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버지 방으로 간 저에게 아버지는 옷장 서랍 구석에 꼭꼭 숨겨둔 곳에서  왠 나무상자 하나를 꺼내 주셨습니다. 


상자 속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동전더미가 들어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몇년간 모으신 동전들이라고 하시면서 용돈으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양이 많다보니 은행에 가서 지폐로 바꿔야 할 것 같아서 바로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동전을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은행에 가서 지폐로 바꾸려면 종류별로 나눠서 가져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100원, 500원, 50원 등의 종류를 분류하는 김에 액수를 세면서 했습니다. 그래야 뭔가 의욕도 생길 것 같아서ㅎㅎㅎ


비록 동전이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점점 꽤 큰 돈이 되더군요. 거의 2시간이 걸린 작업이었지만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분류를 다 하고, 동전을 다시 모아 은행으로 들고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워서 엄청 당황했습니다. 


집에서 은행까지 10분정도 걸리는데 동전을 세는 2시간보다 은행까지 동전을 들고가는 10분이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은행 영업 상 동전을 지폐로 바꿔주는 것은 보통 오전에만 진행해주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뭐 어찌어찌 동전을 바꿀 수 있었는데, 은행직원 분이 제가 들고 온 동전의 양을 보고 살짝 당황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동전을 지폐로 바꿔서 잘 가져왔습니다. 모아 둔 동전을 바꿔오니 뭔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주신 동전이지만 오늘부터 저도 동전을 모아서 몇 년 뒤에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기분좋은 돈이 생기는 느낌일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군대라는 곳에 대해 참 거부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휴전중인 국가에서 '군대'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기본적인 두려움과 20살이 넘으면 가야한다는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싫어하게 되고 피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보통 어른들이 어린 남자애들한테 하는 "네가 군대 갈 나이가 되면 통일이 될꺼다.", "네가 20살 되면 군대가 없어질꺼다." 등의 말들이 듣기 좋았고 믿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군대에 대해 별 생각없이 지내다가 20살이 넘고 군대를 다녀온 주변 형들이나 슬슬 군대를 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군대를 가야한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뭐 금방 현실을 받아드리고, 육군이나 해군 등 여러 곳을 지원하다가 가장 먼저 합격한 의무경찰로 입대가 결정되었습니다. 



의경에 지원하기 전까지 '의경'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던 저는 의경에 가게 되었다는 제 소식에 놀라는 주변 지인들의 반응에 당황하기도 했었죠. 


의경에 지원할 때 체력검정과 시험, 면접... 등 여러 가지 테스트가 있었던 듯 한데, 사실 그 당시 기억도 잘 안 나고 운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기도 하네요 


뭐 어찌됐든 입대 전에 남들 다 해보는 '이등병의 편지'도 불러보고 친한 사람들 만나서 놀기도 하다가 작년 2월 초에 논산 훈련소로 입대를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논산 훈련소를 나오셨다고 하셔서 왠지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었죠.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과 인사하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요. (사실 한달 헤어지는 건데 왜 그리도 서러웠는지 참.)



훈련소를 마치고 의무경찰 교육도 받은 뒤, 자대에 배치받아 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1개월 간의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2017년 11월 3일부로 전역을 했습니다. 


물론 육군이나 다른 군대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청춘을 낭비한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의 의미에서 군대라는 곳이 참 사람에게 생각을 많이 하도록 하는 곳입니다. 


20살이 되고 대부분 처음으로 '계급'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맞닥뜨리는 곳이고, 어떤 조직에 필요한 사람으로서 생활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어떤 일이든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21개월간 이런 저런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많았지만 주변 형들이나 어른들의 말씀처럼 그 당시에는 진짜 힘들고 견디기 버거운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니 지금은 대부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의 기억이 된 것 같습니다. 


전역을 하니 역시 큰 짐을 덜어냈다는 기분이 들고,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얼마전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께 강의를 부탁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태봉고 졸업생'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내용의 강의를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이미 태봉고를 졸업한 몸인데, 이렇게나마 계속 찾아주시는 게 오히려 제 쪽에서 많이 감사했습니다. 당연히 고민도 없이 흔쾌히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름대로 강의를 하게 되었으니 최대한 재미있고, 알찬 내용을 학부모님들께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자녀들을 처음 태봉고에 보내는 7기 학부모님들이고, 또 제 강의가 학부모 연수의 마지막 순서라 엄청 중요한 역할이지 싶었습니다. 


강의는 졸업한 후의 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셔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계속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 20살 때 다녀왔던 국제자원활동 프로그램인 라온아띠의 15기 국내훈련의 동반자(스태프)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동반자로 9일간 활동하면서 지구시민 국내훈련을 다시 받았는데, 이 지구시민 교육의 내용을 제가 할 강의에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라온아띠의 지구시민 교육과 제가 졸업한 태봉고의 대안적인 가치가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라온아띠에서 중요시하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태봉에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강의의 전체적인 내용을 '라온아띠'로 맞췄습니다. 졸업한 뒤의 저의 삶을 라온아띠에 초점을 잡고 라온아띠로서의 활동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사실 학부모님들이 어떤 강의를 원하는지 알기가 힘들었습니다. 태봉고를 다녔던 졸업생의 입장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님들이 걱정하고 계시는 졸업후 자녀의 진로같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아직 제가 어리고 사회적으로 뭔가 위치를 잡은 상태도 아니어서 준비하기가 좀 까다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진로나 삶의 방향성보다는 저와 제 친구들을 비롯해 태봉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이런 것들을 학교에서 느끼고 가며, 이런 생각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것', 나아가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개성 강한 45명이 모여 학교생활을 하는 태봉고에서 타인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대안학교 학생으로서 진정으로 얻어가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강의가 끝나고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은 저에 대한 것, 제 삶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성심성의껏 답해드렸습니다.


많이 어설프고 준비도 미흡했던 강의였지만, 학부모님들께서 많이 좋아해주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강의가 앞으로 태봉고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잘 모르지만, 저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전 부모님과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큐슈의 후쿠오카에 내려 하카타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벳푸라는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기 위해 일본에서 가이드 없이 가족들끼리만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버스표도 구입했는데, 일본은 버스 시간표가 특이했습니다. 



버스의 출발시간이 모두 11시 31분이나 41분, 44분, 59분 등 분단위로 딱딱 정해져 있더라구요. 정각이나 50분 이렇게 정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11시 31분! 이런 식으로 출발시간을 정하다니 좀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한국사람들과 일본사람들의 시간개념이 달라서겠죠? 


차를 너무 많이 타서 힘들기는 했지만 일본에서 직접 길을 찾아다니는 게 재밌더라구요. 짧은 영어와 인터넷에서 급하게 본 간단한 일본어로 무사히 예약한 숙소까지 갔습니다. 


일본은 길이 참 예쁜 것 같았습니다. 도시에는 전봇대가 없어서 탁 트여있는 하늘에 건물들이 멋있었고, 약간 시골에는 낡은 전봇대가 그 자체로 뭔가 정겹고 예쁘게 보였습니다.


숙소까지 가면서 화장실을 많이 갔는데, 일본은 화장실을 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편의점마다 화장실이 다 설치되어 있고, 시골의 화장실도 엄청 깨끗하고 물도 전부 자동으로 나오더군요.



가장 인상 깊었던 화장실은 한 작은 건물에서 본 화장실입니다. 차를 오래 타고 길을 걷다 한 건물의 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물어봤는데, 직원이 가르쳐 준 화장실은 장애인 표시가 있었습니다. 


일반 화장실이 따로 있는 줄 알고 건물을 거의 다 돌아다녀 보았지만 그 건물의 화장실은 아까 본 장애인 화장실이 전부였습니다. 뭔가 이상해서 1층으로 와서 아까봤던 화장실 문을 다시 보니 제가 착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TOILET FOR EVERYONE' 게다가 '모두의 화장실'이라고 한글로 딱 적혀있었습니다. 들어가보니 큰 변기와 남자용 소변기,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손잡이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화장실은 장애인과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 모두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장애인 전용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것입니다. 


원래는 화장실을 여러 개 따로 지을 돈이 없거나 공간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생각 자체가 좀 좋은 것 같네요. 


짧았지만 여러 가지로 재밌는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던 일본 여행이었습니다. 



요즘에 '프로듀사' 라는 드라마의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방송국 PD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그려 낸 드라마입니다. 옛날에 제가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기에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KBS의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을 보고 제가 방송국 PD가 되고싶었는데, 드라마 프로듀사의 주인공 라준모(차태현 분)이 맡은 프로그램이 바로 1박2일이었습니다. 



저도 예능PD가 되어 1박2일같이 참신하고 재미있는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는데,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1박2일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방송국PD라는 꿈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면서 예전에 그 꿈을 꿀 때의 제 모습이, 그 때의 감정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는 영상도 많이 정말 만들었고, 공부라면서 예능 프로그램들을 모조리 챙겨보고 열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뭐 대학생활이 바쁘니 어쩌니 하면서 열정이 많이 식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니 제가 방송국 PD를 꿈꿨던 그 때가 정말 순수하고 멋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신입사원으로 등장하는 백승찬(김수현 분)을 보면서 '내가 만약 PD가 되었으면 저랬을까?'하는 생각도 했죠.


주인공 백승찬은 방송국에 들어가 맨날 야근하고 선배들에게 혼나면서 온갖 고생을 겪는데도 정말 즐거워 보였습니다. 1박2일 촬영을 하고 편집하는 장면은 제가 많이 꿈꿨던 모습이라 부럽기도 했습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은 영상에 관심이 떨어졌다고 해도 언젠가 또 열정이 생겨서 PD가 되고싶다거나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이 있겠죠. 


저는 그저 드라마 프로듀서를 보면서 잠깐 잊고 살았던 예전의 열정적으로 꿈꿨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 힘이 많이 났습니다. 


드라마 프로듀서는 제가 PD의 꿈을 옛날에 가졌던 게 아니라도 여러 가지로 참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있는 드라마입니다. 한 회마다의 제목을 '방송사고의 이해', '결방의 이해' 이런 식으로 방송에 관련된 용어로 짓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방송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뜻을 인간관계와 연관시켜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과 고민거리에 대한 해결책 또는 메세지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저는 특히 남녀 사이에서 겪을 수 있는 오해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어렵다는 것을 방송 시청률에 비유하여 표현한 게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프로듀사에서는 이런 메세지를 줍니다. '노력해도 얻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한다.'


뭐 여러 가지로 재미있었던 드라마였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키득키득 웃으면 TV를 본 것 같습니다. 



집에서 누워있는데, 고등학교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다짜고짜 남해를 가자고 하더군요. 여행을 위해 차도 빌렸으니 기름값만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여행이란 지금 당장 이 곳에서 벗어나는 게 시작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해서 별 고민없이 바로 남해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남해에 지금은 빈 집인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거의 바로 학교에 복학하느라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참 반가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고기를 구워먹고 술도 한 잔씩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새 밤이 지나가더군요. 학교를 다닐 때에는 몰랐는데,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참 재밌었습니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나이가 스물이 넘고 각자 일을 하며 지내다보니 정말 만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학생 때에는 매일 보던 얼굴들이 이제는 이렇게 방학 때에만 가끔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도 시작하면 점점 더 보기 힘들어 지겠죠. 뭐 어쨌든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을 훌쩍 보내고, 잠깐 눈을 붙인 다음, 아침 일찍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꽤 비워서 생긴 거미줄을 다 떼고, 바닥도 한 번씩 닦고 우리가 사용한 그릇들도 깨끗히 정리하고, 남해의 상주로 차를 타고 갔습니다.


상주에 가는 이유는 저희가 학교를 다닐 때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던 '여태전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주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시죠.


저희를 참 좋아하시고, 아끼시는 선생님이라 저희도 많이 친근한 분이셨습니다. 여태전 선생님은 저희를 많이 반가워하셨습니다. 좀 더 자주 찾아오라며 장난을 치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주시는 회와 매운탕 그리고 조금의 소주를 곁들이니 그 만큼 완벽한 점심식사는 없었습니다. 여태전 선생님과 옛날 태봉고를 다닐 때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선생님은 중학교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바다 옆에 있는 상주중학교가 참 멋졌습니다. 좁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중학생들 보니까 흐뭇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부러움일까요.. 약간의 그리움도 있었습니다. 여러 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하지만 신났던 여행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다녀온 국제활동 프로그램 '라온아띠'가 14기 단원들을 모집했습니다. 제가 12기 단원으로 갔었는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14기를 모집하네요. 


라온아띠 단원들은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도 지속가능한 활동으로 귀국단원으로서의 일들을 해나갑니다. 저는 이번에 14기 단원을 모집하는 것을 계기로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 10기 라온아띠 귀국단원 누나가 있어서 그 누나와 저 둘이서 함께 준비했습니다.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은 퀴즈 형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라온아띠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였습니다. 10기 누나와 단 둘이서 다 돌리자니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스스로 기분 좋게 하는 일이라 의욕이 샘솟아 금방 끝냈습니다. 



포스터에 설명회 장소와 날짜를 언급해놓고 설명회 당일날, 학생회관 1층에서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냥 소소하게 책상 하나에 노트북으로 라온아띠 관련 영상 몇 개 틀어놓고 현지 생활하면서 찍었던 사진 몇 장과 그 곳에서 사용한 물품들 몇개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노트북을 이용해 라온아띠가 파견되는 아시아 국가들에 관련된 퀴즈를 내서 맞추는 학생들에게 초콜릿이나 젤리 같은 소소한 상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캠페인을 진행하는 날이 시험기간이 거의 시작되는 주라서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안 모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온아띠 14기 모집 설명회도 겸해서 진행하는 캠페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라온아띠라는 국제활동에 관심이 있어서 온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 세 분정도? 말고는 라온아띠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저희를 보면서 "라온아띠 모집 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라고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소소한 저희의 모습에 약간 당황하신듯한 표정으로 "밥 먹고 올께요." 라는 말을 남기신채 떠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생각보다 학생분들이 퀴즈에 많이 참여해 주셔서 상품이 다 떨어져 다시 사올 정도였습니다. 



사실 참여인원이 몇 명이고, 상품이 얼마나 나갔고 이런 것들보다도 이번 캠페인으로 인해 대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아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철저히 라온아띠 홍보성으로 시작한 캠페인도 아니고, 중요한 건 캠페인 이름처럼 아시아를 알아가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게 목표였습니다. 덤으로 라온아띠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 더 좋죠. 좋은 프로그램이니까요.


이번에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오랜만에 라온아띠 활동하던 시절을 많이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10기 단원 누나와 라온아띠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 누나도 저처럼 20살 때 라온아띠를 가서 저와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같이 학교에서 라온아띠 귀국 후 활동을 같이 많이 하기로 했고,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캠페인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많이 도와준 대학교 YMCA 분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캠페인 준비 뿐 아니라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계속 자리를 지켜주셔서 무척 든든했습니다. 


다음 학기에는 대학Y 활동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여러모로 얻어 가는게 많이 있었던 캠페인이었습니다.

지난 5개월간 학교를 휴학하고 라온아띠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캄보디아를 다녀왔습니다. 봉사활동 또는 국제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떠난 캄보디아, 5개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가기 전에 한 달간 훈련을 받을 때에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습니다.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기대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낯선 곳에서 무려 반 년간 산다는 건 그렇게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 내가 모르는 곳, 난생 처음 듣는 어려운 말들이 어디에서나 들리는 곳, 제가 가는 캄보디아는 저에게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습니다.


그런 낯 선 캄보디아에서 반 년을 살면서 느낀 게 참 많고 다양한 생각을 했지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내가 여기에 왜 있을까?'였습니다. 


제가 라온아띠에 지원했을 당시에 가졌던 고민, 생각, 기대가 정작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많이 무너졌습니다. 우선 라온아띠는 제가 생각했던 '봉사'활동이 아니었고, '국제자원활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조금 다른 관점이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과 국제활동, 전혀 다른 뜻이지만 정확하게 그 차이를 구분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세 5개월 동안 있으면서 그 차이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라온아띠 사전훈련 한 달동안 계속해서 공부하고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역시 현지에 가서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도와'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러'간다는 것을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비록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가난할지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이며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캄보디아서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저희가 캄보디아에서 활동했던 곳은 전세계에 있는 천주교 구호 단체 '까리타스'였습니다. 가장 많이 했던 활동은 마을개발 활동과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들이었습니다. 



마을개발 활동은 비교적 가난한 마을에 가서 수경재배, 버섯집, 닭장 등의 효율적인 농업 기술을 전달하고 함께 개발활동을 하면서 유대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이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활동은 한국어, 영어를 가르치는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싫어했던 저희 팀은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영어를 함께 공부하고 한국어 또한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저희들도 캄보디아 말을 배우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함께 배운다'는 가치관은 제가 3년 간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했던 것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영어 한국어 뿐만 아니라 운동, 환경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 요리 등 많은 것들을 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처음 캄보디아의 학생들과 친해졌을 때 그들이 저희에게 '너희들은 돈이 많아서 살아서 선택할 수있는 꿈이 많겠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캄보디아보다는 잘 사는 나라였고, 우리가 그들보다 더 부유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과 '가난의 정도'로 인해 거리가 생기는 것이 싫었습니다. 저희는 '빈곤퇴치'라는 프로그램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마이스토리' 라는 캠페인은 진행했고, 우리는 모두 같으며 결국에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것을 공유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과 저의 인생에서 분명히 특별한 경험이었고, 소중한 인연이 많이 생긴 5개월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이제는 한국이라는 곳이 낯선 지금, 캄보디아는 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제는 그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던 시간, 무빙스쿨

라온아띠 국내훈련 중에는 '무빙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무빙스쿨이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주제의식을 가지고 꿋꿋히 자리잡고 있는 기관이나 공동체를 방문해보는 활동입니다.

외국에서 5개월 간 생활하는 라온아띠 활동과 무빙스쿨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각 국가별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볼 수 있는 첫 번째 활동이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무빙스쿨을 해보면서 팀원들끼리 의논하고, 방문할 기관에 대해 조사하고, 직접 그 방문기관 및 공동체에 연락을 드려서 허락을 맡아 가서 궁금하고 싶은 것을 질문하고.. 이런 활동들로 얻는 것이 바로 무빙스쿨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저희 캄보디아팀은 무빙스쿨 주제를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무빙스쿨에 대해 의논하면서 특히 많이 다투었던 팀이 바로 저희 캄보디아 팀이었는데, 다투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온 환경, 받아왔던 교육 등 삶의 대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빙스쿨 주제와 연관시켜서 '우리가 받은 교육이, 우리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나?' 라는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마침 저희 팀에는 보편적인 교육이 아닌 대안학교에서 대안교육을 받은 사람이 저를 포함해 두 명이 있었습니다. 대안학교를 모르는 사람도, 대안학교를 다녔던 사람도 대안교육의 많은 모습을 보기 위해 대안학교를 방문하여 다양한 교육에 대해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방문하기로 한 곳은 서울에 있는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 라는 곳과 광명 YMCA의 '볍씨학교'였습니다.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는 대안대학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라온아띠의 카페 면접 장소를 제공해 준 카페 체화당을 운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육이라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일반교육과 대안교육으로 함부로 나눠서는 안되지만 일반교육을 받은 사람과 대안교육을 받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고, 그 차이에 대해 알기 위해 대안학교를 방문한 것이었는데,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의 선생님이신 이성민 교무지기께서는 보편학교와 대안교육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학교와 교육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보편(일반)교육이 답이다.', '대안교육이 답이다.'라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각 교육들만의 다양한 방식과 지향점이 있고, 그것들을 모두 존중해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가지는 생각이나 가치과, 교육의 철학 등을 시계추에 비교하시면서 한 쪽으로 치우지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한 쪽으로 치우쳐 가면서 생기는 것들, 중립만 지키는 것보다는 왔다갔다 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에 집중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가리지 말고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는 것이 좋다고도 하셨습니다.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말씀해주셔서 가슴속에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볍씨학교라는 곳을 방문하려는데, 길이 무척 어려워서 많이 헤맸지만 주변에 사시는 주민 분들이 길을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볍씨학교는 대안초등학교입니다. 처음에는 '아직 자신의 주관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안교육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의문은 쉽게 풀렸습니다. 

볍씨학교는 생명을 중요시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맨날 책상에 앉아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시골같은 정겨운 분위기의 학교에서 뛰어놀고, 진정한 상생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 배우고 느낀 것들이 인생에서의 여러 가지 습관들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초등교육을 대안교육으로 생명의 중요성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사실 말이 대안교육이지 볍씨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육의 과정들은 그저 '함께 사는 법'이었습니다. 볍씨학교의 선생님들께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희 라온아띠들도 현지에 가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고, 국제자원활동을 하고, 이런 것보다 결국 팀원들, 현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이 있으면 분명히 갈등이 생기고, 그것은 곧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지만, 볍씨학교에서는 '둘러앉기' 라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한 반에 갈등이 생겼을 때, 친구끼리 싸웠을 때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의 한생들과 선생님들이 다 모여서 무릎을 맞대고 둥글게 둘러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바로 '둘러앉기'입니다.

둘러앉기에서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서로 상처를 받더라도 그 상처를 계속 드러내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과 치유를 목적으로 합니다. 

비록 둘러앉기의 이런 방식이 갈등해결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상처를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서운한 감정과 상처를 계속 드러내면 감정이 쌓이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볍씨학교의 함께 사는 철학이나 생활, 둘러앉기 등을 보면서 제가 졸업한 태봉고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대안학교들이 각자들만의 교육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점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무빙스쿨은 저희가 앞으로 캄보디아 현지에 가서 필요한 생활의 방식들, 여러 가지 고민들을 생기게 해준 좋은 시간이었고, 무빙스쿨을 통해서 배운 것들을 실천해보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한 쪽으로 치우치기도 하면서 또 갈등이 생기면 둘러앉기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실제로 국내훈련을 하는 동안 둘러앉기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그런식으로 우리가 살아갈 5개월을 천천히 준비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4주간의 라온아띠 국내 훈련이 끝났습니다. 무척 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캠프, 대안학교를 다니며 겪었던 제주도, 네팔, 지리산, 무인도 그 어느 경험보다도 훨씬 더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값진 시간이었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그 사람들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한 인연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특히 라온아띠의 전 기수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 좋았습니다. 제가 라온아띠 12기인데, 라온아띠 4기 분께서 라온아띠 담당 간사님으로 계셨고, 6기, 7기, 8기 등 다양한 분들이 국내훈련 동반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1기와 2기 등등 라온아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자기 나름대로 기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라온아띠를 다녀오신 분들이 대부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지에서의 활동보다 국내 훈련을 할 때가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처음 국내훈련을 시작할 무렵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라온아띠 자체가 원래 5개원 간의 아시아 국제자원활동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인데 그것은 훈련과정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니.. 공감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4주간의 훈련을 모두 마친 후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라온아띠를 다녀오신 많은 분들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국내 훈련의 4주는 그 어느 순간보다 뜨거웠고, 나의 한계를 몇 번이나 시험했으며, 내가 몰랐던 것들, 내가 원래 알고있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 실천해야 하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고민들을 깊은 내면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라온아띠는 5개월 간의 현지 활동이 더 중요한 활동입니다. 국내 훈련은 단지 그 5개월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국내훈련을 다녀오고 난 지금, 현지에서의 150일을 준비하는 국내훈련 28일이 비록 짧지만 인생에서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함께 캄보디아 깐달로 떠나는 제 팀원들은 스무살 동갑내기 친구 한 명과 형 한명, 누나 두 명, 그리고 저를 합해서 5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모두 20년 이상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두 다릅니다. 그런 다른 사람들 5명이 모여 그렇게 덥고 힘들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가면 얼마나 많이 싸우게 될까요?

저는 국내훈련이 단지 외국에서의 생활과 아시아적 감수성, 라온아띠가 가져야하는 마음가짐만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배우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들간의 화합을 연습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국내훈련을 하는 4주 동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싸웠습니다. 서로의 의견차이 때문에 싸우고, 서로의 말, 행동 표현방식 때문에 싸우고.. 현지에서 5개월 간 싸울 것을 4주간 미리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 치고박고를 반복했습니다.

싸우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팀원들간에 의견충돌과 다툼을 통해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 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화합의 노하우 등을 배우는 시간이 충분히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국내훈련에서 이렇게 실컷 싸우고 또 캄보이아 현지에 가서도 많이 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충분히 대화를 하지않고 서로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상태로 외국에 간다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여튼 이제 국내 훈련이 끝나고 약 20일간 쉬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동안 가족, 친구들, 휴대폰 등 한국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도 가지고, 틈틈히 현지어 공부도 하면서 천천히 휴식을 즐길 예정입니다.

그 동안 국내훈련에서 경험한 것들을 잘 정리해서 블로그에 많이 많이 올리겠습니다.


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 발표가 떴습니다. 결과는 합격이더군요.

제가 남보다 대단하거나 뛰어나서 선발된 것이 아니라, 라온아띠를 통해 부족한 저에게 더 배우라는 의미로 뽑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발되서 떨어진 다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분들 몫까지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

최종으로 선택된 나라는 '캄보디아'였습니다. 1지망으로 썻던 인도나 2지망 태국으로 발령받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제가 캄보디아 활동에 적합하기에 캄보디아로 가게 되는 것일 겁니다.

7월 8일부터 한 달 간 국내 연수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후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열심히 하고 오겠습니다.



이번주 수요일(6월 25일)은 라온아띠 면접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번에 신청했던 중장기 해외봉사 프로그램 라온아띠에 다행히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해서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면접은 서울에서 했는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시간대를 오후 4시 30분으로 배치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방에 살면 올라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했나 봅니다.

라온아띠 면접은 특이하게도 '카페형 면접'을 합니다. 사무적인 공간에서 딱딱하게 면접을 하면 면접하는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카페에서 편하게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이화여대 옆에 있는 '체화당'이라는 카페에서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는데, 지도로 찾아보니 완전 무슨 동네의 골목 구석에 숨어있는 카페라서 찾기가 엄청나게 힘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길을 잃을까봐 혹시나 해서 1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근처에 있는 이대부고 버스정류장부터 채화당까지 '찾아오시는 길' 종이가 친절하게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하도 곳곳에 찾아오는 길 종이가 있어서 아주 쉽게 카페 채화당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시간이나 일찍 왔던터라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여유롭게 면접 준비를 하면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4시가 되고 미리 와서 대기하라고 명시되어 있었기에 면접장소로 향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카페 채화당은 생각보다 큰 건물이었습니다. 


채화당 안으로 들어가니 면접을 기다리는 다른 분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면접을 보는 25일 5조는 지방에서 오신 분들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또 경상도 분들만 계시더군요.

제가 나이가 제일 어려서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20살이 해외봉사에 신청했다고 하니 다들 조금씩 신기하다고 하셨습니다. 여튼 면접을 하기 전부터 꽤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개인이 들고 온 컵으로 음료를 먹으며 이미 라온아띠를 다녀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라온아띠에 가려고 했던 이유, 가서 느낀 것, 그리고 면접에 가서 솔직하게 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준비한 게임? 같은 것도 했는데,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주사위를 굴려 선택된 카드에 적힌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이었는데, '결혼하고 싶은 나이는?', '최근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자신의 장점 세 가지' 등 자신이 살아온 배경이나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 게임을 약 30분간 하고나니 약간 긴장이 풀렸습니다. 조금 쉬다가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카페 채화당은 지하에도 큰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면접은 A, B, C로 조를 나눠 각 조마다 세 명씩 면접관 세 분과 3대3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에서는 기본적으로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물어보고, 자기소개서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면접에서 나온 세부적인 질문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튼 면접은 면접관이 일방적으로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딱딱한 형식이라기 보다는 편하게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습니다.

면접관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것저것 배운 것도 많았고, 여러 가지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면접관님들은 비록 떨어져도 수준이 떨어져서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자책하지 말고, 만약 합격했다고 해도 자신이 남들보다 대단하기에 뽑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라온아띠는 남들보다 대단한 사람을 뽑는 것이 라온아띠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뭐 합격하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이미 면접을 통해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

면접 일정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라온아띠 간사님이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셨습니다. 현수막으로 만든 재활용 가방이었습니다.

그 선물들을 나눠주시면서 비록 라온아띠에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평소에도 항상 라온아띠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진짜 라온아띠라고 하셨습니다.


3년 전에 태국으로 해외봉사를 갔을 때 알게 된 형이 있습니다. 그 형은 태국어가 아주 유창했고, 모든 일정을 통솔하고 태국의 문화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형은 '라온아띠'라는 프로그램으로 태국에서 3개월 간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의 문화와 언어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형의 모습을 보고 많이 부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뭐든지 나서서 이끌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하지만 태국에 갔을 때에는 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지 못하니까 뭐 딱히 리드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봉사활동을 좋아하는데, 태국에서 2주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점점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하고 태국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봉사활동은 끝이 났습니다.

아주 보람 찬 2주였지만 봉사의 기쁨을 알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것 같습니다. 2학년 때 학교에서 갔던 네팔 봉사활동 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 때는 제가 학생회 부회장으로서 학생 대표를 맡고 있었음에도 열정적으로 봉사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역시나 네팔의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2주라는 기간이 저에는 짧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의 2주는 긴 시간이지만 그 곳의 아이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어울리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고, 3년 전 태국에 함께 갔던 형을 통해 알게 된 라온아띠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한 번 신청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대학교에 붙여진 포스터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라온아띠는 '즐거운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아시아 지역사회의 구체적인 과제와 직접적으로 만나는 연대활동을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지속가능한 아시아를 꿈꾸는 대학생해외봉사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라온아띠 12기는 1개월 간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5개월이나 해외봉사를 하는 장기간 봉사 프로그램입니다.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정이지만 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신청 기간은 6월 10일까지였고, 저는 자기소개서를 계속 고치다가 당일 날 제출했습니다. 

경쟁률이 아주 치열한 프로그램이라서 제가 선발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라온아띠를 통해 해외봉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라온아띠에 참가한다면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과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쉽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수성과 자연친화적 삶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3월 13일) 부산에서 열리는 '라이프 사진전'을 관람하기 위해 부산에 갔습니다. 졸업앨범을 준비하는 제 태봉고 후배 2명과 함께 갔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담은 최고의 잡지라고 평가받고있는 '라이프지'는 1936년 타임지와 포춘지를 만든 잡지왕 헬리루스(Henry Luce)의 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헨리루스는 "사진은 세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객관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기계시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이며 아직은 다루기 어렵지만 놀랍도록 강력한 새로운 언어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하며 라이프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라이프지가 탄생한 이유처럼 라이프지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사진이 중심이 된 잡지였다고 합니다. 라이프지는 사진으로 펼쳐보는 미국의 역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들의 정치, 문화, 사회적 관계망 등 세계인이 주목하는 것들을 포착한 가장 미국적인 잡지이자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잡지였고, 1972년에 폐간되었지만 오늘날에 인터넷 잡지로 만날 수 있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는 영화에서도 라이프 잡지가 등장합니다. 거기서도 역사와 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교훈을 주는 소재로 나타납니다. 

라이프지에서 활동한 최고의 사진가들로 불렸던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유진 스미스, 로버트 카파, 더글러스 던컨 등 수많은 사진가들의 집념과 역사의 한 페이지가 담긴 900만장의 사진 중 최고의 130여장을 이번 라이프 사진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전은 부산 문화회관에서 열렸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우선 표를 구입하러 매표소로 갔습니다.

매표소는 라이프지의 로고와 같은 빨간색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 빨간 매표소에서 저는 처음으로 성인 요금이라는 것을 내보았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비싸진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라이프지의 역사적인 사진들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갔습니다.

팜플렛을 받았는데,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역사를 잊은자에게 미래는 없다.'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이프지가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것이기에 딱 알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안에서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기에 전시장 바로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습니다.


라이프 사진전에서 정말 좋은 사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세계인들의 인정을 받는 위인들의 인생과 그들이 겪었던 고난을 라이프지의 사진들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위인인 간디와 체게바라의 사진도 역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둘 다 나라를 독립시킨 지도자이지만 체게바라는 무장투쟁을 통한 혁명가였던 반면에 간디는 완전한 비폭력으로 독립을 이루어 내었기에 두 인물의 인생을 비교하는 글귀가 적혀있기도 했습니다.

찰리채플린과 카스트로, 마이클 잭슨, 아인슈타인 등 제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의 인생 또한 담겨있었습니다. 

알고있는 있었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물론 제가 평소에 몰랐던 인물들을 알게되기도 했습니다.  

라이프 사진전이 서울을 거쳐 부산에서 또 열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한국의 역사 또한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전쟁과 백범 김구 선생님 등 한국의 역사 또하 라이프지에 담겨있었습니다. 이런 역사들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흔적이며, 앞으로 미래를 만들어 갈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하는 것이며, 라이프지는 그런 역사의 기록을 아주 잘 해낸 잡지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역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인생을 보기 위하여, 세계를 보기 위하여) 

제 모교인 창신중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대학도 가니까 오랜만에 중학교 선생님들을 뵈러 간 것입니다. (창신중은 사립이라 예전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계속 계실 수 있습니다.)


창신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까 6년 전 처음 창신중을 등교할 때 느꼈던 그 설렌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수능 칠 때 왔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선생님들을 뵈러 가는 것이라 기분이 달랐습니다.


학교에서 가서 우선 교무실로 갔습니다. 다행히 제가 학교를 다닐 때 계시던 선생님들이 많이 남아계셨습니다. 제가 우리 학년에서 유일하게 대안학교로 진학한 학생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제가 중학교 때부터 워나 성격이 활발하고 자유분방했기에 기억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 성격은 일단 밝은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3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습니다.


1학년, 2학년 때 담임을 해주신 선생님들과도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인생에 대해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시고 중학교 때 들었던 잔소리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학교를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그 동안 학교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또 예전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학교의 구조 자체는 별로 바뀐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설이 달라진 곳이 꽤 있었습니다. 우선 화장실이 아주 깨끗하고 세련되게 공사되어 있었고, 학생들의 쉼터와 수학, 영어 전용 교과교실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말고는 바뀐 게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를 둘러보니 옛 감상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공부했던 교실, 친구들과 뛰어놀던 복도, 농구장.. 중학교 시절 추억들이 하나씩 생각나면서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이런 걸 추억 돋는다고 하죠? 

학교를 돌아보고 나서 선생님들과 학교 급식을 먹었습니다. 약 3년만에 먹어보는 창신중 급식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창신중 급식은 맛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창신중 급식을 언제 또 먹어보겠습니까? 식판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급식 조리사 선생님들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옛날에는 참 가기 싫은 게 학교였고, 참 무서웠던 게 선생님들이었는데, 이제는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이 되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신 고마운 스승님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학교가, 그렇게 무서웠던 선생님들이 이제는 모두 그리워집니다. 얼마 전에 졸업한 태봉고도 몇 년만에 찾아가면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저번에 제작한 무인도 체험 다큐멘터리 3부작을 보시고 선생님들께서 저에게 영상 공모전에 제출해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저는 작년에 떨어진 공모전인 '우리의 가슴이 뛴다' 청소년 영상축제에 공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공모전의 '우리의 가슴이 뛰는 이야기'가 주제인데 사실 장르나 내용이 자유로운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작한 무인도 영상을 제출하기로 한 것입니다.

공모전은 제출 형식이 15분 이내의 영상이기 때문에 각 10분 여의 무인도 영상 세 편을 하나의 15분짜리 영상으로 합쳐서 다시 편집을 해야 했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영상을 최대한 줄이고 잘라내는 작업이 대부분이었고, 너무 아까운 장면들이 많아서 고민을 많이 하면서 편집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완성을 하고나니 생각보다 허접한 영상이 되어버렸습니다. 15분에 맞추다 보니 스토리 전개가 어색했고, 사건과 사건이 일어나는 계연성이 많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래도 이왕 제작한 것이니 제출은 했습니다.  

얼마후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청소년 영상축제 공모전에서 제가 제출한 '태봉 8인의 무인도 여행기'가 본선에 진출할 10작품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짜집기 다큐멘터리가 공모전에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거의 포기 상태였는데, 무인도에 간 친구들과 저의 노력, 제일 고생하셨던 이도한 선생님의 노고를 높이 평가했나 봅니다.

12월 14일 토요일, 무인도에서 촬영을 함께 했던 소열이와 함께 마산합포구청에서 열리는 '청소년 영상축제 시상식'에 참가하했습니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대회의실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청소년 영상에 대해 관심있는 학생이 생각보다 많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봉사활동 시간을 위해서 참가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여튼 관리자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점심을 먹고 수상 대기자들이 앉아있을 곳으로 갔습니다. 수상자들이 앉을 자리에는 '출품자 좌석'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시상식을 시작하면서 진행하시는 아나운서 분을 통해 알았는데, 이번 청소년 영상축제가 10주년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 아나운서 분도 10년째 청소년 영상축제 시상식 진행을 맡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이 영상축제가 있기까지 노력해 온 수많은 청소년들과 영상을 열심히 제작했던 선배들의 노력을 잊지말라고 하면서 옛날 수상자들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상영해주었습니다.

'우리도 좋은 상을 받아서 나중에 후배들에게 저렇게 좋은 말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부푼 기대감과 설렘을 가지고 본격적인 출품작 상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팀이 제작한 '태봉 8인의 무인도 여행기' 영상에 가장 첫 번째로 상영되었습니다. 무인도에서 고생했던 모습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큰 화면으로 보니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다행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저희 학교 학생이어야만 재미있을 줄 알았던 코믹적인 장면들에세도 빵빵 터져서 모두 재미있게 본 것 같았습니다.

 
영상 상영이 끝나고 영상을 제작한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무대 위로 올라가서 아나운서가 질문하는 것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우선 무인도 영상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태봉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특별한 졸업여행으로 '무인도 체험 통합기행'를 기획하여 사회 선생님을 비롯한 8남자의 무인도 여행기를 영상에 담고 싶어다고 했습니다.

Q. 무인도 영상에서 가장 '가슴이 뛰는' 장면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는 '텐트가 파도에 침수되는 장면'이라고 했습니다. 영상으로만 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무인도에 있었던 친구들은 텐트가 바닷물에 잠길 때의 가슴 떨리는 심정을 아주 크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텐트를 정리하느라 영상에 침수되는 장면을 모두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머지 9개의 출품작도 모두 상영하고나서 문화콘테츠학과 학생들의 뮤지컬 공연을 본 뒤, 수상 발표를 했습니다. 저희가 만든 무인도 영상은 '하나방송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팜플렛에 기재되어 있는 수상 순서로 따지면 6등 정도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뭐 상만 받으면 되는거지 순위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런대로 만족을 충분히 하고 있었습니다.


상을 받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뜻밖의 결과가 들려왔습니다. 특별상으로 순위에 상과없이 한 팀에게만 주어지는 '청소년이 뽑은 작품상'에 저희의 무인도 영상이 뽑힌 것입니다.

인기상을 받은 것입니다. 하긴 저희 무인도 영상을 상영할 때 관객들이 많이 웃고 재미있어 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인기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전혀 기대로 하지 않은 결과라 기분이 더 좋았고, 출품작 중에서 유일한 2관왕이기도 했습니다.

'태봉 8인의 무인도 여행기'를 제작하면서 1박 2일이라는 예능의 컨셉을 많이 따라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1박 2일의 재미를 상기시키면서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임에도 공감을 많이 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상을 받으면서 참 좋은 경험을 많이 해본 것 같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있는 곳에서 내가 만든 영상을 보여주고 그 영상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영상 제작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열심히, 더 좋은 영상을 많이 제작하여 앞으로 더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상을 받은 무인도 영상은 제가 편집했지만 무인도에서 함께 고생한 6명의 친구들과 이도한 선생님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수상을 못했을 것입니다.

수상으로 받은 상금의 일부를 무인도에 함께 간 친구들과 함깨 밥을 한 끼 먹는데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수상의 영광을 무인도에서 고통을 나눈 태봉의 멋있는 8남자들에게 바칩니다.


고등학교가 거의 끝나고 이제 대학에 가는 것을 기념해서 아버지가 새 휴대폰 하나를 장만해 주셨습니다. 저는 아이폰을 원했고, 쿨하게 사주셨습니다. 애플을 많이 좋아하지만 아이폰을 사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폰 5s를 사면서 어떤 색상을 선택할 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버지가 단호하게 실버를 추천하셔서 망성임 없이 실버를 구입했습니다. 확실히 실버가 다른 색상들에 비해 깔끔하고, 세련돼 보여서 좋았습니다.


애플은 역시 심플함이 가장 큰 매력이죠. 포장에서부터 애플의 심플한 매력이 느꼈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너무 심플해서 약간은 억지로 심플함을 추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얀색 포장이 깔끔하고 예쁘네요.

 
상자를 여니까 아이폰5s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4인치의 길쭉길쭉한 몸매가 참 시선을 끄네요. 아이폰5부터 4인치 액정을 사용했지만, 5s는 뭔가 더 웅장했습습니다.

 
구성품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간단합니다. 아이폰5s 본체와 충전기, 간단한 설명서.. 너무 간단해서 애플 제품을 살 때마다 약간 서운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쓰지도 않는 구성품이 많으면 챙기기도 힘들도 복잡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냥 폰 본체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이번 아이폰5s를 구입하면서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애플만의 특별한 이어폰 '이어팟'입니다. 작년에 나온 제품이지만 실제로 써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생긴 게 조금 이상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사람 귀 속의 모양을 최대한 분석해서 최상의 편안함을 주는 형태의 이어폰이라고 합니다. 처음 사용했을 때에는 잘 몰랐는데, 오래 끼고 있어도 전혀 귀가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아서 신기했습니다.


처음 아이폰5s를 켜면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이 배경화면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애플 컴퓨터 '맥'도 처음 설정되어 있는 화면이 우주의 모습입니다. 맥과 동일성을 주려고 했나 봅니다.

 
이번에 출시된 아이폰5s는 애플은 최신 모바일 운영체제(os) 'ios7'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지금 제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패드도 업그레이드를 해서 ios7를 사용하고 있지만 모바일 버전이 탑재된 것은 약간 달랐습니다.

ios7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기기에서는 애플의 유료어플 iPhoto, iMovie, Keynote, Pages, Nembers 등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들을 무료로 설치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이폰으로 사진편집, 동영상편집, 문서와 차트 제작, 그리고 PT자료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이 참 많이 좋아졌네요. 정말 스마트시대의 한계가 없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폰5s와 아이폰5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바로 '홈키'라고 하고싶습니다. 아이폰5까지는 하단에 있는 홈키가 그냥 홈으로 돌아가거나 멀티태스킹을 하는 기능만 했지만 이번 아이폰5s에서 홈키는 '지문인식'이 가능합니다.

잠금설정에 들어가서 지문설정을 하면 아이폰을 켤 때 홈키에 손가락을 약 1초간 갖다대고 있으면 자동으로 지문을 인식해서 굳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간단히 잠금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아이폰5s를 사서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기능도 좋고, 빠르고 앞으로 고장내지 않고 잘 사용할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도 저에게 앞으로 뭐든지 더 열심히 하라고 사주시는 것이겠죠? 

태봉고만의 색다른 졸업여행, 무인도 체험 
 

이번주 화, 수, 목요일(10월 15일~17일)은 학교에서 지리산 종주를 하는 날입니다. 태봉고만의 이동학습 교과과정이라 전교생이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피소 예약의 자리가 부족한 관계로 3학년들은 따로 '통합기행'이라는 여행을 떠납니다. 7~8명씩 조를 짜서 2박 3일간의 여행 일정을 기획하여 나름대로 졸업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대구, 경주, 전주 등 대한민국의 여러 곳을 여행하는 일정이 세워집니다. 제가 속한 조는 '무인도'를 가기로 했습니다. 무인도에 가서 문명과 떨어져 지내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체험을 해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사회교과를 맡고 계신 이도한 선생님께서 담당을 하여 함게 가기로 했습니다. 무인도에 가져가는 준비물이라고는 물과 낚싯대, 버너 등의 음식을 제외한 최소한의 레저 용품과 잠을 잘 수 있는 텐트 뿐이었습니다. 

무인도에서 낚시를 하여 잡은 것들을 모닥물에 구워 먹으며 생활할 계획이었습니다. 물론 휴대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은 가져가지 않기로 했습니다.(만약을 대비하여 선생님만 휴대폰을 챙겼습니다.)

그 외에는 칼과 여벌옷 등의 간단한 개인 준비물을 챙겨서 15일 아침 마침내 무인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통영에 있는 '부지도'에 가기로 했는데, 짐을 실으면 선생님의 차가 비좁아 재경, 소열, 현규, 지호 4명은 미리 통영에 가있기로 했습니다.

저와 지우, 재호 그리고 선생님은 마트에서 물을 사고, 텐트 등의 짐을 챙겨 통영으로 향했습니다. 통영의 '척포 낚시배'라는 곳에서 통영 팀과 합류했습니다.



거기에서 추와 미끼 등의 우리 식량을 책임 질 각종 낚시 용품을 구입한 뒤, 낚시배를 타고 부지도로 향했습니다. 배를 타고 40분 정도를 가야만 도착하는 먼 곳에 부지도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부지도에 첫걸음을 내딛고, 바로 텐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촬영을 맡았기 때문에 작업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옆에서 열심히 기록했습니다.


텐트는 3인용 2개, 4인용 1개로 총 3개를 가져왔습니다. 사람이 8명이라 잘 곳이 넉넉해야 했습니다. 텐트를 치는데에 약 1시간여를 소요했습니다.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텐트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기술이 좋아서 그런지 별 문제 없이 간단히 텐트를 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들고오신 텐트는 방이 2개로 나눠져 있는 아주 거대한 용? 텐트였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나름대로 포근한 잠자리를 기대하며 별 걱정없이 다음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낚시팀은 낚시 장비를 챙기고, 나머지는 모닥불을 피우기 위한 나무 장작을 구하러 숲에 들어갔습니다. 부지도 숲에는 뱀이나 독충이 많다고 했기에 숲에 깊숙히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근처에서 꽤 괜찮은 장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낚시 준비를 마치고, 다같이 해안으로 갔습니다. 일단 먹을 것을 구해야 뭐든지 할 수 있었기에 일을 할 수 있는 인원을 모두 낚시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보통은 지렁이를 미끼로 사용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오징어를 잡기 위해 물고기 모양의 '루어'미끼를 사용하여 낚시를 하셨습니다. 다른 친구 3명은 일반적으로 낚시를 했고, 나머지는 칼을 이용해 돌에 붙어있는 각종 바다 생물을 잡았습니다.

간한하게 삶아서 먹을 수 있는 거북손과 삿갓조개를 주로 잡았는데, 가끔씩 운이 좋으면 굴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계속 촬영만 하던 저는 지루함에 지쳐 친구에게 잠시 카메라를 맡기고, 직접 낚시에 참여해보기로 했습니다. 통영에서 살며 어릴 때부터 낚시를 즐겨했다는 소열이의 간단한 낚시 노하우를 배워서 힘껏 낚싯대를 던졌습니다.

미끼를 던진 후 1분도 채 안되서 바로 뭔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왔습니다. 저는 친구의 조언대로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감다가 힘껏 끌어올렸습니다.

그 때 제가 던진 낚시 추에 걸려있는 것은 한 마리의 건장한 물고기였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잡은 물고기는 '용치놀래기'라는 이름이라고 하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낚시에서 처음 잡아 본 물고기였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저에게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주고, 그 이후에도 커다란 용치놀래기 2마리를 더 낚아 총 3마리의 물고리를 제 손으로 잡았습니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들은 고스란히 요리팀의 손에 들어갑니다. 요리학원에 다니는 재경이와 섬사람인 지호의 솜씨를 발휘하여 물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 바로 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7마리의 용치놀래기, 거북손, 삿갓조개, 굴 등 다양한 식량을 가지고 텐트로 돌아와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버너에 물을 끓여서 조개류를 삶아먹고, 모닥불을 지핀 뒤, 나뭇가지에 놀래기를 꽂아 구워먹었습니다.

초장과 소금을 들고 왔기에 나름대로 푸짐한 식사가 될 것 같았지만 역시 8명이 먹기에는 양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물고기도 잘 구워지지 않아서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식사는 저희들이 직접 잡아서 요리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뿌뜻함을 가지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자급자족을 체험한 것이죠.

지금 우리가 집에서 먹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담겨 있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준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것에 항상 감사합니다. 
 

여수 여행 3탄 - 여수의 신비한 섬들을 만나다.
여수 여행의 둘쨋날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낭도'라는 섬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저와 아버지는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첫 날에 여수 시내를 많이 걸어다녀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강의를 들을 분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그 분들과 배를 탈 항구로 이동했습니다. 항구에는 저희와 오신 분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은 섬인가봅니다.

알고보니 항구에서 갈 수 있는 섬은 낭도 말고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섬들이 대부분이 관광지여서 아침부터 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섬을 세 곳 정도 간다고 했습니다. 우선 배를 타고 낭도로 향했습니다. 그 섬 마을에 있는 회관? 같은 곳에서 아버지의 블로그 강의가 열렸습니다.


저희와 함께 오신 분들은 모두 '여수 넷통'이라는 인터넷 언론의 시민기자 분들이었습니다. 파워블로거이자 신문사의 기자이신 아버지의 강의를 통해 스토리가 풍부한 기사쓰기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아버지를 따라온 것 뿐인데 감사하게도 제 이름표도 챙겨주셨습니다. 저도 나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에 아버지의 강의를 열심히 듣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강의에서 주로 신문을 만들 때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말씀해주시면서 울먹거리기도 하셨습니다.

강의를 듣고 정말 사람사는 이야기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느낀 아버지 강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스토리는 바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풍부한 스토리를 만드는 원동력이겠지요.  


그렇게 아버지의 강의가 끝이 나고 거기 계시는 분들과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낭도에는 바닷물이 마을 바로 옆에 호수처럼 있어서 마치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같습니다.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매일 바다를 볼 수 있어서 탁 트인 시야에 드넓은 바다를 보며 자연을 벗삼아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네요.

저와 아버지는 점심을 먹고 마산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여수 넷통의 어른들이 관광을 좀 하면서 천천히 가라고 해서 결국 여수에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눈이 리얼하네요...


다시 배를 타고 이번에 간 곳은 '사도'라는 섬이었습니다. 섬에 도착하니 커다란 공룡 모형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공룡 발자국이 많이 남아있어서 아예 공룡 관련 관광지로 개발을 한 모양입니다. 


사도는 모래의 섬이라 하여 '사도(島)'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섬의 이름이 모래의 섬인 만큼 모래가 굉장히 많은 섬이라 생각하고 섬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함께 온 분들 중에서 사도에 대해서 지식이 많은 한 분이 가이드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 분을 따라 사도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러 다녔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니 역시 모래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이드분의 설명으로는 모래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조개의 잔해? 같은 물질이라고 하는데 아주 작아서 모래처럼 보이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모래로 보이는 물질을 손에 한 웅큼 쥐어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로 모래가 아니라 무슨 조개의 껍질이 부숴져 있는 듯한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도에 대해 이것저것을 많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너무 덥고, 바닷가에 있는 돌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계속 올라와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위에 지친 채로 정신없이 걷던 중 갑자기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공룡 발자국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공룡의 발자국인지 아닌지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커다란 짐승의 발자국으로 보이는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생겼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모양의 웅덩이, 정말 공룡의 발자국처럼 뭔가 커다란 게... 쥬라기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여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것 말고도 다른 공룡 발자국이 많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사진이 다 이상하게 나와서 저거 하나만 올렸습니다. 어쨌든 저런 모양의 웅덩이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진짜 공룡이 많이 살았던 곳인 것 같습니다.

사람 얼굴의 옆모습을 닮은 돌입니다.


사도를 둘러보고 다시 추도라는 곳을 향해 배를 탔습니다. 추도까지는 작은 배를 타고 갔습니다. 추도는 현재 할머니 혼자서 살고 계시는 작은 섬입니다. 혼자 사시면 외로우실수도 있는데, 그나마 강아지 몇 마리와 함께 살고 계셨습니다.  

추도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국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신기한 광경이 보입니다. 오랜시간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퇴적층으로 둘러쌓인 곳이었습니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어지간히 조심을 하지 않으면 곧바로 넘어지게 됩니다. 특히 돌과 돌 사이에 오금이 살짝 저릴 정도의 위험한 곳이 있는데, 그 구간을 지날 때 죄가 없는 사람은 쉽게 건너지만 죄가 많은 사람은 건너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는 그 곳을 건너기 전, 잠깐 망설이다가 힘껏 뛰어올라 갔습니다. 다행히 안전하게 통과했죠. 저를 비롯해 모든 분들이 다 안전하게 올라오셨습니다. (걱정되서 다른 길로 가시는 분들도 계셨답니다.)


뭐 그렇게 여러 섬을 구경하다보니 하루가 다 갔습니다. 하루종일 밖에 돌아다녀서 더위에 정신차리기 힘들었지만 이번 여수 여행은 사진도 많이 찍고, 느낀 것도 많고 나름대로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여수 여행 2탄 - 여수 엑스포
아버지와 여수에 가서 이순신 광장을 둘러본 다음에 간 곳은 바로 '여수 엑스포'입니다. 작년에 여수 세계박람회를 하고 지금은 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 한 번 구경하러 갔습니다.

작년에 교과부 기자단을 할 때 엑스포 입장권을 선물받았었는데, 그 때는 못가고 1년이 지난 지금에야 가게 되는군요.

엑스포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몰랐기에 살짝 기대감을 가지고 엑스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수 엑스포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하니 먼저 '엑스포역'이 떡하니 서있었습니다.


엑스포역 옆으로는 그 유명한 여수 엑스포가 있었습니다. 여수 엑스포는 세계박람회를 개최할 때부터 지금까지 해양관광산업과 해양과학기술, 해양수산기술의 진흥을 목표 운영되고 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와 자연에 관련된 시설이 많이 있습니다. 박람회가 끝나고 현재로써 볼 수 있는 곳은 4곳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광광객이 꽤 있었습니다.

특히 밤마다 열리는 빅오(Big-O)쇼는 인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빅오쇼는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와 아버지가 그런 화려한 공연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실외에서 계속 서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더운 관계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버지는 입장료도 무료에다가 간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디지털 갤러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디지털 갤러리라고 해서 막 최첨단 시설들이 엄청 많이 전시되어 있는 곳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천장에 있는 커다란 화면이 전부였습니다. 다른 디지털에 관련된 것들도 많을 것 같았지만 특별히 다른 것이라고는 편의점이나 분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면이 굉장히놀라웠습니다. 디지털 갤러리 전체의 천장에 무지막지하게 큰 화면에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에니메이션처럼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 화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물고기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실감났습니다.


디지컬 갤러리에 가면 신기에서 계속 천장만 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천장의 화면을 다른 걸로 바꿔주기도 한다는군요. 하지만 그 때에는 화면이 바뀐다는 걸 모르고 저와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번에 간 곳은 엑스포의 스카이 타워입니다.


시멘트 사일로를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스카이타워는 건물이 특이하게도 오르간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연주가 가능한 진짜 오르간이라고 합니다. 잘 안 믿겼는데, 연주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건설될 당시에 '세계 최대의 소리를 내는 파이프 오르간'이라고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옆에 보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작은 실내가 있는데, 거기에서 피아노를 치면 그대로 연주 소리가 거대한 오르간을 통해 들렸습니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스카이타워 한 번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계속 숫자가 2에서 한참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장났나? 생각했습니다.

알고보니 스카이타워 건물은 3층까지밖에 없고, 2층과 3층과의 높이가 너무나 많이 나서 생기는 현상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엄청 높이 올라가는게 재밌어서 영상으로 한 번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꼭대기 3층에 가면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커피나 음료수 빵을 팔고, 무엇보다도 창밖으로 보이는 여수의 전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옆으로는 아까 봤던 여수 엑스포역이 다시 보이는데, 철도를 보면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기차가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지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봤네요.ㅎㅎ)


뒤를 돌아보면 여수의 바다가 보이고, 5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망원경같은 것도 있고, 밤에 오면 여수 야경과 밤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발밑으로 투명한 유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꼭대기에서 발밑으로 바라보니 정말 아찔하더군요. 심장이 약한 사람은 조심해야 할 정도로 높게 느껴졌습니다.

2층으로 가면 영상을 보여줍니다. 별건 아니고, 그냥 용이 나오면서 한국과 여수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담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관광을 마치고 맛있는 저녁을 먹은 뒤, 여수 여행 첫째날이 지나갔습니다.

여수 여행 1탄 - 임진왜란의 전략적 요충지, 여수를 관광하다.
 

지난주 금요일(8월 9일)에 아침일찍 아버지와 함께 여수에 갔습니다. 여수에서 아버지의 강의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의는 다음날인 8월 10일 토요일에 하기로 되어있었고, 아침 10시에 열릴 예정이라 아버지와 미리 하루 전에 여수에 가서 관광을 하다가 하룻밤을 자고 강의를 하시기로 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여수에 도착해서 '이순신 광장'이라는 곳으로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여수는 임진왜란 때에 바다에서 활약하셨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었습니다.

여수시에는 이순신 장군님을 기리는 관광지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나 저희가 갔던 이순신 광장은 시내 전체에서 이순신 장군님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광장의 중심에는 서울의 광화문 광장처럼 이순신 장군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말 5살짜리가 봐도 여수가 이순신 장군님과 관련이 되어있는 도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동상보다 훨씬 더 멋있고 위엄있어 보이는 건 기분탓일까요? ㅎㅎ


이순신 장군님 동상의 왼손에는 전쟁 때 사용하셨던 무진장 긴 칼, 오른손에는 전장을 지휘하는 봉? 같은게 있네요. 발 밑으로는 이순신 장군하면 떠오르는 '거북선'도 보입니다.

광장을 둘러보니 정말 넓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마치 이순신 장군님이 누비셨던 광활한 바다처럼 주위가 탁트이고 중간에 분수도 시원하게 뿜고 있어서 더운 날씨에 괜히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광장의 왜곽에 가보면 충무공 이순신의 업적과 설명을 적어놓은 조형물이 몇 개 있습니다. 무슨 이순신 장군과 여수와의 관계같은 것도 적어놓은 것 같았는데, 날씨가 더운 관계로 읽지 않고 넘어갔죠.

 
조형물들을 보면서 걷다보면 밑에 글귀가 하나 있습니다.'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이순신이라는 한 병사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네요.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며 이해가 안되던 중에 아버지의 도움으로 이순신 장군님 밑에 있던 부하 병사 중에서 '이순신'이라는 동명이인의 병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님과 이름도 똑같은데다가 노량해전에서 활약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름이 똑같아 그런지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광장의 왜곽에 가면 거북선의 머리처럼 보이는 용머리가 달려있는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별 건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세세한 것 까지도 이순신 장군님과 관련되도록 지은 것을 보면 여수 사람들의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뒤로 가보면 거북선처럼 생긴 배를 복원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광장을 한참 둘러보다가 광장의 위쪽에 있는 한 목조 건물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머물면서 수군을 지휘했던 곳이라고 합니다.(본진이라고나 할까?)

여튼 이순신 장군님이 직접 전쟁을 지휘하셨던 진해루와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인 수군의 중심기지가 있던 곳이라 나름대로 기대를 품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망해루라는 곳을 지나 계단을 쭉 올라가 통제문을 지나면...


이렇게 진남관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단층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넓다고 하네요. 그 만큼 위엄있고 민족의 혼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옆에서 본 진남관의 모습. (실제로 보면 정말 길쭉합니다.ㅎㅎ)


진남관에서 여수 시내를 바라보면 육지와 바다가 한 번에 보여서 이순신 장군님이 전쟁을 지휘하기 편하셨을 것 같습니다.


진남관 내부의 모습입니다. 천장을 보면 용머리가 보이는데, 이순신 장군님이 저 용머리를 보고 거북선의 디자인을 구상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요건 '여수 석인'이라는 석조물입니다. 전쟁 때 사람의 형상으로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저는 사실 좀 안믿기는 듯..)

이순신 장군님께서는 임진왜란 때 거북선과 판옥선으로 다양한 전술을 펼쳐 수많은 해전에서 승리하여 왜군의 식량 자원과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로 충무공이 호를 얻으시고 현재는 우리나라의 영웅보다 더 높은 성웅으로 받들어지고 계십니다. 여수의 이순신 광장을 광광하면서 이순신 장군님의 위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님께서 활약하셨던 통영과 남해 등 여러 곳을 가봤지만 여수만큼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이 많이 남아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장검을 본떠 만든 조형물

레노버 아이디어패드 s400 노트북

요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필 또 제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머리가 많이 많이 아픕니다.ㅠㅠ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컴퓨터로 대학 준비를 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일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결국 개인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아버지와의 상담 끝에 노트북을 하나 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싼 노트북을 살 필요는 없었고, 그냥 간단한 문서 작업만 돌아가는 가벼운 노트북을 사기로 했습니다.

노트북 브랜드는 저렴한 가격에 성능까지 좋다는 레노버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요즘에 새로 나온 최신 모델에다가 가성비까지 고루 갖춘 s400이라는 모델을 구입했습니다.


역시 요즘은 빠른 세상이라 노트북을 주문한 바로 다음날 배달이 왔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으니 나름대로 예쁜 모양의 얇은 노트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요즘에 유행하는 '얇고 성능까지 최강'이라고 불리는 울트라북의 원조가 애플사의 '맥북 에어'라고 하더니 정말로 요즘 노트북들이 맥북의 디자인을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뭐 중요한 건 디자인이 아니라 실용성이니까요. 별로 신경 쓸 부분은 아닙니다. 1.8kg의 가벼운 무게에 성능도 그럭저럭 좋은 것 같아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운영체제(os)가 미포함된 노트북이라 직접 윈도우를 설치하여 사용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 날 새벽 1시까지 약 4시간 동안 연구를 한 끝에 겨우 윈도우를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노트북에 이것 저것 드라이버와 프로그램을 깔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노트북을 보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노트북을 켜니 검은 바탕에 이상한 영어들이 적혀있는 화면이 반복되었습니다. 영어를 대충 읽어보니 무슨 부팅 디스크가 우째 됐다나 뭐라나...

문제를 감지한 저는 곧바로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리 명확한 해결방법을 얻지는 못하고, 수리를 맡겨야 하나... 하는 절망적인 생각에 빠졌습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우여곡절 끝에 새롭게 세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경험으로 윈도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컴퓨터 초기 설정이 매우 중요하단 걸 알았네요 하하.. 시간이 되면 정확히 배워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부담되는 가격에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 산 노트북이니 아주 소중하게 다루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쨌든 이번에 구입한 노트북으로 제가 활동해 온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대학 서류를 작성하고, 앞으로 블로그도 더 열심히 관리할 계획입니다. 노트북을 사주신 아버지와 노트북을 고쳐주신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난 7월 17일(수요일)에 저희 태봉고등학교에서 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더운 날씨에 무슨 소풍이야?'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 학기를 정리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동참했습니다.


저희 학교가 소풍을 간 곳은 바로 '하동'이었습니다. 하동은 녹차의 고장이라고도 불리우는 곳으로써 최참판댁, 녹차 체험관 등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태봉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총 4대의 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이동했습니다. 한 학년에 45명밖에 안되니까 전교생이 다함께 소풍을 갈 수도 있네요^^


저희 학교가 하동에서 처음 간 곳은 '최참판댁'이었습니다. 최참판댁까지 올라가는 길이 꽤 길어서 땡볕에 카메라 들고 걷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최참판댁은 박경리의 대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영화 토지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한옥들이 많이 있습니다.

토지의 숨결을 과시하는 듯 '박경리 토지 문학비'라고 적인 거대한 돌이 세워져 있네요.


조선 시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배경 덕분에 최근까지도 다양한 사극 영화 및 드라마의 촬영지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최참판댁에 도착하니 최참판 동상이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 애들은 책을 보고 있는 동상이 신기한지 동상 옆에서 사진 찍기에 삼매경이었습니다.


최참판댁 내부는 정말 사극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조선시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는 듯한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안채 연못에는 아름다운 빛깔의 잉어들이 헤험쳐 다니고 있고, 그 옆에 있는 정자는 그야말로 풍류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쉼터로써 손색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저런 곳에서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면 얼마나 평온할까..' 이런 즐거운 상상도 하면서 가져온 카메라와 장비들도 이 곳 저곳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기 바빴습니다.


최참판댁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분이 계셨지만 저는 촬영을 다니다가 더위를 먹어서 아쉽게도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무척이나 더웠지만 저희 학교 학생들은 역시 노느라 힘이 넘쳤습니다. 최참판댁에 있는 민속놀이(굴렁쇠, 팽이치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등)를 하면서 조선의 전통 분위기에 푹 빠졌습니다.


맨날 스마트폰만 하는 친구들이 민속놀이를 하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흐뭇해졌습니다. 

세상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면서 스마트폰, 3D 영화 등 다양한 여가생활이 등장했지만 평온하게 여유와 풍류를 즐기고 우리나라 고유의 놀이를 하면서 전통문화에서도 여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태봉 공동체의 날, 태봉고가 자랑스럽습니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축제를 했습니다. '공동체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1학기에 한 번, 2학기에 한 번씩 진행되는 태봉고만의 행사입니다.

이번 1학기에 진행된 공동체의 날은 운동회 위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사의 오전 일정은 행사 부장인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번 공동체의 날은 저희 3학년 학생들(태봉고 2기)이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행사입니다. 2학기부터는 3학년 학생들이 학생회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 공동체의 날은 제가 학교에서 진행할 수 있는 마지막 행사인 만큼 더욱 더 알차게 준비해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진행하는 공동체의 날 주제는 바로 '동그라미'입니다. 태봉고의 학생, 학부모, 교사 그리고 마을 주민 분들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동그라미처럼 서로를 다 보면서 화합하자는 의미로 정한 주제입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1학기 공동체의 날은 운동회 위주로 진행이 됩니다. 그래서 일정도 모두가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채웠습니다.


'운동회!'하면 역시 팀전으로 경쟁을 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태봉고등학교가 경쟁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이런 날 아니면 또 언제 팀을 나눠 경기를 해보겠습니까?

경쟁도 경쟁이지만 우리 학교는 대안학교이기에 팀을 나누더라도 그냥 나누지 않았습니다. 저희 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의 성함을 따서 '태전 팀', '미영 팀'으로 팀 이름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각 팀은 학부모님들의 돈으로 구입한 각각 다른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행사에 임하기 때문에 팀을 구분하기도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진행을 맡은 오전 시간에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프로그램들입니다. 먼저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함께 준비운동을 하고, 바로 축구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축구를 진행하는데, 역시나 평범한 축구는 아닙니다. 저는 인기종목인 축구는 진행을 하되, 여학생들도 함께 참여시켜 최대한 많은 인원이 동원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저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는 바로 '2인 3각 축구'였습니다. 남녀가 한 쌍이 되어 발을 묶어서 축구를 하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바로 다칠 수도 있는 경기 방식이지만 진행과 심판이 잘 해준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진행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너무 위험할 수도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다른 간부 학생들과 회의도 많이 하고, 리허설도 해보면서 최대한 재미있게 2인 3각 축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학생회 간부 학생들의 열정이 담긴 2인 3각 축구 경기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꽤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고, 학생들은 상당히 재미있어 했습니다.

저희 학교의 연극부 선생님이신 서용수 선생님께서 중계, 수학 선생님이신 백명기 선생님께서 해설을 맡아주셔서 응원하는 학생들도 경기에 집중을 할 수 있었고, 중간중간에 미리 준비해 둔 여러가지 찬스를 통해 더욱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2인 3각 축구에서 사용되는 찬스의 종류에는 각 팀의 대표(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코너킥 차주기)와 한 쌍 발풀기, 상대 팀 골키퍼 없애기, 점수 교환하기 등이 있었습니다.

남녀가 발을 묶고 축구를 하면 너무 느려서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첨가한 것 이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장치들을 통해 충분히 뜨거운 반응을 시작으로 공동체의 날 운동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단체줄넘기와 릴레이도 진행하면서 운동회 분위기를 더욱 더 고조시켜 갔습니다. 특히 릴레이를 진행할 때에는 저희 태봉고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바통으로 사용하여 재미를 더했습니다.

바통으로 사용된 물건으로는 저희 학교의 소식지인 '담쟁이 책'과 개척한다는 의미의 '삽', 기숙사 생활을 상징하는 빨래 건조대, 연극 동아리의 소품(나무 박스)와 학교 생활을 상징하는 삼선 슬리퍼와 청소 도구 등이 있었습니다.

스케일 크게 운동회 생중계도 했습니다.


삽이나 나무박스처럼 위험한 바통들은 중간중간에 다른 물건들고 교체하기도 했지만 제가 생각해도 바통을 골라서 릴레이를 한다는 생각은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특히 나무 박스와 같은 무거운 물건을 바통으로 골랐을 때에는 릴레이 주자의 속도가 매우 느려지기 때문에 그것 또한 소소한 웃음을 주는 볼거리였습니다.  

그렇게 릴레이를 끝으로 제가 진행하는 오전 일정이 끝났습니다. 저는 오전 일정을 마치고 바로 교육청에서 실실하는 영상 교육 연수에 참여하러 방송국으로 갔습니다.  


제가 교육을 듣고, 학교에 돌아오는 동안에 학교에서는 오후 일정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오후부터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님들도 참여하여 교육 3주체가 화합하여 진행되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에 돌아오니 체육관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할 때에는 특별히 마을 주민들도 초대하여 공연을 보여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태봉고가 태봉마을에 생기면서 갑자기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와 폐를 끼친 점에 대해서 사과도 드리고 함께 태봉마을에서 살면서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에서 초대를 한 것입니다.

사실 예전부터 마을 주민들과 함께 행사를 하려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학생들이 초대장을 만들어 마을의 집집마다 돌려서 초대를 해드렸습니다.

이번 공동체 날의 주된 활동은 운동회이기 때문에 공연을 많이 준비하지는 않았습니다. 약 다섯 팀만이 공연에 참여하서 소소하게 진행하였습니다.


너무 많은 팀이 공연에 참여하게 되면 시간도 길어지고, 준비도 힘들어져서 그 만큼 운동회의 진행이 허술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졸업생들과 선생님들도 함께 공연을 하면서 더 재미있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의 밴드부와 수학 선생님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고등학교는 드무니까요.

통기타를 들고 계신 분이 수학 선생님이십니다.


어쟀든 소수의 인원으로도 충분히 멋진 공연을 만들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학생들을 비롯한 교사, 학부모, 마을 주민 분들의 참여가 많아서 행사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오후에는 제가 현장에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말로는 충분히 공동체를 실현하기에 걸맞는 재미있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봉고에 오래 계신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으로는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모든 공동체의 날 행사 중에서 가장 잘 진행된 행사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전 일정만 진행했지만 지금까지의 행사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다는 평가를 듣고나서 너무나 흡족하고 뿌듯했습니다. 

이번 공동체의 날이야말로 저희 학교가 추구하는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뭘까요?

공동체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이 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공동체란 모두가 함께 하여 삶을 즐기는 것 그 자체가 바로 공동체 의식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 하나 이기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다함께 모여서 운동과 먹을거리를 즐기고 함께 한다는 것 자체를 즐거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번 행사에는 '홈 커밍 데이'라고 하여 학교를 떠난 여러 선생님들과 졸업생들을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그리움의 상징인 노란색 리본에 이름들을 하나하나 적어서 걸어놓기도 하면서 떠난 이들을 환영했습니다. 

이제 저희 학년들도 마지막 행사 진행을 마치고 입시와 졸업만이 남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3학년 학생들은 앞으로 많이 바빠지고 시간은 금세 흘러서 이제는 저희가 졸업할 날이 오겠지요.

지금까지 태봉고등학교의 수 많은 행사들을 방송부와 학생회 부회장, 행사부장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것에 대해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부디 저희들의 많은 후배들이 저희 태봉고에서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고, 학교를 이끌어 가면서 태봉고등학교가 더욱 더 자유롭고 참된 공동체의 의미를 찾아가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디. 
저는 학교 방송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하는 활동은 학교의 중요한 행사 때에 음향과 조명 등을 설치하거나 관리하고 학교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저번에는 방송부 대부분 학생들이 합심하여 우리 학교의 홍보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 홍보 영상을 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저희들 방송부는 방송부 담당 선생님께 학교의 예산을 사용하여 방송 장비들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특별히 부탁드린 장비가 바로 애플사의 컴퓨터인 '아이맥'이었습니다. 아이맥은 본체가 따로 필요없는 올인원 데스크탑입니다.

이번에 애플에서 신형 아이맥을 출시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쿨하게 사주셨습니다. 하지만 학교 예산을 너무 흥청망청 써버리면 안되기에 조심스럽게 아이맥 모델을 골랐습니다.

신중한 결정을 마치고 신형 New iMac 중에서 크기가 한 단계 작은 21.5인치 형 2.9GHz 버전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목요일(3월 21일)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맥이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맥이 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방송부 친구들과 함께 방송실을 아주 깨끗하게 청소해 놓았습니다. 또한 아이맥 놓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컴퓨터 위치와 방송실 구조 자체를 싹 변경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아이맥을 개봉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본체가 없는 컴퓨터라 박스가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부피가 좀 컷습니다.

여튼 친구와 저는 바로 박스를 개봉했습니다. 박스를 뜯으니 이번엔 진짜 아이맥의 박스가 나오더군요. 기대는 더욱 커지고 점점 흥분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너무 흥분해서 자칫 아이맥이 부숴지거나 하면 제 인생 가장 큰 실수로 남을테니까요.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신중하게 박스를 열고 마침내 신형 아이맥이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하얀 종이로 감싸져 있었습니다.

옆모습입니다


하긴 워낙 비싸고 얇은 물건이라 부숴질 위험이 많기에 애플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나 봅니다. 

부착되어 있는 햐얀 종이까지 조심스레 떼어내자 드디어 진짜로 신형 아이맥이 눈부시게 찬란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보이십니까? 저 위의 모습이 아이맥 구성품의 전부입니다. 모니터와 본체가 합쳐진 올인원 본체와 전원 케이블, 그리고 부가기기와 사용 설명서가 담긴 작은 박스...

이번에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는 애플의 심플함이 다시 한 번 저를 감탄하도록 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애플의 거추장스러운 것은 다 빼고 딱 필요한 것만 어필하는 애플의 모습은 언제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쨋든 개봉한 아이맥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당연히 있어야 하는 사과 로고입니다. 언제 봐도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크네요. ㅎㅎㅎ

 

어머나! 뒷면에도 있네요. 보이세요? 저 얇은 두께가!! 깜빡하고 아이맥의 얇기를 강조하는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가장자리 측면의 두께가 겨우 5mm 밖에 안된다고 하네요. 

믿기십니까? 저렇게 금방이라고 부러질 것 같은 얇고 가벼운 컴퓨터에 최고의 영상 편집을 할 수 있는 고성능 그래픽 카드 NVIDIA GeForce GT 650M과 2.9GHz 쿼드코어 및 1TB 용량의 하드 드라이브 등 엄청난 고사양의 부품들이 들어있다는 사실!!

제가 컴퓨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영상편집 및 다양한 작업을 하기에 저 만큼이나 완벽한 컴퓨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렇게 대단한 컴퓨터라고 해서 과연 설치하는 과정이 어렵고 복잡할까요?
아니요!!!

 

그냥 아이맥 뒤에 있는 요 구멍에


이렇게 생긴 전원 케이블을 꽂아 콘센트에 끼워주기만 하면 아이맥의 모든 설치가 끝난 것입니다.
정말 간단하죠?
 


무척 얇고 작으며 간단한 아이맥이라고 해도 뒷면을 보면 컴퓨터로써 가져야 할 왠만한 것들이 다 있습니다.


 

USB나 이어폰 단자, SD 카드 넣는 곳, 인터넷 등 기본적인 것들은 다 가지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니터와 연결할 때 사용하는 VGA나 DVI, HDMI 등을 연결하는 곳을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맥은 다른 모니터와 연결하여 듀얼 모니터를 사용할 수 없는가? 그건 또 아닙니다. 애플 기기를 파는 매장에 가면 따로 VGA나 HDMI 같은 커넥터를 판매한다고 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21.5 인치라고 해서 화면 크기가 너무 작으면 어쩌지? 하고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하는 것보다 화면이 상당히 크게 느껴져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이맥의 위를 살펴보니 카메라도 달려있네요.


이번에는 아이맥과 함께 온 구성품들을 살펴볼까요?


무선 키보드와 무선 마우스입니다. 역시 애플답게 깔끔한 흰색을 선호하는군요.


먼저 키보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저 키보드는 저희 아버지도 사용하시는데 아이맥 뿐만 아니라 다른 애플 컴퓨터는 물론이고 아이패드와 아이폰 및 아이팟 등 다양한 애플 기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키보드입니다.


다음은 무선 마우스입니다. Magic Mouse(매직 마우스) 라고 불리는 저 마우스는 멀티 터치까지 지원되어서 아이맥으로 작업을 할 때 부드럽고 매끄러운 조작과 다양한 퍼포먼스도 구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선마우스와 키보드 둘 다 건전지로 사용된다고 하니 건전기를 계속 갈아줘야 하는 것이 귀찮을 것 같기도 하네요.


아이맥과 아이패드, 아이폰, 아이팟 등 여러 가지 애플 기기들을 모아봤습니다. 참 예쁘네요. 이러다가 너무 허영심만 생기는 건 아닌지....

아이맥 개봉기를 마치면서 아이맥에 대한 대한 평가는 10점 만점에 10점입니다! 개봉기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평가밖에 못하지만 다음에는 아이맥을 사용해보고 사용기를 올리겠습니다.

태봉고등학교를 다니다보면 여러가지로 발표를 할 일이 많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하는 '주를 여는 시간'이나 공동체 회의, PT - Day 등 학생에게 발표할 기회를 많이 줍니다.


그리고 저는 학교의 학생회 행사부장을 맡고있어서 여러가지 알림사항이나 행사소개 및 평가회같이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할 일이 더 많습니다.

저의 행사부장 임기가 3학년 1학기까지니까 아직 한 학기 동안은 학교에서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패드를 들고다니며 틈틈히 시간 날 때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발표할 생각으로 키노트를 배워봤습니다.

저번에도 말했었지만 키노트는 한 번 배워놓으면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 PT - Day 때 키노트를 이용하여 발표를 한 번 해보니까 키노트가 충분히 간편하고 쓸모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를 키노트만 만들 줄 알면 뭐합니까? 아이패드와 학교의 빔프로젝터를 연결할 수 있어야 발표든 뭐든 할 수 있죠. 전문용어로 미러링이라고 하죠?

그래서 저는 아이패드와 학교의 빔프로젝터를 연결할 수 있는 'VGA 어댑터'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설날 때 받은 세뱃돈이 있어서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집에서 조금은 멀리 있는 백화점 안의 애플 매장에 직접 가서 35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VGA 어댑터를 화끈하게 구입했습니다. 

저는 집에 오자마자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VGA 어댑터의 찬란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놓기 위해서였죠.


정말 애플 제품을 살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게 3가지 있습니다. 먼저 '우와, 정말 심플하다' 애플 제품들은 언제봐도 역시 심플한 디자인이 매력인 것 같네요.

두 번째는 '구성품이 정말 간단하군'저번에 아이패드를 구입했을 때에는 아이패드와 충전기, 사용설명서 오직 이 세가지만이 들어있었습니다.

애플은 딱 필요할 것만 들어있는 게 간단하고 멋있기도 하지만 가끔은 너무 간단하게 들어있어서 섭섭할 정도로 무심하게 구성되있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비싸다...', 애플 제품이 미국에서 와서 그런지 항상 비싼 것 같네요. 무슨 어댑터 하나가 3만 원이 넘는지... (아버지가 사용하시는 아이패드 미니의 VGA 어댑터는 6만 원이 넘더군요.ㄷㄷㄷ) 

하지만 비싼만큼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애플이기에 거부감 없이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VGA 어댑터는 저에게 필요한 악세사리이기도 하고요.

여튼 VGA 어댑터는 왠만한 컴퓨터 모니터에도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제 컴퓨터 모니터로 성능을 테스트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아이패드는 3세대이기 때문에 30핀 케이블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산 어댑터를 꽂아보았습니다.


그리고 VGA 어댑터의 반대쪽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죠?


여기에 컴퓨터 모니터와 연결 된 VGA 케이블 선을 연결합니다.

짜잔!!
아이패드와 모니터의 크기 차이가 거의 없어서 별 의미는 없지만 새로 산 어댑터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함이니까요^^


자, 이제 아이패드를 켜보았습니다. 모니터에 아이패드의 화면이 나타나는 게 보이시죠? 이런 방법으로 빔프로젝터에 연결되어있는 VGA 케이블에 연결하면 똑같이 된답니다.^^

아이패드 화면으로만 봐왔던 모습들을 컴퓨터로도 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매력적인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참 좋아진 건가요? ㅎㅎㅎ


어쨌든 아이패드와 VGA 어댑터를 이용해서 큰 화면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웹서핑을 즐기거나 아이패드에 저장된 사진 및 동영상을 재생하여 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패드에 저장되어 있는 영상을 볼 때에는 아이패드에서는 영상이  나오지 않고 열결되어 있는 모니터에서만 나오더라구요. 아마 배터리를 절약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키노트!!! 모니터에 연결해서 당연히 아이패드에서 키노트도 실행시켜 보았습니다. 역시 키노트도 아무 문제없이 실행이 되더군요.

다만 아이패드를 모니터에 연결하고 키노트 슬라이드를 재생시켰을 시에는 모니터에서만 효과가 적용되어 보이고 아이패드에서는 텍스트나 사진이 아무 효과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약간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 프레젠테이션이 보이는 곳은 모니터이기 때문에 별로 상관은 없습니다. 앞으로 아이패드와 VGA 어댑터를 이용해 다양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발표해 볼 것입니다.

'그린나래'라는 순우리말이 있습니다. '그린듯이 아름다운 날개'라는 뜻으로 저희 태봉고등학교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캠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1학년 때 만들어진 그린나래 캠프의 본래 목적은 태봉고등학교 입합을 희망하는 경남 내의 중학교 2,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학교 홍보 및 체험의 목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표를 맡아 진행했던 그린나래 2기 때부터 그 목적이 변하여 이미 태봉고등학교에 합격한 예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형식을 가진 캠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1월 중반에 진행되었던 그린나래 3기 캠프 역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린나래가 신입생 O.T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벌써 그린나래 캠프가 3기까지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그린나래 캠프를 시작하면서 스탭과 진행을 맡은 친구들이 우왕좌왕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린나래 3기까지 왔습니다.


3학년이 되는 저희 학년 멤버들은 이제 그린나래 캠프를 세번째나 진행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희 학년들이 그린나래 캠프의 전통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부터는 저희 후배들이 그린나래를 이끌어 갈 차례입니다.

저희 학년 밑의 1학년들, 그러니까 이제 2학년에 올라가는 후배들이 자신들의 후배들(2013년 신입생)을 그린나래 캠프에서 맞이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린나래 3기는 최대한 2학년 후배들이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저희 3학년들은 이제 뒤에서 지켜보면서 조금씩 도와주기만 하고 2학년 학생들에게 전체적인 진행을 맡겼습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저희가 만들어 온 태봉고등학교의 그린나래 캠프가 계승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캠프장과 전체 사회자 모두 2학년 학생이 맡았습니다.

2학년들은 그린나래 캠프를 진행하기에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3학년 학생들이 계속 캠프의 전체적인 진행을 독점한다면 그린나래가 계승되기는 많이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2학년들에게 그린나래 캠프를 떠맡겨 버린다면 그것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저희 3학년들이 함께 캠프에 참여하여 도와준 것입니다.

약 6개월 간의 그린나래 캠프 기획 및 회의, 리허설을 모두 끝마치고 드디어 1월 14일, 그린나래 3기 캠프가 시작되었습니다.


2013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이 그린나래 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방학인데도 하나 둘 씩 학교로 왔습니다. 이번에 그린나래 캠프에 신청한 신입생들은 모두 42명, 지금까지의 그린나래 캠프 중 가장 많은 인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탭과 진행 요원 학생들은 더욱 긴장이 되었습니다. 42명이라는 많은 수의 캠프 참가자들과 2박 3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캠프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가 자신들이 하고 싶어서 기획한 캠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즐기면서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열심이 준비하고, 가장 열심히 진행했던 그린나래 캠프라 가장 즐거웠던 2박 3일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입생들의 캠프 참여도와 태도가 너무나도 좋아서 캠프 분위기 자체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후배들은 모두 열심히 캠프를 진행해주었습니다. 마치 작년의 저희들처럼 열정을 가지고 캠프 진행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캠프에 참여한 신입생들도 모두 2박 3일 동안 아무런 일도 없이 잘 지내주었습니다.


그린나래에서는 실제로 저희 태봉고등학교에서 진행되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 농사, 철학, 음식 만들기, 명상, 동아리 등 여러가지 예술감성 교육과 대안교육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태봉고에 입학하게 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캠프이기 때문에 학교에 입학하기 전 태봉고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미리 경험하여 적응해보는 시간도 충분히 될 것입니다.

캠프에 참여하는 신입생들은 몇 달 후, 자신들이 입학하게 될 학교를 미리 체험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흥미를 가지고 캠프 활동에 임할 수 있습니다.


캠프를 열심히 진행해 준 친구들과 후배들, 캠프에 참가해 준 신입생들, 그리고 그린나래가 진행되도록 뒤에서 도와주신 많은 선생님들 모두에게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이제 저희 3학년들은 더이상 그린나래 캠프를 진행할 기회가 없습니다. 왜냐면 내년에 진행되는 4번째 그린나래 때에는 저희 3학년들은 이미 졸업한 상태일 테니까요.

그러므로 이번 3기 그린나래 캠프가 저희 3학년들에게는 마지막 그린나래 캠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이상 그린나래를 진행할 수는 없지만 그린나래 1, 2, 3기를 거치는 동안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만든 그린나래라는 캠프가 저희가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진행되어 저희 태봉고등학교의 전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가 방학하기 전에 제가 속해있는 2학년 2반끼리 어디로 여행을 한 번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과 함께 여행 일정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반끼리만 여행을 간다고 하면 학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방학 때 따로 만나서 사비로 여행을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습니다.

결국 2학년이 끝나기 전에 반 여행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을 무렵, 어느날 학교에서 뇌활성 명상 교육을 실시한다고 했습니다.

뇌활성 명상을 하는 강사를 학교에 초청하여 1박2일로 교육을 받는 일정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기회로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2학년 2반의 반 여행을 대신하여 학급 모두가 학교에서 자면서 놀기도 하고 뇌활성 명상 교육도 받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태봉고 한 반에 구성원은 고작 15명인데, 15명으로는 뇌활성 명상 교육이 진행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반 뿐만 아니라 다른 반 학생들도 몇 명 참여하여 뇌활성 명상 교육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2학년 학생 약 20명과 함께 금요일(2013년 1월 4일)부터 일요일(1월 6일)까지 총 2박 3일 간 학교에서 먹고 자며 뇌활성 명상 교육을 받기로 했습니다.


명상 교육이라고 해서 계속 자리에 앉아서 명상만 하는 그런 지루한 교육을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받은 뇌활성 명상 교육은 생각보다 활동적이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뇌활성 명상은 뇌를 활성화시켜서 긍정적인 감정상태를 유발하여 행복한 삶에 이르기위한 수행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우선 뇌를 활성화시키는 방법과 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 긍적적인 감정상태가 몸에 주는 영향 등 여러가지 이론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뇌를 활성화시키는 활동을 시작했는데, 기본적으로 오른손과 왼손을 고르게 사용하는 한 손을 접고 숫자를 세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제가 오른손잡이라서 사실 왼손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 때 오른손과 왼손을 골고루 사용하면서 많이 어려웠지만 나름 뇌가 활성화되는 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간단한 몸풀기가 끝나고 이제 모둠을 나누어서 모둠끼리 종이에 각 한 사람마다 칭찬을 적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남이 적어주는 자신에 대한 칭찬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고 그 상태로 남을 칭찬하는 문구를 적어주는 활동은 너무나도 희망찬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우정을 확인할 수도 있어서 친구 사이가 더 돈독해질 수도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1박 2일간의 명상 교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하나 있습니다. 다양한 활동들을 했지만 저는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한 명이 눈을 가리고 한 명이 이끌어 주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두 명이 짝이 되어 한 명이 눈을 가립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학교 3층에서 1층 운동장까지 이동하는데 눈이 보이는 친구는 눈을 가린 친구가 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활동이었지만 선생님들의 안전지도 하에 움직였기 때문에 안심하고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눈을 가리고 하는 이 활동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활동입니다.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자기 옆에 있는 사람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활동을 하면서 안내해주는 친구가 잘 안내하지 못하여 눈을 가린 친구가 다치기라도 하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없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눈을 가린 친구를 안전하게 인도했습니다.

덕분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많이 형성되었던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유치할 수도 있는 활동이었지만 저는 이 활동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촛불을 한 개씩 들고 그 동안의 뇌활성 명상 활동들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날 일정도 많이 남았는데 벌써 이별의 시간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가슴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1박 2일 동안 배운 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칭찬을 많이 들은 밥은 시간이 지나 뽀얀 곰팡이가 생기고 욕을 많이 들은 밥은 흉측하고 냄새가 많이 나는 곰팜이가 생기는 것처럼 어떤 사물이든 간에 거친 욕보다는 칭찬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친구와 대화를 할 때에도 거친 욕을 사용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고운 말과 칭찬을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 등의 기본적인 마인드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느끼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우리 2학년 2반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태봉고등학교는 1년에 한 번씩 지리산으로 이동학습을 갑니다. 작년에도 1학년으로 2학년 선배들과 함께 지리산을 갔었지만 이번에는 제가 2학년이 되어 지리산에 갔습니다.

게다가 지리산 대피소의 자리가 부족해서 몇 명만 제외하고는 3학년들은 지리산 이동학습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 2학년과 1학년들만 지리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후배가 아니라 선배로써 후배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물론 지리산을 가는 각 조마다 담당 선생님이 동행하지만 선배의 역할은 다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작년에 학교에서 지리산을 갈 때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서 지리산 능선을 쭉 돌아 천왕봉까지 갔다가 중산리로 내려오는 최상코스 종주를 했습니다.

친구가 찍은 지리산 풍경들


역시나 최상코스로 지리산을 갔다오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간단하게 지리산 경치도 구경하고 여유롭게 난이도 중코스 정도를 다녀올까 생각을 하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 코스를 고민하던 중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1학년 후배들 몇 명이서 지리산 같은 조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후배들의 요청을 수락하였고 그들과 같은 조가 되어 지리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배들이 선택한 지리산 코스는 제가 작년에 가서 엄청나게 고생했던 최상 난이도의 화엄사 코스였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지리산 최상코스를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작년에 가본 코스라 부담이 덜 하기는 했지만 이미 가본 코스이기 때문에 더 걱정되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선배의 입장으로 후배들도 챙겨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여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이왕 최상코스를 가게 되었으니 더 열심히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가는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짐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저희 조의 선생님까지 합쳐 총 7명에게 3만원씩 거두어서 장을 보고 산에서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등산에 필요한 초콜릿과 사탕 등의 간식도 챙겼습니다.

확실히 작년에 이미 지리산을 가 본 경험이 있었기에 준비하기가 훨씬 수월했고 더 철저히 필요한 것을 잘 분배하여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전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름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드디어 지리산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조는 첫 날 점심밥을 등산을 하는 중간에 쉬면서 간단하게 김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직접 김밥을 한 손에 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을 오르는데 한 손에 짐이 있으니까 무척 불편하기는 했지만 우리조를 위해 전혀 귀찮아 하지 않고 꿋꿋하게 올라갔습니다.

한 반쯤 올라가니 같은 조의 친구가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앉아서 김밥을 미리 먹지 않고 뒤에 오고있는 같은 조의 멤버들을 기다렸습니다.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뒤에 오는 같은 조원들을 놔두고 먼저 김밥을 먹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화엄사 코스의 첫 날은 길이가 짧아서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에 조원들을 기다려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도 조원들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습은 아쉽게도 둘 쨋날부터는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둘 쨋날부터는 정말 지리산 최상코스의 면모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엄청난 길이를 자랑합니다. 둘 쨋날은 노고단 대피소에서 출발하여 세석대피소까지 약22km 엄청난 산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첫 날처럼 같은 조를 기다리다가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괜히 기다렸다가 야간산행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는 무엇보다도 안전과 함께 가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역시나 점심을 먹기로 한 연하천 대피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원이 오면 바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저와 친구는 미리 점심을 먹고 기다렸습니다. 잠시후 나머지 조원들이 도착했고 저는 점심으로 먹을 라면을 준비해 놓고 다시 세석대피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둘 쨋날의 마지막 목적지인 세석대피소에 도착해서도 역시 점심 때처럼 먼저 도착한 저와 친구가 먼저 저녁밥을 먹고 나머지 조원들이 먹을 밥을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다른 조들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나머지 조원들이 오면 함께 밥을 먹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지만 저희 조는 먼저 도착한 조원들이 나머지 조원들이 오자마자 편하게 밥을 먹게 하기 위해 미리 요리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행히 힘이 제일 많이 남아돌았던 제가 밥을 하고 스팸을 굽는 등 대부분의 요리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나머지 조원들이 도착을 하였고 제가 해준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조원들을 무척이나 고마워했습니다. 딱히 고마워하기를 바라면서 저녁밥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에게 고맙다고 말해주는 조원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뿌듯했습니다.


작년에 지리산에서 저희들을 챙겨주었던 선배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선배의 역할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하면서 후배들을 챙겨주는 것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 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조원들을 보면서 제 마음도 따뜻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지리산을 다녀오면서 지리산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후배를 대하는 선배로써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서 조금 더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선배라는 존재는 후배가 힘들어 할 때 따끔하게 충고할 게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학교에서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고 제가 평소에 후배들을 대하는 모습에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편하고 자신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아 줄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부터 갖고싶었던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애플사의 전설적인 태블릿 pc '아이패드' 라는 물건입니다. 


원래 애플사에서 만든 mp3인 아이팟을 사용했었습니다. 아이팟은 전화 기능과 3G 기능이 사라진 아이폰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마트폰 대용으로 아이팟을 이용하여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사진을 찍고 메모장을 이용하여 블로그 글을 쓰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팟의 3.5인치 작은 화면에 항상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아이팟을 구입할 때 아이패드1을 살 생각도 있었지만 그 때는 아직 아이패드가 한국이 출시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작은 화면이지만 아이팟을 통해 블로그 포스팅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에게 DSLR 카메라를 받고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아이팟은 점점 사용하지 않게되었습니다.
 
아이팟은 보통 스마트폰보다 화면도 작을 뿐더러 사진화질도 카메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으로 블로그 관리를 하기에는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버렸습니다.

그래서 화면도 크고 사진 화질도 좋은 새로운 문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아이패드입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패드2 중고 또는 새 제품을 구입할 생각이었습니다. 구입은 아버지에게 부탁드렸습니다.

꽤나 예전부터 아이패드가 필요하다고 조르고 있던터라 내가 사는 것보단 아버지가 사주시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이패드를 구입하는데 저번에 제가 블로그 강의를 하면서 번 돈 10만원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내가 필요해서 아이패드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번 돈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번주 일요일, 드디어 아버지가 아이패드를 사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다 사오신 아이패드는 다름 아닌 올해에 새로 나온 아이패드의 3번째 시리즈인 뉴 아이패드였습니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애플 정품 매장에서 사오신 것이었고 마치 안에 혼이라도 담긴든 엄청난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일주일에 블로그 3번 이상 포스팅, 책 한권, 성적 올리기 등의 단순한 조건들을 내미시며 거액의 돈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저에게 쿨하게 뉴 아이패드를 건네셨습니다.

그렇게 블로그와 인문학적 소양, 성적 등의 향상을 조건으로 마침내 그토록 가지고 싶어했던 아이패드가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개봉은 했지만 아이패드가 들어있는 박스입니다. 역시 애플만의 사과 로고와 심플한 디자인이 눈길을 끄네요.^^

자! 드디어 뚜껑을 열었더니 웅장한 자태를 내뿜고 있는 아이패드가 보이네요~


아이패드 박스에 들어있는 아이패드 이외의 다른 구성품들입니다. 충전기와 사용설명서... 이 두개가 끝이네요. 아이패드는 이어폰도 안준답니다.~ (너무하네)

애플이 깔끔한 디자인과 간단한 구성품, 즉 심플한 디자인으로 승부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있었지만 너무 심플해도 별로 안좋은 것 같네요. 비싼 돈으로 샀는데 이어폰도 못주나...ㅠㅠ


여튼 위 사진이 바로 저의 아이패드 모습입니다. 멋지지 않나요? 비록 액정 필름을 부착시키지 않아서 지저분하게 지문이 묻어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이패드의 아름다운 자태를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ㅎㅎㅎ

남자는 검은색! 이라고 생각했던 저였지만 화이트가 쫌 깔끔하고 애플만의 사과 로고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화이트로 구입했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저 두께를 보십시오!! 얼마나 얇습니까!? 저기에 잘못하면 손이라고 베일 것 같네요. 저 두께에서 다시 한 번 '역시 애플...' 이라는 감탄사가 나옵니다.


화면을 켠 모습입니다. 이번 뉴 아이패드는 기존의 아이패드들과는 차원이 다른 '레티나 디스플레이' 를 탑재하고 있어서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깨끗한 화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직 많이 사용은 안해보았지만 확실히 기존에 사용했던 스마트폰이나 아이팟과는 비교해서 확실히 크고 그것도 모자라 훨씬 깨끗한 화면이라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부가 악세사리에서도 앞서나가는 애플.


그리고 요놈! 아버지가 열심히 하라고 아이패드와 함께 사주신 물건입니다. 무슨 'Dock' 이라고 하던데, 아이패드를 여기에 고정시킬 수 있는데다가 충전까지 할 수 있는 유용한 물건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렇게요. 저는 아이패드를 글 쓰는데 가장 많이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세워서 고정할 수 있고, 충전까지 된다면 정말 최고죠!

어쨋든 이렇게 아이패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아버지에게 정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아버지의 조건대로 블로그도 열심히 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이패드를 사용하여 활용하는 내용은 추후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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