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EBS에 직업체험을 갔을 때 만난 김현우 PD께서 내주신 숙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지식채널e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의 짧은 영상 기획안을 만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포스팅입니다.
http://kimty.tistory.com/515 

여튼 그 때 제가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만들면서 주제로 잡은 것은 미국의 농구 영웅 '마이클 조던'이라는 사람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농구를 잘했던 선수만이 아니라 '농구'하면 마이클 조던이 떠오를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가졌었고, NBA의 수많은 명장면과 명언들 그리고 미국의 진정한 영웅이라 불릴만큼의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마이클 조던의 인생에 대해서 조사해보고, 영상으로 그것들은 담아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저처럼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마이클 조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싶다고 생각해볼 것입니다.

- 농구 황제 - 
마이클 조던은 어린 시절, 자신의 형인 래리 조던이 농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진 운동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는 학창시절, 야구를 하다가 우연히 농구에 재능을 보이면서 1984년, 미국의 프로농구 시카고 불스에 농구 선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마이클 조던은 어린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형의 반만큼이라도 농구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형의 등번호 45번의 절반인 23번을 등에 달고 나옵니다.

그가 NBA에 데뷔한 첫 해, 시즌 평균 27.8득점이라는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농구계에 등장합니다.

그가 데뷔하고 자신의 팀 시카고 불스를 3년 연속이나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농구계에서 황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청소년 강도들에 의해 조던의 아버지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마이클 조던의 그 일의 충격 때문이었는지 갑자스러운 은퇴를 선언합니다.

조던의 아버지가 생전에 바랐던 것은 바로 야구였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바램에 부흥하기라도 하듯 그는 야구 선수로 데뷔합니다.

그는 메이저리그로 데뷔하여 인터뷰에서
"나는 도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농구에서는 모든 것을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도전할 것이 없다. 그래서 이젠 야구에 도전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하며 승승장구를 기대하지만 야구란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힘든 길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는 야구에서 큰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부진한 성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인 트리플A로 그리고 더블A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마침 마이클 조던이 속한 야구팀이 파업을 하고있는 상태라 그것은 계기로 조던은 야구에서도 결국 은퇴를 하게됩니다.

그는 농구를 그리워했고, 예전에 자신과 함께 뛰었던 시카고 불스의 동료들과 다시 농구 연습을 시작하면서 조던이 코트를 떠났고 약 1년이 지난 1995년(제가 태어난 해죠.ㅎㅎ) 농구계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가 농구계에 컴백했을 때 했던 I'm back. 이라는 말이 유명해질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농구 황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향샹된 실력으로 NBA를 주름잡았고 다시 농구 황제라는 칭호를 탈환합니다.

그는 또다시 자신의 팀 시카고 불스를 3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고 6번째 우승을 하게 되었을 때 손가락 6개를 치켜들며 농구 역사상 최고의 기록들을 남깁니다.

그는 단순히 농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수많은 농구 팬들과 농구 관계자들 농구 선수들이 존경했던 인물이며 흑인임에도 미국의 영웅이라 불렸습니다.


그는 오직 실력 하나로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 진정한 농구 황제였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이렇게 실력으로 성공한 아이콘으로 등극했지만 사실은 그도 야구를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실패를 경험했었고, 그런 실패들은 발판으로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말은 실제 마이클 조던이 했던
"나는 지금까지 9000번도 넘게 슛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나는 300번도 넘게 패배했다.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었을 때, 나는 26번이나 클러치 슛을 놓쳤다. 나는 내 인생에서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라는 명언에서 계속되는 실패의 경험이 자신을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를 가진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여 사용했습니다.

제가 이 영상으로 말하고 싶은 메세지가 바로 저 말에 담겨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자신이 그토록 하고싶었던구에서 실패했지만 결국 자신이 해왔던 농구가 자신의 적성임을 깨닫고 농구계에서 성공한 이야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실패를 경험합니다. 
거듭되는 실패를 경험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갑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실패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에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성질 급한 한국인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싶습니다.

물론 저도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지금까지 영상 공모전에서 많이 떨어져도 보았고 당장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일도 자주 겪어봅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보단 훨씬 잘했네' 이런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천재의 적성'을 만들고 나서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충고와 저의 생각을 정리하여 포스팅하겠습니다.)

저번에 신문을 보다가 프로야구와 프로배구에서 뒷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서는 제가 즐겨 보는 프로농구에서도 승부조작의 의혹이 있다고 했습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참으로 안타까운 기사였습니다.

제가 본 기사에서는 작년에 발생한 프로축구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을 주도한 김모씨가 검찰 수사에서 "프로농구에서도 3점슛과 관련된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라고 진술했답니다.

이로 인하여 프로농구의 승부조작 의혹이 생겼고, 이에 남자프로농구 주관단체(KBL)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승부조작에 있어서 미리 교육을 했었고 신중하게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아직은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이 아니라 소문일 뿐이니 프로농구에서 승부조작을 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 프로농구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한 선수는 농구는 "종목 특성상 조작이 쉽지 않다" 라고 했고 한 편으로는 "만약 조작이 존재했다면 같은 선수로서 실망감이 클 것 같다" 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농구라는 스포츠가 워낙 경기가 빨리 진행되고 선수 교체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승부조작이 많이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농구를 많이 좋아하고, 또 농구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승부조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승부조작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정말 농구에 대해서 큰 실망을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저에게 정말 큰 충격일 것입니다.

농구 뿐만이 아니라 어느 스포츠에서도 승부조작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에게 승부조작이 일어났다면 그건 이미 스포츠가 아닙니다!!!

연합뉴스에 있는 사진입니다.


그건 농구가 아니라도 어떤 스포츠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부조작을 위해 선수에게 돈을 주는 사람도 나쁘지만 그 돈을 받고 경기를 져주는 선수가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경기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스포츠 정신이죠. 돈때문에 스포츠맨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한다는 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돈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돈보다 야구선수든 배구선수든 농구선수든 그 선수로서 경기를 다해 임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쨋든 프로농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에서 승부조작 의혹은 물론 승부조작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한 고등학생으로서 농구가 영원히 '깨끗한 스포츠' 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제 농구공입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개학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네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어쨌든 학교가 개학하니까 확실히 모든게 새로웠습니다. 학교 시설도 조금씩 바뀌고 친구들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어 있었습니다.

물론 제 모습도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태국에 갔다온 뒤로 제가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학교에 오니까 역시 제일 반가웠던 것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었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 금방 정상적인 학교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노래를 하고싶은 친구들은 노래연습을 하고 밴드를 하고싶으면 밴드부를 하고, 책을 읽고싶은 학생들은 책을 보며 공부를 하고싶은 학생들은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기가 하고싶은 활동을 해나갔고, 각자의 꿈에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개학을 하자마자 바로 방송부 활동을 했습니다.2학기 때부터는 방송부에서 한 달에 한 번 학교 영상을 제작하기 때문에 매우 바빴습니다.

저는 방송부에서 촬영을 맡았는데 아직 영상편집이 미숙해서 아쉽게도 편집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촬영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의 일주일에 걸쳐 모든 촬영을 끝내고 영상 한 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영상을 다 만들고나니 뿌듯한 마음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방송부말고는 특별히 하는게 없었습니다. 만날 촬영만 하고 편집때문에 컴퓨터만 보고있으니까 일종의 스트레스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뭔가를 찾던 도중 농구라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농구는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스포츠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학교가 사용하는 농구공


농구 동아리의 회장을 제가 맡고 있었고 시간이 나면 친구들리 모여서 농구를 하며 많이 놀았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날 방송부 일만 하고, 공부만 하면 뭐합니까? 학생이라면 역시 체력이 있어야겠죠. 그래서 선택한게 농구라는 운동이었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농구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농구를 좋아하는 학생이 많이 없었기에 농구를 할. 친구들을 모으는게 항상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농구를 할 때 농구를 할 친구들을 모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농구를 아예 학교의 수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방과후 수업' 이라는게 있습니다. 축구, 요리, 영어, 작곡, 밴드연주 등... 여러가지 방과후 수업있었습니다. 하지만 농구 방과후 수업은 없었습니다.

우리학교의 농구 골대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냥 체육 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농구 방과후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뱡과후 신청서 몇 개를 작성하고, 농구부 멤버들끼리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 절차들을 모두 거쳐서 드디어 농구 방과후 수업이 만들어졌습니다. 수업은 일주일에 총 두시간을 하기로 했고 모두 5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기로 했습니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운동을 하려고 했으나 매일 귀찮아서 미루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과후가 시작되는 다음주부터는 그렇지 않을 것 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인 농구로 운동을 하고, 또 꼭 해야하는 방과후 수업이기 때문에 꼭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생겨서 빼먹을 일도 없을 것 입니다.

앞으로 2학기 생활이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방송부도 시작하고 농구부도 제대로 활성화되면서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예전에 '쿵푸덩크'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본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더군요. 저는 꽤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래서 이번에 그냥 쿵푸덩크를 한 번 더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친구의 도움으로 아이팟에 쿵푸덩크를 담아서 봤습니다. 제가 예전에 쿵푸덩크를 봤을 때에는 농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본다면 확실히 뭔가 다를 것 같았습니다.

영화는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농구를 재미있게 하고 있는 저에게는 더욱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소림축구라는 영화를 모방한 것 같은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아마도 쿵푸덩크를 보신 분들 중에서 재미없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소림축구와 같은 재미를 기대하고 보신 분들일 것 입니다.

이 영화를 소림축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축구와 농구는 천지차이의 스포츠입니다. 축구는 발로 하는 것이고 농구는 손으로 하는 것 입니다. 소림축구와 비교하지 않고 쿵푸덩크를 본다면 쿵푸덩크라는 영화는 엄청 성공한 영화가 되었을 것 입니다.  

 영화는 주인공인 '팡시지에' 가 갓난아기인체로 농구장 옆에 버려져 있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갓난아기인 팡시지에를 발견한 한 거지는 무술학교의 한 노인에게 데려다 줍니다.


그 노인은 팡시지에를 키워주며 여러가지 무술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다가 그 노인은 죽고 팡시지에는 삐뚤어지게 됩니다.

어느날은 클럽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깡패들과 시비가 붙습니다. 평생을 무술학교에서 자란 팡시지에는 자신의 화려한 쿵푸실력으로 그 깡패들을 무찌르고 클럽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다음날 그 클럽의 회장이 무술학교의 교장에게 엄청난 양의 금을 주면서 클럽에서 난동부린 범인을 죽도록 패서 쫒아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팡시지에는 무술학교에서 쫒겨나고 길거리를 방황하던 중 자신이 난동을 부린 클럽으로 자신을 끌어들인 아저씨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 아저씨는 팡시지에의 쿵푸실력을 보고 축구를 권합니다.

농구를 권한 아저씨(왼쪽)와 팡시지에(오른쪽)

팡시지에는 축구는 할 줄 모른다며 거절합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는 축구공을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보라고 합니다.

팡시지에는 간단하게 쿵푸실력을 발휘해서 축구공을 정확하게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그 때부터 팡시지에는 그 아저씨의 도움으로 농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팡시지에는 경기에 나가서 3점슛을 계속 성공시킵니다. 하지만 팡시지에의 특기는 점프입니다. 무술학교에서 높이 뛰는 기술을 배웠기때문에 팡시지에는 점프는 무척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팡시지에는 얼떨결에 덩크슛을 멋지게 성공합니다. 그 때부터 팡시지에는 덩크슛을 주특기로 하여 농구에서 꽤 유명해지고 환상적인 덩크슛들을 성공시키며 관중들의 환호를 받습니다.


결국에는 대회에서 팡시지에의 팀은 우승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팡시지에를 어릴 때 버린 친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오고 아버지를 만나게됩니다.

팡시지에의 아버지는 아시아최고의 부자였고 팡시지에는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기위해 런던으로 가야했습니다. 팡시지에를 농구선수로 키워준 아저씨와 팡시지에는 눈물의 이별을 합니다.

하지만 팡시지에는 부자가 되기보다는 그냥 길바닥에서 농구나 하는게 좋다고 생각해서 다시 돌아오고 다시금 아저씨와 만나게 되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스토리도 꽤 탄탄하고 화려한 농구장면도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그 영화는 저의 가슴을 뛰게 해주었습니다.

조금은 유치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유치하기에 그 영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저는 축구보다 농구를 더 좋아합니다. 친구의 권유로 농구를 해봤는데 꽤 재미있어서 계속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6000원이라는 싼 값으로 농구공을 한 개 샀습니다.

농구공이 6000원이면 무척 싼 값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농구공은 금방 가죽이 떨어져나갔습니다.

농구를 하는데에는 문제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 농구공으로 집앞에 있는 농구장에서 농구연습을 좀 하니까 실력도 꽤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번에 발을 다친 이후로 농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체육시간에도 그냥 공을 들고 던지기만 했을 뿐 다른 아이들처럼 뛸 수 가 없었습니다.

정말 다른 아이들이 농구를 하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까 농구가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농구경기를 봤습니다.

역시 선수들은 저와 실력 자체가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인터넷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의 농구 결승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였는데 처음에 우리나라가 계속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날 쯤에 우리나라가 공격을 계속 성공해서 결국 경기가 끝나는 동시에 거의 기적같이 90:90 동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연장에 가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치다가 마지막에는 100:102의 미묘한 점수차로 우리나라가 승리를 하게됩니다.

저는 그 경기를 보고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우리 한국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에 임하여 결국에는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결승전에서도 우리나라는 중국과 맞붙었습니다. 역시 우리나라는 초반에 계속 중국에 밀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 종료직전에 우리나라는 또 기적같이 점수차를 계속 좁혀나갑니다. 저는 2002년때와 같이 멋진 역전승을 할 것이라 기대를 잔뜩 하고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결국 71:77의 6점차로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경기했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발을 다쳐서 농구를 못하는 동안 집에서 멋진 농구경기들과 또 친구들이 농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농구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농구가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며 힘들 때 휴식과 스트레스 해소로 농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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