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중학생이 되서 처음가는 수학여행이였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가기전에 YMCA캠프를 다녀왔었다. 그래서 몸이 많이 피곤했었다. 하지만 중학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수학여행이기에 아침일찍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바로 전날에 캠프를 갔다와서인지 그만 20분정도 늦잠을 자버렸다. 그래서 도시락은 대충 편의점에서
김밥과 삼각김밥을 사서 옷도 하나 챙기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버스안에서는 정말 할게 없었다. 휴게소와 다른 곳에 가서 잠시 쉬었지만 많이 심심했다. 그래서 친구의 게임기를 빌려서 마구 두드려댔다. 계속 게임만 하다보니 눈이 약간 침침했다. 그래서 잠시 잠을 자기로 했다.

일어나보니 낙산사라는 한 절에 와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각자 자유시간을 가지다가 나중에 다함께 모여서 반끼리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출발했다.

우리는 일단 숙소에 도착해서 각자 씻었다. 이상하게 여행에 와서만 씻는? 그런 아이들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내가 있는 방의 친구들이 화투를 가져왔다. 우리는 그 화투를 가지고 섯다라는 게임을 했다. 그리고 그 게임을 해서 꼴등을 한 2명의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의 돈을 2000천원씩 모은뒤 1층으로 내려가서 간식거리를 사왔다.

나는 운이 좋은지 다행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게임에서 진 불행한 2명의 친구들은 매점에 가서 컵라면을 사왔다. 그리고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각자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물이 너무 미지근해서 라면의 면이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라면도 꽤 맛이있었다.

우리는 라면을 다먹은뒤에 베게를 들고 옆방으로 가서 베게싸움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와 내 방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재빨리 다시 자기방으로 가서 자는 척을 했다. 정말 이런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삼촌과 숙모, 사촌동생들과 함께 순천에 여행을 갔다.

숙소에서 하룻밤을 잔 우리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씻은 뒤에 숙소 옆에 있는 순천만 갈대밭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갈대밭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그리고 산까지 있었다. 처음에는 산책을 그만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간 김에 산에 한번 올라가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삼촌은 힘들다고 중간에 먼저 숙소로 다시 가셨다. 하지만 나는 계속 산을 올라갔다. 처음에는 내가 가장 빨리 갔었는데 점점 지쳐서 마지막에는 우리가족 중에서 꼴지로 정상에 올라갔다.

순천만 용산 전망대에서 어머니, 숙모와 사촌동생들과 함께.


나는 오기가 생겨서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내 사촌동생인 리나와 함께 전력질주로 산을 내려왔다. 오랜만의 등산이라 무지 힘들었지만 산공기가 정말 좋았다.

나와 리나는 결국 일등으로 산에서 내려와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는 삼촌과 할아버지께서 쉬고 계셨다. 나는 들어오자 마자 아침으로 먹을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라면을 넣을 때쯤에 나머지 어른들이 숙소로 돌아오셨다. 우리는 다같이 라면을 아침으로 먹고 숙소를 제공해주신 할머니께 인사를 드린 뒤 차를 타고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출발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검은 연필세트와 공책을 샀다.


그곳은 '조정래' 선생님께서 지으신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것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태백산맥의 원고와 조정래선생님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책 등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태백산맥 문학관을 다 보고 나서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해서 절을 두 곳 갔다. 그 중에 한 곳은 '송광사' 라는 곳으로 우리나라 3대 사찰에 들어가는 굉장히 유명한 사찰이었다. 

우리는 절까지 다녀와서 다같이 서로 인사를 하고 할아버지와 삼촌네는 남해로 가고 우리가족은 다시 마산에 있는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송광사에 올라가면서 뻥튀기를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곳은 바로 태백산맥 문학관이였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아버지와 삼촌이 연필과 공책을 사주시고 정말 멋진 명언을 하나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 명언은 조정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라는 조금 어려운 말이였다. 이 말의 뜻은 언어로 만든 예술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도 이 명언의 뜻을 제대로는 모르지만 이 명언을 듣고 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여행을 갔다온 보람이 남을테니까.
오늘 독서동아리에 갔다. 나는 친구와 집앞에서 만나서 친구의 자전거뒤에 타서 함께 '청소년 문화의 집' 으로 갔다.
 
우리 동아리는 책을 읽어와야 하는데 친구와 나 둘다 책을 읽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둘다 책을 주문했는데 아직 책이 안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책을 주문한지 오래됬는데도 아직 책이 오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나와 내 친구는 책을 읽지도 못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 동아리의 활동내용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여 토론을 하는 것이였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지 않아서 조금 힘들었다.

우리가 읽어왔어야 하는 책은 바로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으로 지구의 가난한 사람들이 주제였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주제에 대한 의견이라도 제시하여 토론을 하였다. 그리고 책의 제목인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에 대한 대답도 하였다.
 
나의 대답은 가난한 사람이 생기는 것은 그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이 그에대한 반박을 하였다. '일을 하지 않는게 아니라, 일자리가 없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할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나는 '내 의견만이 진실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앞으로 의견을 제시할 때는 생각을 잘하고 제시해야 겠다.

우리는 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다음에 읽어올 책을 정하였다. 그 책은 바로 '완득이' 라는 책이었다. 읽은 사람들의 말로는 그 책이 엄청 웃긴 책이라고 하였다. 나도 왠지 그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동아리의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한 편보고 토론을 하기로 했다.

그 다음에 다음에는 자신의 친구들중 한명씩 데려오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 동아리의 인원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었다. 동아리의 아이들이 많아지면 아마 동아리 활동이 훨씬 더 재미있어 질 것이다.
이번에 가족들과 오랜만에 여행을 갔다. 간 곳은 순천으로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사촌동생들  이렇게 나까지 합쳐서 모두 8명이 함께 갔다. 나는 일단 학교에서 3교시까지 수업을 받고 조퇴를 했다. 그 때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다.

나는 학교에서 바로 집으로 와서 짐을 챙겨서 아버지께서 다니시는 회사로 갔다. 거기에는 아버지께서 일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보시고는 바로 일하는 것을 중단하고 나와 함께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우리는 김밥을 사서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나는 오랜만에 버스안에서 실컷 잤다. 자고 일어나보니 이미 순천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서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네는 지금 할아버지를 모시고 순천으로 오는 중이였다. 우리는 삼촌네가 오는동안근처 가게에서 토스트와 음료수를 사서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우리는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삼촌네가 도착했다. 나는 오랜만에 귀여운 사촌동생들을 만나서 매우 반가웠다.

할아버지와 순천 드라마촬영지에서.


우리는 차를 타고 먼저 순천에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 로 갔다. 그곳은 60~70년대를 배경으로 지어놓은 곳으로 그곳에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찍혀졌다. 대표적으로 '에덴의 동쪽', '님은 먼곳에', '사랑과 야망' 등이 그 예이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드라마 촬영지로 들어갔다.

그곳은 정말 넓었다. 그곳에는 옛날의 풍경이 고스란히 있었다. 내가 즐겨보는 '엄마는 단짝친구' 에 나오는 풍경과 매우 비슷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잠시 어릴 적 추억으로 빠져드신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추억에 잠기는 모습을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내 귀여운 사촌동생들.


어른들은 지어놓은 건물 하나하나를 보면서 몹시 감탄했다. 하지만 겉모습만 똑같이 만들어 놓았을 뿐 건물 안의 내부는 그냥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멋있었다. 정말 동네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 만들었다.

우리 가족이 묵었던 숙소.


우리는 그렇게 드라마 촬영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짐을 내려놓기 위해 숙소로 갔다. 숙소에 짐들을 내려놓고 숙소 근처에 있는 '순천만' 으로 갔다. 우리는 거기에서 배를 타고 순천만을 한바퀴 돌았다. 바람이 시원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특히 나의 사촌동생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순천만에서 배를 타고 본 모습.


우리는 배에서 내려서 저녁을 먹고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와 삼촌이 내일 아침으로 먹을 라면과 과자등을 사오셨다. 우리는 과자와 오징어를 먹다가 내일 여행을 위해서 잠이 들었다.
일요일(22일) 아침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마침 주말이라서 나도 왠지 목욕을 하고 싶었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아버지를 깨워서 함께 집옆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다.

코밑에 수염이 날때쯤되면 목욕탕에 가기 싫어진다

나는 공중목욕탕에 가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정말 중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인 것 같았다. 왠지 중학생이 되니까 공중목욕탕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 그 이유는 여기서 말하기 좀 뭣하다.

하지만 이번에 큰 맘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공중목욕탕에 갔다.

나는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목욕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때 갑자기 내 눈에 '러닝머신' 이 눈에 띄었다. 내가 옛날에 없었던 것이 목욕탕에 있어서 약간 놀랐다.
 
그래서 나는 얼른 러닝머신 위에 올라서서 '출발' 버튼을 누르고 난생 처음 해보는 러닝머신 운동을 했다.(러닝머신을 본 적을 많이 있어도 실제로 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러닝머신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러닝머신 위에서 5분도 버티지 못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그렇게 목욕과 운동을 하고나서 사람들이 목욕을 한 뒤에 꼭 먹는다는 딸기우유를 먹으려고 했으나, 내가 딸기를 싫어하는데다 이미 우유를 아침에 먹었다는 이유로 그냥 음료수를 사먹었다.

오랜만에 몸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집에서 하는 것보다는 훨씬 개운했다. 이제부터는 괜히 부끄러워할 필요없이 공중목욕탕에 자주 가야겠다.
이번에 YMCA에서 운영하는 청소년문화의 집으로 가게되었다. 내가 거기에 간 이유는 바로 독서동아리를 만들기 위해서 였다.

나는 내 친구인 성진이와 함께 갔다. 우리가 청소년문화의 집에 가니까 거의 아무도 없었다. 아마 우리가 먼저 가서 일 것이다.


그리고 한 30분후 독서동아리의 아이들과 선생님이 오셨다. 그리고 먼저 각자 자기소개부터 하였다. 아이들은 한 명만 빼고 모두 중학교 2학년을 올라가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일단 먼저 청소년문화의 집에 대한 설명과 동아리를 만들 때 인원수, 지금 총 동아리의 개수 등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조금 읽을만한 책을 각자 말하여 보았다. 아이들이 말한 책 중에는 옛날에 내가 읽은 책도 조금 있었다.


그 다음에는 동아리의 이름을 정하기로 하였다. 동아리의 이름에 대하여 아주 많은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동아리의 이름을 잘 정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동아리의 이름은 다음에 모일 때 한 명씩 생각해 와서 괜찮은 이름으로 정하기로 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이제 언제 다시 모일지, 모일 때 가져올 책을 정하게 되었다. 모이는 날은 한 달에 한 번으로 다음 달 셋째주 토요일에 모이기로 하고, 그 때 가져올 책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들려주는 행복 이야기' 라는 아주 쉬운 책으로 정해졌다. 선생님께서 처음이니까 조금 쉬운 책으로 정하자고 하셨다.

나는 이 동아리를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활동할 것이다.

이번에 증조할머니 제사를 지내러 할아버지댁에 다녀왔다. 마산에서 진주 가는 버스를 타고, 진주에서 다시 택시로 하동군 진교까지 갔을 때, 진교에서 삼촌이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계셨다.

나와 부모님은 삼촌차를 타고 할아버지댁으로 가기 전에 먼저 어떤 장례식장으로 갔다. 왜 갔냐하면 바로 나의 사촌동생인 량호, 남호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거기에는 고모와 고모부도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밥을 먹고 다시 차를 타고 할아버지댁으로 갔다. 거기에는 나의 사촌 여동생들이 밤이라서 그런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자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할아버지가 제사를 지내면서 제문을 읽고 계시다.


다음날 밤 제사를 지낸 후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과 숙모 등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혼자 할아버지댁에 남겠다고 말했다. 학교가 봄방학을 하고 있는데다가 할아버지와 함께 더 있고싶어서 하루 더 있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단둘이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할아버지의 친구분들과 이웃 할머지들께서 와계셨다. 나는 그 분들과 아침을 먹고나서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어른들이 모두 돌아 가시고 난 뒤, 할아버지와 같이 TV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할아버지댁에서 계속 놀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 집에 갈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이대로 가버리면 할아버지께서 다시 혼자 계실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결국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할아버지댁에 하루만 더 있겠다며 허락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나. 작년 여름 경주에 가족여행을 가서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이다.


그리고 다음날 어제와 다름 없이 놀다가 점심을 먹고 짐을 싸서 할아버지께 눈물겨운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마산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내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고 할아버지댁에 할아버지 몰래 한번 더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그러면 할아버지께서 무척 좋아하실 것이다.

이번에는 설날때 이야기를  마저 써보려 한다.

나는 정확히 월요일인 설날 때 일어나서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고 삼촌과 숙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께 정성스럽게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 세뱃돈까지 받았다. 기분이 왠지 뿌듯하고 좋았다.

우리가족들은 아침을 먹고 잠시 쉬다가 이웃집들로 세배를 드리러 갔다. 나는 한집 한집 정성스럽게 세배를 드렸다.

세배를 모두 드리고 우리가족들은 산소로 성묘를 하러 갔다. 거기에는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묻혀계신 곳이다. 나는 산소에서 절을 하면서 우리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다.


우리들은 산소에서 내려오던 도중 또 다른 집에 들어가서 세배를 하고 다시 할아버지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무덤으로 가서 성묘를 지내고 또다시 할아버지댁으로 돌아갔다. 잠시뒤에 창원 고모네가 할아버지댁으로 왔다.

나는 사촌동생들과 밖에 나가서 연을 날렸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연이 아주 잘 날았다. 그런데 연이 두 개 있었는데 둘 다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어서 삼촌이 즉시 연을 고쳐주었다.

나와 내 사촌동생 량호는 신이 나서 다시 연을 날렸다. 이번에는 제법 능숙해져서 아주 재미있게 연을 날릴 수가 있었다.


나와 량호의 연은 아주 잘 날다가 갑자기 서로 엉키기 시작했다. 나와 량호는 얼른 엉킨 것을 풀려고 했다. 그러자 두 연은 아주 잘 풀렸다.

그런데 갑자기 엉킨 연을 풀다가 연 한 개가 전봇대에 걸려버렸다. 나는 량호의 연이 걸린 줄 알고 량호를 비웃다가 연을 잘 보니 내 연이 전봇대에 걸린 것이었다.

나는 내 연이 전봇대에 걸려있는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연을 전봇대에서 구해 보려 했지만 전봇대는 내 연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포기하고 다시 들어가려던 중 량호가 아주 재미있게 연을 날리던 모습을 보았다. 나는 왠지 량호가 엄청 부러웠다.

나는 연 날릴 때 실수를 만회하려고 어른들과 5000원을 걸고 윷놀이를 하였다. 나는 첫 판부터 지고 말았다. 돈은 나와 한팀이었던 할아버지께서 내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죄송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굳히고 다음 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다음 판에는 '모' 가 연속으로 나와서 정말 한 판에 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대승을 거두었다.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윷놀이를 끝내고 잠시 놀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가족은 내일 아침 일찍 마산으로 가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얼른 잠을 잤다. 그리고 새벽 6시쯤에 우리는 다른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산으로 즐겁게 돌아갔다. 정말 즐거운 설날이었던 것 같다.

설을 앞두고 나는 혼자서 금요일(23일)에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댁으로 갔다. 마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남해읍에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할아버지댁까지 갔다.

그 곳에는 할아버지만 혼자 계셨다. 나는 하루라도 더 빨리 할아버지의 곁에 있고 싶어서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더 빨리 남해로 갔던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댁에서 같이 tv도 보고 할아버지께 컴퓨터도 가르쳐 드리고 아주 즐겁게 지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고 저녁 때가 되자 삼촌네 가족과 고모네 가족, 울산 고모네 가족, 그리고 내 부모님들까지 모두 오셨다. 나는 같이 온 나의 사촌동생들과 컴퓨터게임을 하고 밤에는 같이 담력테스트도 했다. 그리고 아주 귀여운 내 막내사촌을 안아주면서 또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다.


어머니의 지시로 사촌동생들과 반찬거리를 가리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창원, 울산고모네 가족이 모두 자기들의 시댁으로 갔다. 나는 아쉽게 인사를 했다. 그래도 시댁보다 먼저 와주니 우리들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내 사촌동생들과 또 다시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내 막내사촌은 이제 말도 꽤 잘하고 더 예뻐졌다. 나는 그런 동생들이 너무 귀여웠다. 동생들은 나를 아주 잘 따랐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모두 일하시고 같이 놀아줄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제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준비하고 정말 빠쁘셨다. 나는 애들과 같이 놀아주다가 제사가 시작되자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했다. 그리고 제사가 끝난 뒤 나는 맛있는 제삿상 음식들을 먹었다. 모두 맛있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소고기가 가장 맜있었다.


우리는 밤이 되자 잠자리에 누웠다. 지금은 설연휴라 그런지 설특선 영화가 많이 방송됬다. 나는 그 영화들을 보면서 평소에 잘 오지 않던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10시에 학교에서 대청소를 하기위해서 오랜만에 학교로 갔다.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거의다 와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반갑게 반겨주었다. 나 또한 오랜만에 보는 반친구들이 무척 반가워웠다.

나는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놀다가 갑자기 우리반의 담임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체육시간 때처럼 줄을 서보라고 하고 각자 청소를 할 장소를 정해주셨다.

나는 내 친구 한 명과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나와 내 친구가 지정된 화장실은 무척 깨끗해서 청소를 빨리 끝낼수 있었다.

우리들은 청소를 끝내고 우리가 모였던 장소로 다시 모여서 화단에 있는 쓰레기를 대충 줍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대청소라길래 엄청 거창하게 오랫동안 하는 청소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청소가 빨리 끝났다.
 
우리가 모인 시간은 10시인데 청소를 끝내고 마치는 시간은 10시 30분 이었다. 나는 청소가 빨리 끝나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학교에세 내려와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친구들이 태워주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바람도 쐐고 그리웠던 친구들고 만나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정말 보람찬 하루였던 것 같다.
어제 저녁 어머니께서 11일만에 해외캠프에서 돌아오셨다. 나는 정말 어머니가 반가웠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부탁한 고급 체스를 사오지 않으셨다. 나는 무척 아쉬웠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본 것 만으로도 아주 만족했다. 거기다가 어머니는 스위스제 초콜릿과 유럽과자, 옥스퍼드 대학이라는 영어가 새겨진 멋진 모자달린 티도 사오셨다. 실제 옥스퍼드대학에서 사셨다고 한다. 나는 정말 어머니께 감사했다.

어머니가 사오신 옥스퍼드 티를 입고...


나는 어머니께서 사오신 초콜릿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머니가 내가 입고 있는 옷차림이 이상하다고 막 꾸중을 하셨다.

나는 살짝 화가 났다. 캠프를 다녀오고 10일만에 다시 보는 것인데 어머니가 화를 내시니까 어머니가 실망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어머니를 무척 반가워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화를 내시자마자 갑자기 어머니가 확 싫어졌다.


나는 어머니가 짜증나서 얼른 옷을 바꿔입고 다른 방으로 갔다.

그런데 잠시 후 어머니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나에게 밥을 지으라고 하셨다. 피곤하시다는 핑계로 얼렁뚱땅 넘어가시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짜증났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그냥 넘어갔다. 이번에는 아주 능숙한 솜씨로 밥을 지어놓고 어머니의 옆에 누워서 티비를 보았다.

나는 그래도 아까 어머니가 화를 낸 것에 대해 조금 앙금이 남아서 어머니의 옆에서 자지 않고 오랜만에 내방의 침대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어머니께서 맛있는 쑥국을 끓이고 파래반찬도 해놓은 데다가 설거지도 다 해놓으셨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침밥을 먹는 동안 어제 싸운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다시 서로 반가워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스키캠프의 마지막날이다. 이번에는 둘째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을 먹고 스키장으로 가서 간단하게 몸을 푼뒤 둘째날에 연습했던 것을 몇번더 연습하고 선생님께서 자유롭게 보드를 타라고 하셨다.
 
우리는 각자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자기마음대로 보드를 탔다. 나는 속도도 낮추지 않고 쭈욱 갔다. 그러다가 얼음덩어리에 걸려서 스키장 한 가운데 넘어졌다. 나를 사람들이 치고 갈까봐 두려워서 어서 몸을 일으켜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는데 정말 한번도 안넘어지고 시원하게 쭈욱 내려왔다. 한번도 안넘지고 내려온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는 다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고 다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는 한번만 더 타고 모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더 타고 모이는 장소로 갔다. 그런데 내가 잘 생각해보니까 나는 자유보드를 탈 때 넘어진 것은 처음에 넘어진 것 말고는 한번도 없었다. 정말 기분이 최고였다. 그 순간 나는 보드가 어려워서 다시는 스키캠프를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왠지 내년에도 스키캠프를 더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모였던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아직 오시지 않으셨다. 나는 조금 섭섭 했다. 그래서 얼른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나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후 어머니께서 뛰어 오셨다. 정말 반가웠다.

친구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신나고 재미있던 2박3일 이었다.
이번에 마산YMCA와 고려태권도장에서 개최하는 스키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스키캠프에 갔는데 새롭게 "보드팀" 생겼다. 나는 보드를 타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안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스키를 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스키타는 곳으로 가는데 보드를 타는 어떤 동생이 나한테 보드타는 것을 양보했다. 나는 정말 고마웠다. 돈은 더내야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스키장과 우리가 머물 숙소는 서로 붙어 있었다. 우리같이 캠프를 오는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만들어 놓은것 같았다.


우리는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스키장으로 갔다. 거기에서 우리는 보드를 신는법과 안전규칙, 보드를 타는법 등을 배웠다. 처음 보드를 탈때는 엄첨 어려웠지만 점점 타다보니까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점점 보드가 재미있어 졌다.

그렇게 우리는 보드를 계속 배우다가 다시 숙소로 와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아주 재미있게 숙소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야간스키를 타자고 나간다고 했다. 우리는 빨리 준비를 하고 다시 스키장으로 가서 밤중에 다시 스키를 배웠다. 조금 추웠지만 매우 재미있었다.

저번에 강풀만화가 원작인 "순정만화"라는 영화를 보았다. 역시 강풀이 만든 스토리라서 아주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강풀 만화가 아저씨가 직접 출연하셨다. 조금 어색했지만 아주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 "소녀시대"의 수영누나까지 등장해서 정말 기뻤다.

 

만화가 강풀 아저씨도 영화에 출연하셨다.


이 영화는 만화랑 다른 부분이 많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만화와 달랐다. 만화의 시작은 엘리베이터인데 영화에서의 시작은 아파트옆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였다. 하지만 곧 엘리베이터에서 만화와 똑같이 진행이 되었다.

그러다 여주인공이 주인공의 넥타이를 지하철 안에서 빌리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만화에서는 지하철 안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에서 빌린다. 역시 영화와 만화가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영화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사진을 찍으면서 끝난다. 하지만 만화에서는 남자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키스를 하면서 끝난다. 거기에다가 순정만화에 나오는 강숙이란 사람은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직장동료로 나오지만 만화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나온다.

영화는 여름에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계절이 여름으로 나오지만 만화에서는 겨울로 나온다. 이렇듯 만화와 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많이 다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마 원작과 영화가 조금씩 다른 것은 원작에 있는 내용을 영화가 모두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작에 있는 감동도 영화에 모두 담을수가 없다.

솔직히 이번에 영화로 본 순정만화에서 만화로 본 순정만화의 감동의 전부는 느낄 수는 없었다. 앞으로 다른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때 작가의 마음을 모두 그 영화에 담아줬으면 좋겠다.
순정만화
감독 류장하 (2008 / 한국)
출연 유지태, 이연희, 채정안, 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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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맘마미아'라는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맘마미아는 뮤지컬영화였다. 옛날에도 '메리포핀스', '사운드오브뮤직' 등의 뮤지컬영화를 봤지만 이번에 본 맘마미아는 지금까지 본 뮤지컬영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은 영화의 스토리. 영화 맘마미아는 지금까지의 뮤지컬영화에 나오는 스토리와는 뭔가 다른 재미있고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꼼꼼한 사랑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뮤지컬 영화들의 스토리는 뭔가 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맘마미아의 스토리는 정말 말 그대로 완벽한 스토리였다.


두번째는 스케일. 맘마미아가 가장 최근에 나온 뮤지컬 영화라서 그런지 지금까지의 뮤지컬 영화와는 비교도 안되는 큰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췄다. 노래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같이 부르고 리메이크도 아주 잘한 것 같았다.


마지막 세번째는 노래. 맘마미아에 나오는 노래는 옛날에 아주 인기가 많았던 외국가수그룹 '아바'의 노래들이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대부분 다 신나고 흥이 나는 아주 재밌고 따라부르기도 쉬운 노래들이 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맘마이아를 다 보시고 영화관에서 나오실 때 맘마미아에 나오는 노래들을 씨디로 팔면 아주 많이 팔릴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진짜 아버지의 말씀대로 맘마미아 씨디가 발매되었다. 우리가족은 그 씨디를 바로 구입하였다.

맘마미아를 본 다음날 아침 우리가족은 맘마미아에 나온 노래들을 컴퓨터로 틀고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도 하고 따라부르기도 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우리가족이 화기애애한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맘마미아 덕분이였다.


맘마미아!
감독 필리다 로이드 (2008 / 독일, 영국, 미국)
출연 메릴 스트립, 아만다 세이프라이드, 콜린 퍼스, 피어스 브로스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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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토요일에 마산MBC에서 하는 '어린이 영상체험 캠프'에 다녀왔다. 그 캠프는 평소에 잘 아는 친구들과 함께 갔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같은 조가 되어서 MBC에서 하는 영상수업을 들었다.

일요일 저녁 6시까지 각 조의 영상작품을 찍으라고 하셨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우리 조의 친구들과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각 조의 영상 주제를 정했다. 우리조의 주제는 바로 '폭력' 이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기대를 많이 하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밤에 치킨을 시켜먹었다. 그리고나서 다른 조는 전부 쉬고 있는데 우리 조만 영상을 찍고 있었다. 오늘 다 찍고 내일 많이 쉬겠다는 수작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영상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리 조는 촬영장소를 계속 바꿔 가며 몇 번의 촬영을 거듭하여 마침내 밤10시부터 시작한 촬영이 새벽3시에 결말이 되었다. 정말 힘들었었다.

우리 조는 촬영을 마친뒤 숙소로 돌아와서 다른조 는 거의 다 자는데 우리 조만 컴퓨터를 켜고 각자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일요일) 우리 조는 아침 10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12시까지 먹은 뒤 짐을 싸서 다짜고짜 PC방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PC방 앞에는 이상한 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무사히 PC방으로 들어갔지만 나와 내 친구 '장운이'는 각자 5000원씩 돈을 뜯겼다. 정말 짜증났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PC방에서 실컷 놀고 나오니까 속이 아주 쉬원했다.

우리 조는 오후 2시까지 PC방에서 놀다가 당장 짐을 챙겨서 마산MBC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조의 아이들이 많이 와있었다.

우리 조는 당장 편집을 시작했다. 편집은 내가 감독을 맡았고 내 친구 '성진이'는 옆에서 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은 우리 조의 간식을 사러 갔다.


나와 성진이는 편집을 시작했다. 그런데 편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냥 중간 중간에 이상한 부분은 잘라버리고 부족한 부분은 붙여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였다. 나는 또 영상이 아주 어렵게 조작하는 작업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처음으로 조폭들이 몽둥이로 때리는 장면의 중간부분을 잘라내어 몽둥이로 아주 세게 때리는 장면으로 바꾸었다. 그것을 본 선생님은 아주 감탄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아주 재능이 있다고 하셨다. 나는 기분이 왠지 좋았다.

그리고 4시간여의 편집을 끝낸뒤 우리 조는 무려 2시간동안 쉬었다. 그건 아마 우리 조가 빨리 끝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 한 명이 없어졌었다. 그 친구는 바로 나와 제일 친한 '지성이'라는 친구였다. 다른 친구들 말로는 집으로 도망갔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매우 실망하였다. 

마침내 영상이 공개되는 순간이 되었다. 우리 조는 매우 두근거렸다. 우리 조의 영상의 내용은 한 왕따가 조폭들한테 맞다가 그 왕따가 나중에 엄청 화가 나서 자신을 때리던 깡패들을 혼내준다는 내용이다. 이 영상에서 감독으로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들과 다른 아이들은 잘 이해가 되지않은 모양이였다.

결국 우리조의 영상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이번 캠프를 통해서 영상이라는게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때까지 나는 영상같은 것은 그냥 카메라로 찍으면 그냥 완성되는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하나의 영상이란 출연자와 편집하는 사람들 찍는 사람들 등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앞으로는 TV를 볼때 TV의 내용만 보지 않고 TV속에 나오는 영상을 만들 때 함께 제작했던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보겠다.

일본캠프의 4번째 날. 우리는 역시 다른 날처럼 호텔조식 후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로 이동하였다.

제일 처음으로 간 곳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죽은 A급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라는 곳이다. 그 곳은 징용 등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2만 명이나 되는 한국인의 위패도 같이 있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일본의 전쟁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같이 죽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은 그 곳에서 일본 때문에 죽어간 한국사람들을 잊지 않으려고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곳에 있는 직원이 신사의 내부를 찍지 말라고 하였다. 정말로 안타까웠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바로 '메이지 신궁'이라는 곳이다. 그 곳은 일본의 신들을 모셔놓은 곳이었다.

메이지 신궁은 일본의 근대화에 큰 도움을 준 메이지 일왕 부부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신사이다. 이 곳은 1년이 시작되는 달에 가장 많은 참배객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이 그 만큼 신을 굳게 믿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일본에서 유명한 대학인 '동경대학교'로 갔다. 정말 그 곳은 넓었다. 대학교라 해서 그냥 그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넓었다. 동경대학교를 보니까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이런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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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젊음의 도시로 유명한 '히라주쿠'에서 자유식으로 피자를 먹었다. 우리가 간 피자가게는 꽤 인기가 좋은 피자가게였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 이벤트를 하여 '피자뷔페'를 하였다. 그 것은 바로 일정한 돈을 내고 피자를 자기가 원하는 데로 먹을 수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만큼 먹을 수있기에 그 만큼 돈이 비쌌다. 그래서 제일 큰형들이 모자란 돈을 보태 주었다. 정말 형들에게 고마웠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뒤에 우리는 일본의 '국립 과학관'으로 갔다. 그 곳은 저번에 갔던 '미래 과학관'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과학을 보여주는 곳이였다. 우리는 잠시 후 국립 과학관에서 나와 옆에 있는 '국립 박물관'으로 갔다.

그 곳은 일본의 문화재는 물론이고 한국과 중국, 이집트등의 중요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소장품이 너무 많아서 1~6개월마다 전시품을 교체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도쿄 타워'라는 곳이였다. 도쿄 타워는 프랑스의 '에펠탑'보다 8.6m이상 더 높은 전파탑으로 도쿄 타워의 꼭대기층으로 가면 도쿄를 한 눈에 바라볼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아버지께 선물할 볼펜을 샀다. 그 볼펜에는 영어로 '도쿄 타워'라고 세겨져 있었다. 정말 멋있는 볼펜이였다. 아버지께서 정말 좋아하실 것 같다.

일본캠프 5번째 날이었다. 이번에는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우리는 얼른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아사쿠사 관음사로 이동하였다. '아사쿠사 관음사'는 '아사쿠사 센소지'라고도 불리며 옛날에 어떤 어부형제가 물고기를 잡으려다가 물고기 대신에 그물에 걸려온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기 위하여 세워진 도쿄의 대표적인 사찰로 40~50명의 승려가 거주한다고 한다.

우리는 '아사쿠사 관음사' 관광을 빨리 끝내고 '도쿄 디즈니 랜드'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서 선생님께 2000엔(약 2만원)의 돈을 점심-저녁밥 돈으로 받고 팀을 짜서 드디어 '도쿄 디즈니랜드'안으로 입장하였다. 나는 내 친구인 장운이와 승연이라는 아이와 짝이 되었다.

우리는 먼저 '캐리비안의 해적'을 탔다. 그 것은 유명한 영화인 '캐리비안의 해적'을 주제로 하여 그 영화의 주인공들을 전시해 놓고 배를 타는 것 이었다. 정말로 재미있는 놀이기구였다.

우리는 점심으로 닭고기를 사먹었다. 하지만 너무 짜서 그렇게 썩 맛있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은 뒤, 기차를 탔다. 너무 느려서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시간낭비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보트를 타기로 했다. 내가 먼저 줄을 서고 있다가 아이들이 새치기를 하려고 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들은 오지를 않았다. 결국 할수없이 혼자서 외롭게 보트를 타고 아이들을 찾아 다니다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다가 너무 더워서 그늘을 찾아 다니다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는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나는 선생님이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보다가 아까 잃어버린 승연이를 만났다. 승연이도 장운이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과 헤어지고 승연이와 함께 다녔다.

승연이와 함께 다니다 보까 시간이 1시간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마지막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줄이 너무 많아서 거의 30분 정도나 기다려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래도 롤러코스터가 너무 재미있어서 줄섰던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니 20분정도 남아있었다. 그래서 놀이기구를 하나 더 탈까 했지만 그냥 디즈니랜드에서 나와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일본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냈다. 내일은 일본캠프를 마치고 한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정말 이번 5일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배운것 같다. 정말 즐거운 캠프였다. 중간에 힘들고 괴로운 때도 있었지만 다른나라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는게 내게는 정말 행복한 추억이었다. 정말 비싼 돈을 내주시고 일본캠프를 보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공부도 잘하고 뭐든지 열심히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은 나의 일본캠프 세 번째날을 적을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후지산캠프장 조식을 먹은 뒤에 버스를 타고 오다이바로 이동하던 중에 후지산이 눈에 보였다. 정말 신기했다. 지금은 여름인데 눈이 내리다니 어이없었지만 정말 멋있었다.

우리는 오다이바에 도착하여 과학 미래관으로 갔다. 그 곳은 미래의 과학을 보여주는 꿈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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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이 과학자이기 때문에 그 곳을 더 열심히 보기로 하였다. 나는 그 곳을 1층부터 7층까지 계속 돌았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질리지 않을정도로 재미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말 과학 미래관을 보니까 나의 꿈이 더욱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과학 미래관을 나와서 후지TV 본사로 갔다. 후지TV 본사는 일본에서 꽤 유명한 방송국으로 지상25층, 지하2층, 옥탑1층으로 된 거대한 건물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부채를 선물로 받았다. 일본이라서 상당히 더웠다. 그래서 부채를 받은 것이 정말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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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후지TV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계단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들어 가는 게 엄청 힘들었다. 그 안에는 전부 일본어로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웃긴 일본방송이 많아서 재미있기는 하였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도요타 자동차'전시장으로 갔다. 정말 멋있는 자동차가 많이 있었다. 멋진 자동차들을 계속 구경 하다가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길래 그 곳으로 가봤다. 거기에는 자동차경주 오락기가 있었다.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나도 오락기를 기다리고 있는 줄을 서서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한참 후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운전대를 잡았다.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락기가 공중으로 붕 뜨더니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열심히 엑셀을 밟았다. 벽에 많이 부딪쳤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완주를 성공하였다. 기분이 좋았다.

이번 세 번째 날도 매우 즐거운 하루였다. 우리는 첫째 날에 있었던 호텔로 갔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오늘의 느낀 점은 의사소통이 안되면 엄청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 후지TV 본사에서 일본글자를 하나도 몰라서 전혀 배울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옆에서 설명하는 일본사람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사람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면 오늘 배운 것의 2배는 더 배울수가 있었을 것이다.

일본 여행 둘째날 아침 호텔에서 일어나서 뷔페를 먹은 뒤에 하코네에 있는 '하코네 국립공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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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매우 아름다웠다. 우리는 아시노코라는 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와쿠다니라는 곳으로 갔다. 우리는 오와쿠다니에서 검은 계란을 팔길래 그것을 친구들과 같이 사먹었다. 정말 뜨거웠지만 맛있었다. 그 검은 계란을 먹으면 그 먹은 사람의 가정이 무려 7년동안이나 행복해진다고 가이드 누나께서 말씀해 주셨다. 정말 그 계란을 먹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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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우리가 간곳은 '유네순 온천'이라는 곳 이였다. 그 곳에서 우리는 시원하게 온천욕을 체험하였다.

그 온천의 온천물은 한국의 온천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하지만 정말 개운하였다. 그런데 온천욕을 즐기러 온 일본사람들은 목욕을 할 때 그 곳(?)을 수건으로 가리는 것 이였다. 그에 대하여 궁금하여 선생님게 물어보았더니 일본에서는 목욕을 할 때에 그러는 것이 예의이자 도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개운하게 목욕을 한뒤에 후지산안에 있는 YMCA캠프장으로 갔다. 그 곳에서 저녁을 먹은 뒤 밖으로 나가서 캠프파이어를 하였다. 하지만 중간에 애들이 너무 시시하게 논다고 선생님께서 실망하셔서 바로 들어 가신다고 하시자 우리들은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한 뒤에 더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나도 왠지 그 때에 마음이 너무 흥분이 되어서 엄청나게 신나게 놀았다. 그러자 친구들도 더 열정적으로 놀고 춤추기 시작하였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게 재미있는 캠프파이어는 처음이었다.

오늘도 역시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매우 재미있는 날이었다. 오늘의 느낀 점은 바로 일본은 매우 깨끗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일본은 정말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깨끗하였다.

한국은 길거리가 쓰레기들 때문에 아주 더럽지만 그에비해 일본의 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정말 깨끗하였다. 여기에서 알수 있는 점은 바로 일본사람들은 한국사람들보다 기초질서에 대한 매너가 아주 좋은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매너가 좋기 때문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버리지 않아서 길거리가 깨끗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서로 매너가 좋고 기본예절과 도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일본은 그렇게 거대한 선진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매너 좋고 깔끔한 일본 사람들이 독도 문제처럼 남의 나라에는 왜 그렇게 매너가 개떡인지 모르겠다. 자기 나라 국민들끼리만 매너가 좋고 남의 나라에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로 하면서 전쟁도 가장 많이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이 남의 나라에 대해서도 기본매너를 좀 지켜주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일본으로 캠프를 다녀왔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무려 139만원이나 내고 보내주신 캠프이다.
일단은 부산에 있는 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 이번에 일본으로 가는 것은 두번째이다. 하지만 도쿄로 가는 것은 처음이다. 정말 이번 캠프는 기대가 된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려 도쿄의 땅을 밣았다. 그리고 미리 예약해둔 버스를 타고 지브리 박물관이라는 곳으로 출발하였다. 도쿄는 역시 일본의 수도라서 그런지 차가 무척이나 막히고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우리는 버스에서 이동중에 오아시스의 이름을 이용하여서 몇가지의 일본어를 가이드 누나에게서 배웠다. 먼저 오아시스의 '오'는 오하요 고자이마스라는 아침인사고, 오아시스의 '아'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는 감사의 표시이고, '시'는 시쯔레이 스마스로  '실례합니다'라는 뜻이며, 마지막으로 오아시스의 '스'는 스미마셍으로 '미안합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일본어를 간단하게 배운 뒤에 지브리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지브리 박물관은 '이웃집 토토로'나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등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미야자키 히야오는 일본에서 꽤 유명한 만화가로서 그의 첫 데뷔작품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미래소년 코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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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브리 박물관으로 가서 제일 처음에 15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그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자기들보다 더 강한 무서운 동물들 속에서 이루어진 곤충들의 애틋하고 멋진 사랑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나도 그 애니메이션을 보고 조금은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곤충들이 사랑을 한다는게 조금 이상하기도 하였다.

그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우리는 자유시간을 받았다. 나는 친한 친구들인 지성이와 성진이와 함께 다녔다.

우리는 먼저 지브리 박물관을 한바퀴 돌고 나서 상점으로 갔다. 그런데 지성이가 갑자기 덥다면서 상점에서 나가는 것이였다. 지성이를 찾으려고 따라 나갔지만 이미 지성이는 없었다. 지성이가 걱정이 되어서 성진이와 같이 찾으러 나갔다. 그런데 지성이는 벌써 1층으로 가 있었다. 우리는 지성이를 다시 데리고 한바퀴 더돌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브리 박물관을 나와서 신주쿠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은 뒤 우리가 취침할 호텔로 갔다. 호텔의 한 방은 2인용이였다. 나는 성진이와 한 방이 되였다. 우리는 간식으로 햄버거를 사먹으러 호텔의 1층으로 내려 갔는데 햄버거를 자판기로 뽑아 먹을 수 있었다. 일본이 자판기로 유명하다지만 햄버그를 자판기로 판다는 게 정말 신기하였다.

오늘의 느낀 점은 일본은 정말 편리한 나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어느 화장실을 가도 수도 꼭지가 자동인 것과 무엇이든 자판기로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을 너무 좋아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일본은 옛날부터 우리나라를 많이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일본에게서는 배울점도 있긴 하지만 절대 배워서는 안되는 점도 많이 있다.

저번주 토요일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로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지리산에 있는 산청으로 오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더 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산청으로 갔다. 정말 배고프고 피곤하였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산청으로 여행가는 것이 엄청나게 귀찮고 싫었다.

어쨌든 어머니와 함께 산청에 도착하니 아버지께서 친구분과 함께 우리를 마중하고 계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아버지 친구분의 집으로 갔다. 그 곳에서 발을 씻고 맛있는 저녁을 먹은 뒤에 아까 샀던 초콜릿을 들고 곳곳에 있는  만화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우리집에 없는 만화책이 많이 있어서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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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친구분의 집 앞마당. 사진은 아버지가 찍은 것이다.


그래서 산청으로 오기 전에 귀찮고 싫어했던 생각들은 모두 잊어벼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놀다가 장기판을 들고 우리 가족이 자는 방으로 가서 아버지와 장기을 두었다. 장기는 모두 3판 했는데, 그 3판 모두 나의 패배로 끝이 났다. 처음에는 내가 이길려고 하다가 계속 져버렸던 것이다. 3판 모두 지다니... 정말 아쉽고 분했다.

하지만 다음에는 내가 꼭 이길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불을 끄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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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친구분과 덕천강 도하작전 중.


다음날 아침 일요일에는 지리산에 있는 계곡으로 차를 타고 갔다.

거기에서 발만 물에 담그고 놀다가 아버지 친구분께서 갑자기 돌을 물에 던져 계속 튕기게 하셨다. 정말 멋있었다. 그것은 '물수제비'라는 일종의 기술이었다.

나도 따라해 보려고 돌을 집어 던져 보았지만 아무리해도 2번조차 튕기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먹고 계속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돌을 던지자 그 돌이 무려 7번이나 튕겼다. 정말 속이 뻥뚤린것 같이 쉬원하였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와 아버지,그리고 어른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뭐든지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계곡에서 나와서 옆에 있는 찻집으로 갔다. 거기에서 차를 마셨는데 그 맛이 아주 일품이였다. 그 맛에 반하여 나는 계속 차를 마셔댔다. 그래도 계속 마시니까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맜있는 차는 처음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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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산청 황차라고 한다.

 
이번 산청여행은 아주 재미있었다.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 후회가 전혀 되지 않는다. 정말로 즐거웠다.

나는 오늘  아버지께서 블로그로 초대를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나의 블로그를 만들수있었다.
바탕색은 검은 색으로 하였지만 아버지께서는 검은 색을 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래도 나는 검은 색으로 하였다.
정말 멋었었다. 나의 네이버블로그보다 훨씬 멋있었다.
나는 오늘 만든 블로그에 내가 쓴 독서기록을 게시물로 올리기로 하였다.
아버지께서도 그말에 찬성하셨다.
나는 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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