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월 13일) 부산에서 열리는 '라이프 사진전'을 관람하기 위해 부산에 갔습니다. 졸업앨범을 준비하는 제 태봉고 후배 2명과 함께 갔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담은 최고의 잡지라고 평가받고있는 '라이프지'는 1936년 타임지와 포춘지를 만든 잡지왕 헬리루스(Henry Luce)의 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헨리루스는 "사진은 세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객관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기계시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이며 아직은 다루기 어렵지만 놀랍도록 강력한 새로운 언어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하며 라이프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라이프지가 탄생한 이유처럼 라이프지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사진이 중심이 된 잡지였다고 합니다. 라이프지는 사진으로 펼쳐보는 미국의 역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들의 정치, 문화, 사회적 관계망 등 세계인이 주목하는 것들을 포착한 가장 미국적인 잡지이자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잡지였고, 1972년에 폐간되었지만 오늘날에 인터넷 잡지로 만날 수 있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는 영화에서도 라이프 잡지가 등장합니다. 거기서도 역사와 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교훈을 주는 소재로 나타납니다. 

라이프지에서 활동한 최고의 사진가들로 불렸던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유진 스미스, 로버트 카파, 더글러스 던컨 등 수많은 사진가들의 집념과 역사의 한 페이지가 담긴 900만장의 사진 중 최고의 130여장을 이번 라이프 사진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전은 부산 문화회관에서 열렸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우선 표를 구입하러 매표소로 갔습니다.

매표소는 라이프지의 로고와 같은 빨간색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 빨간 매표소에서 저는 처음으로 성인 요금이라는 것을 내보았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비싸진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라이프지의 역사적인 사진들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갔습니다.

팜플렛을 받았는데,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역사를 잊은자에게 미래는 없다.'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이프지가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것이기에 딱 알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안에서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기에 전시장 바로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습니다.


라이프 사진전에서 정말 좋은 사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세계인들의 인정을 받는 위인들의 인생과 그들이 겪었던 고난을 라이프지의 사진들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위인인 간디와 체게바라의 사진도 역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둘 다 나라를 독립시킨 지도자이지만 체게바라는 무장투쟁을 통한 혁명가였던 반면에 간디는 완전한 비폭력으로 독립을 이루어 내었기에 두 인물의 인생을 비교하는 글귀가 적혀있기도 했습니다.

찰리채플린과 카스트로, 마이클 잭슨, 아인슈타인 등 제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의 인생 또한 담겨있었습니다. 

알고있는 있었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물론 제가 평소에 몰랐던 인물들을 알게되기도 했습니다.  

라이프 사진전이 서울을 거쳐 부산에서 또 열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한국의 역사 또한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전쟁과 백범 김구 선생님 등 한국의 역사 또하 라이프지에 담겨있었습니다. 이런 역사들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흔적이며, 앞으로 미래를 만들어 갈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하는 것이며, 라이프지는 그런 역사의 기록을 아주 잘 해낸 잡지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역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인생을 보기 위하여, 세계를 보기 위하여) 

태봉고 3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

제가 태봉고를 3년간 다니며 했던 활동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고르라면 망설이지 않고
졸업 사진첩’ 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1기 선배들이 졸업 사진첩에 들어가는 사진들을 직접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졸업할 때에도 학생들이 직접 졸업 사진첩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졸업했던 태봉고등학교 2기 졸업생들의 졸업 사진첩은 저를 비롯한 9명의 학생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여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두 해냈습니다. 
 

. 기획

처음 기획단계에 들어가면 정말 막막했습니다.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본격적인 기획에 앞서 함께 일할 친구들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촬영 : 태윤, 문석, 소열
분장 : 신애
사진 보정 : 황은, 지아
편집 & 디자인 : 허윤, 재호, 재만

이렇게 함께 작업할 친구들을 섭외하고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의 머리보다는 여러 사람의 머리를 쓰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무언가 결정할 때 모두의 의견을 다 들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태봉고등학교는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기에 혼자서 하는 것보다 다 같이 힘을 모으는 것이 몇 배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선 사진첩의 컨셉을 정했습니다. 작년 제 1회 태봉고 졸업 사진첩과 간디고 졸업 사진첩을 참고하여 우리만의 컨셉을 만들어 나갔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키워드는 '추억'으로 설정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졸업사진첩을 펼쳤을 때 추억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졸업 사진첩을 기본적인 컨셉으로 정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했는데, 평범한 졸업 사진첩이라면, 펼쳤을 때 웃기는커녕 펼쳐 볼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기에 최대한 '태봉스럽게' 만들어보기로 파이팅을 다졌습니다.

처음 생각한 것은 기본적으로 작년 졸업 사진첩(2012학년도 제 1회 졸업사진첩)의 틀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1회 졸업 사진첩에는 1기 학생들이 입학한 2010년부터 졸업하는 2012년까지의 행사 사진이 정리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별 단체사진, 학생들 프로필 사진, 선생님들의 사진으로 마무리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형식의 졸업 사진첩입니다. 하지만 이번 졸업사진 제작팀은 작년 사진첩이 너무 평범하다고 느꼈고, 색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낸 아이디어 중 하나가 바로 바로 학생 개인 화보입니다.
 


 태봉고에서는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참 좋습니다. 태봉고에서 학생들 각각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것은 정말 학생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일깨워 주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여 각자만의 독창적인 사진이 담길 수 있도록 2기 전교생 45명 학생들의 개인화보집 개성공단을 기획했습니다. (개성공단은 우리들의 개성이 모인 사진첩이라는 뜻이지,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것은 아닙니다.

이런 기획안들을 가지고 전교생과 선생님들 앞에서 PT발표를 했습니다. 반응은 다행히 긍정적이었고, 우리 졸업 사진첩에 담길 우리 2기 졸업생들의 참여의지가 강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습니다.
 

2. 촬영

본격적으로 촬영일정을 계획하고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촬영 순서를 신경쓰지 않고, 되는대로 다 촬영했습니다.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여 수업까지 빼먹으면서 촬영했습니다. 지금은 수업을 빠지면서까지 사진첩 제작에 매달렸던 것이 약간 후회되기도 하지만 졸업사진첩이 무사히, 예쁘게, 잘 완성되었기에 선생님들께서도 이해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촬영은 저와 문석이, 소열이가 책임지고 진행했습니다. 45명의 학생들과 7팀의 동아리, 학교전경 사진 등 수많은 사진들을 모두 저희 손으로 촬영했습니다. 물론 류주욱 선생님께서 3년간 찍어놓으신 행사 사진들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는 전부 DSLR카메라로 니콘 D5200, 캐논 550D, 캐논 5D Mark2를 사용했습니다. 3년간 태봉고를 다니며 했던 영상 촬영 공부가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군요.

그 동안 공부했던 지식을 사용하여 다양한 촬영 기법과 광각렌즈, 망원 렌즈, 플래시, 조명 등의 수많은 장비들을 잘 활용하여 나름대로 전문적으로 촬영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졸업 사진첩에 사용되는 사진은 화보 느낌이기 때문에 방송실 스튜디오에 있는 흰 종이 앞에서 촬영한 경우가 많습니다. 화보 촬영을 할 때의 기본은 조명과 플래시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방송실에 설치되어있는 두 개의 조명을 인물에 비춰주고 촬영을 할 때 카메라에 따로 플래시를 설치하여 위로 바운드시켜 촬영했습니다.

조명과 플래시를 잘 사용하지 않으면 찍힌 인물의 얼굴 그림자가 어둡거나 아예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괴이한 사진이 될 수도 있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촬영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저희들이 아마추어이기에 실수가 많았습니다. 완성해 놓고 보니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이 몇 장 있었고, 배경과 너무 가까지 찍어서 인물 뒤에 그림자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촬영을 위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인물촬영은 모델과의 소통이러고 했습니다.
 모델과 최대한 친해지고 대화를 많이 해야 자연스러운 인물 사진이 나온다고 합니다.

저희는 이미 3년간 함께 했던 가족같은 친구들을 촬영하는 것이기에 촬영자와 모델과의 어색함이나 부담감이 없어서 편하게 촬영했습니다. 물론 소통도 자연스러워서 촬영은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었습니다.


. 분장 및 보정

저희 팀에는 분장과 보정 팀이 있습니다. 2기 학생 중에서 이신애라는 학생이 메이크업 아티스트 공부를 하면서 이미 상도 많이 받고 그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화장 및 분장팀장으로 믿고 맡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보정 팀도 포토샵 자격증이 있었기에 걱정이 없었습니다다. 누군가의 수상 실적, 자격증 여부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실력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그런 것 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졸업 사진첩은 최선을 다하기 보다는 최고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학창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고의 졸업 사진첩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팀이 많아지면 시간관리가 중요해집니다. 특히 분장 팀과 촬영 팀이 일정 조율을 잘 해야 했습니다. 분장을 하느라 촬영 일정이 미뤄지는 경우가 무척 많았는데, 하루에 15명 정도를 촬영해야 했기에 최대한 일정이 미뤄지는 것을 피해야 했습니다.

분장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촬영에 들어갔고, 촬영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바로 분장에 돌입합니다. 촬영이 끝나면 바로 보정 팀에게 원본 사진을 넘겨 보정에 들어가고, 분장, 촬영, 보정 팀이 모두 일을 쉬는 때가 생기지 않도록 했습니다.
 

. 편집 및 디자인

촬영이 모두 끝나면 편집에 들어가야 합니다. 계획대로라면 편집은 여유롭게 해도 되지만 우리는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이런 저런 바쁜이 일이 많아져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보정 팀에서 보정된 사진이 넘어오면 편집 팀에서 바로 편집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개인화보를 개인 당 두 페이지씩 제작했습니다. 개인화보에는 2기 졸업생 45명 전체의 인터뷰가 들어갔기 때문에 한 명씩 인터뷰를 따서 사용했습니다.

 
인터뷰는 그 사람에 맞는 재미있고 센스있는 질문을 따로 만들어서 했고, 잡지와 화보 형식을 원했기 때문에 ‘Oh Boy’라는 잡지를 모티브로 잡고 디자인했습니다.


목차를 정하면서 우선 학교걸음이라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학교의 교장실, 급식소 체육관 등의 교내 모든 장소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추억과 기억을 담아 쓴 칼럼 형식의 짦막한 글과 함께 실었습니다.

 
두 번째는 ‘3년 묵시록입니다. 묵시록이란 여러 가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비인간적 세계의 사건들을 묘사한 것을 말하는데, 태봉고에서의 환상적인 3년이라는 의미로 은지난 3년을 추억하며 수많은 행사 사진들을 모아 둔 코너입니다.

세 번째는 악연들’ 코너입니다. 보통 악연이라고 하면 나쁜 인연이라는 뜻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사용한 악연두터울 악()’에다가 인연 연()’자를 써서 두터운 인연들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악연들코너에는 3년간 활동했던 동아리나 친한 친구들이 모여서 찍은 그룹사진이 들어갑니다. 밴드부, 방송부, 농구부 등 7팀이 들어갔고, 2년간 담임을 하시다가 떠나신 이기숙 선생님 사진도 따로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화보집 개성공단이 들어가고, 마지막에 선생님들의 사진이 담긴 은사님코너가 사진첩을 마무리합니다. 우리 태봉고의 선생님들은 단지 선생님이라는 단어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가끔은 부모님 그 이상으로 감사한 분들이 바로 태봉고 선생님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졸업사진첩에 부모님보다 더 고마운 분들이라고 적어버리면 진짜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이 섭섭해 할 것이 분명하기에 은혜로운 스승님이라는 뜻을 가진 은사님을 사용했습니다.

편집을 모두 끝마치고 마지막에 그 동안 나를 비롯해서 졸업사진첩 제작을 위해 수고한 스태프들이 후기를 한 마디씩 적었습니다.무척이나 뿌듯했습니다.


졸업 사진첩을 학생들끼리 직접 제작한 것은 지금까지 태봉에서 했던 그 어떤 활동보다 더 뿌듯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라서 그런가? 더 이상 이렇게 태봉 친구들과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서럽게만 느껴졌습니다.

편집을 모두 마치고 졸업사진첩 표지를 어떻게 할 지 회의를 하던 중, 졸업 사진첩의 제목으로 두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태봉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와 태봉인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는 '태봉in'과 '갔다가 돌아간다'는 의미의 '고백(Go Back)'이었습니다.

충분한 회의를 거쳐 결국 고백(Go Back)이라는 제목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사진첩의 표지모델로는 태봉고등학교의 현 교장선생님이신 '여태전 선생님'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 여태전 교장선생님께서도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교장자리에서 물러나십니다. 태봉고가 처음 설립된 해부터 지금까지 교장이라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셨기에 더욱 아쉬운 마음을 가지실 것입니다.

태봉고를 위해 지금까지 힘써주신 교장선생님의 노력과 저희 2기 학생들과 함께 떠나시는 여태전 선생님의 작별의 의미를 담아 여태전 선생님을 표지 모델로 선정한 것입니다.

나름대로 TIME지의 표지 모델들을 따라하여 멋진 포즈를 취한 사진을 표지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졸업 사진첩의 뒷면 표지에는 저희 태봉 2기 학생들의 단체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태봉고등학교 제 2회 졸업 사진첩 
고백(Go Back)이 완성되었습니다. 

 

학교 후배의 추천으로 사진 촬영에 관한 책을 하나 접하게 되었습니다.'조선희'라는 포토그래퍼가 쓴 '네 멋대로 찍어라'라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마침 저희 학교 졸업앨범 제작을 맡았기 때문에 사진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네 멋대로 찍어라'라는 책의 제목이 조금 프로페셔널하기 보다는 너무 추상적인 것 같아서 도움이 될지가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조선희씨의 사진 노하우에 점점 빠져들었고, 그녀가 추구하는 사진의 이상향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희씨는 사진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을 사진에 담는 연습이라고 했습니다. 기술만 공부하면 남들과 똑같은 사진밖에 찍지 못하고, 결국 개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사진은 30분이면 배운다"라고 말한다고 하십니다. 사진의 기본적인 기술은 30분만에 충분히 배울 수 있겠지만 자신만의 사진 철학과 감각, 자신만의 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생각해왔던 사진의 철학과 너무나도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사진을 찍을 때 노출이나 구도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기이며, 제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길 것은 사진에 저의 가치관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실질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영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아버지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사진과 영상에 대한 정확한 저의 철학이 자리잡힌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문구가 있습니다.


'셔터속도 소리에 맞춰 춤을 추라!'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찰칵' 소리, 이런 셔터소리만 들어도 사진가들은 심장이 뛴다고 합니다. 사진이라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라는 것이죠. 

'사진은 사각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훔쳐보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세상의 모든 일들을 기록할 수 있지만 사각프레임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그 느낌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는 의미를 모두 포함한 말입니다.

'잠재의식 속 기억들이 사진을 만든다'

사진을 찍을 때 사진가가 겪어왔던 인생과 경험 등 그 사람의 삶 전체의 무의식 속에서 사진의 감각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각과 노하우를 길러 자신이 인생에서 감명 받았던 것, 충격 받았던 것 모두를 사진에 녹아낼 수 있음을 표현한 말입니다.

조선희씨는 잘 몰랐지만 사실 굉장히 유명한 포토그래퍼였습니다. 현재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한국 영화들 대부분의 포스터 사진을 직접 촬영하시고, 다양한 사람, 유명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사진 분야에서 명성이 아주 높은 분입니다.


그 분이 유명한 분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도 저는 이 책을 보고 무척 감명을 받았습니다. 물론 유명한 포토그래퍼라는 것을 알고, 책에 대해 더 신뢰가 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조선희씨의 사진 철학은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진이라는 분야가 예술가가 아닌 전문 카메라 기술자들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스마트폰으로 인해 남녀노소 누구나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는 이 시대에 조선희씨의 책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저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감각과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는 내용에 공감이 갔으며, 무엇보다도 졸업앨범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저에게 간접적이지만 분명한 답을 주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제 멋대로 찍어볼 것'입니다. 물론 수평이나 노출 등 기본적인 사진의 규칙은 지켜야겠지만 남들과 똑같은 다른 학교처럼 평범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학생의 개성의 존중해주는 대안학교이고, 3년간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졸업앨범 또한 절대로 잊을 수 없도록 멋지게 만들고 싶습니다.

저를 비롯한 학교 친구들의 개성과 끼를 충분히 발휘해서 정말 태봉고스러운, 대안학교다운 멋진 졸업앨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언제 한 번 좋은 카메라 한 번 써봐야겠죠?
이제 고3이니까 대학 준비 들어가기 전에 학교에서 가는 제주도 이동학습에 가서 좋은 경치나 실컷 찍어보려고 서포터즈 신청했습니다.

선정될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도전해보세요! ^^

http://www.nikon-image.co.kr/nikon/notice_read.jsp?name=notice&idx=585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수업 과정 중에 한 학기에 한 번씩 '이동학습'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2학년은 이번에 네팔로 해외이동학습을 떠납니다.

세계 10대 가난한 나라인 네팔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대안학교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네팔을 가기 전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왕 네팔을 가는 김에 한국에 있는 네팔 사람들과 소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네팔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촬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촬영한 인터뷰와 가족들에게 하고싶은 말을 담은 영상을 네팔 현지에 있는 실제 가족들에게 전해주는 것이죠.

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일입니까? 이런 아름다운 일을 선생님의 도움으로 태봉고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저희들이 찾아간 곳은 김해에 있는 작은 여성회관이었습니다. 


그곳은 네팔에서 온 목사님이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꿔 계신 곳이었는데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저희들은 거기에 가서 우선 인터뷰를 할 네팔 이주노동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 오래 있어서 한국어를 꽤 잘했지만 그래도 약간 어색함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가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인터뷰할 때 질문한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이름, 나이, 한국에는 왜 왔는지, 네팔에서 고향은 어디인지, 자기 고향의 특성은 무엇인지 등 대답은 어차피 네팔어로 했기 때문에 간단한 질문만 했습니다.

인터뷰를 촬영한 영상은 어차피 한국어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네팔 현지인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저희들이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네팔어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튼 그렇게 해서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진 촬영을 맡아서 인터뷰하는 과정을 상세히 사진으로 찍어두었습니다.


인터뷰는 5명 정도 했고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각자 한국에 온 이유와 가족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다양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모두 촬영된 네팔인 이주노동자 인터뷰 영상은 4월 23일 네팔 이동학습을 떠날 때 함께 가져갑니다. 그리고 네팔 현지에 있는 인터뷰 주인공의 가족들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열심이 일하고 있는 자기 가족의 모습을 영상이라도 남아 볼 수 있는 네팔 가족들의 표정이 기대가 많이 됩니다.

네팔에 있는 가족과 한국에 있는 가족이 영상으로 만날 수 있게 소통의 역할을 해준 저와 태봉고등학교 학생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니다.

아직 네팔은 가지 않은 상태지만 이 때 촬영한 인터뷰 영상이 반드시 네팔 가족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블로그나 기자단, 방송부 등의 활동을 하다보니 카메라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1학기 때,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카메라를 가지고 제주도, 지리산, 태국 등 여행을 갈 때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고, 평소에 사진 찍을 일이 있으면 항상 그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카메라를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영상과 관련된 장래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영상 촬영도 아주 뛰어난 카메라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 카메라는 동영상 촬영 기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고민하다가 아버지의 DSLR카메라가 보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달라고 계속 졸랐습니다. 카메라가 이미 있는데도 또 카메라를 원하는 게 조금은 이상할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제가 동영상 촬영을 원하는 걸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친절하게 동영상 촬영 방법을 가르쳐 주시며 금방 카메라를 주셨습니다.

요즘 독립영화나 지방의 광고는 대부분 DSLR 카메라로 촬영한다고 합니다. 제가 방학 동안 거기에 대해 영화감독님을 만나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DSLR 카메라가 영상 촬영에 적합한 이유
DSLR 카메라는 일단 동영상 화질이 뛰어나고 기존의 영상 촬영 기기들과는 다르게 렌즈를 교환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TV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약간 '뽀샤시한?' 영상은 DSLR로 촬영된 거라고 들었습니다. 확실히 DSLR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무척 아름다운 영상미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DSLR로 동영상을 촬영하면 음향이 매우 좋지 않다고 합니다. 영상에 잡음이 많이 들어가서 DSLR로 영화를 찍을 경우에는 음향을 따로 녹음한다고 합니다.

그런 점이 약간 귀찮기는 하지만 저는 DSLR 카메라는 영상에 대해 무척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찍을 수는 없지만 영상 제작을 연습하기에는 딱인 것 같네요.

카메라 가방도 주셨답니다.^^


그래서 이제 2학년 때에는 아버지가 주신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좀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드라마, 뮤직비디오,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영상 제작 실력을 더 높여서 영상제에도 출품하고 그러다가 운좋게 수상하면 촬영 장비 구입하고~ ㅎㅎ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행복한 상상을 품고 아버지의 카메라를 받았습니다. 원래 사용하던 카메라는 친구가 사고 싶어하더라구요.

이번에 아버지에게 받은 카메라는 앞으로 계속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친척들끼리 외식을 하는 자리에 카메라를 가져가서 사진을 몇 번 찍어보았습니다.

친척들과 맛있는 '염소 고기' 를 먹었어요~


이렇게 아버지가 주신 DSLR 카메라로 계속 사진을 찍어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동영상 촬영에 필요한 포커스 이동(초점 맞추기)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카메라까지 직접 주시니까 뭔가 더 의욕이 생겼습니다. 2학년 때에는 더욱 더 카메라를 잘 활용해보겠습니다. 
이번주 화요일(10월 18일) LTI 수업 시간에는 특별히 사회 선생님과 함께 '창동' 으로 갔습니다.

창동에는 카메라를 들고갔었는데 창동에서 그냥 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간 것 입니다.

먼저 함께 창동에 간 사회 선생님을 따라서 '창동 상인회' 로 갔습니다. 창동 상인회는 창동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창동 거리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을 준비하고 관리하며 창동에서 특별한 축제가 있을 때, 그 축제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선생님과 창동 상인회에 가서 상인회에서 일하시는 '김경년 간사님' 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날 만난 김경년 간사님은 저희 어머니, 아버지와도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그 간사님과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게다가 올해 3월달에도 LTl 수업을 창동 상인회로 갔었기 때문에 창동 상인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창동 상인회를 간 이유는 바로 제가 창동에 관한 글을 적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창동에 관심이 있어서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보려고 창동 상인회에 갔습니다.


김경년 간사님은 제가 창동에 관한 글을 쓸 때 어떤 내용을 쓰면 좋을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앞으로 계속 글을 쓸 예정이지만 그 날 창동에 갔던 이야기를 한 번 써볼까 합니다.

그 날에는 먼저 창동 상인회에서 김경년 간사님께 창동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창동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동네이며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요즘 번화가는 거의 다 청소년을 위한 노래방이나, 당구장, 게임방들 밖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술집처럼 어른들만을 위한 공간도 있습니다.

따라서,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함께 공감을 하며 즐길 수 없는 문화공간이 많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창동은 이런 문제점들을 없애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김경년 간사님은 창동에서 머리를 한 번 깍아보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너무 머리가 길었기에 근처에 있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창동구경에 나섰습니다.

창동은 거의 상가로 이루어져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알았는데, 그렇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평일이라 대부분의 성인들은 직장에 가있는 시간이었고,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있을 시간이기에 사람이 없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창동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상가도 들어가보고, 당구장에도 가서 놀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자 슬슬 배가 고파왔습니다.

이제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같은 학교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 친구들도 역시 창동에 LTI 수업을 나온 것 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창동의 어느 한 공부방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이나 다른 과목들을 가르쳐주는 LTI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공부방에 따라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초등학생들은 무척 많았습니다. 잠시후 공부방에서 제공되는 급식이 나왔습니다.


저도 그냥 친구들과 함께 앉아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헤어졌습니다. 친구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저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 날에는 집에서 특별히 할 일이 있어서 기숙사 선생님께 미리 허락을 맡고, 집에서 자기로 한 것 입니다.

어쨋든 그 날은 정말 창동이라는 곳에 대해 새롭게 많은 것을 알게 된 날입니다. 앞으로 창동에 관한 글을 많이 쓰면서 창동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난 일요일(16일) 아버지 회사에서 주최하는 부마민주항쟁 기념 팔용산 걷기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봉암동으로 갔습니다. 봉암동은 제가 다녔던 중학교가 있었던 동네라서 너무나도 정겨웠습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 팔용산 걷기 대회는 이번이 두번째로 열리는 대회입니다. 작년에도 한 번 참가했었는데 꽤 재미있어서 다시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번 걷기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공짜로 마시는 차도 주고 음식도 주기 때문에 사람이 많아서 일 것 입니다.



게다가 등산을 하면서 운동도 하고, 행사 때 멋진 공연도 볼 수 있으니 참가자들의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작년에는 어머니도 함께 참가했었는데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출장을 가셔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저 이렇게 둘이서만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아버지는 행사를 개최한 회사의 소속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다녔고 저 혼자 팔용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등산을 하려니까 왠지 기분이 묘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등산을 하면서 좋은점도 많이 있었습니다.

멋진 경치가 있을 때 함께 등산하는 사람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등산 속도를 맞춰서 가지 않고 오로지 저의 속도와 체력을 유지하면서 등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유로운 등산을 즐기면서 신나게 사진도 찍고 여유를 만끽하며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 팔용산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팔용산은 제가 알기로 다 걸어봐야 4~5km 정도밖에 안되는 아주 소규모의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때처럼 엄청나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도착해야 밥을 먹고 대피소에서 잠을 잘 수 있다' 라는 급한 생각이 없어서 주변의 경치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팔용산이 지리산만큼 아름다운 산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급했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멋진 경치들을 카메라에 많이 담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팔용산은 지금까지 총 세 번이나 가봤습니다. 하지만 옛날에 갔을 때에는 볼 수 없었던 팔용산의 진정한 모습을 이제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팔용산의 중간 쯤에는 커다란 호수가 하나 있습니다. 그 호수 근처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호수의 한 가운데에서 놀고 있는 한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아름다운 호수 위에 자신의 장난감 배를 띄워서 무선 조종을 하며 놀고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장난감으로 놀고 있는 모습과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호수의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팔용산의 멋진 경치를 사진에 담으면거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반환점에 도착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피리같은 악기로 공연을 하고있었습니다.


팔용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멋진 악기 연주까지 들으니 정말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데 조금씩 배가 고파오가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산의 밑에 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가서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등산을 하고 난 뒤라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음식을 많이 받아 무척 맛있게 먹었습니다. 비록 음식은 두부와 어묵국밖에 없었지만 그 때는 정말 맛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올해 부마민주항쟁 기념 팔용산 걷기 대회도 아주 재미있게 마무리가 되고 사람들도 즐거운 표정으로 모두 돌아갔습니다.

팔용산 걷기 대회를 여는 이유가 부마민주항쟁의 기억을 한번 더 떠올리고 잊지말자는 의미를 가지는데 사실 그것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습니다.

내년부터는 등산이나 공연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부마민주항쟁에 관련된 구첵적인 프로그램이 형성되어 참가자들이 부마민주항쟁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갔던 지리산 등산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겨울에 아버지와 지리산을 갔을 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아버지와 갔을 때에는 13km밖에 걷지 않았고 이번에 학교에서 지리산을 갔을 때에는 30km나 걸었지만 역시 아버지와 지리산을 갔을 때가 훨씬 힘들었던 것 갔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갔을 때에는 날씨가 춥지않았고 식량도 풍부했지만 아버지와 갔을 때에는 겨울이라 눈이 엄청 쌓여있었고 추웠으며, 식량도 없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리산을 조금 쉬엄쉬엄 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짐이 너무 무거웠고, 거리도 너무 길어서 다리와 발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다리와 발에 생기는 근육통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제 주위에 있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힘을 내서 계속 걸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힘든 여정이라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을 수는 없었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멋진 곳은 전부 찍어두었습니다.

지리산은 겨울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지리산이 눈으로 덮혀있어서 그 내면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가을에 오니까 더 멋졌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얼어서 볼 수 없었던 지리산의 흐르는 시냇물들이 정말 멋졌던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큰 바위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볼 때면 피곤에 찌든 제 몸과 마음도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아직은 초가을이라 단풍이 들지않은 초록빛의 나뭇잎들이 왕성하게 자라있는 나무들 사이로 걷다보니 제 눈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눈때문에 미끌어질 것 같아서 올라가보지 못했던 큰 바위에 올라서보니 지리산의 넓은 모습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그 멋진 모습에 저는 힘든 것도 잊어버리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카메라를 들고오지 않아서 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제가 찍은 사진만 사용할 것 입니다. 


겨울산의 찬공기가 아닌 지리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닌 지리산의 멋진 산길을 걸으면서 마치 제 몸의 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난생 처음 제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제 몸의 피가 온 몸을 돌면서 혈액순환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만큼 지리산은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작년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저에게 전혀 다른 감동을 남겨주었습니다.

확실히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경치를 제가 직접 제 카메라고 찍고, 글을 쓰는데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사용하면 그 때가 더욱 잘 생각나서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여행이나 등산을 가면 직접 사진을 찍는게 제일 좋다고 하셨는데 이제야 아버지의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행이나 등산을 가게된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제가 직접 사진을 찍고 그 멋진 풍경을 기억할 것 입니다.
약 1주일간 학교에서 가는 제주도 도보여행으로 인해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7박 8일간 제주도의 여러곳을 걸으면서 학생들이 자아 성찰을 하는게 학교의 목표였습니다.

운동화와 입을 옷, 우비 등 여러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모조리 챙겨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기위해 부산으로 갔습니다.

항구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태봉고등학교 사람들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제주도에는 저를 포함한 1학년들만 가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학생의 가족들이 배웅을 하기 위해 항구까지 왔기때문입니다. 물론 저의 어머니도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바쁘셔서 오시지 못했지만 어머니라도 와주셔서 무척 기뻤습니다.

어머니는 제주도에 가서 고생할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며 선크림과 용돈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가서 사진을 많이 찍으라는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물론 저는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필요한 사진을 찍기위해 카메라를 들고갔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3일째 정도 되면 사진 찍는게 귀찮아져서 사진을 찍지 않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도 사진을 미리 많이 찍어보았습니다. 나중에 되면 어차피 사진을 많이 못찍을 것 같아서 그냥 카메라의 성능을 시험하는 겸해서 여러가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거의 다 친구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저는 그냥 찍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약간의 연출을 겸비해서 조금 특별하게 찍어보았습니다.

먼저 제일 많이 하는 점프샷을 찍어보았습니다. 타이밍 맞추는게 꽤나 어려웠지만 두 세번 찍다보니 요령이 생겨서 쉽게 점프샷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점프샷 말고도 친구들을 모아서 재미있는 사진을 마음껏 찍어보았습니다. 만화 파워레인져의 모습을 따라한 포
즈도 취해보고 단체로 엎드려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친구들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사진 찍는 것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원하는 사진이 찍히면 왠지 모르게 엄청난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엽기적인 사진을 찍으면서도 항상 즐거워하는 우리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진정한 청춘이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이것도 연출된 사진입니다. 절대 태봉고는 체벌하지 않습니다.


그런 청춘의 다짐을 하고 우리는 7박 8일에서 일정이 변경된 6박 7일의 긴 제주도 여정을 떠나기 위해 제주도로 가는 배를 기다렸습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각자의 다짐을 하면서 점심밥을 김밥으로 먹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떠나는 제주도 도보여행이 매우 기대가 되었습니다.

6박7일동안 제주도에 가면 일주일동안 계속 걷기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뿐만 아니라 많을 생각을 하고 학교의 목적대로 정말 자아 성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 제주도 도보여행을 무사히 마친다면 저는 많이 바뀌어있을 것 입니다. 블로그를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제주도 도보여행을 다녀온 상태이지만 마음만은 아직 제주도 도보여행 출발전입니다.

그렇기에 제주도에 다녀오고 나서 느낀점을 적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특별히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제주도 여행을 가기 전의 설렘과 긴장감을 블로그에 올려보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학교의 중간고사가 끝나고 마음이 좀 편해져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자마자 바로 방송국으로 LTI를 나갔습니다.

오늘은 다행이도 학교의 한 선생님이 차를 태워주셔서 버스를 힘들게 타지 않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방송국은 우리학교와 좀 심하게 멀어서 가는데 오래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은 아쉽게도 전우석 PD님이 매우 바쁘셔서 PD님의 수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저랑 같이 LTI를 나간 세정이라는 친구의 멘토인 김수미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바쁜 PD님들이 계시지 않는 2층으로 내려가 '여직원 휴게실' 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특이하게도 방음이 되고 또 건너편을 전혀 볼 수 없는 창문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휴게실 옆방이 바로 라디오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창문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방송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그럴 수 밖에 없겠죠.

정말 방송국은 작은 것 이라도 방송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면 엄청나게 꼼꼼히 체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김수미 작가님은 저번 LTI때에 우리에게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그 숙제는 바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시간을 나눠서 글을 써보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글을 써왔습니다. 김수미 작가님은 각자의 글을 보고 문제점을 고쳐주시면서 글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습니다.

PD라는 장래희망을 가지면서도 글을 쓰는 것 배워놓는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작가님의 수업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렇게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책 한 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책은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보통 책들과는 다르게 희곡 대본이었습니다. 그 책을 보고 나중에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그 책은 아주 고전적인 것이라 내용이 좀 많이 어려운 것 같았습니다. 중간중간에 내용의 생략도 많고 여러가지로 읽기 힘든 책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짧아서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업을 다 마치고 작가님은 우리들에게 무려 제티라는 음료수를 사주셨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피곤할 때 마시는 달콤한 초코 음료의 맛이란 이미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일하시고 계시는 전우석 PD님께 인사를 드린 뒤 시간이 좀 남아서 방송국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그다지 볼 건 없었지만 신기한 것은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궁금증을 너무나도 자극했던 출입금지구역도 있었고 얼굴을 내밀수도 있는 조형물로 있었습니다.


사실 그냥 시간 때우면서 블로그에 올리 사진이나 찍으려고 돌아다닌 것 입니다. 제가 전우석 PD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열심히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를 봤었는데 전PD님과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뭔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책을 한 권 받았으니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이제 슬슬 블로거 팸투어 마지막 기행문을 써볼까 합니다. 팸투어에 가면서 어머니가 카메라를 주시며 사진을 많이 찍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저도 많이 찍었지만 다른 블로거 분들은 정말 쉬지도 않으시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말 여행을 하는 동안에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 놓은 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진 찍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에도 서로 자기 카메라에 사진을 담기위해서 무척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렇게 카메라를 많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다양하고 많은 카메라들의 사진찍는 소리가 항상 들렸던 것 같습니다.



역시 파워블로거들은 뭔가가 달랐습니다. 카메라도 무척 비싸보이는 것들만 있었는데 무언가 보이기만 하면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저도 그 분들을 따라서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어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진도 계속 찍다보면 지치게 되고 또 귀찮아지기까지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는 블로거님들


그런데도 사진을 계속 찍으시는 블로거님들을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저에게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최대한 가까이에서 찍기 위해 일부런 가기 힘든 곳에 가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도 직접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글과 함께 올리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꼭 비싼 것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카메라로 화질이 선명하고 깨끗한 사진을 찍는다면 좋은 점이 참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카메라로 찍느냐' 가 아니라 '어떤 것을 찍느냐' 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그냥 허공을 찍은 것과 화질이 좋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을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면 역시 화질은 안좋지만 아름다운 것을 찍은 것이 더 좋은 사진으로 판단됩니다.

똑같은 것을 찍었을 때에는 물론 화질이 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더 좋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질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사진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카메라로 찍은 것

내 카메라고 찍은 것


그렇기에 저는 꼭 화질이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도 사진만 잘 찍히고 블로그에 올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사진 찍는 연습을 많이 해서 더 많고 좋은 사진들을 많이 찍어서 블로그에 올릴 계획입니다. 그냥 글만 읽는 것보다 사진이 함께 있는게 읽는 사람에게 더 좋으니까요.

블로그를 하다보니 인터뷰도 해봅니다

며칠 전에 부산일보에서 저를 인터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터뷰의 주제는 블로그였습니다. 아버지는 편안하게 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인터뷰에 대해서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긴장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냥 기자님께서 물어보시는 것에 대해 답변만 해드리면 되는 것 이었습니다.

게다가 인터뷰를 하러 직접 기자님들이 우리 집으로 오신다고 해서 저에게서 긴장이라는 감정은 싹 사라졌습니다.

저는 인터뷰 당일 집안 청소부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에 사람들이 온다는 최소한의 청소는 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드디어 기자님들이 오셨습니다. 인터뷰를 할 때 물어보시는 기자님과 사진을 찍는 기자님 이렇게 두 분이 오셨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컴퓨터 옆에 앉아서 제 블로그 창을 띄어놓고 사진을 몇 차례 찍었습니다.

부산일보 기자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입니다.


저는 최대한 환하게 웃었습니다. 너무 환하게 웃어서 사진이 약간 우습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기자님들은 사진이 잘 나온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잠시후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처음해보는 인터뷰였기에 저는 최대한 생각을 해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드렸습니다.

질문은 20개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는 꽤 길었습니다. 인터뷰는 제가 지금까지 블로그를 하면서 있었던 일이나 제가 적었던 글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블로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고 앞으로 제가 어떻게 블로그를 운영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지금처럼만 블로그를 운영할 것 입니다. 기자님들도 인터뷰를 끝내고 가시면서 지금처럼 블로그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