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프로듀사' 라는 드라마의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방송국 PD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그려 낸 드라마입니다. 옛날에 제가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기에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KBS의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을 보고 제가 방송국 PD가 되고싶었는데, 드라마 프로듀사의 주인공 라준모(차태현 분)이 맡은 프로그램이 바로 1박2일이었습니다. 



저도 예능PD가 되어 1박2일같이 참신하고 재미있는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는데,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1박2일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방송국PD라는 꿈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면서 예전에 그 꿈을 꿀 때의 제 모습이, 그 때의 감정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는 영상도 많이 정말 만들었고, 공부라면서 예능 프로그램들을 모조리 챙겨보고 열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뭐 대학생활이 바쁘니 어쩌니 하면서 열정이 많이 식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프로듀사를 보니 제가 방송국 PD를 꿈꿨던 그 때가 정말 순수하고 멋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신입사원으로 등장하는 백승찬(김수현 분)을 보면서 '내가 만약 PD가 되었으면 저랬을까?'하는 생각도 했죠.


주인공 백승찬은 방송국에 들어가 맨날 야근하고 선배들에게 혼나면서 온갖 고생을 겪는데도 정말 즐거워 보였습니다. 1박2일 촬영을 하고 편집하는 장면은 제가 많이 꿈꿨던 모습이라 부럽기도 했습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은 영상에 관심이 떨어졌다고 해도 언젠가 또 열정이 생겨서 PD가 되고싶다거나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이 있겠죠. 


저는 그저 드라마 프로듀서를 보면서 잠깐 잊고 살았던 예전의 열정적으로 꿈꿨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 힘이 많이 났습니다. 


드라마 프로듀서는 제가 PD의 꿈을 옛날에 가졌던 게 아니라도 여러 가지로 참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있는 드라마입니다. 한 회마다의 제목을 '방송사고의 이해', '결방의 이해' 이런 식으로 방송에 관련된 용어로 짓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방송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뜻을 인간관계와 연관시켜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과 고민거리에 대한 해결책 또는 메세지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저는 특히 남녀 사이에서 겪을 수 있는 오해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어렵다는 것을 방송 시청률에 비유하여 표현한 게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프로듀사에서는 이런 메세지를 줍니다. '노력해도 얻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한다.'


뭐 여러 가지로 재미있었던 드라마였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키득키득 웃으면 TV를 본 것 같습니다. 



학교 과제로 광고 만들기가 있었습니다. 뭘 소재로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농구와 관련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광고라고 하면 소비자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해봐야 하기 때문에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농구로 선택했습니다. 


농구를 많이 하면 다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살 게 많습니다. 제가 가진 농구 용품과 친구들이 가진 농구 용품을 모아서 농구 용품 브랜드 '나이키 조던' 을 광고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조던 브랜드의 용품들을 착용하고 농구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자주 가는 농구 용품점에 부탁을 해서 농구화와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된 모습도 담아보았습니다. 



방학이 되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도 남아있는 과제들과 수업 생각들로 막 정신없고 그랬는데, 방학이 되니까 너무 무료하네요. 


방학 동안 알바를 할까해서 알바를 구하는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느라 잠시 집에서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낮에 밖에 나오는 거라 그렇게 더울지 몰랐습니다. 


밖에서 20분 정도 있었는데, 정말 덥더군요. 동사무소를 한 번 다녀오니 거의 땀 범벅이 되어있었습니다. 집 앞에서 엄청난 더위를 참으며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구름이 참 예뻤습니다. 제가 반 년간 살았던 캄보디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구름이었습니다. 권적운이라고 하여 양털이 촘촘히 줄지어있는 모양의 구름이었습니다. 



캄보디아의 하늘이 정말 시원하게 뻥 뚫려있고, 구름도 참 예뻐서 캄보디아에 있는동안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기분좋은 명상에 잠기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지금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뭔가 불안하고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면서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책도 손에 잘 안잡히더라구요. 


제 미래에 대해 생각이나 고민도 많아서 가끔 머리가 아플 때 캄보디아의 하늘을 보며 여유를 만끽하고는 했는데, 오늘 비슷한 하늘을 보면서 캄보디아에 있을 때가 많이 그리워 졌습니다. 


캄보디아는 탁 트인 하늘처럼 사람들도 다 여유롭고 뭔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여기서는 뭔가 답답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러던 중 하늘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일이라도 하면서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같은 기분좋은 풍경도 기대하며 하늘도 가끔 올려다 봐야겠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캄보디아의 하늘


집에서 누워있는데, 고등학교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다짜고짜 남해를 가자고 하더군요. 여행을 위해 차도 빌렸으니 기름값만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여행이란 지금 당장 이 곳에서 벗어나는 게 시작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해서 별 고민없이 바로 남해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남해에 지금은 빈 집인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거의 바로 학교에 복학하느라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참 반가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고기를 구워먹고 술도 한 잔씩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새 밤이 지나가더군요. 학교를 다닐 때에는 몰랐는데,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참 재밌었습니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나이가 스물이 넘고 각자 일을 하며 지내다보니 정말 만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학생 때에는 매일 보던 얼굴들이 이제는 이렇게 방학 때에만 가끔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도 시작하면 점점 더 보기 힘들어 지겠죠. 뭐 어쨌든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을 훌쩍 보내고, 잠깐 눈을 붙인 다음, 아침 일찍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꽤 비워서 생긴 거미줄을 다 떼고, 바닥도 한 번씩 닦고 우리가 사용한 그릇들도 깨끗히 정리하고, 남해의 상주로 차를 타고 갔습니다.


상주에 가는 이유는 저희가 학교를 다닐 때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던 '여태전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주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시죠.


저희를 참 좋아하시고, 아끼시는 선생님이라 저희도 많이 친근한 분이셨습니다. 여태전 선생님은 저희를 많이 반가워하셨습니다. 좀 더 자주 찾아오라며 장난을 치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주시는 회와 매운탕 그리고 조금의 소주를 곁들이니 그 만큼 완벽한 점심식사는 없었습니다. 여태전 선생님과 옛날 태봉고를 다닐 때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선생님은 중학교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바다 옆에 있는 상주중학교가 참 멋졌습니다. 좁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중학생들 보니까 흐뭇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부러움일까요.. 약간의 그리움도 있었습니다. 여러 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하지만 신났던 여행이었습니다. 



학교 기초비디오 시간에 '뮤직비디오' 제작 수업을 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그 노래에 맞는 이미지를 모으기부터 그것을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마룬5라는 가수의 노래 'Feelings'를 골랐습니다. 대부분의 마룬5 노래가 그렇듯이 Feelings는 매우 경쾌한 노래였습니다.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서 최대한 화사하고 경쾌한 이미지들을 찾았습니다. 

뮤직비디오에 사용할 영상들은 모두 아이폰으로 촬영했습니다. 제가 옛날에 찍었던 영상들도 뮤직비디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 같으면 많이 사용했습니다. 

노래의 제목 그대로 저의 Feelings(느낌들)을 많이 표현하려 했습니다. 딱히 영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만든 것은 아닙니다. 뮤직비디오 수업의 주제도 어떤 특정한 의미가 아니라 영상의 느낌이었으니까요.

짧지만 나름대로 음악과 이미지를 맞춰 제작한다고 고민을 많이 해서 만든 영상입니다. 꽤 오랫동안 영상을 잘 만들지 않아서 감을 잃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만들다보니 재미도 있었고, 여러 가지로 색다른 제작 경험이었습니다. 



3월 쯤에 '대부(The Godfather)'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전세계 명작 영화들을 뽑을 때 항상 1순위로 뽑힌다는 유명한 영화라고 해서 계속 보고 싶어했는데, 이번에 볼 수 있었습니다. 


대부는 총 3부까지 나와있는 영화였습니다. 한편 당 거의 세시간 씩이나 되더군요. 게다가 3편까지 있으니 스토리가 얼마나 방대한지 보기도 전에 알 수 있었습니다. 


대부 1편을 보았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마피아의 고위 간부인 돈 꼴레오네 패밀리가 겪게 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영화는 처음 봤을 때, 음...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엄청나게 풍부하고 캐릭터들도 다양했지만 70년대에 나온 영화라 그런지 뭔가 좀 뻔했습니다. 


현재 헐리우드의 어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연출이나 스토리 라인이었고, 지금의 발전된 영화들과는 뭔가 다르게 어색한 부분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보는 세시간 내내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명작일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편을 보고 나머지 두 편을 볼 엄두가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6월 초에 제가 학교에서 듣는 영상학 수업에서 제가 본 영화 대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설명하실 때 영화 대부의 한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몽타주 기법이란 영상의 쇼트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개념, 상황을 만들어내는 편집 기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싸늘하게 죽어있는 남성의 시체'를 보여주고 바로 다음에 '무언가를 보며 슬퍼하고 있는 여인'의 쇼트를 배치하면 죽은 남성을 보고 슬퍼하고 있는 슬픈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몽타주 기법의 기본적인 예시입니다. 


이것말고도 몽타주 기법에는 무궁무진한 방식과 종류가 있습니다. 영화 대부에서는 이런 몽타주 기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고 합니다. 


과제로 몽타주 기법에 대한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영화 대부에 대해 더 알고싶어서 발표 영화를 '대부'로 정했습니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영화 대부에 대한 자료를 무척이나 많이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영화 대부를 보고 또 보면서 몽타주 기법을 공부했습니다. 


덕분에 대부를 보면서 몽타주 기법이외에도 대부 속에 드러나 여러 가지 영화 기법들과 저번에 볼 때에는 몰랐던 영화 속 의미들을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을 다시 보면서 그제서야 영화 대부가 영화의 역사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점점 찾았습니다. 대부에 나오는 대부분의 연출들, 편집 그리고 스토리 캐릭터까지... 모두 현재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들의 원조가 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영화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화 대부에서 행했던 영화적 시도들은 강렬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직 영화 대부를 전부 이해한 게 아닙니다. 제가 이해하기에 대부는 그 세계가 삼국지 만큼이나 방대하고 아직 제가 모르고 봤던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공부하면서 2편과 3편도 꼭 챙겨봐야 할 거 같습니다. 




대부 (2010)

The Godfather 
9.4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 제임스 칸, 리차드 S. 카스텔라노, 로버트 듀발
정보
드라마, 범죄, 스릴러 | 미국 | 175 분 | 2010-05-27



얼마 전에 제가 다녀온 국제활동 프로그램 '라온아띠'가 14기 단원들을 모집했습니다. 제가 12기 단원으로 갔었는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14기를 모집하네요. 


라온아띠 단원들은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도 지속가능한 활동으로 귀국단원으로서의 일들을 해나갑니다. 저는 이번에 14기 단원을 모집하는 것을 계기로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 10기 라온아띠 귀국단원 누나가 있어서 그 누나와 저 둘이서 함께 준비했습니다.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은 퀴즈 형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라온아띠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였습니다. 10기 누나와 단 둘이서 다 돌리자니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스스로 기분 좋게 하는 일이라 의욕이 샘솟아 금방 끝냈습니다. 



포스터에 설명회 장소와 날짜를 언급해놓고 설명회 당일날, 학생회관 1층에서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냥 소소하게 책상 하나에 노트북으로 라온아띠 관련 영상 몇 개 틀어놓고 현지 생활하면서 찍었던 사진 몇 장과 그 곳에서 사용한 물품들 몇개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노트북을 이용해 라온아띠가 파견되는 아시아 국가들에 관련된 퀴즈를 내서 맞추는 학생들에게 초콜릿이나 젤리 같은 소소한 상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아시아 알아가기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캠페인을 진행하는 날이 시험기간이 거의 시작되는 주라서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안 모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온아띠 14기 모집 설명회도 겸해서 진행하는 캠페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라온아띠라는 국제활동에 관심이 있어서 온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 세 분정도? 말고는 라온아띠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저희를 보면서 "라온아띠 모집 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라고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소소한 저희의 모습에 약간 당황하신듯한 표정으로 "밥 먹고 올께요." 라는 말을 남기신채 떠나가셨습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생각보다 학생분들이 퀴즈에 많이 참여해 주셔서 상품이 다 떨어져 다시 사올 정도였습니다. 



사실 참여인원이 몇 명이고, 상품이 얼마나 나갔고 이런 것들보다도 이번 캠페인으로 인해 대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아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철저히 라온아띠 홍보성으로 시작한 캠페인도 아니고, 중요한 건 캠페인 이름처럼 아시아를 알아가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게 목표였습니다. 덤으로 라온아띠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 더 좋죠. 좋은 프로그램이니까요.


이번에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오랜만에 라온아띠 활동하던 시절을 많이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10기 단원 누나와 라온아띠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 누나도 저처럼 20살 때 라온아띠를 가서 저와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같이 학교에서 라온아띠 귀국 후 활동을 같이 많이 하기로 했고,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캠페인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많이 도와준 대학교 YMCA 분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캠페인 준비 뿐 아니라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계속 자리를 지켜주셔서 무척 든든했습니다. 


다음 학기에는 대학Y 활동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여러모로 얻어 가는게 많이 있었던 캠페인이었습니다.

캄보디아에 있을 때 함께 살았던 시와 여행을 좋아하는 한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있습니다.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이었는데. 인도 여행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쓴 류시화라는 사람은 원래 시인으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등의 재밌는 시집을 많이 낸 분입니다. 


책을 추천해 준 친구가 류시화 시인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그 분의 책을 캄보디아에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 분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곤 했는데, 그 분의 인도 여행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게 되었습니다.


인도 갈 때마다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 책


류시화 시인은 인도로 여행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인도 여행을 다녀오셨고,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인도에 갈 때마다 겪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인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들었던 충고, 마법같은 경험들로 한 편의 영화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가장 많은 이야기가 길거리에서 만난 인도인들에게 배신당하거나 뒤통수를 맞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을 배신한 그 인도인을 다시 만나면 항상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깜빡 잊고 있었네요", "아 맞다. 그런 약속을 했었죠?" 등의 너무 쿨한 대답으로 류시화 시인을 당황시킵니다. 


류시와 시인께서는 인도인들 특유의 쿨한 성격과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합니다. 적응했더라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는 게, 배신을 당하거나 약속을 어기면 또다시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책을 읽는 초반에는 인도인들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우리나라 사람들과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약속의 무게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식적인 일이나 중대한 일을 제외하고 사람들 사이에는 많은 약속이 오갑니다. 한국에서는 약속을 잘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로 그 사람의 인성이 판단되기도 합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는 약속이라는 개념의 무게가 크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약속은 중요하지만 약속이 가지는 무게는 그 민족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바쁘게 살고 여유가 없는 우리나라는 약속이 가지는 무게가 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유롭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인도인들에게는 약속의 무게가 가벼운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친구가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잘 지키지 않으면 화가 날 것 같지만, 인도에서처럼 모두가 여유롭고 낙천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인도 사람들 


그런 생각을 들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인도인들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책 속에서 류시화 시인께서는 몇 번이나 나쁜 일을 겪거나 그런 일을 겪은 인도인들을 만납니다.  


작게는 버스가 몇 시간이나 정체되고, 크게는 사기를 당하거나 가족을 잃은 인도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버스가 몇 시간이나 정체되면 한국인들은 보통 화를 내고 어떻게든 버스가 왜 정체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버스가 빨리 출발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려 합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아무 일도 아닌듯이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어이가 없는 류시화 시인이 인도인들에게 왜 가만히 있느냐고 물어보면 인도인들은 '지금 버스가 정체된 것은 이미 몇 천년부터 정해진 일이다.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왜 바꾸려고 힘을 낭비해야 하는가?" 라는 식의 대답만 돌아옵니다. 


그건 종교에 얽매인 사고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와 믿는 것의 차이가 아닌, 정말 순수하게 인도인들에게 버스가 늦게 출발하는 것따윈 아무 일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정말 바쁜 일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만날 가족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이미 일어난 일에, 바꿀 수 없는 상황에 화를 내거나 감정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이미 정해진 일이라며 낙천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무언가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 그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바쁜 세상을 살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이 사기를 당하거나 가족들과 이별해도 그건 이미 몇 천년 전부터 정해진 일이고 나에게 닥친 시련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나쁜 상황을 극복합니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유한 인도 사람


이 책을 보고 나서 인도는 우리나라보다 가난하지만 참 부유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바쁘고 여유 없이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도인들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가난하고 빈곤한 것 같습니다. 


인도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인 '노 프라블럼', 참 쉬운 말이면서도 참 하기 힘든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도인들처럼, 인도인들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 낙천적인 사람, 마음에 부유한 사람을 보며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마법같아서 조금 과장한 것 같은 에피소드가 많이 있지만 글을 읽으면 그 때 그 순간에 류시화 시인께서 느낀 감정은 진실되게 느껴집니다. 


사람에게 놀라고, 사람에게 화나고, 사람에게 감사하고, 사람에게 감동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감정의 근원 그 자체게 바로 여행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얼마전(5월 4일) 학과에서 단체로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왔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이번이 16회 째 개최되는 영화제로 주류영화들과는 다르게 새로운 대안적 영화(alternative film)을 관객들에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000년에 처음 개최되었으며, 영미권, 유렵,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등의 다양한 나라의 영화들이 상영되는 영화제입니다. 



저희 학과에 영상에 관련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학과 공식 행사로 영화제 방문이 있다고 합니다. 2학기 때에는 부산국제영화제도 간다고 하네요. 


아침 일찍부터 모여서 전주로 출발했습니다. 약 2시간에 걸쳐 전주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이 애매해서 영화를 한 편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위아영' 이라는 영화를 보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상영시간이 맞지 않아서 보지 못하고, 시간이 맞는 영화를 찾다가 '덫 치명적인 유혹'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시간대가 맞아서 그런지 우리 학과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영화 '덫 치명적인 유혹'은 에로영화를 많이 만드는 봉만대 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책자에 적힌 설명을 보니 '덫 치명적인 유혹'은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인만큼 새로운 방식의 시도를 많이 한 영화라고 합니다. 장르 또한 에로보다는 스릴러에 가까웠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야한 장면이 많이 나왔습니다. 학과 친구들과 같이 보는데, 얼굴이 자주 붉어졌습니다. 친구들은 대부분 영화가 별로 재미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영화를 재미있게 본 것 같습니다. 베드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 이외의 긴장감을 주는 장면이나, 격투씬, 추격씬 등은 몰입도가 높았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봉만대 감독님을 잘 모르지만, 에로 영화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록 긴장감 있게 스릴있게 연출을 한 것 같았습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헷갈려 하며 장면이 왔다갔다하는 장면은 정말 디테일한 편집이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잘 모르고 영상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써 영화제에 가본 기억은 정말 좋은 경험인 것 같습니다. 비록 영화는 한 편밖에 못봤지만, 영화제에서 영화를 cgv, 메가박스에서 상영하는 모습이나 광장에 감독과 배우가 나와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이런 것들이 모두 처음 보는 광경이라 참 신기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지난 5개월간 학교를 휴학하고 라온아띠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캄보디아를 다녀왔습니다. 봉사활동 또는 국제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떠난 캄보디아, 5개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가기 전에 한 달간 훈련을 받을 때에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습니다.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기대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낯선 곳에서 무려 반 년간 산다는 건 그렇게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 내가 모르는 곳, 난생 처음 듣는 어려운 말들이 어디에서나 들리는 곳, 제가 가는 캄보디아는 저에게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습니다.


그런 낯 선 캄보디아에서 반 년을 살면서 느낀 게 참 많고 다양한 생각을 했지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내가 여기에 왜 있을까?'였습니다. 


제가 라온아띠에 지원했을 당시에 가졌던 고민, 생각, 기대가 정작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많이 무너졌습니다. 우선 라온아띠는 제가 생각했던 '봉사'활동이 아니었고, '국제자원활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조금 다른 관점이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과 국제활동, 전혀 다른 뜻이지만 정확하게 그 차이를 구분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세 5개월 동안 있으면서 그 차이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라온아띠 사전훈련 한 달동안 계속해서 공부하고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역시 현지에 가서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도와'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러'간다는 것을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비록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가난할지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이며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캄보디아서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저희가 캄보디아에서 활동했던 곳은 전세계에 있는 천주교 구호 단체 '까리타스'였습니다. 가장 많이 했던 활동은 마을개발 활동과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들이었습니다. 



마을개발 활동은 비교적 가난한 마을에 가서 수경재배, 버섯집, 닭장 등의 효율적인 농업 기술을 전달하고 함께 개발활동을 하면서 유대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이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활동은 한국어, 영어를 가르치는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싫어했던 저희 팀은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영어를 함께 공부하고 한국어 또한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저희들도 캄보디아 말을 배우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함께 배운다'는 가치관은 제가 3년 간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했던 것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영어 한국어 뿐만 아니라 운동, 환경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 요리 등 많은 것들을 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처음 캄보디아의 학생들과 친해졌을 때 그들이 저희에게 '너희들은 돈이 많아서 살아서 선택할 수있는 꿈이 많겠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캄보디아보다는 잘 사는 나라였고, 우리가 그들보다 더 부유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과 '가난의 정도'로 인해 거리가 생기는 것이 싫었습니다. 저희는 '빈곤퇴치'라는 프로그램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마이스토리' 라는 캠페인은 진행했고, 우리는 모두 같으며 결국에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것을 공유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과 저의 인생에서 분명히 특별한 경험이었고, 소중한 인연이 많이 생긴 5개월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이제는 한국이라는 곳이 낯선 지금, 캄보디아는 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제는 그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인물들인 간디, 체 게바라, 스티브 잡스의 삶을 책으로 읽거나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보면서 스스로 깨닫고,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인물들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이야기라면 모두 재미있고, 배울 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풍운아 채현국'이라는 책으로 현재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을 맡고 계신 분의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이 책은 위인전이나 자서전처럼 구성되어 있지 않고, 필자와 채현국 이사장님의 인터뷰 대화를 엮은 형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책을 읽으면서 채현국 이사장님과 직접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분은 60년대에 아버지와 함께 탄광 사업으로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에 들 정도로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신문사에서 해직당한 기자들처럼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에게 집을 한 채 사주거나 민주화 운동을 하는 곳에 거액을 후원해 준는 등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들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한 학교 재단의 이사장이지만 딱히 수익은 없고 개운중학교 뒤편의 침대도 없는 작은 골방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계신다고 합니다. 


제가 만약 채현국 이사장님처럼 한 때는 소득세가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부자였는데, 나이 들어서 수익도 없이 살아야 한다면 적응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 생각을 시작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인터뷰 과정을 기록해 놓은 거라서 쉽게 읽혔습니다. 처음에는 채현국 이사장님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늘 그렇듯 그 어떤 이의 삶이라도 참 이런 저런 힘든 일을 많이 겪는 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채현국 이사장님의 모습에서 인상이 남는 점은 그 분이 가진 생각의 깊이였습니다. 채현국 이사장님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역사 공부를 하다가 문득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조선'이 왜 한문으로만 있고 우리 말로는 없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께 물어봐도 답을 듣지 못했고, 결국 그 의문은 '그렇다면 한자는 우리 민족이 만든 것인가?', 우리 나라 이름이 우리말로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인가?' 라는 의문들로 이어져 끊임없이 연구를 계속 하셨다고 합니다. 


한 분야를 끝없이 공부하고 탐구하는 것, 그건 분명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 분야를 사랑해야 하고, 자신의 의지가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때 채현국 이사장님의 말씀들에서 모두 정말 오랫동안 그 분야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 노력과 그 노력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생각에 대한 깊이를 꾸준히 가져 오셔서 학교도 철학과에 가셨다고 합니다. 채현국 이사장님께서는 말씀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이 조선에 대해 질문을 드린 그 담임 선생님께서 얼마 후 중학교 역사 교사가 되었는데, 아마 '자신의 영향이 아닐까?'하는 농담도 하셨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린 채현국 이사장님의 영향으로 그 선생님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죠.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으로 다른 이의 삶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이 책을 보며 채현국 이사장님 본인께서는 그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저는 정말 그 분이 진정한 어른처럼 보였습니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책을 읽으시고, 세상에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시며, 종교계와 노인들, 그리고 저희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충고와 비판을 아끼지 않으시는 모습은 정말 여러모로 그 분의 인생처럼 거침없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나이는 성인이지만 제가 어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어른'이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아직 잘 모르겠고, 세상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그런 때에 읽은 이 책 '풍운아 채현국'은 제가 어른이 되는 데에 구체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니지만, 제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책에 나오시는 채현국 이사장님이 진정한 어른으로 보였고, 그 분이 가진 여러 가지 생각과 가치과 삶의 자세... 이런 것들이 정말 어른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모습들이라고 느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던 시간, 무빙스쿨

라온아띠 국내훈련 중에는 '무빙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무빙스쿨이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라는 주제로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주제의식을 가지고 꿋꿋히 자리잡고 있는 기관이나 공동체를 방문해보는 활동입니다.

외국에서 5개월 간 생활하는 라온아띠 활동과 무빙스쿨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각 국가별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볼 수 있는 첫 번째 활동이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무빙스쿨을 해보면서 팀원들끼리 의논하고, 방문할 기관에 대해 조사하고, 직접 그 방문기관 및 공동체에 연락을 드려서 허락을 맡아 가서 궁금하고 싶은 것을 질문하고.. 이런 활동들로 얻는 것이 바로 무빙스쿨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저희 캄보디아팀은 무빙스쿨 주제를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무빙스쿨에 대해 의논하면서 특히 많이 다투었던 팀이 바로 저희 캄보디아 팀이었는데, 다투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온 환경, 받아왔던 교육 등 삶의 대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빙스쿨 주제와 연관시켜서 '우리가 받은 교육이, 우리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나?' 라는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마침 저희 팀에는 보편적인 교육이 아닌 대안학교에서 대안교육을 받은 사람이 저를 포함해 두 명이 있었습니다. 대안학교를 모르는 사람도, 대안학교를 다녔던 사람도 대안교육의 많은 모습을 보기 위해 대안학교를 방문하여 다양한 교육에 대해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방문하기로 한 곳은 서울에 있는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 라는 곳과 광명 YMCA의 '볍씨학교'였습니다.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는 대안대학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라온아띠의 카페 면접 장소를 제공해 준 카페 체화당을 운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육이라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일반교육과 대안교육으로 함부로 나눠서는 안되지만 일반교육을 받은 사람과 대안교육을 받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고, 그 차이에 대해 알기 위해 대안학교를 방문한 것이었는데,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의 선생님이신 이성민 교무지기께서는 보편학교와 대안교육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학교와 교육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보편(일반)교육이 답이다.', '대안교육이 답이다.'라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각 교육들만의 다양한 방식과 지향점이 있고, 그것들을 모두 존중해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가지는 생각이나 가치과, 교육의 철학 등을 시계추에 비교하시면서 한 쪽으로 치우지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한 쪽으로 치우쳐 가면서 생기는 것들, 중립만 지키는 것보다는 왔다갔다 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에 집중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가리지 말고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는 것이 좋다고도 하셨습니다.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말씀해주셔서 가슴속에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볍씨학교라는 곳을 방문하려는데, 길이 무척 어려워서 많이 헤맸지만 주변에 사시는 주민 분들이 길을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볍씨학교는 대안초등학교입니다. 처음에는 '아직 자신의 주관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안교육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의문은 쉽게 풀렸습니다. 

볍씨학교는 생명을 중요시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맨날 책상에 앉아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시골같은 정겨운 분위기의 학교에서 뛰어놀고, 진정한 상생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 배우고 느낀 것들이 인생에서의 여러 가지 습관들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초등교육을 대안교육으로 생명의 중요성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사실 말이 대안교육이지 볍씨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육의 과정들은 그저 '함께 사는 법'이었습니다. 볍씨학교의 선생님들께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희 라온아띠들도 현지에 가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고, 국제자원활동을 하고, 이런 것보다 결국 팀원들, 현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이 있으면 분명히 갈등이 생기고, 그것은 곧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지만, 볍씨학교에서는 '둘러앉기' 라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한 반에 갈등이 생겼을 때, 친구끼리 싸웠을 때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의 한생들과 선생님들이 다 모여서 무릎을 맞대고 둥글게 둘러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바로 '둘러앉기'입니다.

둘러앉기에서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서로 상처를 받더라도 그 상처를 계속 드러내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과 치유를 목적으로 합니다. 

비록 둘러앉기의 이런 방식이 갈등해결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상처를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서운한 감정과 상처를 계속 드러내면 감정이 쌓이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볍씨학교의 함께 사는 철학이나 생활, 둘러앉기 등을 보면서 제가 졸업한 태봉고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대안학교들이 각자들만의 교육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점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무빙스쿨은 저희가 앞으로 캄보디아 현지에 가서 필요한 생활의 방식들, 여러 가지 고민들을 생기게 해준 좋은 시간이었고, 무빙스쿨을 통해서 배운 것들을 실천해보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한 쪽으로 치우치기도 하면서 또 갈등이 생기면 둘러앉기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실제로 국내훈련을 하는 동안 둘러앉기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그런식으로 우리가 살아갈 5개월을 천천히 준비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4주간의 라온아띠 국내 훈련이 끝났습니다. 무척 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캠프, 대안학교를 다니며 겪었던 제주도, 네팔, 지리산, 무인도 그 어느 경험보다도 훨씬 더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값진 시간이었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그 사람들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한 인연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특히 라온아띠의 전 기수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 좋았습니다. 제가 라온아띠 12기인데, 라온아띠 4기 분께서 라온아띠 담당 간사님으로 계셨고, 6기, 7기, 8기 등 다양한 분들이 국내훈련 동반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1기와 2기 등등 라온아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자기 나름대로 기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라온아띠를 다녀오신 분들이 대부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지에서의 활동보다 국내 훈련을 할 때가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처음 국내훈련을 시작할 무렵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라온아띠 자체가 원래 5개원 간의 아시아 국제자원활동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인데 그것은 훈련과정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니.. 공감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4주간의 훈련을 모두 마친 후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 라온아띠를 다녀오신 많은 분들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국내 훈련의 4주는 그 어느 순간보다 뜨거웠고, 나의 한계를 몇 번이나 시험했으며, 내가 몰랐던 것들, 내가 원래 알고있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 실천해야 하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고민들을 깊은 내면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라온아띠는 5개월 간의 현지 활동이 더 중요한 활동입니다. 국내 훈련은 단지 그 5개월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국내훈련을 다녀오고 난 지금, 현지에서의 150일을 준비하는 국내훈련 28일이 비록 짧지만 인생에서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함께 캄보디아 깐달로 떠나는 제 팀원들은 스무살 동갑내기 친구 한 명과 형 한명, 누나 두 명, 그리고 저를 합해서 5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모두 20년 이상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두 다릅니다. 그런 다른 사람들 5명이 모여 그렇게 덥고 힘들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가면 얼마나 많이 싸우게 될까요?

저는 국내훈련이 단지 외국에서의 생활과 아시아적 감수성, 라온아띠가 가져야하는 마음가짐만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배우고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들간의 화합을 연습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국내훈련을 하는 4주 동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싸웠습니다. 서로의 의견차이 때문에 싸우고, 서로의 말, 행동 표현방식 때문에 싸우고.. 현지에서 5개월 간 싸울 것을 4주간 미리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 치고박고를 반복했습니다.

싸우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팀원들간에 의견충돌과 다툼을 통해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 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화합의 노하우 등을 배우는 시간이 충분히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국내훈련에서 이렇게 실컷 싸우고 또 캄보이아 현지에 가서도 많이 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충분히 대화를 하지않고 서로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상태로 외국에 간다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여튼 이제 국내 훈련이 끝나고 약 20일간 쉬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동안 가족, 친구들, 휴대폰 등 한국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도 가지고, 틈틈히 현지어 공부도 하면서 천천히 휴식을 즐길 예정입니다.

그 동안 국내훈련에서 경험한 것들을 잘 정리해서 블로그에 많이 많이 올리겠습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배웠다

라온아띠의 국내연수에서 진행하는 북세미나에 필요한 필독도서 '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코너 우드먼'이라는 사람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쓴 책입니다.

코너 우드먼은 대기업들이 개발도상국들의 노동자들에게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지적한 점은 커피와 같은 상품들에 붙여진 '공정무역 재단'의 로고였습니다.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줍니다.'와 같은 메세지가 담긴 이 공정무역 로고와 슬로건은 분명히 다른 상품에 비해 윤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공정무역 로고가 진짜 우간다를 비롯한 가난한 이들의 삶의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을 이용한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며 책이 시작됩니다.

책의 저자 코너 우드먼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정무역 로고를 보며 '소비자들이 특정한 커피를 산다고 해서 커피 농가 사람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공정한 거래를 약속합니다.' 라는 표현보다는 '공정한 거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가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 만큼 코너 우드먼이 공정무역 로고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코너 우드먼은 공정무역 로고에 담긴 메세지처럼 정말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 실제로 보고 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니카라과라는 나라에 가서 바닷가재를 잡으며 살아가는 어부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의 한계를 무시하면서 잠수를 해대는 탓에 잠수병으로 젊은이의 대부분이 다리를 절고, 다들을 수명이 짧았습니다.

잠수나 바닷가재를 잡는 작업에 대한 안전수칙이나 기본적인 안전장치같은 것도 없습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안전 장치를 살 돈도 없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잠수가 아니라, 그물로 바닷가재를 잡으면 훨썬 안전하고 효율적인데도 그마저도 돈이 없어서 그물을 구하지 못합니다. 정말 최악의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에게 공정무역이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서 바닷가재를 구입해 가는 대기업의 관계자들은 그들이 어떤 작업환경에서 어떻게 바닷가재를 잡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물로 잡은 바닷가재가 아니면 사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바닷가재가 냉동에 한 번 들어가면 잠수를 통해 잡았는지, 그물로 잡았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물로 잡은 것이 아니라면 팔 수가 없으니 니키라과의 어부들도 딱히 잠수를 통해 바닷가재를 잡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재를 사가는 대기업 관계자들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바닷가재를 최대한 저렴하게 구입하여 최대의 수익을 남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어부들은 목숨을 걸고 바닷가재를 잡아서 팔면서 힘겹게 생계를 유지합니다.

바닷가재를 엄청나게 생산해내는 그 어부들은 정작 바닷가재를 먹지 못합니다. 바닷가재 가격이 너무 올라서 자신들이 먹기에는 너무 사치라고 생각하여 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바닷가재 가격이 올라도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니키라과의 한 섬에서는 근처 바다에서 마약을 밀거래하는 상인들이 경찰에 잡히지 않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바다에 버린 마약 자루를 주워서 떼 돈을 버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섬은 그런 식으로 마약이 든 자루를 주우면서 학교와 교회, 새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모순적인 일입니까? 국가는 아무것도 못해주는데 마약으로 한 섬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섬에 사는 사람들도 이미 국가가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있다고 합니다. 국가보다는 바닷가에 떠내려오는 마약 자루에 의지하는 사람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주석이나 콜탄을 생산하는 콩고의 광부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좁고 더러운 동굴에 들어가서 매일같이 목숨을 걸면서 주석을 캐냅니다.

그들이 캔 주석과 콜탄으로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이나 휴대폰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광부들은 자신들이 캔 주석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듭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정무역 로고의 대상인 커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정무역 로고를 붙임으로써 기업에서 내야하는 사회 발전 기금이나 여러 가지 공정무역 지출은 어디에 사용될까요?

커피를 생산하는 농부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고, 공정무역 재단의 운영비나 홍보비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정무역 로고를 사용했던 한 초콜릿 공장의 사장은 공정무역 재단의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규정을 내세우면서 로고 사용료를 점점 더 요구했다고 합니다.

책을 보면서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공정무역 재단의 사람들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그저 수익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을 비롯한 공정무역 로고를 사용하는 수많은 대기업들은 단순히 소비자들의 윤리적 심리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분명히 공정무역을 진짜 혜택을 봐야할 농부, 어부, 광부, 노동자들이 점점 더 삶이 고달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정한 무역을 가장하여 더 저렴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서 코너 우드먼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저도 책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그들의 고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마을이 있는 곳곳에 세워진 비정부 기구들의 표지판, 그리고 그들이 가난한 마을에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우물 등의 시설은 이미 고장나고 마을 사람들은 사용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누구도 고치려 하지 않고, 누구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시설을 지어주는 비정부 기구들은 진정으로 그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란 것이 아닙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해, 좋은 이미지를 위해 선행을 가장한 마케팅을 이미 수많은 대기업들이 행하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좋은 일을 하기보다는 나쁜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보여주기 식의 선행을 하는 것은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도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합니다.

이미지 변화를 위한 선행보다는 현재 노동의 현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고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첫 번째 일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대기업들을 노동 현장의 문제를 알고, 그것을 해결할 책임이 있습니다.

책에서 기업과 노동자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모습이 분명히 나옵니다. 기업 측에서 노동자들의 삶과 복지를 책임져 주고, 그들에게 충분한 기술을 교육해주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형태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현재 대기업들이 행하고 있는대로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면 분명히 언젠가 노동력이 부족해 질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저희 소비자들은 윤리적인 소비를 더 많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마케팅 홍보 전략으로 사용되는 공정무역 로고가 새겨진 상품을 사면서 '아, 나는 윤리적인 상품을 구입했기에 윤리적인 소비자야.'라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품을 만드는 생산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저자
코너 우드먼 지음
출판사
웅진씽크빅 | 2012-03-2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아프가니스탄 마약 생산지까지 세상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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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 발표가 떴습니다. 결과는 합격이더군요.

제가 남보다 대단하거나 뛰어나서 선발된 것이 아니라, 라온아띠를 통해 부족한 저에게 더 배우라는 의미로 뽑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발되서 떨어진 다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분들 몫까지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

최종으로 선택된 나라는 '캄보디아'였습니다. 1지망으로 썻던 인도나 2지망 태국으로 발령받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제가 캄보디아 활동에 적합하기에 캄보디아로 가게 되는 것일 겁니다.

7월 8일부터 한 달 간 국내 연수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후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열심히 하고 오겠습니다.



이번주 수요일(6월 25일)은 라온아띠 면접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번에 신청했던 중장기 해외봉사 프로그램 라온아띠에 다행히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해서 면접을 보러갔습니다.

면접은 서울에서 했는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시간대를 오후 4시 30분으로 배치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방에 살면 올라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했나 봅니다.

라온아띠 면접은 특이하게도 '카페형 면접'을 합니다. 사무적인 공간에서 딱딱하게 면접을 하면 면접하는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카페에서 편하게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이화여대 옆에 있는 '체화당'이라는 카페에서 면접을 진행한다고 했는데, 지도로 찾아보니 완전 무슨 동네의 골목 구석에 숨어있는 카페라서 찾기가 엄청나게 힘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길을 잃을까봐 혹시나 해서 1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근처에 있는 이대부고 버스정류장부터 채화당까지 '찾아오시는 길' 종이가 친절하게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하도 곳곳에 찾아오는 길 종이가 있어서 아주 쉽게 카페 채화당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시간이나 일찍 왔던터라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여유롭게 면접 준비를 하면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4시가 되고 미리 와서 대기하라고 명시되어 있었기에 면접장소로 향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카페 채화당은 생각보다 큰 건물이었습니다. 


채화당 안으로 들어가니 면접을 기다리는 다른 분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면접을 보는 25일 5조는 지방에서 오신 분들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또 경상도 분들만 계시더군요.

제가 나이가 제일 어려서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20살이 해외봉사에 신청했다고 하니 다들 조금씩 신기하다고 하셨습니다. 여튼 면접을 하기 전부터 꽤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개인이 들고 온 컵으로 음료를 먹으며 이미 라온아띠를 다녀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라온아띠에 가려고 했던 이유, 가서 느낀 것, 그리고 면접에 가서 솔직하게 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준비한 게임? 같은 것도 했는데,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주사위를 굴려 선택된 카드에 적힌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이었는데, '결혼하고 싶은 나이는?', '최근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 '자신의 장점 세 가지' 등 자신이 살아온 배경이나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 게임을 약 30분간 하고나니 약간 긴장이 풀렸습니다. 조금 쉬다가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카페 채화당은 지하에도 큰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면접은 A, B, C로 조를 나눠 각 조마다 세 명씩 면접관 세 분과 3대3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에서는 기본적으로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물어보고, 자기소개서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면접에서 나온 세부적인 질문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여튼 면접은 면접관이 일방적으로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딱딱한 형식이라기 보다는 편하게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습니다.

면접관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것저것 배운 것도 많았고, 여러 가지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면접관님들은 비록 떨어져도 수준이 떨어져서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자책하지 말고, 만약 합격했다고 해도 자신이 남들보다 대단하기에 뽑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라온아띠는 남들보다 대단한 사람을 뽑는 것이 라온아띠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뭐 합격하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이미 면접을 통해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

면접 일정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라온아띠 간사님이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셨습니다. 현수막으로 만든 재활용 가방이었습니다.

그 선물들을 나눠주시면서 비록 라온아띠에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평소에도 항상 라온아띠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진짜 라온아띠라고 하셨습니다.


3년 전에 태국으로 해외봉사를 갔을 때 알게 된 형이 있습니다. 그 형은 태국어가 아주 유창했고, 모든 일정을 통솔하고 태국의 문화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형은 '라온아띠'라는 프로그램으로 태국에서 3개월 간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의 문화와 언어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형의 모습을 보고 많이 부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뭐든지 나서서 이끌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하지만 태국에 갔을 때에는 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지 못하니까 뭐 딱히 리드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봉사활동을 좋아하는데, 태국에서 2주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점점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하고 태국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봉사활동은 끝이 났습니다.

아주 보람 찬 2주였지만 봉사의 기쁨을 알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것 같습니다. 2학년 때 학교에서 갔던 네팔 봉사활동 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 때는 제가 학생회 부회장으로서 학생 대표를 맡고 있었음에도 열정적으로 봉사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역시나 네팔의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2주라는 기간이 저에는 짧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의 2주는 긴 시간이지만 그 곳의 아이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어울리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고, 3년 전 태국에 함께 갔던 형을 통해 알게 된 라온아띠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한 번 신청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대학교에 붙여진 포스터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라온아띠는 '즐거운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아시아 지역사회의 구체적인 과제와 직접적으로 만나는 연대활동을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지속가능한 아시아를 꿈꾸는 대학생해외봉사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라온아띠 12기는 1개월 간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5개월이나 해외봉사를 하는 장기간 봉사 프로그램입니다.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정이지만 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신청 기간은 6월 10일까지였고, 저는 자기소개서를 계속 고치다가 당일 날 제출했습니다. 

경쟁률이 아주 치열한 프로그램이라서 제가 선발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라온아띠를 통해 해외봉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라온아띠에 참가한다면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과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쉽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수성과 자연친화적 삶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아버지가 쓰신 책을 읽었습니다. '김주완이 만난 열두 명의 고집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경남 지역의 유명한 사람이나 정치인들, 힘든 시절을 딛고 일어나 자기만의 철학을 실현시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이름을 알고 있던 분들도 세 분 있었는데, 고영진 전 교육감님과 박완수 전 창원시장님, 홍준표 경남도지사님, 그 분들이 살아온 이야기나 삶의 철학 같은 것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제가 잘 몰랐던 분들의 이야기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열두 분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떤 분은 어릴 때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자신이 하고싶었던 공부를 편하게 하면서 살아오셨고, 어떤 분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돈 버는데 삶을 투자해서 공부를 어쩔 수 없이 멀리 하신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 온 환경에는 상관없이 책에 나오는 분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분들의 인생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책에 나오는 분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충분한 노력과 투자, 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영히 해야하는 것임에도 세상을 살아가보면 자신의 공부에만 전념할 수는 없는 상황이 닥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나오는 분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낮에는 일하고 야간학교를 통해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성장시려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두 번째는 책에 나오는 분들 대부분이 인생에서 큰 시련을 딛고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시련이 가난일 수도 있고, 정치적 대립, 선거의 낙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련을 겪고, 그 분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한층 더 다듬어 새로운 모습으로 끝까지 도전하면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갑니다.

특히 경남장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를 맡고 계시는 송정문 씨의 이야기는 저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세살 때부터 넘어지면서 신경을 다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스물 살까지 그냥 집에서만 지냈다고 합니다. 학교도 못다니고, 집 밖에 나가도 딱히 갈 곳도 없는 '누군가에게 민폐만 끼지치 않고 살자' 라는 생각으로 살아 온 송정문 씨는 TV를 통해 여성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미국의 장애인들이 교육적으로 복지 혜택을 많이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보고 꿈을 가지지 시작했다고 합니다.

공부를 해서 미국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에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고 대학교도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고 오르막이나 계단이 있는 강의실을 다니며 대학교 공부를 하는 것은 송정문 씨에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장애인들이 공부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대학교를 고소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시련을 딛고 노력하여 석사 학위까지 따냅니다.

정말 멋있는 분입니다. 몸이 불편함에도 송정문 씨는 굴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노력하면서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이뤄내면서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몸이 멀쩡하면서도 시간이 많으면 게으름을 피우고, 공부보다 노는 것이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분야에 대한 절실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더 노력하고, 더 정신적, 인격적 수양을 해야겠지요. 책에 나오는 분들 모두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는 항상 엄격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열두 명의 고집인생이라는 제목처럼 책에 나오는 분들 모두 자신이 정한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것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고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책에 나오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배워야 할 부분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쳑하려는 정신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이미 한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 그로 인해 찾아오는 시련을 또다시 이겨냅니다. 참 멋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흥청망청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번 돈은 경남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라며 지역의 발전을 위해 돈을 쓰고, 장학 협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회에 환원합니다.

또한 자기 회사의 직원들에게 사용하는 돈을 아까워 하지 않고, 직원들의 복지에 최선을 다하고, 국가와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개선할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일에만 붙잡혀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이나 요리, 인문학, 운동 등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지면서 소양을 기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돈을 어떻게 벌고, 회사를 어떻게 더 성장시킬지도 충분히 생각하지만 번 돈을 어떻게 의미있게 사용할지도 충분히 고민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정말 크게 존경받을만한 삶인 것 같습니다. 
이제 대학교도 1학기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원래 대학교가 중, 고등학교보다 학기가 좀 짧기는 하지만 정말 시간이 빨리 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블로그 포스팅을 계속 미뤘습니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블로그에 손을 놓은 게 처음은 것 같네요. 

사실 대학교만큼 시간이 널널한 곳이 없습니다. 제가 대안학교를 나와서 고등학교 때도 시간이 많았는데, 대학교는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니는 영상디자인학과 특성 상 과제가 좀 많은 것만 빼면 대학교 생활이라는 게 참 널널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시간이 많고 한가하다보니 사람이 더 게을러지는 것 같습니다.

블로그 쓸 시간도 많고 책 읽을 시간도 충분히 있는데, 시간이 너무 널널해서 미루고 미루고, 계속 미루다가 결국 원래 하기로 했던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태봉고를 다니면서 자율이니, 시간을 잘 사용하는 방법이니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사람이 한 번 게을러지기 시작하니까 정말 끝도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이렇게 대학을 다니는 동안 블로그도 하나밖에 안썻고, 책도 수업시간에 과제로 읽는 책밖에 읽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제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스스로 시간관리도 잘하고 자기 계발도 잘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간낭비만 많이 하는 것 같고, 계속 놀고싶은 생각만 하다가 조금만 있으면 방학을 하게 됩니다.

반성을 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제와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다고 해도 이미 지나간 한 학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재정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 대학을 가지 않은 친구들도 많고, 돈을 버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저는 대학교를 다니면 저를 성장시키고, 저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많은데, 저는 너무 놀 생각만 한 것 같습니다.

저를 믿어주기고 저에게 기대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계획을 세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블로그도 많이 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할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오늘(3월 13일) 부산에서 열리는 '라이프 사진전'을 관람하기 위해 부산에 갔습니다. 졸업앨범을 준비하는 제 태봉고 후배 2명과 함께 갔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담은 최고의 잡지라고 평가받고있는 '라이프지'는 1936년 타임지와 포춘지를 만든 잡지왕 헬리루스(Henry Luce)의 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헨리루스는 "사진은 세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객관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기계시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이며 아직은 다루기 어렵지만 놀랍도록 강력한 새로운 언어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하며 라이프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라이프지가 탄생한 이유처럼 라이프지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사진이 중심이 된 잡지였다고 합니다. 라이프지는 사진으로 펼쳐보는 미국의 역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들의 정치, 문화, 사회적 관계망 등 세계인이 주목하는 것들을 포착한 가장 미국적인 잡지이자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잡지였고, 1972년에 폐간되었지만 오늘날에 인터넷 잡지로 만날 수 있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는 영화에서도 라이프 잡지가 등장합니다. 거기서도 역사와 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교훈을 주는 소재로 나타납니다. 

라이프지에서 활동한 최고의 사진가들로 불렸던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유진 스미스, 로버트 카파, 더글러스 던컨 등 수많은 사진가들의 집념과 역사의 한 페이지가 담긴 900만장의 사진 중 최고의 130여장을 이번 라이프 사진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전은 부산 문화회관에서 열렸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우선 표를 구입하러 매표소로 갔습니다.

매표소는 라이프지의 로고와 같은 빨간색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 빨간 매표소에서 저는 처음으로 성인 요금이라는 것을 내보았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비싸진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라이프지의 역사적인 사진들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에 들어갔습니다.

팜플렛을 받았는데,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역사를 잊은자에게 미래는 없다.'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이프지가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것이기에 딱 알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안에서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기에 전시장 바로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습니다.


라이프 사진전에서 정말 좋은 사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세계인들의 인정을 받는 위인들의 인생과 그들이 겪었던 고난을 라이프지의 사진들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위인인 간디와 체게바라의 사진도 역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둘 다 나라를 독립시킨 지도자이지만 체게바라는 무장투쟁을 통한 혁명가였던 반면에 간디는 완전한 비폭력으로 독립을 이루어 내었기에 두 인물의 인생을 비교하는 글귀가 적혀있기도 했습니다.

찰리채플린과 카스트로, 마이클 잭슨, 아인슈타인 등 제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의 인생 또한 담겨있었습니다. 

알고있는 있었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물론 제가 평소에 몰랐던 인물들을 알게되기도 했습니다.  

라이프 사진전이 서울을 거쳐 부산에서 또 열리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한국의 역사 또한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전쟁과 백범 김구 선생님 등 한국의 역사 또하 라이프지에 담겨있었습니다. 이런 역사들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흔적이며, 앞으로 미래를 만들어 갈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하는 것이며, 라이프지는 그런 역사의 기록을 아주 잘 해낸 잡지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역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인생을 보기 위하여, 세계를 보기 위하여) 

존경할 수 있는 사랑
 

고등학교 친구가 졸업직전에 '사랑'에 관한 책을 엄청나게 구입하더군요. 갑자기 사랑에 대해서 알고싶다나 뭐라나.. 사랑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저는 그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읽었던 책 중에서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도 오른 아주 깊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에 책을 빌려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고른다는 것이 참 속물같고,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진정으로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책의 '들어가는 말'을 보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들어가는 말에서 고민정 아나운서는 자신이 인생에서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잘생긴 남자, 매너좋은 남자, 경제적으로 넉넉한 남자 등의 기준이 아니라, 정말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모습까지...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고, 그 사람을 닮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세속적인 것입니다. 누구나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를 원하고, 돈이 많거나 집안이 좋은 등의 외적 요소를 가늠합니다. 오직 상대의 외모, 학력, 경제력만을 보고 사랑을 판단해 버립니다.

물론 외모나 학력, 경제력이 매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깊은 내면 또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자신의 스펙과 상대방의 스펙을 비교해서 교환가치가 성립할 때에만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고민정 아나운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직업은 시인입니다. 시인이라는 직업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님에도 고민정 아나운서는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남편인 조기영 시인이 경제적인 이유로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고민정 아나운서를 그를 말렸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남편 분을 조기영 시인 그 자체로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직업의 특성상 TV로 얼굴이 알려져 있는 상태이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심한 의혹을 품을 수도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모 인터뷰 프로에서 고민정 아나운서가 "남편이 돈을 벌지 않지만 내 월급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의 의미을 고민정 아나운서의 월급이 한 가정을 먹고 살릴만큼 충분하지만 남편은 무책임하고 돈도 벌지않는 사람이라는식의 해석으로 적힌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때 고민정 아나운서가 느낀 충격은 정말 컷다고 합니다.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님에도 남편이 느낄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했다고 합니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곧바로 자신의 그런 심경을 담은 글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글에서 고민정 아나운서는 남편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고,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적어나갔습니다.

남편은 꿈이 없던 자신에게 '아나운서'라는 길을 제시해주었고, 순간순간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언론인이 될 수 있도록 지금의 고민정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남편의 경제활동을 반대한 것은 자신이고, 자신의 부족한 말솜씨, 글재주, 자신감 등 남편이 있었기에 자신이 있고 그 만큼 남편이 소중한 사람임을 글로 나타내었습니다.

그 글을 통해 고민정 아나운서의 심경을 이해하는 새로운 기사들이 나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심적으로 힘들었을 고민정 아나운서와 조기영 시인을 진짐으로 응원하고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라는 책은 넓은 의미의 '사랑'에 대한 책입니다.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동료와 동료, 사람과 사람간의 사랑을 모두 다룬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어떤 아나운서의 에세이 또는 자기계발서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나 이제 막 20살이 되고 대학에 가는 이 시기에 이 책에 나오는 글 하나하나가 다 마음을 흔들어놓는 감명을 줍니다.

그 중에서도 '돈에 휘둘리는 삶이 아닌 돈을 이끌 수 있는 삶을 살자.' 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 말은 고민정 아나운서와 조기영 시인 부부의 약속이라고 하네요.

저도 언젠가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 삶 자체를 사랑하고 그 사람을 닮고 싶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누군가로 인해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사람더사랑해서미안해꽃처럼시처럼아름다운사랑이야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고민정 (마음의숲,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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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화요일(2월 18일)부터 수요일에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왔습니다. 아직 대학교 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신입생들을 위한 시간인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저도 대학교 생활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당연히 참여했습니다. 학교에서 모든 신입생들이 모여서 각 학과의 선배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근처의 리조트로 이동했습니다.

제가 오리엔테이션을 가기 바로 전 날에 '부산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좋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경주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다가 눈이 쌓인 지붕이 무너져 100명 가까이 다치고 9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네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 막 힘겨운 입시를 마치고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진 학생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부산외대에 간 제 친구 몇 명도 조금 다쳤다고 합니다.

누구의 잘못인지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일로 목숨을 잃은 학생들에 대한 명복을 빌어주고 다친 다른 학생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로 '신입생 OT가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번에 신입생 OT를 다녀왔으니 저의 생각을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대학마다 신입생 OT의 방식이 많이 다양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제가 가는 대학은 1박 2일로 진행하고, 어떤 대학은 5박 6일로 하기도 한답니다.


제가 간 신입생 OT는 '신입생 역량 강화캠프' 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신입생 환영회라고 하는 게 더 딱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OT에서는 뭐.. 딱히 많은 것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간단하게 강의를 듣고, 공연도 봤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최범석 디자이너의 강의를 비롯해서 여러 초청가수들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유명한 아이돌 가수가 온 것은 아니라 학생들의 반응이 그렇게 열광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수의 무대로 분위기는 무척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신입생들과 선배님들의 댄스, 랩, 노래 공연같은 것도 했습니다.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자신의 끼를 보여주는 친구들이 참 멋있더라구요.

부산외대의 사고 때문인지 진행하시는 선배님들이 안전에 대해 더욱 주의를 주셨습니다. 모든 신입생들이 다 모이다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칫하면 사고가 날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학생들이 서로 어색어색해서 그런지 패기있게 선배의 말을 무시하고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보이는 신입생은 없었습니다. 덕분에 사고는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식사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3년째 신입생 OT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리조트라 그런지 믿음이 갔고, 음식도 학교의 높으신 분들이 직접 떠주기도 하면서 친밀감을 주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각 학과에 대한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닐 영상 디자인과의 소개에서 그 동안 과에서 만든 영상 몇 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영상들을 보니 빨리 저도 학교생활을 시작해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에는 각 학과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대학에서 무서운 선배들이 막 술을 많이 먹여서 실려가기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약간 불안하기도 했는데, 전혀 걱정할 게 아니었습니다.

술을 그렇게 많이 먹는 자리도 아니었고, 오히려 선배들이 신입생들 각각의 주량을 보면서 잘 챙겨주셨습니다. 대학마다 그런 문화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선배님들은 앞으로의 대학생활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고, 여러가지 문화라든가, 선배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등을 부담없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배님들이 다 재미있는 분들이시라 금방금방 친해지고 14학번 동기들과도 꽤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뭐 일찍 일어나서 강의 몇 개 더 듣고, 학교로 이동해서 학생증 발급 신청하고 몇 가지 설명을 들은 후 해산했습니다.


이번 신입생 OT를 다녀와서 느낀 것은 한 가지입니다.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 주위에서 어른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보던 신입생 OT, 무서운 선배들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강의가 많아서 별로 활동을 많이 한 것도 아니었고, 술을 쓰러질 때까지 먹이는 문화도 아니었습니다. 대학마다 다르고 학과마다 다 다르겠지만 여튼 몇 가지의 사례만 보고 신입생 OT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은 불필요한 것 같습니다.

같은 과의 친구의 말로는 "신입생 OT만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신입생 OT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얼마나 빠르게 학교에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학생들마다 대학교에 적응하는 속도가 다 다르겠지만 처음부터 완벽하게 적응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합니다. '이번 신입생 OT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는 훨씬 더 나중에 알 것 같습니다.

아직 학교에 대해 잘 모르니까요. 신입생 OT에서 선배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학교에 대한 얼마만큼의 정보인지 모르니까 신입생 OT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OT는 시작일 뿐이고, 저희는 아직 학교를 다녀보지도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선배님들이 신입생 후배들을 위해 3개월 전부터 OT를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신입생들이 OT를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결국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적응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조교님들과 선배님들은 도와주는 것 뿐입니다.

그 분들의 노력을 저희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겠지요. 저도 태봉고를 다닐 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후배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비록 준비가 부족할지라도 후배들이 학교에 빨리 적응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길 바랍니다. 
부모님과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개봉관이 많이 없어서 메가박스를 빌려서 특별히 상영하는 날에만 볼 수 있었습니다.

상영하는 날을 놓치지 않기 위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영화를 상영관의 자리가 꽉 찼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딸을 위해 노력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극 중 '진성그룹'이라는 대기업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했던 상구(박철민 분)의 딸 윤미(박희정 분)는 백혈병에 걸리고 맙니다. 회사에서는 윤미를 위해 사원들이 모은 돈을 전해주면서 '산재보험(산업재해보험)'을 신청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상구는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윤미와 함께 일했던 다른 사람들도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듣고 상구는 자기 딸이 병에 걸린 것이 회사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업에서는 발뺌만 하면서 회사때문에 윤미가 병에 걸린 증거를 대라고 합니다. 정작 회사에서는 아무런 자료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윤미는 예전의 생화를 그리워하며 부모님 곁에서 눈을 감습니다. 딸을 잃은 상구는 '난주(김규리 분)' 라는 노무사의 도움으로 진성그룹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는데, 산재보험을 받지 못한 다른 피해자들을 찾습니다. 


그들과 함께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진성그룹을 상대로 재판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진성그룹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으로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피해자 유가족들, 회사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증인들까지 모두 막대한 돈으로 매수합니다. 참 보기 불편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돈'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인 가치인가?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가?' 과연 '피해자들의 목숨이 돈으로 매겨질 수 있는가?'

영화에서는 돈에 굴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죽은 윤미의 어머니가 윤미의 아버지 상국에게 하는 "딸 목숨값 받아내려고 하나?" 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최종적 목표는 모두 돈이라는 무서운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과연 저라면 죽은 가족의 권리보다 돈을 우선시할까요?

인간이란 참 나약한 동물인 것 같습니다. 영화속에서는 그 나약한 모습들이 많이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약하기에 서로 힘을 모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피해자 유가족들과 노무사, 변호사들이 모여있는 광경을 보고 상구는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또 하나의 가족'
영화의 다른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고귀한 신념을 그들은 지켜낸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기는 것이 매우 비인간적인 행위이지만 현실은 우리는 비인간적으로 만듭니다.


저라면 어땠을까요? 저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실감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전 저의 신념을 지킬 것입니다. 사실 답은 원래부터 하나였는데, 돈이라는 금적적 가치때문에 눈이 멀어가는 것입니다.

돈은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사회나 경제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먼저가 아닐까요? 

태봉고 교장이셨던 여태전 선생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그 어떤 부와 권력과 명예도 다 거짓이며 허구입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크레딧에 제작에 참여하고 도움을 준 분들을 모두 '또 하나의 가족들'이라 표현합니다.

이렇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또 하나의 가족들이 있기에 영화속, 실제 피해자 분들이 끝까지 신념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마산에 있는 학교에서 다녔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인 12년 동안 마산에서 살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12년이나 살았던 마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근현대사 캠프를 다니며 3.15 운동과 김주열 열사 등 민주화의 문을 연 도시라든가, 아구찜이 유명하다든가, 바다를 메운 땅이 많다던가 하는 짧은 정보만 있었지 제가 사는 마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제 대학교에 가면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됩니다. 12년이나 살았으면서도 아직 마산을 잘 모르고 있어서 약간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경남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셨습니다.

경남의 수많은 도시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정리해 놓은 책이었습니다. 책은 두 권이 한 세트였는데, 저는 '해안편'의 마산 부분을 읽었습니다. 


예향 · 민주성지 · 경남 1번지 누가 '옛 명성'이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마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향(藝鄕)'은 예술인들의 고향이라는 뜻에서 붙인 말입니다. 예향 마산에는 문화, 예술인, 문인들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마산에서 태어나 일본,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유럽 곳곳에서 회화와 조각 활동을 한 '문신(1923~1995)'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유럽에서 전시회를 열다가 1980년에 고향인 마산에 돌아와 문신미술관을 열었습니다. 문신 조각가가 돌아가시고나서 마산시에 기증된 미술관은 오늘날 '마산시립문신미술관'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외에도 창동 허새비(허수아비)라 불리는 이선관 시인, 서정주, 김상옥, 김남조, 이은상 등 마산에서 태어나고 마산을 거쳐간 예술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마산은 민주화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입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표출한 3.15 운동이 바로 민주화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암동에 있는 '국립 3.15 민주묘지'에는 3.15 기념과, 묘역 등이 있고 중앙에 '민주의 문'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가본 적이 있어서 기억이 납니다.

마산은 민주성지일뿐만 아니라, 그 보다 더 옛날인 일제감점기 때 일제에 대항했던 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마산 출신의 이교재, 명도석 등의 인물들과 그 분들의 업적이 책에 자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노력해 주신 수많은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마산에도 이런 훌륭한 분들이 있어서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다음으로는 마산의 다양한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재 마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인 아구찜에 사용되는 물고기인 '아귀'가 원래는 어부들이 흉측하게 생겼다며 버려졌다고 합니다.

아귀찜이 처음 생긴 건 1960년대 장엇국을 팔던 혹부리 할매가 어부들이 버리기 아깝다며 주고 간 것을 지붕위에 던져놓았다가 20일이 지나 바짝 마른 아귀에다가 콩나물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서 쪘는데 그게 아주 맛있어서 그 때부터 아귀찜을 만들기 시작되었다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답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무학산과 돝섬 등 마산의 다양한 명소를 소개하고 그 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역사 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이 책은 마산의 역사부터 먹을거리, 명소,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산의 많은 것들을 알려줍니다. 제가 마산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많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1970년대에는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성, 한국철강, 무학 등의 번성을 통한 제조업 발달로 도시가 아주 번화하여 '전국 7대 도시'의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하여 창원시가 되었지만 그래도 마산은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그렇게 큰 도시도, 70년대처럼 활기찬 도시도 아닐 수 있지만 마산은 저에게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주는 고향입니다.

이 책을 통해 마산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제가 사는 마산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남에 사시는 다른 분들도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해 많이 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산 야경




경남의 재발견 (해안편 + 내륙편) - 전2권 - 10점
이승환.남석형 지음, 박민국 사진/피플파워

제 모교인 창신중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대학도 가니까 오랜만에 중학교 선생님들을 뵈러 간 것입니다. (창신중은 사립이라 예전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계속 계실 수 있습니다.)


창신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까 6년 전 처음 창신중을 등교할 때 느꼈던 그 설렌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수능 칠 때 왔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선생님들을 뵈러 가는 것이라 기분이 달랐습니다.


학교에서 가서 우선 교무실로 갔습니다. 다행히 제가 학교를 다닐 때 계시던 선생님들이 많이 남아계셨습니다. 제가 우리 학년에서 유일하게 대안학교로 진학한 학생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제가 중학교 때부터 워나 성격이 활발하고 자유분방했기에 기억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 성격은 일단 밝은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3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습니다.


1학년, 2학년 때 담임을 해주신 선생님들과도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인생에 대해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시고 중학교 때 들었던 잔소리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학교를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그 동안 학교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또 예전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학교의 구조 자체는 별로 바뀐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설이 달라진 곳이 꽤 있었습니다. 우선 화장실이 아주 깨끗하고 세련되게 공사되어 있었고, 학생들의 쉼터와 수학, 영어 전용 교과교실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말고는 바뀐 게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를 둘러보니 옛 감상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공부했던 교실, 친구들과 뛰어놀던 복도, 농구장.. 중학교 시절 추억들이 하나씩 생각나면서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이런 걸 추억 돋는다고 하죠? 

학교를 돌아보고 나서 선생님들과 학교 급식을 먹었습니다. 약 3년만에 먹어보는 창신중 급식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창신중 급식은 맛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창신중 급식을 언제 또 먹어보겠습니까? 식판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급식 조리사 선생님들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옛날에는 참 가기 싫은 게 학교였고, 참 무서웠던 게 선생님들이었는데, 이제는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이 되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신 고마운 스승님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학교가, 그렇게 무서웠던 선생님들이 이제는 모두 그리워집니다. 얼마 전에 졸업한 태봉고도 몇 년만에 찾아가면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예전에 친구들과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브이 포 벤데타' 라는 영화였는데, 미래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혁명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1605년 11월 5일, 가톨릭 탄압에 맞서 국회 의사당 지하에 화약을 설치하여 당시 잉글랜드의 왕과 대신들을 몰살시키려 했던 '화약 음모 사건'의 주도자 가이포크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미래 2040년 영국, 나라에서는 곳곳에 카메라와 음성장치가 설치되어 국민들을 감시하고,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은 모두 잡아가는 현실입니다.

특정 시간이 되면 통금이 걸려서 그 시간에 외출하거나 다른 이의 집에 있는 사람들 또한 모두 잡아갑니다. 그런 영국에서 살아가는 여주인공 '이비(나탈리 포트만)'는 통금 시간에 외출을 하다가 관리자들에게 걸려 추행을 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 때, 갑자기 나타난 검은 옷에 가면을 쓴 의문의 영웅이 등장하고, 의문의 사나이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헨리 5세'등에 나오는 대사들을 인용하며 엄청난 검술로 관리자들을 제압합니다.

그는 자신을 'V'라고 소개하며 방송국에 가서 방송으로 전국민들에게 1년 뒤, 11월 5일에 국회의사당을 폭발시킬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1605년 11월 5일을 기억하라며 자신이 쓴 가면이 가이 포크스 가면이라고 합니다.


그는 가이 포크스의 저항 의지를 계승하여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는 영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혁명을 일으키려는 것입니다. 국회 의사당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상징성과 권위를 폭발시킴으로써 저항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죠.

영화 속 영국에서는 거짓된 언론으로 국민들에게 진실을 통제하고 인종, 성적 취향 등이 다르면 무조건 잡아가는 등의 독재정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나치의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영화속 독재자 '챈틀러 셔틀러'


영화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이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V가 언론을 이용하려고 방송국을 습격했을 때 V를 도와줌으로써 V와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테러리스트로 지명된 V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비 또한 공범으로 의심받고 있어서 V는 이비를 보호해줍니다. 이비는 V와 지내면서 점점 V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그의 신념과 혁명의지를 동경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원래 살고 있던 편한 삶을 되찾기 위해 V를 배신할까 고민하면서 편안한 삶과 혁명을 일으키는 삶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됩니다.


영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영국이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많은 악행들과 비인간적 행위들이 밝혀지면서 보는이들을 분노하게 합니다.

영화에서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V가 사용하는 화려한 검술과 말솜씨, 이비가 변화하는 과정 등 중간중간에 권력가들을 조롱하는 장면으로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권력에 굴복하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숨겨진 불편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실제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반영하는 듯한 '진실이 통제된 언론', '안전한 곳에서만 신념을 외치는 사람들까지.. 영화는 참 많은 것을 다룹니다.

영화의 배경은 30년이나 지난 미래의 모습이지만 '지금 현재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의문도 생기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정말 진실된 정의의 사회인지...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아직 너무나도 많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지.. 굳이 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브이 포 벤데타
감독 제임스 맥테이그 (2005 / 독일,영국,미국)
출연 나탈리 포트만,휴고 위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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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초반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얼마전 학교 선생님을 만나 친구들과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겨울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였는데, 워낙 인기가 많아서 표를 구입하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대단하겠냐' 라고 생각하며 봤었는데, 영화는 그 생각을 모두 깨버릴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할 정도의 인기를 끈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는 지난 16일에 개봉을 했는데, 역시나 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53번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역시 디즈니..!'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얀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원작으로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보통 겨울이나 눈을 다루는 애니메이션에서 얼음성을 지키는 '여왕'이라는 인물은 '차갑고' '냉혹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영화 겨울왕국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일단 소재가 특이한 만큼 영화는 아주 심오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
아렌델 왕국의 공주인 '엘사'는 '모든 것을 얼리는 마법'을 가지고 태어난 신비의 소녀입니다. 엘사에게는 '안나' 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둘은 "같이 눈사람 만들래?"라는 말을 신호로 눈의 마법을 이용해 항상 같이 놀았습니다.


어느날, 엘사가 실수로 안나에게 마법을 사용해 안나를 다치게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이후로 왕과 왕비는 안나가 다치지 않게하기 위해서 둘을 떨어뜨려 놓습니다.

엘사의 마법에 대한 기억을 안나에게서 모두 지웠기 때문에 안나는 자신이 왜 언니와 놀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안나는 언니의 닫힌 방문 앞에서 "같이 눈사람 만들래?"라고 말을 걸지만 엘사는 항상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사실 국왕과 엘사, 안나 모두 '사랑'을 위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국왕은 안나와 엘사 모두 서로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둘을 떨어뜨려 놓은 것이고, 엘사는 동생인 안나를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나를 외면하는 것이며, 안나는 그저 언니와 예전처럼 사이좋게 놀기 위해서 계속해서 방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표현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그들이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만 안겨주게 됩니다. 영화에서 굳게 닫힌 엘사의 '방문'과 영화의 원제목인 'Frozen(얼어붙은)'은 '사랑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안나는 다른 나라에서 온 '한스 왕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이 때 노래를 부르면서 이런 가사를 언급합니다. '평생 닫힌 문만 보면서 살아왔지만, 당신과 함께 하면 당신의 얼굴이 보여'


안나는 사랑한다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함께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엘사는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지키기위해 외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표현 방식이 둘 다 서툴렀기에 자매간의 갈등이 생기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남녀간의 사랑'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겨울왕국에서는 더 깊은 의미의 사랑에 대한 교훈을 주려 합니다.

영화에서 안나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만나지 하루만에 결혼까지 약속한 한스 왕자가 '진정한 사랑'이 맞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 가지의 정의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영화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깊고 심오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속 캐릭터들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과 영화를 보는 관객들 개개인이 생각하는 사랑은 모두 다르겠지만 결국 사랑은 '다른 이의일을 자신의 일보다 우선시하는 거야.'라는 말이 영화에서 나옵니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답은 아니겠지만 분명히 사랑한다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도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막 20살이 되는 제가 사랑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만은 그래도 사랑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치일 것입니다.



Let it go! (내버려둬)
영화 중간에 자신의 힘이 점점 커지면서 사람들에게 능력이 들켜버린 엘사가 아렌델 왕국에서 도망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자신의 능력때문에 자신의 모든 사생활이 억눌린 채로 살아온 그 동안의 고통스러운 심경과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며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Let it go' 라는 노래인데 영화가 흥행을 하면서 저 노래도 엄청난 인기를 끌어 빌보드 차트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저 장면을 보는데 정말 온 몸에 전율이 돌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아직 못보신 분들은 영화를 볼 때의 전율을 위해 동영상을 보시지 않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저는 영화를 더빙판으로 보았기 때문에 캐릭터의 입모양과 말이 달라서 약간 불편한 감이 조금은 있었지만 영화는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원작 성우분들만큼 노래도 아주 좋았고, 무엇보다도 영화속에서 눈와 얼음을 정말 디테일하게 표현한 것은 정말 지금도 인상깊은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번 재미있게 본 영화는 무조건 한 번 더 보는 스타일이라 자막 버전으로 영화를 한번 더 볼 생각입니다. 두번째 보면 감동은 덜하겠지만 분명히 놓친 부분들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생이 되기 전 마지막 방학계획

이제 대학생이 되긴 전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방학이라기보단 대학가기 전 잠깐의 쉬는 타임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분으로 치면 백수라고 할 수 있는거죠. 대학입학을 하는 3월을 기다리면서 저는 약 3개월간의 백수생활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나름대로 계획을 짜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할 것은 바로 '공부'입니다. 영상이나 방송관련 직종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해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도서관을 다니며 영어공부를 할 생각입니다. 공부를 손에서 놓은지가 꽤 되었기 때문에 일단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익혀서 토익 공부에 집중할 것입니다.



영어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암기만으로는 영어를 익히는데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몸으로, 귀로 익혀야 영어가 쉬워질 것입니다. 우선 작년 겨울방학에 들었던 영어 인강을 다시 보고, 외국영화도 자막없이 보면서 공부할 생각입니다.

무슨 일이든 습관이 되면 아주 쉬워진다고 합니다. 영어를 비롯한 모든 공부도 자주, 또 꾸준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익숙해질 것이고, 공부도 더 잘되겠지요.

너무 공부만 하면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사람이 될수도 있으니 재미있는 책도 많이 읽을 것입니다. 제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을 많이 구해놓았습니다.


얼마후에 친구가 하는 밴드 공연에 가기로 했고, 2월 중에는 중학교 친구들과 여행도 가기로 했습니다. 사회생활에 뛰어들기 전에 혼자 생각할 시간도 필요할 수 있으니 혼자서 여행을 떠나보려는 생각도 하고있습니다.

사람이 여가생활을 즐기며 여유롭게 살아야지, 너무 미래에만 집착하면서 자기계발에만 매달려 살면 행복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에 집중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 현재에 집중하여 사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위한 길이 아닐까요?

군대...




태봉고 3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

제가 태봉고를 3년간 다니며 했던 활동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고르라면 망설이지 않고
졸업 사진첩’ 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1기 선배들이 졸업 사진첩에 들어가는 사진들을 직접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졸업할 때에도 학생들이 직접 졸업 사진첩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졸업했던 태봉고등학교 2기 졸업생들의 졸업 사진첩은 저를 비롯한 9명의 학생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여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두 해냈습니다. 
 

. 기획

처음 기획단계에 들어가면 정말 막막했습니다.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본격적인 기획에 앞서 함께 일할 친구들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촬영 : 태윤, 문석, 소열
분장 : 신애
사진 보정 : 황은, 지아
편집 & 디자인 : 허윤, 재호, 재만

이렇게 함께 작업할 친구들을 섭외하고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의 머리보다는 여러 사람의 머리를 쓰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무언가 결정할 때 모두의 의견을 다 들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태봉고등학교는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기에 혼자서 하는 것보다 다 같이 힘을 모으는 것이 몇 배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선 사진첩의 컨셉을 정했습니다. 작년 제 1회 태봉고 졸업 사진첩과 간디고 졸업 사진첩을 참고하여 우리만의 컨셉을 만들어 나갔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키워드는 '추억'으로 설정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졸업사진첩을 펼쳤을 때 추억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졸업 사진첩을 기본적인 컨셉으로 정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했는데, 평범한 졸업 사진첩이라면, 펼쳤을 때 웃기는커녕 펼쳐 볼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기에 최대한 '태봉스럽게' 만들어보기로 파이팅을 다졌습니다.

처음 생각한 것은 기본적으로 작년 졸업 사진첩(2012학년도 제 1회 졸업사진첩)의 틀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1회 졸업 사진첩에는 1기 학생들이 입학한 2010년부터 졸업하는 2012년까지의 행사 사진이 정리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별 단체사진, 학생들 프로필 사진, 선생님들의 사진으로 마무리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형식의 졸업 사진첩입니다. 하지만 이번 졸업사진 제작팀은 작년 사진첩이 너무 평범하다고 느꼈고, 색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낸 아이디어 중 하나가 바로 바로 학생 개인 화보입니다.
 


 태봉고에서는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참 좋습니다. 태봉고에서 학생들 각각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것은 정말 학생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일깨워 주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여 각자만의 독창적인 사진이 담길 수 있도록 2기 전교생 45명 학생들의 개인화보집 개성공단을 기획했습니다. (개성공단은 우리들의 개성이 모인 사진첩이라는 뜻이지,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것은 아닙니다.

이런 기획안들을 가지고 전교생과 선생님들 앞에서 PT발표를 했습니다. 반응은 다행히 긍정적이었고, 우리 졸업 사진첩에 담길 우리 2기 졸업생들의 참여의지가 강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습니다.
 

2. 촬영

본격적으로 촬영일정을 계획하고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촬영 순서를 신경쓰지 않고, 되는대로 다 촬영했습니다.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여 수업까지 빼먹으면서 촬영했습니다. 지금은 수업을 빠지면서까지 사진첩 제작에 매달렸던 것이 약간 후회되기도 하지만 졸업사진첩이 무사히, 예쁘게, 잘 완성되었기에 선생님들께서도 이해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촬영은 저와 문석이, 소열이가 책임지고 진행했습니다. 45명의 학생들과 7팀의 동아리, 학교전경 사진 등 수많은 사진들을 모두 저희 손으로 촬영했습니다. 물론 류주욱 선생님께서 3년간 찍어놓으신 행사 사진들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는 전부 DSLR카메라로 니콘 D5200, 캐논 550D, 캐논 5D Mark2를 사용했습니다. 3년간 태봉고를 다니며 했던 영상 촬영 공부가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군요.

그 동안 공부했던 지식을 사용하여 다양한 촬영 기법과 광각렌즈, 망원 렌즈, 플래시, 조명 등의 수많은 장비들을 잘 활용하여 나름대로 전문적으로 촬영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졸업 사진첩에 사용되는 사진은 화보 느낌이기 때문에 방송실 스튜디오에 있는 흰 종이 앞에서 촬영한 경우가 많습니다. 화보 촬영을 할 때의 기본은 조명과 플래시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방송실에 설치되어있는 두 개의 조명을 인물에 비춰주고 촬영을 할 때 카메라에 따로 플래시를 설치하여 위로 바운드시켜 촬영했습니다.

조명과 플래시를 잘 사용하지 않으면 찍힌 인물의 얼굴 그림자가 어둡거나 아예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괴이한 사진이 될 수도 있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촬영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저희들이 아마추어이기에 실수가 많았습니다. 완성해 놓고 보니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이 몇 장 있었고, 배경과 너무 가까지 찍어서 인물 뒤에 그림자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촬영을 위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인물촬영은 모델과의 소통이러고 했습니다.
 모델과 최대한 친해지고 대화를 많이 해야 자연스러운 인물 사진이 나온다고 합니다.

저희는 이미 3년간 함께 했던 가족같은 친구들을 촬영하는 것이기에 촬영자와 모델과의 어색함이나 부담감이 없어서 편하게 촬영했습니다. 물론 소통도 자연스러워서 촬영은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었습니다.


. 분장 및 보정

저희 팀에는 분장과 보정 팀이 있습니다. 2기 학생 중에서 이신애라는 학생이 메이크업 아티스트 공부를 하면서 이미 상도 많이 받고 그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화장 및 분장팀장으로 믿고 맡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보정 팀도 포토샵 자격증이 있었기에 걱정이 없었습니다다. 누군가의 수상 실적, 자격증 여부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실력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그런 것 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졸업 사진첩은 최선을 다하기 보다는 최고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학창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고의 졸업 사진첩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팀이 많아지면 시간관리가 중요해집니다. 특히 분장 팀과 촬영 팀이 일정 조율을 잘 해야 했습니다. 분장을 하느라 촬영 일정이 미뤄지는 경우가 무척 많았는데, 하루에 15명 정도를 촬영해야 했기에 최대한 일정이 미뤄지는 것을 피해야 했습니다.

분장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촬영에 들어갔고, 촬영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바로 분장에 돌입합니다. 촬영이 끝나면 바로 보정 팀에게 원본 사진을 넘겨 보정에 들어가고, 분장, 촬영, 보정 팀이 모두 일을 쉬는 때가 생기지 않도록 했습니다.
 

. 편집 및 디자인

촬영이 모두 끝나면 편집에 들어가야 합니다. 계획대로라면 편집은 여유롭게 해도 되지만 우리는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이런 저런 바쁜이 일이 많아져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보정 팀에서 보정된 사진이 넘어오면 편집 팀에서 바로 편집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개인화보를 개인 당 두 페이지씩 제작했습니다. 개인화보에는 2기 졸업생 45명 전체의 인터뷰가 들어갔기 때문에 한 명씩 인터뷰를 따서 사용했습니다.

 
인터뷰는 그 사람에 맞는 재미있고 센스있는 질문을 따로 만들어서 했고, 잡지와 화보 형식을 원했기 때문에 ‘Oh Boy’라는 잡지를 모티브로 잡고 디자인했습니다.


목차를 정하면서 우선 학교걸음이라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학교의 교장실, 급식소 체육관 등의 교내 모든 장소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추억과 기억을 담아 쓴 칼럼 형식의 짦막한 글과 함께 실었습니다.

 
두 번째는 ‘3년 묵시록입니다. 묵시록이란 여러 가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비인간적 세계의 사건들을 묘사한 것을 말하는데, 태봉고에서의 환상적인 3년이라는 의미로 은지난 3년을 추억하며 수많은 행사 사진들을 모아 둔 코너입니다.

세 번째는 악연들’ 코너입니다. 보통 악연이라고 하면 나쁜 인연이라는 뜻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사용한 악연두터울 악()’에다가 인연 연()’자를 써서 두터운 인연들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악연들코너에는 3년간 활동했던 동아리나 친한 친구들이 모여서 찍은 그룹사진이 들어갑니다. 밴드부, 방송부, 농구부 등 7팀이 들어갔고, 2년간 담임을 하시다가 떠나신 이기숙 선생님 사진도 따로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화보집 개성공단이 들어가고, 마지막에 선생님들의 사진이 담긴 은사님코너가 사진첩을 마무리합니다. 우리 태봉고의 선생님들은 단지 선생님이라는 단어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가끔은 부모님 그 이상으로 감사한 분들이 바로 태봉고 선생님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졸업사진첩에 부모님보다 더 고마운 분들이라고 적어버리면 진짜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이 섭섭해 할 것이 분명하기에 은혜로운 스승님이라는 뜻을 가진 은사님을 사용했습니다.

편집을 모두 끝마치고 마지막에 그 동안 나를 비롯해서 졸업사진첩 제작을 위해 수고한 스태프들이 후기를 한 마디씩 적었습니다.무척이나 뿌듯했습니다.


졸업 사진첩을 학생들끼리 직접 제작한 것은 지금까지 태봉에서 했던 그 어떤 활동보다 더 뿌듯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라서 그런가? 더 이상 이렇게 태봉 친구들과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서럽게만 느껴졌습니다.

편집을 모두 마치고 졸업사진첩 표지를 어떻게 할 지 회의를 하던 중, 졸업 사진첩의 제목으로 두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태봉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와 태봉인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는 '태봉in'과 '갔다가 돌아간다'는 의미의 '고백(Go Back)'이었습니다.

충분한 회의를 거쳐 결국 고백(Go Back)이라는 제목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사진첩의 표지모델로는 태봉고등학교의 현 교장선생님이신 '여태전 선생님'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 여태전 교장선생님께서도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교장자리에서 물러나십니다. 태봉고가 처음 설립된 해부터 지금까지 교장이라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셨기에 더욱 아쉬운 마음을 가지실 것입니다.

태봉고를 위해 지금까지 힘써주신 교장선생님의 노력과 저희 2기 학생들과 함께 떠나시는 여태전 선생님의 작별의 의미를 담아 여태전 선생님을 표지 모델로 선정한 것입니다.

나름대로 TIME지의 표지 모델들을 따라하여 멋진 포즈를 취한 사진을 표지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졸업 사진첩의 뒷면 표지에는 저희 태봉 2기 학생들의 단체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태봉고등학교 제 2회 졸업 사진첩 
고백(Go Back)이 완성되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한 태봉고를 씩씩하게 졸업했습니다
 

어제(1월 9일 목요일) 제 학창시절의 마지막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태봉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있던 날입니다. 3년 간의 대안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며, 그 동안 정들었던 태봉 식구들과 이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년 선배들이 졸업할 때 우리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졸업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습니다. 졸업이 100일 남았다고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매정하게도 참 빨리 갑니다.

졸업식 날이 밝았습니다. 여느 아침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일찍 깨었습니다. 아침밥을 먹으러 급식소에 가니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짐을 싸느라 여유가 없었나 봅니다. 태봉에서의 마지막 급식을 먹고 제가 태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방송실에 갔습니다.

텅 빈 방송실에 혼자 앉아있으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슬프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고, 그 동안 방송실에서 내가 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졸업식이 아침 10시부터 시작이라 바로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학부모님들과 태봉을 떠나셨던 선생님들, 여러 내빈들과 작년에 졸업한 선배들까지 오니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졸업식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저희 2기 졸업생들은 급식소에서 잠시 대기했습니다. 저희는 그 동안 맛있는 밥 많이 해주신 급식 선생님들께 크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동안 태봉고에서 먹은 급식밥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맛없을 때도 있었고, 아주 맛있어서 지금까지 기억되는 메뉴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항상 저희를 위해 새벽부터 나오셔서 하루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시는 급식소 선생님들의 노력입니다. 지금까지의 고마움을 담아 2기 학생들 전체가 "감사히 먹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울먹거리셨고, 저희도 가슴이 뭉클해 졌습니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후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졸업생 모두가 졸업장을 받고, 장학금 전달 후 교장 선생님의 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학교장 회고사' 라는 이름으로 여태전 교장 선생님의 진심 어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교장 선생님의 졸업식 한 말씀처럼 무조건적으로 "성공하라", "큰 사람이 되어라" 같은 말이 아닌 돈과 권력, 명예를 얻었을 때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짓밟지 말고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태전 교장 선생님도 올해로 임기가 끝나면서 저희들과 함께 태봉을 떠나십니다. 그렇기에 더욱 교장 선생님의 한 말씀이 주옥같은 교훈으로 가슴에 남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기 전, 1, 2학년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우리 2기 학생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가사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저희들이 졸업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이렇게 우리가 졸업 노래를 들으니까 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기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그 몽환적인 기분을 또 언제 느껴볼 수 있을까요?


태봉고의 전통적인 행사 마무리가 있습니다. 태봉고에 신입생들이 입학할 때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 행사입니다. 졸업할 때에는 반대로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발을 씻겨드립니다.

저는 제가 입학할 때 제 발을 씻겨주셨던 이종형 선생님의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3학년 때 담임을 맡아주신 선생님이라 더 정이 많이 들었던 선생님이십니다.

발을 씻겨드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참으며 묵묵하게 발을 닦아드렸고, 이종형 선생님께서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모든 선생님, 후배들과 한 명씩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미안했던 것들, 하고싶었던 말들을 후련하게 다 하면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울었습니다. 이별의 슬픔에 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했습니다.(초상권 문제가 있을시에 곧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졸업이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별은 새로운 시작의 알림이고, 졸업할 때 너무 울어버리면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민망할 것 같기도 햇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태봉을 찾을 것이기에 그 날을 기약하며 마지막까지 울지 않고 씩씩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태봉은 저에게 많은 추억과 상처를 주었고 저는 그것들을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태봉에서의 수많은 경험들, 인연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태봉고등학교는 제 12년의 학창시절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긴 시간이었으며 김태윤이라는 인물이 어른에 가까워지도록 성장시켜 준 또 하나의 집입니다.

이제 그 집을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고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별에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아쉬움이 없도록 후회없이 꽉 껴안고 왔습니다. 태봉에서 3년 간 함께 한 저의 가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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