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여행 3탄 - 여수의 신비한 섬들을 만나다.
여수 여행의 둘쨋날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낭도'라는 섬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저와 아버지는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첫 날에 여수 시내를 많이 걸어다녀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강의를 들을 분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그 분들과 배를 탈 항구로 이동했습니다. 항구에는 저희와 오신 분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은 섬인가봅니다.

알고보니 항구에서 갈 수 있는 섬은 낭도 말고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섬들이 대부분이 관광지여서 아침부터 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섬을 세 곳 정도 간다고 했습니다. 우선 배를 타고 낭도로 향했습니다. 그 섬 마을에 있는 회관? 같은 곳에서 아버지의 블로그 강의가 열렸습니다.


저희와 함께 오신 분들은 모두 '여수 넷통'이라는 인터넷 언론의 시민기자 분들이었습니다. 파워블로거이자 신문사의 기자이신 아버지의 강의를 통해 스토리가 풍부한 기사쓰기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아버지를 따라온 것 뿐인데 감사하게도 제 이름표도 챙겨주셨습니다. 저도 나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에 아버지의 강의를 열심히 듣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강의에서 주로 신문을 만들 때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말씀해주시면서 울먹거리기도 하셨습니다.

강의를 듣고 정말 사람사는 이야기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느낀 아버지 강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스토리는 바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풍부한 스토리를 만드는 원동력이겠지요.  


그렇게 아버지의 강의가 끝이 나고 거기 계시는 분들과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낭도에는 바닷물이 마을 바로 옆에 호수처럼 있어서 마치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같습니다.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매일 바다를 볼 수 있어서 탁 트인 시야에 드넓은 바다를 보며 자연을 벗삼아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네요.

저와 아버지는 점심을 먹고 마산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여수 넷통의 어른들이 관광을 좀 하면서 천천히 가라고 해서 결국 여수에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눈이 리얼하네요...


다시 배를 타고 이번에 간 곳은 '사도'라는 섬이었습니다. 섬에 도착하니 커다란 공룡 모형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공룡 발자국이 많이 남아있어서 아예 공룡 관련 관광지로 개발을 한 모양입니다. 


사도는 모래의 섬이라 하여 '사도(島)'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섬의 이름이 모래의 섬인 만큼 모래가 굉장히 많은 섬이라 생각하고 섬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함께 온 분들 중에서 사도에 대해서 지식이 많은 한 분이 가이드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 분을 따라 사도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러 다녔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역시 모래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이드분의 설명으로는 모래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조개의 잔해? 같은 물질이라고 하는데 아주 작아서 모래처럼 보이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모래로 보이는 물질을 손에 한 웅큼 쥐어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로 모래가 아니라 무슨 조개의 껍질이 부숴져 있는 듯한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도에 대해 이것저것을 많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너무 덥고, 바닷가에 있는 돌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계속 올라와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위에 지친 채로 정신없이 걷던 중 갑자기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공룡 발자국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공룡의 발자국인지 아닌지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커다란 짐승의 발자국으로 보이는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생겼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모양의 웅덩이, 정말 공룡의 발자국처럼 뭔가 커다란 게... 쥬라기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여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것 말고도 다른 공룡 발자국이 많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사진이 다 이상하게 나와서 저거 하나만 올렸습니다. 어쨌든 저런 모양의 웅덩이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진짜 공룡이 많이 살았던 곳인 것 같습니다.

사람 얼굴의 옆모습을 닮은 돌입니다.


사도를 둘러보고 다시 추도라는 곳을 향해 배를 탔습니다. 추도까지는 작은 배를 타고 갔습니다. 추도는 현재 할머니 혼자서 살고 계시는 작은 섬입니다. 혼자 사시면 외로우실수도 있는데, 그나마 강아지 몇 마리와 함께 살고 계셨습니다.  

추도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국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신기한 광경이 보입니다. 오랜시간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퇴적층으로 둘러쌓인 곳이었습니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어지간히 조심을 하지 않으면 곧바로 넘어지게 됩니다. 특히 돌과 돌 사이에 오금이 살짝 저릴 정도의 위험한 곳이 있는데, 그 구간을 지날 때 죄가 없는 사람은 쉽게 건너지만 죄가 많은 사람은 건너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는 그 곳을 건너기 전, 잠깐 망설이다가 힘껏 뛰어올라 갔습니다. 다행히 안전하게 통과했죠. 저를 비롯해 모든 분들이 다 안전하게 올라오셨습니다. (걱정되서 다른 길로 가시는 분들도 계셨답니다.)


뭐 그렇게 여러 섬을 구경하다보니 하루가 다 갔습니다. 하루종일 밖에 돌아다녀서 더위에 정신차리기 힘들었지만 이번 여수 여행은 사진도 많이 찍고, 느낀 것도 많고 나름대로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여수 여행 2탄 - 여수 엑스포
아버지와 여수에 가서 이순신 광장을 둘러본 다음에 간 곳은 바로 '여수 엑스포'입니다. 작년에 여수 세계박람회를 하고 지금은 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 한 번 구경하러 갔습니다.

작년에 교과부 기자단을 할 때 엑스포 입장권을 선물받았었는데, 그 때는 못가고 1년이 지난 지금에야 가게 되는군요.

엑스포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몰랐기에 살짝 기대감을 가지고 엑스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수 엑스포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하니 먼저 '엑스포역'이 떡하니 서있었습니다.


엑스포역 옆으로는 그 유명한 여수 엑스포가 있었습니다. 여수 엑스포는 세계박람회를 개최할 때부터 지금까지 해양관광산업과 해양과학기술, 해양수산기술의 진흥을 목표 운영되고 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와 자연에 관련된 시설이 많이 있습니다. 박람회가 끝나고 현재로써 볼 수 있는 곳은 4곳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광광객이 꽤 있었습니다.

특히 밤마다 열리는 빅오(Big-O)쇼는 인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빅오쇼는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와 아버지가 그런 화려한 공연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실외에서 계속 서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더운 관계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버지는 입장료도 무료에다가 간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디지털 갤러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디지털 갤러리라고 해서 막 최첨단 시설들이 엄청 많이 전시되어 있는 곳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천장에 있는 커다란 화면이 전부였습니다. 다른 디지털에 관련된 것들도 많을 것 같았지만 특별히 다른 것이라고는 편의점이나 분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면이 굉장히놀라웠습니다. 디지털 갤러리 전체의 천장에 무지막지하게 큰 화면에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에니메이션처럼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 화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물고기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실감났습니다.


디지컬 갤러리에 가면 신기에서 계속 천장만 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천장의 화면을 다른 걸로 바꿔주기도 한다는군요. 하지만 그 때에는 화면이 바뀐다는 걸 모르고 저와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번에 간 곳은 엑스포의 스카이 타워입니다.


시멘트 사일로를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스카이타워는 건물이 특이하게도 오르간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연주가 가능한 진짜 오르간이라고 합니다. 잘 안 믿겼는데, 연주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건설될 당시에 '세계 최대의 소리를 내는 파이프 오르간'이라고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옆에 보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작은 실내가 있는데, 거기에서 피아노를 치면 그대로 연주 소리가 거대한 오르간을 통해 들렸습니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스카이타워 한 번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계속 숫자가 2에서 한참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장났나? 생각했습니다.

알고보니 스카이타워 건물은 3층까지밖에 없고, 2층과 3층과의 높이가 너무나 많이 나서 생기는 현상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엄청 높이 올라가는게 재밌어서 영상으로 한 번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꼭대기 3층에 가면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커피나 음료수 빵을 팔고, 무엇보다도 창밖으로 보이는 여수의 전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옆으로는 아까 봤던 여수 엑스포역이 다시 보이는데, 철도를 보면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기차가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지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봤네요.ㅎㅎ)


뒤를 돌아보면 여수의 바다가 보이고, 5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망원경같은 것도 있고, 밤에 오면 여수 야경과 밤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발밑으로 투명한 유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꼭대기에서 발밑으로 바라보니 정말 아찔하더군요. 심장이 약한 사람은 조심해야 할 정도로 높게 느껴졌습니다.

2층으로 가면 영상을 보여줍니다. 별건 아니고, 그냥 용이 나오면서 한국과 여수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담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관광을 마치고 맛있는 저녁을 먹은 뒤, 여수 여행 첫째날이 지나갔습니다.

역시나 오랜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하네요. 평일에는 계속 학교에서 영화 촬영을 하기 때문에 블로그 포스팅을 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말에라도 블로그에 열중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쓸 주제는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와서 쓰는 기행문입니다.

어제(6월 9일 토요일) 저는 부산에 갔습니다. 제가 어릴 적 참가했던 YMCA의 근현대사 캠프를 따라간 것입니다. 

근현대사 캠프는 저희 어머니가 진행하는 캠프로써 중학생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배우는 캠프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까지 그 캠프에 계속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학생으로써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사진 촬영이라는 역할을 맡고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닐 때에는 근현대사 1기, 2기였는데 이번에 따라가보니 벌써 근현대사 캠프가 5기까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근현대사 캠프의 나름대로 제 후배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뿌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튼 이번에는 부산으로 캠프를 갔습니다.

부산에서 근현대사 관련된 여러가지 기념관을 방문하고 일제감점기 때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당했더 치욕스런 과거를 되새기면서 조상들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하게 국제 시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곳은 KBS의 1박 2일에서도 소개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시장입니다.

국제시장이 근현대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국제시장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의미있는 곳입니다.

일제감점기가 끝나고 일본인들이 떠나자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떠난 자리에 자리를 잡아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시장 형성의 시작입니다.

또한 한국전쟁 때 부산은 피란지였기에 부산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었고, 미군의 군용물자,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물건들이 주로 거래되었으며 그게 점점 커져서 지금의 국제시장이 된 것입니다.

국제시장에는 정말 다양한 것을 많이 팔았습니다. 옷도 희한한 게 많이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들도 많이 있었지만 근현대사 캠프에서는 안정상 개인 활동이 금지되어 있기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 팀은 국제 시장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제가 속한 모둠은 국제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작은 포장마차? 같은 곳에 앉아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충무김밥과 국수, 비빔면 등 정말 다양한 음식을 마구잡이로 먹었습니다. 게다가 국수 한 그릇에 2000원 밖에 안되서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 아주머니들의 인심도 좋아서 정말 점심을 많이 그리고 맛있게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디저트로 옆에서 1000원짜리 식혜를 사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8명이서 마음껏 먹었는데도 총 48000원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외식을 하더라도 대부분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 또는 비싼 레스토랑을 가는데, 이렇게 시장의 골목에서 밥을 먹어도 충분히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선 보통 식당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충분히 많으며 비싼 식당의 서비스 못지 않은 아주머니들의 친절한 인심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근현대사 팀이 부산에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보수동 책방골목' 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국제시장의 한 편에서 피란길에 짊어지고 온 책들을 파는 거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이 끝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주로 팔았으며 미군 부대에서 흘러들어 온 영어책도 팔았습니다.

그렇게 보수동 책방골목은 피란길에 짊어지고 온 책들을 파는 시절을 지나서 지금의 작은 헌 책방들이 모인 거리로 발전한 것입니다.


책방골목에는 정말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헌 책방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큼 헌 책들도 셀 수 없을만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옛날 책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봤던 소설들의 원판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난생 처음보는 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책방들이 모두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거의 대부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골의 냄새도 나서 왠지 편안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는 관심가는 책을 찾기 위해 꽤 오랫동안 책방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약 10개 정도의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끌리는 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그 책은 바로 '체 게바라' 에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아주 작은 체 게베라 위인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체 게바라에 대해 감명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에 체 게바라의 업적에 대해 제대로 한 번 알아보는 기회를 가지기 위해 체 게바라 책을 3000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습니다.

이번 부산 캠프는 아주 느낀 게 많이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국제시장과 보수동 책방골목처럼 작은 시장들이 모여 현재의 유명하게 발전한 모습을 보면 뭐든지 시간이 오래 지나봐야 알 수 있나봅니다.

현재에는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시간이 한참 지나면 아주 크게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발전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정말 방학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겨울방학은 봄방학까지 잡아먹어서 한꺼번에 52일이나 있었는데 이제 4일정도 남았습니다.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흐르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저도 나이가 들었나봐요^^ 원래 나이가 들수록 뇌세포가 많이 죽어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네요! (믿거나 말거나~)

여튼 이번 방학은 나름대로 바쁘고 보람차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는 일반학교들처럼 보충수업이나 방학숙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하고싶은 일들을 실컷 하면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이번 겨울방학 동안 했던 활동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 교과부 블로그 기자단 활동
우선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서울에 올라가서 교과부 기자단 발대식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당하게 교과부 블로그 기자단이 되어 명함까지 발급받아서 지금까지 총 세 건의 기사를 썼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쓴 세 건의 기사 중에서 한 건밖에 올라가지 올라가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언젠가는 올라갈 거라 믿고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직 기자단이라는 일이 너무나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서 적응이 잘 되지도 않고 기사를 쓸 때도 항상 불안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있습니다.

학교가 개학하면 기사를 쓸 시간이 많이 없어지겠지만 대안학교 생활 덕분에 교육 기사의 소재는 더 다양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린나래 캠프 진행
1월달에는 제 후배들!! 그러니까 태봉고등학교 신입생들과 함께 그린나래 캠프를 했었요. 제가 진행을 맡아서 책임감있게 잘 해낸 것 같습니다.

그린나래가 끝나고 나서 스텝들이 모여 평가회도 몇 번 했고, 또 그린나래 캠프를 마무리하는 평가서도 작성했습니다. 그린나래 캠프로 이것저것 일이 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게 된다면 그린나래 진행한 것을 바탕으로 평가서를 제출하고 그린나래에 대해 발표도 할 계획입니다.



- 영화 제작 회의
독립영화 감독님이신 김재한 선생님을 방학 동안 5~6번 정도 만나서 영화제작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감독을 맡았고, 영화 제작에 있어서 콘티 쓰는 법과 영화의 구도같은 실질적인 영상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방학 동안 기획했던 영화는 학교가 개학하고나서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영화가 완성되면 더 자세하게 포스팅하겠습니다.


- 채식
비록 3일만에 실패를 했지만(진정한 작심삼일;;;) 채식을 해보면서 고기만 먹는 게 아니라 채소도 먹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라면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고기를 먹더라도 채소도 함께 먹게 되었고 살도 꽤 빠져서 몸이 많이 가벼워졌네요.ㅎㅎㅎ 요즘 가끔 농구를 하면 날아다닌답니다.^^

그리고 채식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죠...ㄷㄷ 정신수양을 더 해서 다음에는 진짜 제대로 된 채식을 다시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 취미활동(책보기, 영화보기)
제 부모님은 독서를 항상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독서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읽기가 잘 실천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제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책이 아니면 잘 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보는 것을 또 엄청나게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방학에는 책도 좀 봤지만 영화를 진짜 많이 봤습니다.

이번 방학 때 본 영화가 20편은 넘을 것입니다. '써니', '뜨거운 것이 좋아', '부러진 화살', '댄싱퀸', '파파', '닌자 어쌔신',  '소셜 네트워크' 등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진짜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방학 동안 봤던 영화들의 표들


확실히 장래희망이 영상 관련 직종이라 영화나 드라마라는 매체가 저에게 큰 재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도 책 나름의 장점이 많으니까 앞으로는 책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겨울방학은 너무나 바쁜 것 같습니다. 교과부 기자단 활동에 그린나래 캠프 진행, 영화만들기 동아리, 토론 동아리 등 정말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네요.

그래도 방학인데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밖에 자주 나가서 방학처럼 느껴지지가 않네요.
그래서 방학을 느껴보기 위하여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학교 친구들끼리 통영의 한산도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2박3일 동안 그 통영 여행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들은 먼저 통영 여객선 터미널로 모였습니다. 그 곳에서 오랜만에 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한산도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통영에서 한산도까지 가는 시간은 거의 20분이 걸렸습니다. 그 20분 동안 간만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실컷 맞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상쾌했습니다. 여행을 함께 갔던 친구들도 오랜만에 여행을 가니까 무척 좋았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즐거운 한산도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한산도에 내려서 바로 버스를 탔습니다. 시내버스였는데 한산도 안에서만 운영되는 버스라 마을버스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처음 타보는 한산도의 버스가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제 친구가 사진에 찍혔음에도 제 친구가 그냥 한산도의 주민처럼 보였습니다. (그 만큼 적응력이 빠른 친구였다는....?) 


버스에서 내린 뒤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무슨 펜션이었는데 여행을 주최한 친구가 그 펜션에 아는 분이 있어서 쉽게 빌릴 수 있었다고 하네요. (역시 대한민국은 인맥;;;)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점심밥으로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저는 채식을 한다고 입맛이 없어졌는지 라면이 별로 땡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친구들끼리만 여행을 온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항상 제가 여행을 가면 선생님이나 어머니 같이 어른들이 한 명 이상 함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오직 친구들끼리만 여행을 갔습니다.

어른이 없으니 저희들은 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어른들이 없으니까 일정이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여행 계획이 정확하게 짜여있지 않아서 그냥 하루종일 숙소에만 있었습니다. 그냥 숙소에서 따뜻한 이불을 덮고 몇 가지 게임이나 대화를 하면서 노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 낚시나 한산도 관광 등 여러가지 일정이 있기는 했지만 밖이 너무나 추워서 거의 다 무산되거나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저는 답답해서 저 혼자 밖에 나가서 아름다운 한산도의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바닷바람도 맞으며 여행을 실컷 만끽했습니다.


한산도의 바다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밖은 너무나도 추웠지만 그 추위를 싹 잊게 해줄 만큼 바다는 저에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사실 그 보다 훨씬 아름다운 경치를 살아오면서 많이 봐왔지만 항상 새로운 경치를 볼 때면 그 경치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ㅎㅎㅎ


그렇게 이번 통영의 한산도 여행은 조금은 부족하게 계획된 여행이었지만 나름대로 친구들도 만나고 예쁜 바다도 만끽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재미있게 다녀왔으니까 다시 힘을 내서 남은 겨울 방학을 알차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아버지와 갔던 통영 여행에서 미륵산을 갔습니다. 사실 이번 통영 여행의 주목적도 미륵산 등산을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때 부터 계속 새해로 넘어가는 시기인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갔습니다.

제일 처음 등산을 간 곳은 지리산이었는데 그 때는 등산에 대한 지식과 장비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겨울산이라서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로 등산을 갔던 곳은 바로 마이산이라는 곳인데 그 산은 저와 아버지가 등산을 갔던 당시에 눈이 너무 많이 왔으며 여러가지 사정으로 정상까지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그 때에는 마이산의 정상까지 가지 못해서 약간 싱거운 등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힘들더라도 제대로 된 등산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각종 등산장비들을 꼼꼼히 챙겨오고 춥지 않기 위해 옷도 5겹이나 껴입었습니다. 그렇게 완벽한 준비를 끝내고 통영의 미륵산에 갔는데 생각보다 작은 산이었습니다.

미륵산은 해발 461m 밖에 안되는 작은 산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날씨가 별로 춥지 않아서 눈도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겨울산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것들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버지는 그냥 등산은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습니다.

케이블카는 인기가 많았던지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미륵산에 온 사람들 중에서 거의 대부분은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그리고 그 만큼 케이블카는 아주 잘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가보니 거기에도 사람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올라가는 케이블카에는 사람이 많지만 내려오는 케이블카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거기에서 다 놀고있었습니다. 케이블카로 올라간 산 위에는 시설이 아주 좋았습니다.

음식을 파는 곳이 대충 봐도 열 군데가 넘었습니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카페, 심지어 한 층을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까지 있었습니다.


확실히 '케이블카' 라는 편리한 운송수단이 있어서 그런지 산 위에는 많은 것들이 활성화될 수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만큼 미륵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그래도 조금만 등산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정상까지 한 번 올라가 보았습니다.(케이블카는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미륵산은 산림청이 지정한《100대 명산》으로 선정된 아름다운 산이었습니다. 100대 명산으로 불릴 만큼 미륵산의 경치는 확실히 아름다웠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그냥 산의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이나 찍으면서 여유롭게 등산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미륵산은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에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곳과 미륵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무척 짧아서 일반인들이 간단하게 운동하는 겸 등산하기에는 아주 좋은 코스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륵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팔고 시설도 무척 좋고 케이블카가 있어서 힘들지 않고 정말 부담없이 산의 맑은 공기와 경치를 만끽하기에 너무나도 완벽한 환경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륵산은 등산을 위한 산이 아니라 그냥 관광을 위한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등산에만 너무 집중해서 정신이 없다보면 산의 경치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미륵산 등산은 정말 산의 경치를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등산은 많이 못했지만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미륵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실컷 만끽할 수 있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등산이었습니다.


연말과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1년만에 아버지와 단 둘이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이 유럽으로 출장을 가셨습니다.

늘 1월 1일 되면 아버지와 함께 등산이나 여행을 갔습니다.
2년전 1월 1일에 아버지와 겨울 지리산에 가서 죽을 뻔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번에는 1월 1일에 아버지가 출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12월 30일(금)에 출발했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버스를 타고 간 곳은 바로 통영!!!

바다를 비롯한 싱싱한 해산물이 유명한 고장이었습니다. 학교 때문에 오후에 출발해서 통영에 도착하니 벌써 밤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잠을 잘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저희가 먼저 찾은 곳은 통영의 해저터널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압적인 노동을 강요하여 만든 터널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진 터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터널은 매우 정교하고 완벽하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시대에 바다 밑을 지날 수 있는 해저터널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굉장했습니다.


해저터널을 걸어가 보니 비록 벽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기에 터널 속에서 바다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바다 밑을 걷고 있다는게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해저터널을 나와보니 통영의 아름다운 밤바다가 저와 아버지를 반겼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바다가 훤히 보이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짐을 챙겨서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아침은 KBS의 1박2일에서 나왔던 충무김밥 식당에 가서 먹었습니다.

확실히 충무 김밥은 매우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아버지 둘 다 충무 김밥을 좋아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침을 먹고는 여행의 원래 목적이었던 미륵산 등산을 갔는데 그 등산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륵산 등산을 끝내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 바다위에 있는 거북선이 보였습니다. 통영은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과 판옥선을 가지고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곳입니다.

그래서 그 때의 영광을 기억하기 위해 통영의 바다 위에는 거북선이 남아있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얼른 거북선 안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거북선 안에는 임진왜란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처럼 많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물건들은 너무도 많이 봐서 별로 관심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심이 가는건 거북선 안에 있는 콘센트!! 아버지는 그 콘센트를 보시고는 "조선시대에도 전기를 사용했나?" 라는 농담을 하셨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고향인 남해에서도 노량해전이 펼쳐져서 거북선이 있습니다. 남해에 있는 거북선은 통영의 거북선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통영의 거북선에는 실망이 조금 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간 곳은 통영의 '동피랑 마을' 입니다. 통영이 꽤 좁았는지 해저터널, 미륵산, 거북선, 동피랑 마을 등의 유명한 관광지들이 전부 가까워서 다 걸어서 관광했습니다.

동피랑 마을은 이름처럼 아주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합니다. 바로 벽화골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벽화골목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선 벽화의 그림실력이 화가의 수준에 도달합니다. 또한 아이디어가 정말 톡톡 튀는 그림들을 몇 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자전거를 그림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림으로 골목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동피랑 마을도 몇 달 전에 와봤기 때문에 오래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버지가 출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빨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면서 느낀게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저도 조금만 있으면 어른이 되고 바빠지다 보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을 시간이 점점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부모님과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가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가 기숙사라서 지금도 부모님을 자주 만날 수 없는데 어른이 되면 얼마나 만나겠습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방학이고 여름방학 때 처럼 외국에 가지도 않으니까 이번 겨울방학 때에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지겠습니다.
9월 22일(목)부터 24일까지 학교에서 가는 이동학습에 참가했습니다. 저희가 간 곳은 바로 '지리산' 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지리산으로 갈 때 코스 난이도를 상, 중, 하로 나눠서 갔는데 저는 남자기 때문에 가장 힘들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캠프를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아버지와 등산도 충분히 해봤으며 지리산도 한 번 가봤기 때문에 이번 이동학습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리산은 각 코스에 몇 개의 조를 짜서 가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총 7명으로 담당 선생님은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체육을 전공하셨고, 등산도 많이 다녀보셔서 아주 든든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걱정없이 등산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조에서 저는 '코펠' 과 '버너' 를 들고오기로 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등산을 많이 좋아하셔서 왠만한 등산장비는 모두 집에 있었습니다.

제가 들고 간 버너입니다.


그렇게 준비한 짐을 챙겨서 선생님께 검사를 맡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제 짐을 보고는 깜짝 놀라셨습니다.

우선 제 가방이 너무나도 작다고 했습니다. 우리집에 있는 등산 가방중에서 그나마 가장 큰 가방을 가지고 온건데 작다고 하니까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져 온 코펠도 너무 작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코펠을 들고오기 전에 작은 코펠이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도 지금와서 작다고 하니까 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께 짐에 대해 실컷 잔소리를 들은 뒤 저는 짐을 처음부터 다시 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등산용 가방부터 새로 샀습니다.

저번 가방보다 훨씬 큰 가방을 구입했고, 친구에게 부탁해서 큰 코펠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까지 챙기고보니 가방을 들고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습니다.

아버지가 새로 사주신 등산 가방입니다.


그렇게 짐을 다시 챙기고도 저는 지리산 준비를 하면서 계속 허둥지둥해야 했습니다. 정말 제가 생각해도 필요없을 것 같은 것들을 선생님과 다른 조원들은 계속 챙기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람막이 2겹과 각종 반찬들, 쌀, 모자, 장갑 이런 것들은 제가 생각하기에 지리산에 가서 정말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계속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다른 조원들도 작년에 지리산을 한 번 가봤다고 저를 계속 무시하면서 그런 짐들을 계속 챙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조에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지리산에 가기 전까지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 친구까지도 지리산 준비로 시비를 걸어서 그 친구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지리산에 가서 바람막이는 한 개밖에 필요하지 않았고, 반찬은 너무나도 많이 남았으며, 쌀도 엄청 남아서 힘들게 들고왔습니다.

또한 모자나 장갑은 정말 필요도 없었으며 새로 산 가방은 공간이 너무 많이 남았고 괜히 가방이 너무 커서 무겁기만 했습니다.

저는 제 또래들 중에서 제가 여행을 가장 많이 가봤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등산도 아버지와 함께 많이 가봐서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에서 나오는 제 의견은 거의 다 무시되었고 오히려 혼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을 다녀오고 나서야 제가 힘들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가는 지리산 등산은 저 혼자만 잘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 의지하고 이해해줘야만 했습니다.

저도 너무 제 의견만 앞세웠다는 것을 느꼈고 이번 지리산 등산은 저 혼자 가는게 아니라 저희 조의 총 7명이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제 의견이 무시되더라도 절대로 기분 나빠해서는 안되는 것 이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공동체 의식이라는 것을 배웠으니 내년에 가는 지리산 등산은 더 완벽한 준비를 해서 갈 수 있을 것 입니다.

저희 조의 일부 멤버들입니다.


같은 반의 친구들과 남해로 여행을 가니 역시 뭔가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친구들이랑 놀 때에는 노래방이나, 당구장에 가거나 농구를 하러 가면서 항상 똑같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직접 회의를 하고, 여행의 일정을 짜서 여행을 가니까 노래방이나 당구장보다 훨씬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함께 가신 담임 선생님을 제외하고 저를 포함해서 총 8명이 여행을 갔는데 먹을 것을 사려고 장을 볼 때 약간 힘든 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장을 볼 때에는 8명 모두가 각자 먹고싶은 음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의견충돌과 개인행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만 계속 고집한다거나 자기가 먹고싶은 음식을 사기 위해 따로 마트를 돌아다닌다거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반이 단합이 안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수욕장을 갈 때 싹 없어졌습니다. 해수욕장을 갈 때 우리들은 담임 선생님의 7인승 차를 타고 갔는데 무려 9명이나 타서 너무 좁아서 많이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해수욕장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거의 1시간 30분동안 길을 헤맸습니다. 하지만 해수욕장에 가는동안 친구들 모두 불편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모두 힘을 합쳐서 이정표를 계속 쳐다보고 보이는 사람마다 해수욕장의 위치를 물어보면서 사촌 해수욕장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우리들은 정말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재정이라는 친구가 튜브도 들고왔었고 다들 무더운 날씨라 그런지 정말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해수욕장을 가기 하루 전에는 계곡을 갔었는데 계곡에서 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넓고 깊은 남해의 바다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놀고나서 할아버지 집에 돌아갈 때에는 다행히 길을 잘 찾아서 빨리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역시 친구들은 모두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몇몇의 친구들은 선생님과 함께 저녁밥을 준비했고 나중에는 저녁밥을 정말 배가 터지게 먹고도 모자라서 컵라면도 먹었습니다.

정말 남해 여행에 다녀와서 살이 1kg 정도 더 쪘을 정도로 여행에서 음식을 많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에서 많이 노니까 그 만큼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숨 푹자고 나니까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저는 전날 밤에 늦게까지 계속 놀아서 그런지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조금 구겨져서 잠을 잔 덕분에 몸이 매우 뻐근했습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마산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금방 일어나서 짐을 싸고 집을 대충 치우고 난 뒤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게 벌써 어제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여행도 끝났으니 방학동안 당분간 학교의 친구들을 볼 수가 없겠네요.

확실히 학교생활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보니까 벌써 방학이 지루해지고 개학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방학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방학동안 서울에도 가야하고, 태국에도 해외자원봉사를 떠나야합니다. 다른 친구들도 저처럼 방학동안 각자가 해야할 일이 있을테니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그렇게 조급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우리반 학생들이 계획을 짜서 방학 때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갈 장소는 남해에 있는 저의 할아버지 집으로 정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는 이제 아무도 없기 때문에 가끔씩 사람이 가줘야 될 것 같아서 제가 우리 할아버지 집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각자 2만원씩 가져와서 끼니를 해결하고 2박3일동안 신나게 놀 계획을 짜서 우리반 담임 선생님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갈 때 담임 선생님도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여행 당일날 우리들은 두 팀으로 나눠서 남해에 가기로 했습니다. 진주에서 가는 사람들과 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모여서 가는 사람들이 모여 남해로 출발했습니다.

남해에 도착해서 진주팀과 만나서 함께 장을 보러갔습니다. 각자의 용돈을 모아서 삼겹살, 햄, 라면, 음료, 각종반찬 등 다양한 음식들을 잔뜩 구입해서 택시를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할아버지 집은 몇 달동안 비워서 그런지 매우 지저분했습니다. 총 8명의 친구들이 힘을 모아서 함께 힘을 모아 집을 치우니 금방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들은 집에서 우선 조금 쉬다가 바로 계곡으로 놀러갔습니다. 계곡은 집에서 얼마 멀지 않아서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각자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던지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서로 물에 빠뜨리기도 하고 미끄러워서 넘어지기도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이 간 친구 중에서 문석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친구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벽을 짚어서 벌에 쏘인 것 입니다.

상황이 너무 웃겨서 친구들 모두 벌에 쏘인 문석이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석이는 심각했습니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물에 들어가자마자 벌에 쏘여서 놀지도 못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 친구들을 지켜보기만 해야했습니다.

벌에 쏘인 문석이의 손가락

왼쪽에 앉아있는게 문석이 입니다.


하지만 그런 불쌍한 문석이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은 계곡에 몸과 영혼을 맡기고 재미있게 놀고있었습니다.

어쨌든 계곡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나서 우리들은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즐거워했고 다행히 문석이도 즐거워보였습니다.

계곡에서 나와 남녀를 나눠 샤워를 하고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교에서 일하시다가 우리들을 위해 일부러 길을 찾아가며 힘들게 오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이며 저녁밥을 준비중이셨습니다. 우리들을 샤워를 끝내고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요리 선생님이시고 선생님의 정성이 듬뿍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라면스프를 넣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녁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저녁밥을 다 먹고나서 설거지를 하면서 깨끗하게 정리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젠가 우리반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밥을 해줄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쁘신데도 남해까지 먼길을 달려와주시고 우리들을 위해서 밥도 해주시고, 정말 여러모로 이번 여행에서 선생님의 역할이 참으로 컷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의미가 별로 없었을 것 입니다. 친구들끼리 놀아도 되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처럼 어른이 있어야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담임 선생님께서 함께 해주신 것만 해도 정말 크게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무슨 '시내버스를 타고 우리지역 10배 즐기기'라고 했나? 하여튼 그 이유로 우리는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우리는 종착지에 내렸습니다. 그곳은 '저도' 라는 곳으로 연육교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콰이강 편의점' 이라는 식당으로 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습니다. 저는 굴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껍질채 구워먹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래서 기대가 많이 되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굴과 조개등 많은 음식을 구웠습니다. 너무 많아서 우리가족 세 명이 먹기 버거워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굴구이는 아주 맛있어서 금방 금방 입에 들어가 다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먹을 때 마다 정말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물론 어머니, 아버지도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하셨습니다.

그 굴구이에는 조개는 물론이고 고구마까지 같이 넣어줬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굴구이와 조개를 먹고 후식으로 고구마를 먹어주면 정말 최고였습니다.

그렇게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고나서 저와 아버지, 어머니는 연육교라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그 다리는 연인이나 가족, 친구들이 와서 자물쇠를 걸어둔다는 다리였습니다.


확실히 그 다리에는 자물쇠가 아주 많이 달려있었습니다. 옛날에 그 자물쇠들 때문에 다리가 가라앉을수도 있을 것 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 정도로 자물쇠가 아주 많이 달려있었습니다. 꼭 연인사이가 아니더라도 친한 친구끼리나 가족끼리 와서 자물쇠를 걸어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자마다 자기들만의 글을 새겨둔 자물쇠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정성스레 적혀있었습니다. 정말 그걸 보고있으면 그냥 편안한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그렇게 흐뭇하게 연육교를 구경하면서 걸어나오다가 좀 특이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건 다 보통 자물쇠였는데 그 다리에 매달아놓은 것 중 딱 하나만 좀 특이한 것 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자전거 자물쇠'였습니다. 생긴 것도 물론 다른 자물쇠들과 많이 달랐지만 크기부터가 다른 자물쇠들을 압도시켰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와 아버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자전거 자물쇠의 주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기에 매달아 놓았을까요?

그렇게 한바탕 재미있게 구경을 한 뒤 남은 버스시간만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항상 저는 멀리 가서놀아야 하는게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 마산에서 아주 재미있는 여행을 보내보니 정말 그 생각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 가더라고 가족들과 여행을 함께 간다는 자체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오랜만에 가족끼리 다같이 여행을 갔습니다. 사실 여행이 아니라 아버지가 강의를 가는데 어머니와 제가 아버지를 따라가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함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만족했습니다. 우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서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우리를 '유일회관' 이라는 식당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식당은 전에 아버지가 맛있어서 블로그에 한 번 올린 식당이었습니다.

역시 아버지가 맛있다고 한 만큼 처음부터 맛있는 메밀국수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 메밀국수가 참 맛있었습니다. 면도 쫄깃쫄깃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국물 맛 이었습니다.

그 메밀국수는 국물이 정말 시원하게 맛있었습니다. 비록 양은 적었지만 저에게 환상적인 맛을 보여준 음식이었습니다.

굴비요리이지만 비린내가 많이 나는 음식입니다.

그 다음에는 굴비를 말려서 구운 요리가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음식을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음식을 한 번 먹어보았습니다.

처음 먹을 때에는 약간 맛이 오묘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음식을 먹어보았는데 비린내가 심하게 났습니다. 그 냄새는 하도 고약해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먹었을 때 약간 오묘했었던 것도 모두 비린내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음식을 다시 먹지않았습니다. 도저히 비린내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입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그 음식이 맛있다고 그 음식만 계속 드셨습니다. 저와 어머니의 취향이 왜 이렇게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밥과 녹차를 담은 그릇이 나왔습니다. 밥을 그 녹차에 말아서 먹는게 그 식당의 요리였습니다. 저는 그냥 된장찌개와 밥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녹차에 밥을 말아서 맛있게 드셨습니다. 저는 엄청 맛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해가 잘 안되었습니다.

녹차에 밥을 말아서 비린내가 나는 굴비와 함께 드시는 모습


그렇게 점심을 먹고 아버지는 강의를 하러 가시고 어머니와 저는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보려고 했던 영화는 '이끼' 라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는 '강풀' 님의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 처럼 '윤태호' 라는 만화가가 만든 '이끼' 라는 만화가 '강우석' 이라는 감독을 통해 영화로 만들어진 것 이었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둘 다 그 영화를 보고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따로 영화를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따로 영화를 보면 같이 여행을 온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제가 그냥 둘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보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이클립스' 라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무척 보고싶었습니다. 전 편인 '트와일라잇' 과 '뉴문' 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같이 그 영화를 보는데 어머니는 너무 영화가 지루해서 영화를 보는동안 주무셨습니다. 전 아주 재미있게 보았는데 어머니가 보기에는 이클립스라는 영화가 좀 유치했나 봅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우리는 영화관 옆에 있는 서점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은 우리 마산과는 다르게 무척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곳은 우리 마산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만큼 무지 넓었습니다. 어머니는 책을 하나 골라서 읽으셨습니다.

저는 그 동안 2학기 동안 공부할 책들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약간 출출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돈을 받아서 우유를 사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강의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우리들은 다시 택시를 타고 이번에는 '유명회관' 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그곳은 소고기를 주로 하는 식당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아버지가 사주는 소고기를 배터지게 먹고 커피숍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제가 옛날에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화려한 휴가' 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도청 앞에도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마산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배를 쥐어잡으시고 화장실로 뛰어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화장시를 간 사이에 아버지와 잠시 버스 터미널에 있는 텔레비젼을 잠깐 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도 배가 아파왔습니다.

저는 일단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화장실은 그야말로 더럽게 멀었습니다. 저는 화장실로 한 걸음 한 걸음 뛸 때마다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한 단계씩 강하게 느겼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화장실에 도착하고 몸에 있는 노폐물을 비우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비워도 비워도 배가 계속 아팠습니다.

아까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급하게 먹는 바람에 장에 무리가 갔나봅니다. 그렇게 한참을 변기와 싸우던 중 드디어 복통이 사라지고 다시 아버지가 계시는 걸어가는데 어머니가 볼일을 끝내시고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타이밍이 맞았나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동안 고생을 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는 버스를 타는동안 계속 잤습니다. 심지어 마산에 도착했을 때에도 제가 깨워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어머니와 저는 아주 즐거웠겠지만 사실 아버지는 놀러간 것이 아니라 강의를 하러 간 것 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주 힘드셨을 것 입니다.

이렇게 피곤하신데도 어머니와 저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주시고 좋은 경치를 보여주신 아버지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지리산에 가서 세석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난 다음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지리산에 다녀와서 블로그를 쓰는 것은 마지막일 듯 하네요.

세석 대피소에서 우리는 다행히 꽤 따뜻하게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짐을 싸고 드디어 지리산에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보니 안개가 무지 많이 껴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조금만 있다가 내려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최악의 경우에는 세석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가야한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30분쯤을 기다려보니 안개가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세석대피소에서 출발하기 전.


그래서 아버지와 저는 얼른 짐을 들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세석 대피소에서 나오니 눈이 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차가운 눈들이 제 목으로 들어가니까 정말로 죽을 맛 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눈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차가워서 싫어지네요.

우리는 그렇게 차가운 눈을 맞으며 어제 우리가 왔던 길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림코스로 빠져서 내려갔습니다.

이런 눈길을 헤치고 걸어내려왔습니다.


길은 다 내리막길이라서 힘도 별로 안들고 편하게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경사가 넘 심해서 아이젠이 없었더라면 미끄러워서 아주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1시간쯤 걸으니 반은 내려왔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앉아서 쉬다가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내려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우리가 걸었던 거리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지만 그래도 멀기는 멀었습니다. 다리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은 그쳐서 춥지는 않았지만 힘들어서 얼른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1시간 30분쯤을 걷다보니 드디어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거림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함박웃음.


저는 기분이 좋아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눈이 녹아 물이 있는 자리에서 미끄러져서 엉덩방아을 찧은 것이 아닙니까?

정말 아팠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다 내려왔다는 기분에 아픔은 금방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 가서 맛있는 백숙을 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몇 시간 뒤 우리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침대에 널부러져서 뒹굴었습니다. 그 느낌은 정말 지옥에서 천국으로 온 행복한 느낌이었습니다.

힘든 여행을 다녀오면 집으로 돌아왔을때 그 때의 편안함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지리산을 등산할 때 나는 아쉬웠던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단 우리는 집에 라면을 끓여먹을 코펠과 버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까먹고 코펠과 버너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코펠과 버너를 가져왔다면 뜨거운 라면을 추운 산에서 맛있게 먹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라면의 기운으로 힘차게 등산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도 저도 무척 아쉬웠했습니다.

지리산 삼신봉 정상에서.


그리고 우리가 세석 대피소로 들어갔을때 발이 너무 시려웠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핫팩으로 자신들의 발을 문지르고 있더군요.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사실 우리집에도 핫팩은 있었습니다. 만약 그 핫팩을 등산하는데 가져왔다면 보다 더욱 따뜻하고 덜 힘들게 등산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석 대피소에서 정말 맛없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햇반에 햄이랑 참치... 햄은 먹을만 했는데 참치는 너무 차가워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젓가락 또한 없었습니다.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가 지리산 세석대피소에서 먹은 저녁식사.


우리는 세석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잘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젓가락을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나무젓가락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거쳐서 드디어 나무젓가락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무젓가락을 빌려준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맛있게 구워지는 고기들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제가 먹을 햇반과 햄, 참치를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들 버너와 코펠을 가져와 맛있는 저녁을 지어 먹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맛있게 익은 고기를 먹고 싶었는데 현실은 전부 인스턴트 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대충 먹고 우리는 거림코스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주먹밥을 파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원래 계획대로 거림코스에서 등산을 시작했다면 맛있는 주먹밥을 사서 올라가 맛있게 먹었을 텐데...

그나마 아이젠과 스패츠, 그리고 방한장갑을 준비해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이번 여행은 아쉬웠던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아쉬운 일이 많고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은 여행은 기억에도 잘 남을 것 입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교훈은 여행을 갈 때 사전계획을 잘하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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