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등산을 할 때 저는 계속 길을 못찾아서 엉뚱한 곳으로 가고는 했습니다. 그 때마다 아버지께서 바른 길을 찾아주셨죠.

저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바른 길을 잘 찾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면서 길을 찾아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 모두 이미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잘 보고 길을 찾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눈때문에 발자국이 지워진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는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길을 알려주는 끈을 묶어 놓았습니다.

나는 발자국이나 그런 끈 같은 표시들을 잘 보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안전하게 등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런 표시들을 남겨주신 사람들께 감사했습니다.

아버지가 찍은 이정표 사진. 우리는 청학동에서 세석대피소까지 10km를 걸었다.


하지만 그런 표시들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은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그 이정표에는 지금까지 온 거리와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이정표를 보았을 때에는 1km도 오지 않아서 엄청 실망했지만 점점 더 가면서 이정표를 많이 마주치니까 그 이정표에 있는 남은 거리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정표가 나올 때 마다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만큼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니까 남은 거리가 줄어들수록 기분이 뿌듯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점점 더 아파오는데 2km정도 남았다는 것을 보고는 정말 기분이 나빴습니다. 해가 져서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2km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엄청 싫었죠.

날씨가 추워지고 다리는 아파와서 이정표의 남은 거리를 볼 때마다 점점 더 짜증이 났습니다. 기분은 엄청나게 많이 걸은 것 같은데 정작 실제로 간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석대피소가 500m 남았다는 마지막 이정표.


하지만 목적지가 500m 남았다는 마지막 이정표를 보았을 때에는 기분이 달랐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빴던 기분은 전부 사라지고 목적지인 세석 대피소에 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기대감만이 존재했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의 발자국이나 사람들이 길을 표시해 놓은 끈, 이정표가 없었더라면 지리산의 등산을 더 힘든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소중한 표시들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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