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전

요즘 남아공 월드컵으로 인해 전국이 들써거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가 원정경기 최초로 16강에 진출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나라에 가서 축구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와 날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프리카 쪽이라서 우리 선수들은 더욱 힘들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시차적응도 잘 되지 않을 것 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아마 초기에 수면시간 조정이 잘 되지 않아서 매우 힘들었을 것 입니다. 하지만 그리스전에서 우리는 2:2라는 대단한 점수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피파 랭킹 13위인 그리스에게 무려 2점차로 이긴 것 입니다. 저는 그 때부터 우리나라에게 많은 기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헨티나전

그런데 아르헨티나전에서 4:1로 참패를 당했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상심도 컷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뛰었기때문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나이지리아전 그 경기는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새벽에 방송을 해서 저는 볼 수 없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를 밤을 지새우며 보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가자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였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이지리아전에서 우리는 2:2라는 점수로 비겼습니다. 우리나라는 1승1패1무 그리고 우리에게 진 그리스가 우리에게 이긴 아르헨티나에게 진 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저는 사실 월드컵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축구보다 농구를 더 좋아하고 월드컵보다 올림픽을 더 좋아했습니다.

나이지리아전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때는 우리가 4강에 진출했다는 것 만 알았지 그렇게 좋아하거나 환호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2002년 월드컵이 한·일 공동주최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2006년 부터는 제가 나이가 좀 드니까 월드컵에 조금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06년 월드컵때에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월드컵에 아예 관심을 끄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그리스전에서 우리나라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경기로 하여금 저의 피는 다시 끓어올랐습니다.

저는 오늘 방송하는 우르과이전에서 우리나라를 진심으로 응원할 것 입니다. 오늘 우르과이와의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승리한다면 우리나라는 8강에 진출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2002년 때에 대망의 4강진출이라는 기록이 있지만 다른나라에서 원정경기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또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5일만 있으면 기말고사를 치뤄야합니다. 시험이 중요하냐? 월드컵이 중요하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시험이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우라나라를 응원하겠습니다.

제가 시험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지난 3월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할아버지께서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할아버지께서 직접 쓰신 가훈을 발견하셨습니다.

그 가훈이 할아버지의 유언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훈을 적은 종이는 우리 집에서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저를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할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건강하신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충격에 빠져서 그만 온 몸에 수분이 다 빠질 정도로 울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저는 몇 번씩 시골에 내려가서 할아버지와 일주일 씩 함께 지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 없이 혼자 사셨기 때문에 제가 옆에 있는 것이 훨씬 덜 외로우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제가 시골에서 밤늦게까지 TV를 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저보고 얼른 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TV를 끄고 할아버지 옆에 누웠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데도 TV만 보는 제가 너무 한심하고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만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 눈물을 흘린 뒤로 할아버지께 더 잘해드려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할아버지께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제일 할아버지께 잘 해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부터 할아버지께 더욱 잘 해드렸습니다.

원래 잘 해드려야하지만 더 최선을 다해서 할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께서 입원하셨을 때 가장 많이 병문안을 가서 할아버지를 보살펴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고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몇 달 후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청천병력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 때 병원에 입원하고는 있었지만 돌아가실 정도로 큰 병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 옆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아무 말씀도 하시질 않으셨습니다.

저는 뭔가 이상해서 할아버지를 계속 불렀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계속 천장만 쳐다보시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계속 뭔가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잠시후 별 이상이 없는 줄 알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경련을 일으키고 계셨습니다.

간호사들은 할아버지를 얼른 재우셨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1인실로 방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제 진짜로 돌아가시는 건가...' 저는 한숨만 내쉬며 쓰디쓴 눈물만 흘렀습니다.

몇일 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보는 앞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저는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아버지가 미리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울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엄청나게 많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앞으로 할아버지께서 쓰신 가훈을 매일 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릴 것 입니다.

작년 할아버지와 봉하마을에 가면서...

내가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아버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일 때문에 아버지께서 아이폰으로 핸드폰을 바꾸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전화는 안되지만 인터넷, 게임, mp3 모두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블로그에 글을 210개 쓰면 아이팟 터치를 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팟대신에 스마트폰에 제 번호를 이동시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전화는 되지않지만 지금 스마트폰을 아주 잘 사용하고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처럼 생긴 뒷모습입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기종은 '터치 다이아몬드' 입니다. 이름의 뜻은 이름 그대로 터치가 가능한 다이아몬드 모양이라는 것 입니다.

유명한 기종인지는 잘 몰라도 디자인도 기능도 딱 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의 핸드폰입니다. 정말 이렇게 제 마음에 쏙 드는 핸드폰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사용해보고 이렇게 스마트폰 사용기를 써보는 것 입니다. 스마트폰이 다른 휴대폰들보다 좋은 점 그 첫번째는 뭐 당연하겠지만 화면터치가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터치를 사용하면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무척 좋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터치가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의 mp3입니다.

스마트폰이 좋은 점 두번째는 음악을 넣을 때 아주 편하고 쉽게 넣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은 음악을 넣을 때 음악파일을 핸드폰 전용 파일로 변환시켜서 넣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아무런 변환없이 그냥 mp3파일을 바로 넣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mp3파일 말고도 다른 종류의 음악파일도 넣을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좋은 점 세번째는 용량이 크다는 점입니다. 보통 핸드폰들은 용량이 1GB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용량이 무려 4GB나 됩니다. 그래서 음악을 거의 무한히 넣을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장점이 많이 있지만 반대로 나쁜 점도 조금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금 느리다는 것 입니다. 컴퓨터와 거의 같은 역할을 한다는 스마트폰이라서 그런지 켜지는 속도도 컴퓨터와 같습니다.

스마트폰 전용게임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아이폰은 정말 빠른데, 이건 진짜 느립니다. 켜는데 적어도 3분정도 걸립니다. 어쩔 때에는 5분이상 걸릴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정말 미칩니다. 그리고 사용을 하다가 가끔씩 느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뭐 그런 것들 이외에는 딱히 나쁜 점은 없습니다.

저는 요즘 스마트폰을 가지고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합니다. 인터넷도 되기는 하지만 공유기가 있는 곳에서만 인터넷이 되기때문에 인터넷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도 공유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는 진짜 컴퓨터가 되니 굳이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인터넷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진짜 핸드폰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가지고 다닙니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진짜 휴대폰도 아직 전화는 되니 같이 가지고 다니는게 좋겠습니다.
요즘 들어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에 소홀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험대비를 좀 한다고 블로그에 글을 잘 쓰지않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지금부터 블로그를 다시 한번 열심히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블로그에 쓸 소재도 아주 많습니다.

저는 시험을 끝내고 바로 학교에서 가는 수련회를 갔다왔습니다. 그 이야기부터 블로그에 써보려고 합니다.

또 제가 미술시간에 직접 만든 '서각' 을 집에 갔다놓았습니다.

그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블로그에 한 번 올려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썩 잘하지는 않았지만 블로그에 꼭 한 번 올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블로그에 글을 총 210개 쓰면 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핸드폰을 바꿔주신다고 하십니다. 그 핸드폰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겠습니다.

또 제가 '10억' 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에 대한 감상문도 한 편 적으려고 합니다.

그것 말고도 블로그에 쓸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많이 많이 방문해 주시고 많이 많이 기대해 주시기바랍니다.

이번 과학의 날 행사에 저는 '탐구토론'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탐구토론은 과학에 대한 한 주제를 정해서 그것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고 그 발표에 대해 반론과, 평론을 하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발표만 하고 우리 조의 다른 친구 두 명은 서로 집이 가까우니까 보고서와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탐구토론에 참가하려면 일단 제출한 보고서가 통과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보고서를 제출한 팀이 8명밖에 없어서 보고서를 제출한 팀은 모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탐구토론을 하기 전 마지막날 저는 발표를 준비하기 위하여 같은 조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발표에 필요한 파워포인트를 깜빡하고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래서 친구에게 얼른 저번에 썻던 보고서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곧바로 보고서를 격려와 함께 보내왔습니다.

저는 보고서를 한 번 읽어보고 발표에 사용할 파워포인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보고서의 내용을 참고해서 열심히 파워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탐구토론을 하는 날 우리는 0교시 수업을 마치고 과학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과학 선생님께서 갑자기 우리조에게 '실격' 이라는 청천병력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시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조는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참관이라도 하기 위해서 다시 과학실로 내려갔습니다.

실격이라는 사실에 저는 무척이나 좌절했습니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않고 열심히 만든 파워포인트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담임 선생님께서 과학실에 내려오셔서 과학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하시더니 과학 선생님께서 저에게 파워포인트를 컴퓨터에 넣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즉 우리 조를 탐구토론 대회에 참가시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조의 친구들과 나는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탐구토론 대회가 시작되고 A조부터 H조 까지의 발표가 끝나고 드디어 우리 조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별로 그렇게 긴장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저의 발표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아는 친구들인데다가 사실상 만들어놓은 파워포인트를 보고 읽는 것 뿐이라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에 탐구토론 대회의 1등이 누구 팀인지 선생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저의 기대와는 반대로 1등은 우리조가 아닌 다른 조 였습니다. 하지만 1등이 아니라도 2등 3등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다른 조들과 우리조의 실력을 비교해보니 우리조는 꼭 상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아직 결과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저의 바람입니다.

얼마 전 학교를 다녀와서 TV를 보면서 쉬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배가 약간 출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냉장고에 들어있는 참외를 꺼내서 접시에 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 일을 하고계셔서 제가 참외를 깍아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참외를 깍아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다른 과일들은 깍아보았지만 그렇게 잘 깍지는 못합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칼로 참외를 두동강내고 껍질을 깍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깍을수록 깍여나오는 껍질의 두께가 점점 두꺼웠습니다.


1분여쯤 뒤, 저는 드디어 참외 반쪽을 다 깍았습니다. 처음으로 참외를 깍아본 것 입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왠지 저에게 아주 큰 일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깍았는데 이 정도면 엄청 잘 깍은 것이 아닌가요? 저는 제가 처음치곤 아주 잘 깍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과일 깍는 실력이 나아질 것 입니다.

사진은 제가 아버지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과일을 많이 깍으면 과일을 잘 깍게 되듯이 공부도 많이 하면 공부를 잘하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부터 무슨 일이던지 꾸준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쨋든 제가 깍은 참외는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참외를 한 조각 갔다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무척 맛있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별일 아니지만 제가 깍은 참외를 드시고 맛있다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에 제가 정말 뿌듯했습니다. 앞으로 과일을 먹게되면 제가 깍으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가족과 모두 함께 제가 깍은 과일을 먹으면 정말 뿌듯한 마음을 많이 느낄 것 같습니다.
어제는 주말이라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에 가서 할아버지를 보살펴드리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할아버지께서는 힘이 많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감기까지 걸리셔서 열도 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밥을 잘 드시지 못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니까 정말 속상했습니다.

잠시후 아버지와 저는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갔습니다. 밖에서 육개장을 먹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먼저 가셨습니다.

저는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는 저와 할아버지, 이렇게 둘 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많이 피곤하셨던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휴대폰으로 찍어 준 사진입니다.


저는 보조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소설을 보고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결국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후 잠에서 깨어나보니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간호사 누나가 들어와서 할아버지의 체온을 재시더니 열이 다 내렸다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보니 열이 다 내려간 것 같았습니다.

한숨 푹 주무시더니 감기가 말끔히 다 나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까보다 훨씬 더 건강한 모습이셨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병실은 무지 더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밖에 나와서 자판기에서 차를 뽑아먹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해보려는 생각도 해봤지만 저녁식사를 드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점심 때와는 달리 밥을 아주 잘 드셨습니다. 감기가 나으시니 기력도 회복하신듯 했습니다. 저녁을 다 드신뒤 양치질도 하시고 약도 드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맛있는 떡갈비를 주문해놓으셨습니다.

내가 오늘 할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수고했다고 어머니가 사주신 떡갈비였습니다. 그 떡갈비까지 먹으니 정말 오늘 하루의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할아버지를 계속 간병하면 할아버지께서도 금방 다 나으시겠죠?
설이 끝나고 저와 아버지는 할아버지댁에 남아서 할아버지를 보살펴 드렸습니다. 삼부자가 함께 남은 것입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 일을 하고나니 왠지 엄청나게 뿌듯했습니다. 점심에는 백숙을 먹으러 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나갔습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가서 백숙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곳은 아주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키운 토종닭을 삶아서 갖다주었습니다. 백숙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는 백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때 먹은 백숙은 정말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할아버지댁에 돌아가서 저녁까지 먹고 할아버지의 옆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오랜만에 정말 편하게 주무셨습니다. 저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을 먹고 마산으로 향했습니다. 마산에 도착해서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주숙이 고모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저와 어머니는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에 일을 하러 가셨고 저는 학원에 가기 전 잠시 쉬기 위해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2시간 쯤 뒤에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보살펴드리기 위해서 학원수업을 2일이나 빠졌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학원에 가서 더욱 더 열심히 해서 빨리 보충을 해야겠습니다.
어제는 주말이라서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늦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늦은 아침을 먹고 우리는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누워계셨습니다. 병원에는 삼촌이 함께 계셨습니다. 저는 삼촌은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내셨습니다.

저와 아버지, 삼촌은 함께 점심은 먹기위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저는 독서토론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 갔습니다.

청소년 문화의 집에는 동아리의 멤버 네 명이 있었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아직 두 명이나 오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못온다고 전화를 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독서동아리 총회를 시작하기 전에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의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갑자기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가 절대로 오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0분 쯤이 지나자 갑자기 아까 전화를 했던 친구가 들어왔습니다.

총회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놀랐습니다. 그 친구도 자기가 온 것에 대해 잘 이해가 안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총회를 시작했습니다.

총회의 내용은 동아리의 규칙을 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제 1규칙은 우리 동아리의 이름을 NED라고 부르는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본 동아리는 마산 청소년 문화의 집의 동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동아리의 목적을 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동아리의 목적으로는 '문화를 배우기 보다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하자' 등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문장이 기억에 잘 남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어서 참가비 5000원을 다시 내야했습니다. 저는 동아리 멤버들의 그 참가비를 받아서 관리를 하는 총무역할을 맡았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 읽어야 하는 책은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 라는 책이라는 군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책이니까 꼭 읽고 토론을 해보고 싶습니다.

오늘도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빨리 완치되기를 빌면서 힘을 내었습니다. 병원에 가니 할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누워계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일단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반가워 하셨습니다. 저는 일단 할아버지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병실의 창가 침대가 비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침대를 창가로 옮겼습니다. 창가로 옮기니 제가 있을 자리가 훨씬 넓어져서 좋았습니다.

창가로 옮긴 할아버지의 침대. 아버지가 찍은 사진.


아버지는 그 후 일 때문에 회사로 가셨습니다. 저는 어제처럼 병원에 남아서 할아버지의 옆을 지켰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시키는 심부름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가 회사로 가시자 화장실로 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어제보다 훨씬 더 편하게 걸으셨습니다. 저는 점점 완치되어 가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옆에 누워있는 동안 지루해서 문제집을 펼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질렸습니다.

그렇게 심심해 하고 있을 때 마침 점심식사가 왔습니다. 할아버지의 밥은 늘 죽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부터는 죽이 아닌 보통 밥을 먹어도 된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 아주머니께 공기밥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천 원을 받으시고 공기밥 하나와 국, 그리고 수저를 주시면서 수저는 계속 가지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밥을 다 먹고 수저를 깨끗이 씻어서 할아버지 옆에 놓아두었습니다. 내일은 할아버지께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제가 어머니와 함께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옆에 있고 싶습니다. 그래야 할아버지께서도 힘을 내셔서 빨리 완치가 되실테니...

이제까지 우리집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께서 오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회사에 일을 하러 나가셔서 아주머니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절약을 하기위해서 제가 청소를 도맡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아주머니를 끊고 제가 집안일을 했습니다.

집안일은 꽤 힘들었습니다. 저는 설거지부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으면 바로 그 그릇들을 씻었습니다. 그러니까 설거지가 밀리지 않고 정말 편했습니다.
 

내가 설거지를 깨끗하게 한 흔적


설거지는 옛날부터 해왔던 일이라서 아주 쉽게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아주 쉬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베란다에 쌓아놓은 병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베란다에는 병들이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 병들을 봉지에 담아 마트에 가서 돈으로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트의 아저씨와 아줌마가 돈을 주지않으시고 마트에 있는 물건으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결국 아이스크림과 껌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돈으로 주지 않고 물건으로 준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면서 원래는 돈으로 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집에는 병 말고도 종이 쓰레기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우유팩들을 아주 작게 구기기 시작했습니다. 버리는 일은 어머니가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이쓰레기들을 열심히 구겼습니다.

정말 집안일을 많이 해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원래 아주머니께서 오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집안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열심히 할 것 입니다. 그래야 어머니, 아버지가 힘들어 하시지 않을테니까.
이제 내일이면 유럽으로 출장을 가신 어머니께서 한국으로 돌아오십니다. 어머니께서 집에 안계신동안 저는 아버지와 늘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유럽으로 출장을 가신 첫 날 저와 아버지는 함께 맛있는 삼겹살을 먹고, 옛날식 도시락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바타라는 재미있는 영화도 봤습니다.

아버지와 삼겹살을 먹고 난 뒤 먹었던 옛날식 도시락.


둘째 날은 지리산에 가기위해 진주에서 함께 흑돼지 구이를 먹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셋 쨋날은 음...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날 진주에서 먹은 흑돼지 삼겹살.


그 날은 아버지와 함께 지리산에 올라갔다가 해가 질 때까지 산을 내려오지 못해 세석 대피소에서 햇반과 차가운 햄, 그리고 참치를 먹었습니다.

억지로 먹었던 햇반과 참치, 햄.


햄은 그래도 꽤 먹을만 했는데 참치는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무사히 산을 내려와서 아버지와 함께 맛있는 백숙을 먹었습니다. 추운 산에서 내려와 먹는 백숙의 맛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저는 원래 백숙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때 먹은 백숙은 생각보다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집에서 쉬고있었습니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뒤 먹은 백숙.


그 날 저녁에는 아버지와 함께 또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먹은 삼겹살은 너무 기름기가 많아서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맛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별로였습니다. 부자지간에 입맛은 별로 닮지 않는 것 같네요;;; 그리고 다음날에는 주말이라 아버지께서도 회사를 안가셔서 그냥 집에서 라면같은 것을 끓여먹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먹고싶었던 라면을 집에서 먹으니 그것도 꽤 괜찮았습니다. 그렇게 먹고싶었던 라면을 먹어서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지리산에서 엄청 먹고 싶었던 라면.


그 주말이 지난 후에는 저와 아버지 모두 바빴습니다. 저는 학원을 갔고 아버지께서는 회사에 가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저의 밥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가시기 전에 언제나 저의 아침을 챙겨주시고 나가셨습니다. 그 동안 먹은 라면이 정말 한 박스는 되는 것 같네요.

아버지께서 직접 해주신 음식도 있습니다. 일단 어머니께서 출장을 가신 첫 날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밥도 직접 지으시고 맛있는 고등어도 구워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말 요리를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신 밥의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요리를 해서 밥을 먹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저번에 어머니께서 사두신 갈비탕을 끓여서 밥과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3분카레도 해먹었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은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저녁에 아구찜을 먹으러 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매운 아구찜을 좋아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매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구찜을 먹을 때 마다 매워서 늘 잘 먹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머니 없이 아구찜을 먹어서 오랜만에 맛있게 아구찜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하던 아구찜이 나왔습니다.

저는 일단 콩나물부터 먹었습니다. 역시 저의 에상대로 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구찜의 고기를 먹어보니 엄청 질겼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질기셨던지 식당의 직원 아주머니께 지금 우리가 먹고있는 아구찜이  건아구찜이냐고 물었습니다. 직원 아주머니께는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우리는 부드러운 생아구찜을 시켰는데 왜 질긴 건아구찜이 나오냐고 했습니다. 직원 아주머니께서는 약간에 실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그 질긴 건아구찜을 먹었습니다. 저는 너무 질겨서 콩나물과 밥만 계속 먹었습니다. 그래도 콩나물은 매콤한게 아주 맛있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어머니께서 돌아오시니까 어머니와 저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셋이서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번주 수요일(12월 30일)에 어머니께서는 유럽으로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일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유럽으로 출장을 가십니다.

이제 어머니께서 유럽으로 가신지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네요. 어미니께서 집에 안계신동안 어머니와 함께 2010년 새해 첫 날도 같이 못보내고 아버지의 생신도 같이 못보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지리산에 함께 가서 2010년 새해 첫 날을 함께 보냈습니다. 아버지 생신에는 아버지께 꽃다발을 선물해 드렸죠.

제가 아버지께 사드린 꽃다발입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하긴 용돈을 만 원이나 사용해서 구입한 꽃다발인데 아버지께서 좋아하실만 하죠?

만약 어머니께서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슬슬 어머니가 보고싶어집니다. 어머니는 이번주 토요일에 오십니다.

아마 그 쯤 되면 어머니가 무척 그리울 것 입니다. 어머니께서 유럽으로 가실 때에 아버지가 내 밥을 잘 안챙겨줄 것 같다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아버지는 저녁에 는 일찍 들어오셨고 제 밥도 잘 챙겨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당직이었던 날만 빼면 모두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머니, 보고싶어요. 빨리 돌아오세요!
저번에 제 친구가 실수로 제 안경을 부러뜨린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친구는 안경값을 준다고 했었죠. 저는 안경을 결국 새걸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친구에게 안경값 10000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돈을 달라고 한 다음날 그 친구는 약속대로 돈을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들고있던 돈은 10000원이 아닌 5000원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에게 5000원을 주면서 나머지 5000원은 내일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친구에게 받은 5000원을 아버지께 돌려주면서 나머지 5000원은 친구가 내일 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5000원을 주기 전에 생각했습니다. '분명 아버지는 5000원을 받으시고 나머지 5000원을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실꺼야.'

새로 구입한 안경.

부러진 안경 다리.


그리고 아버지께 5000원을 드리고 친구가 내일 나머지 5000원을 준다고 말씀을 드리자 아버지께서는 예상과 다르게 "친구가 그렇게 한데?"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예상이 빗나갔다는 생각으로 다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제가 뒤돌아 선 순간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머지 5000원은 친구한테 받지말고 그냥 그 친구랑 맛있는거 사먹어라." 저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나머지 5000원까지 받아낼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거의 15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그런 답을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다음날 저는 그 친구에게 가서 나머지 5000원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돈은 이미 가져왔는데.. 하면서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저에게 과자를 사주며 안경에 대한 것은 잊어버리고 다시금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오늘은 신나는 성탄절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무슨 계획이 있나요? 아니면 혹시 집에서 아무것도 않하고 뒹굴거릴 생각만 하고계신가요?

저는 오늘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에 놀러갈 계획입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얼굴을 본다니 무척 기대가 되는군요.

어제는 어머니께서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저에게 멋있는 신발을 하나 사주셨습니다. 정말 제 마음에 쏙 드는 멋진 신발이었습니다. 어머니께 엄청 감사해야 될 것 같군요.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컴퓨터를 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에 우리집 컴퓨터가 조금 이상해서 컴퓨터를 바꾸기는 해야겠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어머니, 아버지께 드린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는 것 같네요. 뭔가를 드려야 할텐데...
그런데 저는 돈이 한 푼도 없어요. 어차피 돈을 주고 사서 선물을 드릴 생각도 아니지만 재료도 구입을 못할 것 같아요. 크흑.

지금 이 글을 보고계시는 여러분들 혹시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정성이 듬뿍 들어간 그런 선물 없을까요? 

있다면 추천 좀 해주세요  

메리크리스마스!!!!!
오늘 안경을 바꿨습니다. 잘 보이지 않아서 바꾼 것이 아니라 안경이 부숴졌기 때문에 바꿨습니다. 테가 부러졌었어요

저번주 금요일에 학교에서 친구가 갑자기 제가 쓰고있는 안경을 빼앗아서 도주를 감행했습니다. 저는 물론 잡으려고 따라갔죠

그래서 저는 그 친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놀라서 들고있는 제 안경을 꽉 쥐어서 그만 제 안경의 테가 부러지고 만 것 입니다.

저는 일단 부러진 안경에 테이프를 감고 학교수업을 마치고 혼자 안경점으로 갔습니다. 저는 당연히 공짜로 고쳐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안경이 부러진 위치가 약간 좀 어중간 해서 안경테를 새로 사야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결국 실망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 안경을 부러뜨린 친구는 저에게 안경의 값을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경을 구입하고 연락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주말에는 시간이 안경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도 역시 학원을 가서 안경을 바꾸지 못했고 드디어 오늘 화요일에는 학원을 가지 않기 때문에 안경을 바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와 약속을 하고 아버지의 회사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아버지와 저는 홈플러스에 있는 안경점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안경의 알은 그대로 하고 안경의 테만 새로 바꿨습니다.

비용은 총12600원이 들었습니다. 일단 아버지 돈으로 테를 바꿨지만, 테를 부러뜨린 친구에게도 비용을 물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를 요구하면 좋을까요?
 

새로 구입한 저의 안경입니다.폰카로 찍었어요.

부러진 저의 옛날 안경입니다.


저는 6학년 때 처음으로 뿔테 안경을 꼈습니다. 뿔테가 아닐 때에는 아주 자주 안경이 망가져서 안경을 많이 바꿨습니다.

하지만 뿔테 안경은 잘 망가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있어서 중학교 2학년까지 바꾸지 않고 안경의 알만 바꿔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안경의 테를 바꿨습니다. 알은 그대로 사용해서 느낌은 같았지만 아버지께서 안경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니까 훨씬 인상이 편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주말에 시험이 끝나서 스트레스도 풀겸 친구들과 같이 놀러갔다. 우리는 일요일에 아침 8시에 만나서 택시를 타고 합성동으로 갔다. 나는 창동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합성동으로 갔다.

노래방-햄버거 가게-PC방으로

우리는 총 4명이었고 합성동에 도착해서는 일단 노래방으로 가서 1시간을 샀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지만 부르지는 못해서 몇 곡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놀았는데 노래방의 주인 아저씨께서 감사하게도 30분을 추가로 주셨다. 나는 그 30분동안 열정을 불태워서 노래를 불렀다.

다행히 몇 곡 안불러서 목은 아프지 않았지만 시끄러운 곳에 계속 있어서 머리가 조금 띵했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방에서 20분정도만 더 놀다가 나왔다.

그렇게 노래방에서 나와보니 점심 때가 되서 가까이에 있는 롯데리아에 갔다. 거기에서 햄버거를 시켜먹었다. 그런데 햄버거를 먹는 동안 한 명의 친구가 더 왔다. 그 친구는 점심을 먹어서 햄버거를 먹지않았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PC방에 갔다.

그 곳에서 친구들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였다. 물론 나도 같이 하였지만 게임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편이라 5판 정도 하다가 금방 나와버렸다. 그랬더니 2명의 친구가 같이 따라나왔다.

돌아오는 시내버스를 잘못 타서 엄청 당황했다
 


나는 그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신세계백화점 앞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70번 버스를 탔다. 내가 탄 버스에는 분명히 '신세계백화점'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맘 놓고 버스에 탔지만 내가 처음 타보는 버스라서 기사아저씨께 "이 버스 신세계백화점에 갑니까?" 라고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헉! 기사아저씨께서는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무척 놀랐다. 분명히 버스에는 신세계백화점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정작 그 곳에는 가지 않는 버스였다. 알고 보니 그 버스는 진동에서 창원역까지 오가는 노선이었는데, 진동-창원역까지 가는 노선과 창원역에서 다시 진동으로 돌아가는 노선이 각각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합성동에서 탄 70번 버스는 신세계백화점을 거치지 않고 회원동으로 하여 진동으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하지만 이미 신세계백화점에서는 아주 멀리 떨어진 '회원동'이라는 동네였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계속 주위를 맴돌며 절규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버스를 기다려봤지만 신세계백화점으로 가는 버스는 한 대밖에 없었고 그 버스는 계속 오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비상금으로 택시를 타서 집으로 갔다.

정말 어머니께서 가져가라는 비상금이 없었더라면 나는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오늘은 얻은 교훈이 3가지 있다. 첫 번째는 비상금을 꼭 챙겨다녀야 하고, 두 번째는 버스는 꼭 버스에 적힌대로만 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버스를 탈 때 반드시 출발하기 전에 목적지에 가는 지의 여부를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친구들과 놀아서 참 재미있었고 배운 것도 많았던 날이었다.

오늘 할아버지께서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많이 아프신 줄 알고 엄청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학원도 빼먹고 할아버지께서 입원을 하신 병원으로 학교를 마치고 바로 갔다.

할아버지께서는 생각보다 건강하셨고 기침과 다리가 조금 아프실 뿐이지 다행히도 그렇게 크게 아프시지는 않으셨다.

나는 어릴 때 5살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키워졌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에 이불을 박혀서 거의 한 시간 동안 펑펑 울었다. 

할머니 제사 때 자리에 앉아계시는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고모님들.


그래서 이번에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가 내심 엄청 걱정했는데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건강하셨다. 정말 다행이였다. 아마 할아버지께서 만약에 돌아가신다면 나는 사는게 엄청 힘들어 질 것이다. 나는 그만큼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계시면 좋겠다. 물론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그게 나의 바램이다. 나는 할머니의 제사를 지낼 때도 절을 하면서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게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아마 할머니께서는 그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우리집 장기입니다.                                                            
요즘 아버지와 장기를 많이 둔다. 원래 옛날에도 많이 했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장기알을 많이 잃어버려서 다 버렸었다.

그래서 내 돈으로 장기판과 알을 다시 사서 이렇게 장기를 두고 블로그를 쓴다.
 
우리 아버지는 장기를 잘 두신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장기를 할 때 5판 정도 해서 1번 이길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저번에 할아버지댁에 갔을 때 아버지와 장기를 두어서 내가 이겼다. 그래서 내가 장기를 꽤 잘 두는 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잘 두신다.

물론 아버지보다 잘 두시는 분도 있다. 그 분은 바로 고모부이시다. 고모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장기를 잘 두신다. 저번에 할아버지댁에 갔을때 고모부와 장기를 두었는데 왕만 빼고 모조리 잡아 먹혔다. 그 때는 정말 입이 쫙 벌어졌었다.

그 때는 정말 손도 못 써보고 단번에 져버렸다. 물론 아버지도 잘 하시지만 고모부는 심하게 잘 하신다. 아마 고모부보다 훨씬 장기를 잘 두시는 고수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분들 만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를 이겨보고 싶다. 물론 아버지를 이긴 적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한 판도 못이기고 있다.

아마 아버지께서도 나를 이기기 위해서 몰래 연습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께 거의 매일 지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내 실력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신다. 그 칭찬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아버지와 대등하게 장기를 둘수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장기를 잘 두시는 분들은 장기를 잘하는 팁을 좀 가르쳐주세요 그러면 그 팁을 참고해서 아버지를 이기고 나서 장기에 대한 글을 한번 더 올려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께요. 물론 댓글로도요
오늘 마산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하는 '인문학 강좌' 가 끝이 났다. 그리고 그 강좌를 듣고 이렇게 블로그에 쓴다. 원래 월요일부터 계속 들었는대 그냥 나머지는 다음에 쓰기로 한다.

오늘의 강좌는 바로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의 김찬호 교수님이 해주셨다. 그 선생님께서는 '생애의 발견' 과 '사회를 보는 논리' 라는 책을 내어서 아주 유명한 교수님이셨다.


오늘 들은 인문학 강좌의 내용은 바로 '미래가 되면 어떨까?' 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때까지 미래가 되면 무조건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오늘 인문학 강좌를 듣고 나니 그 생각이 확 없어졌다. 그 교수님께서는 미래가 되면 우울증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옛날에 비해 지금 현재에도 우울증 환자가 엄청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되어서 인간관계가 서로 더 안좋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옛날에는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 즉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우울증이 생길 틈이 없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요즘은 서로 친한 사람이 가족이나 친척들끼리만 친하고 다른 사람들은 별로 친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우울증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그것은 미래가 다가올수록 더욱 심해진다고 하셨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에서 조사한 바로는 미래에 가장 걱정이 되는 문제 세 가지가 바로 교통사고와 심장병, 그리고 우울증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울증이 교통사고나 심장병 만큼 큰 문제임을 알려준다.

동물들도 우울증을 느낀다고 한다. 우울증은 급격한 의욕저하와 우울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을 말한다. 나는 우울증에 걸려본 적이 없지만 왠지 우울증에 걸리면 정말 힘들 것 같다. 

앞으로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남도 생각하며 인간관계를 쌓아가면서 친한 사람들을 많이 만드는 그런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미래가 되면 역시 로봇이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오늘 강좌를 한 교수님께서는 만약 로봇을 가지게 된다면 무슨 로봇을 가지고 싶냐고 물어 보셔셨다. 나는 무심코 도라에몽이라고 했다. 나는 왠지 도라에몽 같은 로봇이 있다면 무척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각자 원하는게 다를 수도 있다고 하셨다. 만약 미래에 로봇이 발달한다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당연히 나쁜 점도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일단 로봇이 발달했을 때 좋은 점은 우선 생활이 편리해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로봇이 대신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신 하게 된다면 원래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은 로봇에게 자신의 일을 뺏기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점점 사람들은 사회에서 사라지고 로봇이 모든 일을 다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 '터미네이터' 에서처럼 로봇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우리들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들의 욕심 때문에 우리들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안된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미래가 발전할수록 그런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가면서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만약 미래에 무엇이든지 컴퓨터로 자신의 머리에 연결하여 어떤 정보를 쉽게 넣을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그 사회는 오직 돈만 많은 사람들만 똑똑한 사람인 사회가 될 것이다.

이처럼 발전을 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많이 있다는 것을 오늘 김찬호 교수님에게 많이 배운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강좌는 중학생인 내가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주 재미있었다. 나도 김찬호 교수님처럼 오늘같이 멋진 강좌를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아버지는 옛날부터 여자처럼 머리를 묶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때 부터 머리를 엄청 길러서 제가 사준 끈으로 머리를 묶으시더군요.

그런데 그 때는 아직 머리를 묶기에는 머리가 짧아서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머리가 잘 안묶어진다고 경험자가 요령을 가르쳐 달라고 막 하시던데….

그런데 이제는 머리를 꽤 길러서 완전히 보기좋게 묶으셨더군요.

물론 여자와 남자를 구별하는 것은 안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머리가 조금 웃기네요. 하여튼 아버지 머리묶기 성공하신 거 축하드려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것은 아주 좋은 것이지요.

저도 지금은 안되지만 나중에는 머리를 길러서 아버지처럼 머리를 한번 묶어볼랍니다.

그러면 제 아들도 이렇게 글을 올리겠죠? ㅋㅋㅋ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어요.

우리는 이번주말에 쉬다가 할아버지와 삼촌가족이 탄 차를 타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봉하마을로 갔다. 할아버지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신 분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봉하마을의 입구까지 갔다. 그런데 차가 너무 많이 막혀서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봉하마을 까지 한 10분정도를 걸었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비는데까지 도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옛날사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와 할아버지.


사진을 찍은뒤에 우리는 옆에 있는 노사모가 만들어 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전 옛날 모습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과거를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더욱더 그리워졌다.

그리고 우리는 근처 매점에 들어서 음료수를 사먹고 봉화산으로 갔다. 그곳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부엉이 바위' 도 있었다. 올라가보려 했지만 너무 높아서 그냥 앉아서 쉬기로 했다.봉화산은 사람이 자살하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멋진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왜 이렇게 멋지고 공기가 상쾌한 곳에서 자살을 하셨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하여튼 산이 높기는 높았다. 그런데 숙모가 갑자기 산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숙모를 잠깐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숙모가 올라간후  어떤 사람이 부엉이 바위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이 자살하는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부엉이 바위에서 사진을 찍고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황당해 했다.
 
잠시뒤에 그 사람은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위험했다. 우리는 숙모를 기다리는 동안 배가 너무고파서 숙모에게 전화를 해놓고 옆에 있는 국수집으로 가서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아까 사진을 찍던 곳으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산에 올라간 숙모를 기다렸다. 잠시뒤에 숙모가 산에서 내려왔다.

거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추모하면서 절을 하는 곳이 있었다. 우리도 해보려 했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그만 집으로 가려고 했다. 집으로 가기위해 우리는 다시 차가 있는곳으로 걸어갔다. 가던 도중에 갑자기 나의 사촌동생인 리나가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얼른 앞으로 뛰어가서 리나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리나는 없었다. 그리고 어른들은 뒤에도 리나는 없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전력질주로 앞으로 뛰어갔다. 그 어린것이 누군가에게 유괴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삼촌의 차가 있는곳 까지 단번에 뛰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행히도 리나가 서 있었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리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리나를 데리고 걱정하까봐 얼른 숙모와 삼촌이 있는곳으로 뛰어갔다. 숙모와 삼촌은 리나를 보고 안심을 하고 숙모는 리나에게 어디갔었냐? 라는 질문을 하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 리나를 혼냈다. 그 때 리나는 울고 있었지만 정말 리나를 찾아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소동 이후 우리는 삼촌차를 타고 마산으로 갔다. 우리는 거기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인사를 나눈 뒤에 헤어졌다. 정말 즐거웠지만 큰일날뻔한 하루였다.
한 두 달 전에 저금통을 깨서 동전 종류별로 분류해 구석에 놓아두었던 적이 있었다. 얼른 은행에 가서 지폐로 바꾸려 했지만 계속 까먹어서 바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내가 은행에 가서 그 돈들을 모두 지폐로 바꾸어 왔다.

그렇게 해서 바꾼 돈은 모두 11만 천 백 4십원 이었다. 하지만 두달전에 나와 어머니가 돈을 센 액수보다 훨씬 적었다. 그때는 분명히 11만 7천 7백 7십원 이었다.
 
어머니께서 거기에서 7천원을 쓰셨지만 그래도 돈을 바꾸면 11만 7백 7십원이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11만 천 백 4십원이 나왔다. 확실히 사람이 세는 것보다는 은행의 정밀한 기계가 세는 것이 더 확실하구나.


돈의 액수가 예상했던 것 보다 적게 나와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정말 뿌듯했다. 하지만 그 돈들은 모두 어머니의 지갑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번달 용돈을 받으니까 아쉽지는 않다.

이렇게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가족과 함께 모은 동전들을 세어서 은행에 가서 돈을 바꿔오니까 왠지 모르게 뿌듯함이 느껴졌다.

무심코 남은 동전을 써버리지 말고 이렇게 저금통에 모아 은행에서 지폐로 바꾸면 큰 돈이 되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학교갈 때 버스를 타고 남은 동전들은 쓰지말고 모아두었다가 큰 돈으로 바꾸어서 좋은데에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이 되니까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예를 들면 반이라던가 반 친구들,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나의 번호 등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반 친구들이 바뀐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의 친구들은 한번 결정되면 1년동안 바뀌지 않는 것이기에 나는 반 친구들이 바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아침 7시쯤에 일어나서 학교를 오후 5시쯤에 마치고 나서, 6시까지 1시간 쉬고나서, 6시에 다시 학원을 가서, 9시에 마쳐서 10시까지 저녁을 먹고 잠을 자는 생활을 계속 반복 해왔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 힘들다.


하지만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있기에 나는 계속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2학년때는 1학년 때보다 나은 성적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나는 드디어 2학년이 된다.

나는 1학년때 중학교를 잘 적응하지 못해서 학교생활이 조금 힘들었다. 대표적으로
성적이라든가, 친구관계 등이 문제였다. 하지만 1학년이 끝나갈 쯤에는 그런 문제들이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 2학년이 되면 1학년 때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서 안정적이고 활기찬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2학년이 되면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해서 1학년 때보다 성적을 더 올릴 것이다. 물론 2학년의 성적은 내신에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히 열심히 해야한다. 그리고 나에게 영향이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서 학교생활을 아주 재미있게 보낼 것이다.


정말 1학년이 되어서 중학교에 들어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학년이 된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다.

아마 2학년이 되어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빨리 간다 하여도 나는 2학년을 정말 길고 보람차게 보내고 싶다.


2학년이 지나면 다시 3학년이 되고, 3학년이 지나면 다시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다음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와 같은 글을 다시 쓰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도 나는 시간이 참 빨리 갔다고 쓰겠지... 

조금 있으면 설날이 다가온다. 우리는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갈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께서 먼저 돌아가셔서 매일 혼자 계신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많이 외로우실 것 같다. 그러니까 명절이나 다른 행사가 있는 날에라도 할아버지댁을 자주 방문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

나는 5살 때까지 할아버지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무척 예뻐하신다.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매우 좋다.

할아버지와 나. 작년 여름 경주에 가족여행을 가서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이다.


그러나 나는 5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어머니와 창원으로 이사를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워 하면서 유치원을 다니다가 내가 태어난 마산으로 다시 이사를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께서 내가 4학년 때 돌아가셨다. 나는 너무 슬프고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그 때부터 혼자 사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외로우실 것 같아서 할아버지댁을 방문할 때마다 할아버지를 꼭 안아드렸다.

할아버지댁에서 본 마을 앞 풍경. 느티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너무 외로우실 것 같아서 나라도 할아버지께 전화를 자주 드려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요즘 내가 공부 때문에 많이 바빠서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나는 할아버지께 정말 죄송했다. 하지만 지금은 방학이니까 앞으로 남은 방학날 만큼은 꼭 자주 전화를 드리겠다.


이번 설날에 할아버지댁을 방문하여 할아버지께 정말 잘해드리겠다. 그래야 할아버지의 외로움이 조금이라도 없어질테니...


나는 예전부터 강풀님의 만화를 좋아하고 동경해 왔다.

강풀님의 작품에는 '순정만화', '아파트', '타이밍',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이 있는데 나는 그 작품들을 거의 모두 보았다. 그 작품들은 정말 전부 다 재미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타이밍'이라는 작품을 가장 재미있게 보았는데 강풀님께서 '타이밍 시즌2'를 새로 연재하신다고 한다. 정말 내심 기대가 된다.


강풀님은 '타이밍2' 말고도 '조명가게' 와 '통증' 등을 또다시 연재하신다고 한다. '조명가게'는 공포만화이고 '통증'은 순정만화라고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조명가게'라는 제목이 더 순정만화의 제목인 것 같고 '통증'이라는 제목이 더 공포만화인 것 같다. 하지만 강풀님께서 그렇게 제목을 지으신 것 은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 것이다.

영화 순정만화에 우산가게 아저씨로 출연한 강풀님.


예전부터 강풀님의 만화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인데, 강풀님의 만화는 욕이 조금 많이 들어있는 것 같다. 물론 만화에 욕을 넣으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에 욕이 있으면 어린이들이 그것을 보고 욕을 따라할수 있게 된다. 


부모님들이 옆에서 지시를 해주는 것도 맞겠지만, 강풀님께서 욕을 조금 적당히 만화의 재미를 위해서 넣어주는 것도 내 생각으로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될꺼라고 생각한다.

강풀님의 만화들은 정말 재미있다. 강풀님의 만화들은 한 번 봐도 다시 또 보고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 그래서 강풀님의 만화를 다시 또 봐도 언제나 재미있다. 뭔가 중독성이랄까? 그런 느낌이 드는 강풀님의 만화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고, 계속 보면서 즐기고 싶다.
내일이면 어머니께서 유럽에서 돌아오신다. 어머니께서 10일동안 유럽에 가 계셨을 때 나는 아버지와 단 둘이서 생활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나에게 밥을 잘 안챙겨 주실까 걱정하셔서 먹을 것을 아주 많이 사놓고 가셨다. 이제 어머니가 사다놓으신 과자와 햇반 등은 이미 다 먹은지 오래이고 귤만 조금 남았다.


밥이 없을 때는 아버지와 함께 외식을 했고 라면을 끓여먹거나 어머니가 미리 주고 가신 돈으로 피자나 치킨 등을 시켜먹었다. 어떤 날에는 아버지가 돼지고기 구운 것을 은박지에 사오시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먹은 것들. 치긴과 피자, 라면 등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지겨워 지면 내가 직접 밥을 해먹기도 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니까 내가 밥도 한 번 지어 본 것이다. 정말 내가 자랑스러웠다. 물론 아버지께서 조금 도와주셨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손으로 밥을 지었다. 정말 너무 뿌듯하고 내가 지은 밥이 훨씬 맛있었다.


나는 어머니께서 여행을 가셨을 때 아버지가 만날 늦게 들어오고 밥도 안해주고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당직이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일찍 들어와서 나에게 밥을 해주셨다. 어머니가 있을 때는 아버지가 밥을 거의 안하고 대부분 어머니께서 밥을 해주셨다. 난 이때까지 아버지가 일이 많거나 귀찮아서 밥을 잘 안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께서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나에게 밥을 꼭꼭 챙겨주셨다. 정말 아버지에게 감사하다.


내가 직접 지은 밥이다. 아버지가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주셨다.


정말 10일동안 어머니가 집에 없으니까 어머니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 같다. 밥을 잘 먹고 있지만 청소와 설거지, 쇼핑 등을 모두 나와 아버지가 해야 했다.

이제 내일 어머니께서 돌아오시면 정말 잘 해드릴 것이다. 어머니가 정말 보고싶다. 어머니가 빨리 돌아오시면 좋겠다.
이제 방학이 시작된지도 보름이 넘었다. 그런데 나는 방학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방학숙제가 꽤 많은데...

방학숙제를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방학계획표를 짜보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계획표를 지키려고 하니 잘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계획표가 잘 지켜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나의 생활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

계획표대로 하루를 보내니까 계획표를 지키기 전보다 훨씬 하루가 보람찼다. 계획표를 지키기 전에는 하루종일 TV만 보고 하루하루가 그냥 대충 지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만든 계획표대로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지내고 있다. 정말 계획표를 잘 만든것 같다.

하지만 내가 계획표를 완전히 다 지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계획표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바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다. 원래 계획표대로 라면 나는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씻고 9시까지 아침밥 먹기로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아침 9시정도에 일어나서 10시까지 밥을 먹는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8시에는 도저히 피곤해서 일어날 수가 없다. 왜그럴까 내가 밤늦게까지 안자는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취침시간을 수정해야겠다.

결국 나는 계획표를 수정했다. 늦게 일어나는 것으로 바꾸었지만, 공부시간은 그대로 했다.


아무리 계획표라도 내가 최소한 지킬수 있는 정도로 만들어야 하니까. 이제는 내가 지킬수 있는 것들로만 다시 만들어서 이번 방학을 아주 보람차게 보낼 것이다.
저번에 할아버지의 팔순잔치가 있었다. 나와 어머니는 친척의 차를 타고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갔다. 우리는 밤에 도착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인사도 못드리고 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오랜만에 보는 할아버지라 무척 반가웠다. 나는 사촌들과 간만에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우리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팔순잔치를 하러 뷔페식당으로 갔다.


팔순잔치가 열릴 곳은 무척 넓었다. 음식도 많았고 자리도 아주 푹신푹신 했다. 나와 사촌들은 할아버지를 위한 깜짝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당으로 나가서 생일축하 노래를 연습했다. 우리가 연습하는 사이 한 가족만 빼고 다른 친척들이 모두 식당에 도착했다.

아마 고모가 찍었나보다. 아버지의 카메라에 있던 사진이다.


드디어 잔치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아버지가 맡았고 할아버지께서는 자리에 앉아계셨다. 나와 사촌들은 처음순서로  공연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왠지 모르게 떨렸다. 우리들의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 할아버지와 우리들은 함께 케익에 있는 초를 불어서 껐다. 나는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우리들 순서가 끝나고 친척들의 인사가 시작되었다. 나와 친척들도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인사가 모두 끝나고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뒤 이제 아버지께서 사회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마지막 친척들이 도착했다. 아버지께서는 다시 사회를 시작하고 이제 진짜 모든 친척들의 인사가 끝나고 모두 식사를 시작하였다.

내가 가수 비의 춤을 췄다.


어른들이 식사를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식당에는 할아버지와 친척들만 남았다. 우리는 식당에서 노래방 기계를 발견했다. 나와 사촌들은 친척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했다. 그런데 사촌형이 갑자기 유명한 가수의 춤을 춰서 인기를 끌었다. 나는 왠지 부러워서 나도 평소에 연습을 해둔 유명가수 '비' 의 춤을 추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의 멋진 무대를 끝으로 우리들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집으로 가시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할머니께서 먼저 돌아가셔서 그러시나보다... 나는 얼른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팔짱을 끼고 같이 걸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좋아하셨다.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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