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고 오랜만에 입어보는 중학교 교복

옷장에서 옷을 찾다가 우연히 오랫동안 입지 않고 있던 교복을 보게되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에 가면 다시는 입지 못할 교복들이었습니다.

중학교도 이제 개학하고 1주일밖에 못가니까 1주일만 입고 더이상은 입을 수가 없습니다. 뭐 가끔씩 심심하면 입어보면 되겠지만 그게 잘 안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는 고등학교는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는 학교라서 다시는 교복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교복 입을 일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옷장에 걸려있는 교복을 거의 한 달만에 다시 입어보았습니다.


정말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만 입지 않았는데 너무도 오랜만에 입어보는 것 같았고 너무나도 반가운 착용감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교복을 입은 상태로 아버지에게 보여드렸습니다. 교복을 입은 저의 모습을 보신 아버지는 왜 입어보냐고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아버지는 교복을 입은 저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주셨습니다. 앞으로 얼마 못 볼 모습이니 사진이라도 남겨놓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처음 알았는데 우리 중학교 교복은 참 멋있고 예뻤습니다. 이렇게 멋있는 교복을 왜 입을 때에는 몰랐을까요? 입을 때에는 단지 너무 얇아서 춥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우리 교복은 참 멋있었습니다.

중학교를 한 2년정도 더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복에 대한 정이 갑자기 커져버렸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 중학교 교복이 더 이상 몸에 맞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러니까 개학을 하고나서 남은 1주일동안 교복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입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시 옷장에 넣어두면 어른이 되어도 저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겠죠?
얼마전에 만화가 강풀님의 신작 '당신의 모든 순간' 이라는 만화를 보았습니다. 그 만화는 작년부터 다음에서 연재되었던 만화인데 올해 초에 완결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이라는 만화의 장르는 순정만화였습니다. 그래서 1화부터 아주 오글거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완전히 순정만화였습니다.

그런데 1화의 마지막에 '1년후' 라는 말이 나온 후 갑자기 두 주인공이 있던 그곳에 좀비들이 피투성이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순정만화에 갑자기 좀비라니... 말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풀님이 뭔가 실수를 하셨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좀비는 2화에도 등장했습니다. 2화에서는 두 형제간의 따뜻한 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다가 마지막에 또 끔찍한 좀비들이 눈에 파묻혀있었습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순정만화와 좀비... 도저히 맞지않는 조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회를 거듭할수록 사라졌습니다.

만화에서는 2012년 전연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인류는 멸망을 하고 군인들은 정부의 명령하에 좀비들을 죽이면서 생존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줍니다.

그 생존자에 속해있는 1, 2화에 등장했던 남녀는 군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남녀는 창문에 글을 적어 대화를 하며 외로움을 달래갔습니다.


그 중에서 주인공 남자는 집에 혼자 있으면서 좀비들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좀비들은 물을 싫어하고 밤에는 시야가 어두워져 돌아다니지 않으며 불을 좋아하고 관절이 굽어서 공격을 하지않는다고 합니다.

좀비들은 그저 죽어있는 시체를 먹고 살아갈뿐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주인공의 부모님이 좀비에 감염이 되어서 딸에게 전염될까봐 멀리 떠납니다.

주인공은 그 사실에 슬퍼하는 여주인공을 달래주면서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고 나중에는 좀비가 된 어린아이를 같이 키웁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좀비들이 좀비가 되기 전 가장 소중했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되고 좀비가 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그 사이에 여주인공은 혼자 좀비가 된 어린아이를 키우다가 결국 자기도 감염이 되고 그 어린아이는 죽습니다.여행에서 돌아온 주인공도 역시 감염이 된 상태였고 둘은 벗꽃이 흩날리는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눕니다.

여주인공이 좀비가 되고 주인공은 여주인공과 옛날에 사귀던 사람을 찾아서 같이 않혀두고 주인공은 나중에 혼자 좀비가 되고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좀비라는 것을 순정만화의 감동으로 승화해낸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강풀님이 그리셨던 순정만화들은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좀비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풀님은 말그대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안에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는 매회마다 감동적이고 슬픔을 가져다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플까요? 저는 상상도 안됩니다. 하지만 강풀님은 그런 감정을 상상해내셨습니다.

이번에 본 '당신의 모든 순간' 이라는 만화의 장르는 순정만화도 공포만화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라고 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출장으로 유럽에 가셨다가 돌아오신지가 이제 겨우 3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오신지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이 느껴집니다.

주말이라 하루종일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출장에서 돌아오실 때 선물을 몇 개 사오셨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원했던 선물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체스' 였습니다. 체스는 어머니가 2년전 출장을 가실 때 사와달라고 부탁드렸던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전에는 사오시지 못하셨고, 1년전에는 체스가 아닌 이상한 물건을 사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어머니가 체스를 사오셔서 무척 좋았습니다.

어머니가 1년전에 사오신 이상한 물건


하지만 솔직히 내심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어머니가 체스를 사와주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체스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체스를 체코에서 사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디에서 산 것 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체스의 상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사오신 체스는 꽤나 비싸보였습니다. 비싸다고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나무도 재질이 아주 좋은 것 같았고 말들의 밑에는 푹신푹신한게 붙여져있어서 느낌이 좋았습니다.


제가 체스를 그렇게 바랬던 이유는 당연히 체스를 하고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체스를 왜 하고싶었냐 하면 체스를 하는 모습이 참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체스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체스라는 취미를 한 번 붙여보고 싶었습니다. 그냥 보통 매장에서 체스판을 사도 되었지만 어머니가 유럽의 체스가 더 좋다며 이렇게 사와주셨습니다.

체스는 대충 장기와 비슷하다고 알고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같은 게임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룰이나 게임방식은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체스 말들을 움직이는 방법은 알고있지만 구체적인 게임진행방법이나 처음에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아직 잘모릅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이용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집에는 장기판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장기가 아니라 체스에 집착을 하느냐? 그건 바로 이번에 어머니가 사오신 체스의 특징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사오신 체스세트는 체스말들을 체스판에 끼어서 함께 들고다닐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접으면 부피도 작아져서 휴대와 보관이 모두 간편해집니다.

그래서 자주할 수 있는 체스를 해야겠다고 한 것 입니다. 집에서 공부하다가 그냥 심심하면 체스 한 번 해보고 친구들과 한 번씩 해보면서 그렇게 사용할 것 입니다.

단지 격식있게 보이기 위해 체스를 하는게 아니라 정말 체스에 재미를 붙여서 하면 좋겠습니다. 체스같은 취미가 있으면 참 좋지않을까요?
어제는 돌아가신 할어버지의 첫 생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해에 내려가서 하룻밤을 자고 간단하게 차례를 지낸 뒤 다시 마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랜만에 시골에 다녀오니까 몸이 좀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TV나 보고있었는데 '세상에 이런일이' 라는 프로그램이 방송중이었습니다.

저는 그 프로그램을 보고있었습니다. 그 방송은 일상과는 다른 모습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오늘은 산속에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의 생활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도시에서 살다가 나쁜 일을 당하셔서 도시에 대해 안좋은 기억이 생기셨고 몇 년 전부터 산속에 들어와 혼자 사셨다고 합니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 산속에서 혼자 움막에서 사시는 모습을 참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작년 여름에도 방송에 나오셨는데 겨울이 되어 다시 방송에 나오셨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눈이 쌓여서 아주 추운 겨울산에서도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시고 계셨습니다. 밥은 늘 컵라면을 한끼만 드셨습니다.

뜨거운 물을 사용하면 산불이 나서 다른 사람들이 고생할까봐 늘 눈이나 차가운 빗물을 컵라면에 넣어 30분간 불려서 드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고생하는 PD에게 자신의 식량인 컵라면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셨습니다. 할아버지 자신도 무척 힘들게 사시는데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할어버지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산에 가서 생필품과 먹을 것 들을 사드리고 따뜻한 말을 전해주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할아버지는 혼자 슬픈 눈물을 흘리십니다.

저도 그 모습을 보고 TV앞에서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도시에서 생긴 마음의 상처가 산 속에서 살며 지워진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도시로 돌아가셔서 편안하게 생활하시라고 말씀드려고 끝까지 할아버지는 아직 도시에 갈 때가 아니라며 움막으로 돌아가십니다.

그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어보면 항상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괜찮아요. 이 정도 할만해요" 한 눈에 봐도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도 늘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괜찮다고 하시는 할아버지는 정말 마음이 따뜻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저도 다음에 그 할아버지께서 움막속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산에 가서 그 할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2010년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하러갔습니다. 우리가 등산할 곳은 진안의 마이산입니다.

등산은 바로 1월 1일 토요일에 할 생각이고 31일은 마산과는 아주 먼 진안까지 가는게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타기위해 먼저 터미널로 갔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아버지와 저는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계속 식당을 찾아다니시다가 갑자기 "아웃백 한 번 가볼래?"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아웃백이라는 식당에 한 번도 가본적이 없었지만 아주 비싸고 유명한 식당이라는 것을 대충 주워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비싸다고 가지말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래도 한 번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이폰의 인터넷 지도를 이용해서 아웃백이라는 식당의 위치를 찾아내시고 곧바로 들어갔습니다.

확실히 유명한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고 종업원도 엄청 많았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았습니다.

전부 고급스러운 음식들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전부 비쌌습니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서비스로 주는 빵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 빵을 한번 먹어보았는데 너무 질기고 입안에 계속 달라붙어서 맛이 굉장히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는 그나마 가장 싼 메뉴를 시키셨습니다.

메뉴는 고기 몇개와 간단한 볶음밥, 감자튀김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의외로 볶음밥이 가장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우리가 먹은 점심의 총 가격은 무려 50000원이었습니다. 정말 맛이 없었다고 말하수는 없었지만 가격에 대비해서 그렇게 만족할만한 점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진안에 도착해서 저녁을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그 삼겹살은 진안에서 유명한 흑돼지였습니다. 그 흑돼지 삼겹살은 정말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정말 지금까지 인생에서 먹어 본 삼겹살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좀 과장되기는 했지만 저는 정말 그렇게 느꼈고 또 그만큼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삼겹살을 모두 먹고나서 누룽지와 특별히 서비스로 나오는 시래기국을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는 저녁밥이 해결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찍은 삼겹살 사진.


그렇게 만족할만큼 먹고나서 아버지가 계산을 하시는데 가격은 44000원이 나왔습니다. 점심 때 아웃백에서 먹은 것보다 6000원이나 가격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가격과는 다르게 저녁에 먹은 삼겹살이 점심 때 먹은 음식보다 훨씬 더 맛있었습니다. 가격이 비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가격이 싸도 몸에 좋고 맛만 좋으면 장땡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비싼 식당에 다시는 갈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냥 맛 좋고 몸에 좋은 음식이 가장 좋습니다.
12월 29일(수요일)부터 우리 학교가 방학을 시작했습니다. 너무나도 즐거운 일입니다. 친구들을 못만나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방학이 싫은 학생은 한 명도 없을 것 입니다.

이번 방학 때에는 할 일이 조금 있습니다. 당연히 고등학교 공부를 예습하는 것 입니다. 학원을 안다니니까 집에서 혼자서라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하지만 방학 때에 공부만 계속 한다면 그건 학교 다니는 것 보다 더 힘들 것 입니다. 방학에는 학교를 다닐 때 할 수 없는 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저는 내일(12월 31일 금요일)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하러 갈 것 입니다. 사실 등산은 그 다음날인 1월 1일에 할 것 입니다.

새해 첫 날부터 등산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 해의 시작을 신선하게 보내는 것이죠. 올해(2010년) 1월 1일에는 아버지와 함께 지리산에 갔습니다.

그리고 내년 그러니까 돌아오는 1월 1일에는 아버지와 함께 마이산을 갈 계획입니다. 12월 31일에 전라북도 진안군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1월 1일에 마이산을 등산할 것 입니다.

앞으로도 1월 1일에는 계속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어머니는 함께 가시지 않느냐? 그건 바로 어머니가 지금 유럽에 출장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1월 1일은 어머니의 출장날짜와 항상 겹칩니다. 또 열흘동안이나 집에 못돌아오시니 어머니와 1월 1일에 등산을 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머니의 스케줄이 빌 것이고 그 때에는 어머니와 등산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 다음에는 책을 읽어볼 것 입니다. 먼저 윤정모 작가님께서 보내주신 '소설 수메르' 라는 책을 3권까지 다 읽고 그 다음에는 공부에 집중할 것 입니다.


공부할 책은 방학이 되기 전에 전부 사두었습니다. 제가 산 책의 종류는 영어와 수학입니다. 영어단어를 외우는책 한 권과 영어독해 문제집, 그리고 제일 중요한 수학문제집 이렇게 총 3권을 구입했습니다.

수학문제집과 영어단어는 틈틈히 공부하고 있고 영어독해는 아직 손도 못댔습니다. 독해문제집은 제 아이팟의 전자사전 어플을 이용해서 풀 생각입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학은 방학동안 EBS를 들으면서 공부할 생각입니다. 저는 수학을 누군가의 가르침 없이는 풀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답지의 해설을 보며 풀면 되지만 수학의 개념은 역시 EBS나 학교선생님의 수업을 들어야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방학동안의 계획을 짜뒀으니 이번 방학은 꽤 알찬 방학이 될 것 같습니다.

저번에도 포스팅했었는데 얼마 전에 저는 아이팟4를 구입했습니다. 아직도 그 아이팟을 아주 잘 쓰고있습니다.제일 많이 하는게 mp3듣는 것입니다.

아이팟은 다른 mp3들과는 다르게 음악과 영화가 아주 쉽고 빠르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영화도 넣어서 보고 음질이 아주 좋은 mp3도 아주 잘 듣고있습니다.

그것들 이외에는 트위터에 한 번씩 들어가 보거나 제 블로그에 들어가서 댓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일을 아이팟을 통해 아주 자유롭게 하고있습니다.

한마디로 아이팟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쉽고 유용해졌습니다.

아이팟을 사기 전에 몇 달 전 아버지에게 받은 윈도 모바일 기반의 HTC 터치다이아몬드 스마트폰을 사용해보고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이팟이 있기 때문에 그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왼쪽이 아이팟, 오른쪽이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도 아주 잘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어플을 컴퓨터로 넣어야하지만 아이팟은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서 어플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팟은 스마트폰보다 인터넷 속도가 훨씬 빠르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스마트폰과 다르게 블로그 관리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아이팟이 스마트폰보다 훨씬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자신이 원하는 게임이나 어플을 자유롭게 넣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팟은 무료어플이라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어플을 모두 넣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팟도 스마트폰처럼 컴퓨터로 원하는 어플을 모두 넣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팟을 해킹(탈옥)해야합니다. 그렇지만 해킹(탈옥)을 하게되면 아이팟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중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아이팟과 제 스마트폰은 속도에서부터 이미 승부가 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동영상은 전원이 꺼져있는 아이팟과 스마트폰을 동시에 켰을 때의 전원이 켜지는 속도를 비교해서 제가 직접 찍었습니다. 동영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속도차이는 아주 많이 납니다.

전원 켜는 것 부터 사진, 동영상 찍는 것, 파일정리, 사진 저장, 삭제, 인터넷 이 모든 기능의 속도가 아이팟이 스마트폰을 뛰어넘었습니다.

카메라의 화질은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저는 사진의 화질보다는 사진에 담긴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질은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아이팟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실 제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터치 다이아몬드'는 기능은 아주 많지만 오래 전에 나온 기종이라 아이팟에 뒤쳐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저는 앞으로 스마트폰보다는 아이팟을 사용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블로그를 할 계획입니다.

저번에 제가 갈 태봉고등학교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역시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는 면접이라 무척 떨렸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하지만 긴장하는 것도 잠시 면접실에 들어가니 실제로 그렇게 긴장되는 않았습니다. 긴장은 커녕 준비했던 말을 거의 다 했었습니다.

면접은 30분동안 진행이 되었는데 면접을 보다보니 시간이 무지 빨리 갔습니다. 면접에서는 왜 태봉고에 들어오려고 하는지 무슨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지 이런 종류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하고있는 블로그에 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저는 태봉고에 가서도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글을 계속 올릴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면접 본 이야기를 왜 하필 지금 올리느냐? 그건 바로 오늘이 태봉고등학교 최종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면접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합격에 대해 잔뜩 기대하고 4교시 때에 컴퓨터로 태봉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찾아보아도 제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제가 태봉고등학교에 떨어졌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제가 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떨어지고 나니까 엄청나게 허무했습니다. 태봉고에 간다고 블로그에도 쓰고 자기소개서와 면접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한 번에 그냥 툭 떨어지니까 왠지 모르게 쓸쓸했습니다.

그렇게 쓸쓸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기분을 풀어보려고 친구들과 농구를 했는데 저를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저를 놀리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가 제 실력으로 떨어진거라 뭐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미안했는지 나중에 와서 장난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힘없이 그냥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또 5교시를 보내고 마지막 6교시 때에 저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 태봉고등학교 최종 합격자 명단을 다시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지만 친구들은 현실을 도피하지 말라며 저를 무시했습니다. 저는 다시 천천히 태봉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합격자 명단을 보았습니다.

저는 차분히 제 이름을 찾았습니다. 역시 제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거의 마지막 부분에 제 이름이 하나 적혀있었습니다.

분명히 제 이름인 '김태윤' 이 또박또박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는 "오! 붙었다! 붙었다!" 라고 소리를 치며 친구들을 껴안았습니다.

친구들은 못믿겠는지 합격자 명단을 살펴보았습니다. 친구들도 제가 합격한 것을 확인하고는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정말 반전이라며 감탄을 질러냈습니다.

저는 자리에 앉아서 통곡했습니다. 떨어졌다고 낙심하고 있을 때 제가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제가 너무 감격한 것 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친구들은 진정한 남자의 눈물이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위로에 힘을 받고 얼른 눈물을 닦고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은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오늘 일은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 입니다. 오늘 일 덕분에 고등학교에 가서 정말 열심히 해야한다는 끈기와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오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는 분명히 제 이름이 없었습니다. 왜 보이지 않았던 걸까요? 나중에 알고보니 아버지는 그 시간에 합격을 축하하는 문자까지 보내셨더군요. 학교에서 휴대폰을 꺼놓은 바람에 문자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중에 다시 합격자 명단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걸 보면 열심히 살아라는 신의 계시가 분명합니다.

앞으로 오늘 지옥과 천국을 왔다갔다한 일을 떠올리면서 남은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축구보다 농구를 더 좋아합니다. 친구의 권유로 농구를 해봤는데 꽤 재미있어서 계속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6000원이라는 싼 값으로 농구공을 한 개 샀습니다.

농구공이 6000원이면 무척 싼 값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농구공은 금방 가죽이 떨어져나갔습니다.

농구를 하는데에는 문제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 농구공으로 집앞에 있는 농구장에서 농구연습을 좀 하니까 실력도 꽤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번에 발을 다친 이후로 농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체육시간에도 그냥 공을 들고 던지기만 했을 뿐 다른 아이들처럼 뛸 수 가 없었습니다.

정말 다른 아이들이 농구를 하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까 농구가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농구경기를 봤습니다.

역시 선수들은 저와 실력 자체가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인터넷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의 농구 결승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였는데 처음에 우리나라가 계속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날 쯤에 우리나라가 공격을 계속 성공해서 결국 경기가 끝나는 동시에 거의 기적같이 90:90 동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연장에 가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치다가 마지막에는 100:102의 미묘한 점수차로 우리나라가 승리를 하게됩니다.

저는 그 경기를 보고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우리 한국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에 임하여 결국에는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결승전에서도 우리나라는 중국과 맞붙었습니다. 역시 우리나라는 초반에 계속 중국에 밀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 종료직전에 우리나라는 또 기적같이 점수차를 계속 좁혀나갑니다. 저는 2002년때와 같이 멋진 역전승을 할 것이라 기대를 잔뜩 하고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결국 71:77의 6점차로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경기했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발을 다쳐서 농구를 못하는 동안 집에서 멋진 농구경기들과 또 친구들이 농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농구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농구가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며 힘들 때 휴식과 스트레스 해소로 농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슬슬 블로거 팸투어 마지막 기행문을 써볼까 합니다. 팸투어에 가면서 어머니가 카메라를 주시며 사진을 많이 찍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저도 많이 찍었지만 다른 블로거 분들은 정말 쉬지도 않으시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말 여행을 하는 동안에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 놓은 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진 찍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에도 서로 자기 카메라에 사진을 담기위해서 무척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렇게 카메라를 많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다양하고 많은 카메라들의 사진찍는 소리가 항상 들렸던 것 같습니다.



역시 파워블로거들은 뭔가가 달랐습니다. 카메라도 무척 비싸보이는 것들만 있었는데 무언가 보이기만 하면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저도 그 분들을 따라서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어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진도 계속 찍다보면 지치게 되고 또 귀찮아지기까지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는 블로거님들


그런데도 사진을 계속 찍으시는 블로거님들을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저에게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최대한 가까이에서 찍기 위해 일부런 가기 힘든 곳에 가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도 직접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글과 함께 올리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꼭 비싼 것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카메라로 화질이 선명하고 깨끗한 사진을 찍는다면 좋은 점이 참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카메라로 찍느냐' 가 아니라 '어떤 것을 찍느냐' 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그냥 허공을 찍은 것과 화질이 좋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을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면 역시 화질은 안좋지만 아름다운 것을 찍은 것이 더 좋은 사진으로 판단됩니다.

똑같은 것을 찍었을 때에는 물론 화질이 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더 좋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질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사진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카메라로 찍은 것

내 카메라고 찍은 것


그렇기에 저는 꼭 화질이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도 사진만 잘 찍히고 블로그에 올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사진 찍는 연습을 많이 해서 더 많고 좋은 사진들을 많이 찍어서 블로그에 올릴 계획입니다. 그냥 글만 읽는 것보다 사진이 함께 있는게 읽는 사람에게 더 좋으니까요.

저번에 아머니, 아버지와 함께 태봉고등학교에 다녀왔습니다. 태봉고등학교의 입시설명회가 있어서 가족들과 다함께 가본 것 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두발자유, 교복자유등 많은 것들을 자율화시킨 학교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태봉고등학교에 갈 생각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한 학년이 총 45명밖에 안되고 한 반에 15명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모르는 학생이 없습니다.

그러면 학생과 선생님의 친밀감이 높아지고 서로 더욱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말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학생의 친함이 높아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학생이 적으니 친구들끼리도 더 친해질 것 입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중학교에는 친한 친구들도 많이 있지만 전혀 모르는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적으면 그 친구들과 더 친해질 것 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다른 고등학교들과는 다르게 공부말고도 노래나 악기연주, 농사, 옷만들기, 요리 등 생활교양에 대한 것들도 많이 가르쳐줍니다.

저는 미래에 어른이 되어서 방송PD가 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송PD는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영상에 담아내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방송PD에게는 무엇보다도 '경험' 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인생을 살면서 느껴본다면 나중에 PD가 되어서 그 만큼 많은 것을 영상에 표현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태봉고등학교는 제가 바라는 그런 경험을 아주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봉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보고 경험하고 느껴본다면 나중에 PD가 되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블로그를 계속 할 것 입니다. 지금은 평소에 블로그를 쓰면서 힘든 점이 바로 블로그를 쓸 '소재' 를 찾는 것 입니다.

지금은 블로그를 쓸 때 마땅히 소재가 없어서 고생을 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봉고등학교를 간다면 그 학교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블로그 글을 쓸 소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태봉고등학교를 블로그를 쓸 때 필요한 '소재 덩어리'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재 덩어리' 학교에서 생활한다면 블로그를 할 때도, 후에 PD를 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태봉고등학교를 주제로 블로그를 쓴 이유는 뭐 태봉고등학교를 극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인생에서 태봉고등학교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태봉고등학교에 들어가는게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면접도 보고 자기소개서도 써야합니다.

그런데 저도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어른이 되면 시험도 많이 치뤄야하고 면접도 많이 봐야합니다. 그러니까 태봉고등학교에 그런 경험들을 미리 해본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태봉고등학교는 전교생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저도 어른이 되면 부모님 곁을 떠나서 혼자 살아가야 합니다.

태봉고등학교에 가서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살아본다면 제 인생에 아주 큰 경험이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태봉고등학교는 여려면에서 인생을 미리 경험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골프채로 맞았다면?

뉴스에서 한 중학생이 집에 불을 지른 사건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화가 나서 집에 불을 질렀다고 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학생은 평소에 춤을 추거나 사진 찍는 것을 즐겨해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지만 아버지가 반대하면서 골프채로 찌르고 뺨을 때리는 등의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학생의 가족들인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할머니가 잠을 자다가 모두 사망했다고 합니다. 한 학생이 자신의 일가족을 모두 죽인 것 입니다.

무척이나 끔찍한 사건입니다. 저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더욱 끔찍했던 것은 그 학생이 일부러 휘발유를 준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습니다.


살인은 용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척 나쁜 일이지만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일부러 미리 휘발유를 준비해서 치밀하게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고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가족들을 말입니다.

저는 솔직히 표현을 잘 하지는 않지만 사실 세상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가장 사랑합니다. 저 말고 모든 사람들도 다 그럴 것 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들을 치밀하게 휘발유를 준비해서, 그것도 사람이 죽을 때 가장 고통스럽다는 불로 죽음에 이르게 하다니 정말 끔찍합니다.

학생이 진학과 진로를 준비하면서 부모님과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범행을 저지른 그 학생의 행동은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학생의 아버지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녀가 부모가 원하지 않는 진학을 선택한다고 해서 무력적인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솔직히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조금 심하게 혼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골프채같은 무기로 혼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그건 정말 '학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아버지에게 골프채로 맞았다면 범행같은 짓은 저지르지 않고 솔직히 그냥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조용히 가출을 할 것입니다.

가출도 나쁜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집에 불을 저질러서 가족을 모두 죽인 것 보다는 나은 것 또한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저를 골프채로 혼내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집에는 골프채도 없습니다.)

이번 중학생 방화 사건으로 인해서 앞으로 여려 부모님들의 폭행은 많이 사라질 것 입니다. 무슨 일이든 조금만 참으면 다 좋게 해결될 수 있는데 골프채로 때리거나 불을 저지른다는 등의 성급한 행동은 불행한 길로 인도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방학이 끝나서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6시 30분정도에 일어납니다. 집이 학교에서 꽤 멀기때문에 그렇게 일찍 일어나도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아침에 밥을 꼬박꼬박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가니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일어나면 피곤해서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에 빵을 먹기로 했습니다. 빵은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맛도 좋아서 아침식사로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매일 빵을 먹고가니까 빵이 슬슬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빵도 포기하고 그냥 아침을 먹지않고 학교에 가기로 했습니다.

많이 먹으면 질리기 시작하는 빵들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배가 너무 고파서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장을 보던 중 시리얼을 발견했습니다.

시리얼은 과자같은 것인데 우유에 타먹으면 아주 맛있는 음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맛있게 먹었는데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나요?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시리얼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우유도 하나 사서 학교를 가기 전 아침에 시리얼에 우유를 타서 한 번 먹어보았습니다.

역시 맛은 최고였습니다. 좀 어린애들이 먹는 음식이지만 아침으로서는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리얼을 아침으로 먹으면 좋은점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시리얼은 맛이 좋습니다. 일단은 과자이기때문에 단맛이 많아서 입맛이 없는 아침에는 최고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리얼을 먹을 때 우유도 함께 먹기때문에 영양가도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리얼 자체에도 영양가가 많게 만들기때문에 과자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시리얼은 먹는데 시간이 적게 걸립니다. 시리얼을 다 먹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5분 정도입니다. 그리고 만드는 방법도 쉬워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을 수 있습니다.

준비물은 시리얼, 우유, 그릇, 숟가락입니다.


그냥 시리얼을 그릇에 넣고 그 위에 우유를 부어서 먹으면 끝입니다. 오늘은 개교기념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시리얼을 먹지는 않았지만 간식으로 잠깐 시리얼을 타먹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먹을 수 있는 시리얼은 정말 최고의 음식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아침은 시리얼로 해결할 생각입니다.
저번주 일요일(9월 5일)에 우리집에서 제사를 했습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사였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처음 모시는 제사였습니다.

이제 우리집에서 제사를 해야했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무척 많았습니다. 병풍과 제상을 사야했고 또 제사를 할 때 차릴 음식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집 가까이에 큰 시장이 하나 있어서 필요한 음식은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일 때문에 역시 어머니와 숙모께서 고생하셨습니다.

저와 아버지도 제사 전날에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친척들이 무척 많이 오는데 집이 더러우면 안될 것 같아서 열심히 청소했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함께 했습니다.

제사 때에 친척들은 꽤 왔습니다. 우리집은 고모가 총 여섯 분이고 삼촌이 한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까지 합치면 총 8남매입니다.

고모 한 분만 사정이 있어서 못오시고 나머지 분들은 다 와주셨습니다. 고모부들은 많이 못오셨지만 다른 분들은 무척 많이 와주셨습니다.

제가 할 일은 그닥 없었습니다. 일이라고 해도 그냥 애들 놀아주는 것 정도? 아직 친척들이 많이 오지 않았을 때에 저는 제 사촌동생 리나, 관희를 데리고 아파트에 있는 물놀이장에 갔습니다.

리나와 관희는 거기에서 놀도록 하고 저는 물 밖에서 구경이나 했습니다. 사실 중학생이 그런 작은 물놀이장에서 놀면 엄청 창피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리나와 관희는 신나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친척들이 많이 왔을 때에는 역시 사촌동생들도 많이 왔습니다. 그냥 컴퓨터에 게임 한 개 켜놓으면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놉니다.

우리 집에서 처음 지낸 할머니 제사 상차림.


제사가 시작되고 저와 다른 가족들은 차려놓은 제상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진을 앞에 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올립니다.

제사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지만 문제가 있다면 제사를 모시는 거실에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제사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어서 턱에서 땀이 뚝 뚝 떨어졌습니다. 달랑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제사를 하자니 너무 더웠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있는 제사는 이번에 지낸 할머니 제사뿐입니다. 나머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는 다 가을이나 봄, 겨울에 있습니다.

이제는 더위를 참으면서 제사를 지낼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주 주말에 남해에 벌초를 하러 가야합니다. 그 때에도 엄청 더울 것 같은데 좀 걱정이 됩니다.

어쨋든 이번에 우리집에서 처음 지낸 제사는 남해에서 지낸 제사와 다를게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남은 제사들을 순조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가 벌써 6개월정도 되어갑니다. 이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제사는 우리집에서 해야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부터는 할아버지 없이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이나 고모들도 계셔서 그렇게 걱정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집에 병풍이나 큰 밥상같은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에 사용하는 제기는 제가 삼촌네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 가져왔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정사진과 제사에 필요한 몇가지 물건들을 지난번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남해에 가서 가져왔습니다.

남해에서 가져온 그릇들입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낼 때 가장 중요한 병풍과 상이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집에도 상은 있었지만 제사를 지내기에는 너무 작은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결국 병풍과 상을 한 개씩 구입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도 병풍과 상은 있었지만 거기에서 병풍과 상을 트럭에 실어서 가져오는 비용이 새로 구입하는 비용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냥 병풍과 상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굳이 남해에 있는 병풍과 상을 가져와서 사용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입해서 주문한 병풍과 상이 오늘 집으로 배달이 왔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경비실에 있는 병풍과 상을 한 개씩 한꺼번에 들고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꾀를 부려서 훨씬 가벼울 것 이라고 예상되는 상을 들기로 했습니다.

크기만 클 뿐 나무라서 별로 무겁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상은 저 혼자의 힘으로 들 수 없을만큼 무척 무거웠습니다.

잘 들지 못하는 저의 모습은 본 아버지는 들고 계신 병풍과 제 상을 바꿔주셨습니다. 병풍은 상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병풍은 정말 제가 한 손으로 들 수 있을만큼 가벼웠습니다.

정말 힘을 들이지 않으려고 꾀를 부린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앞으로 꾀를 부리면 안되겠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정곡을 찔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와서 저와 아버지는 병풍을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상도 갖다놓으니 꽤 제사를 하는 폼이 났습니다. 저는 얼른 절까지 해보았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그 병풍과 상을 가지고 제사를 지낼 것 인데 절 정도는 해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병풍과 상까지 사니까 이제 정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이제부터 예전처럼 열심히 우리집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9월 5일(일요일)에 있는 제사는 우리집에서 처음으로 지내는 제사니 더욱 정성을 다해 지내겠습니다.
드디어 길고도 짧았던 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개학을 해버렸네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니까 무척 기대가 됬었는데 그렇게 즐겁지는? 않더군요.

친구들을 만나도 그냥 그저 그랬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학교도 딱히 변한게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시간표는 당연히 바뀌고 선생님들이 가장 바뀌었습니다. 못보던 선생님들이 꽤 많더군요. 그것 말고도 학교에 식수대가 생겼습니다.

우리 학교의 식수대입니다.


원래부터 식수대가 있었지만 여름에 마시고 시원함을 느낄만큼 시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생긴 식수대의 물은 충분히 시원했습니다.

뭐 겨울이 되면 별로 필요가 없겠지만 시원한 식수대가 생겼다는 것은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도 새로 생긴 식수대가 좋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방학동안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뭐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니고 '글씨체' 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어머니에게 글씨체가 별로 멋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서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확실이 제 글씨체는 그저 평범한 글씨였습니다. 글씨는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글씨체가 멋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학때에 글씨체를 연습하는 책으로 멋진 글씨체를 완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공책에 아무렇게나 막 글을 적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막 날쳐서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글을 적고보니 그 글이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 글씨체는 제가 초등학교때에 학원에서 숙제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 사용한 저만의 글씨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냥 빠르게 글씨를 적어서 숙제를 끝낼 생각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글씨체가 제 눈에는 무척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저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로 조금 다듬어서 계속 연습했고 마침내 저만의 글씨를 완성했습니다.

제 옛날 글씨입니다.

현재, 멋있는 저의 글씨입니다.


방학때에는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도 많이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야하니까 블로그에 많이 소홀할 것 입니다.

하지만 쓸 소재가 생기면 바로바로 블로그에 올리려고 노력은 할 것 입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3개는 올리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제 블로그에 많이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동안 좀 바빠서 블로그를 쓰지 못했습니다. 청소년문화의 집 친구들과 부산에 강의를 들으러 가고 또 할아버지 집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남해에 갔었기 때문에 블로그는 쓰지 못했습니다.

방금 말했지만 그저께(8월 20일 금요일)에는 청소년문화의 집의 친구들과 부산에 갔습니다. 무슨 청년을 위한 인디고 서원에 대한 강의라고 했나?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차를 타고 부산으로 떠났습니다. 우선 점심으로 피자를 먹었는데 무척 맛있었습니다.

피자는 총 8조각이었는데 그 중에서 제가 4조각을 먹었습니다.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총 4명이었습니다. 제가 피자를 많이 먹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적게 먹은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피자가 느끼해서 2조각 이상 먹지 못하겠다며 과일이나 과자, 디저트만 많이 먹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피자만 실컷 먹었습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인디고 서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청년들이 연대를 형성하기 위한 강의를 한다고 했습니다.


저와 친구들도 청년이니까 그 강의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90%가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들어올 때 통역기를 받아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꽤 많이 왔습니다. 상상도 못했지만 정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많이 왔습니다. 물론 그 만큼 강의를 하는 분들도 무척 많이 오셨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고 강의를 하시는 분들이 한 분씩 나오셔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시는 분들의 말이 너무 빨라서 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속사포 랩을 듣는 것 처럼 강의를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말이 너무 빨라서 강의를 듣는동안 계속 '이거 통역해주는 사람은 돈 많이 벌겠다.' 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알아듣기는 했지만 도통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강의를 듣다가 조금씩 졸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너무 어렵고 약간 지루해서 강의를 듣는동안 잠깐 졸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한가지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쟁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온 사람들은 고향나라의 사람들에게 박수와 환영을 받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하시는 분은 사람을 죽이고 온 사람들이 어째서 박수와 환영을 받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 말에 공감을 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군인들이 영웅이겠지만 실제로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살인자가 왜 박수와 환영을 받아야하나? 지금까지 왜 그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저도 이상합니다. 앞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조금 더 진지한 시선으로,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이번 강의에서 깨달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이해가 안되는 강의라고 해도 교훈 하나쯤은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척 지루한 강의였지만 교훈을 하나 얻어서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우리집의 안전은 제가 책임집니다

저는 예전부터 문단속이나 자기 전에 불을 끄는 것을 아주 철저히 했습니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 항상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집안을 돌면서 가스밸브나 전등, 선풍기, 에어컨 등의 전기가 사용되는 것은 모두 꺼진 것을 확인합니다.

저도 왜 그런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을 켜놓고 잔다고 전기비가 왕창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불을 켜거나 선풍기 등을 켜놓으면 잠이 안옵니다.

그래서 항상 저는 집안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것을 꺼놓고 자야만 잠이 옵니다. 저는 처음에 제가 TV에서 에너지 낭비를 하지 말라는 광고를 많이 봐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도 에너지 절약에 대한 광고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사람들 중에서 왜 저만 그렇게 에너지 절약에 대해서 집착을 할까요?

그 고민에 대한 답은 아버지가 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그럴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말하시기를 할머니는 문단속이나 에너지 절약에 집착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할머니께 문단속이나 불을 끄고 자는 습관을 배웠던 같습니다.

그런 습관이 좋은 습관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귀찮은 습관입니다. 왜냐하면 문단속이나 불을 끄고 자는게 아주 귀찮기 때문입니다.

문단속이나 불을 끄고 자는게 무척 귀찮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그런 습관이 있는 것은 아주 좋다고 생각하지만 귀찮은 것은 사실입니다.

항상 잠겨있는 우리집 가스밸브입니다.


원래 저의 그런 에너지 절약 습관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집착하는 것 중에서 가스밸브 잠그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합니다.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는다면 진짜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요리를 하시고 가끔 가스밸브를 잠그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항상 가스밸브를 잠그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아버지에게 가스밸브를 꼭 잠그시라고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가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은 날이 있습니다. 저는 그 날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휩싸여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그 날부터 가스밸브나 문단속, 전등 끄기 등에 더욱 집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귀찮은 습관이기는 하지만 제 습관덕분에 우리집이 에너지를 절약하고 안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저는 어릴 때 부터 과자를 좋아했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어릴 때 과자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자 중에서도 '죠리퐁' 이라는 과자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면서 우유에 죠리퐁을 타먹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죠리퐁은 정말 지금 먹어도 맛있는 과자입니다. 요즘에는 귀찮아서 우유에 타먹지는 않지만 죠리퐁은 우유없이 그냥 먹어도 참 맛있습니다.

제가 과자 중에서도 특히 죠리퐁이라는 과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냥 맛있으니까 좋아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저는 짠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감자칩이나 새우깡처럼 짠 과자보다는 죠리퐁 처럼 순수하게 달달한 맛의 과자가 훨씬 맛있게 느껴집니다. 죠리퐁을 숟가락으로 퍼먹을 때 느껴지는 단 맛은 그야말로 환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에도 죠리퐁을 즐겨먹고 있습니다. 어제는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자이언트' 가 방송된다는 것을 알고 바로 슈퍼로 뛰어가서 죠리퐁을 사왔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자이언트를 시청하며 죠리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과자를 흘릴 수도 있으니까 침대에서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고있는 저에게 아직도 '애는 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그렇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꼭 어린 애 만이 과자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맛있는 것이 있다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에도 죠리퐁을 즐겨먹었습니다. 그 때에는 죠리퐁을 400원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1000원을 넘는 가격으로 사야합니다.

거의 3배 정도가 올라버린 죠리퐁의 가격때문에 저는 요즘 상심이 큽니다. 그래서 죠리퐁을 먹는 것을 조금 자제해야겠다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담뱃값도 인상한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는 합니다. 담뱃값을 올리는게 금연의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뉴스에서 말했습니다.

죠리퐁과 아버지의 담배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도 저처럼 상심이 크신 것 같습니다. 저는 죠리퐁 가격이 올라서 슬프고 아버지는 담배의 가격이 올라서 슬프신 것 같습니다.

저도 담배처럼 죠리퐁에 중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죠리퐁을 적게 먹는다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자를 많이 먹는게 몸에 좋은 것은 아니니까 앞으로 죠리퐁 먹는 것을 줄여야겠습니다. 아버지도 저처럼 담배를 줄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즐거운 일요일입니다. 어머니와 저는 집에서 주말을 즐기지만 아버지는 또 출근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제가 집에 있는동안 화장실 청소를 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얼마후 바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화장실은 꽤 깨끗하게 사용하는 편이라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꽤 오래 사용해서 바닥에 머리카락 등의 이물질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면대에도 때가 많이 끼어있었습니다. 저는 솔을 이용해서 박박 닦았습니다. 때는 생각보다 쉽게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바닥과 세면대의 물건들을 다른 곳으로 다 치워놓고 샤워기를 작동시켰습니다. 물을 가장 세게 틀어서 화장실을 향해서 퍼부었습니다.

화장실에 있는 더러운 이물질들은 속수무책으로 씻겨나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하지만 변기 때문에 거슬려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휴지통 비우기 역시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이게 빠져서는 안되겠죠? 어머니 화장실의 휴지통도 같이 비우니까 쓰레기 봉지가 꽉 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가장 강조하셨던 변기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변기는 역시 생각대로 가장 더러웠습니다. 찌든 때가 많이 끼어있어서 보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변기 전용 솔로 변기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때가 잘 지워지지 않아서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변기 청소도 끝나고 바로 어머니 화장실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화장실은 저번에 한 번 청소를 한 번 해서 그렇게 더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다 쓴 수건들을 화장실에 다 놓아두셔서 그것들을 치우는데 더 시간을 많이 투자했습니다. 아버지와 저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보다 빨리 끝나기는 했지만 왠지 더 힘든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화장실 청소를 다 끝내니까 속이 후련했습니다.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니 무척 뿌듯했습니다. 화장실은 청소하기가 무척 힘들지만 역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화장실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저 덕분에 깨끗해진 우리집 화장실 입니다.

왜냐하면 화장실은 청소하기 전 과 청소한 후가 확실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소한 화장실은 말그대로 반짝반짝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열심히 일하시는데 방학이 되서 집에서 맨날 노는 제가 화장실 청소나 집안 청소는 당연히 제가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화장실 청소도 하다보면 재미가 붙습니다. 화장실 청소는 물로 하기 때문에 발에 물이 튀면서 시원하기도 하고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또 화장실 청소는 하면 할수록 더 깨끗해지기 때문에 청소를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겨서 청소가 더 잘됩니다.
그러니까 뿌듯함이 더 커지는 것 입니다.

그리고 화장실 청소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TV에서 봤는데 그 사람은 화장실 청소를 마치 즐기면서 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즐기는 것 처럼 재미를 붙여서 한다면 쉽게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오전에 어머니와 함께 '무릎팍 도사' 를 시청했습니다. 무릎팍 도사는 제가 좋아하는 강호동 아저씨가 유명한 사람들을 게스트로 모셔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원래 그 방송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 재방송을 하길래 오랜만에 한 번 보았습니다. 이번에 나온 게스트는 '서경덕' 씨가 나오셨습니다.

서경덕씨는 한국의 홍보대사라고 하십니다. 옛날에 그 분이 독도가 우리나라의 땅이라는 사실을 '뉴욕 타임즈' 에 광고로 내셨다고 TV에서 한 번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셔서 왠지 반가웠습니다. 서경덕씨는 한국의 제1호 홍보대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홍보대사라는 꿈은 대학교를 다니실 때 부터 키워오셨다고 했습니다. 대학교때 서경덕씨는 한 동아리에서 400년 후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상해서 적은 대학생들의 설문지를 조사해서 타임캡슐에 넣는다는 내용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바로 실현에 옮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경덕씨가 속한 동아리의 회원들은 2만명이 넘는 대학생들의 400년 뒤의 한국의 모습을 상상해서 적은 설문지를 직접 손으로 정리해서 그 계획을 성공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거대한 태극기를 만들어서 세계 기네스에 도전하기위해 거대한 태극기를 만드는 계획을 세웠지만 태극기를 펼칠 장소가 마땅히 없어서 실패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원래 모든 일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배우는 것이므로 서경덕씨는 포기하지 않고 온 몸에 태극기를 두른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각 나라에서 한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8월 15일에 파리의 에펠탑으로 모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8월 15일 광복절 날에 30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파리의 에펠탑 앞에 모여서 큰 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300명의 한국인들은 머나먼 프랑스의 땅에서 대한민국의 애국가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서경덕씨는 그 때 들은 애국가가 인생에서 들은 애국가 중에서 가장 큰 애국가였다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한국을 정말 홍보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서경덕씨는 2002년 한 일 월드컵때에 축구장의 잔디로 옷을 만들어서 우리나라를 홍보하고 뉴욕타임즈에 독도를 홍보하는 등의 자랑스러운 일들을 하면서 한국을 빛내셨다고 합니다.

독도를 우리나라의 땅이라고 홍보하고 서경덕씨는 일본에게서 협박? 비슷한 문자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경덕씨는 굴하지 않고 계속 독도를 홍보하셨습니다. 

서경덕씨는 한 인터뷰에서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고 또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정말 독도문제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가지고 독도에 대한 관심도 많이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서경덕씨를 보면서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커서 서경덕씨처럼 멋진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물론 커서 서경덕씨처럼 정말 멋지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꼭 공부를 잘하지 않더라도 서경덕씨 처럼 멋진 자신감과 창의력만 있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삼촌네 가족과의 즐거웠던 여름휴가를 끝내고 저와 어머니는 바로 서울로 캠프를 갔습니다. 아이들은 총 35명을 데리고 갔는데 전부 중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옛날부터 어머니와 캠프를 많이 다녔는데 이번 캠프에는 아는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어색한 캠프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공부하러 가는 캠프라도 친한 친구들이 조금씩 있어야 캠프도 재미있고 공부도 잘 됩니다. 그래도 아는 친구들이 조금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서울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서울대학교' 였습니다. 유명한 대학교들을 둘러보는 캠프에 걸맞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서울대학교를 가장 먼저 갔습니다.

서울대학교는 말그대로 어마어마하게 컷습니다. 보통 중학교나 다른 대학교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거대한 학교였습니다.

학교가 아니라 한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넓고 시설도 무지하게 좋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서울대가 좋다고 하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는 서울대에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서울대에 왔는데 서울대 정문을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버스는 서울대의 정문으로 출발했습니다.

서울대의 정문입니다.

서울대 안에서 정문까지 가는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한참을 버스를 타고 드디어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정문에는 '서' 라는 글자의 동상이 크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서' 자가 서울대의 '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글자는 '서' 자가 아닌 'ㄱ' 과 'ㅅ' , 'ㄷ' 이 합쳐져 있는 글자였습니다.

그 글자들은 '국립 서울 대학교' 에서 따왔다고 했습니다. 정말 상상도 못했었지만 선생님의 해설을 듣고나니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제 실력으로 이렇게 좋은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이런 대학교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에 왔는데 구경만 하고 갈 수는 없겠죠? 우리는 서울대의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서울대에서 먹는 밥은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아무리 좋다고해도 밥이 맛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먹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는 서울대에서 먹었던 점심이 별로 맛있지 않았습니다.

점심을 대충 먹고나서 정수기의 물을 받아 쭉 마셨습니다. 정말 물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다 시원하고 맛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서울대의 물을 먹고 나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울대의 물을 먹고나온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 KBS로 출발했습니다. KBS에 도착하니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1박 2일' 의 오프닝 촬영지가 보였습니다.

서울 KBS 앞입니다.


TV에서 보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나온 곳이라서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1박2일 촬영하는 모습을 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KBS의 내부는 아주 넓었습니다. 역시 본사라서 그런지 촬영을 많이 하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단 한명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웠지만 KBS에서 사용하는 카메라들과 마이크들 역대 드라마들의 모습, 그리고 뉴스가 진행되는 과정 등을 보면서 저의 '프로듀서' 라는 꿈을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번 캠프의 주제는 '내 꿈을 디자인하다.' 입니다. 저는 그 주제에 맞게 제 꿈이 더 확실해지고 멋지게 디자인된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서 놀러갔습니다. 방학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친구들과 놀러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때에도 놀 기회는 많았지만 그 때에는 PC방을 간다고 해서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를 하는데 친구들이 문자로 PC방에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게임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늦게 가기로 하고 아버지가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나갔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아버지의 회사와 제가 친구들과 모이는 곳이 가까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친구들이 있다는 PC방으로 갔습니다.

친구들은 역시 게임을 하고있었습니다. 저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게임을 안해본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게임사이트에 아이디를 만들면 그 사이트의 모든 게임을 할 수있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저는 옛날에 그 사이트에 아이디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키우던 게임을 했습니다. 그 게임은 총 게임이었습니다. 만15세가 되고 올해부터 할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뭐 그런데 그렇게 잔인한 게임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총을 든 캐릭터가 좀비들을 죽이는 게임으로 피 대신 좀비특유의 초록색 액체?가 나오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이라는 게임이었습니다.

그 게임은 다른 총 게임들과는 다르게 직접 좀비도 될 수 있는 게임이라서 아주 특이한 재미가 있는 게임인 것 같습니다.

좀비가 된 모습입니다.


게임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총 게임이라 금방 질렸습니다. 그렇게 게임을 질려하던 때에 친구들이 갑자기 '에어라이더'라는 게임을 다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총 6명, 그리고 에어라이더라는 게임을 할 수있는 총 인원수도 6명 뭔가 딱맞는 것 같았습니다. 에어라이더라는 '카트라이더'라는 게임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행게임입니다.

저는 초등학교때 카트라이더라는 게임을 아주 즐겨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도 함께 아주 재미있게 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저보다 더 잘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아버지, 저 둘 다 하지 않는 게임이지만 그 때에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카트라이더는 차가 달리는 게임입니다.

반면에 카트라이터2라고 불리우는 에어라이더는 카트라이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비행기를 타고 레이스를 하는 게임입니다.

에어라이더

카트라이더


뭐 상당히 유치하고 초딩들만 할 것 같은 게임이지만 친구들이 여럿 모여서 할 게임으로써는 아주 좋은 게임 같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게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게임을 했습니다. 또 에어라이더라는 게임은 실력보다는 운이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서 다같이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 누구나 PC방에 가면 게임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각자의 일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가끔씩 PC방에서 야동을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야동을 보는 것은 나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그런 것을 본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것이죠. 또 PC방에 있는 컴퓨터로 야동을 보면 그 화면이 그대로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로 다 나옵니다.

그런데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야동을 보는 사람들이 조금 자제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PC방의 컴퓨터들을 보면 게임을 하기위해 만들어진 컴퓨터처럼 화질이 뛰어나고 용량도 빵빵합니다. 그리고 바탕화면에 있는 아이콘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놓고 게임에 관한 파일만 바탕화면을 꽉 채웁니다.

누구나 다 알듯이 게임을 자주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지만 역시 가끔씩 스트레스를 풀기위해서 게임을 하는 것은 좋은 것 같습니다.
저번주에 어머니가 일본으로 출장을 가셨습니다. 무려 5박 6일의 긴 출장이었습니다. 6일이 지나고 어제(7월 29일 목요일)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무척 지쳐보였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오랜만에 함께 집에 있으면서 밥을 시켜서 같이 점심식사와 저녁식사를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약간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섭섭함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와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그 드라마는 바로 어머니와 저 둘다 좋아하는 '제빵왕 김탁구' 였습니다.

어머니는 한동안 드라마를 못보셔서 그런지 드라마를 아주 재미있게 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너무 피곤하셔서 드라마를 보던 중 갑자기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무척 반가우셨는지 자고계시는 어머니를 보고 흐뭇해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우리집에 돌아오자 저는 자연스럽게 침대에서 자는 것을 밀려나고 오랜만에 제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역시 제 방에서 자는게 가장 잠이 잘 오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여행가방입니다.

다음날 어머니는 급하게 짐을 싸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일본에서 돌아오신 후 바로 또다시 출장을 가셔야했습니다.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힘들게 출장을 다녀왔는데 또 출장이라니... 정말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대신 출장을 가고싶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지말까?" 라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꼭 가야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정말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보였습니다.

회사에 직원이 새로 들어와서 그 직원을 혼자 출장보내기가 마음에 걸리셨던지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출장을 가셨습니다.

저는 하루만에 다시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해야했습니다. 다시 출장을 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이번주 일요일에 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십니다. 그 때 돌아오시면 정말 어머니를 반겨주며 제가 밥도 해드려야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열심히 일하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니까요.
저는 어릴 때 부터 귀신을 아주 무서워했습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 귀신을 자주 보았기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겁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귀신이 무서운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귀신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 공포를 느낍니다.

저도 이런 제가 너무 이해가 안되고 겁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집에 혼자 있을 때 무서운 영화를 보면 무서워서 잠을 못잡니다.


이렇게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저는 공포영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공포영화를 보고나면 또 몇 일간 공포감에 둘러쌓입니다.

작년에 '고사' 라는 공포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는 처음으로 제가 공포영화를 보면서 무서움을 느끼지 못한 영화였습니다.

그 '고사'라는 공포영화는 무섭기보다는 '징그럽다' 에 가까웠습니다. 귀신을 안나오고 더러운 장면만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고사2'를 친구들과 함께 보러가기로 했습니다.
 
요즘 KBS에서 '구미호:여우누이뎐' 이라는 납량특집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구미호가 나오는 드라마로 귀신과는 거리가 먼 드라마였습니다.

그 드라마 역시 무서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무서움보다는 자신의 자식에 대한 구미호의 모성애를 보여주는 드라마였습니다.

이제 '귀신' 이라는 소재는 요즘에 많이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귀신이 나오는게 무서운데 점점 귀신이라는 놈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나오는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그건바로 제가 좋아하는 만화인 '싸우자 귀신아' 라는 만화입니다.

그 만화는 귀신을 볼 줄아는 주인공이 귀신들을 퇴마한다는 이야기인데 거기에서는 귀신을 무서움의 존재가 아닌 '친구' 로 등장시킵니다.
 
주인공은 자신과 친했던 귀신을 사라지게 되자 그 귀신을 찾아나서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이 그 귀신을 사랑하고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귀신은 아주 무서운 존재이고 사람들과는 엮일 수가 없는 존재로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싸우자 귀신아라는 만화에서는 귀신을 친구에서 사랑하는 존재로서 표현합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그 만화에 대한 충격과 놀라움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얻었습니다. 죽은 영혼인 귀신을 사랑한다는 소재는 엄청나게 참신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강풀님의 만화에서도 귀신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강풀님의 만화에서도 귀신은 단순히 무섭고 싸워야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싸우자 귀신아라는 만화의 작가님은 귀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귀신을 친구와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신 만화가이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귀신이라고 다 무서워하지 않고 귀신도 우리 사람들과 같은 존재로 여기면서 귀신에 대한 무서움과 고정관념을 버려야겠습니다.

싸우자귀신아:벚꽃
카테고리 만화 > 웹툰/카툰에세이
지은이 임인스 (보리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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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카레를 무척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본다면 저는 카레라고 말할 것 입니다. 카레 중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즉석카레를 좋아합니다.

다른 카레들도 맛있지만 제가 직접 만들어서 먹은 카레가 저에게 더 맛있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짜장밥도 좋아합니다.

카레만큼은 아니지만 짜장밥도 제가 직접 만들어서 먹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카레와 짜장밥이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인 즉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많이 먹으면 쉽게 질리는 법 그래서 라면을 끓여먹어볼까 했는데 라면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종일 카레만 먹을 수 있다면 엄청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카레도 너무 많이 먹으니까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카레와 짜장을 많이 먹지 않아서 즉석카레와 즉석짜장이 부엌에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카레를 많이 먹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바로 귀찮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어머니가 외국으로 출장을 가셔서 저 혼자 집에서 밥을 해먹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밥은 아버지가 직접 해주시고 냉장고에 반찬도 많이 있습니다. 요즘 방학이라 집에만 계속 있어서 그런지 반찬 차리는 것도 귀찮아 졌습니다.

사실 그게 말이 안될 수 도 있습니다. 반찬 차리는 것 보다 카레를 만들어 먹는 것이 훨씬 어려운데 왜 반찬을 차리는게 더 귀찮다고 할까요.

다른 분들은 저를 보며 반찬이 맛이 없으니까 카레를 만들어 먹겠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우리 집에 있는 반찬은 어머니가 외국으로 출장가시기 전에 저를 위해 맛있는 것들을 많이 사놓으셨습니다.

저는 단지 카레를 오랫동안 만들어와서 카레 만드는 것이 저에게 익숙해져서 카레를 만들어 먹을 뿐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카레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제는 질리기까지 한 것 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귀찮더라도 반찬을 차려서 계란프라이도 만들어 먹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옛날에는 밥이 없으면 당장 밥을 지어서 먹었는데 요즘 너무 집에만 있으니까 그런게 귀찮아진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하든지 해서 빨리 몸을 많이 움직여야 겠습니다. 어머니는 외국에서, 아버지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시는데 제가 조금 귀찮다고 밥을 제대로 못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니까요.
저는 저번에 영화 '이끼'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것을 알고 갑자기 '이끼'가 무척 보고싶어졌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이길래 청소년 관람불가일까?

이런 생각으로 이끼 웹툰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끼 웹툰은 분량부터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무려 80화나 되는 엄청난 만화였습니다.

그리고 한 편마다 전부 중요한 내용을 담고있어서 한 편이라도 빠짐없이 다봐야했습니다. 저는 만화를 3일에 걸쳐서 다 봤습니다.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잔인한 장면도 많이 나왔습니다. 이걸 영화로 만들면 청소년 관람불가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끼의 내용은 대충 도시에서 살던 한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골마을에 내려가서 그 마을의 비밀을 캔다는 내용입니다.

길게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합니다. 그리고 만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한 3분의 1정도, 그런데 이런 많의 내용을 어떻게 한 영화에 넣을 수 있었을까요?

정말 이끼 영화를 제작하신 강우석 감독님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끼 정도의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면 꼭 성공할 것 입니다.

제가 본 이끼 웹툰은 강풀님의 만화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 만화 둘 다 회상하는 장면이나 과거의 일들이 많이 나옵니다.

두 만화 모두 치밀한 만화라서 그런지 과거의 이야기나 회상하는 장면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만화는 다른 점도 당연히 있습니다.

일단 강풀님의 만화는 과거에 안좋은 일을 회상하는 장면과 함께 등장인물이 한 명씩 등장합니다. 하지만 윤태호 작가님의 이끼에서는 등장인물이 이미 다 나와있는 상태에서 그 인물들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집니다.

그리고 강풀님의 그림체가 약간 밝은 느낌이라면 윤태호님의 그림체는 약간 무섭고 어두운 느낌입니다. 또 강풀님의 만화는 인물들이 키가 현실보다 작은 편이고 윤태호님의 만화에서는 인물들이 키는 크지만 머리가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뭐 각자의 개성이 있는 것 이지만 저의 기준에서는 그렇게 보인다는 것 입니다. 강풀님과 윤태호님 모두 저에게 훌륭한 만화가입니다.

윤태호님의 만화는 이번에 처음 보는 것 이지만 이끼라는 만화는 저에게 큰 재미와 충격을 주었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재미와 긴장감은 영원히 제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 입니다.

'강풀님과 윤태호님의 만화 중에서 뭐가 더 재미있나?' 이런 질문을 한다면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그 질문이 '엄마와 아빠 중에서 누가 더 좋냐?' 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강풀(강도영) / 만화가
출생 1974년 12월 20일
신체
팬카페 강풀순정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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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 만화가
출생 1969년 08월 82일
신체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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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사실 한 사람의 작품을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그냥 저는 두 만화가님들의 만화를 재미있어하고 좋아할 뿐입니다.                                  
이끼
감독 강우석 (2010 / 한국)
출연 정재영,박해일,유준상,유선,허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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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일요일에 저는 말로만 듣던 개꿈을 꿨습니다. 그 꿈은 정말 이상한 내용의 꿈이었습니다. 그 꿈에서 저는 두 팔을 잃게됩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학교시험을 치러갑니다. 시험을 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꿈 속에서 저는 발과 입을 사용해서 사인펜을 들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꿈 속에서 저는 두 팔이 없는 상태로 제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과연 미래에 두 팔도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좌절하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제 팔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꿈이라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갑자기 제 두 팔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꿈에서 깼습니다. 이 꿈의 내용은 블로그 소재를 많들어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입니다.

아직도 믿기지는 않지만 꿈속에서의 저는 두 팔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꿈에서 깬 저는 반사적으로 제 팔이 멀쩡한지 살펴보고 안심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 두 팔이 없는 것이 꿈이 아니라 진짜였으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저는 아마 큰 좌절감을 느끼고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을 것 입니다.

두 팔 없이도 환하게 웃고있는 아이들

제가 왜 이런 꿈을 꿨는지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해답은 바로 텔레비젼에 있었습니다. 요즘에 텔레비젼에서 방송하는 광고중에서 두 팔이 없는 아이가 등장하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고를 처음 봤을 때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보다도 훨씬 어린 아이가 두 팔이 없는 것 을 보고 저는 놀란 것 이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두 팔이 없다는 시나리오의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두 팔이 없어도 발로 글을 쓰며 환하게 웃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팔이 없다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보다도 어린 아이가 두 팔 없이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저는 두 팔이 없으면 무조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 아이처럼 두 팔이 없지 않습니다. 아니, 저는 몸 중에서 불편한 부분이 없습니다.

저는 이번에 그 꿈을 꾸고나서 두 팔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두 팔을 잃어보니 얼마나 불편한지도 알게되었습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힘들어지는 것은 알고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전 온몸이 멀쩡합니다.

앞으로 저를 멀쩡하게 낳고 길러준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가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인 즉 물이 변기에 튄다는 것 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왜냐하면 귀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서서 볼일을 보고 그 때마다 변기를 깨끗하게 닦아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변기를 닦을 바에야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것이 덜 귀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제의를 받아드렸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던 습관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일어서서 볼일을 보고 아버지에게 작은 꾸중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도 일주일동안 계속 앉아서 볼일을 보니까 어느새 그것도 하나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저도 모르게 변기에 앉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습관이 고정되고나니 아버지는 우리가 앉아서 볼일을 보는 이유는 매일 앉아서 볼일을 보는 어머니를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계속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볼 것 입니다. 우리집 뿐만 아니라 다른 화장실에서도 말입니다. 남성들이 조금만 습관을 고치면 그 변기를 쓰는 여성들의 변기를 내리는 고생은 줄어들 것 입니다.

꼭 남자는 변기에서 일어서서 볼일을 봐야한다는 고정관념을 이번에 완전히 깬 것 같습니다.
 

항상 내려져 있는 우리집 변기입니다

기말고사가 끝난지도 이제 5일정도가 지났습니다. 3학년에 처음 들어온게 어제같은데 벌써 1학기 시험을 다 쳤습니다.

우리반은 이번 기말고사에서 1등을 했습니다. 3학년의 다른 반들 중에서 우리반이 시험을 가장 잘 쳤다는 것 입니다.

우리반은 3학년에 처음 들어올 때 꼴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반 담임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시지 않은 것 같으셨습니다.

하지만 몇 달 전에 친 중간고사에서 우리반이 1등을 하고 이번 기말고사에서도 1등을 했습니다. 우리반 담임 선생님께서는 겉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척을 하시지만 아마 속으로는 매우 기뻐하고 계실 것 입니다.

사실 우리반이 몇 등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제가 전교에서 몇 등을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아직 각자의 등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반이 1등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가 아니라도 제가 속한 우리반이 1등을 하니 저도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한 것 입니다. 아마 우리반의 다른 친구들도 같은 생각일 것 입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두 우리반이 1등을 해서 다른 성생님들의 기대가 큽니다. 우리반 담임 선생님께서는 그 기대에 부흥을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십니다.

선생님께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도 중요하지만 이번에 치루는 학업성취도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사실 학업성취도 평가는 내신에 반영이 되지않아서 아이들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께서는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잘 쳐야 하는 중요한 시험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시험인데 일단 잘치고 보자'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한데 아이들은 너무 갈등이 심한 것 같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기대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번 시험도 우리반이 1등을 하려고 노력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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