 단체정도로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태국의 YMCA도 충분히 활성화 되어있었으며 우리나라의 YMCA만큼 좋은 활동을 많이 하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캄펭 YMCA는 이미 다른 나라의 YMCA와도 수없이 많은 교류를 하고었습니다. 산캄펭 YMCA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어가 적힌 포스터가 보였고, 한국의 무술인 태권도 도복도 있었습니다.

또한 거기에서는 태권도를 학생들에게 주기적으로 계속 가르치고 있었고 구석에는 일본어가 적힌 포스터와 함께 일본의 전통옷을 입은 인형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보아 우리 팀이 간 산캄펭 YMCA는 다른 나라의 YMCA들과 충분한 교류를 하고 있었고, 절대로 우리나라의 YMCA들에게 못지않게 열심히 활동을 하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태국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을 끝내고 바로 어제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태국팀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모든 일정을 끝내고나서도 아직 5시간이나 더 버스를 타고 마산까지 돌아와야 했습니다. 집이 너무 그리웠던지 바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편하게 쉬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태국에 다녀왔던 포스팅을 작성합니다. 먼저 태국에 있는 12일동안 저는 무척 재미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 갔기 때문에 많이 힘들고 고생도 많이 했었지만 자원봉사를 하는 모든 활동들이 전부 재미있게 느껴졌고 모든게 새로워서 힘들다는 생각은 금방 사라졌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 우리 태국팀이 모두 모여 비행기를 타고 먼저 '방콕' 으로 출발했습니다. 5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도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치앙마이' 에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습니다.


비행기를 2시간이나 더 타서 도착한 곳은 태국 제 2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치앙마이' 라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태국팀은 치앙마이 YMCA가 운영하는 호텔로 향했습니다.

호텔이라서 그런지 시설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에는 조금 이상한 차를 타고 치앙마이를 돌아다녔습니다.

태국 현지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확실히 외국에 가니까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단원들이 태국어를 전혀 모르고 태국의 현지인들도 한국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태국의 사람들은 영어도 전혀 할 줄 몰라서 의사소통을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같이 온우리 태국팀의 단원들끼리 서로 더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태국팀의 단원들이 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태국에서 열심히 자원봉사활동을 하려면 먼저 우리 단원들이 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숙소에서 단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태국에 갔던 남자 단원들 중에 제가 제일 어리기 때문에 친해지는게 힘들까봐 걱정을 조금 했습니다. 하지만 형들은 모두 저에게 친철했고 물론 저도 모든 단원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했습니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인인 우리 단원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떤 트러블도 없이 단원들끼리 챙겨주고 의지하면서 여러가지 힘든 일정들을 힘을 합쳐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해외자원봉사 사전교육의 마지막날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마지막날에는 제일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바로 태국에 가서 할 활동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일정은 다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충 일정을 짜보았습니다. 저는 체육에 관련된 일정을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태국팀이 가는 태국의 '치앙마이' 라는 도시에는 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태국 학생들이 수업을 다 마치고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농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체육에 관련된 일정을 짰습니다.

하지만 체육 일정은 특별히 만들게 없었습니다. 그냥 태국에 가서 거기에 있는 도구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운동을 하면 그걸로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대충 가서 어떤 종목의 운동을 할지 정하고 농구를 할 때 포지션을 정하면서 기본적인 틀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구체적인 일정을 짜고나서는 평화수칙을 만들었습니다. 평화수칙이란 태국에서의 일정이 아니라 우리들이 각자 지켜야할 규칙같은 것 이었습니다.

태국에는 선생님께서 한 명만 가시기 때문에 우리들끼리의 규칙을 제대로 정해놓아야 통제가 잘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평화수칙을 정했습니다.


평화수칙을 정하고나서는 각자의 역할을 정했습니다. 역할의 종류는 대표, 기록, 프로그램 진행, 켐페인 진행이 있었습니다.

대표는 말그대로 우리 태국팀의 모두를 대표하는 것이고, 기록은 글로 기록하는 서기 와 사진, 영상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한 프로그램과 켐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진행팀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기록팀의 영상을 맡았습니다. 아무래도 제 장래희망이 방송연출가(PD) 이니까 영상쪽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태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다 촬영하고, 집에 와서 편집도 모두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캠코더는 선생님께서 빌려와주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영상을 맡아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 제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태국에 가서 해야할 일과 각자의 역할을 모두 정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뒤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세 팀이 모두 모여 다같이 인사를 나누고 서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우리가 태국에 가서 활동하는 일정입니다.


이제 8월 2일에 인천공항에 모여서 태국으로 가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내일입니다.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쓰다보니 벌써 태국으로 갈 시간이 되었네요.

사실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외국에 가는 것도 너무나 오랜만이고, 태국에 무려 11박 12일로 다녀와야합니다.

태국은 엄청나게 멀리 있고, 심하게 더운데다가, 말도 안통합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아무리 15명의 동료들과 함께 간다고 해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그래도 해외자원봉사는 저에게 새로운 경험이고 그만큼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태국에 다녀오면 제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태국에 가있는동안 또다시 블로그를 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태국에 다녀와서 블로그에 쓸 내용이 많을테니까 그 때 또 열심히 블로그 포스팅할께요. 12일 후에 뵙겠습니다.
서울에서의 둘쨋날의 마지막 일정은 'be a Peace builder'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Peace builder' 의 뜻은 대충 해석해보면 '평화를 만드는 사람'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선생님들께서는 'be a Peace builder' 이라는 일정이 특별히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그냥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세 팀 모두 모이라고만 했습니다.

세 국가가 다 모이고 나서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교육을 받는 안에서는 뭘 준비하는지 선생님들이 계속 들락날락 거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뒤 갑자기 선생님들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선생님들께서 갑자기 조용해지셨고 청소년들에게도 조용하게 행동해라고 하셨습니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불은 모두 꺼져있었고 수많은 촛불들이 모여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각 국가팀끼리 촛불을 둘러싸고 모여 앉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해외자원봉사를 가기 전에 버리고 가고 싶은 것을 생각해서 각 국가끼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분위기가 어색한지 태국팀의 모두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그 때 태국으로 자원봉사를 가기 전 '놀고싶은 마음' 을 버리고 가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 또한 각자가 버리고 싶은 것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각자가 들고 있는 종이에 '자신이 어떤 'Peace builder' 가 되고싶은지 적어서 벽에 붙인 뒤에 발표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종이에 '자유' 라고 적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Peace builder' 가 되고 싶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태국으로 자원봉사를 가다보니까 가서 계속 일만 하는게 아니라 태국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국가의 모든 청소년들도 각자가 어떤 'Peace builder' 가 되고싶은지 적어서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발표를 했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둘쨋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일정을 다 끝내고 각 국가끼리 모여서 간식을 먹었습니다. 간식은 제가 위염이 걸린동안 그토록 먹고싶었던 '치킨' 이었습니다.


무척 기대가 되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치키는 튀긴 치킨이 아닌 그냥 구운 닭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운 닭보다 튀긴 닭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맛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앞으로 태국에서 무려 12일동안 함께 지낼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간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겠죠.

함께 치킨을 먹으며 태국을 함께 가는 사람들과 같이 놀고 대화도 나누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태국에 가서 현지인들과 잘 생활하려면 같이 가는 우리들이 먼저 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의 교육 '신무역 게임' 이 끝나자마자 바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하도 정신없이 신무역 게임을 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점심을 먹고나서 숙소로 올라가 바로 잠을 청했습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많이 피곤했나봅니다. 한숨 푹 자고일어나니 벌써 다음 일정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태국팀만 모여서 '인권목록만들기' 를 했습니다. 모둠을 나누고 모둠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대한 인권목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둠의 주제는 '에이즈에 걸린 13세 소녀의 인권' 이었습니다. 대체로 어린이가 에이즈가 걸리는 경우는 세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돈을 벌기위해 성매매를 하다가 에이즈에 걸리거나, 병원에서 주사를 맞다가 전염되거나, 아니면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원하지도 않게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은 사회로부터 많이 소외받습니다. 전염의 위험이 있다며 사람들은 에이즈에 걸린 사람을 일부러 멀리합니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약이 이미 만들어졌는데도 약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에이즈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가는 이런 에이즈 환자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에이즈가 걸렸다는 이유로 에이즈 환자들을 취직시키지 않는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둠은 이렇게 사회로부터 심하게 차별당하고 소외당하는 어린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인권목록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1.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이 교육받을 권리
2.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
3. 에이즈라는 병으로 인해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
4. 어린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취직의 자유
5. 국민으로써 국가에서 보호를 받을 권리


대충 이정도의 인권목록을 만들어서 포스터도 두 개나 만들었습니다. 먼저 여러명의 어린이들을 그려놓고 밑에 글로 'Who is AIDS?(누가 에이즈입니까?)' 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게 전혀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 입니다.

두번째 포스터는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 한 명이 울고 있고 하는에는 반짝이는 별들 사이에 에이즈 약 하나를 그려놓았습니다. 

가난한 에이즈 환자들이 에이즈 약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처럼 어렵다는 표현한 것 입니다. 우리 모둠 말고 다른 모둠들도 모두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2모둠이었고, 1모둠은 태국의 소수민족이 가져야 할 인권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태국의 소수민족들은 쉽게 말해서 태국의 원주민을 말하는 것 입니다.

태국의 원주민들은 태국사람들의 무차별적인 개발때문에 그들이 살고있는 삶의 터전을 많이 잃어버리고 지금도 많이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모둠은 태국의 난민들이 가져야 할 인권목록을 만들었습니다. 태국의 난민들은 말그대로 태국의 거지들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주거지가 없고 돈도 없어서 매우 힘들게 생계를 꾸려나갑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던터라 취직도 되 않아 돈을 벌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각 모둠들이 만든 인권목록과 포스터를 만들어서 가지고 나와 설명을 하며 발표를 했습니다. 각 주제는 선생님께서 정해주셨는데, 세개의 주제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태국의 소수민족과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 태국의 난민 이 세개의 집단은 모두 가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기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차별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도 못본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확실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권목록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해보니 그런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난이 죄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 이미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태국에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의 둘쨋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숙소도 시설에 꽤 좋아서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는 같은 방의 형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다시 교육을 받으러 4층으로 같습니다.

둘쨋날 아침, 첫번째 일정은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세팀이 모두 모여 '신무역 게임' 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신무역 게임이란 모둠을 정해서 물건을 교환하고 거래하면서 실제로 무역을 해보는 게임이었습니다.

우선 각 모둠이 각 나라가 되었고 저는 우리 모둠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각 모둠의 대통령이 앞으로 나와서 봉투를 하나씩 골랐습니다.

제가 고른 봉투에는 알파벳 'C' 가 적혀있었고 클립 4개 .가위, 자, 컴퍼스, 그리고 종이 몇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특정조건을 만족시킨 도형을 만들어서 시장에 팔면 돈(클립)을 준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클립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모둠이 승리하는 게임이 바로 신무역 게임이었습니다. 보기에는 간단해보여도 생각해보면 신무역 게임은 무척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우선 우리 모둠 C국가는 연필이 없기 때문에 특정 도형을 제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D국가에게 컴퍼스를 잠깐 빌려주고 연필도 빌려왔습니다.

그런식으로 계속 거래를 하며 도형을 왕창 만들어서 선생님께서 계시는 시장에 팔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우리 C국가의 도형을 잘 사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팔아야 우리 C국가의 도형을 팔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연필이 조금씩 빌려쓰는게 아니라 영구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왔습니다.

그래서 A국가와 거래를 했습니다. 연필이 많은 A국가가 우리 C국가에게 연필을 주는대신에 A국가는 우리 C국가의 도형을 시장에 팔아주고 벌어들인 돈의 40%를 우리 C국가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거래의 조건이 우리 C국가에게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에 우리 C국가는 당장 A국가의 거래를 받아드렸습니다. 연필도 받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의 거래였습니다.


그렇게 받은 연필로 열심히 도형을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국가의 대통령이 와서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들고 있는 도형의 조건이 바뀌었다는 소리였습니다.

원래는 지름이 8cm인 원을 만들어야 팔 수 있는데 시장의 가격변동으로 인해 꼭 지름이 4cm인 원을 만들어야 팔 수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가격변동에 대한 내용은 앞에 있는 칠판에 적혀있었지만 우리 C국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형의 가격이 바뀐것을 한참 나중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도형을 모두 버리고 다시 변경된 조건대로 도형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쨋든 그런식으로 우리 C국가는 계속 도형을 만들어 시장에 팔면서 꾸준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고 게임이 끝났습니다.

각 나라가 번 돈과 세금으로 낼 돈, 쓰레기 배출량 이런 것들을 모두 계산해서 총 수익으로는 우리 C국가 총 6개 국가 중에서 4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짜기라도 한듯이 A국가에 F국가까지 거의 순서대로 순위가 내려졌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처음 받았던 봉투에 있었습니다.

봉투의 알파벳은 각나라의 부유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 이었습니다. A와 B국가는 선진국이었고, C와 D국가는 개발도상국, 그리고 E, F국가는 가난한 나라에 속했습니다.

우선 선진국에 속하는 A와 B국가는 처음 봉투를 받을 때 자본금(클립)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많았고 가위나 연필, 컴퍼스, 자와 같은 도구들이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바로 선생님이 계시는 시장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A, B국가에서 만든 도형을 더 잘 사주었다는 것 이었습니다.

E, F국가와 같이 가난한 국가가 만든 도형은 일부러 잘 받아주지 않았고 반면에 A, B와 같이 부유한 국가의 도형은 시장에서 무조건 사주었습니다.

E, F국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다른 나라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힘들게 시작했습니다. 가위나 연필같은 꼭 필요한 도구들도 없었고, 자본금도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제가 속했던 C, D국가는 개발도상국으로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적당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가에게도 불공평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각 국가에게 나누어 준 물건중에서 파란색 스티커가 있었는데 그 파란색 스티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파란색 스티커를 도형에 붙여서 시장에 팔면 10배의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보통 국가들은 그것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파란색 스티커에 대한 정보는 선생님께서 일부러 A국가에게만 알려주었습니다. 부유한 국가와 다른 국가들은 정보력에서도 심하게 차이가 났던 것입니다.

A국가는 파란색 스티커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일부러 다른 국가들에게 거래를 하면서 다른 국가의 도형을 팔아주고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나눠주겠다고 거짓말을 하여 스티커를 붙여 도형을 팔아주고 아주 적은 돈만을 도형의 원래 주인 국가에게 나눠주면서 돈을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벌어들였습니다.

신무역 게임이 끝나고 각 국가마다 느낀점을 말했는데 저희 C국가는 우선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하다고 했고, 그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C국가는 지리적으로 멀리 위치해 있어서 선생님께서 게임에 대해 전달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고 칠판도 잘 보이지 않아 많이 불공평했다는 것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정말 이번 신무역 게임은 무척 재미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실제 국가간의 무역 시장체제와 많이 유사했고 현재 시장체제에 대한 문제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부유한 국가의 물건은 일부러 잘 사주고, 가난한 나라가 만든 물건은 일부러 사지 않는 것이 현재 시장체제와 많이 닮았다는게 이번에 했던 신무역 게임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드밴티지였던 '파란색 스티커' 는 나이키나, 아디다스같은 메이커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물건이든 메이커를 붙여서 팔면 파란색 스티커를 붙여서 팔면 가격이 훨씬 올라가는게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신무역 게임을 해보면서 느낀게 참 많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학교에서 직접 신무역 게임을 진행시켜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또 배울 수 있는게 더 있겠죠.
저번주 일요일(7월 24일)에 저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 이유는 태국 자원봉사를 가기 전 미리 사전교육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침 8시에 출발했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4시간이나 훌쩍 지나 벌써 12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사먹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터미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양푼이 비빔밥을 사먹었습니다. 원래 양푼이 비빔밥을 많이 좋아했었는데 거기의 음식은 조금 짰습니다. 원래 서울사람들이 조금 짜게 먹나봅니다.


대충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택시를 이용해 사전교육을 하는 '서울올림픽파크텔' 이라는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터머닐에서 꽤나 멀었던지 약 30분정도를 가야했고 택시비는 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어쨌든 저는 서울올림픽파크텔이라는 어느 호텔의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해외자원봉사 파견인들이 몇 명 앉아있었습니다. 약속시간인 2시가 되자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고 사전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태국으로 가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태국 이외에도 캄보디아와 필리핀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각 나라마다 15명의 청소년과 1명의 인솔자 선생님으로 이루어져 총 16명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태국팀에는 대학생이 3명 있었고 남자는 5명, 여자는 1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대충 간사님의 말씀을 듣고, 각 나라끼리 모여서 자기소개시간을 가졌습니다. 태국팀의 15명중에서 저만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튀어보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의견을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자기소개시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서울까지 왔다고 당당히 말했고 태봉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도 자신감있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태봉고등학교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전혀 부끄러운게 없었습니다.

저는 태봉고등학교에 대해 말하면서 서울사람들의 대안학교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꾸려고 열심히 학교소개를 했습니다. 다행히 대안학교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인사도 그렇게 나누고 각 나라에 가서 사용할 깃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태국팀은 '태국에 가서 발로 뛰며 열심히 활동하겠다' 라는 의미로 '러닝타이' 라는 팀명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깃발에는 팀명에 맞춰 사람이 달리고 있는 모습을 바느질로 그려넣었습니다. 바느질하는 재료는 어디선가 주워 온 버린 옷들이었는데 색의 제한이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바느질이라 그런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태국, 캄보디아, 필리필 3팀 모두 완성하지 못하고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쉬는시간마다 꼬박꼬박 바느질을 해서 완성시키기로 했습니다.

잠시 쉬고나서 바로 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일정을 보니 휴식시간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빡빡한 일정을 계속 소화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초반이라 그렇게 힘든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태국팀이 받은 첫번째 교육은 '평화의 문화' 라는 주제의 평화교육이었습니다.

먼저 각자 평화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평화가 있으려면 꼭 있어야하는 것들과 없어야 할 것들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5개를 적었는데, 저는 친구, 이불, 잡념, 소음 같은 것들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각자가 적은 것들을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들끼리 모아서 교육을 하시는 선생님께 제출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모아진 평화에 대한 단어들을 화이트보드에 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크게 공동체, 사랑, 학교, 경쟁, 전쟁, 편안함 등으로 나뉘어진 것이 보였습니다.


평화에는 공동체와 사랑, 편안함 등이 있어야 하고, 학교와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화가 있으려면 학교가 없어야한다는 반대했습니다.

학교가 없어야 한다고 적은 사람은 학교가 있으면 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평화가 오더라도 학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육이 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실천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학교가 있을 때 만큼의 교육의 활성화가 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경쟁이 없어지되 선의의 경쟁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의견에도 반대를 했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도우며 배우는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해서 교육을 하면 경쟁 없이도 얼마든지 경쟁했을 때보다 더 나은 성과의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수업만 듣는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계속 말하고 남의 의견도 들어보면서 평화에 대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평화에 대한 이해는 다양하지만 결국에는 몇 가지의 큰 주제들로 묶이는 것을 보고, 이런 모습을 통해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평화교육을 받았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평화교육 받은 것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포스팅하기로 하겠습니다.
같은 반의 친구들과 남해로 여행을 가니 역시 뭔가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친구들이랑 놀 때에는 노래방이나, 당구장에 가거나 농구를 하러 가면서 항상 똑같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직접 회의를 하고, 여행의 일정을 짜서 여행을 가니까 노래방이나 당구장보다 훨씬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함께 가신 담임 선생님을 제외하고 저를 포함해서 총 8명이 여행을 갔는데 먹을 것을 사려고 장을 볼 때 약간 힘든 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장을 볼 때에는 8명 모두가 각자 먹고싶은 음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의견충돌과 개인행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만 계속 고집한다거나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을 사기 위해 따로 마트를 돌아다닌다거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반이 단합이 안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수욕장을 갈 때 싹 없어졌습니다. 해수욕장을 갈 때 우리들은 담임 선생님의 7인승 차를 타고 갔는데 무려 9명이나 타서 너무 좁아서 많이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해수욕장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거의 1시간 30분동안 길을 헤맸습니다. 하지만 해수욕장에 가는동안 친구들 모두 불편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모두 힘을 합쳐서 이정표를 계속 쳐다보고 보이는 사람마다 해수욕장의 위치를 물어보면서 사촌 해수욕장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우리들은 정말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재정이라는 친구가 튜브도 들고왔었고 다들 무더운 날씨라 그런지 정말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해수욕장을 가기 하루 전에는 계곡을 갔었는데 계곡에서 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넓고 깊은 남해의 바다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놀고나서 할아버지 집에 돌아갈 때에는 다행히 길을 잘 찾아서 빨리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역시 친구들은 모두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몇몇의 친구들은 선생님과 함께 저녁밥을 준비했고 나중에는 저녁밥을 정말 배가 터지게 먹고도 모자라서 컵라면도 먹었습니다.

정말 남해 여행에 다녀와서 살이 1kg 정도 더 쪘을 정도로 여행에서 음식을 많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에서 많이 노니까 그 만큼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숨 푹자고 나니까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저는 전날 밤에 늦게까지 계속 놀아서 그런지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조금 구겨져서 잠을 잔 덕분에 몸이 매우 뻐근했습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마산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금방 일어나서 짐을 싸고 집을 대충 치우고 난 뒤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게 벌써 어제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여행도 끝났으니 방학동안 당분간 학교의 친구들을 볼 수가 없겠네요.

확실히 학교생활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보니까 벌써 방학이 지루해지고 개학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방학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방학동안 서울에도 가야하고, 태국에도 해외자원봉사를 떠나야합니다. 다른 친구들도 저처럼 방학동안 각자가 해야할 일이 있을테니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그렇게 조급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LTI PT-Day 발표를 해보고 배운 것

드디어 저도 PT-Day 발표를 했습니다. 사실 이미 2일전에 발표를 했었지만 이제야 블로그를 쓰게 됩니다. 제 발표의 주제는 '방송PD의 꿈을 위한 영상 미디어 체험활동'으로 정했습니다.

저는 PT-Day 세 번째 날 첫 번째 순서에 발표 했는데 마지막 날이고, 제일 처음 시작하다보니까 긴장과는 조금 다른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발표를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긴장은 전혀 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빨리 발표를 하고싶다는 기대감까지 생겼습니다.

발표 시간은 각자 15분이 주어지는데 저는 발표 전 날 혼자 무대에서 마이크를 들고 리허설을 해 본 결과 14분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제가 발표를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형식적인 칭찬인지는 몰라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내 발표가 끝난 후, 친구의 발표 차례.


제가 발표를 하는 동안 아버지께서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을 유튜브라는 사이트에 올려놓으셨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rhFMS_zc65Q



찍어 놓은 영상을 보니 제가 발표를 할 때 계속 배를 만지작 거렸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발표를 하면서 배를 만지는 저의 모습은 웃겼습니다.

이렇게 제가 발표를 하는 모습을 영상을 보니까 제가 부족했던 점을 정확히 알게 되었고, 다음에 또 발표할 일이 생기면 배를 만지는 등의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T-Day를 하기 전에는 보고서와 파워포인트, 대본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하는데 저는 보고서와 파워포인트만 만들어서 제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대본도 작성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발표를 할 때에는 대본을 작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본을 적어서 발표 할 때 대본을 그대로 읽을 바에야 차라리 발표를 하지 않고, 그냥 그 대본을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보여주는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를 하면서 대본을 읽으거면 그게 연극이랑 뭐가 다릅니까? 물론 대본을 적어서 발표하는게 말을 더 잘할 수 있고,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대본을 적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게 발표라고 생각합니다.

제 발표가 끝나고 남은 학생들의 발표도 끝나고 난 뒤 우리 학교는 하룻밤을 자고 방학을 했습니다. 방학이라 기숙사에 있는 모든 짐을 집에 들고가야 했습니다.

제가 들고가야 할 가방은 6개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챙기기 힘들었던 것이 바로 기숙사에서 사용하는 저의 이불이었습니다.

다행히 제 친구 윤이가 힘겹게 이불을 들고 저의 집까지 옮겨주어서 무사히 집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짐을 챙기느라 너무 바빠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짐이 산처럼 많이 있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방학이 되었습니다. 매우 짧은데다가 저는 3반 학생들이 모여 가는 여행을 가야하고 서울에도 가야하며, 무엇보다고 11박 12일로 태국도 다녀와야해서 방학동안 집에 있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래서 쉴 틈이 없다는 표현밖에 안나오지만 그래도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주말에 집에 와서 아버지가 갑자기 토요일 인터뷰를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번에 인터뷰하러 가야한다는 파비님의 댓글을 본 것 같았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아버지와 함께 인터뷰를 하러 경남도민일보로 갔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하는게 아니라 '정동영 최고위원 님' 께서 오셔서 파워블로거들이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파워블로거에 속해 함께 인터뷰를 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미디어로 힘이 있는 파워블로거는 아니지만 그냥 아버지를 따라 간 것과 별 다를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을 인터뷰 해보는 경험이 또 언제 있겠습니까? 그냥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를 따라 인터뷰를 하러 갔습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저를 포함한 블로거들이 인터뷰할 사람은 '정동영' 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국회의원으로, 최초로 두 번 연속 최다득표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많은 일은 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사실 정치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인터뷰를 해야하니 질문을 몇 가지 준비해 갔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학생이다 보니까 학생에 대한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 인권 문제' 아니면,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학생들의 자살문제' 이런 종류의 질문을 준비했는데 인터뷰는 처음해보는거라 어느 타이밍에 질문을 할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타이밍을 잡아주셨고 드디어 저에게도 질문할 기회가 왔습니다. 저는 먼저 "학생들이 학교에서 체벌이나, 성적을 가지고 차별하는 등의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 을 정동영 의원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정동영 의원님은 거기에 대해서 "분노 한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매없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의원님 또한 요즘 학생들처럼 어릴 때 학교가기가 무척 싫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교육정책나 어른들의 생각에 문제가 있어서 요즘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이 불행하다고 하셨으며 정치가 학생들이 가고싶은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학생으로써 공감가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물론 많은 것이 자율적인 태봉고등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학교가는 것이 너무나 좋지만 확실히 정동영 의원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느껴졌습니다.

인문계를 다녀본 적은 없지만,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죽어라 공부만 하다가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학생 때에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해보는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질문의 답변이 끝나자 또다시 정치적인 말들이 오고갔습니다. 솔직히 이해도 안되는 어려운 말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역시 인터뷰를 할 때에는 정치면 정치, 경제라면 경제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고 인터뷰 하는게 좋다는 것 을 알게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말씀 한 개를 들었습니다. 오늘 인터뷰를 하기 전에 정동영 의원님은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에 비행기가 사고날 뻔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동영 위원님은 자신이 '결국 이렇게 가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시면서 말씀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기억에 가장 남아있는 말입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는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우리가 탄 배는 초호화 여객선이 아닌 그냥 크기만 커다란 배였습니다. 하긴 학교에서 가는 여행인데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낡은 배를 타고 우리는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배는 낡았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은 항상 새로웠고 그럴수록 제주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더 커져만 갔습니다.

배를 타는데 계단이 너무 많아서 배에 타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짐도 들고 타야했기 때문에 짐을 옮기는 임무를 맡은 친구들은 처음부터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최대한 빨리 배에 타서 짐을 내려놓고 배에 타는 친구들을 찍었습니다. 친구들은 무거운 짐들을 들고 배에 타면서 매우 힘들어보였지만 아직까지는 모두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의 사진을 찍고 옆으로 보이는 경치까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제주도는 너무도 멀리 있기때문에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다 저 멀리에 제주도가 분명히 있을 것 이라는 기대감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배가 출발하고 우리들은 제주도의 빡빡한 일정을 위해 잘 준비를 했습니다. 몇 몇 아이들은 아주 잘 잤지만 저는 배가 너무 흔들려서 도저히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멀미는 하지 않았지만 배가 너무 흔들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밤이 되자 잠이 오기 시작하고 저도 결국 나중에는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들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밥을 먹기위해 우리들은 걷기보다는 계속 달렸습니다.

순식간에 식당에서 맛있는 갈비탕을 아침으로 먹고 본격적으로 도보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반장이기때문에 우리반 아이들의 휴대폰을 모아서 선생님께 드리고 출발했습니다.


저와 몇 몇 친구들은 사진을 찍기위해 계속 뛰어다녔습니다. 사진을 찍는동안 이미 다른 친구들은 멀리 가버리기 때문에 속도를 맞추기위해 뛰어나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생한만큼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제주도에는 돌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돌로 이루어진 경치가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물론 돌하르방도 곳곳에 서있었습니다.

또한 제주도는 섬이기때문에 바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는 무척 더웠기 때문에 시원한 파도가 치는 바다를 볼 때면 항상 바다에 빠져 놀고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용의 머리를 닮았는 용두암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너무 힘들어서 잘 보지 못했지만 다행히 사진으로는 남겨두었습니다.

그 때에는 용두암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다면 지금도 용두암을 그냥 바위로 생각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바다옆을 지나갈 때면 일을 하고 있는 해녀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해녀를 TV말고 실제로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녀들을 볼 때마다 사진을 계속 찍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해녀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더 집중해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앞서가는 친구들을 따라가고 계속 걸었기때문에 경치를 볼 여유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사진을 찍었다는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합니다.

저는 평소에 등산을 많이 즐기는 편이라서 이번 제주도 도보여행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사진 찍는다고 계속 뛰어다녔기에 발바닥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도 멋진 사진들을 많이 얻었기 때문에 사진찍었던 것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제주도의 그런 아름다운 경치들을 눈앞에 두고도 힘들다는 핑계로 사진도 찍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면 더 후회했을 것 입니다.

제주도 도보여행을 하며 총 80km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참 빨리 갔습니다. 6일동안 다 걷고 항구에 도착하니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갈 때에는 그 한 걸음이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다 지나고 나니 정말 짧은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아마 제가 군대를 다녀와도 이런 기분일까요? 도보여행을 끝내니 그냥 뭔가가 허전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 때는 왠지 더 걷고싶은 마음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 만큼 이번 제주도 도보여행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등산을 즐겨해서 다리를 단련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일정도 그렇게 빡빡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이번 도보여행에서 한라산을 등산하는 코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일정이 약간 조정되서 등산코스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약간 일정이 쉬엄쉬엄해졌고 걸을 때 마다 중간중간에 간식도 틈틈히 주고 쉬는 시간도 많아서 그렇게 다리에 무리도 가지않고 많이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경우는 좀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우도에 갔을 때 자전거를 타고 우도를 돌아보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는다며 설치다가 큰일을 당했습니다.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미친 짓을 감행하고 있는 저의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왔습니다.

저는 그 자동차를 보고 깜짝 놀라서 그만 브레이크를 너무 갑자기 잡는바람에 그대로 카메라를 든 채 자전거에서 튕겨나갔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 몸으로 카메라를 감싸고 그대로 굴렀습니다. 다행히 카메라는 무사했지만 저는 무려 팔꿈치와 무릎이 까지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저의 상처를 보시자마자 바로바로 신속하게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다친 저를 걱정해주시고 한 번은 차를 태워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은 쉬는시간 틈틈히 쉬지 않고 아이들의 다리에 에어파스를 뿌려주시고 발가락이 아픈 친구들을 위해 발가락 사이에 반창고를 붙여주시는 의료활동을 계속 하셨습니다.

게다가 숙소에 들어가서도 선생님들은 다치거나 다리가 아픈 친구들을 계속 치료해 주셨습니다. 정말 선생님들 덕분에 다친 친구가 한 명도 없이 무사히 도보여행을 마친 것 같습니다.

또한 간식 말고도 밥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사실 열심히 걷고나서 먹는 음식은 무엇이든 다 맛있겠지만 정말로 모든 음식이 맛있었습니다.

도보여행에서의 식사는 거의 대부분이 뷔폐였고 제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두 번이나 먹고 갈비탕과 뼈다귀 해장국 등 정말 맛있는 식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점심 때마다 항상 두 그릇을 먹었고 걸으니까 바로바로 소화가 되어서 살도 많이 찐 것 같습니다. 그 살이 전부 키로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루종일 걷고 지친 우리들을 맞이하는 숙소가 정말 좋았습니다. 숙소는 매일 바뀌었지만 그 때마다 정말 시설이 좋은 숙소에서 잠을 잤습니다.

숙소는 전부 맘에 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저는 '제푸'라는 숙소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푸란 '제주도 푸른바다' 를 줄인 말로써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올 때 가장 많이 가는 숙소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우리 태봉고등학교 말고도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숙소가 가장 예쁜 것 같았습니다.

남자, 여자를 구분해 한 건물씩 빌렸는데 한 집에서 약 20명씩 잤습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부도 아주 좋았습니다. 경치도 아주 좋고 시설도 좋아서 도보여행으로 지친 우리들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록 우리들의 짐으로 숙소가 너무 지저분해지기는 했지만 내부가 너무 넓어서 짐이 많은 것은 별로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2층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푸 숙소에서는 특별한 이벤트를 많이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선생님의 강연을 듣기도 하고 장기자랑도 했습니다.

저도 그 장기자랑에 참가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저와 제 친구가 선택한 노래가 준비되지 않아서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모든 친구들의 피로를 한 방에 풀어줄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바로 '바베큐 파티' 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삼겹살을 엄청 많이 사와서 단체로 구워먹었습니다.

비록 고기 먹는데에 정신이 팔려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지만 정말 환상적인 바베큐 파티였습니다. 고기를 정말 얼마나 먹었던지 나중에는 고기가 질릴 정도였습니다.

그 만큼 고기를 먹으니 더욱 힘이나서 남은 일정을 가뿐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주도 도보여행에서 우리들을 힘내게 해준 것들은 아주 많았습니다. 틈틈히 주는 간식과 쉬는 시간, 최고의 시설을 겸비한 숙소, 맛있는 밥, 바베큐 파티, 그리고 항상 우리를 챙겨주시는 선새님들...

저는 역시 그 중에서도 선생님들의 역할이 가장 컷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걸었지만 항상 우리를 챙겨주시고 걱정해주시는 선생님들의 아마 우리보다 몇 배로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약 1주일간 학교에서 가는 제주도 도보여행으로 인해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7박 8일간 제주도의 여러곳을 걸으면서 학생들이 자아 성찰을 하는게 학교의 목표였습니다.

운동화와 입을 옷, 우비 등 여러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모조리 챙겨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기위해 부산으로 갔습니다.

항구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태봉고등학교 사람들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제주도에는 저를 포함한 1학년들만 가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학생의 가족들이 배웅을 하기 위해 항구까지 왔기때문입니다. 물론 저의 어머니도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바쁘셔서 오시지 못했지만 어머니라도 와주셔서 무척 기뻤습니다.

어머니는 제주도에 가서 고생할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며 선크림과 용돈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가서 사진을 많이 찍으라는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물론 저는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필요한 사진을 찍기위해 카메라를 들고갔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3일째 정도 되면 사진 찍는게 귀찮아져서 사진을 찍지 않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도 사진을 미리 많이 찍어보았습니다. 나중에 되면 어차피 사진을 많이 못찍을 것 같아서 그냥 카메라의 성능을 시험하는 겸해서 여러가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거의 다 친구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저는 그냥 찍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약간의 연출을 겸비해서 조금 특별하게 찍어보았습니다.

먼저 제일 많이 하는 점프샷을 찍어보았습니다. 타이밍 맞추는게 꽤나 어려웠지만 두 세번 찍다보니 요령이 생겨서 쉽게 점프샷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점프샷 말고도 친구들을 모아서 재미있는 사진을 마음껏 찍어보았습니다. 만화 파워레인져의 모습을 따라한 포
즈도 취해보고 단체로 엎드려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친구들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사진 찍는 것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원하는 사진이 찍히면 왠지 모르게 엄청난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엽기적인 사진을 찍으면서도 항상 즐거워하는 우리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진정한 청춘이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이것도 연출된 사진입니다. 절대 태봉고는 체벌하지 않습니다.


그런 청춘의 다짐을 하고 우리는 7박 8일에서 일정이 변경된 6박 7일의 긴 제주도 여정을 떠나기 위해 제주도로 가는 배를 기다렸습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각자의 다짐을 하면서 점심밥을 김밥으로 먹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떠나는 제주도 도보여행이 매우 기대가 되었습니다.

6박7일동안 제주도에 가면 일주일동안 계속 걷기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뿐만 아니라 많을 생각을 하고 학교의 목적대로 정말 자아 성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 제주도 도보여행을 무사히 마친다면 저는 많이 바뀌어있을 것 입니다. 블로그를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제주도 도보여행을 다녀온 상태이지만 마음만은 아직 제주도 도보여행 출발전입니다.

그렇기에 제주도에 다녀오고 나서 느낀점을 적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특별히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제주도 여행을 가기 전의 설렘과 긴장감을 블로그에 올려보고 싶었습니다.


엊그제 학교에서 LTI수업을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송국을 가지 않고 저의 모교인 창신중학교로 갔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진행중인 LTI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지금 저를 포함한 15명의 학생이 모여 '그린나래' 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기획 중입니다.

그린나래라는 프로젝트는 한창 진학을 결정중인 중학교 2,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태봉고 체험캠프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분류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되어있지만 확실히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태봉고의 생활을 미리 체험시켜주기 위해 이 캠프를 기획한 것 입니다.

저는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창신중학교로 갔습니다. 제 모교에 오랜만에 가보니 확실히 기분이 색달랐습니다. 우선 선생님들이 무척 반가웠고 걸어다니는 복도조차도 정겨웠습니다.

저는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2, 3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린나래 프로젝트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먼저 태봉고등학교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태봉고등학교는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처럼 국수사과영 과목 수업을 다 받고 예체능 수업도 다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태봉고등학교에서는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들을 수 없는 농사, 요리, 삶과 철학 수업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도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위대한 탄생' 이라는 방송을 예로 들어 멘토를 구해 수업을 듣는 LTI수업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설명의 마무리를 하기 위해 학생들의 관점에서 본 태봉고등학교의 좋은 점 세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첫번째, 태봉고등학교는 '남녀공학' 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남자 중학교 학생들은 열광을 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두번째, 태봉고등학교는 '두발자유'입니다. 제가 다녔던 창신중학교는 학생들의 두발단속이 엄격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두발자유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태봉고등학교는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습니다. 교복을 입고다니는 학생들은 사복을 입는 우리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을 아주 부러워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단체로 정장을 걸친 3반의 남학생들.


하지만 홍보를 하러 나갔던 전날에는 우리 태봉고등학교가 체육대회를 했기때문에 반별로 옷을 맞춰입었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3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3반의 남학생들은 단체로 정장을 맞춰입었습니다. 체육대회 때에 정장이라니...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지만 우리들은 충분히 만족했고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3반의 다른 학생들은 그냥 옷위에 정장을 하나 걸쳤을 뿐이지만 저같은 경우는 아래위로 양복을 쫘 빼입었습니다. 그래서 체육대회를 하는동안 무척이나 불편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예를 들면서 태봉고등학교는 학생이 주체가 되서 학생들 스스로 자율적인 사고를 가지고 생활하는 학교라고 설명을 하고 그 만큼 책임감도 많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붙였습니다.

지금은 제가 고등학생이지만 중학생이었던 때가 있었기에 중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시선에서 태봉고를 바라보는 말투로 잘 설명을 해주어서 학생들도 아주 재미있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후배들 앞이라 약간 불편해서 말을 더듬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홍보를 잘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이런 경험을 많이 해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가지 사정때문에 이렇게 또 주말에 블로그를 올리게 됩니다. 오늘 쓸 주제는 학교의 자리배치에 대한 내용입니다.

카메라를 산 기념으로 학교에서 사진을 계속 찍고다녔는데 그 사진들을 학교에서 네이버에 만들라고 한 블로그에 다 사용해버려서 이제야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학교에서 찍은 사진 중에는 우리반의 자리배치를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자리배치가 좀 특이합니다.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는 시험을 칠 때 처럼 모든 책상이 띄엄띄엄하게 칠판을 향해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대안고등학교인 우리학교는 조금 다릅니다.

조금이 아니라 좀 많이 다릅니다. 우리학교의 자리배치는 쉽게 말해서 '자유' 입니다. 자리배치를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 입니다.

물론 일정한 제약이 있기는 합니다. 과학시간에는 모든 책상들을 붙여서 'ㄷ' 자로 모여 앉아야 하고 다른 한 명을 떨어뜨려 앉는 것도 당연히 안됩니다.


이렇게 거의 자유로운 자리배치로 인한 단점이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수업에는 그렇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완전히 이상한 모습으로 앉는 학생도 없을 뿐더러 교실의 크기도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학교는 책상들이 붙이지는 않았지만 벽에 붙지 않고 적절하게 모여있기 때문에 선생님들께서 수업을 하실 때 반의 모든 학생들을 볼 수 가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우리 학교의 자리배치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과학시간에 'ㄷ' 자로 앉는 것도 제 마음에 쏙 듭니다.

자리배치가 다른 점 말고는 보통 학교들과 다를게 전혀 없습니다. 교실에는 칠판과 사물함, TV가 있고 청소도 깨끗하게 해서 분위기도 아주 좋습니다.


그래도 다른 점이 있다면 교실에 컴퓨터가 없습니다. 딱히 수업을 할 때 선생님들이 컴퓨터를 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할 때 컴퓨터가 필요하셔서 사용하시는 선생님들은 직접 노트북을 가져오셔서 TV에 연결시켜 수업을 진행하십니다.
 
제 자리는 맨 뒤에 있습니다. 사실 말이 맨 뒤에 있지 교실이 크지 않아서 칠판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선생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책상에 많은 물건들을 다 올려놓는 스타일입니다. 좀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그게 제일 편한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서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학교는 동아리 활동이나 LTI말고도 교실활동이나 수업환경도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 학교의 수업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것 입니다.
어젯밤 아버지가 갑자기 MBC뉴스를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2일전 뉴스에서 한 기자가 PC방에서 폭력적인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에 대해 취재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뉴스에서는 요즘 청소년이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하고 폭행을 저지르는 폭력적인 게임을 많이 해서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도 게임속의 주인공처럼 난폭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청소년의 난폭함을 실험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고있는 PC방의 전원을 내려버립니다. 그러자 게임을 하던 청소년들은 온갖 욕설을 하며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취재기자는 폭력적인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은 역시 상황이 갑자기 순간적인 상황변화를 받아드리지 못하여 난폭한 모습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정말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꼭 게임이 아니더라도 PC방에서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원이 꺼진다면 화를 내는게 정상이 아닙니까?


만약 PC방에서 게임이 아니라 중요한 작업을 하고있었다면 PC방의 전원을 내린 행동은 중요한 작업을 하고있던 사람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 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그 날 방송된 뉴스를 보고 비난을 했고 PC방 전원을 내리는 억지실험에 대한 패러디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할아버지들의 폭력성을 알아보기위해 바둑판을 엎어보겠습니다", "자원봉사의 폭력성을 알아보기위해 음식통을 엎어보겠습니다", "기자들의 폭력성을 알아보기위해 마이크 전원을 꺼보겠습니다" 등

듣기만 해도 말도 안되고 심지어 웃기기도 한 패러디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습니다.

PC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원이 꺼지면 저도 화를 엄청 낼 것 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제 집에서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고 사진을 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가 써놓았던 글이 전부 지워졌습니다. 그리고 글이 전부 날아간 상태로 저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글이 다 날아가자 화를 참지 못하고 저 혼자있는 집에서 소리를 꽥꽥 지르고 책상을 치면서 온갖 화를 분출했습니다.

블로그를 쓰다가 글이 다 지워지는 것은 PC방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갑자기 전원이 꺼지는 것과 아주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패러디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폭력성을 알아보기위해 블로그에 글을 쓰고있는 사람들의 컴퓨터 전원을 모두 내려보겠습니다"

제가 그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면 정말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뉴스가 이런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사건이나 중요한 일들을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프로그램인데 앞으로는 비난을 받을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역시 '해피선데이 1박2일'을 시청했습니다. 1박2일은 처음 방송이 시작할 때부터 계속 시청해온 말그대로 열혈시청자였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1박2일에 대한 포스팅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포스팅을 할 때 마다 모두 1박2일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만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은 냉정하게 1박2일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어볼 생각입니다. 이번에 1박2일은 설악산으로 떠났습니다.

같은 해피선데이의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에서 예전에 지리산을 등산한적이 있기 때문에 1박2일도 그에 따라서 설악산을 가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취지도 아주 좋고 1박2일 멤버들의 각오도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설악산 종주를 향해 각 멤버들이 설악산으로 걸어갔습니다.

눈으로 덮혀있는 설악산의 경치는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겨울산을 많이 가보았기 때문에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로 떠올랐습니다.

겨울산의 매력이란 정말 입을 다물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역시 1박2일은 진정한 버라이어티라고 칭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대청봉에 올라가서 보는 해가 뜨는 모습은 정말로 멋있었습니다.그 모습은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등산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멤버들이 쥐가 나서 서로 도와주며 같이 올라오는 장면은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멤버들이 다 올라오고 나서 1박2일이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감동적인 장면이 아닌데도 일부러 감동스러운 모습이나 자막을 넣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 설악산편은 약간 지루한 면도 있었습니다.

설악산 특집이라 웃음기를 약간 빼려고 했겠지만 그래도 예능인데 너무 웃음을 주는 장면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해도 됩니다. 저도 겨울산을 등산해봐서 멤버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추우니까 웃길 시간을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1년전에 지리산을 갔을 때에도 이번에 1박2일 멤버들처럼 다리가 아프고 추워서 계속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김종민처럼 대피소를 발견하고 따뜻한 대피소에 들어가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고 너무도 피로하고 힘들었지만 1박2일처럼 목표를 달성했다는 만족감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에 대해 딱히 비판을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은 별로 없었지만 이번 설악산 특집은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대청봉에 올라가서 보는 해가 뜨는 모습은 정말로 멋있었습니다.그 모습은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예능이라고 해도 계속 웃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한주간의 피로를 웃음으로 없애려고 1박2일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웃음이라도 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이번 설악산 종주를 한 1박2일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활기찬 1박2일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드디어 길고도 짧았던 중학교 생활이 끝났습니다. 마침내 졸업을 한 것 입니다. 지난 10일은 바로 제가 다니는 중학교의 졸업식이 거행되는 신성한 날이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교복을 차려입고 학교에 가보니 이제는 헤어져야하는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가는 고등학교에는 저 혼자 가기때문에 학교친구들 모두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우연히, 아니면 약속해 만나서 다시 만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따라 친구들의 얼굴이 많이 반가웠습니다.

졸업식은 시작도 하지않았는데 만나는 친구들마다 전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물론 저도 기분좋게 그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시간이 9시가 되어가고 우리들은 드디어 신성한 졸업식이 거행되는 체육관으로 갔습니다. 다른 반의 친구들도 모두 모여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 앉고 이제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1, 2학년 때 선배들이 졸업할 때에는 교장선생님과 이사님들의 말씀이 무척 지루했지만 오늘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졸업식을 하는동안 멀리서 사진을 찍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손을 흔들었지만 멀리 계시는 아버지는 제가 보이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받기위해 각자의 반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졸업장과 함께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중학교다니면서 한 번도 빠진적이 없으니까 당연했습니다. 기분은 당연히 좋았지만 왠지 학교가 주는 마지막 선물인 것 같아서 기분은 왠지 씁쓸했습니다.

그렇게 졸업장, 졸업앨범, 상장을 모두 나눠주고 담임 선생님께서 마지막 종례를 하시는데 마음이 울컥하셨는지 뒤돌아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야유를 보내면서 선생님을 위로했습니다. 선생님도 다시 웃으시면서 종례를 끝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길었던 중학교 생활이 모두 끝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와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하면서 함께 나갔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들과 헤어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진짜로 중학교 생활을 끝냈습니다.

학교를 나서는데 살짝살짝 선생님들과 경찰들이 보였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중·고등학생들의 졸업식 뒤풀이를 감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중·고등학생들의 밀가루 투척이나 계란투척 등의 졸업식 뒤풀이에 대한 경찰들의 단속을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런 졸업식 뒤풀이는 저에게는 먼나라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돼지국밥집에 들어가 졸업앨범을 보는데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모두 담겨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사진들 중에서 제가 제일 잘생겼지만 다른 친구들도 모두 잘생겨 보였습니다.

중학교 생활을 하면서 엄청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생활은 6년의 초등학교에 비교하면 반밖에 안되지만 왠지 초등학교 시절보다 길었던 것 같았던 중학교 생활이었습니다.

이제는 진짜 블로그 이름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누가 저에 물어보시면 고등학생이라고 해야합니다.

지금까지 마산고딩 김태윤이었습니다.
이제 방학도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세어보니 이제 2주일도 남지 않은 것 같네요. 다음주에 설날을 지내고 그 다음주에 바로 학교에 갑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방학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참 빨리도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제 방학이 끝나고 중학교에 몇 일만 등교하고 졸업을 한 뒤 봄방학을 보내고나면 이제 고등학교를 가야합니다.

벌써 고등학생이 된다니 왠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역시 기대가 훨씬 많이 됩니다. 방학동안 제가 갈 태봉고등학교의 친구들과도 한 번 만나보고 참 설렙니다.

저는 이렇게 방학을 편하고 재미있게 보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일 때문에 계속 피곤해보이셨고 어머니는 출장을 무척 많이 가셨습니다.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어머니는 유럽으로 출장을 가셔서 열흘동안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일년에 한 번은 무조건 가시는 유럽출장이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참 보고싶었습니다.

열흘 뒤 어머니가 유럽에서 돌아오셨지만 계속 회사에 나가셨고 또 이번주 월요일(1월 24일)에 경주에 출장을 2박3일로 가셔서 바로 어제(1월 26일 수요일)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오늘아침(1월 27일 목요일)에 또 출장을 가셨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2박3일로 출장을 가셔서 이번주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오십니다.

그렇게 하루단위로 출장을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참 힘들어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어제 출장에서 돌아오시면서 제가 아침을 굶을까봐 시리얼과 우유를 사오셨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출장을 다니시면서 제 생각을 하셔서 그렇게 시리얼과 우유를 사오시는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버지도 일이 많아서 늦게 들어오실 때에는 제가 말을 하지않아도 항상 제 생각을 해서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오십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 아버지에게 감사해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라면을 사와서 아침밥을 해드렸습니다. 비록 라면이었지만 계란이나 파처럼 넣을건 다 넣으면서 최선을 다해 아침밥을 차려드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맛있게 드시고 출근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제 방학이 끝나고 고등학교을 다니면 기숙사에 생활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말을 빼고는 제가 아침밥을 차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가기 전 지금이라도 아침밥을 차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2월달에 제가 무척 기대하고있는 영화가 개봉을 합니다. 그 영화는 바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는 이순재 선생님이 주연인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제가 그 영화를 기대하는 이유는 바로 그 영화가 강풀님의 만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풀님의 만화중에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그 만화를 원작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를 만든 것 입니다.

지금까지 강풀님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는 '아파트', '순정만화', '바보'로 총 세 개입니다. 그 중에서 저는 만화는 다 보았고 아파트 빼고는 영화도 다 보았습니다.

그만큼 저는 강풀님의 만화를 무척 즐겨보고 또 그 만화를 영화로 만든 것을 정말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만화들보다 훨씬 더 기대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개봉되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원작만화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제가 처음으로 본 강풀님의 만화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만화를 책으로 보았는데 예전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한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그대를 사랑합니다 만화를 보고 블로그에 올린 글  http://kimty.tistory.com/26  )

그 때 저는 그 만화를 보고 시골에 혼자 계시는 할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화의 내용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것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 때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만화를 보고 참 많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무척 감동적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책이 없어서 저는 인터넷에 들어가 다음웹툰으로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역시 언제봐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과연 이 감동을 어떻게 영화에 담을 수 있을까?'라고 내심 걱정을 했지만 영화의 주연을 맡으신 분이 이순재 선생님인 것을 보고나서 안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는 수십년간 연기자 생활을 하시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으신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는 몇 년전 무르팍도사에 나오셔서 나이가 많이 들어 대본을 외울 수 없을 때 까지 연기를 계속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는 강풀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는 훌륭하신 이순재 선생님이께서 등장하신 작품중에 한 개로 남을 것 입니다.

아마 이순재 선생님이라면 원작만화의 감동을 그대로 영화에서 보여주실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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