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길고 길었던 4주간의 라온아띠 국내 훈련이 끝났습니다. 무척 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캠프, 대안학교를 다니며 겪었던 제주도, 네팔, 지리산, 무인도 그 어느 경험보다도 훨씬 더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값진 시간이었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그 사람들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한 인연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특히 라온아띠의 전 기수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 좋았습니다. 제가 라온아띠 12기인데, 라온아띠 4기 분께서 라온아띠 담당 간사님으로 계셨고, 6기, 7기, 8기 등 다양한 분들이 국내훈련 동반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1기와 2기 등등 라온아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자기 나름대로 기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라온아띠를 다녀오신 분들이 대부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지에서의 활동보다 국내 훈련을 할 때가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처음 국내훈련을 시작할 무렵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라온아띠 자체가 원래 5개원 간의 아시아 국제자원활동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인데 그것은 훈련과정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니.. 공감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4주간의 훈련을 모두 마친 후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라온아띠를 다녀오신 많은 분들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국내 훈련의 4주는 그 어느 순간보다 뜨거웠고, 나의 한계를 몇 번이나 시험했으며, 내가 몰랐던 것들, 내가 원래 알고있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 실천해야 하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고민들을 깊은 내면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라온아띠는 5개월 간의 현지 활동이 더 중요한 활동입니다. 국내 훈련은 단지 그 5개월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국내훈련을 다녀오고 난 지금, 현지에서의 150일을 준비하는 국내훈련 28일이 비록 짧지만 인생에서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함께 캄보디아 깐달로 떠나는 제 팀원들은 스무살 동갑내기 친구 한 명과 형 한명, 누나 두 명, 그리고 저를 합해서 5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모두 20년 이상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두 다릅니다. 그런 다른 사람들 5명이 모여 그렇게 덥고 힘들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가면 얼마나 많이 싸우게 될까요?

저는 국내훈련이 단지 외국에서의 생활과 아시아적 감수성, 라온아띠가 가져야하는 마음가짐만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배우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들간의 화합을 연습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국내훈련을 하는 4주 동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싸웠습니다. 서로의 의견차이 때문에 싸우고, 서로의 말, 행동 표현방식 때문에 싸우고.. 현지에서 5개월 간 싸울 것을 4주간 미리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 치고박고를 반복했습니다.

싸우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팀원들간에 의견충돌과 다툼을 통해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 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화합의 노하우 등을 배우는 시간이 충분히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국내훈련에서 이렇게 실컷 싸우고 또 캄보이아 현지에 가서도 많이 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충분히 대화를 하지않고 서로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상태로 외국에 간다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여튼 이제 국내 훈련이 끝나고 약 20일간 쉬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동안 가족, 친구들, 휴대폰 등 한국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도 가지고, 틈틈히 현지어 공부도 하면서 천천히 휴식을 즐길 예정입니다.

그 동안 국내훈련에서 경험한 것들을 잘 정리해서 블로그에 많이 많이 올리겠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한 태봉고를 씩씩하게 졸업했습니다
 

어제(1월 9일 목요일) 제 학창시절의 마지막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태봉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있던 날입니다. 3년 간의 대안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며, 그 동안 정들었던 태봉 식구들과 이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년 선배들이 졸업할 때 우리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졸업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습니다. 졸업이 100일 남았다고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매정하게도 참 빨리 갑니다.

졸업식 날이 밝았습니다. 여느 아침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일찍 깨었습니다. 아침밥을 먹으러 급식소에 가니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짐을 싸느라 여유가 없었나 봅니다. 태봉에서의 마지막 급식을 먹고 제가 태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방송실에 갔습니다.

텅 빈 방송실에 혼자 앉아있으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슬프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고, 그 동안 방송실에서 내가 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졸업식이 아침 10시부터 시작이라 바로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학부모님들과 태봉을 떠나셨던 선생님들, 여러 내빈들과 작년에 졸업한 선배들까지 오니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졸업식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저희 2기 졸업생들은 급식소에서 잠시 대기했습니다. 저희는 그 동안 맛있는 밥 많이 해주신 급식 선생님들께 크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동안 태봉고에서 먹은 급식밥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맛없을 때도 있었고, 아주 맛있어서 지금까지 기억되는 메뉴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항상 저희를 위해 새벽부터 나오셔서 하루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시는 급식소 선생님들의 노력입니다. 지금까지의 고마움을 담아 2기 학생들 전체가 "감사히 먹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울먹거리셨고, 저희도 가슴이 뭉클해 졌습니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후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졸업생 모두가 졸업장을 받고, 장학금 전달 후 교장 선생님의 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학교장 회고사' 라는 이름으로 여태전 교장 선생님의 진심 어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교장 선생님의 졸업식 한 말씀처럼 무조건적으로 "성공하라", "큰 사람이 되어라" 같은 말이 아닌 돈과 권력, 명예를 얻었을 때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짓밟지 말고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태전 교장 선생님도 올해로 임기가 끝나면서 저희들과 함께 태봉을 떠나십니다. 그렇기에 더욱 교장 선생님의 한 말씀이 주옥같은 교훈으로 가슴에 남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기 전, 1, 2학년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우리 2기 학생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가사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저희들이 졸업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이렇게 우리가 졸업 노래를 들으니까 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그 몽환적인 기분을 또 언제 느껴볼 수 있을까요?


태봉고의 전통적인 행사 마무리가 있습니다. 태봉고에 신입생들이 입학할 때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 행사입니다. 졸업할 때에는 반대로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발을 씻겨드립니다.

저는 제가 입학할 때 제 발을 씻겨주셨던 이종형 선생님의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3학년 때 담임을 맡아주신 선생님이라 더 정이 많이 들었던 선생님이십니다.

발을 씻겨드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참으며 묵묵하게 발을 닦아드렸고, 이종형 선생님께서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모든 선생님, 후배들과 한 명씩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미안했던 것들, 하고싶었던 말들을 후련하게 다 하면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울었습니다. 이별의 슬픔에 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했습니다.(초상권 문제가 있을시에 곧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졸업이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별은 새로운 시작의 알림이고, 졸업할 때 너무 울어버리면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민망할 것 같기도 햇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태봉을 찾을 것이기에 그 날을 기약하며 마지막까지 울지 않고 씩씩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태봉은 저에게 많은 추억과 상처를 주었고 저는 그것들을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태봉에서의 수많은 경험들, 인연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제 12년의 학창시절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긴 시간이었으며 김태윤이라는 인물이 어른에 가까워지도록 성장시켜 준 또 하나의 집입니다.

이제 그 집을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고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별에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아쉬움이 없도록 후회없이 꽉 껴안고 왔습니다. 태봉에서 3년 간 함께 한 저의 가족들을...
저희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1교시마다 '주열기' 라는 활동을 합니다. 주열기 때에는 학교의 모든 학생, 선생님들이 시청각실에 모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하루에 네 명씩 자신이 준비한 발표를 합니다. 발표를 하는 네 사람 중에서 한 명은 책소개를 해야하고 나머지 세 명은 자유주제로 발표를 합니다.

저는 저번 1학기 때 간디의 자서전을 가지고 책소개를 했습니다. 책소개를 할 때에는 그냥 직접 책을 가져와 보여주면서 말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2학기 때에는 제가 또 자유주제로 주열기 발표를 하는 순서가 돌아와서 말만 하는게 하니라 좀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태국 자원봉사' 였습니다. 사실 내년 4월 쯤에 학교에서 '네팔' 로 2학년끼리 자원봉사를 떠납니다.

그 네팔 자원봉사를 대비해서 참가했던게 바로 지난 여름방학 때 갔던 태국 자원봉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태국에 가서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영상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태국에서의 사진들은 모조리 아버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집에 와서 얼른 무비메이커 프로그램에 사진을 모아서 붙였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몇 개 깔았더니 금방 9분짜리 영상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태국에서의 사진들로 영상을 만들다보니 자연스레 태국에서의 사진들을 하나씩 다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국에서 보냈던 11박 12일의 기나긴 여정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때의 추억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그 만큼 태국에서 보냈던 2주의 시간은 아주 재미있었고 제 인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께도 같이 태국으로 자원봉사를 떠났던 15명의 사람들 중에서 현재 연락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고등학생이 되고 고2 형, 누나들은 이제 고3이 되어서 각자 생활에 집중하느라 연락을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방학 때 시간이 되면 다시 다 모여서 한 번 노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고 하니까 인연이 끊어질거라는 걱정은 안됩니다.

언젠가는 같이 갔던 지도자 선생님까지 모두 17명이 다시 모이는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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