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은 인문고전 책을 보면 간디나 아서왕 등 위인전이 많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위인전을 읽는 게 재미있더라구요.


위대한 사람의 업적을 책으로 접하면서 그 사람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뭔가 얻는 게 있다면 더 좋겠지만 위인에 대한 책을 읽는 게 저에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위인전을 읽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알렉산더 대왕' 이라는 책입니다. 물론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유명한 왕으로써 '알렉산드로스 3세' 또는 페르시아식으로 '이스칸달' 이라고도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56년 ~ 323년 경에 활동했던 고대의 왕이지만 그 업적이 너무나도 위대해서 기록이 무척 풍부하고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교과서에서 처음 접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교과서에는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나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여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세운 위대한 왕' 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이 전부가 아닙니다. 알렉산더의 업적은 단순히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유명한 도시를 하나 세운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기켜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진정한 '정복왕' 이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업적 중에서 중점을 두어야하는 것은 바로 '페르시아 정복' 과 '헬레니즘 문화 형성' 입니다. 지금부터 그에 대해 한 번 정리해볼까 합니다.

- 성장 배경
먼저 알렉산더가 자란 배경부터 한 번 살펴보죠.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필리포스 2세는 자신의 아들 알렉산더에게 실질적인 전술과 행정 등의 일을 배웠고 젊을 때부터 전투에 참가하여 경험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13세가 되던 때부터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의 많은 자료들을 3년 동안이나 배웠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우면서 그에게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마케도니아를 전쟁만 일삼는 야만인들로 여겨왔습니다.

물론 마케도니아의 왕도 야만인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문화와 기풍 면에서 그리스와 확실히 차이가 있었고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 문화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왕으로 즉위한 뒤, 부모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기나긴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게 됩니다.  


- 페르시아 원정기 
당시 페르시아는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들을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어떤 나라도 대항할 수 없었던 최강의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는 그런 페르시아에 대항할 계획을 세웠고 페르시아 원정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가 바로 실행시켰습니다. 

알렉산더는 5만의 군사를 이끌고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건너 페르시아로 향했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다리우스 3세는 이를 알고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의 예상과는 다르게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군대는 번번히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차례 차례 페르시아 도시들을 굴복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다리우스 3세가 직접 나서서 알렉산더 군에게 대항했지만 몇 번이나 패배하고 결국 이수스 전투에서도 패하여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고 그의 엄청난 재산과 보물들은 모두 알렉산더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 대왕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전설적인 왕국, 페르시아 정복에 성공했고 군의 사기는 더욱 높아져만 갔습니다.

거대한 국가, 페르시아에게 이길 수 있었던 승전 요인은 어려서부터 배워왔던 수많은 전술과 행정적인 가르침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그리고 다리우스 3세의 방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헬레니즘 문화 형성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원정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다른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해나갔고 점점 거대한 국가를 건설해 나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을 할 때마다 정복한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놔두라고 했습니다. 이미 정복하여 굴복시킨 나라지만 그 나라에 있는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언어도 그대로 사용하게 했다고 합니다. 

정복한 나라의 관습과 문화를 인정하고 문화를 융화시키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합쳐져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 예로 동, 서양의 미술이 합쳐진 '간다라 미술' 을 들수 있습니다.  

덕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반대하여 대항하는 나라가 많이 없었고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때 무모한 전쟁을 하지 않고 정복할 수도 있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이런 융화 정책은 후에 알렉산더 대왕의 최고 업적이라고 합니다. 비록 알렉산더가 건설한 대제국은 3개의 나라로 분리되지만 동, 서양의 문화가 확산되어 융합할 수 있었던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도 동쪽으로 더 진군하려 했지만 오랜 원정으로 지친 알렉산더의 병사들은 더 이상의 원정을 거부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병사들의 반응에 알렉산더는 수많은 고민 끝에 병사들의 뜻을 따르겠다는 현명한 판단을 내립니다. 아마 그 때 원정을 계속했다면 병사들의 불만을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정복한 나라에서 다른 병사들을 모아 원정을 계속했지만 저는 알렉산더가 충분히 현명한 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정복에도 끝까지 원정을 계속하면서 정복 욕심이 엄청났던 왕이었지만 그는 정치적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면모를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후에 알렉산더 대왕은 고열로 쓰러져 말라리아에 걸려 자연사했다고 합니다. 한 평생 정복을 일삼고 전쟁에 몸담았던 왕이었지만 결국에는 전쟁이 아닌 병에 걸려 죽습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아마 그가 병에 걸려 죽지 않았다면 정복을 계속해서 전세계를 장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전세계의 문화가 합쳐질 수 있었겠죠?

알렉산더 대왕은 단순히 거대한 영토를 장악하고 수많은 나라를 정복한 정복왕이 아니라 정복한 나라들의 문화를 퍼뜨려 융화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왕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영토


알렉산더 대왕은 무조건적인 식민지배와 타협하지 않은 좁은 시각의 세계인식을 바로잡고자 했던 진정한 정복왕으로 추앙받습니다.

물론 그의 정복사업으로 인해 고통받은 수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양한 세계의 문화를 확장시킨 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오랜 세월 진행한 정복의 진정한 유산이자 업적이었습니다.

이번 여름 방학 때에는 인문고전 책을 많이 읽기로 아버지와 약속했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많이 쌓아두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인문고전을 읽으면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인문고전 세트를 사주셨습니다.

약 130권 정도의 많은 인문고전 책들이 담긴 박스가 우리집에 왔습니다. 130권이나 되다보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책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습니다. 책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미술, 음악, 역사, 위인전 등 다양한 장르의 인문고전들이었습니다.


책의 양은 무척 많았지만 책 한권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책 하나하나가 모두 작은 두께의 책들이었습니다. 

책의 두께가 다 얇은 간단한 책들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부담은 별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간날 때 틈틈히 읽으면 금방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책들이었습니다.


처음 읽을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간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인도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 라는 인물을 존경해왔습니다.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인도를 독립하게 해준 장본인으로써 아시아 최고의 위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저는 간디의 위대한 업적에 감명을 받아서 간디의 자서전을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읽은 간디 자서전은 만화로 되어있어서 간디에 대해 생략된 부분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 전에는 구체적으로 간디의 업적들이 적혀져 있는 간디 자서전을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책은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서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간디 자서전은 아니지만 간디의 업적을 간략하게 정리해놓은 책을 아버지가 사주신 인문고전 세트에서 찾게 된 것입니다.


간디는 앞으로도 제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울 점이 아주 많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간디라는 인물에 대해 공부하면서 배우고 연구할 계획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번에 아버지가 사주신 짧은 간디의 위인전을 읽고 간디의 업적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뒤에 어려운 간디 자서전도 읽으면서 점점 간디에 대해 파고들 생각으로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간디에 대한 인문고전 책도 이번에 함께 구입한 다른 책들처럼 역시 두께가 아주 얇았습니다. 간디의 업적에 대한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도 글이지만 간디에 대한 다양한 사진자료가 책이 첨부되어 있어서 책의 내용을 간편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 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간디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습니다. 망고 열매를 치료해준답시고 망고 나무에 기어오르기까지 했고 항상 미소짓거나 웃기를 잘했던 밝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디에게도 반항의 사춘기 시절이 있었습니다. 간디가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어린나이에 조혼이라는 관습에 따라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고 간디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소녀와 첫날밤을 가지게 됩니다.

간디는 어린나이에 성에 눈을 뜨고 자신의 어린 아내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간디는 항상 침대에서 아내를 괴롭히면서 싸우고, 토라지고 하지만 그럼에도 간디는 자신의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간디는 청소년기에 성장을 하면서 호기심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도 반항의 심정으로 담배를 피고, 자살시도를 하고, 이슬람교 친구를 사귀면서 힌두교에서 금지된 고기를 입에 대고...

그러던 어느날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있던 간디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에게 빠져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아내는 임신중이어서 태어난 아기 또한 얼마 가지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때문에 간디는 더 큰 자책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계기로 간디는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기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변호사가 됩니다. 그리고 한 소송사건을 맡아 '프리토리아' 라는 곳에 가는 도중, 어떤 기차역에서 엄청난 일을 겪게 됩니다.

그 당시 간디는 1등석 기차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백인이 그가 흑인인 것을 보고 간디와 짐을 기차 밖으로 내던져 버립니다.

간디는 그 때 그 자리에서 추위와 분노로 얼어붙으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반항과 정치의식의 변화를 느끼고 간디는 결정적으로 '정부가 인도인들에게서 입법단체 회원 선출권을 박탈하려 한다' 하는 기사를 보게됩니다. 

이를 계기로 간디는 15일만에 1만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서로 나탈 인도 국민회의를 창설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간디의 인도독립운동이 시작됩니다. 


간디의 독립운동 방법은 단 한가지 '비폭력, 불복종' 즉 '진리의 힘' 이라는 뜻을 가진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운동을 전개합니다.

쉽게 말해 영국의 식민지배를 집요하게 거부하되 폭력없이 공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간디는 인도 사람들의 의지를 한 곳에 모았으며 언제나 그들의 의견을 대변했습니다.

간디는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합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그는 '세상을 개혁하려면 나 자신부터 개혁해야 한다.' 며 금욕주의를 실천했고 항상 인도 전통옷을 걸치고 다녔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감옥에 투옥되었지만 그 때마다 간디는 감옥이 자신에게 피난처이며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여유를 가졌습니다.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구절입니다. 간디를 가장 간단하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멋진 말인 것 같습니다.

'간디는 인도 전체를 번개처럼 한순간에 장악했다. 그는, 허리에는 짧은 옷을 두르고 손으로 짠 흰 무명의 깨끗한 숄로 몸을 감싼 노인이라는, 전설이 되어버린 이미지로 수백만의 관중을 압도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짓궃고 오랜 권위가 몸에 밴 나이 지긋한 힌두교 성인들처럼 근엄하였다. 하지만 그는 힌두교도도 아니고 정치가나 신비주의자도 아니며, 상인도 브라만도 무사(武士)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이기도 했다. 그는 인도 자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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