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였다. 나와 어머니, 아버지는 성탄절 기념으로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갔다. 나는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

물론 할아버지께서도 무척 반가워하셨다. 우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아주 행복했다. 그런데 내 사촌 동생인 량호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 내용은 바로 자기도 지금 남해의 일때문에 남해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량호는 내일 할아버지 댁에 올 수 있다고 했다.

량호는 나의 많은 사촌들 중에서도 가장 친한 사촌동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때문에 다시 마산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 댁에 월요일(12월 28일)까지 더 있기로 했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마트로 갔다. 거기에서 우리는 내가 할아버지 댁에서 있을동안 먹을 간식들을 샀다.

그리고 우리는 남해의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잠시후 그곳으로 량호와 량호의 아버지인 고모부께서 탄 차가 나타났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마산으로 돌아가고 나와 량호, 이렇게 둘만 남해로 돌아갔다. 남해에 가보니 할아버지께서는 집에 없으셨다.

지난 봄 할아버지와 순천 드라마 촬영장에서...


할아버지께서는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멀리 갔다오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와 량호는 함께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같이 자전거도 타면서 같이 밥을 먹으며 오랜만에 함께 신나게 놀았다.그리고 잠시후 할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량호의 동생인 남호까지 할아버지 댁에 와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창원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할아버지와 나만 남해에 남아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위해 밥도 차려드리고 설거지도 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기분이 매우 뿌듯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할아버지와 함께 잠을 잤다. 나는 할아버지가 좋았다. 나는 어릴때 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을수 밖에 없다.

지금은 비록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나는 할머니를 사랑한다. 그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다음날(12월 27일)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할아버지께서 주무시는 옆방에서 TV를 보고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방에서 나오셔서 이제 그만 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TV를 끄고 곧바로 할아버지의 옆에 누웠다.

그렇게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내일이면 이제 할아버지를 못본다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걱정하실까봐 혼자 조용히 울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더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에 그럴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더욱 슬펐다.

다음날 나는 아침일찍 일어나서 아침 9시 30분 차를 타고 마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버스 표를 살 때 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의 돈으로 표를 구입했다.

나는 어머니가 표를 사라고 주신 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내 돈으로 표를 사도 된다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그 돈은 내가 주는 용돈이다." 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께 정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성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주머니에 할아버지 몰래 만 원을 넣어드렸다.

앞으로도 할아버지와 자주 만나면 좋겠다.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이번 추석연휴에 아버지, 어머니와 나는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댁으로 외사촌동생인 량호네 식구들의 차를 타고 갔다. 량호네는 우리를 위해 일부러 차가 비좁지 않도록 7인용 차량으로 차를 바꿔서 왔다. 정말 량호네에게 고마웠다.
 
우리는 좋은 새차를 타고 밤늦게 할아버지댁에 도착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하룻밤을 자고나니 고모네는 근처에 있는 친정집으로 가있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쉬고 있었다. 잠시 후 삼촌네 가족이 남해에 도착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사촌동생들이 무척 반가웠다. 나와 동생들은 집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밖으로 나가서 근처의 계곡에 들러 물놀이를 했다. 물이 시원해서 동생들은 무척 좋아했다.

사촌동생인 관희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있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가족들은 차례준비를 했다. 우리는 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였다. 그리고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가 계신 산에 올라가서도 절을 하였다. 제삿날이나 명절이면 매일 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특별했다.

어릴 때는 그냥 아무 의미도 없이 누구에게 절을 드리는 지도 모르고 절을 했지만 지금은 꽤 커서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서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명복을 빌며 절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절을 하고 이번에는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절을 드리러 묘소에 갔다. 그런데 올라가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혔다. 결국 나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에 차에서 나와서 할머니의 묘소까지 달려갔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달려가는게 훨씬 더 덥고 힘들었다. 정말 괜히 내렸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냥 차에 있었으면 조금 답답하지만 쉽게 올라갈수 있었을 것을...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할머니께 절을 드리고 과일을 먹다가 다시 할아버지께서 계신 집으로 돌아와서 잠시 쉬고있었다.

할머니의 묘소에서 절을 하고 있는 우리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기범이네 고모 식구들이 왔다. 나는 사촌동생인 기범이와 규리를 너무 오랜만에만나서 반가움에 동생들을 안아주었다.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바로 계곡으로 데리고 가서 놀았다. 나는 바지가 젖을까봐 별로 놀지않았지만 동생들은 옷이 젖든 말든 신나게 놀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흐뭇했다.

우리는 계속 놀다가 밥먹을 때가 되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후 친정에 갔던 량호네가 돌아오고 난지누나네가 왔다. 우리는 밥을 먹고 좀 쉬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서 새로산 량호네와 기범이네 차를 구경했다. 둘다 차가 끝내주었다.

우리는 고모와 함께 동생들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바닷가로 놀러갔다. 역시 동생들은 옷은 생각하지 않고 바닷가에 들어가서 실컷 놀았다. 나는 옷을 별로 가져오지 않아서 바닷물 근처에서 동생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량호가 자신의 할아버지의 배가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잠시 차에 누워있었는데 동생들과 고모가 없는 것을 보고 얼른 그 쪽으로 뛰어가서 량호의 배를 구경했다.

량호는 배가 무척 낡았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낡지 않았다. 배는 꽤 멋있었다. 물론 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또 놀다가 아까 횟집에서 사놓은 회가 다 상할까봐 빨리 차를 타고 할아버지댁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사온 회를 맛있게 먹고 동생들이 하는 장기자랑을 감상했다. 그 때 내 동생중 리나가 사회를 봤는데 정말 사회를 잘했다. 리나는 자기가 투표에서 장기자랑을 1등을 했는데도 꼴등이었던 나를 1등으로 지목하고 자신이 꼴등이라고 했다.

이에 어른들을 리나에게 사회를 잘봤다며 용돈을 주셨고 나와 량호에게는 1등을 했다고 용돈을 주셨다. 뭐 순위에 상관없이 모두 용돈을 거의 비슷하게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게 더 좋다.

우리는 장기자랑을 마치고 노래방에 가서 실컷 놀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아침에 일어나니 부모님은 이미 집에 돌아가시고 없었다. 나는 월요일에 효도방학으로 학교를 쉬기 때문에 할아버지댁에 하루 더 있을 수 있었다. 그 날 거의 모든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할아버지댁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나와 삼촌네 그리고 량호네 식구들 뿐이었다. 나는 동생들의 부탁으로 또 계곡에서 놀았다. 동생들이 노는 동안 나는 계곡 근처의 그늘에서 자고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니 동생들은 물고기를 잡고있었다. 나는 동생들과 같이 물고기 잡는데 동참하여 물고기를 거의 20마리 정도 잡았다. 동생들은 무척 뿌듯했다. 물로 나도 마찬가지였다.

계곡에서 놀다가 배가 고파진 우리들은 잡은 물고기들을 다시 다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고 TV에서 하는 추석특집 1박2일을 보다가 다시 량호네 차를 타고 마산의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즐거운 추석연휴였다.

하지만 이번주 목요일에 중간고사를 친다. 이제부터는 시험기간이라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

이번 추석에는 개천절이 겹쳐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고 있다.

이번에 증조할머니 제사를 지내러 할아버지댁에 다녀왔다. 마산에서 진주 가는 버스를 타고, 진주에서 다시 택시로 하동군 진교까지 갔을 때, 진교에서 삼촌이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계셨다.

나와 부모님은 삼촌차를 타고 할아버지댁으로 가기 전에 먼저 어떤 장례식장으로 갔다. 왜 갔냐하면 바로 나의 사촌동생인 량호, 남호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거기에는 고모와 고모부도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밥을 먹고 다시 차를 타고 할아버지댁으로 갔다. 거기에는 나의 사촌 여동생들이 밤이라서 그런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자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할아버지가 제사를 지내면서 제문을 읽고 계시다.


다음날 밤 제사를 지낸 후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과 숙모 등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혼자 할아버지댁에 남겠다고 말했다. 학교가 봄방학을 하고 있는데다가 할아버지와 함께 더 있고싶어서 하루 더 있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단둘이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할아버지의 친구분들과 이웃 할머지들께서 와계셨다. 나는 그 분들과 아침을 먹고나서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어른들이 모두 돌아 가시고 난 뒤, 할아버지와 같이 TV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할아버지댁에서 계속 놀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 집에 갈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이대로 가버리면 할아버지께서 다시 혼자 계실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결국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할아버지댁에 하루만 더 있겠다며 허락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나. 작년 여름 경주에 가족여행을 가서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이다.


그리고 다음날 어제와 다름 없이 놀다가 점심을 먹고 짐을 싸서 할아버지께 눈물겨운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마산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내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고 할아버지댁에 할아버지 몰래 한번 더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그러면 할아버지께서 무척 좋아하실 것이다.

조금 있으면 설날이 다가온다. 우리는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갈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께서 먼저 돌아가셔서 매일 혼자 계신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많이 외로우실 것 같다. 그러니까 명절이나 다른 행사가 있는 날에라도 할아버지댁을 자주 방문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

나는 5살 때까지 할아버지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무척 예뻐하신다.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매우 좋다.

할아버지와 나. 작년 여름 경주에 가족여행을 가서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5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어머니와 창원으로 이사를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워 하면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내가 태어난 마산으로 다시 이사를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께서 내가 4학년 때 돌아가셨다. 나는 너무 슬프고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그 때부터 혼자 사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외로우실 것 같아서 할아버지댁을 방문할 때마다 할아버지를 꼭 안아드렸다.

할아버지댁에서 본 마을 앞 풍경. 느티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너무 외로우실 것 같아서 나라도 할아버지께 전화를 자주 드려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요즘 내가 공부 때문에 많이 바빠서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나는 할아버지께 정말 죄송했다. 하지만 지금은 방학이니까 앞으로 남은 방학날 만큼은 꼭 자주 전화를 드리겠다.


이번 설날에 할아버지댁을 방문하여 할아버지께 정말 잘해드리겠다. 그래야 할아버지의 외로움이 조금이라도 없어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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