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맘때쯤이면 태봉고등학교에서는 이동학습을 시행합니다. 1학년들은 제주도로, 2학년들은 네팔로 해외이동학습을 떠나게 되죠.


그렇다면 제가 속한 3학년들은 무얼 할까요? 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공부만 할까요?
아니죠. 3학년들 또한 저희 학교의 취지에 맞게 학교에서가 아니라 이동학습을 떠납니다.

하지만 1, 2학년들처럼 전교생이 다함께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각 학생마다 자신이 장래에 하고싶은 직업에 관련된 직종으로 직업체험을 떠납니다.

이미 4월달에 각자 정해놓은 인턴쉽 장소로 4월 26일(금)부터 3학년 학생들은 뿔뿔히 흩어집니다. 저는 방송에 관련된 직종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EBS 방송국에 직업체험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2년 동안이나 함께 영상을 배워 온 친구와 함께 주말에 집에서 쉬다가 4월 29일(일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에 오면 먼저 잠을 잘 곳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마침 작년에 태봉고를 졸업한 친한 선배의 집에서 숙박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함께 서울을 올라온 친구 또한 아는 선배의 집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기나긴 직업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직업체험 첫 날(30일)부터 저희들은 EBS 방송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EBS에는 당연히 사전에 인턴십을 나간다고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고, 작년에 저희 태봉고에 '학교의 고백'이라는 다큐를 촬영하러 오신 김현우 PD님께서 멘토를 맡아주기로 하셨습니다.


첫날에는 저와 함께 올라온 두명과 학생과 첫날에만 EBS를 잠깐 들르기로 한 또다른 두 명의 친구, 이렇게 총 4명의 태봉고 학생들이 EBS에서 직업체험을 했습니다.

첫날의 일정은 EBS 방송국을 견학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바쁘셔서 세세한 작업 과정을 보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 출입증을 받은 뒤, PD님의 출입 권한으로 방송국의 이곳저곳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실제로 녹화를 하는 스튜디오나 녹음실, 사무실 등 방송국의 여러가지 모습을 다양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은 이런 일을 하는 곳이구나.',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사람들은 역시 항상 바쁘시구나.'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제가 방송 업계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곳을 견학하다가 실제로 녹화가 진행되고 있는 스튜디오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곳에서는 우리 학생들이 많이 접하는 EBS 강의를 녹화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닐 때 공부하면서 참 많이 보고, 또 고3인 지금까지도 영어공부를 하면서 계속 보고있는 EBS 강의가 녹화되는 과정을 보고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EBS 강의처럼 수업 형태의 촬영은 꽤 간단할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것도 절대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EBS 강사가 수업 내용을 수시로 머릿속에 구상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수업을 하고, 조정실 안에서는 카메라의 앵글과 오디오 등 여러가지를 컨트롤하면서 녹화를 합니다.


방송국의 촬영 수준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촬영들에 비해 쉬운 방식의 촬영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점차 익숙해져가면서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배우려는 의지를 단단히 했습니다.


영상을 편집하는 편집실도 한 번 가봤는데, 영상을 편집하는 장비와 기술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우선 EBS 방송국의 전체 컴퓨터와 연동되는 서버에서 영상 자료를 받아서 편집하여 보내는 형식에 감탄을 하였고, 무엇보다도 3D 그래픽 제작실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3D 안경을 쓰고 보는 그 3D 영상을 제작하는 곳을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장비 하나의 가격이 억대 단위가 넘어간다니... 이거 왠만해선 작업실에 들어오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방송국 견학을 마치고 김현우 PD님과의 대화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저희들이 방송에 관련되어 진로를 정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한지 여쭤보았습니다.

PD님은 자신이 방송국 PD가 된 경험과 배경을 토대로 아주 친절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방송에 관련되어 영상을 잘 만들고 싶다면 가장 기본적으로 영상을 많이 보고, 영상을 많이 만들어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상에 있어서 타고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노력을 통해 충분히 그 감각을 따라잡을 수 있으며, 자신의 노력에 따라 자신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대학과 학과에 대한 질문을 드리자 PD님은 약간 고민하시더니 방송 직종을 가려고 한다면 학과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너무 구체적인 형태의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항상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를 꾸준히 공부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PD님과 그렇게 알찬 대화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EBS의 학교 다큐 3기 팀의 작가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께 저는 시나리오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법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작가님들 중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시나리오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 회의에서 좋은 내용들을 다뤄야 하는데, 이런 기획 회의에서는 'thinking aloud'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thinking aloud'란 단어 뜻 그대로 큰소리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외쳐 표출하는 것이 좋은 스토리의 밑거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스토리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기록을 해놓는 편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저의 아이디어를 말해주고 충고를 받는 식의 기획 회의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EBS에서 작가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획은 절대로 혼자 해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고, 또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잘 조율하여 하나의 좋은 스토리,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획 회의입니다.

나중에는 작가님들이 직접 기획 회의를 하는 곳에 찾아가서 회의에 참가해보기도 했습니다. 작가님들은 생각나는 것들을 바로바로 말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앞으로 저도 영상을 제작하거나 시나리오를 적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완성도있는 스토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PD님과 작가님들과의 대화시간 후에 다른 PD님께 방송과 영상에 관련된 짧막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대충 옛날에 배웠던 내용들이라 흥미가 많이 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큰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PD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영상이든 그 영상을 시청자들이 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영상 안에 그려낸 영상의 전체적인 내용과 메세지를 한 번에 나타내는 그 하나의 명장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visualizing'입니다.

정말 영상이라는 매체는 스토리 기획부터 촬영, 편집, 메세지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상의 매력이 바로 제가 영상 제작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직업 체험 첫날부터 여러가지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느끼고, 배워갈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직업 체험 일주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 Recent posts