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서 느낀 것은 자급자족의 삶만이 아닙니다. 사실 무인도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감정은 생명의 위협으로 인한 공포감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인도에서의 자유시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인도에 가게 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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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잡은 물고기나 조개류 등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각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낚시를 하는 사람, 낮잠을 자는 사람,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사람 등 각자만의 방법으로 무인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촬영하러 다녔습니다
. 낚시를 하고 있던 현규는 바다에 낚시추가 돌에 계속 걸려서 어느새 세 개째 날려먹었습니다. !? 생각해보니 이제 선생님의 낚시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식량을 구할 희망이 있는 낚싯대를 모두 탕진한 현규는 좌절에 빠지고 마지막 남은 낚싯대로 선생님은 여전히 오징어를 낚기 위해 낚싯대를 던져놓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재호는 낚시를 하다가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림을 그리고, 소열과 재경, 지호는 낚시와 요리에 지쳐 텐트에 누워 부족한 잠을 채웁니다텐트가 불편했던 지우는 언덕위에서 낭만적인 낮잠을 청하는데, 계속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밀물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 ‘설마 우리 텐트까지 들어오진 않겠지?’하고 별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정말로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강풍이 불어 닥치고 거의 해일 수준의 파도가 우리가 있는 무인도를 덮쳤습니다. 작은 규모였습니다. 그래도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반쯤 무너져 있는 이도한 선생님의 텐트가 남아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도한 선생님의 짐은 모두 바닷물에 젖어버렸습니다
. 가장 큰 일은 선생님의 유일한 핸드폰이 바닷물에 잠겨 버린 것입니다. 소금물이라 고쳐지지도 않았고, 비상시에 무인도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사라졌습니다.

텐트에서 자다가 파도가 덮치는 것을 느낀 소열은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하여 단 2초만에 자신이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카메라, 가방, 노트북 등을 가지고 파도를 피해 텐트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낚시를 하다가 돌아온 선생님은 구입한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최신폰이라며 멘붕에 빠지셨고, 저를 비롯한 나머지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 때 마침
, 영화처럼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고, 우리 8명의 모두 혼란에 빠졌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때문에 텐트 안에 있어야 하는데, 파도는 계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빨리 텐트를 다른 자리로 옮기지 않으면, 바다에 잠길 상황이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 텐트를 분해하고 모든 짐을 챙겨 파도가 닿지 않는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언덕 위에는 웅덩이가 많아 빗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최대한 웅덩이가 없는 곳을 찾아 텐트를 다시 쳤습니다한 번 쳐본 텐트라서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태풍을 연상케 하는 지속적인 강풍과 비가 우리를 괴롭혔기 때문에 오히려 더 힘겨웠습니다.


텐트를 치는 동안 정말 설상가상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불행들이 저희를 덮쳤습니다
. 몇 가지 짐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가방이 바다에 잠겨 여벌옷이 다 젖어버리거나, 생수와 텐트를 고정할 돌이 언덕 밑으로 떨어져 버리는 등의 깨알같은 재앙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텐트를 다 치고 나서도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금방이라도 텐트가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이 안에 없으면 바로 날아갈 것 같아 모두 텐트 안에 들어가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재호가 선생님 몰래 핸드폰을 가져와서 당장 다음날 무인도를 빠져나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태풍이 불어 닥치는 이 무인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 강풍으로 인해 언제 텐트가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에 텐트를 다시 치느라 체력이 바닥나서 배도 너무 고팠습니다선생님이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초코바 8개를 뜯어 먹고, 재호가 폰과 함께 몰래 가져온 빵 하나를 8명이 나눠먹었습니다.

모두들 그냥 잠이나 자자고 해서 다들 잠을 청하는데, 저는 여벌옷이 바닷물에 젖은 관계로 후드티 하나만 입은 상황이라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잠도 오지 않았고, 그냥 밖에 나와 운동이나 했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에는 이미 몸이 완벽하게 지친 상태였고, 정말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바다를 보며 도대체 뭐가 잘못 된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아침에 부지도에 올 때 선장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선장님이 저희들을 데려다 준 곳은 부지도의 반대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좁아서 생활하기 불편하고, 자갈이 없어서 무인도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섬 반대편에서 머물기로 하여 지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만약 선장님이 권했던 곳에서 머물렀더라면, 바람을 등지고 있기에 강풍에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파도가 심하게 들어와도 지형이 높아서 텐트가 잠길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첫 번째 실수입니다. 두 번째는 지우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무인도에 도착했을 때 지우는 텐트를 우리가 현재 있는 언덕 위에 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덕위에서 웅덩이가 많다는 이유로 언덕 밑에 텐트를 쳤었고, 결국 짐의 절반을 바닷물에 맡기는 불상사를 겪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처음부터 무인도 체험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한 제가 가장 문제라는 본질적인 답에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들 바뀌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밖에 있어도 계속 추웠기 때문에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해보았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엄청난 강풍 소리가 제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강풍으로 텐트가 무너지고 저는 할 수 없이 잠자리를 옮겼습니다.

재경이 텐트의 친구들에게 최대한 붙어서 추위를 이겨내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하지만 몸의 한군데가 추우면 몸 전체가 춥게 느껴지는 것! 다리가 지나치게 진 재경이 때문에 텐트 문이 계속 열리고 발부터 시작해서 온 몸으로 한기가 올라왔습니다.

10월이 그렇게 추울 줄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최대한 참고 참아서 조금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 11... 시간이 미칠 정도로 늦게 갔습니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난 여기 왜 왔는가?', '내일 우리는 무인도에서 나갈 수 있는 것인가?' 텐트 안에서 추위에 떠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습니다.

정말 죽고 싶을 정로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미치게 잠자기를 원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허기짐과 추위에 지쳐 거의 기절하듯이 잠에 겨우겨우 들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나니
6시 정도였고, 다시 살을 깍는 듯한 추위와 대면했습니다. 모닥불이라도 피워보려고 해봤지만 어젯밤에 내린 비의 영향으로 나무들이 몽땅 젖어서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추위에 떨며
1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친구들도 일어나서 함께 텐트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호의 폰으로 선장님께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다행이 안전하게 구조? 되었습니다.



육지에 도착하고 곧바로 과자를 사먹었습니다
. 강냉이를 씹으며 통영에 있는 소열이 집에 가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같이 목욕탕으로 가서 그 동안 무인도에서 혹사시킨 자신의 몸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씻었습니다.
 

그러고 마산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사주시는 맛있는 저녁밥을 먹으며 우리들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역시 모두들 하나같이 무인도에 간 것 자체가 문제라며 앞으로는 함부로 위험한 일을 얕잡아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무인도에서 이것저것 느낀 게 참 많습니다
. 하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은 무인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감정들이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을 단 하나의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현재의 삶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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