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수요일(6월 25일)은 라온아띠 면접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번에 신청했던 중장기 해외봉사 프로그램 라온아띠에 다행히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해서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면접은 서울에서 했는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시간대를 오후 4시 30분으로 배치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방에 살면 올라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했나 봅니다.

라온아띠 면접은 특이하게도 '카페형 면접'을 합니다. 사무적인 공간에서 딱딱하게 면접을 하면 면접하는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카페에서 편하게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이화여대 옆에 있는 '체화당'이라는 카페에서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는데, 지도로 찾아보니 완전 무슨 동네의 골목 구석에 숨어있는 카페라서 찾기가 엄청나게 힘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길을 잃을까봐 혹시나 해서 1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근처에 있는 이대부고 버스정류장부터 채화당까지 '찾아오시는 길' 종이가 친절하게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하도 곳곳에 찾아오는 길 종이가 있어서 아주 쉽게 카페 채화당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시간이나 일찍 왔던터라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여유롭게 면접 준비를 하면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4시가 되고 미리 와서 대기하라고 명시되어 있었기에 면접장소로 향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카페 채화당은 생각보다 큰 건물이었습니다. 


채화당 안으로 들어가니 면접을 기다리는 다른 분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면접을 보는 25일 5조는 지방에서 오신 분들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또 경상도 분들만 계시더군요.

제가 나이가 제일 어려서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20살이 해외봉사에 신청했다고 하니 다들 조금씩 신기하다고 하셨습니다. 여튼 면접을 하기 전부터 꽤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개인이 들고 온 컵으로 음료를 먹으며 이미 라온아띠를 다녀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라온아띠에 가려고 했던 이유, 가서 느낀 것, 그리고 면접에 가서 솔직하게 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준비한 게임? 같은 것도 했는데,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주사위를 굴려 선택된 카드에 적힌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이었는데, '결혼하고 싶은 나이는?', '최근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자신의 장점 세 가지' 등 자신이 살아온 배경이나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 게임을 약 30분간 하고나니 약간 긴장이 풀렸습니다. 조금 쉬다가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카페 채화당은 지하에도 큰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면접은 A, B, C로 조를 나눠 각 조마다 세 명씩 면접관 세 분과 3대3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에서는 기본적으로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물어보고, 자기소개서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면접에서 나온 세부적인 질문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튼 면접은 면접관이 일방적으로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딱딱한 형식이라기 보다는 편하게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습니다.

면접관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것저것 배운 것도 많았고, 여러 가지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면접관님들은 비록 떨어져도 수준이 떨어져서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자책하지 말고, 만약 합격했다고 해도 자신이 남들보다 대단하기에 뽑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라온아띠는 남들보다 대단한 사람을 뽑는 것이 라온아띠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뭐 합격하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이미 면접을 통해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

면접 일정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라온아띠 간사님이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셨습니다. 현수막으로 만든 재활용 가방이었습니다.

그 선물들을 나눠주시면서 비록 라온아띠에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평소에도 항상 라온아띠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진짜 라온아띠라고 하셨습니다.


내 영상 인생에서 나를 성장하게 해준 특별한 경험

저번에 학교에서 찍은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토끼와 거북이'라는 작품입니다. 제가 다니는 태봉고등하교의 철학이자 상징이기도 한 토끼와 거북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만들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기 몇 일 전,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마을 공동체 UCC 공모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 공동체와 이웃간의 정, 화합, 공동체 의식 함양 이런 것들을 주제로 영상을 제작하여 공모하는 영상 공모전이었습니다.

상금도 꽤 크고, 상패에다가 경쟁률도 적을 것 같아서 저와 윤이, 그리고 소열이는 함께 공모전에 제출할 영상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을 공동체, 공동체 의식같은 주제가 우리 태봉고등학교의 철학과 너무나도 딱 맞아 떨어지기에 저희들에게 매우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시나리오 기획 회의를 하던 중, 저희 태봉고의 철학과 공모전의 주제를 잘 이용하여 시선을 끌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이 화합을 상징하는 '토끼와 거북이'였습니다. 실제 동화에서는 거북이가 자는 토끼를 지나쳐서 달리기 경주를 이기지만 태봉고가 지향하는 모습은 자는 토끼를 깨워 함께 가는 거북이입니다.

즉, 경쟁이 아닌 화합을 길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태봉고등학교의 공동체적 의식 '함께 가자 우리'의 표본이 '토끼와 거북이' 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상징적인 토끼와 거북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우리는 과감히 동화의 내용을 뒤바꾸기로 했습니다. 시나리오 초안이 나오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공모전 마감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이라 캐스팅이나 연출적인 부분에 있어서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1차 촬영을 마친 후, 제가 촬영을 하는동안 나머지 친구들은 편집을 하는식의 효윻적인 작업 방식을 택했습니다.

영상의 내용은 경쟁의 상징인 두 동물, 토끼와 거북이가 이웃간의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게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토끼와 거북은 갈등해결을 위해 달리기 경주를 하게되고, 발이 빠른 토끼는 초반에 엄청난 속도로 거북이를 따돌립니다.

너무 여유로웠던 토끼는 근처 그늘 밑에서 잠시 낮잠에 빠집니다. 자고있는 토끼를 발견한 거북이는 함께 가기위해 토끼를 깨웁니다.

잠에서 깨고, 놀란 토끼는 다시 전속력으로 뛰어 결승점까지 도착합니다.  하지만 거북이에게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에 결승점 나무를 터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토끼는 거북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거북이가 승리하게 됩니다. 이 모든 상황은 토끼가 승부조작 의혹으로 경찰에서 심문을 받고있는 설정에서 이야기됩니다.

굳이 그런 무거운 설정을 사용한 것은 항상 경쟁과 승부에만 집착하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되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였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장치들과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하고, 촬영 중에 몇 번이나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면서 완성한 작품 '토끼와 거북이'를 공모전에 제출했습니다.



공모전 발표는 조금 미뤄져서 약 일주일 후에 수상작이 발표되었습니다.  공모전에 올라간 40여작 중에서 9작품에게만 상을 주는데, 저희 토끼와 거북이는 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태봉고에서 영상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외부에서 해보는 영상 공모전 수상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 공부해 온 영상의 성과가 빛을 발하여 보람이 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지만 이번에 상을 받았다고 해서 너무 자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에게는 젋은 날의 기회가 많이 남았고, 저는 그 미래를 바라보며 더욱 더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습하고 항상 기본에 충실하며 더 나은 길을 지향하며 더욱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김태윤이 되겠습니다. 

 

원래 이맘때쯤이면 태봉고등학교에서는 이동학습을 시행합니다. 1학년들은 제주도로, 2학년들은 네팔로 해외이동학습을 떠나게 되죠.


그렇다면 제가 속한 3학년들은 무얼 할까요?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공부만 할까요?
아니죠. 3학년들 또한 저희 학교의 취지에 맞게 학교에서가 아니라 이동학습을 떠납니다.

하지만 1, 2학년들처럼 전교생이 다함께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각 학생마다 자신이 장래에 하고싶은 직업에 관련된 직종으로 직업체험을 떠납니다.

이미 4월달에 각자 정해놓은 인턴쉽 장소로 4월 26일(금)부터 3학년 학생들은 뿔뿔히 흩어집니다. 저는 방송에 관련된 직종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EBS 방송국에 직업체험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2년 동안이나 함께 영상을 배워 온 친구와 함께 주말에 집에서 쉬다가 4월 29일(일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에 오면 먼저 잠을 잘 곳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마침 작년에 태봉고를 졸업한 친한 선배의 집에서 숙박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함께 서울을 올라온 친구 또한 아는 선배의 집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기나긴 직업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직업체험 첫 날(30일)부터 저희들은 EBS 방송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EBS에는 당연히 사전에 인턴십을 나간다고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고, 작년에 저희 태봉고에 '학교의 고백'이라는 다큐를 촬영하러 오신 김현우 PD님께서 멘토를 맡아주기로 하셨습니다.


첫날에는 저와 함께 올라온 두명과 학생과 첫날에만 EBS를 잠깐 들르기로 한 또다른 두 명의 친구, 이렇게 총 4명의 태봉고 학생들이 EBS에서 직업체험을 했습니다.

첫날의 일정은 EBS 방송국을 견학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바쁘셔서 세세한 작업 과정을 보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 출입증을 받은 뒤, PD님의 출입 권한으로 방송국의 이곳저곳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실제로 녹화를 하는 스튜디오나 녹음실, 사무실 등 방송국의 여러가지 모습을 다양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은 이런 일을 하는 곳이구나.',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사람들은 역시 항상 바쁘시구나.'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제가 방송 업계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곳을 견학하다가 실제로 녹화가 진행되고 있는 스튜디오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곳에서는 우리 학생들이 많이 접하는 EBS 강의를 녹화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닐 때 공부하면서 참 많이 보고, 또 고3인 지금까지도 영어공부를 하면서 계속 보고있는 EBS 강의가 녹화되는 과정을 보고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EBS 강의처럼 수업 형태의 촬영은 꽤 간단할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것도 절대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EBS 강사가 수업 내용을 수시로 머릿속에 구상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수업을 하고, 조정실 안에서는 카메라의 앵글과 오디오 등 여러가지를 컨트롤하면서 녹화를 합니다.


방송국의 촬영 수준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촬영들에 비해 쉬운 방식의 촬영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점차 익숙해져가면서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배우려는 의지를 단단히 했습니다.


영상을 편집하는 편집실도 한 번 가봤는데, 영상을 편집하는 장비와 기술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우선 EBS 방송국의 전체 컴퓨터와 연동되는 서버에서 영상 자료를 받아서 편집하여 보내는 형식에 감탄을 하였고, 무엇보다도 3D 그래픽 제작실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3D 안경을 쓰고 보는 그 3D 영상을 제작하는 곳을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장비 하나의 가격이 억대 단위가 넘어간다니... 이거 왠만해선 작업실에 들어오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방송국 견학을 마치고 김현우 PD님과의 대화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저희들이 방송에 관련되어 진로를 정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한지 여쭤보았습니다.

PD님은 자신이 방송국 PD가 된 경험과 배경을 토대로 아주 친절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방송에 관련되어 영상을 잘 만들고 싶다면 가장 기본적으로 영상을 많이 보고, 영상을 많이 만들어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상에 있어서 타고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노력을 통해 충분히 그 감각을 따라잡을 수 있으며, 자신의 노력에 따라 자신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대학과 학과에 대한 질문을 드리자 PD님은 약간 고민하시더니 방송 직종을 가려고 한다면 학과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너무 구체적인 형태의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항상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를 꾸준히 공부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PD님과 그렇게 알찬 대화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EBS의 학교 다큐 3기 팀의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께 저는 시나리오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법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작가님들 중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시나리오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 회의에서 좋은 내용들을 다뤄야 하는데, 이런 기획 회의에서는 'thinking aloud'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thinking aloud'란 단어 뜻 그대로 큰소리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외쳐 표출하는 것이 좋은 스토리의 밑거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스토리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기록을 해놓는 편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저의 아이디어를 말해주고 충고를 받는 식의 기획 회의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EBS에서 작가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획은 절대로 혼자 해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잘 조율하여 하나의 좋은 스토리,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획 회의입니다.

나중에는 작가님들이 직접 기획 회의를 하는 곳에 찾아가서 회의에 참가해보기도 했습니다. 작가님들은 생각나는 것들을 바로바로 말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앞으로 저도 영상을 제작하거나 시나리오를 적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완성도있는 스토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PD님과 작가님들과의 대화시간 후에 다른 PD님께 방송과 영상에 관련된 짧막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대충 옛날에 배웠던 내용들이라 흥미가 많이 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큰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PD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영상이든 그 영상을 시청자들이 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영상 안에 그려낸 영상의 전체적인 내용과 메세지를 한 번에 나타내는 그 하나의 명장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visualizing'입니다.

정말 영상이라는 매체는 스토리 기획부터 촬영, 편집, 메세지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상의 매력이 바로 제가 영상 제작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직업 체험 첫날부터 여러가지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느끼고, 배워갈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직업 체험 일주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저번에 서울로 올라갔을 때 보려고 가져갔었던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바로 '사람을 얻는 기술' 이라는 아주 조그만 책이었습니다.

그냥 '버스에서 잠이 않오면 책이나 읽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제 방 구석에 있는 책을 하나 찾았는데 그 책이 바로 사람을 얻는 기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동안 읽어보려고 했지만 심야버스라 불을 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을 때 약 10분정도 버스에 불이 켜져있었는데 화장실을 다녀와서 잠깐 그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장 한장마다 정말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은 문구들밖에 없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제목 처럼 말그대로 사람을 얻는 기술 적어놓은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명언들은 모두 저에게 충분히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았습니다. 결국 버스에 불이 꺼져서 계속 읽지는 못했지만 서울에 도착한 뒤, 카페에 들어가서 다시 책을 펼쳤습니다. 

역시 책은 아무리 읽어도 계속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계속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책의 내용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몇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1. 눈에 띄는 82가지의 제목&기술들

책에는 어떤 상대도 내 사람으로 만드는 지혜가 총 82개나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목차에도 현실성이 보이는 지혜의 기술을 알려주는 제목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만남의 동선을 그려라', 출신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라', '함께 울고 웃어라', 말은 펜보다 강하다', '안 가본 길을 가보라', '칭찬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등... 정말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어떤 글이든 제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네요. 책의 제목부터 뭔가 인간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은 제목이라 제가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2. 예를 들어 설명하여 이해하기 쉬웠다

책의 내용에는 제목처럼 만남의 동선을 그려라! 라고 막연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이 책을 지은 '레일 라운즈' 라는 사람이 직접 자신이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왜 만남의 동선을 그려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줍니다.

책에서는 한 마라톤 선수가 다쳐서 마라톤을 연습을 하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만 있었는데 병실에 누워있는 그 동안 계속해서 마라톤을 하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합니다.

병실에 누워 마라톤 코스를 달리며 코스 주변의 풍경을 보았고, 소리를 들었으며, 힘들어서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까지 상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마라톤 선수는 연습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마라톤을 하는 상상만 했을 뿐인데 기록은 별로 좋지않았지만 끝까지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합니다.

또한 과학자들이 달에 우주선을 보낼 때에도 수많은 계산과 우주선 발사 직전까지도 계속 시뮬레이션을 검토하여 정확하게 우주선을 발사시킨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기 전 그 사람과 만나서 나눌 이야기들, 함께 갈 곳들... 등을 미리 예상해보고 분위기를 익힌 뒤에 사람과 마주하면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강조하는 것이죠.

3. 정확한 대안을 제시해 준다. 

책에서는 우리들이 지금까지 대인관계를 맺을 때 해왔던 문제점들을 많이 지적해줍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시죠?' 라는 질문도 약간은 문제라고 하는데, 남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는 질문은 한창 어려운 시대인 현대에서는 자칫 마음이 불편하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누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상대가 솔직하게 털어놓도록'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게 좋다고 확실한 대안과 대책을 제시해 줍니다.

반대로 상대가 자신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봤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본다면 자신의 직업을 분명히 말하되, 최대한 상대가 알기 쉽고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상대와 연관시켜서 대답을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제가 본 '사람을 얻는 기술' 이란 책은 읽는 사람을 책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가 제가 설명한 것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나서 대인관계를 가질 때 조심해야 할 점들을 많이 알게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다가가는게 조금은 쉬워진 것 같기도 합니다.

책에는 인간관계, 대인관계에 관련된 명언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저는 이 문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을 얻는 자들은 대부분 수다쟁이가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말문을 터주고 적절히 그 물길의 방향을 터주는 경청(傾聽)의 고수들이다.'

이 말은 결국 대인관계에 뛰어난 사람들은 자기 말만 하는게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뜻이죠. 제가 사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않고 제 말만 하는걸 좋아하는 편이라 위의 문구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책에서 말하는 교훈을 본받아서 제 말만 하는게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傾聽)의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대인관계에 있어서 자신감도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결국에는 자신감이 제일 중요하다는 군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많이 두렵거나 남에게 다가가는게 힘들다면 한 번쯤은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 책입니다.

인터넷에 이 책을 검색해보니 2권도 있다는 군요. 2권도 구입해서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얻는기술
카테고리 자기계발 > 인간관계
지은이 레일 라운즈 (토네이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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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통해서 교육과학기술부의 블로그 기자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교육에 관련된 글을 많이 쓰고 제가 또 고등학생이다 보니 관심이 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로 '교과부 기자단' 에 신청을 했습니다. 교과부 기자단이 되기 위해서는 꽤 많은 경쟁을 뚫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경쟁을 합니다. 그게 1차 시험이었습니다. 자기소개서에는 자신이 교과부 기자단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와 자유기사를 한 편 적어서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으로써 대안교육의 가치를 알리고 대안교육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교육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어서 교과부 기자단에 지원한다고 적었습니다.


다행히 1차 50명에 붙었고 2차 시험인 전화 면접에 돌입했습니다.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보고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전화면접을 시작했습니다.

전화 면접에서는 다양한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교과부 기자단을 신청하게 된 동기나 기자단이 되었을 때의 마음가짐, 등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질문에 대해서 최대한 열심히 대답을 했습니다. 

솔직히 공연을 보다가 갑자기 전화를 받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는 2차까지 붙어서 당당히 제 6기 교과부 기자단에 합격했습니다. 최종합격자는 20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일 뒤에 6기 교과부 기자단의 발대식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서울중앙정부청사에서 열리는데 그 곳에 들어가려면 신분증이나 학생증이 있어야 한답니다.


여튼 저는 어제(1월 7일 토요일)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정부청사로 갔습니다. 제 6기 교과부 블로그 기자단의 발대식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발대식에서는 먼저 이번에 뽑힌 교과부 기자단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각자만의 소중한 이유로 교과부 기자단이 된 것 같았습니다.

자기소개를 마친 후 5기 교과부 기자단 선배님들의 간단한 기사 작성 요령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신문기자로 일하시기 때문에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선배들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담없이 기사를 작성하라는 말은 기자라는 활동을 처음 해보는 저에게 자신감을 주는 좋은 말이었던 같습니다.

발대식은 화목하게 끝이 났고 다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식사는 명동에 있는 한 뷔페식당에서 했는데 서울 음식에 적응을 못했는지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다른 기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기자분들은 모두 좋으신 분들인 것 같았습니다. 대안학교 학생으로써 기자단에 참가한 저를 이해해주셨고 어린 나이에 스스로 열심히 한다면 칭찬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대안학교라면 불량학생들이 다니고 대안교육은 입시 교육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다른 교육들과는 다르다는 오해와 편견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대안교육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기 위해 교과부 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대안교육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생각을 학생의 입장에서 적어보고 싶습니다.
드디어 해외자원봉사 사전교육의 마지막날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마지막날에는 제일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바로 태국에 가서 할 활동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일정은 다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충 일정을 짜보았습니다. 저는 체육에 관련된 일정을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태국팀이 가는 태국의 '치앙마이' 라는 도시에는 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태국 학생들이 수업을 다 마치고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농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체육에 관련된 일정을 짰습니다.

하지만 체육 일정은 특별히 만들게 없었습니다. 그냥 태국에 가서 거기에 있는 도구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운동을 하면 그걸로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대충 가서 어떤 종목의 운동을 할지 정하고 농구를 할 때 포지션을 정하면서 기본적인 틀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구체적인 일정을 짜고나서는 평화수칙을 만들었습니다. 평화수칙이란 태국에서의 일정이 아니라 우리들이 각자 지켜야할 규칙같은 것 이었습니다.

태국에는 선생님께서 한 명만 가시기 때문에 우리들끼리의 규칙을 제대로 정해놓아야 통제가 잘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진지한 모습으로 평화수칙을 정했습니다.


평화수칙을 정하고나서는 각자의 역할을 정했습니다. 역할의 종류는 대표, 기록, 프로그램 진행, 켐페인 진행이 있었습니다.

대표는 말그대로 우리 태국팀의 모두를 대표하는 것이고, 기록은 글로 기록하는 서기 와 사진, 영상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한 프로그램과 켐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진행팀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기록팀의 영상을 맡았습니다. 아무래도 제 장래희망이 방송연출가(PD) 이니까 영상쪽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태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다 촬영하고, 집에 와서 편집도 모두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캠코더는 선생님께서 빌려와주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영상을 맡아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 제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태국에 가서 해야할 일과 각자의 역할을 모두 정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뒤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세 팀이 모두 모여 다같이 인사를 나누고 서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우리가 태국에 가서 활동하는 일정입니다.


이제 8월 2일에 인천공항에 모여서 태국으로 가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내일입니다.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쓰다보니 벌써 태국으로 갈 시간이 되었네요.

사실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외국에 가는 것도 너무나 오랜만이고, 태국에 무려 11박 12일로 다녀와야합니다.

태국은 엄청나게 멀리 있고, 심하게 더운데다가, 말도 안통합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아무리 15명의 동료들과 함께 간다고 해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그래도 해외자원봉사는 저에게 새로운 경험이고 그만큼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태국에 다녀오면 제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태국에 가있는동안 또다시 블로그를 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태국에 다녀와서 블로그에 쓸 내용이 많을테니까 그 때 또 열심히 블로그 포스팅할께요. 12일 후에 뵙겠습니다.
서울에서의 둘쨋날의 마지막 일정은 'be a Peace builder'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Peace builder' 의 뜻은 대충 해석해보면 '평화를 만드는 사람'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선생님들께서는 'be a Peace builder' 이라는 일정이 특별히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그냥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세 팀 모두 모이라고만 했습니다.

세 국가가 다 모이고 나서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교육을 받는 안에서는 뭘 준비하는지 선생님들이 계속 들락날락 거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뒤 갑자기 선생님들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선생님들께서 갑자기 조용해지셨고 청소년들에게도 조용하게 행동해라고 하셨습니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불은 모두 꺼져있었고 수많은 촛불들이 모여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각 국가팀끼리 촛불을 둘러싸고 모여 앉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해외자원봉사를 가기 전에 버리고 가고 싶은 것을 생각해서 각 국가끼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분위기가 어색한지 태국팀의 모두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그 때 태국으로 자원봉사를 가기 전 '놀고싶은 마음' 을 버리고 가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 또한 각자가 버리고 싶은 것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각자가 들고 있는 종이에 '자신이 어떤 'Peace builder' 가 되고싶은지 적어서 벽에 붙인 뒤에 발표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종이에 '자유' 라고 적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Peace builder' 가 되고 싶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태국으로 자원봉사를 가다보니까 가서 계속 일만 하는게 아니라 태국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국가의 모든 청소년들도 각자가 어떤 'Peace builder' 가 되고싶은지 적어서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발표를 했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둘쨋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일정을 다 끝내고 각 국가끼리 모여서 간식을 먹었습니다. 간식은 제가 위염이 걸린동안 그토록 먹고싶었던 '치킨' 이었습니다.


무척 기대가 되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치키는 튀긴 치킨이 아닌 그냥 구운 닭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운 닭보다 튀긴 닭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맛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앞으로 태국에서 무려 12일동안 함께 지낼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간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겠죠.

함께 치킨을 먹으며 태국을 함께 가는 사람들과 같이 놀고 대화도 나누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태국에 가서 현지인들과 잘 생활하려면 같이 가는 우리들이 먼저 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의 교육 '신무역 게임' 이 끝나자마자 바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하도 정신없이 신무역 게임을 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점심을 먹고나서 숙소로 올라가 바로 잠을 청했습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많이 피곤했나봅니다. 한숨 푹 자고일어나니 벌써 다음 일정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태국팀만 모여서 '인권목록만들기' 를 했습니다. 모둠을 나누고 모둠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대한 인권목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둠의 주제는 '에이즈에 걸린 13세 소녀의 인권' 이었습니다. 대체로 어린이가 에이즈가 걸리는 경우는 세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돈을 벌기위해 성매매를 하다가 에이즈에 걸리거나, 병원에서 주사를 맞다가 전염되거나, 아니면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원하지도 않게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은 사회로부터 많이 소외받습니다. 전염의 위험이 있다며 사람들은 에이즈에 걸린 사람을 일부러 멀리합니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약이 이미 만들어졌는데도 약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에이즈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가는 이런 에이즈 환자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에이즈가 걸렸다는 이유로 에이즈 환자들을 취직시키지 않는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둠은 이렇게 사회로부터 심하게 차별당하고 소외당하는 어린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인권목록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1.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이 교육받을 권리
2.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
3. 에이즈라는 병으로 인해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
4. 어린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취직의 자유
5. 국민으로써 국가에서 보호를 받을 권리


대충 이정도의 인권목록을 만들어서 포스터도 두 개나 만들었습니다. 먼저 여러명의 어린이들을 그려놓고 밑에 글로 'Who is AIDS?(누가 에이즈입니까?)' 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게 전혀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 입니다.

두번째 포스터는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 한 명이 울고 있고 하는에는 반짝이는 별들 사이에 에이즈 약 하나를 그려놓았습니다. 

가난한 에이즈 환자들이 에이즈 약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처럼 어렵다는 표현한 것 입니다. 우리 모둠 말고 다른 모둠들도 모두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2모둠이었고, 1모둠은 태국의 소수민족이 가져야 할 인권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태국의 소수민족들은 쉽게 말해서 태국의 원주민을 말하는 것 입니다.

태국의 원주민들은 태국사람들의 무차별적인 개발때문에 그들이 살고있는 삶의 터전을 많이 잃어버리고 지금도 많이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모둠은 태국의 난민들이 가져야 할 인권목록을 만들었습니다. 태국의 난민들은 말그대로 태국의 거지들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주거지가 없고 돈도 없어서 매우 힘들게 생계를 꾸려나갑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던터라 취직도 되 않아 돈을 벌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각 모둠들이 만든 인권목록과 포스터를 만들어서 가지고 나와 설명을 하며 발표를 했습니다. 각 주제는 선생님께서 정해주셨는데, 세개의 주제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태국의 소수민족과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 태국의 난민 이 세개의 집단은 모두 가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기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차별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도 못본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확실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권목록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해보니 그런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난이 죄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 이미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태국에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의 둘쨋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숙소도 시설에 꽤 좋아서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는 같은 방의 형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다시 교육을 받으러 4층으로 같습니다.

둘쨋날 아침, 첫번째 일정은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세팀이 모두 모여 '신무역 게임' 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신무역 게임이란 모둠을 정해서 물건을 교환하고 거래하면서 실제로 무역을 해보는 게임이었습니다.

우선 각 모둠이 각 나라가 되었고 저는 우리 모둠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각 모둠의 대통령이 앞으로 나와서 봉투를 하나씩 골랐습니다.

제가 고른 봉투에는 알파벳 'C' 가 적혀있었고 클립 4개 .가위, 자, 컴퍼스, 그리고 종이 몇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특정조건을 만족시킨 도형을 만들어서 시장에 팔면 돈(클립)을 준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클립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모둠이 승리하는 게임이 바로 신무역 게임이었습니다. 보기에는 간단해보여도 생각해보면 신무역 게임은 무척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우선 우리 모둠 C국가는 연필이 없기 때문에 특정 도형을 제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D국가에게 컴퍼스를 잠깐 빌려주고 연필도 빌려왔습니다.

그런식으로 계속 거래를 하며 도형을 왕창 만들어서 선생님께서 계시는 시장에 팔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우리 C국가의 도형을 잘 사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팔아야 우리 C국가의 도형을 팔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연필이 조금씩 빌려쓰는게 아니라 영구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왔습니다.

그래서 A국가와 거래를 했습니다. 연필이 많은 A국가가 우리 C국가에게 연필을 주는대신에 A국가는 우리 C국가의 도형을 시장에 팔아주고 벌어들인 돈의 40%를 우리 C국가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거래의 조건이 우리 C국가에게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에 우리 C국가는 당장 A국가의 거래를 받아드렸습니다. 연필도 받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의 거래였습니다.


그렇게 받은 연필로 열심히 도형을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국가의 대통령이 와서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들고 있는 도형의 조건이 바뀌었다는 소리였습니다.

원래는 지름이 8cm인 원을 만들어야 팔 수 있는데 시장의 가격변동으로 인해 꼭 지름이 4cm인 원을 만들어야 팔 수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가격변동에 대한 내용은 앞에 있는 칠판에 적혀있었지만 우리 C국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형의 가격이 바뀐것을 한참 나중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도형을 모두 버리고 다시 변경된 조건대로 도형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쨋든 그런식으로 우리 C국가는 계속 도형을 만들어 시장에 팔면서 꾸준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고 게임이 끝났습니다.

각 나라가 번 돈과 세금으로 낼 돈, 쓰레기 배출량 이런 것들을 모두 계산해서 총 수익으로는 우리 C국가 총 6개 국가 중에서 4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짜기라도 한듯이 A국가에 F국가까지 거의 순서대로 순위가 내려졌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처음 받았던 봉투에 있었습니다.

봉투의 알파벳은 각나라의 부유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 이었습니다. A와 B국가는 선진국이었고, C와 D국가는 개발도상국, 그리고 E, F국가는 가난한 나라에 속했습니다.

우선 선진국에 속하는 A와 B국가는 처음 봉투를 받을 때 자본금(클립)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많았고 가위나 연필, 컴퍼스, 자와 같은 도구들이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바로 선생님이 계시는 시장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A, B국가에서 만든 도형을 더 잘 사주었다는 것 이었습니다.

E, F국가와 같이 가난한 국가가 만든 도형은 일부러 잘 받아주지 않았고 반면에 A, B와 같이 부유한 국가의 도형은 시장에서 무조건 사주었습니다.

E, F국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다른 나라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힘들게 시작했습니다. 가위나 연필같은 꼭 필요한 도구들도 없었고, 자본금도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제가 속했던 C, D국가는 개발도상국으로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적당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가에게도 불공평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각 국가에게 나누어 준 물건중에서 파란색 스티커가 있었는데 그 파란색 스티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파란색 스티커를 도형에 붙여서 시장에 팔면 10배의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보통 국가들은 그것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파란색 스티커에 대한 정보는 선생님께서 일부러 A국가에게만 알려주었습니다. 부유한 국가와 다른 국가들은 정보력에서도 심하게 차이가 났던 것입니다.

A국가는 파란색 스티커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일부러 다른 국가들에게 거래를 하면서 다른 국가의 도형을 팔아주고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나눠주겠다고 거짓말을 하여 스티커를 붙여 도형을 팔아주고 아주 적은 돈만을 도형의 원래 주인 국가에게 나눠주면서 돈을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벌어들였습니다.

신무역 게임이 끝나고 각 국가마다 느낀점을 말했는데 저희 C국가는 우선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하다고 했고, 그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C국가는 지리적으로 멀리 위치해 있어서 선생님께서 게임에 대해 전달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고 칠판도 잘 보이지 않아 많이 불공평했다는 것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정말 이번 신무역 게임은 무척 재미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실제 국가간의 무역 시장체제와 많이 유사했고 현재 시장체제에 대한 문제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부유한 국가의 물건은 일부러 잘 사주고, 가난한 나라가 만든 물건은 일부러 사지 않는 것이 현재 시장체제와 많이 닮았다는게 이번에 했던 신무역 게임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드밴티지였던 '파란색 스티커' 는 나이키나, 아디다스같은 메이커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물건이든 메이커를 붙여서 팔면 파란색 스티커를 붙여서 팔면 가격이 훨씬 올라가는게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신무역 게임을 해보면서 느낀게 참 많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학교에서 직접 신무역 게임을 진행시켜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또 배울 수 있는게 더 있겠죠.
서울에 가서 실시한 해외자원봉사 사전교육은 총 2박3일이었고 일정도 너무나 빡빡했습니다. 그래서 첫쨋날의 평화교육은 밤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두번째 평화교육은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이 세팀이 모두 모여서 활동을 했습니다. 총 48명의 사람들이었는데 모두 앉아있으니 꽤 많아보였습니다.

어쨌든 세팀이 다 섞여서 모둠을 나눠 모둠마다 각각의 주제를 나눠주고 그 주제에 맞게 노래를 개사해서 모둠끼리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활동을 했습니다.


저희 모둠의 주제는 '필리핀의 농부' 였습니다. 필리핀의 농부들은 땅의 소유자인 '지주' 와 농사를 해주는 '소작인' 으로 구분되어 계약관계를 맺습니다.

지주가 소작인에게 농사지을 땅을 빌려주고 소작인은 농사를 짓고나서 생긴 돈의 일부를 땅의 주인인 지주에게 지불해야합니다. 
 
생각해보면 땅이 많이 있는 지주들은 소작인들에게 땅만 빌려주고 일도 하지 않는 형태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런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가 너무나도 불평등해보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는 빈부격차가 계속 심해질 것이며, 소작인들은 열심히 일을 해도 지주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의지도 사라질 것 입니다.

그렇게 되면 소작인들의 노동력이 점점 하락하게되고, 농업이 발달하지 못하여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우리 모둠은 제도를 개선하고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자체를 해결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노래도 한 곡 만들었는데 소작인이 돈을 주지 않은 지주에게 돈을 요구하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해도 우리 모둠은 너무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만드는 과정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개사해보면서 필리핀 농부의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 같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노래를 통해 한 번더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다른 모둠들은 노래를 다 잘 만들고, 잘 불렀지만 노래의 가사가 사실상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둠들도 노래를 만들면서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또 평화교육을 한 개 마치고 잠깐의 휴식시간이 있었습니다. 짧은 휴식시간임에도 우리 태국팀은 절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완성되지 않은 깃발을 만들었습니다.

쉬는시간이 있을 때마다 우리 태국팀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깃발만드는 것을 서로 도와가며 했고 단 한사람도 불만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여자 단원들은 숙소에 깃발을 들고가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계속 깃발을 만드는 우리 태국팀은 그럴수록 계속 친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러닝타이' 팀의 멤버들 모두 처음에는 다 서먹서먹했어지만 다양한 활동을 같이 하고 깃발도 쉬는시간마다 계속 만들면서 서로에 대해 더 알게되는 시간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바느질을 할 줄 몰라서 깃발만드는 일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태국팀이 협동해서 깃발 만드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태국에 가서도 깃발 만들 때의 협동심을 발휘해 더 많은 활동을 저 재밌고 알차게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저번주 일요일(7월 24일)에 저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 이유는 태국 자원봉사를 가기 전 미리 사전교육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침 8시에 출발했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4시간이나 훌쩍 지나 벌써 12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사먹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터미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양푼이 비빔밥을 사먹었습니다. 원래 양푼이 비빔밥을 많이 좋아했었는데 거기의 음식은 조금 짰습니다. 원래 서울사람들이 조금 짜게 먹나봅니다.


대충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택시를 이용해 사전교육을 하는 '서울올림픽파크텔' 이라는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터머닐에서 꽤나 멀었던지 약 30분정도를 가야했고 택시비는 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어쨌든 저는 서울올림픽파크텔이라는 어느 호텔의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해외자원봉사 파견인들이 몇 명 앉아있었습니다. 약속시간인 2시가 되자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고 사전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태국으로 가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태국 이외에도 캄보디아와 필리핀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각 나라마다 15명의 청소년과 1명의 인솔자 선생님으로 이루어져 총 16명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태국팀에는 대학생이 3명 있었고 남자는 5명, 여자는 1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대충 간사님의 말씀을 듣고, 각 나라끼리 모여서 자기소개시간을 가졌습니다. 태국팀의 15명중에서 저만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튀어보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의견을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자기소개시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서울까지 왔다고 당당히 말했고 태봉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도 자신감있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태봉고등학교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전혀 부끄러운게 없었습니다.

저는 태봉고등학교에 대해 말하면서 서울사람들의 대안학교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꾸려고 열심히 학교소개를 했습니다. 다행히 대안학교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인사도 그렇게 나누고 각 나라에 가서 사용할 깃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태국팀은 '태국에 가서 발로 뛰며 열심히 활동하겠다' 라는 의미로 '러닝타이' 라는 팀명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깃발에는 팀명에 맞춰 사람이 달리고 있는 모습을 바느질로 그려넣었습니다. 바느질하는 재료는 어디선가 주워 온 버린 옷들이었는데 색의 제한이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바느질이라 그런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태국, 캄보디아, 필리필 3팀 모두 완성하지 못하고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쉬는시간마다 꼬박꼬박 바느질을 해서 완성시키기로 했습니다.

잠시 쉬고나서 바로 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일정을 보니 휴식시간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빡빡한 일정을 계속 소화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초반이라 그렇게 힘든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태국팀이 받은 첫번째 교육은 '평화의 문화' 라는 주제의 평화교육이었습니다.

먼저 각자 평화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평화가 있으려면 꼭 있어야하는 것들과 없어야 할 것들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5개를 적었는데, 저는 친구, 이불, 잡념, 소음 같은 것들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각자가 적은 것들을 돌아다니면서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들끼리 모아서 교육을 하시는 선생님께 제출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모아진 평화에 대한 단어들을 화이트보드에 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크게 공동체, 사랑, 학교, 경쟁, 전쟁, 편안함 등으로 나뉘어진 것이 보였습니다.


평화에는 공동체와 사랑, 편안함 등이 있어야 하고, 학교와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화가 있으려면 학교가 없어야한다는 반대했습니다.

학교가 없어야 한다고 적은 사람은 학교가 있으면 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평화가 오더라도 학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육이 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실천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학교가 있을 때 만큼의 교육의 활성화가 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경쟁이 없어지되 선의의 경쟁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의견에도 반대를 했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도우며 배우는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해서 교육을 하면 경쟁 없이도 얼마든지 경쟁했을 때보다 더 나은 성과의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수업만 듣는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계속 말하고 남의 의견도 들어보면서 평화에 대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평화에 대한 이해는 다양하지만 결국에는 몇 가지의 큰 주제들로 묶이는 것을 보고, 이런 모습을 통해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평화교육을 받았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평화교육 받은 것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포스팅하기로 하겠습니다.
역시 방학이라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심심하네요.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남해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블로그에 소홀했던 것 같네요. 구차해도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남해로 여행을 다녀오고나서 몇일간 몸이 아파서 계속 누웠있었습니다.

무슨 위염인가? 라고 불리는 병에 걸렸었는데 밥을 규칙적으로 안먹고 아이스크림같이 차가운 음식을 많이 먹어서 걸리는 병이라고 했는데 저와 딱 맞는 것 같았습니다.

남해에 친구들과 여행 가서 과자를 진짜 많이 먹었고,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위염에 걸렸던 것 같았습니다.

약 3일간 두통으로 집에 누워있었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가 16년간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그저께(7월 20일 수요일)에는 그날 하루만에 구토를 무려 6번이나 했습니다. 토를 한 번 할 때마다 무척 고통스러웠고 역겨워서 정말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바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위염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고 다행히 거의 다 나았다는 것도 알게되서 약간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제가 먹고있는 약입니다.


병원에서는 주사를 놓아주었고, 약국에서는 3일치의 약도 받았습니다. 약도 꾸준히 챙겨먹고 식단도 조절한 덕에 지금은 몸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얼른 몸이 회복되고 서울에 가서 해외자원봉사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아서 8월달에는 태국으로 자원봉사도 떠나야합니다. 

방학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몸을 회복시켜야겠습니다. 
얼마 전에 전국 YMCA가 주최하는 해외 자원봉사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신청을 했습니다. 그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3차까지 합격해야 했습니다.

1차시험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는 것 이었는데 예전에 태봉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써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게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기소개서를 써서 제출했는데 다행히 시험에 붙었습니다. 그리고 2차시험은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서 제출하는 것 이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총 3가지가 있었는데 '국제자원활동에 대한 견해' 와 평화, 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국제자원활동을 참가해본 경험이 없어서 잘 알고 작성하지는 못했지만 태국에서 국제자원활동을 하면서 태국의 문화와 공동체를 배우며 좋은 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평화에 대해서는 평소에 제가 생각하는대로 적었고, 마지막으로 인권에 대한 질문은 제일 열심히 적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제가 얼마전에 창동에서 열리는 '청소년 문화존' 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부스를 운영했었기 때문에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차시험을 위해 작성을 끝낸 후 제출하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해외자원봉사 캠프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축하를 해주시며 저에게 2차까지 합격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3차시험을 위해 서울까지 올라가서 면접을 봐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주말에 급하게 어머니와 함께 면접준비를 해보았습니다. 특별히 준비한건 없었고 그냥 어머니가 예상질문을 해주시고 제가 그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면접을 보러가시는 누나와 함께 서울로 버스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 누나는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고 태국이 아닌 필리핀 캠프에 신청하신 분이었습니다.

누나 덕분에 서울에 무사히 올라가서 길을 잘 찾아 면접장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면접 대기실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면접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지만 저 혼자만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면접에 붙을거란 자신감이 있었다기 보다는 면접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별로 긴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제가 면접을 보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기실로 와서 제 이름을 부르자 저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면접을 보는 곳으로 당당히 걸어갔습니다.

면접은 총 세 명과 함께 보는 형식이었고 저와 함께 면접을 보는 사람 두 명 모두 매우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명은 대학생 남자인 것 같았고 나머지 한 명은 저와 같은 고등학생인 것 같았고 여자였습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성 분은 저에게 준비를 많이 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웃으며 "저는 면접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어제 알았어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성분은 웃으며 "아, 그래요? 그러면 준비 많이 못하셨겠네요?" 라며 긴장이 풀린 듯 살짝 웃으셨습니다.

면접장에는 세 명의 면접관이 앉아 계셨습니다. 드디어 면접이 시작되고 그 분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먼저 해외봉사활동에 왜 참가하고 싶은지, 가서 무엇을 하고싶은지 등의 형식적인 질문으로 시작되었고 나중에는 조금씩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도 하셨습니다.

특히 '태국이나 필리핀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인권에는 뭐가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다른 두 명은 다 대답을 했지만 저는 잘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대답할 수 있었던 질문이었지만 대답한 내용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대답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아쉬웠던 면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면접은 잘 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3일 후, 태국 자원봉사 최종합격자가 발표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긴장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내심 합격을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뭐, 당연한 것 이지만...

그리고 예상대로 그 날 오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또다시 축하를 해주시며 제가 3차까지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비로 태봉고에 합격했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태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그 나라에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그 캠프는 '꿈과 사람속으로 :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 라온아띠' 라는 주제를 가진 캠프로 총 11박 12일로 떠나는 엄청난 일정을 소화해내야 했습니다.

방학 때 출발하니까 아마 방학 때 태국 캠프에 다녀오고 나서 또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입니다. 태국에 가서 많이 배우고, 또 많이 봉사를 하며 많은 느껴오겠습다.

그리고 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사진도 많이 찍어와서 블로그에도 열심히 올리겠습니다.

한동안 서울에 다녀오는 바람에 블로그에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서울에 간 이유는 YMCA에서 가는 캠프때문이었습니다. 서울로 캠프를 간 것 입니다.

YMCA에서 가는 캠프를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니까 앞으로 YMCA 캠프를 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캠프의 내용은 저번에 갔던 캠프와 마찬가지로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교 3개를 보러가는 것 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라고 하면 역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SKY도 그 세 대학교를 말하는 것 입니다. 그런 대학교에 직접 가서 그 대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홍보영상도 보면 꿈을 키우는 캠프였습니다.

사실 작년에도 같은 캠프를 가서 별로 감흥같은 건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둘쨋날에 연극을 본 게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학생들은 중학생들만 총 33명이 함께 갔는데 모두 함께 연극을 보았습니다. 연극의 제목은 'Hey 완득이' 제가 옛날에 재미있게 보았던 소설책이 원작인 연극이었습니다.


연극의 내용은 역시 책과 같았습니다. 소설 완득이는 제목처럼 '완득이'라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책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완득이가 싸움을 하다가 킥복싱을 배운다는 내용입니다.

연극의 내용도 책과 같았습니다. 주인공 도완득은 학교에서 싸움을 잘하기로 소문이 났고 완득이는 키가 작은 자기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을 모두 두들겨 팹니다.

그래서 경찰서도 많이 가고 집도 가난해서 여러가지로 힘든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윤하라는 여자아이를 만나게 되고 킥복싱도 배우면서 '똥주' 라는 담임 선생님의 훌륭한 지도로 인생이 바뀝니다.

책의 줄거리는 대충 이정도고 연극도 책의 줄거리에 맞춰 전개가 됩니다. 연극에서는 담임 선생님 똥주의 비중이 아주 큽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비중이 약간 줄어들면서 좀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바뀝니다. 연극 중간에 베트남에서 돌아온 완득이의 친엄마가 완득이에게 자기 정체를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 때 완득이는 엄마를 거부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완득이의 엄마는 서투른 한국말로 울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때 완득이도 엄마를 따라서 눈물을 흘립니다. 정말 연극을 하는 사람들의 연기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림잡아 3분만에 감정을 잡아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확실히 대단한 연기력이었습니다. 덕분에 연극의 재미에 더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관객을 무대에 올려서 함께 하면서 여러가지로 웃긴 장면이 많아서 아주 재미있는 연극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 때 피곤해서 잠이 올 것 같았는데 연극이 너무 재미있어서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소설이 원작이라 그런지 더 재미있게 본 것 같습니다.

특별히 연극에서 책의 내용을 바꾼 부분은 없었고 원작에 충실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정상 완득이의 삼촌과 킥복싱 체육관의 중학생들은 등장인물에서 제외된 것 같았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책의 내용을 책보다 더 재미있게 연극에서 표현한게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완득이가 영화로 나온다고 합니다. 만약 영화로 나온다면 꼭 보고싶습니다.

삼촌네 가족과의 즐거웠던 여름휴가를 끝내고 저와 어머니는 바로 서울로 캠프를 갔습니다. 아이들은 총 35명을 데리고 갔는데 전부 중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옛날부터 어머니와 캠프를 많이 다녔는데 이번 캠프에는 아는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어색한 캠프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공부하러 가는 캠프라도 친한 친구들이 조금씩 있어야 캠프도 재미있고 공부도 잘 됩니다. 그래도 아는 친구들이 조금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서울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서울대학교' 였습니다. 유명한 대학교들을 둘러보는 캠프에 걸맞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서울대학교를 가장 먼저 갔습니다.

서울대학교는 말그대로 어마어마하게 컷습니다. 보통 중학교나 다른 대학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거대한 학교였습니다.

학교가 아니라 한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넓고 시설도 무지하게 좋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서울대가 좋다고 하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는 서울대에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서울대에 왔는데 서울대 정문을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버스는 서울대의 정문으로 출발했습니다.

서울대의 정문입니다.

서울대 안에서 정문까지 가는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한참을 버스를 타고 드디어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정문에는 '서' 라는 글자의 동상이 크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서' 자가 서울대의 '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글자는 '서' 자가 아닌 'ㄱ' 과 'ㅅ' , 'ㄷ' 이 합쳐져 있는 글자였습니다.

그 글자들은 '국립 서울 대학교' 에서 따왔다고 했습니다. 정말 상상도 못했었지만 선생님의 해설을 듣고나니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제 실력으로 이렇게 좋은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이런 대학교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에 왔는데 구경만 하고 갈 수는 없겠죠? 우리는 서울대의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서울대에서 먹는 밥은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아무리 좋다고해도 밥이 맛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먹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는 서울대에서 먹었던 점심이 별로 맛있지 않았습니다.

점심을 대충 먹고나서 정수기의 물을 받아 쭉 마셨습니다. 정말 물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다 시원하고 맛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서울대의 물을 먹고 나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울대의 물을 먹고나온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 KBS로 출발했습니다. KBS에 도착하니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1박 2일' 의 오프닝 촬영지가 보였습니다.

서울 KBS 앞입니다.


TV에서 보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나온 곳이라서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1박2일 촬영하는 모습을 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KBS의 내부는 아주 넓었습니다. 역시 본사라서 그런지 촬영을 많이 하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단 한명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웠지만 KBS에서 사용하는 카메라들과 마이크들 역대 드라마들의 모습, 그리고 뉴스가 진행되는 과정 등을 보면서 저의 '프로듀서' 라는 꿈을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번 캠프의 주제는 '내 꿈을 디자인하다.' 입니다. 저는 그 주제에 맞게 제 꿈이 더 확실해지고 멋지게 디자인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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