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오랜만에 가족끼리 다같이 여행을 갔습니다. 사실 여행이 아니라 아버지가 강의를 가는데 어머니와 제가 아버지를 따라가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함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만족했습니다. 우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서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우리를 '유일회관' 이라는 식당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식당은 전에 아버지가 맛있어서 블로그에 한 번 올린 식당이었습니다.

역시 아버지가 맛있다고 한 만큼 처음부터 맛있는 메밀국수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 메밀국수가 참 맛있었습니다. 면도 쫄깃쫄깃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국물 맛 이었습니다.

그 메밀국수는 국물이 정말 시원하게 맛있었습니다. 비록 양은 적었지만 저에게 환상적인 맛을 보여준 음식이었습니다.

굴비요리이지만 비린내가 많이 나는 음식입니다.

그 다음에는 굴비를 말려서 구운 요리가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음식을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음식을 한 번 먹어보았습니다.

처음 먹을 때에는 약간 맛이 오묘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음식을 먹어보았는데 비린내가 심하게 났습니다. 그 냄새는 하도 고약해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먹었을 때 약간 오묘했었던 것도 모두 비린내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음식을 다시 먹지않았습니다. 도저히 비린내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입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그 음식이 맛있다고 그 음식만 계속 드셨습니다. 저와 어머니의 취향이 왜 이렇게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밥과 녹차를 담은 그릇이 나왔습니다. 밥을 그 녹차에 말아서 먹는게 그 식당의 요리였습니다. 저는 그냥 된장찌개와 밥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녹차에 밥을 말아서 맛있게 드셨습니다. 저는 엄청 맛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해가 잘 안되었습니다.

녹차에 밥을 말아서 비린내가 나는 굴비와 함께 드시는 모습


그렇게 점심을 먹고 아버지는 강의를 하러 가시고 어머니와 저는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보려고 했던 영화는 '이끼' 라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는 '강풀' 님의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 처럼 '윤태호' 라는 만화가가 만든 '이끼' 라는 만화가 '강우석' 이라는 감독을 통해 영화로 만들어진 것 이었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둘 다 그 영화를 보고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따로 영화를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따로 영화를 보면 같이 여행을 온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제가 그냥 둘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보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이클립스' 라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무척 보고싶었습니다. 전 편인 '트와일라잇' 과 '뉴문' 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같이 그 영화를 보는데 어머니는 너무 영화가 지루해서 영화를 보는동안 주무셨습니다. 전 아주 재미있게 보았는데 어머니가 보기에는 이클립스라는 영화가 좀 유치했나 봅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우리는 영화관 옆에 있는 서점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은 우리 마산과는 다르게 무척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곳은 우리 마산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만큼 무지 넓었습니다. 어머니는 책을 하나 골라서 읽으셨습니다.

저는 그 동안 2학기 동안 공부할 책들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약간 출출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돈을 받아서 우유를 사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강의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우리들은 다시 택시를 타고 이번에는 '유명회관' 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그곳은 소고기를 주로 하는 식당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아버지가 사주는 소고기를 배터지게 먹고 커피숍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제가 옛날에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화려한 휴가' 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도청 앞에도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마산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배를 쥐어잡으시고 화장실로 뛰어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화장시를 간 사이에 아버지와 잠시 버스 터미널에 있는 텔레비젼을 잠깐 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도 배가 아파왔습니다.

저는 일단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화장실은 그야말로 더럽게 멀었습니다. 저는 화장실로 한 걸음 한 걸음 뛸 때마다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한 단계씩 강하게 느겼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화장실에 도착하고 몸에 있는 노폐물을 비우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비워도 비워도 배가 계속 아팠습니다.

아까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급하게 먹는 바람에 장에 무리가 갔나봅니다. 그렇게 한참을 변기와 싸우던 중 드디어 복통이 사라지고 다시 아버지가 계시는 걸어가는데 어머니가 볼일을 끝내시고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타이밍이 맞았나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동안 고생을 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는 버스를 타는동안 계속 잤습니다. 심지어 마산에 도착했을 때에도 제가 깨워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어머니와 저는 아주 즐거웠겠지만 사실 아버지는 놀러간 것이 아니라 강의를 하러 간 것 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주 힘드셨을 것 입니다.

이렇게 피곤하신데도 어머니와 저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주시고 좋은 경치를 보여주신 아버지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강풀의 '26년'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의 내용은 자신의 부모님이 광주항쟁 때 돌아가신 자식들이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전두환'을 암살하는 내용이다. 아주 흥미진진하고 약간의 감동도 추가된 아주 좋은 책이다.

전두환의 독재정권 당시에 시민들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민주항쟁을 일으켰다. 그게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광주항쟁'이다.

당시에 전두환은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자신들은 정당하다고 합리화시켜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어떻게 군인이 자기 나라의 국민을 죽일 수가 있는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전두환은 그 끔찍한 일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광주의 많은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나갔다.

하지만 현재 그는 29만원 밖에 없다고 해놓고 부자같이 아주 잘 살고 있다. 정말 불공평하다. 그렇지만 내가 그를 어떻게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26년'의 '그들'은 전두환을 암살하기 위해, 아니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위해서 철저한 준비를 했다.

그들의 작전은 이랬다. 전두환의 흉상을 제작하여 그 속에 총을 넣고 전두환을 방문하여 흉상 안의 총을 이용하여 전두환을 죽인다. 하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미리 준비해뒀던 저격수로 전두환을 죽인다.

이 책의 마지막은 저격수가 전두환을 향해 총을 쏘는 그 장면에서 끝이 난다.

그래서 마지막에 전두환이 죽는지 안죽은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전두환암살'의 성공여부가 아니라 광주에서 죽은 시민들의 고통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나타낸 것 같다.

26년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강풀 (문학세계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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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월 10일 토요일, 5월 광주민주항쟁에 대하여 배우기 위해 광주로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갔다. 마산YMCA 근현대사 교실에서 마련한 여행이었다.

그곳에 다녀오고 나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것 같다. 그리고 공수부대에게 끔찍하게 죽어간 우리 조상들의 고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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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아이.


솔직히 그때 광주시민들에게는 아무 죄도 없었다. 그런데도 광주시민들은 폭도라는 이름으로 총을 맞고 죽어갔다.

그리고 제일 원망스럽고 슬펐던 것은 바로 광주시민들이 잡혀 들어 갔었던 지옥의 감옥 상무대이다. 상무대는 지금 5.18자유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주 작은 감옥에 잡혀온 광주시민들 150명을 넣고 반항하는 시민들만 모아서 1평도 안되는 감옥에 넣었다. 방이 좁아서 움직일수도 없고 잘때도 뒤로 살짝누워서 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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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들어가는 곳.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것만이 아니다.

아침 7시부터 저녁10시까지 양반자세로 앉은뒤, 고개를 숙이고 무려12시간 동안 그상태로 가만히 있어야 하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감옥에서 나오게 하여 야구방망이로 여러군인들이 구타를 했다.

또 그렇게 6개월 동안 살다가 재판장으로 데려가서 재판을 내리는데 그 재판도 정말 말도 안되었다.

일단은 애국가를 부른는데 재판관은 폭도들이 부르는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라며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애국가가 나올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자기 가슴에 대고 노래를 불러야 한는데... 정말 광주시민들을 인간취급도 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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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지성(왼쪽)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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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독방체험.



애국가가 끝난 뒤 재판을 시작하는데 재판과정이 진짜 말도 안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일단 몇명을 일어나게 한 뒤 죄명을 10개 정도를 만들어 내어 갖다 붙인 뒤에 사형, 무기징역, 징역 14년 등을 판정한다. 만약 재판을 받는 것을 거부하면 밖으로 데려가서 야구방망이로 구타를 하여 처참하게 죽였다.

희생자 묘역에도 가봤는데, 그 때 희생된 분들 중 나보다 어린 나이에 죄없이 군인의 총에 맞아 죽은 경우도 있었다. 고등학생 형도 엄마가 사주신 고무신을 신고 놀던 중 미끄러져 고무신 찾으러 갔다가 죽기도 했다고 한다.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정말 끔찍하다.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대한민국 군인이 같은 민족을 죽이다니...
앞으로 이런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않된다.

지금의 우리가 이만큼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도 그때 전두환과 싸웠던 광주시민들 덕분이다.

광주시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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