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함께 한 태봉고를 씩씩하게 졸업했습니다
 

어제(1월 9일 목요일) 제 학창시절의 마지막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태봉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있던 날입니다. 3년 간의 대안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며, 그 동안 정들었던 태봉 식구들과 이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년 선배들이 졸업할 때 우리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졸업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습니다. 졸업이 100일 남았다고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매정하게도 참 빨리 갑니다.

졸업식 날이 밝았습니다. 여느 아침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일찍 깨었습니다. 아침밥을 먹으러 급식소에 가니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짐을 싸느라 여유가 없었나 봅니다. 태봉에서의 마지막 급식을 먹고 제가 태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방송실에 갔습니다.

텅 빈 방송실에 혼자 앉아있으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슬프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고, 그 동안 방송실에서 내가 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졸업식이 아침 10시부터 시작이라 바로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학부모님들과 태봉을 떠나셨던 선생님들, 여러 내빈들과 작년에 졸업한 선배들까지 오니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졸업식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저희 2기 졸업생들은 급식소에서 잠시 대기했습니다. 저희는 그 동안 맛있는 밥 많이 해주신 급식 선생님들께 크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동안 태봉고에서 먹은 급식밥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맛없을 때도 있었고, 아주 맛있어서 지금까지 기억되는 메뉴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항상 저희를 위해 새벽부터 나오셔서 하루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시는 급식소 선생님들의 노력입니다. 지금까지의 고마움을 담아 2기 학생들 전체가 "감사히 먹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울먹거리셨고, 저희도 가슴이 뭉클해 졌습니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후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졸업생 모두가 졸업장을 받고, 장학금 전달 후 교장 선생님의 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학교장 회고사' 라는 이름으로 여태전 교장 선생님의 진심 어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교장 선생님의 졸업식 한 말씀처럼 무조건적으로 "성공하라", "큰 사람이 되어라" 같은 말이 아닌 돈과 권력, 명예를 얻었을 때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짓밟지 말고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태전 교장 선생님도 올해로 임기가 끝나면서 저희들과 함께 태봉을 떠나십니다. 그렇기에 더욱 교장 선생님의 한 말씀이 주옥같은 교훈으로 가슴에 남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기 전, 1, 2학년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우리 2기 학생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가사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저희들이 졸업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이렇게 우리가 졸업 노래를 들으니까 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그 몽환적인 기분을 또 언제 느껴볼 수 있을까요?


태봉고의 전통적인 행사 마무리가 있습니다. 태봉고에 신입생들이 입학할 때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 행사입니다. 졸업할 때에는 반대로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발을 씻겨드립니다.

저는 제가 입학할 때 제 발을 씻겨주셨던 이종형 선생님의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3학년 때 담임을 맡아주신 선생님이라 더 정이 많이 들었던 선생님이십니다.

발을 씻겨드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참으며 묵묵하게 발을 닦아드렸고, 이종형 선생님께서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모든 선생님, 후배들과 한 명씩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미안했던 것들, 하고싶었던 말들을 후련하게 다 하면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울었습니다. 이별의 슬픔에 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했습니다.(초상권 문제가 있을시에 곧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졸업이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별은 새로운 시작의 알림이고, 졸업할 때 너무 울어버리면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민망할 것 같기도 햇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태봉을 찾을 것이기에 그 날을 기약하며 마지막까지 울지 않고 씩씩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태봉은 저에게 많은 추억과 상처를 주었고 저는 그것들을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태봉에서의 수많은 경험들, 인연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제 12년의 학창시절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긴 시간이었으며 김태윤이라는 인물이 어른에 가까워지도록 성장시켜 준 또 하나의 집입니다.

이제 그 집을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고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별에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아쉬움이 없도록 후회없이 꽉 껴안고 왔습니다. 태봉에서 3년 간 함께 한 저의 가족들을...
이제 드디어 길고도 짧았던 중학교 생활이 끝났습니다. 마침내 졸업을 한 것 입니다. 지난 10일은 바로 제가 다니는 중학교의 졸업식이 거행되는 신성한 날이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교복을 차려입고 학교에 가보니 이제는 헤어져야하는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가는 고등학교에는 저 혼자 가기때문에 학교친구들 모두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우연히, 아니면 약속해 만나서 다시 만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따라 친구들의 얼굴이 많이 반가웠습니다.

졸업식은 시작도 하지않았는데 만나는 친구들마다 전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물론 저도 기분좋게 그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시간이 9시가 되어가고 우리들은 드디어 신성한 졸업식이 거행되는 체육관으로 갔습니다. 다른 반의 친구들도 모두 모여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 앉고 이제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1, 2학년 때 선배들이 졸업할 때에는 교장선생님과 이사님들의 말씀이 무척 지루했지만 오늘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졸업식을 하는동안 멀리서 사진을 찍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손을 흔들었지만 멀리 계시는 아버지는 제가 보이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받기위해 각자의 반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졸업장과 함께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중학교다니면서 한 번도 빠진적이 없으니까 당연했습니다. 기분은 당연히 좋았지만 왠지 학교가 주는 마지막 선물인 것 같아서 기분은 왠지 씁쓸했습니다.

그렇게 졸업장, 졸업앨범, 상장을 모두 나눠주고 담임 선생님께서 마지막 종례를 하시는데 마음이 울컥하셨는지 뒤돌아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야유를 보내면서 선생님을 위로했습니다. 선생님도 다시 웃으시면서 종례를 끝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길었던 중학교 생활이 모두 끝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와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하면서 함께 나갔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들과 헤어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진짜로 중학교 생활을 끝냈습니다.

학교를 나서는데 살짝살짝 선생님들과 경찰들이 보였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중·고등학생들의 졸업식 뒤풀이를 감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중·고등학생들의 밀가루 투척이나 계란투척 등의 졸업식 뒤풀이에 대한 경찰들의 단속을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런 졸업식 뒤풀이는 저에게는 먼나라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돼지국밥집에 들어가 졸업앨범을 보는데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모두 담겨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사진들 중에서 제가 제일 잘생겼지만 다른 친구들도 모두 잘생겨 보였습니다.

중학교 생활을 하면서 엄청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생활은 6년의 초등학교에 비교하면 반밖에 안되지만 왠지 초등학교 시절보다 길었던 것 같았던 중학교 생활이었습니다.

이제는 진짜 블로그 이름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누가 저에 물어보시면 고등학생이라고 해야합니다.

지금까지 마산고딩 김태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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